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있어서 적용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 2005-08-10
[설교에 있어서 적용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 2005-08-10
이름 : 관리자(IP:122.47.55.30)
설교에 있어서 적용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광수 2005-08-10 13:47:23, 조회 : 267, 추천 : 36
목사님들의 설교에 있어서 적용을 말할 때,
1)전적으로 성령에 맡기기에 외치기만 하면 되고 증거하기만 하면 된다는 입장이 있고
(예:구속사적 설교--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2)성도들의 결단을 촉구해야한다는 입장(신앙과 삶을 이어주어야 한다면서--이들 입장은 삶의 변화에 대한 적용이
없으면 설교가 아니라고 함)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적용있는 설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해야 하나요?
아니면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는지요?
두번째 입장에서 적용을 결단으로 본다면 '행함(=믿음)을 보이라'는 것인데, 받아들이는 성도 입장에서는 사회적 책임성 내지 윤리도덕으로 대부분 이해합니다.
그리고 삶의 변화란 무엇인가요?
또 예수님만을 높이고, 예수는 그리스도이심만을 증거하면 "그래서 어쨌다는 말이냐?"하면서
주님과 성도와의 관계속에서 "성도의 역할은 무엇이냐?" 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얘기들 합니다.
성도의 역할이 죄사함 받은 처지에서 감사하는 일이 전부이냐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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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설교에 있어서 적용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근호 2005-08-10 16:51:28, 조회 : 344, 추천 : 34
참 좋은 질의를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적용은, 당사자의 윤리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죽음과 연결되는 겁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채 성령을 운운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마음 밑바닥에
"어떻게해든 계속 살아남고 보자!"하는 강한 생존 집념이 깔려 있습니다.
더욱 더 자신을 사는 쪽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신 앞에서 '옳게 살아보기'에 나서면 된다는 겁니다.
즉 바르게 살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내가 실제로 제일 원하는 바, '이 세상에서 오래 오래 잘 버티고 잘 먹고 잘 살기'를 보장해 준다는 겁니다.
교인들이 이런 심보로 교회문을 덜컹 열고 들어오고 ,
목사는 앞 강대상쪽에서 그런 교인들을 주시하면서 그 교인들의 욕구를 이용해 먹자고 마음잡고 있는 이 마당에
그들에 의해 형성된 소위 '교회'라는 공감대 속에서 성령을 운운하고 또 성경을 펴놓고 설교을 해대기 시작하니 그 설교 시간에 뭐가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진짜 성령을 받게 되면
껍데기에 불과한 성경 지식은 홀라당 의미없이 날라가고,
살아있다는 것, 산다는 것, 살아남겠다는 의식, 이 모두가 죄악 중에 죄악 임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으심은 꿈이 아니라 실제 일이기에 그러합니다.
즉
성령님은 예수님의 실제 죽으심에 관심을 두고
육적인 인간들은, 자기의 포부 달성과 또한 거기에 관련된 자신의 선함에 관심을 둡니다.
그런데 인간의 자기 포부는 실제가 아니라 환상이요 몽상에 불과합니다.
살기는 사는데 그냥 살기 싫고 대단한 소망과 희망을 달성했다는데서 오는 동기부여에서 나온 포부입니다.
이것은 현실 세상 움직임을 순전히 자기 욕망 위주로 잘못 해석하고 풀이한 결과로 나오는 것으로 그것이 자기 비젼이 됩니다.
그러니 잘못된 목적 달성을 위하여 착해지려는 그 심보가 어찌 하나님의 저주를 받지 않으리요!
남(예수님)이야 죽든 말든!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그리고 뒤이어 그 십자가 사건만을 가지고 활동하시는 성령님은,
우리 보고 "죽으라"는 겁니다. "장렬하게 죽으라"는 겁니다.
매일 죽는 것이 성도가 살아가는 모습이요 일이라는 겁니다.
'착해지라'가 아니라
곱게 죽는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거룩의 능력입니다.
죽고자 하는 그 순간에서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가 없는 자는 그리스도에서 끊어진 자로 간주합니다.
왜 사도들이 십자가 복음을 근거해서 설교를 했을까요?
그것은
인간들의 행함 속에 반(反) 십자가 정서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구멍난 호주머니에서 끊임없이 동전이 떨어져 나오는 것처럼
인간들이 흐느적거리며 뭘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신학 강의나 설교를 하든지, 목회를 하든지 , 뭘 하든지, 그런 일로 통해 계속 자신을 살려내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시는 성도에게는 계속해서 십자가 복음만을 최종 증거하게 하십니다.
즉
"내(예수님)가 죽은 것처럼 너도 죽어라!"
이것이 설교의 적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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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책...
김규범 2005-08-19 12:32:30, 조회 : 222, 추천 : 42
안녕하세요.
아직 목사님이 저술한 조직신학 책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공부를 하던중 조직신학 에 대한 소홀함을 생각났습니다.
혹 목사님이 쓰신 조직신학 책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은 또 추천할만한
조직신학 책이 있으면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든다," (시4:6) ,"가리운다"(시 30:7)," 얼굴을 구한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는 것입니까? 어떤 의미로 적용을 해야하나요?
답변을 기다립니다.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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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조직신학 책...
이근호 2005-08-19 13:43:21, 조회 : 281, 추천 : 31
>우선 박형용 조직신학을 충실히 해야합니다.
다음 두 가지 점을 고려하시면 됩니다.
(1)일단 신의 존재함을 인식하고 있는 일반 종교인들이(모든 인간들이) 성경를 대하면서 그들의 종교심이 '개혁주의'라는 이름으로 어떤 조직신학을 구축해 내는지 그 논리적 아이디어를 추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워치만 니 계열에 속한 자들과 구원파 계열, 김홍전 계열(삼위일체적 삶을 주장), 그리고 로미드존스 계열의 주장도 거기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2)이 책의 특징은, 논리적 치밀함이 없습니다. 그 대신, 빨리빨리 목회에 써먹기 위한 성급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인 여러분, 여러분들이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궁금하고 의문점이 생기지요.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럴 경우에는 이렇게 해명되고 저럴 경우에는 저렇게 해명하는 비책이 다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스승으로 나서겠습니다. 거대한 박형용 신학을 탐독하고 마스터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 책에 근거해서 제가 얼마든지 스승노릇을 해드릴 만반의 신학적인 소양을 다 갖추어놓았습니다. 참 힘들게 공부했습니다. 그러니 제 말을 권위있게 제 받아드립십시오"라고 나서는 사람들에 적합한 조직신학책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 부인'이 안되고 신학공부 한 것으로 정당하게 돈 챙겨받을 스승의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책은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나온 '푈만'의 교의학입니다.
이 책의 장점은 개혁주의신학과 루터주의 신학을 다 소개해 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저자는 전혀 이 점을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곧 자기 방식으로 기독교 역사적으로 이어져온 조직신학의 일관된 맥을 소개하는 것처럼 기술해놓고는 있습니다.
또하나의 장점은 치밀한 논리적 과정이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논리를 추적하자면 참 괴롭지만 그렇다고 성급하게 진도나가려고 하지 마세요. 그렇게 되면 '자기 부인'이 안되는 상태에서 교회에서 스승노릇에 맛들인 사람이 됩니다.)
단점으로는, 성경신학적인 성과들이 함유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세 번째 책은,
이 성경신학적 관점을 보충할 만한 책이 있습니다.
한스-요아킴 크라우스가 지은 '조직신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역시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나온 책입니다.
네번째 책은, 크라우스가 보여준 성경신학적 작업이 너무 어렵기에 그 기초가 되는 과정에 해당되는 책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존 브라이트가 지은 '하나님의 나라'(컨콜디아사 출판사)라는 책입니다.
다섯 번째 책은
사람들에게 스승 노릇하기 위한 가능자 양성을 위한 조직신학이 아니라 참으로 예수님 전하는 진리를 무엇인지 탐구하기 위한 조직신학을 전개한 책이 있습니다.
발터 카스퍼가 지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책(분도출판사)입니다.
조직신학이 단지 신학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 삶을 파헤치는 운동임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란 이스라엘을 유지케 하는 거룩이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의 출몰에만 의존함을 고백하는 인간적 표현에 해당됩니다. 거기서는 인간들이 감히 견딜 수 없는 낯선 빛이 나오지요. 그것이 영광의 빛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보필하고 있는 천사는 늘 3쌍의 날개로서 하나님의 얼굴에서 나오는 영광의 빛을 감당치 못해 가릴 정도입니다.
그 거룩에 준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안에서 언약을 수행하시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 시편에서의 신앙고백입니다.
적용은 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약에 나오는 모든 말씀 배후에는 그 강렬한 그 거룩의 빛이 작렬하고 있음을 소개하면 됩니다. 마치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빛을 본 것처럼 그런 식으로 말씀을 대해야 한다고 적용시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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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을 무슨 수로 버립니까? 기독교 문화?
김대식 (Homepage) 2005-08-24 15:08:44, 조회 : 207, 추천 : 38
1. 첫번째 질문은
신학이 유일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길인데 무슨 수로 버립니까?
목회자들은 이 신학의 건전성만 고르고 골라서 어렵게 선택하며 교회를 하겠다고 나서는 형편인데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인정 받는 이 신학을 버리면서 신학 한다는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야 당연히 성령으로만 일하시니 천사와 영으로 일 처리 다 하시겠지만
인간은 아무리 봐도 현실적인 것은 어디까지나 보이는 것인데
그 보이는 것만을 염두하여 모든 정황을 파악하며 선택하는 유일한 기술인데 말이죠?
신학이 예수님을 죽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직면할때에 아무리 깨끗하다고 건전하다고 성경적이다고 우기는 신학하는 인간들에게 진절머리가 날 정도인데 우찌 벗어날수 있을가요 나 자신이 바로 이런 모습인데 말입니다?
2, 두번째 질문은 기독교 문화에 대한 겁니다.
보통 다스리고 정복하고 충만하라는 그런 문화 사명 말고요
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한다는 문화 사명 말고요
오로지 복음의 걸림돌이 된다는 저들의 순수한 목적으로 전도 또는 선교의 차원에서
성도의 사회 참여 라는 주제 아래에 펼쳐지는 기독교 문화 운동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노골적인 문화 충돌 앞에서 기독교 문화로 덮어버리겠다는 정치적인 취지 보다
참으로 소박하게 말씀을 증거하다가 복음의 방해 요소가 된다는 취지 아래서
문맹자를 글을 깨우치던다든지 그 민족, 부족의 아주 나쁜 습관들을 개선 시켜준다든지,
어찌보면 의료선교에서 이런 취지로 마치 병고쳐준다는 의미로 문맹의 병, 아주 나쁜 습관병,
(이래따지면 죄아닌 것이 없는데 말이죠, 단지 생물학적인 자연법칙 처럼 우성이 열성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무지 때문에 벌어지는 각종 비합리적인 사고나 생활 습관 등등
어쩌면 기독교 문화 자체라는게 말이 안되는 것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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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신학을 무슨 수로 버립니까? 기독교 문화?
이근호 2005-08-24 17:48:59, 조회 : 207, 추천 : 30
1, 신학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죽게 하지만
문제는 그 전면에 들고 나오는 이슈에 대해서 모든 인간이 그 '신학적인 권위성'에 대해서 인정하고 그것을 곧 ‘자기 의’로 전환시켰다는데서 공범자가 되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 혹은 예수님의 영이 임하지 않는 상태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진리를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진리를 출발시킨 오류 때문에 발생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한 진리는 결국 예수님에게만 소급되지만(인간은 부인되고)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로부터 출발한 진리는 결국
'하나님(삼위일체 신)은 인간으로부터 영광받고 받게 됨'으로 귀결됩니다. -바로 이 '인간 긍정'의 신학으로 인해 오늘날 복음을 무참하게 짓밟히고 이단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2, 두번째 질문은 기독교 문화에 대한 겁니다.
기독교 문화란 핑계에 불과합니다.
기독교 문화라는 개념으로 문화를 논한다는 것은 논리상 엉터리입니다. 차라리 기독교 문화는 '기독교'에 해당되는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자체가 문화 양상의 한 부분에 불과한 개념이기에 큰 개념(=문화)이 범주가 작은 개념(=기독교) 안에 종속되지는 않습니다.
덩치가 작은 개미가 덩치가 큰 코끼리를 해석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이 때는 코끼리와 개미 양편을 다 밝히 아는 인간이 나서서 전체를 규정해야겠지요.
마찬가지로
'기독교'라는 문화와 전체 문화의 질(質)에 대해서 오로지 예수님의 안목인 복음으로만 해명이 되어야 합니다.
즉 십자가로서만 기독교와 여타의 세상 문화를 제대로 규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곧, 기독교란, 기독교조차 부정적으로 보면서 역사적 의미를 지워나가는 묵시적 활동 안에서 제대로 분별이 가능합니다.
묵시란, 역사의 시간적 순서를 따르지 않고 '시간 초월'을 성사시키는 하나님의 언약 작용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둘째 아들은 야곱이 첫째 아들 에서에 대해 '시간 초월'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의 언약은 작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먼저 된 자' 곧 축복의 반열(묵시적 차원에서)에 서게 되고,
형 에서는 '나중된 자' 즉 저주의 반열에 자기 자리로 잡게 됩니다.
이러한 야곱 류와의 분류작업이 모든 역사 안에서 지금도 언약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복음을 안다는 입장에서 그 어떤 활동을 하든지간에 (먹든지, 마시든지 간에)
본인들의 공로와 의를 주님께서 끊임없이 지워나가고 있음을 안다고 그것이 곧 복음적인 성령의 활약상입니다.
참고로,
인간은 그 어떤 행위에도 의로울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 적용이 인간의 육신됨을 들추어내는 요소를 빼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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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기원? 사단창조? vs 천사타락?
이성민 2005-08-25 02:57:09, 조회 : 226, 추천 : 33
정말 궁금하기도 하고 알고 싶어서 질문드립니다..
박용기목사님은 사단 창조설을 주장하시고
이근호목사님은 기존 신학에 나온 천사타락론을 이야기 하시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맨마지막에 사단창조설은 아니더라도 천사타락에 관한 비평을 참고 하시라고 옮겨왔습니다)
박목사님쪽의 론은 혹시 모르실까 해서 일단 글을 옮겨왔습니다...
보시고 이근호목사님의 사단의 기원에 대한 논리적인 성경해석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괜히 대결구도를 만들어 문제삼으려고 하는것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셨음 합니다.
솔직히 말해 천사타락보다는 사단창조론쪽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보지만
목사님의 견해를 듣고싶어서 의견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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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환성 wrote :
>안녕하세요! 저는 말씀을 바로 알고자 무척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에스겔 28장 12절-19절에 나오는 두로왕에게 보내는 애가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사단의 정체에 대한 내용이라고 하는데 두로왕에 대한 내용인지, 아니면 사단의 정체에 관한 내용이 맞는지. 아니라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님의 충만하신 지혜가
성도대학을 방문하신 임환성님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위로받는 성도의 삶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도움이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드립니다.
1. 질문의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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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선지서중에 에스겔서에 나타나는 예언의 직접 대상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지요 기록대로만 본다면 두로왕이 그 대상임에 틀림없으나
많은 분들이 심지어 일부 주석에도 이 글을 인용하여 사단의 기원을 증거합니다
성도대학 싸이트 관리자인 저도 일찌기 확인한바 있어 공감이 갑니다.
2. 성경적 해석에 관한 개혁 신학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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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이후 오직믿음, 오직성경을 주창하며 이루어진
개혁파 신학에서는 성경을 해석하는 기준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1)문법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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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해석은 일단은 문법적으로 이해를 해야합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두로왕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면 그 대상이 두로왕이라고 이해하는것이 기록된
성경의 문법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2)역사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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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기록은 3500년동안 수많은 사람에 의해 역사적 흐름속에서
기록이되었습니다. 기록자를 기준으로 과거의 사실도 기록하고
당시의 상황도 기록하였으며 미래의 사건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록을 문법적으로 이해한후에 내용이
언제,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왜, 예언했는가 하는점에
촛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것을 역사적 해석이라고 합니다.
3)신학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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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성경의 기록은 그 범위가 넓고 깊어서 단편적인 몇구절만 해석하고
마치 성경 전체가 그렇게 말하는것 처럼 이해하면 꼬리로 몸통을 가리키는
우를 범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전체를 조감하고 정리한 신학적 해석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문법적으로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모순을 일으키지않을때
가장 올바른 해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을 제시하는 개혁파 신학에서 님이 질문하신 내용을들고
느닷없이 사단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는책은 저도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3. 사단의 기원을 증거하는 내용이라고 볼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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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기록에서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두로왕에 대하여 예언하게하신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하신 에스겔서의 내용을 저는 사단의 기원으로 도저히
볼수가 없습니다. 최소한 성경의 기록대로만이라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문법적으로 볼때 비유가 아니고
에스겔 선지자가 두로왕에 대하여 예언한 내용입니다.
또 예언한대로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입니다.
다시한번 정리한다면 아래와 같은 이유로
저는 사단의 기원이라고 보지 않고 두로왕에 대한 예언으로 봅니다
1)예언의 대상인 두로왕을 사단에 대한 비유라고 해석할 근거가없고
2)예언의 내용은 예언으로 보아야함에도 불구하고 기원의 내용으로
해석하는것은 있을수 없는 상식이고
3)역사적 사실로 예언하게하시고 이루어내신 하나님의 사역을
간과하게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관리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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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예언해석과 사탄의 타락
정모준님 이제 두번째의 편지입니다. 내용을 볼때 제가 기록한 사탄의 기원에 대한 글을 읽으신듯합니다. 그리고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님의 질문에 대해서 하나씩 정리를 해 드리고요 님의 마지막 고백처럼 저도 이 답변이 님이 마음에 합당하여 마지막이 되었으면 하지만......
또한 님이 생각하시는 것 처럼 성경신학은 완전한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세상 유일무이한 완전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본래의 목적과 뜻을 성경대로 완전하게 증명한 신학체계라고 자부하고있는 것입니다. 더 바르게 정리된 신학이 나올수 있는지 모르지만 그 이전에 이 성경신학에 대해서라도 제대로 알고 또 많은 사람이 배웠으면 합니다.
1) 유다서의 범죄한 천사 누가 유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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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사단은 천사가 범죄를 해서 타락한것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그 증거로 유다서에 범죄한 천사들이 무저갱에 갇혀있다는 내용을 증거로 제시하지요 그래서 무저갱에 갇혀서 활동도 못하는 타락한 천사를 현 세상에서 활동하는 사단이라고 말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모준님은 아마 그 타락한 천사를 누가 유혹해서 타락했는가? 하는점이 궁금한가 봅니다. 이 질문만 보아도 정모준님은 확실히 성경신학에 위로를 받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약간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그런데 이문제 대해서 답해주시면 커피락두 한잔 주실래나?....
사실 님의 질문 처럼 천사가 어떻게 타락했는지는 성경이 밝히지않습니다. 다만 성경에 보니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잠언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동산의 간악한 뱀이 무슨 유혹을 받아서 아담을 유혹하게된것이 아니라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시려고 지으신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타락한 천사도 악한날에 적당하게 쓰시려고 지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 적당하게 사용하시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에 쓰시려고 타락한 천사를 지으시고 가두셨을까요? 이에 대해 베드로 기자는 아래와 같이 답합니다.
>>벧후서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범죄한 천사를 가두심으로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본을 삼았다고 합니다.
2) 왜 두로에만 적용을 시켜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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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모준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이사야의 예언에 나오는 두로와 시온에 대한 내용을 왜 두로와 시돈에만 적용해야하느냐? 상징적으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를 두개만 들겠습니다.
성경을 해석할때 가장 기초가 문법적해석이고 가장 중요하며 가장 권위가 있는 확정입니다. 다시말하면 확정된 문법을 변개하거나 버리고 다른 상징이나 알레고리 해석을 할수 없다는 뜻입니다. 가령 님이 예를 들은것 처럼 상징적으로 해석할수 있는 내용이 있고, 문법적으로 해석되는 두가지 내용이 있으면 당연히 문법적 해석이 채택되고 상징적 해석은 버리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역사를 계시하는 내용중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 하고 확정된 기록과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두로와 시돈의 멸망을 예언하는 내용중에서 나타나는 부분의 상징적 해석 두가지중 하나는 버려야합니다. 무엇을 택해야 합니까? 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역사에 기록된 정확한 내용을 버리고 상징적 묘사를 택했습니다. 성경신학은 성경대로 전하는것 뿐입니다.
두번째는 논리적 맥락입니다.
뱀의 창조에 대해서는 기록된 그대로 논리적으로 창조의 역사과정에서 나온 설명임으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단에 대한 증거는 하나는 바벨론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고 다른 하나는 시돈에 대한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 중에 부분 부분을 합성해서 만들어낸 말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포로해방에 대한 예언중의 일부분...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에스겔의 예언은 두로왕을 위한 애가.......
>>28: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왔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이 두가지를 합성해서....사단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성경이 정확하게 말하는 내용은 자꾸만 버리고 싶고....
일전에 개그콘서트를 보는데 그중 봉숭아 학당이 나오더군요 그중에 제일 재미있었던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물에 빠져죽은 설명을 누구인가 하더군요 그런데 이분이 논개가 왜장의 몸을 껴안고 물에들어가 죽은 장소가 바로 낙화암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누구인가 말하기를 그곳은 백제의 삼천궁녀가 빠져 죽은 자리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설명하던 이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럼 논개가 삼천명이구만...하데요
어제는 또 네덜란드에서 뚝에 구멍이 뚫려 그것을 손가락으로 막고 있던 소년이 계속 뚝이 무너지려고 하자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누가 그것은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이고 뚝을 막은 소년은 물이 넘치는 것을 막은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그러자 설명하시던 이분이 그럼 늑대를 물로 보는구만...하데요....그럼 사람들은 모두들 우하하하하고 웃는데 이상하게도 성경해석을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웃지를 않고 오히려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을 하면 이단이니 삼단이니 진노하니.........?
**조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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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루시퍼사상의 왜곡에 대한 비판 | 소설자료실
2005.07.14 21:05
앨리스(dasol56) http://cafe.naver.com/milkyway3/133
* 루시퍼(LUCIFER)사상의 왜곡에 대한 비평 *
허복인 목사
서론
루시퍼는 무엇인가? 오늘 우리 한국의 기독교계 내에서는 루시퍼 사상
에 관해 너무나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다. 곧 루시퍼는 천사장이며, 찬양 대장
이며, 타락하여 마귀(Satan)가 되었다는 것이 우리 한국 기독교의 定說로 되어
있다. 이렇게 定說로 받아 드려지고 있는 "루시퍼=천사장=사탄(마귀)"라고 하는
이 말이 성경적으로 옳은 말인가? 이렇게 한국 교계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 드
려지고 있는 "루시퍼"는 천사장이며, 이는 또한 "사탄"이라고 하는 思想을 이제
는 성경적으로 바르게 批判하여 흑백을 가려야 할 줄로 안다.
본론
I.루시퍼 思想은 異邦 神話의 産物이다.
1. 그리스 신화의 산물이다.
(1)루시퍼(혹은 루키훼르) 신
우라노스의 손녀 에노스 여신은 "아스타이오스"라는 인간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루시퍼였다. 그는 하늘을 달리는 모친 에노
스 여신 앞에서 햇불을 들고 달려가는 풍채 좋고 얼굴에 광채가 나는 신령적
(神靈的) 존재였다. 그러므로 그는 일종의 "빛을 전달하는 전령"이었고, 이것이
헬라어의 '포스포로스'(moning star)이다.
(2)비너스(venus)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딸 아프로디테 여신을 흔히 "비너스"라
고 부르는데 이것은 후에 천체에 나타나는 금성(샛별, 계명성-The planet venus
at dawn)을 지칭하는 말로 되었다. 비너스는 사랑과 색욕의 여신으로 상징되고
있다. 그러므로 "루시퍼신-비너스신-금성"은 서로의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연관
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설화가 생긴 역사적 배경은 기원전 8세기 호머(Homer)를 전후하고
있다. 그러면 이 그리스 신화의 루시퍼 사상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우리는
보다 원시적인 지역,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근동, 즉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소급하여 생각해 본다.
2. 바벨론 신화
바벨론은 신들의 천지다. 원래 고대 바벨론에는 빛의 신 "아후라 마즈
다"(Ahura Mazda, 후대에는 Ormaz로 불리움)와 어두움의 신 "아리만"(Ahriman,
곧 사단에 해당되는 말)이 있었고, 어두움의 신은 늘 빛의 신을 대적하였다. 그
이후 니므롯(Nimrod or Marduk), 티아맛(Tiamat) 등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후대
에 조로아스터(Zoroaster)와 영지주의(Gnosis)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성경
기록 시대(기원전 16세기 이후)에 들어서면서 자주 언급되는 말은 하늘의 여신
으로 지칭되는 "아스 다롯"(Ishtar)이다(왕하23:7,13;렘44:17;삼상7:3-4,31:10;
왕상11:5,33;삿2:13). 이 여신은 빛을 내는 광채의 여신으로 숭앙되었으며, 후
에 가나안, 페니키안에까지 파급되어 아세라신, 아나트신과 더불어 가나안 3대
신으로 부각되었다.
그리고 이 아스다롯이 비너스(금성)와 일치되었고, 그것은 성애(性愛)
의 여신, 풍족과 생산의 여신으로 추앙되어 후대에는 "이쉬타르"(Ishtar)라고
불려졌고, 헬라 시대에 와서는 "아스타르테"라 칭하게 되었다. 이것은 또한
기원전 4세기의 소아시아 에베소를 중심으로 숭배되었던 "아데미"(Artemis)
여신과도 상통하고 있다(행19:27-28절 참조). 사실 에베소인들은 이오니안 민족
으로서 그리스 신화에 젖어 있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구약 에스겔 8장 14절에 나오는 "담무즈"(Tammuz, 바벨론
의 메시아) 신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담무즈가 상대하는 여신이 바로 "아스
다롯"(이쉬타르, 아스도렛, 아르테미스)여신이다.
3. 외경(Apocrypha)
에녹서 6장7절과 8장1절 등에서 보면 타락한 천사장이 광야의 귀신이 되
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벨론 신화가 유대인에게 미친 외경 사상이 분명
하다. 포로후 특히 중간사 기간에 유대인의 영적, 정신적 혼란을 틈타 바벨론 사
상이 물밀듯 들어와 외경 문학(묵시문학)에 끼쳤던 영향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
러 가지의 자료를 종합해 볼 때 "타락한 천사장=사단=루시퍼" 사상은 바벨론,
그리스 그리고 그에 물든 외경에서 근거된 전혀 근거없는 신화와 전설일 뿐임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II. 루시퍼 사상은 聖經 解釋相 誤謬의 産物이다.
1. 벌게이트(Vulgate) 번역서의 초기 언급
"루시퍼"(Lucifer)란 말이 성경에 처음 나타나게 된 것은 기원후 4세기
말에 제롬이 번역한 라틴역 성경인 벌게이트역에서다. 이 벌게이트역에 있어서
유감스러운 것은 제롬 자신이 외경의 정경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그의 친구인
두 주교의 극성스런 요구에 따라 토비트서와 유딧서를 급하게 번역하여 벌게이
트역에 포함된 것이다. 제롬이 이사야 14장 12절에서 '루시퍼'로 번역한 계명성
을 다른 성경들과 비교해 보자.
(1) 벌게이트역 : Lucifer(계명성)
(2) 히브리어 성경 : '헬렐'(계명성)
(3) 70인역(헬라어로 번역된 구약 성경) : '헤오스포로스'(발광체)
(4) 영어 성경(킹제임스 버전) : shining star, son of the moning
물론 제롬이 루시퍼라고 쓴 것은 어떤 신학적인 목적이나 인격적 대상으
로서의 천사장이나, 사탄을 의식하고 사용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일찍이
예루살렘 등지를 유학하며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통달한 경건한 신학자였고, 교황
의 칙령 하에 성경을 번역은 했으나 외경을 뒤로 차치해 버린 정통 성경 학자였
다. 제롬은 처음 교황 다마수스로부터 이탈리아역을 70인 역본과 대조하여 개역
할 것을 위촉받았다. 그후 제롬은 주후 383년 시편을 개역했으며, 나중에 히브리
어를 베들레헴 랍비 지도아래 배운 후 벌게이트역을 15년 동안에 걸쳐 완성하였
다. 제롬이 친구인 두 주교의 성화에 못이겨 토비트와 유딧서를 번역하여 벌게이
트역에 포함시켰으나 그는 벌게이트역 서문에서 외경이 정경처럼 비록 덕을 세우
는 면은 있지만 교리를 정리하는데 사용해서는 안되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책
이라고 주장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히브리어 "헬렐"과 헬라
어 "헤오스포로스"를 "루시퍼"(lucifer)로 번역한 것은 단순한 "빛의 전달자"
혹은 "샛별"(금성, 계명성)의 의미를 묘사했을 뿐일 것이다.
2. 죤 밀턴의 실낙원과 루시퍼
죤 밀톤(John Milton, 1608-1674)은 그의 "실낙원"(Paradise Lost)에서
처음으로 루시퍼란 단어를 사탄과 천사장에 적용시켰다. 그의 시구를 몇 구절 살
펴보자.
제1편 45절-49절 "감히 전능자에게 도전한 그를 무서운 추락과 파멸로서
쳐서 꺾고 정화천(淨火天)에서 불붙여 밑없는 지옥으로 거꾸로 내려 던졌나니 결
국 그는 거기서 영원한 사슬에 묶여 영벌의 불 길속에 살게 되었다(눅10:18;계9:
1-2).
84절-86절 "... 행복한 빛의 나라에서 더 없는 광휘(Lucifer)에 싸여 숱
한 별들보다도 찬란하게 빛났었는데..."(사14:12)
93절 "그는 벼락(Posphoros)으로써 그의 위력을 보였다"(눅10:18).
이상의 시구에서 보듯이 루시퍼는 단순한 "빛의 전령" 혹은 "금성"이 아
닌 인격적 존재로 묘사되고 있고, 그 인격적 존재는 하늘 보좌 옆에서 영광을 누
리던 천사가 하나님께 도전, 타락하여 음부에 떨어지는 사탄으로 변모됨을 표현
하고 있다. 이 소설은 독자를 성경 이사야 14장 12절과 누가복음 10장 18절로 끌
고가 그것을 연상케 하고 있다.
이와같이 루시퍼 사상의 근거는 이사야 14장 12절, 혹은 누가복음 10장
18절의 해석상의 차이 그리고 오류에서 빚어진 것이다. 고대의 교부 몇과 후에
스티어(Rudolf E.Stier, 1800-1862)는 이사야서의 "헬렐"을 루시퍼로 직결시켜
어떤 신학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로 추상하기 시작했다. 몇 사람의 학자들의 추측
과 주장이 완전한 학설로 정착하게 된 것은 19세기말부터였다.
3. 스코필드 관주 성경에 나타난 루시퍼
세대주의와 재창조설로 악명 높은 스코필드(C.I.Scofield, 1843-1921)는
또한 루시퍼 사상을 정착시킨 장본인이다. 그의 대조 성경(Scofield Referance
Bible, Oxford)에서 그는 주장하기를, "루시퍼 곧 '계명성'(day star)은 사단 외
에 다른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 놀라운 구절(사14:12)은 이 세상에 들어온 죄의
근원을 밝혀 주고 있다. 12-14절은 바로 세상 조직의 왕자인 사단에 대한 명백한
언급이다(요12:31;14:30;계13:8)"라고 관주를 달았고, 또한 창세기 1:2에 적용하
여 천사 타락, 황폐된 지구, 재 창조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스코필드와 관주성경의 영향은 20세기 초반 이후 활발하게 신학계와 교
계에 파급되었고, 아울러 밀톤의 실낙원은 신자, 불신자 할것 없이 "루시퍼는 천
사장이요 찬양 대장으로서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다"라는 소문에 휘몰아 넣는 촉
매제가 되었던 것이다.
4. 기타 학자들의 견해
스코필드 외에 그레이(Gray), 게벨라인, 제닝스, 블랙스톤, 베르 다이
머, 불테마 등의 자유주의 학자들은 라틴 성경의 루시퍼를 곧바로 사단에 적용하
고 있다. 크리스웰(W.A.Criswell)은 그의 이사야 주석에서 말하기를 "하늘의 천
사들 1/3이 루시퍼가 하나님을 배신할 때 이미 루시퍼를 따르기로 선택이 되었
다.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그의 타락의 결과를 읽을 수 있다. 특히 스랍들은 그
뜻이 불타는 자들이라는 의미인데, 원래 그의 이름은 루시퍼였으니 곧 아침의 아
들이요 결국은 사탄이 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III. 개혁주의적 견해
1. 이사야 14장 12절에 대한 원문 연구
(1) 이사야 14장 12절(* 히브리어가 되지 않아서 생략합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한글 개역 성경)
"샛별과 같은 바빌론 왕아, 네가 하늘에서 떨어졌구나. 한때는 네가 여
러 나라를 정복하더니 이제는 어째서 땅에 던져졌느냐?"(현대인의 성경)
이 본문은 한마디로 바벨론 왕의 멸망에 대한 이사야의 시가였다(사14:
4). 하늘 높은 줄 모르도록 교만하고 포악했던(사14:13-14)바벨론이 과연 얼마나
비참하게 멸절되고야 마는지를(사14:5-20) 시적으로 비유하여 묘사한 예언이다.
(2) "헬렐"(계명성)에 대한 고찰
이 단어의 원형은 "할랄"로서, 그 의미는 "빛나다", "찬양하다", "교만
하다"의 분사형 명사이다. "헬렐 벤 솨하르"는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아침의
아들 계명성(啓明星)"으로 번역되어 있고, 영어 성경에서는 "morning star, son
of dawn"(NIV), "star of the morning, son of the dawn"(NASB)으로 번역되어
있다. 성경에서 이 "계명성"이 언급된 곳은 본문 이사야 14장 12절 뿐이다.
"헬렐 벤 솨하르"는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문구이다. 여기서 "벤 솨하
르"(아침의 아들)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헬렐"이다.
많은 번역자와 주석가들은 이 단어를 명사 "발광체"로 보았다. 그래서 이 단어를
헬라어로는 "헤오스포로스"로 , 라틴어로는 "루시퍼"로 옮겼다. 그런가 하면
"70인역"과 "벌게이트역"의 역자들은, 유대 율법 학자들과 대부분의 초기 기독교
문학가들과 같이 이 단어를 "빛난다"는 뜻을 가진 "할랄"의 파생어로 이해하였
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뜻은 "빛나는 것", "밝은 것"을 뜻한다. 물론 이것은
"벤 솨하르"라는 나머지 구문와 가장 잘 문장 구성을 이룬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학자들이 이 단어를 사단의 이름을 의미하는 하나의
고유 명사처럼 이해한다는데 있다. 그들은 이 계명성을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
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8)라는 구절과 연결
시켜 사단과 동일시하거나 사단과 연관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러
나 이런 해석은 본문의 문맥을 떠난 잘못된 해석이다.
그러면 이런 해석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이는 초대 교회 교부들
의 영향이다. 초대 교회 교부인 터툴리안은 이 구절을 주석하여 말하기를 "이것
은 마귀를 의미함에 틀림없다"고 하였고, 오리겐 역시 주저없이 루시퍼를 사단과
동일시했다. 죤 밀톤도 '실낙원'에서 "... 계명성의 도성과 교만한 보좌, 비유된
바 저 빛난 별의 그것은 사단에게 귀속된다..."라고 기술함으로서 이러한 잘못된
개념을 널리 퍼트리는데 공헌을 했고 오늘 우리 한국 교계와 전세계의 기독교 안
에서 아무런 검증도 없이 잘못된 것을 진리인양 받아들이므로 계명성을 사단과
동일시하는 의미 전이가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다.
2. 그러면 이제 보수주의 학자들의 해석을 살펴보자!
(1) 카일(C.F.Keil)
카일은 이사야 14장 12절의 사역(개인 번역)에서 "빛나는 별(star of
light) 여명의 태양(sun of the dawn)"으로 번역하면서 말하기를 "이 구절로부
터 연유된 악마의 이름 루시퍼는 교부들 몇 명이 해석한 조금치도 근거없는 것
이다"라고 말했으며, "이것은 천사장의 배교나 징벌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분명
히 바벨론 왕에 대한 고유한 명칭에 해당되며, 또한 초기 바벨론 문화의 번성과
어두운 황혼기의 상태를 뛰어난 점성술적 특성으로 비유했을 뿐이다"라고 일축
했다.
(2) 칼뱅(J.Calvin)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이사야는 독재자(바벨론 왕)을 루시퍼에 비유하
면서 새벽의 아들로 불렀다. 그를 이렇게 묘사한 것은 그 독재자가 남보다 더
화려했고 찬란하게 단장했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해석하다가 어떤 이는 이것
을 사단으로 보는데, 이는 무식의 소치다. 앞 뒤 문맥을 따를때 이 구절은 어디
로 보나 바벨론 왕과 관련된 언급임은 명백하다. 성경 구절을 대수롭지 않게 읽
거나 문맥에 관심을 갖지 않다보면 그러한 실수를 흔히 범하게 된다. 여하간에
루시퍼가 마귀의 왕이요, 또한 선지자가 그에게 그런 이름을 명명했다고 추측한
다는 것은 참으로 무지한 결과이다. 이러한 가설은 아무런 타당성도 없으므로
쓸모 없는 우화로 그냥 넘어가 버리도록 하자"고 단호하게 일축시켜 버렸다.
(3) 랑게(Lange)
랑게는 고대의 그레고리 대제, 크리소스톰, 알포드 등이 그럴 가능성을
학문적으로 언급했다는 사실을 잠시 소개하면서 자신의 언급은 배제했다. 다만
바벨론 왕의 비참에 대한 예언임을 주석하면서 이것은 누가복음 10:18에서 하늘
에서 마귀가 떨어지듯이 초자연 세계의 섬광처럼 즉각적 패배가 바벨론 왕에게
임할 예언이라는 것만 말하고 있다.
(4) 그레이(G.B.Gray)
"이사야는 바벨론 왕을 별 신화에 나타난 빛나는 영웅에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상적 권세는 에스겔 28장 11-19절에서 두로 왕과 사탄의 비교에서
비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신화는 바벨론과 페니키안에서 유래된 것이며 일종
의 "금성"이라는 자연 현상을 이 구절에 인용했을 뿐이다. "샤하르"는 아랍의
"새달"과 같으며 앗시리아의 "엘루신", 즉 빛의 신과도 상통한다. 그러므로 바벨
론 왕을 이 별의 신에 부합시켜 번성과 패망을 예언한 것이다."
(5) 엉거(Merill Unger)
엉거는 우선 데살로니가후서 2장 9절의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
를 따라, 모든 능력과 기적과 ..."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단과 바벨론 왕과의
극악한 유사성을 언급한 이사야의 예언으로 풀이 하고 있다. "바벨론 멸망의 경
우는 마치 사단의 원래 타락과 죄가 세계로 들어오는 사단의 역할에 대한 본보기
를 보여 주는 것이다"(유추론적 견해).
엉거 박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박형룡 박사의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바벨론 왕이 마치 사단처럼 비유(그 행위성을 말함)되는 유추는 가능
하나, 직접 루시퍼를 사단에 적용하는 것은 기각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외
에도 어네스트, 라이트, 페인, 누르치, 헹스텐버그 등 대부분의 보수주의 학자들
은 "루시퍼=천사장=사단"설을 전혀 근거없는 낭설로 단언하고 있다.
결론
"성경에서 말하는 죄와 사단에 대한 언급은 기원이 아니라, 시작을 말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것들의 기원을 밝힌다는 자체가 불법이다.
그것들은 인간을 향해 다만 신비에 가려 있을 뿐이다."
이것은 화란의 신학자 벌카우어의 말이다. 우리 교계에 정설처럼 되어
버린 "루시퍼=천사장=성가대 지휘자=사단" 사상은 한마디로 전혀 비성경적이다.
이러한 낭설이 떠돌아다닌 출처는 다름아닌 스코필드와 세대주의 자들의 이사야
14장 12절, 그리고 누가복음 10장 18절의 그릇된 해석에 기인한다.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Astrapen)같이 떨어지는 것을..."(눅10:18)
이때의 번개(빛, 광채, 별)를 루시퍼와 동등하게 보고 사단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무지하고 조잡한 성경 해석관이다.
1. 루시퍼란 말은 전혀 비성경적이다.
오늘날 양식없는 목회자들이 사단의 기원을 이사야 14장 12절과 누가복
음 10장 18절에 의해 확정지으려 하는 것은 전혀 부당한 시도이며, 사단은 문자
그대로 대적자요, 범죄자며, 하늘의 지위를 지키지 않고 떠난 자이며 하나님을
대항하여 반역한 교만자일 뿐이다(벧후2:4;유6). 그것이 천사장인지 성가대 대장
인지 어느 성경에도 밝힌바 없고 더욱이 루시퍼란 말은 성경 원본에 있지도 않
고, 다만 카톨릭 측이 사용하는 라틴어역(벌게이트역)에만 단 한 번 나올 뿐이
다. 이외 어느 권위 있는 사본에도 "루시퍼"란 말이 없다.
2. 계명성(샛별)은 오히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
(1) 베드로후서 1장 19절
본문의 샛별은 의심과 불확실의 암흑에서 성도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샛별처럼 나타나셔서 분명한 조명을 해주실 것에 대한 회화적 묘사이다.
(2) 계시록 22장 16절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새벽별"은 두말할 나위 없이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3) 민수기 24장 17절, 이사야 60장 3절
이 본문들에서는 이미 "야곱의 별"로서의 그리스도를 "샛별"로 예표하
고 있다.
(4) 마태복음 2장 2절
동방박사들을 베들레헴 상공으로 인도한 별 역시 메시야에 대한 분명한
표징이었다(눅1:78;마17:2-5;행9:3).
3. 성도에 대한 표징이기도 하다.
(1)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빛 혹은 빛의 전달자로 인정되었다.
- 마5:14,16;눅12:35;엡5:8;빌2:15
(2) 성도가 누릴 빛나는 계시 곧 복음의 비밀, 사역, 축복을 말하기도
한다(계2:28).
4. 루시퍼가 "사탄"이라는 왜곡된 해석은 이단을 생산하였다.
전도관의 박태선이 말하는 "오묘 원리"(피가름)이나, 통일교의 문선명
이 공히 내세우고 있는 것이 "루시퍼 천사가 하와를 유혹해 간통했다"는 사단과
죄의 기원론이다. 천사 루시퍼가 인간 육체를 너무 부러워 해서 에덴의 하와를
범했고, 그리하여 사단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원리 강론이다. 이렇듯이
루시퍼 사상의 왜곡은 온갖 이단들의 성적 타락 원리의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사랑하시는 교역자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여 교계의 빛이 되어 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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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사단의 기원? 사단창조? vs 천사타락?
이근호 2005-08-25 08:01:39, 조회 : 264, 추천 : 38
우선 성경해석에 있어
문법적 해석이니 역사적 해석이나 상징적해석이니 신학적 해석이니 하는 구분 자체가 제가 보기에는 비복음적 해석입니다.
성경해석은 복음에 관한 내용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딴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입니다.
성경은 장난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에서 나온 책입니다.
인간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단의 모든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증거하는데 있습니다.
가룟 유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주되심과 그 분께서 홀로 모든 언약을 다 이루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가룟 유다는 이 세상에 출생해야 했고 또한 제 할일을 해야만 합니다.
요한복음 13:26-27에 보면, 예수님께서 빵 한 조각을 가룟 유다에게 주시니 가룟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서 사단의 할 일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상 만사의 진행하는 때와 과정과 결말을 주도하시는 입장에 있다는 말입니다.
사단도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골로새서 1:16에 근거해서 보면, 당연히 예수님의 주되심을 드러내는데 있어 부정적인 고유의 역할이 있습니다.
창조 자체를 놓고서는 악에 대한 책임을 창조자에게 돌리는 것은,
마치 자식이 자신의 잘못을 자기가 만든 부모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것으로, 뭐든지 자기 정당성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하기 때문에 나온 오류입니다.
성도는, 주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자기 행위의 정당성이나 존재의 정당성이나 구원의 확실성을 목표로해서 성경을 해석한다든지 세계의 움직임을 이해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모든 것은 예수님의 '주되심'을 드러내는 활동입니다. 모든 이름은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어야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빌 2:11)
왜 무릎을 꿇어야 하느냐 하면
인간은 태어나면서 이미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위치에 놓인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기 때문에 주님에 대해서 '패배' 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입장에 대해서 스스로 변명하면서 '패배' 당하기 보다는 슬슬 '바른 이해'로서 좋은 동역자 행세로 대충 구원의 반열에 들어갈 줄로 압니다.
그 중의 하나가
시단의 기원을 성경을 통해서 알아서
그 사단을 잘 대처하면 곧 자신이 성도임이 확인되는 하나의 증빙 자료가 된다고 믿는 겁니다.
이것은 곧
성경을 대하면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원욕구를 포기못한데서 나온 결과적 해석입니다.
사단의 맹렬한 활동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데살로니가후서 2:11)
그리고 옛날 바로의 애굽왕을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강퍅케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게 했습니다.
그러한 일들은 모두, 오직 주의 이름에서 나오는 능력만이 언약 완성을 달성할 수 있음을 온 우주천지에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8:28에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고
사단의 내막을 알아보겠다는 것은 본인이 사단에 대처해서 자기 자신을 살리고 보자는 식의 태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즉 예수님에게 대한 고마움보다는 성경 지식이나 신학체제를 수립하고 확보한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는 경우가 발생됩니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사단적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지금도 들은 경험담과 지식으로 '사단'이라는 상상물을 매일 같이 고안해내는 자기 자신이 주님에게 참으로 위험 인물인 알아야 합니다.
"네나 잘하세요" -친절한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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