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여호사밧의 믿음 (역대하 17:1-6)
12. 여호사밧의 믿음 (역대하 17:1-6)
1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비하되2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주둔하고 또 유다 땅과 그 아비 아사의 취한바 에브라임 성읍들에 영문을 두었더라3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저가 그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4 오직 그 부친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아니하였음이라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저가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더라6 저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여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하였더라
『하나님! 저희들을 위해서 늘 기도하시고 준비된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애를 쓰시는지를 이 시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신 말씀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한 말씀으로 순전히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지난 시간에 아사 왕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잘해 나가다가 끝에 가서 그만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적으로 돌아섰던 그러한 것을 봤습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끝에 가서 그만 실족하고 말았는가 안됐다 측은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아사 왕 본인의 입장에서 한번 봅시다. 우리는 항상 불신자들의 마음가짐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불신자들이 교회에 즉 주일학교나 중고등부 청년회 때 등등 잘 나오다가, 시집가기 전이나 장가가기 전에는 잘 나오다가, 세상에 나가서, 대학생이 되어서 교회에 안 나올 때 우리는 무작정 그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됩니다.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가졌기에 교회 잘 나오다가 하나님도 버리고 예수님도 버리고 할 수밖에 없었던가 그 심정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있을 거라고 자기는 열심히 믿었는데 그러나 하나님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확실하게 증거로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가 기도한대로 내가 가진 포부대로 착착 뭔가 이루어지는 조짐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런 점을 감 잡을 수 없더라. 따라서 확실히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마는 내가 너무 부질없이 높은 하나님만 찾고 기대어 온 나의 삶의 방식에 대해 문제가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제 수정하고 싶다. 나 스스로는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고 교회 열심히 나온 것도 일종의 테스트였고 또한 반대로 하나님이 없을 거라고 시험해 볼 수 있는 계기였다. 내가 교회 안 다녀도 우리 집안에 아무 일이 없고 말썽이 없다면 그것도 진리가 되니까 하나님이 있다고 믿은 세월처럼 하나님 없을 거라고 생각도 겸해서 하면서 남은 생애를 보내고 싶다" 라고 말입니다. 만약 진짜 하나님 계시면 나를 때려서라도 교회를 보낼 것이고 없을 것이면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일이 얼마나 현명한 일 입니까? 그래서 그들은 늘 생각하는 것이 나도 교회 잘 나오려고 늘 애섰는데 하나님 쪽에서 나를 안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찾지 못했다. 지금 와서 내린 결론인데 하나님이 있고 없고, 나에게 이제 별로 중요하지 문제이다. 있은들 뭐 하겠으며 없는 들 뭐하겠느냐. 나의 관심사는 하나님이 아니고 내가 중요하다. 내가 중요 관심사이다. 이런 마음이 들기에 교회에 안 나오는 겁니다. 그렇다면 방금 제가 한 이야기를 바꾸어서 해 봅시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교회 나오는 있는 사람은 뭡니까? 아직도 교회 나오는 사람은 자기한테 관심이 없고 오직 부활하신 주님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에 매료되어서 교회에 나옵니까? 아니면 단호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청산 할 용기가 없어서 즉 하나님이 없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지 못해서 아직도 머뭇머뭇 상태로 교회에 출석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고 그냥 교회에 다니면 혹시 있다면 천당은 안 보내 주겠나하는 이런 식으로 양다리 걸치는 식으로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정말 아직도 교회에 나온다면 우리는 뭔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거나, 과거에 열심히 다닌 전철 때문에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신 때문에 다니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심어준 누구도 넘겨볼 수 없는 진짜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 속에 영생의 심지로 심겨준 게 있었든지, 정말 이 둘 중에 하나입니다. 정말 성령이 계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심과 주님의 종으로 살아야된다는 것으로 우리마음에 심겨 주었다면 교회에 아무도 안 나온다하더라도 혼자서 교회를 지킬 것이며 아무도 주위에 신앙생활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노아의 여덟 식구처럼 혼자 서라도 방주를 툭탁거리며 만들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진짜 신앙이라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사 왕의 신앙은 과연 무엇입니까? 성경은 왜 아사 왕이 하나님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돌아섰는가? 이러한 사실이 아사 왕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현재 교회에 다니고 있는 모두에게도 항시 일어 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이라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내심 다짐에 다짐을 하고 결심에 결심을 한다고 해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참된 신앙은 타인이 말릴 수도 없고 나무랄 수도 없이 어쨌든 하늘에서 뭔가 심어주고 넣어 준 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사도 바울은 과격하게 표현하기를 한 마디로 '미쳤다'고 했습니다. 내가 미쳤어, 주를 위해서 미쳤어. 원 세상에, 과거에 한 시점에 이미 돌아가시고 없는 분을 나는 지금도 엄연히 살아 자신과 함께 계신다고 하니 이게 어디 제 정신으로 할 고백입니까? 안 미치고서는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죽은 조상, 죽은 할아버지가 살았다고 하면 믿겠습니까? 마찬가지 아닙니까? 옛날의 이순신이나 단군처럼 옛날에 죽었던 분이 살아 우리가 함께 있다고 하면서 말뿐만 아니라 실제 온 몸으로 체험을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셔 지금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 읽고 있어 라고 이렇게 주장을 하고 큰소리를 치는 자가 있다면 길가는 사람에게 다 물어보세요. 미쳤다고 그러지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미치지 않고서는 신앙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꾸 남들 같은 그런 정상인의 소리를 듣고자 일부로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돌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참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제 정신으로 죽었던 사람을 살았다고 하고 그 사람이 구름 타고 공중 재림 시에 천사들과 함께 사람들을 심판한다고 검증되지 않는 증거를 남발합니까, 납득이 전혀 될 수 없는 허황한 사기 중에 대 사기가 아닐까요? 진짜 성도는 예배당이 없다 할 지라도 교회 목사가 없다할지라도 주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신앙인데 종교전문가도 없고 종교 성직자도 없다 할지라도 자기 신앙생활에 아무 지장도 없이 용감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을 겁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이런 글이 실려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사기는 뭐냐. 바로 기독교가 가장 최고의 사기이다. 왜냐하면 세상에 지금 지구가 만들어 진 것이 45억년 혹은 100억년 됐는데 성경에 보면 불과 4620년 밖에 안됐다고 하는데 그런 사기가 어디 있느냐, 그리고 공룡의 화석이 나타났는데 성경에 보니까 6일만에 세상을 만들었다고, 세상에 6일만에 세상을 만들었다면 수천 년 전에 있었던 그 공룡은 어디서 태어났나, 노아 홍수에 다 멸했다고 그러면 그 당시 사람들은 다 어디 있느냐, 그리고 가인이 아버지에게 쫓겨나서 누구하고 살았다고? 가인이 아담과 하와의 최초의 자식인데 또 어디 다른 인간이 있느냐? 그러면 가인 아벨 이전의 인간이 있었다면 성경이 틀렸지, 다른 인간을 하나님이 따로 만들어 둔 셈이 아닐까? 그 뿐만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뱀이 무슨 말을 하고 당나귀가 무슨 말을 하며 어떻게 예수가 구름을 타고 공중에 올라가며 20세기에 로켓트가 달나라에 가며 화성에 가는 마당에 아직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가르치고 믿기를 강요하지 않습니까? 또 성경에 보니까 여리고 성에 일곱 바퀴를 돌아 무너지고 지팡이가지고 홍해를 가르고 등 등. 이런 거짓말을 고등교육을 받은 이 시대에 그런 것 가지고 사람을 설득해 가지고 사기치는 종교인들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라는 글을 올렸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또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비판한다는 것이 고작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했더군요. 과연 그것으로 충분히 비판이 되겠습니까? 그냥 사탄아 물러가라는 식으로 상대방을 저주하는 것은 진리를 옹호하겠다는 정신보다는 나라는 본인이 기독교라는 위대한 종교를 믿는데 감히 네가 내가 믿는 기독교를 네가 건들어? 그러니 내 비위에 건드리는 자는 모두 사탄이 되는거야 하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오기 발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를 기분 나쁘게 만들면 성경적 근거도 없이 일단 사탄이라고 공격하면 되겠습니까? 도리어 그 자가 수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자는 영인데 하늘나라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갈 자가 없다했습니다. 그러니까 니고데모가 말하기를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그만인데 어떻게 두 번 태어납니까? 내가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또 태어납니까? 자...여러분 니고데모와 예수님 사이의 대화를 보세요. 오늘날 흔히 말하는 남을 어떻게 도와 줄 것인가 북한에 식량을 보낼 것인가. 교회로서 내세울 수 있는 걸인들의 복지대책은 무엇인가 라는 그런 주제로 대화했습니까? 교회 건축을 어떻게 해야 아름다울 것이며 예배시간은 11시가 좋은가 10시가 좋은가 이런 문제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니고데모가 들은 말씀의 내용은 안 믿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흉내를 낼 수 있고 안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질문하는 것도 정상인의 관심과는 먼 것이었고 답변하시는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답도 도저히 믿음 없이는 상상도 못할 것이 튀어나옵니다. 소경이 눈을 어떻게 뜨며 귀머거리가 어떻게 귀가 열립니까? 요즈음 치료술처럼 서서히 회복됩니까 아니면 일시에 됩니까? 예수님께서 소경에게 진흙으로 눈에 바르라고 하니까 즉시로 눈이 뜨인 것이고 손대니까 죽은 자가 즉시로 산 겁니다. 서서히 기도 열심히 하니까 눈이 열리더라가 아니라, 심리적인 건강법이 아니라 손 만 대니까 12년 동안 하혈하는 여인이 나아버리고 왕의 신하가 가지도 안 했는데 기도하니까 그 순간에 그 신하가 벌떡 일어나게 되고 소녀가 죽었는데 '너 그만 자고 일어나라'라고 손 잡아주시니까 그냥 일어났습니다. 중풍병자가 걸어가라 라는 그 소리 한마디로 순종해서 걸어서 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홍해가 갈라진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 없이는 즉 남들 보기에 정신이 이상하지 않고서는 못 믿을 이야기가 성경에 가득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물위를 걷는다는 것이 중력의 법칙으로 어긋나잖아요. 과학적으로 어떻게 물위를 걷습니까? 물고기가 아닌데 말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과학적으로 혹은 지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그러한 것을 수용한다는 것은 나는 예수를 위해서 죽기살기로 예수님만 믿습니다 라는 분명한 자기 마음의 확신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해주시는 수많은 기적 가운데서 가장 놀라운 기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흘린 피가 너의 피를 다 없애주었다는 이러한 죄 씻음의 기쁜 소식. 죄 씻음의 소식입니다. 이것보다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홍해가 천 번이나 새로 갈라진다 할지라도 죄 씻어 집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고 우리를 흠도 티도 없는 자로 만들어 주어서 천국에 들어간다라는 이러한 사실이 너무나 희한하고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마찬가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기적의 연속선상에서 오늘 본문을 한번 봅시다. 우선 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저가 그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또 5절에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대통령이 된다든지 왕이 된다든지 한나라를 견고하게 할 때에 인간적인 조작, 인간적인 아이디어와 지혜 인간적인 경영기법 구상을 집어넣어야 나라가 견고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행했더니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견고하게 했다. 이것은 참으로 믿기 어렵지요. 특히 3절에 보니까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 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라고 되어 있는데 다윗의 처음 길. 그 다윗의 처음 길이 무엇이기에 이것이 하나님께 처음 믿었던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 왕이 그 길로 갔더니만 하나님께서 견고히 했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다윗의 처음 길은 어떤 길이었습니까? 다윗이 어렸을 때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다윗의 신앙은 어떤 신앙이었습니까?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다윗이 소년시에 거대한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모독할 때에 그 어린 소년 다윗이 방패도 없고 갑옷도 없이 자기를 보호하거나 자기를 스스로 보호할 어떤 장치도 다 버리고 나는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 해서 기껏 자기가 배웠던 돌팔매로 장군의 머리를 때려 즉사시켰지요. 이것은 다윗의 솜씨가 아니고 만군의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했지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럼 이 말이 어떤 뜻입니까? 소년 다윗이 다른 어른들은 칼 들고 준비를 하는데 자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했거든요. 도대체 만군의 이름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바알을 부르지 않고 잡종 신을 부르지 않고 왜 만군의 이름이 그들에게 구원을 주고 승리를 준 것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는 소년 다윗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사람에 의해서 그리고 사람의 정성과 힘과 노력에 의해서 적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것이 유지가 되고 성취가 된다고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은 보기에는 하나님에게는 나름대로의 게획이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잡혀 있는 대로 진행하다보니까 나 소년 다윗도 생겨나고 또 소년 다윗 앞에 골리앗도 생겨나고 그런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확산 된 겁니다. 남들 보기에는 열심히 아이를 낳아서 번식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윗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고 신앙인의 눈에는 바다의 모래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인구가 많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결과로 본 겁니다. 그럼 우리도 그렇게 보면 안 됩니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의한 과정이며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게 믿으면 될 것 아닙니까? 홍해가 갈라질 것을 믿는데 공부가 필요합니까? 사전에 측량이 필요합니까? 사전에 운동이 필요합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너무나 쉽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이 가려져 못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못 본다 할 때에 니고데모의 입장처럼 엄마 뱃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는 인식을 하는 자는 아무리 박사가 되고 유학을 다녀오고 할 지라도 손톱만큼도 하늘나라를 못 보는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럼 이미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보고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수용한 사람한테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너무 쉬운 겁니다. 세상에 그렇게 쉬울 것이 없는 겁니다. 12년 동안 하혈한 여자가 예수님 옷 만져서 살았다면 살아난 그 여자에게는 예수 믿는 만큼 쉬운 것이 없어요. 목사 되기가 힘듭니다, 신학도 나와야 되고 공부도 해야됩니다. 목사 되기는 힘드는데 천당 가기는 더 쉬운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쉬운 예수 믿기보다는 그 어려운 목사나 되는 것이 더 영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옷을 만진 여자나 사도 바울이나 사도 요한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돌았다고 했습니다. 왜? 자기 노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에서 노니까 그렇게 본 것입니다. 다윗이 갔던 그 길을 비 신앙인은 도저히 흉내내며 못 갑니다. 골리앗 앞에서 아마 다리가 후들후들 떨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사밧이 다윗의 처음 길로 갔다는데 본인이 다윗의 길로 가기 위해 기도 열심히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갔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이 가졌던 그 믿음을 여호사밧이 가진 거예요. 믿음을 가지니까 나머지 문제는 아무 인생에 문제 될 것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견고케 하신 겁니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이 자기 나라가 아닌 겁니다, 자기 몸도 자기 것이 아니고 남은 생애도 자기 것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백성도 자기 것이 아닌 겁니다. 그럼 누구나라입니까? 하나님 나라이지요.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께서 지키시는데 나는 다윗 같은 믿음을 갖고 있으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지키십니다. 다윗의 처음 길을 갔더니만 하나님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신 덕분입니다. 이게 뭐가 어려운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안 믿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물어 올 것입니다. 목사님, 우리나라를 견고하게 하려면 기도를 몇 일이나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견고하게됩니까? 본인들이 신앙적으로 어떻게 훈련해야 교회가 견고하게 됩니까? 교인들을 신앙적으로 훈련해야 교회가 든든해집니까? 세상에 그런 방법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이들을 함부로 말하기를 목사는 기도 많이 해서 낙타무릎이 되어야 한답니다. 목사가 낙타 무릎이 한번 되어 보세요. 정말로 교회가 견고하게 됩니까? 안 됩니다. 도리어 더 중요한 것은 그 교회를 자기 교회로 보지 않고 주님의 교회로 보는 관점의 변화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이 지금 활동하고 있는 교회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되는데 있어 특별한 방법은 없습니다. 모세 할아버지 지팡이의 어느 방향을 대니 홍해가 갈라졌나요? 지팡이가 살짝 대니 갈라집니까? 크게 대면 크게 갈라집니까? 홍해가 갈라 진 것은 모세가 가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갈라지게 한 것처럼 우리가 천당 갈 사람 지옥 갈 사람 가르는 것도 지금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마음에 역사 하신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믿고 천당 갈 사람 따로 갈라내고 지옥 갈 사람 갈라내는 겁니다. 지금 눈에 안보이지만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믿는 것이 우리 믿는 자에게는 믿음이고 안 믿는 사람에게는 미친 짓이고 돌은 일로 보일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수난과 고난을 각오하면서 하나님이 심어준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여호사밧이 다윗의 길로 갔더니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견고케 해 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내세에 어떻게 하면 견고해지고 나의 미래가 어떻게 하면 단단해지고 나의 이 세상 끝은 찬란한 것인가 이런 모든 문제에서 우리 일이라 여기지 말고 주님의 계획이 잡힌 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드리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