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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4. 미가야 선지자의 수난 (대하 18: 4-7)강의역대하

14. 미가야 선지자의 수난 (대하 18: 4-7)
4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컨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5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인을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우리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저희가 가로되 올라 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6 여호사밧이 가로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7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항상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도 주의 말씀을 대할 때에, 이 말씀으로 인하여 천지가 창조되었고 우리가 지음 받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 새사람으로 지음 받는 순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선지자가 왜 필요한가 하면,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틈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틈을 누군가가 연결 시켜 줘야됩니다. 보통사람은 그 일을 못하고 선지자가 하늘의 뜻을 땅에다가 전달하는 그러한 역할을 했었습니다. 또 그런 사람을 공식적으로 양성하는 선지학교가 그 때 있었습니다. 그 선지학교를 국가가 정책적으로 키웁니다. 그 나라에 공적자금이 넘치나, 왜 신학교에 투자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겠는데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그 당시 나라들 다 그렇습니다만 온 국민이 바로 하나의 신을 믿음으로써 국가의 단결력을 꾀했던 것이 특징입니다. 옛날의 나라는 종족과 종족들이 결합된 나라입니다. 부족국가라 하죠. 중요한 집안끼리 모여서 모든 추장이 왕을 하기 때문에 그 일가 친척들이 줄줄이 엮어져서 온 백성들이 하나의 종교에 심화하게 되어있습니다. 인도가 그렇고 파키스탄은 힌두교죠, 이슬람교 방글라데시, 이란, 이라크, 이런 나라들은 온 국민이 전부 같은 종교잖아요. 따라서 나라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는 신을 믿으니까 신이 세상 만사를 통치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신의 말을 듣지 않고 그냥 건방 떨면서 전쟁에 나간다든지 외교를 해 버리면 신이 노해서 벌을 내릴까 백성들이 불안해하잖아요. 그래서 왕은 필히 전쟁을 한다든지 중요한 일을 할 때는 선지자에게 자주 물었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공인된 기관에서 장려하고 양성해서 국가에서 월급을 주며 선지자를 키웠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그 당시의 최고 학부 출신들로서 장래가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이라 하면 벌써 신앙적으로 썩어빠진 그러한 여호와 종교를 믿던 사람입니다. 전에도 봤잖아요.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그쪽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지 말고 이쪽 자기나라에 관심을 끌기 위해서 특별하게 새로운 우상을 세워놓고 축제일도 비슷하게, 제사장도 그럴싸하게 세워 가지고 종교 흉내를 내고 신앙 흉내를 내는 거예요. 그러면 백성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행사가 비슷하니까 아마 어디든 빌면 복 받는 줄 알고 그냥 비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기복 적이 아니고 오히려 욕심을 버리는 것이었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불교가 민중들의 종교가 되고 마니까 원래 불교정신의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어디로 간지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불교라 하면 으레 점치는 것, 사주 관상 보는 것, 그리고 궁합 보는 것, 굿하는 것, 이런 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처음 한국에 복음이 들어올 때는 복음은 곧 순교였습니다. 이왕 죽는 것 예수 믿고 죽으면 천당 간다고 하니까 이래 죽고 저래 죽는 게 인생인데 죽기 전에 예수나 믿고 죽자는 것이 처음 들어온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부흥사들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쳤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천당만 생각하고 살자는 말입니다. 한 많은 이 세상에 미련 두지 마시고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이 최고지, 이 땅에서 무슨 낙이 있느냐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힘이 생기고 발언권이 생기고 외국 기독교 국가로부터 원조가 들어오고 교육투자 자금이 들어올 때, 병원 의료자금이 들어올 때, 교회 나온다는 것이 곧 돈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세의 첫걸음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가 힘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도 이 사회에서 큰소리 치고 한소리 하는 새로운 권력집단으로 변모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우리 가운데 힘있는 자가 누가 있으며, 우리 가운데 똑똑한 자가 누가 있느냐, 못난 사람 택하사 세상적으로 권력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 이렇게 교회라는 것은 오로지 예수 천당만 바라보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야고보서 1장에 봐도, 없는 자는 믿음의 부한 것으로 위로 받고 자랑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신앙의 풍요함으로 기뻐하라, 모든 가장 좋은 것은 땅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오기 때문에 위에 것을 바라봐라, 세상과 짝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줄을 모르느냐고 되어있습니다. 1장 앞에는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장 끝에는 인간이 산다는 것은 바로 안개라고 했습니다. 내가 주의 뜻이면 죽을 수도 있고 살수도 있는데 그저 주의 뜻이면 살고, 여기서 한 발자국 넘어선 사람은 모두 악하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5장에는 마지막 때에 너희가 돈을 쌓아 진노를 자청하는구나 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억울한 사람들아 걱정하지 마라 이른 비, 늦은 비처럼 우리의 심판 주 되시는 주께서 문밖에서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에도 땅에 것을 생각지 말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라 너희는 이미 죽었고 너희 생명은 하늘나라 은행에 저축되어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초대 목사님들의 예수 천당은 죽음을 생각했는데 요즘 목사들은 하나의 직장과 직업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네가 두벌 옷을 갖지 말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곧 길 지나가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까 문제는 그 돈 줄이 어디서 나옵니까? 그 당시에는 국가에서 양성했기 때문에 왕이 쥐고 있잖아요. 왕이 선지자에게 묻는 것은 백성들의 옹호도가 없으면 항상 부하가 언제 쿠테타를 일으켜서 인기 없는 왕을 처단할지 모르니까 백성들의 인기 몰이에 연연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왕은 정책적으로 선지자를 양성했고 그들에게 막대한 국비를 쏟아 넣으면서 그들로부터 옹호를 받으면서 밑으로 올라오는 모든 불만 요소를 잠재우는 정책을 벌였던 거예요. 이방나라에서 그렇게 하는 건 좋습니다. 그런데 소위 여호와 믿는 나라에서도 그 본을 그대로 보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든 왕이란 지위에 오르면 그걸 놓치기 싫다는 거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사 백 명이라는 어마한 숫자의 선지자를 동원시켜 묻습니다. 자, 왕이 정책을 제시했는데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울까? 말까? 묻습니다. 사 백 명의 선지자가 이구동성으로 "왕이시여 정말 만세 수 하옵소서 참, 어떻게 그렇게 하늘의 지혜가 떨어졌습니까?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승리하십니다" 그리고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실감나게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 하리라 하셨다" 하고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얼마나 긍정적 사고방식입니까. 선지자가 하는 일이 뭐예요? 백성들에게 위로를 해주고 용기를 부여하는 그것이 바로 주의 종들이 할 일 아닙니까? 교회 찾아온 민중들, 교인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안겨다 주는 것이 헌금 받아 밥 먹고사는 목사들의 할 짓 아닙니까? 이것 하라고 목사 세운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깐 이 긍정적 사고에 길들어진 인간들이 이렇게 왕에게 아부성 발언을 하는 거예요. 그들이 뭐 압니까? 승리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일단 다수 편에 서버리면 걸려도 자기 혼자 걸릴 것 아니잖아요. 그런데 여기 진짜 이스라엘, 정말 하나님이 다스리고 하나님이 계시는 약속의 땅위에서는 다수의 의견이라고 이것이 진리가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의 종은 거기에 살아 있습니다. 바로 미가야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그 남쪽에 있는 유대 왕이 묻습니다. 남쪽 북쪽 연합군을 결정해 놓았기 때문에 "저, 북쪽 왕이여, 그 말고 그 외에 또 물을 선지자 없습니까?" "있긴 있습니다만 그 사람은 항상 흉한 것만 이야기하고 긍정적인 것은 전혀 안 내어놓은 희안한 사람인데 물어 무엇합니까" 그러니까 "아 그런 말씀 마시고 그래도 무슨 의견인지 한번 물어 봅시다" 이렇게 해서 미가야 선지자를 부르게 되지요. 그리고 물어 봅니다. 즉, 같은 신학교 동기들이 미가야 선지자에게 이야기합니다. "야, 우리가 벌써 분위기 다 잡아 놓았다 그러니까 네가 쓸데없는 소리해서 분위기 깨지 말고 모두 승리한다고 했으니깐 너도 이제 긍정적으로 이야기 좀 해줘라" 하고 이렇게 압력을 가합니다. 그러니깐 미가야 선지자는 속으로 빙그레 웃었겠지요. 하늘나라 천상 회의를 보고 온 미가야 선지자가 땅 밑에서 하늘나라의 사태를 파악 못하고 있는 그런 인간들의 협박에 넘어 갈 것 같습니까? 어림없는 소리죠. 그래서 왕이 미가야 선지자에게 "이번 싸움은 어떻겠는가?"하고 묻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왕이여 올라가소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이룰 것입니다 승리를 취하소서" 이렇게 비꼬아 이야기했습니다. 그 비꼬는 투를 눈치 챈 거지요. 그러니깐 북쪽 왕이 "내가 너한테 몇 번이나 맹세케 하여야 하겠느냐"고 꾸중을 합니다. 그러니 16절에 이런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만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흉한 것이란 왕이 죽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나무랐지요. 하지만 선지자는 그런 눈치에 조금도 개의치 않습니다. 18절에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섰는데" 그 다음 19절이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이게 하나님이 이야기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합 이라는 북쪽 왕은 필히 죽도록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거예요. 지금 종교라는 게 뭡니까? 살자고 오는 거잖아요. 그게 잘못 되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것은 아합 왕뿐만 아니라 저나 여러분은 다 죽도록 되어있는 사람이예요. 교회라는 것은 자기 주제 파악도 못하고 살고자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죽게 만들어야 그게 진짜 교회다운 거예요. 왜? 사람이 죽어야 다시 살 것 아닙니까? 우리가 죽을 인생이라는 것을 현실로 겸허하게 받아 드릴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이 갖추어져야 그게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는가 중요하잖아요. 자신만큼은 살아 남아야 된다는 자기의 야심이라든지, 자기의 의지, 이런 것은 하늘나라에 별 영향을 못 끼칩니다. 모든 사람은 살고싶지, 죽고 싶은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이건 우리 생각이고 하늘의 생각은 이 땅의 인간은 죽어야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선지자는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에게 그대로 나타냈습니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삼 천명을 먹이니까 사람들이 예수 가는 곳에 졸졸 따라다닙니다. 그때 요한복음 6장 26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내가 준 떡 먹고 따라와도 너희는 지옥 간다는 말이죠. 떡에 관심이 있고 돈에 관심이 있어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죄송합니다마는 그냥 지옥 가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 나와 세례 받고 마지막에 지옥 가는 코스를 지금 밟고 있는 거예요. 예전에는 "교회 나가서 복 받아 멋지게 한번 살아볼까, 보아란 듯이 한번 살아봐" 이런 음흉한 통박을 굴리면서 교회에 나왔더라도 예수님 십자가 바라보고 난 뒤엔 "저 십자가에 달릴 사람은 주님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인데, 나는 왜 교회 밖에서 서성거리면서 그 사실을 몰랐을까? 이제야 알았네 내가 죽어야 될 죄인인 것을" 이렇게 바뀌어져야 이 사람은 진짜 산 사람입니다. 여러분, 미가야 선지자의 하는 이 이야기나 요한복음 7장 7절에서 예수님이 하는 이야기나 똑같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더 놀라운 사실은 누가복음 6장 26절에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적극적 사고방식에다 긍정적 사고방식의 비젼을 제시하는 거짓 선지자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5절에는 사람에게 높임을 받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바로 미가야 선지자는 그냥 하늘나라 천장에 내려앉은 거예요.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말씀 듣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주위를 돌아보니까 거짓 선지자 사백 명이 있었고 옳지 않은 임금 둘이 앉아 있더란 말이죠. 그리고 묻는 거예요. "우리가 승리하겠지?" 미가야는 "당신은 죽습니다." 옆에 있는 거짓 선지자들은 미가야 선지자에게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자기가 천상회의에서 본 대로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 땅의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거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나를 믿고 죽고자 하는 사는 산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 천당"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수가 없습니다. 안 믿으면 지옥 이예요. 이것이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천사가 얘기했던 내용입니다. 바로 이 사백 명들은 어떤 식으로 아합왕을 죽이느냐? 오늘본문 19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기에 한 영은 머리 좋은 사탄입니다. 사탄이 거짓말하는 영을 사 백 명에게 남김없이 집어넣어서 그들이 순수하게 거짓말을 하게 하는 거예요. 소위 말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말입니다. 교회에 와서는 예수님이 보는 눈으로 사람의 안목이 바뀌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종교입니다. 이미1700년 불교가 썩었듯이 200년 가까이의 기독교도 썩을 대로 썩었습니다. 이제 기독교를 믿을 건 못됩니다. 교회도 믿을 게 못됩니다. 믿을 것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22절에 보면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그러니까 23절에 거짓 선지자 중 하나가 미가야을 뺨을 치며 대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마치 예수님처럼 수난을 당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장차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정신을 앞당겨서 갖고 있으면 참 선지자요, 주님의 십자가와 그 부활의 정신이 없으면 가짜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가 마음속에 들어 있어서 십자가 달릴 사람이 주님이 아니고 바로 나이며 나는 이미 죽은 몸이고 단지 사는 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자, 주께서 나를 살려주시니까 사는 것이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자, 그런 사람이 진짜 성도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않게 하옵소서. 200년 동안 변해왔던 것들을 깨닫게 해주시고, 역사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점점 더 썩는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시고, 하지만 날마다 변하지 않는 십자가의 그 복음의 말씀만 믿고 구원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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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3 설교 요한계시록 12장 5- 6절 제목: 여자의 고난22.231.1.74/~woorich1/성경강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7-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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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1 자유게시판 예수님과 나 로마서 최고관리자 07-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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