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르트 신학자에 대해] 2005-10-01
[칼바르트 신학자에 대해] 2005-10-01
이름 : 관리자(IP:122.47.55.30)
이근호목사님 칼바르트신학자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성민 2005-10-01 01:52:57, 조회 : 199, 추천 : 44
칼바르트에 대한 글이 있다면 참고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칼바르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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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목사님 칼바르트신학자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근호 2005-10-01 07:41:44, 조회 : 325, 추천 : 37
>칼바르트에 대해서는
이곳 '추천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아삐방'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거기에 손성식 목사님께서 여러 번에 걸쳐 칼 바르트에 대해서 잘 장의해 놓았습니다.
또 '이 사이트의 초기화면에 나오는 '철학과 신학의 허상'이라는 곳에 크릭하면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에 대해서 제가 설명해 놓았습니다.
또 칼 바르트의 예정론과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 비교를 '성경신학의 세계'란에 소개해 놓았습니다.
칼 바르트 신학자는,
신과 인간을 극단적인 대립적 관계를 가지고 신학을 전개한 사람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저는 성경적으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언약'이기에 하나님만이 관여한 일을 인간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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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문의합니다.
황준철 2005-10-01 11:06:34, 조회 : 220, 추천 : 53
성경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괜찮은 책들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 봐서는 좁은 틀 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른 신학의 틀을 먼저 세우는 것이 기본이지만, 다른 신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비난하는 것이 바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추천할 만한 신학자들과 좋은 책들이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p.s.
책을 읽은 시간도 부족하고, 제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서 성경신학 관련 필수 추천도서 위주로
알려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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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추천도서 문의합니다.
이근호 2005-10-01 13:07:21, 조회 : 347, 추천 : 26
> 신학생의 필독서
1.입문자
회개하소서 십자가의 원수된 교회여! 허성 지음 홍성사
기도의 신비 소재열 지음 대장간
2.초보 단계
히브리식사고와 기독교 밀톤 지음 컨콜디아사
하나님의 열심 박영선 지음 새순 출판사
예수를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로핑크 지음 분도출판사
로마서서 강해 1,2,3 권 로이드 죤스 지음 기독교문서선교회
에베소서 강해 전 권 로미드 죤스 지음 기독교문서선교회
3.초급 단계
하나님의 나라 죤 브라이트 지음 컨콜디아사
교회란 무엇인가?한스 큉 지음 분도출판사
예수 루카스 그롤렌버그 지음 종로서적
예언자 상권 아브라함 J 헤셀 지음 종로서적
성령 은사론 리챠드 개핀 지음 기독교문서 선교회
4. 중급단계
교의학펠 만 지음 한국신학연구소
신의 세속화 박봉랑 지음 대한기독교출판사
예수 그리스도카스퍼 지음 분도출판사
신약성서의 통일성과 다양성 제임스 던 지음 무림 출판사
십자가를 아십니까 이근호 지음대장간
예수 그리스도의 길 몰트만 지음 대한기독교서회
신의 약속은 파기되지 않는다 김이곤 지음 한국신학 연구소
5. 고급 단계
바울과 예수 에버하르트 융겔 지음 이화여자대학교 출판사
공관복음 문제안병철 지음 카톨릭대학 출판부
구약신학 발터 침멀리 지음 한국신학연구소
복음의 회복 이근호 지음 대장간
일반 교양 서적
장군죽비 (불교) 휴암 스님 명상
카오스와 문명(동양 철학) 김상일 동아출판사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교계의 부조리) 김용옥 통나무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문명론 초급) F. 카프라 범양사 출판부
총, 균, 쇠 (문명론 중급) 재레드 다이아몬드 문학지성사
삶과 철학 (철학 초급)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동녘 출판사
주체란 죽었는가 ( 철학 중급 )강영안 문예출판사
자기 의식과 존재사유 (철학 고급) 김상봉 한길사
성과 속 (종교학) 엘리아데 학민사
소유의 역사(경제학 초급) E.K. 헌트 중원문화
소비의 사회 (경제학 고급) 장 보드리야르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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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않는 가족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요
원미경 2005-10-05 17:54:41, 조회 : 252, 추천 : 61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것을 구해야 하는건지요
지난 이근호목사님 집회에서 좋은말씀 듣게된것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가족과 교회..를 덮었다고 기도하라신게 맞는지요
아이들에게 영어를가르치고 피아노,미술을 가르치는것이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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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믿지않는 가족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요
이근호 2005-10-05 18:31:30, 조회 : 313, 추천 : 24
기도란, 성경에 나온 내용을 따와서 그대로 기도 대상인 사람이나 본인에게 임하게 해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주님의 통치를 알게 해주시고, 햇빛과 공기가 다 십자가의 공로로 주어짐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또한 마태복음 6장의 내용대로라면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고 그 나라와 의를 구하도록 기도하는 겁니다.
또 고린도전서 6장 같으면, 우리 몸이 주님의 것인 것을 그들이 믿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면 되고,
고린도전서 7장 같으면, 그들이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 같이 살게 해주시고, 이 세상의 돈은 다 쓰지 못함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그래야 기도하는 당사자가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짐'에 대해서 동참된 성도가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성도를 기도를 통해서 본인부터 전혀 성경의 내용을 달가워하지 않음을 늘 확인하고 회개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아이들에 대해서는 소질 있다 싶으면 야무지게 피아노 가르치시고, 미술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주변의 시선이나 평판을 두려워해서 남이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라한다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모습은 자유스러운 모습이 아니고 억압 당하는 모습입니다.
남이 해서가 아니라 왠지 본인이 하고 싶을 때는 그렇게 하세요.
그래야 후회해도 남 탓이나 하나님 탓으로 못돌릴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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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다하시는데 왜 설교와 공부를 해야하는건지요?
이성민 2005-10-15 21:48:39, 조회 : 238, 추천 : 51
음....
정말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시기에 이 시간도 게시판의 글을 보고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는건지요?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일반적인 질문을 올립니다....
하나님께서 모든것을 하시고 구원하시는데..굳이 말씀을 듣고 공부해야하는 이유는 뭔지요?
아는만큼 하나님을 알고 경외다고 해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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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주님이 다하시는데 왜 설교와 공부를 해야하는건지요?
이근호 2005-10-15 22:45:35, 조회 : 272, 추천 : 42
인간을 수단으로 하여 사용하셔서 다 하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다 이루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성도 아닌 사람은 항상 주님을 남으로 여기게 됩니다.
예수를 불러줄 때만 자기에게 의미가 되는 줄로 알지요.
이런 예수를 유사품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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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주님이 다하시는데 왜 설교와 공부를 해야하는건지요?
이성민 2005-10-16 18:09:54, 조회 : 235, 추천 : 55
반은 이해가 갑니다만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답변에 대해서는 제가 이해하기에 상당히 어려운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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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다하시는데 왜 설교와 공부를 해야하는건지요? 이성민 2005/10/15 51 239
[re] 참고하세요.
이준 2005-10-16 14:36:24, 조회 : 203, 추천 : 21
"...그 사람이 도적질을 하고, 어떤 나쁜 짓을 하고, 간음을 하더라도 관계없이 주께서는 그 사람을 의인되게 한다는 것, 이것을 믿는 것이 신자입니다. 이것은 총체적으로 인간의 행함과 관계없이, 인간의 어떤 행함과 관계없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인간의 행함과 관계없이 된다고 했는데, 듣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더라고 오해를 합니다. 저는 행함과 상관없이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그 쪽에서는 그렇게 이해하더란 말입니다. 그럴 때 제가 가장 답답합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신다는 것이 로마서 4장에 나오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이 가만히 있었다는 말이 아니고 어떤 행위를 해도 그 행위와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4장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출처 : 이근호(2004).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안양 : 대장간. p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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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참고하세요.
이성민 2005-10-16 18:16:19, 조회 : 185, 추천 : 22
제가 아무것도 안한다는게 아니라
말씀공부에 관해서 질문드리는것입니다
공부해야하는 이유 말입니다...
제 주관적인 생각은 주님께서 계속 말씀에 관심을 갖게 하시고 열심히 듣게 하는것 같습니다만..
이것도 제 생각일지 몰라서요..-_- 여쭙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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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네...그렇다고 봅니다...
권범식 2005-10-17 10:57:47, 조회 : 194, 추천 : 44
안녕하세요...
목사님의 말씀은 말씀 공부를 해야된다 아님 하지 말아야 된다...라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성경공부라던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무슨 의무 혹은 어떠한 이유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은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시게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말하자면...성경공부, 말씀공부를 하니깐 성도다...가 아니라...성령을 받아 성도가 된 사람들은 말씀을 사모하고 성경공부를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성경공부가 성도가 되는 어떠한 길이 아니라...성도가 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일종의 모습일 뿐이라는 것이죠(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알아가는 모습)...일종의 성령의 열매라고 봐도 된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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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질문에 연관하여 이번 의존교회 강의에서 나온
김대식 (Homepage) 2005-10-16 21:13:03, 조회 : 195, 추천 : 36
선악의 의미를 우찌 그리 풀어내셨나요
아니 어떻게 알아내셨나요?
어느 책에 나오던가요?
목사님의 숙제로 나온 응용력인가요? 아님 그 숙제를 결국 성령이 해 내신건가요?
(응용력이 뛰어난 기술자로 보는 시각과 / 뭐든지 성령으로 연결해야만 정당적이다는 의식 속에서 / 우리 인간의 처세술적인 믿음은 따라잡기이거나, 아님 그냥 시기심으로 인한 거부반응의 길일 텐데 /
이런 입장에서 우리의 태도나 자세
아님 ... 음 .. 참 뭐라고 해야하나
주님이 펼치시는 사건의 일부? )
그냥 하도 신기해서 물어 봅니다.
아무리 봐도 이목사님은 죄인일 뿐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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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아래의 질문에 연관하여 이번 의존교회 강의에서 나온
이근호 2005-10-17 08:30:55, 조회 : 220, 추천 : 43
죄인이 아닌 자가 없기에 죄인이고,
주님이 일으키지 않는 사건이 없기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고,
예수님을 믿게 하신 분이 따로 계시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듯이,
사람에게 있어 '안다는 것'도 주님께만 감사할 일입니다.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뢰되....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요한계시록 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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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아래의 질문에 연관하여 이번 의존교회 강의에서 나온
정판옥 (Homepage) 2005-10-17 10:42:56, 조회 : 168, 추천 : 35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아멘, 아멘...
더 이상 명쾌한 답변이 없을것 같네요.
성경해석의 권한이 인간에게는 주어지지 않았고 오직 성령님의 유일무이한 권한인데,
굳이 인간은 자기를 중심에 놓고, 자기로부터 모든 만사를 출발하면서 진리를 찾으려니
성경에서는 한마디로 "왜!"라고 토를 달지 말라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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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선교 역사에 관해서...
박협 2005-10-19 17:14:26, 조회 : 198, 추천 : 43
샬롬!
목사님 우리 나라 의료선교에 대한 역사에 관한 자료를 찾고 싶습니다.
찾아보닌까 각 기관별 의료선교에 대한 역사만 있지 전체적인것은 안 보여서요
그리고 성경에서의 의료선교 구절을 알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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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의료선교 역사에 관해서...
이근호 2005-10-20 09:23:44, 조회 : 247, 추천 : 40
>'의료선교'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의료 선교'라는 말은 마치 '찐빵 파는 이발소'처럼 서로 다른 영역 끼리의 부조화적 결합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의료 봉사' 혹은 '무상 의료 사업' '의료 사회 사업' 이것은 말이 됩니다.
사실 '선교'라는 말 자체도 옳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냥 '전도' 즉 '도(십자가의 道)'를 전파하는 것만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하는 모든 종교 전파 행위를 주님이 거부하시고 부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전도'란 '미련한 것'을 전하여 '세상의 지혜있는 것'과 의도적으로 마찰을 유발시켜서
그렇게해서
구원이란 인간 손이나 욕구에서 성립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언약성취' 차원에서 일어나는 표면적 현상임을 온 우주에 분명히 하겠다는 주님 고유의 사업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보냄이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롬 10:15) 그 보냄을 받은 자는 늘 '자기를 부인해야 함'을 요구받게 됩니다.
'자기 부인'이 안되는 상태에서 소위 '선교'랍시고 하는 것은, '주체못할 타인 정복 야욕의 실천'에 해당됩니다.
즉 남의 종교, 남의 인격을 잡아먹지 못해 분을 삭히지 못하는 더러운 정복 심보의 발산이지요. 복음이라는 이름의 외투를 걸친 21형 '징기스칸' 입니다.
또한 자기 영역을 넓히는 행위에서 자기 존재 이유를 찾고 더불어 삶의 희열을 느끼는 속물들의 자기 변명쪼 사업이 바로 '선교'라는 겁니다.
따라서 자기 부인이 된 상태에서의 전도의 예를 들면,
어떤 의사가 외지에서 전도하면서, "나의 의료 행위는 구원에 전혀 무력하다. 나는 오직 그들이 원하는 것이나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우주에 남기고 싶은 진리만 전한다"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전혀 '의료 무료 봉사'를 미끼로 삼은 '기독교 신자 확보하기'하고는 전혀 성관없는 모습이지요.
쉽게 말해서
스스로 의사나 간호사됨, 혹은 목사됨을 의식하지 말고 오직 전적 한 사람의 '죄인됨'을 의식해야지만 '전도'라는 말을 붙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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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의료선교 역사에 관해서...
박협 2005-10-20 14:23:16, 조회 : 212, 추천 : 43
>
목사님
그럼, 예수님의 병고치심에 대한 것들을 의료봉사에 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지요?
그리고 굳이 그와 관련해 구절을 찾는다면 어는 구절이 적당한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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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의료선교 역사에 관해서...
이근호 2005-10-20 16:03:19, 조회 : 243, 추천 : 37
예수님의 병고치심은, 장차 자신이 십자가 지심의 예형으로 일하신 것입니다.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 8:17)
오늘날 어느 의사가 환자의 병을 대신 짊어지는 방식으로 환자의 병을 낫게 하는 의사가 있겠습니까.
남자 의사가 자기를 찾아온 자궁암 환자의 암을 대신 짊어지고, 화상입은 환자를 대신 낫게 하기 위해 자신의 피부에 불을 갖게 대는 의사나 간호사는 없습니다.
십자가 이후에 있어, 성령에 의한 병고침은, 성도로 하여금 더이상 이 세상의 자기 목숨에 연연하지 말라는 복음적 내용이 담겨있는 기적으로 주어집니다.
땅에 있는 목숨에 신경쓰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이 땅에서 이미 죽은 목숨이고 진정한 생명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골 3:1-4)
이처럼 성령께서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책망을 하는 하나의 양식으로서 병고침이 제공됩니다. (요 16:8-12)
마치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시면서, 육의 양식에 대해서 연연하지 말라는 방식과 동일합니다.
이처럼 참된 하나님의 일은, '자기 부인'이라는 열매를 낳고,
가짜 하나님이 일은, '자기 우월'의 양상으로 드러납니다.
즉 "나는 죽으면 안돼 더 살아야 돼"라는 비복음적 양상이지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살리라"(요 12:25)라는 투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만이 진정 영적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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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의료선교 역사에 관해서...
박협 2005-10-20 20:33:47, 조회 : 229, 추천 : 62
>
목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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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하는 것과 덕을 세우는 것의 차이점/관계성?
한광수 2005-10-27 21:00:01, 조회 : 239, 추천 : 48
복음 과 복음전하는 것이 본질적이고 핵심이라면
한편 복음을 위해서 때로는 율법아래 있는 자처럼 또는 약한 자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자유를 절제할 것을 권면하는 말씀들이 있는데
덕을 세우는 일들은 복음증거를 위한 방편으로서인가요
아니면 믿음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말하는 것인가요?
아디아포라 문제와 본질의 문제와의 관계성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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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복음 전하는 것과 덕을 세우는 것의 차이점/관계성?
이근호 2005-10-27 21:31:54, 조회 : 233, 추천 : 14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아무래도 상관없는 범주의 사항을 가지고 '아디아포라'라고 합니다.
이 논리를 칼빈 등 신학자들이 들고 나오는 이유는,
'인간에게도 선이나 의가 나올 수 있다'라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나님의 성령이 인간에게 임하면 인간에게도 의로운 일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무엇이 의이고 무엇이 악이고 가려내기 위해서는 의로움도 아니요 악함도 아닌 중립적인 사항도 함께 고려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디아포라 이론이 등장하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선과 의로움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을 부여하여 그 희망이 성도로 하여금 바른 생활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동기부여로 작용시키기 위함입니다.
누가요?
인간(목사나 신학자)이,
누구를요?
같은 인간(평신도)에게요.
어떻게요?
"이것은 선이고, 이것은 악이고, 이것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기 때문에 상관말고 기분껏 실행하시고..."하는 식으로요.
물론
목사가 이런 식으로 설교하면 평교인들은 얼시구나 하고 그 목사가 시키는대로 삽니다. 물론 내면에서는 온갖 '자기 의로움'으로 출렁거리면서 말입니다.
즉
목사는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성령께서 시키시는 착한 일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실행에 옮기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선한 일인지는 제가 설교 시간에 다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면 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응수합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성령의 일이며,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성령님께서 시키시는 착한 일입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날 목사님 시키는대로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착한 성도입니다. 어떻게 제가 이 점에 대해서 확신하냐고요? 그것은 지난 번 목사님 설교 시간에 분류한 그 착한 일을 이탈하지 않고 이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착한 일과 착한 일의 연속으로 하루를 하나님께 영광으로 채우며 삽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관입니다!
성도가 덕을 세우는 경우는 한 경우 뿐입니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오직 십자가만 바라봅니다."
사태가 왜 이런 식으로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성령안에서는 주님께서 본격적으로 성도의 죄악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죄악이란 바로 "나도 선한 일을 하는 주체자가 될 수 있다'라는 의식입니다.
이것은 바로 십자가 복음을, 자신의 큰 그림자로 덮어씌워버리는 짓입니다.
성령깨서는 모든 사건과 사태와 말씀을 동원해서 이 십자가 복음을 가리는 인간의 자기 주체성을 고발합니다.
그럴 때만 남들에게 덕이 되는 성도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성도요,
이런 철저한 십자가 예속을 가지고 성경에서는 '자유'라고 말씀합니다.
즉
세상의 그 모든 구김살로부터 부터의 해방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상관없이 죄인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야 할 바로 그 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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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복음 전하는 것과 덕을 세우는 것의 차이점/관계성?
한광수 2005-10-28 11:05:30, 조회 : 148, 추천 : 36
우리들의 죄악을 폭로하면서 복음을 증거하시는 성령님
그렇다면 이 시대의 목회자상이나 설교자상 운운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나요?
그런데
복음과는 상관이 없을지라도 사회적으로 모범적인 생활은 유익한 것이 아닐까요?
그 모범적인 삶(행위)을 믿는 자의 표징으로 자랑하지 않는한 말입니다.
언제나 십자가로 모아지는 예속이 "복음을 접했다고 생각하며 누리는 자유행위"를 깨뜨리는
안전한 자유지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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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복음 전하는 것과 덕을 세우는 것의 차이점/관계성?
이근호 2005-10-28 14:39:20, 조회 : 179, 추천 : 36
종교(기독교)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살해한 이 종말 시절에 들어서서
특정 종교 행위가 의미가 있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죽으심'은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로 전환될 소지가 큽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업적과 실적에 현혹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종교행위와 사랑행위로 인해 얻어지는 사회적 성과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유혹입니다.
달라질 이유가 없는 사회에 대해서 뭔가 달라질 것을 기대하는 것조차 비복음적인 몸짓입니다.
사회를 흔들어서
유익과 건전과 아름다움을 도출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판은 그대로 뒤고
그 위에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참 전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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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복음 전하는 것과 덕을 세우는 것의 차이점/관계성?
한광수 2005-10-29 12:19:59, 조회 : 132, 추천 : 36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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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하는 것과 덕을 세우는 것의 차이점/관계성? 한광수 2005/10/27 48 240
[re] 복음 전하는 것과 덕을 세우는 것의 차이점/관계성?
손무성 (Homepage) 2005-10-27 22:02:00, 조회 : 194, 추천 : 17
아디아포라(αδιαθωρα)- 이를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것-에 관해 연관을 갖고 있는 부분을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술 담배 성도가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문제와 우상제물에 관해 먹을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먼저 바울의 입장은 고린도전서 8장의 예로 보자면...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복음은 모든 율법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은 모든 행위를 요구하는 것들에서 자유하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우상제물에 대해서 다 지식이 있는 줄 아나..." 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즉 복음 안에서는 우상제물을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지식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바울은 우상제물로 드려진 고기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볼 때 신은 하나님 말고는 없기 때문에 다른 신이라고 하는 '상(象)'앞에 제물로 올려진 고기, 그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단지 나무 조각, 돌 조각 앞에 올려 놓은 것에 불과 하니깐요.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자신이 복음으로 자유하니까 우상제물에 올려진 고기를 먹지 않는 자들 앞에서 과시하듯 먹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입장은 고전8장에서 자신은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입장을 말합니다.
왜 바울은 과시하며 먹는 자들과 달리 스스로 이렇게 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식물을 먹든지 먹지 않든지 그것 자체가 구원과 상관성이 없다는 것이 복음이 갖고 있는 본질이라는 것 때문에 그렇게한 것입니다.
단지 덕을 세우는 신자의 삶을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의 해택이 행위와 관련없이 형제들을 구원했다는 것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먹고 뽐내는 자는 뽐내고 있는 자기 행위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되므로, 복음은 이런 자유하고 있다는 자신의 행위와 관련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우상제물에 올려진 고기 문제로 고린도교회 내에서 먹고 있다는 자, 먹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하는 자들에게 자신이 덕을 세워 신자는 안먹는 것이 좋다라는 행위의 표본을 제시 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란 먹는 행위 문제와 마시는 행위 문제(술)와 피우는 행위 문제(담배)와 관련 없다는 것 때문에 그는 평생 먹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집고 넘어가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또 바울의 이 말을 되받아 "그래 맞아 성도의 삶이란 바울이 말했듯이 우상제물을 먹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너도 그래라. 이것이 성도의 삶의 표본이니라"라고 한다면 이것 역시 복음이란 우상제물을 먹지 않는 자기 행위와 관련이 있는가보다" 라는 뉘앙스를 주게 되어 복음을 흐려 놓게 되는것입니다.
복음을 말한면서 이를 수도 있고 저를 수도 있다는 그 생각이 나오는 것 자체가 인간은 자기 주체성을 옹호하려는 사고에서 출발합니다. 복음은 십자가의 피로 말미안아 새생명(하나님의 약속의 자손 만드심) 주체자만을 높이고 영광돌리고자하는데 촛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철저히 복음의 본질을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 문제 '먹는 문제, 마시는 문제, 피우는 문제...어떤 행위....' 즉 주체자인 인간이 행하는 문제와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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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복음 전하는 것과 덕을 세우는 것의 차이점/관계성?
한광수 2005-10-28 10:41:52, 조회 : 191, 추천 : 55
바울이 설령 우상제물을 먹기로 했다고 할지라도 복음과는 아무관련이 없는 것이군요
다른사람들 앞에서 "우상제물을 자유로이 먹을 수 있다"라는 행위를 한 자들을 향해
복음은 그런 자유를 누리는 행위와 관련없음을 강조하는 것인라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복음, 기쁜 소식을 누리고 산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누리고 살던 말던 복음과는 상관이 없는데
다른사람들 앞에서 "누리고 산다는 것"을 얘기한다는 자체가 실제적으로 복음증거도 아니요 오히려 자기행위를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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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복음 전하는 것과 덕을 세우는 것의 차이점/관계성?
손무성 (Homepage) 2005-10-28 22:02:02, 조회 : 131, 추천 : 13
질문
>바울이 설령 우상제물을 먹기로 했다고 할지라도 복음과는 아무관련이 없는 것이군요
>다른사람들 앞에서 "우상제물을 자유로이 먹을 수 있다"라는 행위를 한 자들을 향해
>복음은 그런 자유를 누리는 행위와 관련없음을 강조하는 것인라는 말이지요?
답변
구원은 믿음으로 얻었다고 합니다. 이 때 구원은 '행위와 연관성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위와 연관성이 없다라고 할 때 행위의 주체자가 누군가라는 것입니다. '나(인간)입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이라는 것은 율법(행위)으로 말미암아 '의'(구원)를 얻을 수 없었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가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논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함이 왔습니다. 우상 제물의 제물을 먹을수 있는 자유까지도 있습니다. 곧 성도는 율법에 대해 죽은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하면 성도는 더이상 행위와 연관성이 있는 자가 아니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 우상 제물을 먹을 자유를 가지고 있는 자기의 행위를 내세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상제물을 먹을 수 있다는 자유하는 그 행위를 내세우는 자들 앞에서 자신은 우상제물 먹는 자유하는 행위를 내세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내 행위와의 연관성이 털끝만큼도 없기 때문입니다.
질문
>그렇다면 복음, 기쁜 소식을 누리고 산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누리고 살던 말던 복음과는 상관이 없는데
>다른사람들 앞에서 "누리고 산다는 것"을 얘기한다는 자체가 실제적으로 복음증거도 아니요 오히려 자기행위를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됩니까?
답변
아니요.
복음으로 말미암아 누리고 산다는 것은 나를 위하여 누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게된 하늘의 영광이 있음을 '그 이름'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벌어졌다는 것을 선전하시며 살면 됩니다. 이것을 전제로하지 않는 누림은 무엇이 튀어나오나 하면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 '난 우상제물 먹는 자유할 수 있는 자다'를 자랑하는 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를 전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의 자유자됨을 전하는 자가 됩니다.
저가 느낄 때 질문하신 분의 관심은 '누리고 산다는 것'-자유롭게된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같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복음 때문에 누리는 '자신의 자유로움'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신 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를 때 고린도교회 교인들과 같이 우상제물 먹는 자유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바울과 같은 태도를 가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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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복음 전하는 것과 덕을 세우는 것의 차이점/관계성?
한광수 2005-10-29 12:18:51, 조회 : 132, 추천 : 36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많은 깨달음을 주시고 명확한 답변으로 함께하신
십자가마을에서 수고하시는 목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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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구약인용
박병규 2005-10-28 12:04:41, 조회 : 195, 추천 : 43
마태복음 2:23에 보면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인용구는 구약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일반적 주석에서는 어근을 따져서 워드플레이'언어유희'로 보더군요.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고 마태복음 2:23을 해석해야 할지 문의 드립니다.
신약에서 구약인용의 유형들과 해석방식을 정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불어 이와 관련하여 좋은 책이 있으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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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신약의 구약인용
이근호 2005-10-28 14:46:25, 조회 : 227, 추천 : 41
>구약에서 출발하니 적당한 해당귀절이 없는 겁니다.
마태복음 2:23을 가지고 구약 전체를 조명해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 과자 가운데서 나의 입맛과 유사한 맛있는 과자를 얻기 위해 이리저리 뒤척이기 보다는,
하나를 찝어서 '맛있는 과자'라고 확정지어버리면 나머지는 저절로 맛 없는 과자로 분류됩니다.
마찬가지로
구약 전체가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 즉 이방에서 활동하는 하짢은 선지자로 취급하는 식으로 '메시야 활동'하는 것으로 보고 구약을 해석하면
구약 선지자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예수님이 영이 '고난'의 형식으로 담겨 있음이 나타납니다.(베드로전서 1:10-11)
여기에 대해 추천할 만한 책은 '하나님의 선택'(대장간)과 '교회를 넘어서'(대장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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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신약의 구약인용
정판옥 (Homepage) 2005-10-28 15:06:24, 조회 : 163, 추천 : 20
평안하신지요? 요즘 얼굴 보기가 어렵네요? 다음 모임에는 보여 주세요!!
선지자 누구도 메시아가 나사렛 사람이라고 칭해질것이라고 예언한적이 없다고 하면서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려 들지요?
그러나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자랐고,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나사렛 사람"이라는 칭함을 성취하려는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미리 예언 되었기 때문에 나사렛에서 살게 되었다고 이해될 수 있지만, 잘 보시면 메시야이기 때문에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시려고 나사렛에서 살았다는 의미임을 알 수가 있다(마2:23).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하시겠는지요?
구약의 예언에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으로 베들레헴에서 출생한다고 했고, 당연히 "베들레헴 사람"이라고 칭해져야 했는데, 신기하게 나사렛 사람이라고 한 것은, 그렇게 칭해지게 하시려고 그곳에서 자라나셨다는 것이다.
나사렛이라는 어원은 "나체르, 나차르, 나시르" 등에서 유래되었다. (성경사전 참조) 그 중에서도 "나시르 사람(나실인)"이라는 의미는 구약의 규례를 따라 하나님앞에서 거룩하게 구별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칭해진 것이다.
나시르 사람(주전 약530년경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생겨난 동네로 추정) 외에도 하나님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룩하게 구별하여 택정한 나실인 삼손도 있다. 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일으키신 "나시르 사람"이자 이스라엘 사사였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이나 표적, 징조, 이상 등은 구약의 언약에 속한 것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삼손이 "나시르 사람" 으로 칭해진 것은 영원한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이루실것에 대한 예표였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삿13:3~5)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마2:23)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실 메시아이시기 때문에, 나시르 사람 삼손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시려고 나사렛에서 살았다는 의미로 해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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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님께 오스카 쿨만에 대한 질문입니다.
용환규 2005-10-31 10:14:14, 조회 : 239, 추천 : 57
이근호 목사님, 오스카 쿨만이 쓴 '그리스도와 시간'이 개혁주의에 준 영향력은 어떤 것이며 중심되고 있는 사상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목사님께서 아쉽다거나 부정적으로 보시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특히 오스카 쿨만의 신학 중심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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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 목사님께 오스카 쿨만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5-10-31 11:57:45, 조회 : 246, 추천 : 16
신학이란 항상 기존의 신학에 대한 불만점이나 미흡점을 강조해서 자신의 의견을 담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후대에서 보면, 다른 강조점을 상대적으로 놓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면 아쉬워하게 됩니다.
오스칼 쿨만에 대해서 그동안 개혁신학쪽에서 상당히 비판했습니다.
성경 해석에 있어 비평학을 삽입시켜서 해석하기에 '자유주의 신학'의 한 부류라고 공격해대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오스칼 쿨만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돌아선 것은
오스칼 쿨만 신학에서 새로운 면이 밝혀져서가 아니라
도리어 보수 교회 자신의 처지를 다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현 교회가 자본주의 사회 한 복판에서 유지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속성을 지닌 사업체'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사업이란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돈을 매개로 해서 팔아먹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고객들이 교회를 향하여 어떤 구원을 상품으로 구매하려고 합니까?
그것은 '날이 갈수록 날마다 예수님의 성품에 더욱 닮아가는 사실을 통해 자신이 구원된 자임을 확정지을 수 있는 종교 상품'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필히 '시간 개념'이 삽입되어야 하고,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가수록 자동적으로 더욱 예수님께 가깝히 접근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장착되어야 합니다.
이런 논리를 일찍이 제시한 신학자가 바로 오스카 쿨만이었습니다.
오스카 쿨만은, 시간 외에 '묵시'를 일체 인정하지 아니하고 시간의 예속을 받는 상태에서의 구원을 주장했습니다.
아직 인류 역사가 유지되기에 구원은 요원하지만, 그러나 미래에 구원될 것을 염두에 두면서, 현재 '이미 완료된 구원처럼' 구원을 해석해도 상관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 사건을 중심으로 이전의 역사와 이후의 역사의 질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시간은 중심은 십자가 사건이며, 그 십자가 사건으로 역사의 의미는 모아진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미'와 '아직' 이라는 두 가지 의미의 구원성 속에 끼어 있는 성도는 마치 구원이 끝난 것처럼 안일에 빠져서는 아니되고, 더욱더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자에게만 진정 구원된 자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론이 교인들에게 계속해서 교회 사업에 집착케 하고 교회생활에 증진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것을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즉 교회를 빠져나가는 것은 열차가 궤도를 이탈해서 탈선하는 셈이 됩니다.
이 시대에서 이러한 구속사 관점으로 보고 있는 곳이 교회 밖에 없으니
"정신 차려세요. 아직 다 안왔습니다. 좀 더 봉사! 좀 더 바치고! 좀 더 충성!"이라는 구호가 여전히 교회 내에서 유효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오스카 쿨만은 기본적인 오류는,
1. 인간들의 '시간 개념' 자체가 하나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죄악된 개념의 소산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세 전' 개념은 결코 인간들의 '시간 내 구원 개념'을 가지고 구원을 이해하는데 그냥 바라보고 있지만 않습니다.
2. 오스카 쿨만은 '인간들의 시간 내에서의 구원 욕구'가 곧 인간 철학의 인식에 불과한 것임을 그의 신학으로 지적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3. 그는, 창세 전에도 시간이 있었고,(시간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고, 하나님도 시간 안의 하나님이다는 말), 세상 역사가 끝나고 시간만은 계속 이어진다고 주장해서,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죄 규정과 심판성'에서 시간의 소멸됨을 포함되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므로서 인간의 시간관 자체는 십자가로부터 죄악으로 규정받지 않는 정당한 인식임을 선언하는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성경을 보게 되면
'시간의 완성'이 아니라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라'하고 말씀의 묵시적 완성임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오스칼 쿨만의 주장은 비성경적이고 비복음적이고, 그리고 이런 신학을 차용하려는 개혁주의도 비성경적이고 비복음적 발상에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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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 목사님께 오스카 쿨만에 대한 질문입니다.
용환규 2005-10-31 12:25:14, 조회 : 228, 추천 : 64
목사님 답변 참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시간 개념은 어떤 것이 될까요? 점진적인 성화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보수주의에서 오스카 쿨만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노력들이 있는 것으로 말씀을 하셨는데....그런 개념의 이해가 아닌 본질적으로 우리가 '시간'을 이해함에 있어 창세전에는 어떤 개념으로, 창세후에는 어떤 개념으로, 그리고 십자가 사건을 정점으로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지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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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 목사님께 오스카 쿨만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5-10-31 13:31:08, 조회 : 234, 추천 : 43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그 정당함을 위한 시간개념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게 됩니다.
이 정당성과 의로움 주장으로 인해 십자가 사건이 터졌다면 이제는 십자가 사건 앞에서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시간 개념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죄를 배태해내는 시간관념으로 말입니다.
창세 전에 있는 능력은 십자가 사건 안으로 모아져 성령을 통해 우리들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그래서 '올바른 시간관념 소지'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능력으로만 구원됩니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성경연구란'에 있는 '시간과 구원의 연관성'이라는 글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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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론?
김대식 (Homepage) 2005-10-31 11:46:13, 조회 : 206, 추천 : 28
조직신학에서 다루어지는 교회론에서
무형 유형 이라는 분류와 유기체라는 의미는 철학의 어떤 사상에서 나온 것입니까?
또 교회사 공부를 통해 인간의 믿음은 반드시 역사화 되어 역사화는 곧 대중화요 대중화는 곧 정치화요 정치화는 곧 교회를 추구한다고 생각 되는데
정치화에서 세상으로 가는게 아니라 꼭 교회로 귀결되는 모습을 볼때 교회로 몰리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교회의 스타, 교회의 영웅 찾기에 혈안이 된 역사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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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교회론?
이근호 2005-10-31 13:55:40, 조회 : 237, 추천 : 18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교회가 되기를 노력하겠지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회란
인간에 의해서 얼마든지 세워지고 나타내고 유지되는 교회 뿐입니다.
여기에 동원되는 것은, 구약 때부터 이방신전을 중심으로 하는 상호 결집력 도모입니다.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처럼)
바로 이런 모습이 '정치화된 모습'입니다.
이렇게 될 때, 세상 사람들은 편하게 교회를 바라보고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가짜교회들입니다.
이런 교회 존립을 연상하면서 아무리 유형, 무형, 유기체 운운해봤자
내용이 형식을 결정짓는가 아니면 형식이 내용을 변화시키는가의 부질없는 논쟁에 불과합니다.
모든 조직체에 다 해당되는 그 철학과 원리를 그대로 교회에 적용시킨다는 교회를 일반 조직체의 한 부류로서 얼마든지 인간 손에서 수립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겁니다.
교회는 죄에서 만들어집니다. 십자가의 피의 능력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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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유석종 2005-11-08 11:59:55, 조회 : 231, 추천 : 42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
율법은폐한것인지 요
완성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제가율법 폐하여졌다고 말하니까 저희 목사님이그렇다면 ...구약의 사랑과 살인하지말라,,,, 이런 율법들은? 하지도 않아야 되는지..라고 제 가 다니는 목사님께서 반문하셔서...궁굼합니다...
ㄱ그리고 폐하여진율법은 구원원관한 율법만 폐하여 졌다고 말씀하시는데...그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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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율법?
이근호 2005-11-08 15:23:08, 조회 : 248, 추천 : 24
사기입니다.
율법이란 마치 지나간 공연 티켓과 같습니다.
벌써 공연이 끝나고 문닫은 연극 티겟은 어디에도 소용없습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지나간 시절의 화폐와 같습니다.
옛날에 통용되는 화폐를 가지고 지금 써먹을려고 하는 것은 곧 무식한 교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벌리겠다는 것입니다.
옛날(십자가 이전)에는 사람들이 율법으로 구원을 받겠다고 나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구원용이 아니라 구원 저지용이었습니다.
죄를 유발시키려는 용도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오늘이나 어제나 인간으로서 뭘해서 구원받을 길은 아예 차단되어 있습니다.
구원이란 처음부터 순전히 주님의 일방적인 자기 사역의 결과로서만 주어지는 열매입니다.
오늘날에 와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구원이란 주님의 일방적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뿐만아니라 성경(구약성경까지 합쳐서)의 모든 말씀은 오로지 주님의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이웃 사랑도 주님의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인간은 죽어도 못하고, 못이룹니다.
이 관계를 '구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아직도 율법에 미련을 갖고 있는 자들은 구원되지 못한 자들입니다.
참고적으로 말해서
성경의 모든 말씀은 십자가 안에서 보면 율법이 아니라 복음입니다.(구약 전체 포함해서)
그래서
그 어떤 성경 귀절하나 소홀히하거나 가법게 다루거나 삭제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 하나하나가 십자가 복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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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그리고....
유석종 2005-11-08 17:15:47, 조회 : 231, 추천 : 39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그런지^^ 율법의 폐함과 완성한다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간단명료 하게 설명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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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감사합니다 . 그리고....
이근호 2005-11-08 18:26:52, 조회 : 241, 추천 : 40
>율법은 본래의 역할과 기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반드시 저주받아야 되는 대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입니다.
이러한 역할과 기능이
율법의 완성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오늘날에 실시됩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고린도전서 16:22)
사도행전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
갈라디아서 1:8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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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감사합니다 . 그리고....
한진영 2005-11-10 23:45:38, 조회 : 153, 추천 : 25
저도 또한 율법의 폐함과 완성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성경을 볼 때마다 혼란을 겪곤했습니다.
결국 복음과 율법을 너무 협소한 차원에서만 이해하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새롭고 더 광범위하고 강력한 율법적 기능을 갖는 다는 것을
알게 되니 율법을 폐함이 아니라 완성하셨다는 말씀이 이제사 확연히 이해됩니다
지금도 주께서 성경을 가지고 일하신다던 목사님의 말씀이 깊이 와닿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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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감사합니다 . 그리고....
손무성 (Homepage) 2005-11-08 18:38:29, 조회 : 236, 추천 : 21
질문:
제가 어리석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