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글을 어떤목사님이 답을 주셨는데 이목사님께서 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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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성근(IP:221.139.3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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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사 답변에 대한 반박
권문숙
2007-03-02 22:28:39, 조회 : 83, 추천 : 3
어떤 성도가 이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질문>
목사님의 강의에 철학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니 성경을 해석하면서 십자가를 이야기하면서도 뭔가 철학적인 느낌이 들때가 있습니다.
외람된 질문이지만 너무 어려울때가 있고, 오직 성경으로만의 설교가 부족한건지 아니면, 철학이야기를 알아야 인간의 죄됨을 더 알수 있다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모든 신학 서적은 읽지 못했습니다만, 철학이야기를 하면서 성경해석이나 성경풀이를 하는 목사님들을 이근호 목사님외에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물론 철학적인 것들을 앎으로 지식에 도움이 될수 있을수 있겠지만, 신약의 사도들이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성경을 이야기 하던가요? 그리고 그후의 건전한 신학자들, 목사님이라고 판단되는 분들의 강해나 설교에 철학적인 색채를 가진 글들을 읽어 본적이 없는데요, 이렇게 질문드려 너무 죄송합니다.이거 괜히 목사님을 공격하는 듣한 질문이 될수도 있는데 절대 제 마음은 안그렇고 뭐라 질문드려야 하는데 딱히 글을 오밀조밀하게 쓰지 못해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드려서 뭇내 죄송스럽습니다.
아직 많은 글들을 접해보지 못하고 목사님을 판단하는것은 아니고 그냥 수년간 목사님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점입니다.
죄송합니다. 저의 좁은 생각이라 ... 목사님께서 제가 좀 이해할만한 답변을 듣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이목사 답변글>
하나님은 철저하게 인간의 위선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인간 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대항하고 나서는 방식이 바로 철학입니다. 철학 속에는 과학이 들어있고 철학 속에는 종교도 들어있고 철학 속에는 신학도 들어있습니다.
제가 철학을 말하는 것은, 성경 해석과 신학이 인간을 위선케 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신학교에 입학하여 평생 신학만 접하고 목회자로 살아온 자들이, 어느새 신학과 성경 해석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위장하고 자신을 봉쇄하며 살아가고 있게 됩니다. 즉 십자가 앞에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룩한 신학과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자이다'는 것으로 바른 인간인 것처럼 자부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반박>
이목사가 위에 말하는 목회자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있다. 바로 디모데이다.
딤후 3:14-17절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성경을 배워 알았다. 어려서부터 평생 성경만 접하고 바울을 잘못 만나 자신을 철저하게 위장하고 자신을 봉쇄한 자가 바로 이목사 말처럼 디모데가 분명하다. 과연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을 말하며 ‘너는 십자가 앞에 항상 죄인임을 알라’라고 말하는가?
내가 보는 디모데후서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바울의 가르침인데 ...
디모데로 하여금 말세의 고통하는 때임에도 바울이 고난을 당한 것을 보고 악한 사람들이 속이는 것에 속지 말고 오직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며, 어려서부터 안 성경이 능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항상 힘쓰고 바울이 자기 몸을 관제로 드리기까지 전도의 일을 힘쓴 것처럼 디모데도 전도인의 직무를 끝까지 감당하여 의의 면류관을 받으라고 한 것인데 ...
이목사의 ‘철학 속에 신학이 있다’는 말은 도올 김용옥이가 한 말과 같다. 하나님은 철학으로 인간의 위선을 드러내는가? 어디 그런 말이 성경에 있는가?
<이목사 답변글>
예를, 들면 "성경해석이란 문법적 해석과 역사적 해석과 기독론적 해석으로 해야 한다"라는 사고방식이 바로 악마가 가르치는 성경해석학이라는 사실을 신학자나 목회자들은 모르고 있는 겁니다. 더 쉽게 말해서, 인간은 그 무슨 짓을 해도 죄만 나올 뿐인데, 소위 교회에 관련있는 자들은 신학과 성경 해석이 마치 선한 일인양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하는 특별한 일이 다른 사람과는 달리 자신을 의롭게 만든다는 의식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평생 김밥만 말아서 살아간 어느 아낙네가 혼자 생각하기를, "나는 다른 것은 무식해서 모르지만 김밥 마른 것은 나쁜 짓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고 자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원리로 축구 선수는 생각하기를 "나는 평생 축구계에 몸담고 살아온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라고 보지 않는다"라는 것과 같고, 평생 교회를 떠나지 않는 자들이 "나는 다른 일은 모르지만 평생 교회를 지켜온 것은 바른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이와같은 모든 위선과 위장은 하나님의 심판받을 사고방식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정당하기에 옆에 다른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몰라도 된다"라는 의식이 바로 그 자체가 사람을 더욱더 강한 위선죄로 만듭니다. '신학을 전공한 자가 신학 하기도 버겁고 바쁜데 딴 것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다'는 여기는 그 발상 자체가 바로 자신이 얼마나 자기 정당함과 변명 위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겁니다. 한 예로서, "나는 펄학을 해봤자 나를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놀면서 살란다"라는 의식도 자기 변명이요 자기 위선이요 교만입니다. 왜냐하면 비닐 포대기로 자기 눈만 가리면 자기 아랫도리로 무슨 짓을 해도(노상방뇨) "나는 안 봤다"라고 우기면 된다는 심보입니다. 철학은 어느 인간이든 진리를 얻기 위한 모든 노력이 담겨 있다는 겁니다. 열심히 공부하든지 아니면 그냥 자기 능력껏 살아가든지 나름대로 자기를 위한 진리를 꼭 쥐고 살아가게 되는데 그 진리란 다름아닌 항상 '자신은 자신이 지켜내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강한 자기 사랑으로 똘똘 영글어 있는 마음과 관련 있습니다. 즉 자기를 살리기 위한 진리 추구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 노릇을 하는 겁니다.
<반박>
바울 ; 디모데야! 철학을 왜 공부하지 않고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니?
디모데 ; 전 게을러서 오직 한 길로만 걸어왔습니다.
바울 ; 디모데야! 비닐 포대기로 눈만 가리지 말고 네 아랫도리로 무얼 하고 있는 지 봐!
디모데 ; 제 눈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요.
바울 ; 어허! 넌 정말 게으르며 이젠 우기기까지 하는구나.
디모데 ; 전 어려서부터 성경만 알면 자기 사랑으로 똘똘 뭉치는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바울 ; 그게 바로 네가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온 것이야, 철학은 너의 위선됨을 밝혀 주거든!
디모데 ; 그러나 전 어찌해서든지 성경으로 저만 살기 위해 진리를 추구할 것입니다.
바울 ; 어허! 성경만 알게 되면 십자가의 원수가 된다니까! 성경해석을 잘하면 자기만 의롭 다고 알게 되니 어여 철학을 더 공부해!
<이근호목사 글>
신학을 하고 설교를 하는 자는, '왜 내가 외치는 이 설교와 강의와 나의 목회가 나를 구원하지 못하고 나를 의인되지 못하는 것임'을 증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오직 십자가 능력에만 나오기에 자기를 포함에서 인간에게 나오는 모든 것이 왜 십자가 앞에서 원수짓인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철학은,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긍정하고 그 긍정 위에 기어이 영원히 살아남고자 하는 분투노력과 논리들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다음의 성경 귀질을 이해 못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케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 10:5-6)
<반박>
제발 이목사는 딤후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바란다.
디모데는 과연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함이 ‘내가 외치는 이 설교와 강의가 나의 목회가 나를 구원하지 못하고 나를 의인되지 못하게 하는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나?
결코 아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고 알았으니 이젠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바울이 가르치는가?
물론 결코 아니다!
디모데에게 바울은 악한 사람들에게 속지 말라고 하며(딤후 3:13) 성경은 능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말한다(3:15).
그럼 어떤 지혜가 있게 하는가?
뒤이어 설명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3:16).
어떤 목적을 위하여 성경으로 교육해야 하는가?
바로 이어 설명한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다(3:17).
이목사처럼 ‘너는 십자가 앞에 죄인임을 항상 깨달으라!’고 성경을 교훈하라 했는가?
후후후, 정말 3:17절 말씀이 그렇게 해석되는가?
그럼 선한 일은 무엇인가?
바울은 선한 일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의 심판을 두고 엄히 명한다(딤후 4:1).
어떤 명령인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이다.
왜 엄한 명령을 내리는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항상 힘써야 한다.
어떻게 힘쓰는가?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여야 한다(4:2)
어떤 때인가?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 때이다.
그런 때이라도 디모데는 어찌해야 하는가?
모든 일에 근신하며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4:5)
그 직무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것이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하는 성경을 끝까지 교육하는 직무에 충성하라는 것이다.
말세에 고통하며 악한 자가 속이는 때에 자기를 사랑하여 자기 귀에 듣기 좋은 스승을 두는 때에라도 오직 디모데는 자기가 맡은 전도인의 일을 다하라고 바울은 명령한다.
이것이 바로 디모데의 선한 일이다. 자기 직무에 끝까지 충성하는 것이다.
그럼 바울은 어찌했는가?
바울은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 즉 순교할 때가 가까이 왔다는 말이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4:7) 즉 순교할 때까지 바울은 전도인의 직무를 다했다.
왜 이렇게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켜 달려갈 길을 달려갔는가?
바울에게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도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을 위하여 함께 고난을 받으며 끝까지 말씀을 전파하는 전도인의 직무를 다하여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서 속히 오라고 한다(딤후 4:9)
근데 무얼 가지고 오라 하는가?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한다(4:13).
왜 가죽 종이에 쓴 것(성경)을 가져오라 했는가?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울은 감옥에 갇혀 순교를 맞이하면서도 성경을 가져오라고 한다.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이다. 그냥 얼굴이나 보자고 오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어디 철학 책 나부랑이를 가져오라 했는가?
세상 초등학문에 불과한 것을 무겁게 가져오라 할 필요가 없다.
목회자에게 있어 철학은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다. 성경의 문법적 해석도 못하는 자에게 정말 철학은 사치한 악세서리에 불과하다.
철학을 많이 공부한 도올이 성경해석을 엉터리로 하는 현 시점에 철학 때문에 성경에 눈먼 목회자를 보니 답답할 뿐이다.
이근호(IP:220.♡.122.68)
07-03-11 18:01
육에서 나온 인간들은 뭘 해석에도 육이 나오고 십자가 복음을 거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육=철학=신학=성경 해석=죄'임을 십자가로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