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1. 백성들이 할 일 (대하 20:20-23)강의역대하

21. 백성들이 할 일 (대하 20:20-23)
20:20 이에 백성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찌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20:21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20: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20: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육하였더라
『하나님! 이 시간도 주께서 주신 말씀이 저희들에게 생명이 되고 영생이 되는 줄 알고 기쁘게 받고자합니다. 말씀 속에서 주님이 살아 계신 것을 더불어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이라는 것은 칼과 칼의 부딪힘이요 총과 총의 만남이지요. 힘과 힘의 겨루기입니다. 이건 실제적인 군사력의 전쟁도 마찬가지이고 경제 전쟁도 마찬가지이고 심지어 애들 수능시험까지 이런 대치상태가 일어납니다. 패자가 있는 반면에 승자가 있고 그래서 이 세상은 끊임없이 전쟁이 있고, 비교가 있고, 시합이 있고, 다툼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물론 승자에게는 기쁨이 있지만 패자한테는 좌절과 실패 감이 돌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에, 진정한 승자라고 하는 것은 칼로 승리하는 자도 아니고 수능시험으로 승리하는 자도 아니고 인물이나 어떤 재물로 승부해서 승리하는 자도 아닙니다.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생활을 누릴 자, 그 자가 바로 승리자이며 성공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TV "성공시대"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사람들처럼 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꿈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된 이 성공 자에 대해서는 우리가 애써 모르는 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시작은 됩니다마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요한계시록에서 끝납니다. 요한계시록의 지상 주제는 "이기는 자는...."입니다. 어떤 자가 이겼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죽기까지 예수를 믿는 자가 이긴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 충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믿는 그 분에 대한 충성입니다. 내가 만약에 교회를 믿는다면 그 사람은 교회와 함께 멸망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약에 대한민국을 믿는다면 나는 대한민국과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승리자라는 것은 주님을 믿는 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전쟁은 교회를 믿을 거냐 아니면 예수를 믿을 거냐의 싸움인데, 그 싸움에서 우리가 패배하면 안됩니다. 양보해서도 안되지요. 지옥 가기로 마음먹은 자라면 몰라도 제 정신 같으면 예수님을 그 어느 것보다도 더 귀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사람들이 교회와 멀어진 이유는 교회에 "내"가 다닌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내"가 나한테 충성해 놓았기에 내가 관리 잘 하면 좋은 교회가 될 가능성도 있고 내가 소홀히 하면 다음에 더 열심히 가꾸면 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이미 교회는 자기 손아귀에 놓여 있기에 더 급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이 있으면 교회는 항상 뒷전이 됩니다. 반대로 교회를 최우선 과제를 놓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자기 노동 여하에 따라 존속이 좌우되니 결국 자기 노동에 따른 결과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래놓고 자기는 예수 믿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실은 자기 자신을 믿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교회냐, 예수냐, 중에서 교회를 선택하면 안되고 예수님께 죽도록 충성할 때, 그 때에 구원받는 거예요.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특징은 보이지 않는 대상과의 싸움입니다. 교회가 지켜야 될 절대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요한계시록도 조직간의 싸움을 마치 영적인 싸움으로 소개할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소위 '교인 빼앗아 오기 싸움'에 예수님도 관여해서 같이 협조하신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 같은 발상은 아마 상상조차 해도 용납이 안 되는 발상입니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싸움을 마치 영적인 싸움인 양 거짓말해도 교인들이 잘도 속아 넘어 갑니다. 불교 신자보다 기독교 신자가 많아지는 것이 영적으로 악마를 이긴 거라고 얼마나 선전합니까? 실상에 있어 구약이나 신약에 있어 하나님 전쟁을 논 할 때, 악마들이 누구를 노리는가 하면 교회를 노리는 게 아니고 예수를 노린다는 점이 주된 핵심입니다. 사도행전19장에서 마귀가 하는 말이 "내가 바울도 알고 예수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 당할 때에 놀랍게도 마귀가 예수님에게 우리 같이 힘을 합해서 당신의 종교를 부흥시키자고 제안을 합니다.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서 뛰어내려라, 그리고 돌이 떡 되게 하라, 수많은 사람이 너를 메시야로 인정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네가 나에게 절하면 온 천하의 영광을 다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이 땅에서 무언가를 성취해서 성공시대에 나올만한 그런 위대한 영웅이 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데 있었습니다. 그 뜻을 이루시고, 예수님의 맡은 역할을 끝내시고는 아버지께로 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를 물어봐야 됩니다. 내가 얼마나 남들한테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를 채택해서 그것을 기도 제목으로 삼거나 거기에 매달리면 안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여러분에게 악마가 찾아와서 동무하자고 제안을 할 것입니다. 인간들이 자신의 영광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외면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조심해야됩니다. 요한계시록에 있어서 이기는 자의 특징이 뭐냐하면 종려나무 들고 찬송을 하면서 하늘나라에 올라갑니다. 그 이긴 자들은 요한계시록15장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뜻이며 당신의 능력과 당신의 은총으로 이겼으니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옵나이다" 하면서 찬양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구원을 받아가면서 도중에 부르는 노래며, 또한 하늘나라에서 부를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이 진짜 인간의 성공시대에, 진짜 성공한 인간들이 어떠한 인간인가를 마무리지어 보여주는데, 그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노래의 특징이 이미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해서 천국에 가고 있는지, 그 내막에 대해서 고백하고 증거하는 것이 이긴 자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미리 구원받은 자가 보여 줄 것은 하나님의 은총과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의"로서 은혜로서 구원받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마는 15절에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에서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라는 말은 우리가 이 땅에서 생각하는 것은 전부 나의 일, 내게 속한 일이고, 내가 꿈꾸는 일이고, 내가 희망하고 싶은 그런 일에 종사하고 열중하는 판국에 그런데 성도에게는 특별히 생각지도 않고, 예상치도 않고, 원치도 않은 어떤 낯선 상황 속에 초청을 받고 초대를 받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의 전쟁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의 전쟁이 따로 있고 나름대로 설계해 놓은 소박한 꿈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찾아와서 우리가 원치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데 어떤 식으로 전쟁을 하고 어떤 식으로 승리를 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더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네가 부를 노래는, 진실로 네가 솔직하게 최후로 부를 노래는 네가 이 땅에서 성공시대에 나올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너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나밖에 모르는 욕심쟁이인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준 것에 대한 그 내력과 그 핵심에 대해서 남들이 감히 고백하지 못한 것을 고백할 수 있도록 그렇게 조치하는 새로운 경험을 우리한테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무엇이 문제냐 하면 소박한 나의 꿈을 길게 쭉 늘여 가지고 그걸 마치 하나님께 속한 일처럼 왜곡되게 확신을 갖고자 매달린다는 게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 새벽기도 와서 매달리는 내용이,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욕심과 탐욕에 관한 것을 당겨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일이 되는 양, 착각하게 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에 관한, 결국 마귀의 일을 가르치고 인도한다는 게 큰 문제예요. 낯선 체험이 아니고 낯선 계획이 아니라, 순전히 그 계획은 사전에 자기 자신의 어떤 식으로 성공하겠다는 오기가 만들어내고 욕심이 작용하고 자존심으로 만든 내용을 마치 하나님의 기적 받은 양, 간증집회 하면서 그걸 남에게 자랑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만한 수준, 그만한 수입을 보장 못 받는 그런 대다수의 교인들은 그것을 부러워하게 되고, 그래서 시기와 질투가 교회에 넘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렇게 되면 세상적인 소박한 힘을 가지고 그것을 달성하려고 한다면 거기에 나오는 타인과의 싸움은 지능의 싸움이 되고, 힘있는 배경의 싸움이 되고, 가문의 싸움이 되고, 출신지의 싸움이 되고, 돈의 싸움이 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칼로 쓴 자는 칼로 망하고 힘을 쓴 자는 힘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저 쪽에는 칼과 활과 막강한 전투를 들고 나오는데, 이 쪽은 아무 것도 들고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여호와전쟁의 특징입니다. 무기로 쓸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아무 것도 없는데 덜렁 구원받았다는 고백 하나로 등장하는 거예요.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하나님 되시는 저 분의 것으로 나를 깨어서 그 분 자신의 것으로 나를 건져낸다"라는 것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신앙이 아닙니까. 고장난 차가 크레인에 의해서 견인되어질 때에 고장난 차의 운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크레인에 의해서만 건짐을 받는 거잖아요. 우리가 태어나면서 교육받은 것이 나의 어떤 행위와 노동과 실천이 원인이 되지 않는 한, 어떤 멋진 결과도 없을 것이라는 그러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우리가 길들여져 있는데, 그러나 이것이 바로 마귀적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분이 우리 가운데 내재하셔 가지고서 내 능력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계시는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가 온전하게 구원되었다는 것을 남에게 증거하게 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게 바로 성도에게 주어지는 있는 그런 자유요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전쟁에 보면 여호사밧이 아무 것도 안하고 21절에 보면,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리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 이렇게 노래하는 사람을 앞장 세웠는데 정말 희한안 일이죠. 저쪽에는 칼과 창을 들고 나왔는데, 이 쪽에는 노래하는 사람이 등장하더란 말입니다. 왜 노래하는 사람을 세웁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모습이 장차 신약시대의 교인들이 어떻게 구원받는가, 구원받고 난 뒤에 천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를 앞당겨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래하는 그 가사 내용에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우리를 구원했는가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적들이 칼을 들고나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건드리는 놈들은 박살난다 너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없으니까 자기 힘으로 우리를 공격하지만, 우리는 너희들이 보다시피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너희들과 우리의 차이점은 너희들에게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없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친히 자기의 사랑을 우리의 사랑으로 전가시킨 주님의 자비하심과 사죄하심과 의로우심과 용서하심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으로 그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내어쫓느니라 고 요한1서에 나와있습니다. 제가 왜 교회를 믿지 말라고 하느냐하면, 요새 교회는 주님의 사랑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교인이 몇 명이며, 예산이 얼마며, 헌금이 얼마며, 부동산의 크기는 얼마며, 외형적으로 보이는 힘으로 다른 교회를 이기려고 하고 사람들의 편리로 상대교회를 꺾으려고 하는 힘과 힘의 요소를 가지고 비교하려고 하니까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란 예배당이라는 부동산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을 보고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복음만을 이야기할 때만 교회이지, 십자가 복음을 가지고 교회 운영 책을 증거한다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 자신이 갖고 있다는 어떤 정치적인 세력이나 재력가지고 만약에 다른 종교나 다른 교회를 이기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속한 전쟁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죄와 십자가의 공로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마귀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안다는 이 말을 우리가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볼 때에 과연 바울이 재벌이었습니까, 예수님이 돈 많이 가진 자였습니까, 그래서 마귀들이 예수님과 바울을 겁내었습니까? 예수님이나 바울의 공통점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으로만 충분하고 넉넉하다"는 이 복음만을 증거했기 때문에 마귀들도 긴장을 바짝 해서 보통사람과는 다르다는 판정을 내린 겁니다. 세상적인 부귀 영화를 생각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을 상실한다 할지라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 십자가의 사죄의 능력이 지옥에 있는 우리들을 능히 천국으로 이끌어낸다는 것을 증거했다는 것 때문에 마귀나라에서는 바울과 예수님을 바짝 긴장하고 주요인물로 본 겁니다. 이렇게 전쟁할 때 노래하는 경우가 바로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로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전쟁을 하는데 보통 전쟁은, 우리의 장군이 누구며, 군대가 얼마나 일사불란하게 잘 움직이고, 우리의 무기가 얼마나 적의 무기를 능가하느냐 그것을 따질 건데 여기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이 하나님의 전쟁에 관한 말씀은 우리 가운데 사람 말고 또 다른 분이 계셔서 그 분의 홀로 행하시는 오른손의 권능으로 저 적들을 모조리 물리쳤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즉 노래 가사 속에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는가가 포함되었지요. 6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 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그렇게 해서 12절, 13절에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주의 힘으로, 주의 은혜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고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정결한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에 인도하시는데, 거기에 반해서 적들은 저들의 가진 힘으로, 자기의 능력으로 승리를 일구어내겠다고 했으니까 결국 그들은 하나님과의 싸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악마적인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이고 어느 교회든, 어느 가정이든, 우리와 함께 계신 그 주님의 능력보다 현재 우리가 수집하고 끌어 모은 이 힘과 재력과 명예와 다른 사람의 신임도와 영향력으로 교회를 운영하려고 한다든지, 과거에 자기가 쌓아왔던 선행 가지고 구원받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지옥가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고 있고, 하나님 이름으로 행했다는 자기의 행함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결국 아무리해도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지, 우리 가운데 계신 나말고 다른 분, 솔직히 그분만의 능력을 믿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쉬우며 동시에 얼마나 불가능한 기적에 속한 일입니까. 오직 믿음으로만, 은혜로만 구원받았다는 것을 노래하면서 이 세상을 보내는 사람,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로 최고로 승리한, 성공한 인생, 그 자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믿는다, 믿는다 하지만 그것이 종교적인 행세로서 종교인 됨을 남한테 과시하고 드러내려는 또 하나의 자기의 몸짓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진짜 믿음이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고 오직 이 부족한 것까지라도 용서하신 주님의 놀라운 십자가의 보혈의 사죄의 용서하심과 자비하심에 우리의 모든 목숨까지 거는 그런 모습인 줄 압니다. 저희들 더 이상 자기를 자랑하지 말고 십자가를 자랑하는 참된 성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54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4,817 성경 28. 악마의 속셈과 대비책 (역대하 22:10-12)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16 강의 27. 아하시야의 운명 (대하 22:2-9)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15 성경 27. 아하시야의 운명 (대하 22:2-9)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14 강의 26. 선지자의 예언 (대하 21:11-20)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13 성경 26. 선지자의 예언 (대하 21:11-20)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12 강의 25. 거룩의 상실 (대하 21:8-10)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11 성경 25. 거룩의 상실 (대하 21:8-10)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3
4,810 강의 24. 권력자의 아내 (대하 21:1-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809 성경 24. 권력자의 아내 (대하 21:1-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808 강의 23. 악한자의 교제 (대하 20:31-3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807 성경 23. 악한자의 교제 (대하 20:31-3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806 강의 22. 하나님의 전리품 (대하 20:24-30)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805 성경 22. 하나님의 전리품 (대하 20:24-30)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열람 ➜ 강의 21. 백성들이 할 일 (대하 20:20-23)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803 성경 21. 백성들이 할 일 (대하 20:20-23)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802 강의 20. 하나님께 속한 전쟁 (대하 20:14-19)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801 성경 20. 하나님께 속한 전쟁 (대하 20:14-19)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800 강의 19. 주의 이름이 하시는 일 (대하 20:8-13)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799 성경 19. 주의 이름이 하시는 일 (대하 20:8-13)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798 강의 18. 금식과 기도 (역대하 20:1-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797 성경 18. 금식과 기도 (역대하 20:1-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796 강의 17. 재판과 진노하심 (대하19:8-11)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795 성경 17. 재판과 진노하심 (대하19:8-11)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794 강의 16. 옳은 일 (역대하 19:1-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4,793 성경 16. 옳은 일 (역대하 19:1-7)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2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