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재판과 진노하심 (대하19:8-11)
17. 재판과 진노하심 (대하19: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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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재판과 진노하심 (대하19:8-11)
8 여호사밧이 또 예루살렘에서 레위 사람과 제사장과 이스라엘 족장 중에서 사람을 세워 여호와께 속한 일과 예루살렘 거민의 모든 송사를 재판하게 하고
9 저희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충의와 성심으로 이 일을 행하라
10 무릇 어느 성읍에 거한 너희 형제가 혹 피를 흘림이나 혹 율법이나 계명이나 율례나 규례를 인하여 너희에게 와서 송사하거든 저희를 경계하여 여호와께 죄를 얻지 않게 하여 너희와 너희 형제에게 진노하심이 임하지 말게 하라 너희가 이렇게 행하면 죄가 없으리라
11 여호와께 속한 모든 일에는 대제사장 아마랴가 너희를 다스리고 왕에게 속한 모든 일은 유다 지파의 어른 이스마엘의 아들 스바댜가 다스리고 레위 사람들은 너희 앞에 관리가 되리라 너희는 힘써 행하라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하실지로다 하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이 약동하고 이 생명을 흡수해서 영생을 얻으라고 주신 말씀인줄 압니다. 이 시간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우리나라는 정식으로 사법시험을 통과해야 판사나 검사가 될 수 있고 변호사가 될 수 있습니다. 판사는 그 나라에서 제일 똑똑하고 훌륭하고 지혜롭고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며 그리고 재판에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좀 이상합니다. 똑똑한 사람을 뽑는 식이 아니라 아예 한 지파 전부에게 맡겨 버립니다. 재판하는 것을 레위 지파에게 몽땅 다 일임해버린다는 것입니다. 다른 지파에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레위 지파에게 재판 전부를 맡긴 것은 소위 이방종교, 일반적인 혈족의 보통 국가와 특별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재판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차이냐 하면 레위 지파는 땅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부여받지 못한 지파에게 땅을 가진 자를 재판하는 권한을 주는 거예요. 아무 것도 없는 무소유가 소유한 자를 재판하는 거지요. 오늘 본문 11절에 보니까 레위 사람들은 아예 백성들의 관리가 되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자, 여기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소유에서부터 증식되는 재산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분쟁들, 이런 것을 해결하는데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아예 자기 소유의 땅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재판한다는 것은 모든 소유에 대한 분쟁들은 정작 소유 없음에서 정답을 찾아야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합당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땅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 땅이 없는 레위 지파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한마디로 위기의 사람으로 보입니다. 요새 말로해서 벼랑 끝에 붙어사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지요. 아무 것도 없이 무슨 재주로 살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분들은 살자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 특수한 일을 위해 생존되어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신앙이 언제 위태한 줄 압니까? 편안하고 넉넉할 때 신앙의 위기가 찾아왔다고 보시면 틀림없습니다. 만사가 형통될 때 신앙의 위기가 이미 젖어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은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안개 같으며 이 땅에 살면서 주와 함께 하지 않으면 헛되고 헛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오면 지금 그 사람은 하나님한테 훈련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가진 재산을 가지고 어떻게 더 불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거든 인간은 안개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점점 더 희미하게 멀어져가고 있는 위태로운 시점인 것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야고보서에는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을 너희가 왜 알지 못하느냐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풍족을 자랑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자기의 가졌음에 대해서 주의해야 됩니다. 땅이 없는 레위지파가 땅으로 인한 여러 분쟁에 대해서 재판할 권한이 주어진 것은, 위기의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주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조치를 하신 이유도 됩니다. 그렇게 조치해야 그나마도 정신을 차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원형은 현 땅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출애굽에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할 때에 그들은 노예였고 과부였고 나그네였습니다. 이게 원형입니다. 땅도 없고 정처 없이 헤맸던 그들이 이제 땅 좀 가졌다고 그 소유로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애굽에 있을 때에 아무 것도 없던 인간들이 이제 가나안 땅에 와서 좀 풍족하고 배부르다고 그때 그 시절을 잊어버립니까? 그걸 만약 잊어버린다면 그건 여호와의 은혜다움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에 전부를 놓치고 하나님 자체를 놓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없이도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우리 마음속에 찾아들 때, 그 때는 악마가 방문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출애굽 때, 한마디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온전히 주님만 쳐다봤던 시절, 남들 보기에 한심스럽기 짝이 없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구원되었다는 것이 실감났던 시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더니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이 넘어갔던 그 때의 사죄와 용서의 은총의 느낌을 우리가 지금도 유지해야됩니다. 그걸 유지시키기 위해서 땅 없는 사람이 땅 있는 사람을 오히려 측은히 여기면서 재판하는 그러한 장치를 만드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무릇 어느 성읍에 거한 너희 형제가 혹 피를 흘림이나 혹 율법이나 계명이나 율례나 규례를 인하여 너희에게 와서 송사 하거든 저희를 경계하여 여호와께 죄를 얻지 않게 하여 너희와 너희 형제에게 진노하심이 임하지 말게 하라" 여기에 진노하심이 임하지 말게 하라는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재판은 한국 재판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연관되어 있습니다. 연관되어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일반 나라에서의 재판은 영적인 것과 영혼 구원과 결부되지 않은 그냥 재산과 재산 분쟁에 관한 것입니다. 어느 아이가 교통사고로 죽으면 하나님의 저주와 지옥 불과는 관계없이 그 목숨 값을 계산해서 보험회사에서 타내면 그만 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나라의 재판은 그 재판의 옳고 그름이 여호와 자비심의 은혜를 아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재판에서 승리하고 못하고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번 재판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총을,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용서하심을 절감했다면 그것은 승리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판할 때, 기준들이 나열되는데, 출애굽기 22장 21절에서 24절에보면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슴이니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고 나와있습니다.
이 말은 일반인 재산이 개인 소유에 관해서 재판하는 것이 아니고, 이 모든 소유는 하나님이 각자에게 거저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도 이 가진 모든 것이 다 누구의 덕분이냐는 쪽으로 결론지어져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레위지파의 재판 결론은, 어쨌든 간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나라 인 것을 아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레위지파는 땅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땅이 없어도 살잖아요. 이게 재판의 중심입니다.
제가 오늘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부터 제가 두 가지 예를 들면 이해가 될 거예요. 누가복음12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와서 재판을 원합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 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라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여기에서 지금 동생의 잘못은 예수님과 재산의 소유로 연관을 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영생을 쳐다보고 있는 예수님 앞에 동생은 자기편일 거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더욱 더 과격한 비유를 듭니다. 옛날에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 부자가 소출이 너무 많아서, 요즈음 말하면 축복을 너무 많이 받아서 창고를 지어놓고서 하는 말이 "내 영혼아 이제는 살만하다"라고 했을 때 "오늘밤에 네 영혼 데려가면 그 많은 재산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누구 것이 되겠습니까? 자기 것이 안되지요. 그러면 있는 것 다 써버리라는 말입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출애굽 정신, 무엇을 가졌더라도 없다고 여기고, 주님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마음자세가 되어 있는 자는 천국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재판을 실시하는 것입니다. 참~ 제가 목사 입장에서 이런 말씀드리기가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목사가 밥 먹고사는 것이 교인들 헌금 낸 돈으로 살지 않습니까? 돈을 사랑하지 말고 생명이 어떻다고 이야기하는 저나 여러분들,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결론을 내린다면 소유분쟁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께서는 결국 소유분쟁에서 나중에 영적인 현재상태를 점검하는 계기로서 땅을 갖지 않은 레위 지파를 즉 예수님의 삶을 우리 앞에 세웠다는 말입니다. 돈 문제, 건강 문제로 주님 앞에 하소연할 때, 주님은 세상에서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십니다. 아니 그분 앞에서 우리는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고린도전서 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그 당시 고린도 교회에 쓸데없는 재산 분쟁 때문에 세상 재판을 거니까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느냐, 너희들이 교회가 맞아? 성도가 맞는 거야?, 너희들이 참 이스라엘이야 하고 꾸짖는 재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마지막 때에 정신 차려야됩니다. 마지막 때에 믿음이라는 것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교회에 나오는 이유도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나오고, 기도하는 이유도 가진 것 빼앗겨서 아깝다고 되돌려달라고 대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돈 없이 못 사는 것 인정합시다. 빵 없이 못 사는 것 인정합시다. 그러나 먼저 빵이나 떡이나 그런 수준은 참새 수준이고 들 풀 수준입니다. 우리 성도가 이 어두움 가운데 빛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레위 지파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봐라 땅 없이도 주님 덕분에 살았잖아, 돈 없어도 하나님 덕분에 기뻐했잖아"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진짜 제사장이 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말로 성경을 볼 때마다 겁납니다. 두렵습니다. 차라리 성경을 보지 않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시고 채찍 맞으신 분이 무엇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돌아가셨는지, 그 이유를 깨닫고 죄인 오라 하실 때에 "여기 있습니다" 나설 수 있는 겸손하고 마음이 낮아지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그 나라 의를 돈보다 더 자랑할 수 있는 깨어진 신앙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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