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하나님을 찾으라 (역대하 15:1-7)
9. 하나님을 찾으라 (역대하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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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하나님을 찾으라 (역대하 15:1-7)
(대하 15:1) 하나님의 신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대하 15:2)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대하 15:3) 이스라엘에는 참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이제 오래였으나
(대하 15:4)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가서 찾으매 저가 그들의 만난 바가 되셨나니
(대하 15:5) 그 때에 열국에 거한 모든 백성이 크게 요란하여 사람의 출입이 평안치 못하며
(대하 15:6) 이 나라가 저 나라와 서로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과 또한 그러하여 피차 상한바 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이 모든 고난으로 요란케 하셨음이니라
(대하 15:7)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
『하나님! 저희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속마음에 어떤 마음을 품고 계시는지, 이 시간 충분히 깨닫고 알아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구약 이스라엘을 보면 하나님의 일을 우리 사람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천사도 일을 하지요. 성신도 일을 하지요. 하나님의 일에 한해서 하나님은 온 힘을 다하여 자기 일을 차질 없이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2장에 야곱이 길을 가는데 어떤 한 무리가 자기 앞에 마중을 나왔습니다. 그들은 야곱의 사닥다리를 통해서 오르락 내리락 했던 천사들, 바로 하나님의 군대였습니다. 그 많은 천사들이 왜 왔겠습니까? 천사들이 이 지상을 방문한 것은 인간이 어떠한 방해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하나님에 의해서 성취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잡혀 귀양살이하는 그 외딴 섬에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아니하시고 천사를 보내시고 또한 성령을 보내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계시를 보도록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도 보면 여호수아가 자기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공격하기 위해서 가는데 뭔가가 나타났습니다. 적 인줄로 알았는데 적이 아니라 천사장이었습니다. 천사장, 즉, 군대장관이 나서서 하는 말이 "여호수아야 신발 벗어. 너는 이제부터 내 종이야"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군말 없이 신발 벗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쟁은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마는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천사가 와서 감옥 문을 열도록 조치 하셨잖아요. 또한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사도 바울의 남은 여생을 로마 쪽으로 돌리게 했습니다. 세상사람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 세상 모든 일이 눈에 보이는 사람들끼리 의논해서 모든 것이 다 되는 줄 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과 천사가 배후에서 이토록 결정적인 활동을 해주고 계십니다. 타이완에 비행기 떨어진 것이 누구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천사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보장 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성경을 보게되면, 하나님이 사람을 붙들고 일을 시키면서도 그 사람에게 어떤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고 천사를 통해서 일하고, 또 성령께서 일하게 하신 것과 어떤 큰 차이가 나느냐를 보여주기 위해 그 사람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성신이 임하게 되면 갑자기 변하여 선지자처럼 예언도 하게됩니다. 갑자기 그 사람이 신학교육을 받았겠습니까 아니면 교양교육을 받았겠습니까?
로마서 8장에 보면, 너희들이 기도 할 줄도 모르는데 그런 너희들을 위해서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른 생각하면 내가 교회 와서 열심히 기도한 덕인가 싶지만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성령께서 기도해 주시고 뿐만 아니라 로마서 8장에 보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친히 우리를 위해서 간구 하시는 분이라고 했으니 예수님께서 기도해주시고, 성령께서 기도해 주신 덕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모저모로 우리로 하여금 신앙생활 잘 하라고 기도해 주시는 분이 한, 두 분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20장에는 베드로가 예수님 잡히시기 직전에 눈에 보이는 예수님과 이야기하면서 목숨을 걸고라도 예수님 잡히시는 것을 막겠다고 했습니다. 절대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죽더라도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장담하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시는 말씀이 즉, 지금 마귀가 너의 믿음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역사하고 있는 것을 네가 모르지. 마귀가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를 공격하지만 그래도 너의 믿음을 빼앗아 가지 못한 것은 내가 너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너를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로 통해서 구원되는 것인 줄 알고 우리가 교회 나온 것 때문에 구원된 줄로 알고 오해를 하고 있지만, 지금도 이 어리석은 우리를 위해서 배후에서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고 믿음을 포기하지 않도록 기도 해주시는 분이 따로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장 1절에 "하나님의 신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라고 나옵니다. 벌써 하나님의 신이라고 나올 때는 여러분들은 "아하... 인간들에게 나라를 맡겨놓으니 나라가 뒤죽박죽 엉망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한 시점은 꼭 인간들이 이래저래 저질러 놓아서 수습이 안 되는 뭔가 일이 터진 시점입니다. 우리가 사사기를 보게되면 똑같은 과정이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평안히 해주면 백성들의 마음이 돛대같이 높아져 이제 하나님 없이도 자기들끼리 살 수 있다고 교만해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적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아주 괴롭게 만듭니다. 일제36년보다 더 긴 세월을 압박을 하지요.
사람은 압박을 당하면 누군가를 찾습니다. 여호와를 찾게 됩니다. "하나님이여 구세주 좀 보내주소서"하고 부르짖으니까 구세주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그들 백성가운데 보통사람, 방앗간 주인이라든지 어떤 때는 깡패두목도 생길 수 있고 요즈음 같으면 짜장면 배달하는 사람이라든지 와촌면에 동서기하든지 보건소장하든지 아무나 보통사람, 진짜 하나님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그런 보통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덜컥 등록을 시키는데 바로 하나님의 신이 임할 때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것을 여자나, 남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성령을 받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성령 받았거든 제발 계급싸움 하지 말고 누가 높으냐 싸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기분이 좋아서 성령 받은 것이 아니고, 성질이 좋아서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고, 기도 많이 해서 성령 받은 것이 아니고, 예배 잘 드려서 성령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 대통령이든, 국무총리든 교도소에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모든 인간은 주님 보시기에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불러서 의인되게 하시는데 그 의인되게 하는 근거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오셔야됩니다. 성령은 지상에 살았던 예수님의 마음이거든요. 예수님의 마음이 하늘에 올라가서 그 마음이 나에게 그대로 떨어질 때 우리는 성령 받은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나의 사랑이 되고, 예수님의 소망이 나의 소망이 되고, 예수님의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되도록 성령께서 그렇게 조치할 때, 그 사람이 종이 되었든, 파출부가 되었든, 머슴이 되었든 간에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함을 받는 것이 신약성경의 복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의 신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했다 할 때는 여러분 선입감에 아사랴는 믿음이 좋거나 훌륭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시고 아사랴도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성신이 임한 이유는, "방앗간에 일하는 사람도 성신이 임하니까 훌륭하게 하나님 일을 하잖아. 그런데 왜 평소에 내가 너희에게 준 말씀을 그렇게 믿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성신은 아주 위급한 상황에 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인간들에게 잔소리하고 교육을 하고 선지자가 와서 말씀을 가르칩니다마는 도저히 순종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훌륭한 인물이 없어서 순종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인간들이 하나님만 찾으면 인간들 선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알아서 일을 완성시키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믿음이 없어서 자신들의 믿음을 가지고 일하려고 하니까 엉터리며 일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왜 사람은 하나님을 그렇게 못 믿어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내세우시는 목표가 인간이 내세우는 목표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영광을 취하려고 하는 사고가 같을 리가 있습니까. 인간은 자기가 내세운 식대로 미래가 열리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은 하나님 나름대로 다 생각해 놓으신 바가 따로 있으니 여기에 갈등과 충돌이 일어납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는, 사사는 모두다 엉망진창인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삼손 같은 사람들은 바람둥이입니다. 바람둥이에게도 성신이 임하니까 삼손이 나라를 구원했잖아요. 거기다가 왼손잡이, 깡패두목 같이 변변치 못한 인간들, 평소에 사람취급을 받지 못한 인간들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임하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더란 말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자질이라든지, 인간 됨됨이와 전혀 무관하게, 그리고 아무리 못난 인간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사명 받들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신이 임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0장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거기에 염소 치는 어떤 목동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그만 염소를 잃어버렸습니다. 염소를 찾기 위해 사흘동안 헤맸습니다. 헤매다가 어느 선지자가 있는 곳까지 와버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성신이 임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사울이라는 사람입니다. 성신이 임하니까 아주 허드렛일을 하는 염소 치는 목동이 졸지에 선지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소문나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한 명이라고 나옵니다. 그만큼 사울이라는 작자는 선지가가 될 위인이 평소에 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장에 와서는 사울이 이스라엘 왕으로 뽑혔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뽑히니까 왕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그러면 나라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못 지킵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다 할지라도 사울이 전쟁에 나가서 승리를 하는 것은, 사울의 자질이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울에게 성신이 임할 때, 그때 사울은 놀랍게도 수 십만 대군을 이겼습니다. 사울 왕이 똑똑한 것이 아니고 누구나 성신이 임하면 모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울이 몇 번 승리하고 나니까, 슬그머니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성신이 소년 다윗에게 임합니다. 성경은 이처럼 묘하게 진전됩니다. 성신이 다윗에게 임하니까, 이번에는 그렇게 겸손하고 성령의 일을 하든 그 사울에게 악신이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년 다윗이 몸이 노래 부르니깐 다윗을 향하여 창을 던져서 두 번씩이나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악신이 임하면 그렇게 변합니다. 얼마 전까지 성신이 임해서 수십만의 대군을 쳐부수고 나라를 구해 내면서, "이 모든 영광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영광"이라며 그렇게 겸손했던 사울이었습니다. 성경에서 교만은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사사기, 사무엘상을 어느 교회에 있을 때에 강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이런 노골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가 설교 좀 잘하고 겸손하다는 소문이 주위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서 그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그 목사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자신이 설교 잘하고 겸손해서 목회가 잘된 줄로 아는 교만에 빠진 것입니다.
말이 재미있지요? "겸손이라는 이름의 교만" 말입니다" 그 때부터 그 목사는 누구든지 자기 교회에서 자기보다 더 겸손하고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고 잘 가르치는 사람이 들어오면 집사가 되었든 장로가 되었던 전도사나 목사가 되었든 어쨌든 못 쫓아내어서 안달이예요. 얼마나 기가 막힌 이야기이며 동시에 얼마나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까! 성신이 임했다는 이 말은 이근호 잘났다가 아니고, 여러분 잘 났다도 아닙니다. 못난 사람 하나님이 들어서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왜 그걸 자꾸 잊어버립니까.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니까 내가 잘나서 나를 사용하는 것으로 우리는 자꾸 착각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들어 쓸 때도 여전히 본인은 못난 존재라는 사실을 놓치면 큰일납니다. 우리는 성신이 임할 때는 겸손하다가 조금만 뭐가 잘되면 교만해져서 남과 비교하면서 상대평가를 하게됩니다. 이때가 바로 신앙의 위기입니다.
민수기 11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에게 굉장히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고기도 먹지 못하고 이게 뭐냐고 데모를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12지파 대표자에게 성신이 임합니다. 성신이 임하니까 조금 전까지 애굽에서 노예였지만 맛있는 것도 많았고 재미있었다고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원망하고 있던 그들이 하나님이 좋아 가지고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일이란 그런 사람에 의해서만 사용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처음 교회에 나올 때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고 하다가, 한 10년 다녀서 집사 되고 나면 어느새 남과 비교해서 자신을 더 알아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 생겨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지요. 성령이 떠난 증거입니다. 바로 자기 힘으로 버티겠다는 교만이죠. 하나님 필요 없이 나의 잘남으로 나의 신앙을 지탱해 보겠다는 베드로 같은 오기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마차가지입니다. 3절에 보면, 말로만 하나님 믿는 사람이지, 이제 하나님 믿는 사람이 아니죠. 그럴 때, 하나님의 성신이 선지자에게 임해서 "너희들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찾기 때문이다" 라며 하나님을 찾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 부귀영화가 어떻게 우리의 허무를 만족시켜줍니까? 육신의 것이 어떻게 우리의 모든 욕망을 달성시켜줍니까? 하늘의 영광, 구원받은 기쁨, 밧모 섬에 갇혀있던 사도요한은 아무 것도 없이도 성령이 임하고 천사가 오니까 그걸로 족하면서 하나님과 이야기하기가 바빴던 그 상태, 바로 그것이 성령이 충만한 상태잖아요.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 집사님이 성령이 충만했는데, 그 당시 돌이 날아와 그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분명히 돌에 맞아 죽어가고 있지만,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님의 눈에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마중 나와 서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스데반 집사는 "저들은 저들의 행동이 얼마나 나쁜지를 미처 알지 못하고 있으니 자기를 죽이는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십자가에서 주님이 하신 그 이야기를 하면서,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모든 일이 잘 안되어 괴롭다고 교회에 나오는데,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찾을 생각은 안하고 지나간 잘못된 일들, 실패, 손해본 것, 지나간 추억 보상해 놓으라고 하나님 앞에 땡깡 부리면서 데모하려고 교회에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의 성신이 임해서 성령께서 날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깨닫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제가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내 인생 이렇게 망치게 하십니까. 옛날 내 인생 도로 내놓으세요.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 다녔는데, 하나님 이렇게 나에게 시련을 주시나이까. 하나님 괘씸합니다. 옛날 행복을 돌려주소서. 남들처럼 살게 해주소서."라며 따지러 오는 거예요. 하나님을 찾을 생각은 안하고 과거의 아름다웠던 자신의 과거의 꿈과 그 모습을 찾아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찾는 자세가 꼭 이러해야겠습니까?
그러니까 처음 초신자 때의 첫사랑을 어디서 잃어버렸는가를 생각해봐야 되겠습니다. 신혼부부가 처음사랑을 할 때는 부부싸움을 할 리가 없겠죠. 하꼬 방에서 둘이 살아도 감사하듯이, 왜 우리가 예수님만으로 기뻐했고 죄 씻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눈물 흘렸던 그 사랑을 찾을 생각은 않고, 엉뚱하게 세상 것을 찾으려고 교회 나오느냐 말입니다. 이게 전부 성령 놓쳐버리고 하나님 떼어 내버린 그런 결과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었습니다. 열두 제자 모두 순교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거지 나사로도 거지로 인생을 끝냈지만 하늘나라 갔습니다. 진정한 신앙이라는 것은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어떤 세상의 유혹에도 끔쩍 않고 하늘의 것을 더 고귀하게 여기며, 범사에 감사하는 그 마음, 그게 진정한 승리자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바로 이런 자세로 선지자는 왕에게 독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들에게도 이 시간 그런 신앙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계심 그 자체가 좋아 어쩔 수 없이 기뻐서 찾으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신앙이 있다고 자부했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기도 잘했다고 뽐내기도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령이 임한 사람은 세상의 천지개벽이 와도, 옥에 갇혀도 조금도 겁내지 아니하며 주님을 감사하고 기뻐하고 영광 돌렸는데, 우리는 세상 것이 내게 없다고 하나님 앞에 대들 수밖에 없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회개할 줄 모르는 저희들 아닙니까. 이 시간을 통해서 하늘의 것이 세상 것 보다 더 좋다는 것을 깨닫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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