29. 언약대로 (역대하 23:1-7)
29. 언약대로 (역대하 23:1-7) 23:1 제 칠년에 여호야다가 세력을 내어 백부장 곧 여로함의 아들 아사랴와 여호하난의 아들 이스마엘과 오벳의 아들 아사랴와 아다야의 아들 마아세야와 시그리의 아들 엘리사밧 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매23:2 저희가 유다로 두루 다니며 유다 모든 고을로서 레위사람과 이스라엘 족장들을 모아 예루살렘에 이른지라23:3 온 회중이 하나님의 전에서 왕과 언약을 세우매 여호야다가 무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찌니23:4 이제 너희는 이와 같이 행하라 너희 제사장과 레위 사람 곧 안식일에 입번한 자의 삼분 일은 문을 지키고23:5 삼분 일은 왕궁에 있고 삼분 일은 기초 문에 있고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 뜰에 있을찌라23:6 제사장과 수종드는 레위 사람은 거룩한즉 여호와의 전에 들어오려니와 그 외의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니 모든 백성은 여호와의 명하신 바를 지킬찌며23:7 레위 사람은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다른 사람이 전에 들어 오거든 죽이고 왕의 출입할 때에 시위할찌니라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저희들 가슴속까지 파고들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양식이 없어 목마름이 아니라, 말씀이 없어 목말라하는 이 시대에 말씀이 출렁거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말씀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있는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있는 나라라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함께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만들어지는 나라입니다. 나중에 여러분들이 천국에 가시면 하늘나라 보좌에 무엇이 있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 언약궤가 보인다고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습니다. 그 말은 천국이라는 것조차도 하나님이 언약하셨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늘의 천국도 언약대로 움직이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의 주인공은 새 언약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대로 된 것이 천국이라면 오로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사는 자라만이 그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제가 좀 어렵게 이야기해서 죄송합니다.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옛날에 홍수가 일어났을 때에 하나님께서 노아라는 사람과 언약을 맺었는데 노아가 지상에서 만들어낸 것이 노아의 방주였습니다. 만약에 그 당시에 방주를 만든 노아라 할지라도 자기가 만든 방주 속에 들어가지 아니했으면 노아와 그 식구들은 다 물 속에 빠져 죽었습니다. 비록 자기가 만들었지만 자기가 만든 그 언약 속에, 즉 하나님의 방주 속에 들어갔더니만 그들은 하나님의 홍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21세기에 하나님의 어떠한 심판이 온다 할지라도 우리가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노아가 만든 방주 같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으면 됩니다. 그 언약이 바로 하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사람이 바로 방주 안에 들어오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갖게 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라는 이야기는 성경에서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말고 다른 곳에 눈을 두면 그건 큰일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주 자기 인생을 배려놓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들의 환경이 여러분들을 아무리 난처하게 만든다 할지라도, 어떠한 질곡과 어려움과 환난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신다면 그 어려움에서 여러분들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의 효과입니다. 요나 라는 선지자는 비록 이스라엘 나라와 수 천리 떨어져 있는 곳의 물 속에 들어가 죽을 지경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전을 향하여 기도했더니만 하나님께서 언약의 효과를 발휘해서 그 바다 밑바닥에 있던 요나가 육지로 다시 건져 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 정도의 효과입니다. 상상도 못할 효과입니다. 요나는 그 바다 밑을 죽음의 세계라고 표현했습니다. 음부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옥의 세계요, 죽음의 세계의 한 가운데 놓여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으면 여러분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이 언약의 효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언약의 중심체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듯이, '아달랴'라는 나쁜 여왕이 있어서 하나님의 언약체계를 완전히 다 부숴 놔 버렸습니다. 노아 방주를 도끼로 부수는 것과 똑 같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언약이 없으면 구원이 되지 못하는 나라인데 아달랴라는 이 악녀가 출현해 가지고 이스라엘나라에서 약속의 흔적, 언약의 흔적은 모두 다 없애 버리는 그러한 엄청난 나쁜 짓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야다라는 제사장은 기가 막혔지요. 여호야다는 제사장이지 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 계통의 왕을 통해서 그 때,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언약에 의하면 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다윗의 자손이라는 왕으로 언약이 맺어지도록 되어 있는데 왕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악마가 활개를 치면서 설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온 회중이 하나님의 전에서 왕과 언약을 세우매"라는 아주 어려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하나님이 있으면 되지 왜 왕을 세울까하는 오해를 하게 되겠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린다는 구체적인 그 근거가 노아 당시에는 방주를 만들라 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다윗 계통, 다윗이라는 혈통으로 대대로 내려오는 왕이 있음으로서 그것이 그 당시에 노아의 방주 같은 역할을 하는 언약이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 이십니다. 물론 예수님은 지금의 언약 왕이십니다. 이것은 제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디모데전서에 보면 나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 곧 구원을 이끌어 주시는 그 구원자가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건 오늘날 이 시대의 이야기이고 그때 이스라엘 시대에는 아직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바로 다윗의 계통에서 흘러나오신 그 족보에 연결되어 있는 왕이 있어서 그 왕이 그 당시의 하나님의 언약에 중심이었다 이 말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여러분들은 "목사님 다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요즈음 한국교회에서는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요즘 한국교회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에서 교회가 있다고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가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불도가 심한 어떤 시집에 시집가서 교회에도 못나가다가 그만 연탄가스로 죽어버렸다, 그러면 그 며느리는 교회에 안 나갔다고 지옥 갑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언약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여러분들이 아셔야 됩니다. 또 예를 들어볼게요. 어떤 예수 잘 믿는 청년이 원양어선을 타고 교회도 없는 황량한 바다만 있는 남태평양 한 가운데서 고기 잡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면 몇 년 동안 교회도 한번 안 나갔으니까 지옥 갑니까? 남태평양이든 어디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요나 같은 사람은 바다 속에 들어가도 구원받았는데 배타고 나가서도 예수 믿는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제가 왜 이렇게 강조하느냐하면 한국에서 교회에 잘나가다가 교회가 드물고 낯선데 가면 그만 교회를 잘 안 다녀요. 결국 그 사람은 그 낯선 곳에 가기 전, 한국에 있을 때부터 예수 믿을 생각을 안하고 교회 다닐 생각을 한 거예요. 우리는 예수 바라보면서 교회를 나가야 됩니다. 교회만 바라보면서 교회를 나왔기 때문에 교회가 없는 오지에 가면 그만 신앙생활 팽개쳐 버리고 교회 없다는 핑계를 하게 됩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마는 오늘날의 구세주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왕이 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왕을 세우면 될 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왕이 없으면 아무나 왕을 세우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하겠지만 그게 아니에요. 다른 나라의 왕은 힘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참 어려운 이야기인데 모세 언약에 의해서 왕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모세 언약이라는 말은 왕이 이스라엘이 있기 전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제사장이 있었던 거예요. 그 제사장이 어떤 제사를 드림으로서 나라가 복을 받는데 이 관계법을 모세가 하나님한테 율법을 받아서 줬다고 해서 그것을 모세 언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뒤에 다윗이 왕이 될 때는 다윗 언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뒤에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된다는 언약은 새 언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일부러 만들어낸 게 아니고 그렇게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이거예요. 어쨌든 간에 하나님과 인간사이에는 우리가 잘나서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를 건져내는 어떤 포크레인 같은 것이 있어야 된다는 이야기예요. 노아 때는 노아가, 모세 때는 모세가, 다윗 때는 다윗의 계통이, 오늘날에는 예수님이, 인간은 스스로 훌륭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누군가 낚싯대로 건져줘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건져주는 자가 목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제가 십자가 진 적이 없습니다. 십자가 지신 분이 딱 건져서 올라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오직 예수님이에요. 오직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저 하나님 아는데요"라고 나설 분도 계시겠지만, 하나님 알아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 안다고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알아야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우리를 걸어서 건져주시는 그 중간에 계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너는 아느냐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 누구 믿고 건방지게 천당 오느냐?", "저 예수 믿고 건방지게 천당 왔습니다", "그러면 됐다 합격이다", 이게 성경입니다. 자꾸 교회에서 사람들 들볶지 마세요. 착해야 된다고 요구하지 마세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착해야 된단 말입니까. 믿음을 말씀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착해집니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한평생 계속 겸손하게 의지할 수 있습니까 라는 것을 물으셔야 합니다. 어떻게 완벽을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그 완벽은 다른 상황이 되면 힘도 못쓰고 무용지물이 되어 버립니다. 착하다고 저주 안 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안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이 아예 안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의지하고 계시는 분이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분이 따로 있어야 하고 그분이 하나님이 지정하신 왕이어야 합니다. 교회 안 다녀도 돈 버는 사람 많습니다. 저주는 예수 안에서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돈으로 환산되어서 돌아오리라고는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레위 사람은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다른 사람이 전에 들어오거든 죽이고 왕의 출입할 때에 시위할지니라"는 아주 어려운 말이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왕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거룩한 공간에서 거룩한 사람들에 의해서 왕이 옹립되어야 되는 겁니다. 지금 현재 왕이 없는 상태에서. 다윗의 혈통에 따라 왕을 세워야 하는데 그 왕은 마치 대 제사장 같은 왕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거룩하지 않은 백성들과 거룩한 하나님 사이의 왕이어야 하기에 모세 법에 의한 거룩한 왕이 참다운 왕으로 옹립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게 6절에 보면 "제사장과 수종드는 레위 사람은 거룩한즉 여호와의 전에 들어오려니와 그 외의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니 모든 백성은 여호와의 명하신 바를 지킬지며", 그리고 "다른 사람이 전에 들어오거든 죽이고"라고 7절에 나와있죠. 모세의 약속에 의하면 왕은 다른 사람과 달라야 됩니다. 왕은 율법에 의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의해서 왕이 됩니다. 그런데 그 왕은 레위지파에 속하는 거룩한 제사장에 의해서 옹립되어야 됩니다. 왜 그러냐하면 옛날에 왕이 있기 전에는 제사장이 그 일을 다 담당했거든요. 그런데 제사장 중의 제사장이 대제사장 아닙니까, 그런데 대제사장이 하나님 보시기에 제대로 못했다 말입니다. 그게 엘리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레위지파에서 나오는 제사장에게서 그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 왕이 사울 왕입니다. 이 사울 왕으로도 되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은 인간이 원했기 때문에 세운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원했던 왕을 도중에 없애버리고 하나님이 딱 집어서 "네 후손이 너 같은 인간이 되어야되고 장차 올 메시야도 너 같은 왕이 되어야 되"하고 하나님이 미리 예정해 놓은 왕의 계통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냐 하면 다윗입니다. 참, 구약을 잘 알아야 되는데, 이게 사무엘상 16장 1절에 나오는데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여기 예선된 왕이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입니다. 그러니까 이 다윗이라는 가문에만 장차 메시야와 연결되는 진짜 정통 왕의 가문이라고 하니까 다른 가문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네가 뭐가 잘나서 우리를 잦히고 너희 가문은 특별나다고 왕이 되느냐"고 하겠지요. 그러면 다윗은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자기도 하고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꼭 집어서 "너 이제부터 왕의 가문이야, 옛날 노아에게 방주로 언약을 세우듯이 나는 네 가문과 언약을 세워서 네가 가문대로 잘하면 나라가 복을 받고 네가 가문대로 못하면 온 나라가 저주받도록 너하고 언약을 세운다"하시면서 언약을 맺어버렸습니다. 다윗이 잘났다는 말을 제가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다윗은 우리하고 똑 같습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강간하고 그 남편까지 살인한 사람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보다 더 못하지요. 여러분은 사람은 안 죽였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살인자요 간음한 그 다윗이 거룩한 하나님의 언약, 하나의 방주 역할을 하느냐? 그건 우리가 모르지요. 그건 저한테 물으면 안됩니다. 그걸 하나님이 꼭 집었는데 어떠합니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왜 노아만 구원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우리가 모르지요.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더라고 창세기 6장8절에 나오지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노아에게만 은혜를 입혔어요.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박사동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왜 우리만 교회에 나옵니까? 그건 모르지요. 하나님이 꼭 집었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게 바로 하나님의 택한 자를 통해서 구원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다윗이라는 못나고 어설프지만 다윗계통을 통해서 언약을 맺은 겁니다. 그게 조금 전에 읽었던 3절 아닙니까. "온 회중이 하나님의 전에서 왕과 언약을 세우매 여호야다가 무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지니",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대로 언약을 세워서 이제 왕이 생기면 그 왕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만약에 왕이 없어 악마의 여인, 아달랴가 설치면 그 나라는 멸망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모든 사람은 1/3씩 조를 짜서 성문에 엉뚱한 사람들은 다 죽여버리고 왕을 호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서 왕을 옹위하기 위해서 여자가 작전을 벌리고 있는 그 장면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왕은 우리와 똑 같지만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의미에서 거룩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분이 하나님과 우리 인간사이에 어떤 거룩한 존재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거룩하지 못한 우리도 그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언약 때문에 우리가 거룩한 성도가 되고 하나님의 의인이 되는 겁니다. 저는 교회에 오는 여러분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평생 돌아가실 때까지, 하늘나라 가실 때까지 늘 잊지 말아야 될 것은 "나는 못났다, 나는 못났다"고 하지 마세요. 못났으면 얼마나 못났습니까. "나는 잘났다"라고도 하지 마세요. 잘났으면 또 얼마나 잘 났어요? "목사님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원래부터 죄는 짓게 되어 있습니다. 왜 자꾸 자기 죄 지은 것 때문에 가정에 우환이 생기고 가정이 파탄이 나고 저주받는다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 크게 생각합니까. 이건 마귀의 시험입니다. 내가 교회에서 행동을 잘못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이 자체가 너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몰두하고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마귀의 시험에 흠뻑 빠진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잘나도 아무 것도 아니고 못나도 아무 것도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이렇게 못난 우리를 건져내시는 포크레인 같은 예수님이 귀한 거예요. 그렇다고 죄 지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무엇을 바라봐야 되느냐가 천당과 지옥을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너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예민하지 마시고 너무 소심하지 마시고 너무 민감하지 마세요. 그것 때문에 목사들한테 쥐여사는 거예요. 목사들은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교인들을 가지고 노는데 절대로 거기에 말려들지 마세요. 주님께서 나를 의롭게 보시면 의인되는 거예요. 우리의 운명은 주님한테 달려있지 목사든 누구든 인간에게 달려있는 게 아닙니다. 주님한테 달렸다는 이 사실을 여러분, 천국 갈 때까지 꼭 쥐고 있어야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왕이 없던 왕이 새로 생겼습니다. 악마가 설치고 마귀가 설치더라도 거룩한 제사장에 의해서 왕이 다시 옹립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악한 세대에 하늘에서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어려움과 안타까운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그 하늘에서 오신 왕을 놓치지 않는 현명한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