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신도 신학1"을 읽고 ] - 2003/3/13 손성식
"평신도 신학1"을 읽고 저자: 송 인규 출판사: 홍성사(서울:2001)
신학이면 신학이지 왜 평신도 신학일까요? 여기에는 저자가 한국교회를 향해서 외치는 발언이 깊게 배여 있습니다. 저자는 우선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합니다.
1. 목회자 주도의 신앙형성: 목회자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을 틀림 없지만 문제는 목회자가 평신도들을 늘 목회자 의존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역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 예배당 중심의 종교활동: 교회 내 활동(예배, 친교, 교육등)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신앙생활의 전부인양 강조되고 특화됨으로써 일상생활에서의 예배가 무시되거나 양자가 철저히 분리되어 버린 사실이다.
3. 의식위주의 예배이해: 주일에 교회당에 모여 드리는 형식으로서의 예배에 국한된 전통적 예배관으로 인해 내적인 예배 정신이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고 그 결과 일상생활에서의 예배가 실종되어 버렸다.
4. 이원론 주축의 신앙체계: 종교적 영역은 거룩하고 신령하며 바람직하게 여기는 반면 비 종교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은 세속적이고 육신적이며 죄된 것으로 분류하게 되었다.
저자가 보기에 위와같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세상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평신도가 살아가는 곳이 세상인데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외형적 영역으로서의 세상(세상1)'과 '내면적 정신으로서의 세상(세상2)'입니다. 우선 '세상1'은 세상 사람들로서 하나님이 사랑하신 대상으로 목숨을 버릴 정도까지 사랑해야 될 대상이며 이 경우 세상1은 교회와 확연히 구별됩니다. 반면 '세상2'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으로 구성된 '세상 정신'으로서 결코 사랑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며 이 경우 세상2는 교회 안이나 믿는 사람들에게서도 편만하게 발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는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세상1'과 '세상2' 사이의 무의식적이고 굳어져버린 혼동입니다. 그로 인해 정작 사랑해야 할 세상 사람들은 멀리하고 내면적 정신으로서의 세상 정신이 교회 안에 침투함으로써 영적 간음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개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세상에서'의 실존이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실존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속으로 보냄 받은 의식 가운데 살아야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정체성을 지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여기고 그렇게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구청장만큼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할 때는 '주되심'의 범위를 생각해야 하는데 나의 구원이라는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우주적 차원까지 생각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야 비로서 우리의 생활 영역은 일상적 영역과 종교적 영역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교인들 각자가 이 세상에 하나님으로 부터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 세상에서 하는 일들의 종류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소명으로 일상생활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교인들 각자의 중심에 위치할 때 제대로 된 평신도 신학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저자의 생각입니다.
@ 평가 @
본 저서는 한국교회의 한 단면을 제대로 지적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외형상 대단한 성공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아기 티를 벗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한국교회를 향해서 "생각 좀 하고 사세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 있는 '주되심'은 범위에 대한 문제만 다루어서 그리스도의 주도적 역할에 대해서는 미흡하다. 꼭 우리가 제대로 살아야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같은 느낌이다. 오히려 주님이 지금 살아계셔서 간섭하시기에 이 정도라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