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기도를 계속해야하는지요?] 2005-07-06
[치유기도를 계속해야하는지요?] 2005-07-06
이름 : 관리자(IP:122.47.55.30)
치유기도를 계속해야하는지요?(이근호목사님께)
최현신 2005-07-06 10:20:55, 조회 : 252, 추천 : 21
귀하신 이근호목사님께
건강하시고 주안에서 평강하셨는지요? 주께 항상 영광 올리시는 목사님께서 목마른 영혼 상처난 영육을
주의 권능으로 치유하시니 감사드림니다.
저는 토론토에서 본한인교회 권사로 지난 12월 양문교회 부흥회에 참석하여 많은 은혜를 받았음니다.
기억하시지 못하시겠지만 마지막 교역자들 집회시
목사님께 기도제목을 "목사님보다 갑절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 부탁했고 기도해 주셨읍니다
그리고 임신한 새댁(태아가 발이 꼬이고 짧아 )과 함께 참석했음니다
그후 허리로 고통받은 사람들을 붙들고 (다리길이가 짧음)기도하니 발이 나오고 같아 지며
허리에 통증도 없어진 분도 있고 발은 나오는데 허리 통증은 그내로 인 분도 있음니다
첫째로 다리의 길이는 같아 졌는데 계속 통증이 있으신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둘째로 위에 새댁이 출산했는데 한쪽 발바닥이 꼬이고 길이가 짧게 태어 났음니다
꼬인 발은 병원에서 기브스로 바르게 되었는데 짧은 다리는 그대로 입니다
이제 5개월 되었느데 기도를 해도 되는지 너무 너무 알고 싶음니다
바쁘신 목사님께 두서없이 상담의 글을 올리오니 답변 기다리겠음니다
목사님 정말 물이 흐르는 곳에는 식물이 자랍니다
저같은 연약한 자를 통해서도 주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목사님처럼 무릎 꿇고 발냄새 맡으며 낮은자로 겸손하게 섬김의 도를 따르며 살아 계신 주님을
증거하고저 합니다 항상 주안에서 건강하시고 목사님을 통해서 주의 나라 더욱 편만하기를
기도드립니다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벧엘교회 부흥성회시 기쁘게 만나 뵙겠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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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치유기도를 계속해야하는지요?(이근호목사님께)
이근호 2005-07-06 15:45:30, 조회 : 293, 추천 : 20
우선 착각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와 동명이인으로서 '이근호 목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왕 연결되었으니 권사님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 예수님은 인간의 요구를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 복음만 증거되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사적인 요구를 가지고 기도하시면 안됩니다.
2. 예수님은 살고자 하는 자를 거부하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병에 걸리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육체의 병에 관심두지 마시고 그 어떠한 육체의 병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은 여전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육체의 병 낫기를 고민하면 거기에 반드시 이단들이 들끓습니다.
이단들은 악마가 행하는 각종 기적을 베풀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입니다.
즉 병 고쳐주고 그 영혼 지옥에 보내는 거래를 위해 이 땅에 악마의 종으로 활약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사람들이 소원을 들어주는 자=이단
사람들의 근본적으로 더 살고자하고, 이왕이면 건강하게 살고자하고 승리하고자 하는 그러한 욕망을 죄라고 지적해 주는 자 =챀된 주님의 종
권사님,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서 권사님과 가족보다 더 고생했고 더 비참하게 사셨다는 사실에 제발 눈이 뜨여지도록 더욱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권사님은 그런 신앙이 사라지지 아니하면 권사님 본인이 자청해서 지옥의 종님들을 불러모으는 식이 됩니다.
정말 은사를 원하신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그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세요. (고린도전서 12:31)
즉
"여려분 저처럼 비참하게 살아도 구원은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만 가능합니다"라고 말입니다.
끝으로 '부흥회'. 혹은 '부흥사'라는 작자들 자체가 사기꾼들입니다.
부흥회를 여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사찰(절)입니다.
그런 교회 다니시면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불자(불교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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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서 있었던 질문과 답변-오용익 목사님께서 녹취 정리
이근호 2005-07-07 08:28:48, 조회 : 227, 추천 : 16
안산 3월강의 후에 이어진 질문과 답변(답변은 이근호 목사)
(질문)
“산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답변)
그 말씀은 전도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전도서 9:3,4
(전 9:3)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전 9:4) 모든 산 자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사람은 살았다고 아무리 이야기 해도, 살아보면 결국 늙고 죽습니다.
처음부터 사람에게는 죽음이 잡아 당기는 능력이 이미 내장되어 있습니다. 개는 죽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차라리 살아 있다는 것 자체를 기적과 축복으로 간주하라는 말입니다. 살아 있기에 허무한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닙니까? 살아 있는 동안 자기 분수를 알고 미래를 알아서 그 허무성을 알게 해주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질문)
아직 젊지만 죽을 병에 걸려서 병고에 시달리는 환자가 있다면 그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답변)
너무 일찍 죽는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면서 억울해 하는 것인데 그 사람보다 더 먼저 죽은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오래 산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여길 일입니다. 우리도 결국 같은 길을 가게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도 아직 살아 있다면 일찍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그가 먼저 제대했다고 보면 됩니다. 다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영생을 주신 주님께 십자가를 통해서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질문)
일용할 양식은 무슨 뜻입니까?
(답변)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는 주기도문을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기 전에 나오는 주기도문이 있는데 거기에 실린 내용입니다.
마태복음 6:9-15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마 6: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마 6: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까지는 유대, 즉 구약의 풍토 즉 구약의 분위기입니다. 구약의 분위기란 현재의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보고 있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신약에서는 하늘나라가 약속의 땅입니다. 예수님자체가 약속이기에 예수님이 계신 곳이 하늘나라이고, 예수님이 구름타고 승천하신 그 곳이 약속의 땅이 됩니다. 예수님이 약속이기에 예수님 가신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야 비로서 약속의 땅도 밝혀지는 셈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지신 뒤에야 부활이고, 승천이기에 십자가 이전까지는 아직도 약속의 땅이 구약에서 계시된 가나안땅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점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에 준해서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에서의 축복관이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있는 동안은 레위기에 있는 대로 축복을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입장에서는 너희들이 축복을 요구할 입장이 되느냐고 오히려 지적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보낸 메시야는 밀치고 핍박하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이땅의 풍족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꾸짖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에 백성들에게 양식을 하루치씩만 줬습니다. 이틀치나 사흘치를 주시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하루치의 염려를 지날 수 없습니다. 내일의 것 까지 당겨서 염려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하루의 염려가 그날로 끝나 버리고 과거를 우리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는 것도 있던데 성령은 지우개가 되어서 과거를 지워 나갑니다. 현재, 주님이 은혜를 주시기에 과거가 현재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 말은 지금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지 내 힘으로 하루를 버티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하루 하루, 자기 힘으로 버티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오늘의 하나님은 오늘 도우시고, 내일의 하나님은 내일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늘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멀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늘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알게 하옵소서”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용할 양식이니까 은행에 저축도 하지 말라는 뜻이 됩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아직 십자기 이전에 구약의 풍토에서 그들이 이해하는 식으로 일용할 양식을 주는 땅이 약속의 땅이니 그 땅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기도가 변합니다. “주여 굶어 죽더라도 하늘나라 가게 해 주세요” 이것이 일용할 양식의 기도입니다.
사도는 굶더라도 하늘나라에 있으면 된다고 기도합니다.
(질문)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그곳에도 사단이 역사할 수 있습니까?
(답변)
있습니다. 이것을 주문처럼 사용할수 있거든요!
남묘호랑개교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이것이 주문이 됩니다. 어떤 문장을 외운다고 해서 마귀가 승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오히려 어떤 주문을 외우면 능력이 임할 것이라는 미신을 조장합니다. “자꾸 되풀이 해라!” 하든지 “기도할 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빼먹었으니 응답 안된다”는 식으로 조장합니다. 어떤 말을 되풀이 해서 외운다는 것 자체가 무슨 뜻입니까? 법적으로 정당하니까 효과도 있을 것이라는 공식을 세우는 것입니다. 거기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잊기도 하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작은 실수에 예민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조장입니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내가 십자가 때문에 구원받지, 어떤 실수를 내 힘으로 줄여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내 행동여하에 따라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질문)
거지 나사로와 아브라함의 관계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 거지 나사로를 보고 아브라함 품에 안겼다고 하는데요(눅 16:19-31).
(답변)
그것이 바로 십자가 이전의 구약의 풍토로 답변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사도바울은 예수님 품에 안기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사로도 예수님 품에 안겼다고 봐야 합니다. 십자가 이후는 그렇게 완성된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빌 3:20,21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자 주 곧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질문)
십자가 옆에 달린 강도의 고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눅 23:39-43)
(답변)
“우리는 다 같은 죄인인데 어떻게 죄없는 분을 이렇게 정죄하는가? 우리는 죄인에 불과하나 저분은 죄없으신 분이다” 라는 놀라운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피차 초라한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입장에서는 물에 안빠진 상태에 놓인 사람보고 건져달라고 할 문제인데, 같이 허우적 대는 입장에 놓인 예수님을 향해서 건져달라고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믿음입니다.
또 다른 한편에 있는 죄수는 예수를 비웃습니다. ‘자기도 구원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구원자가 될 수 있느냐’고 비웃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웃는 것이 정상입니다.
(질문)
그렇다면 그 고백을 한 강도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답변)
아마도 제 생각입니다만 평소에 그 강도는 예수님의 설교나 그밖에 이야기들을 풍문으로 많이 들었을 것이고 예수님 옆에 있게 된 그 순간에 그 고백을 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
말씀을 알면 알수록 이 세상은 허무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요?
(답변)
세상이 허무한 것이 아니고 본인이 세상을 쳐다 볼 것이 없습니다. 세상은 내가 조작을 해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기분이 좋으면 세상이 밝아 보입니다. 로또라도 당첨되면 직장생활이 신나겠지요? 반대로 자기 기분이 침울하면 세상이 온통 어두워 보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이러쿵 저러쿵, 핑계 할것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의 정당함을 법적으로 추구한 그 자체가 허무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헛된 짓을 한것이기에 허무합니다. 양심껏 산다고 노력한 그 사고방식 자체가 허무하다면 허무합니다. 그런데 그 허무한 것이 슬픔의 허무가 아니고 이미 구원을 받았기에, 나자신과 세상을 제대로 아는 데서 오는 허무가 되기에 즐거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즐거움!
흡사 꼭대기층에 이미 올라섰기에 아래층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훤히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산정상에 올라갔기에 중턱쯤의 것들이 다 알아진 것 같이, 이미 정상에 섰으니 이제는 허무하죠. 올라가면서 허무한 것은 아닙니다. 올라가면서 허무하면 도로 내려오는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질문)
세상은 어떤 목표가 있어야 성취도 있고 그래서 살맛이 납니다. 그런 것이 없이 살수가 없지 않습니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맞다고 쳐도, 목표는 내쪽에서 정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답변)
목표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조정이 됩니다.
(질문)
어떤 목표를 두고 그것이 내 인간적인 욕심인지,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인지 그것을 어떻게---
(답변)
그러니까 그것이 내부에서 조정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내가 타워펠리스 80층 짜리에서 살고 싶다’고 할때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 압니다. ‘참 눈도 높다’ 그러면 알아서 낮추겠지요? 그것은 사정과 상황에 맞추어서 자연스럽게 내려가서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이렇게 살아라”고 하실 때 인간 내부에서 “저는 그 정도는 못되고 이 정도는 됩니다” 하고 조정이 됩니다.
그 조정은 다만 인생을 살면서 자기 욕망대로 조정할 뿐입니다. 그렇게 조정하는 것은 뭐하고는 상관없습니까?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를 조정하든지 관계없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자기 욕망대로 스프링을 ‘늘렸다가 줄였다가’ 하는 것처럼 조정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다가 무슨 계기가 오면 ‘내가 너무 교만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만 알아야 할 것은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나를 이런식으로 다루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질문)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알수는 있는데 구분하는 인식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내 인간적인 욕심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뜻인지 그걸 구분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답변)
그것을 구분하겠다는 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다만 ‘나는 이런식으로 사는 이것이 항상 상식이다’고 해야 합니다. 지금 문제가 무엇입니까? 나를 개선하고 고치겠다는 발상이 문제입니다. 고치려고 하지 마시고 있는 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있는 대로 사시는데 다만 구원은 내 바깥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고치는 것과 관계없습니다. 구원은 고치는 것과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부지런히 고쳐 왔습니다.
(질문)
강의 중에 정리한 사항을 다시 한번 정리해주시기 바랍니다. 벌써 다 잊어 버렸습니다.
(답변)
1번, 바보같이 살자.
2번, 요구하는 것이 없다.
3번, 내 인생 내맘대로 안된다.
내부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욕망의 조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구원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정하겠다고 덤벼드는 것이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것은 또다시 법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을 동원하는 것은 위에 정리한 것들을 다 무너뜨리겠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첫째로, 바보같이 살면 안된다는 반발이고,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자신에게 요구했다고 속이는 것이고, 세번째는 내 인생을 내 맘대로 조정하겠다는 뜻이 됩니다. 아주 위험합니다.
제가 늘상 하는 말이 그것입니다. 성깔대로 살자는 것입니다 그 성깔이 조정이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거친 성질이 부드러워집니다. 20보다는 30대에, 30대 보다는 40대, 50대가 되어서 성질이 더욱 완화됩니다.
(질문)
정리 2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다고 하셨는데 우리를 이렇게 살게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살아가지고---
(답변)
아닙니다. 살고 싶다는 것은 우리의 요구일 뿐입니다. 살고 싶다는 것은 내 요구지만 핑계는 하나님 쪽으로 돌립니다. 지금 질문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인간이 백지상태라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백지 상태가 아닙니다. 다 과거에 한가락씩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한가락 했다는 내용은 본인의 욕망일수도 있습니다.
또 타인의 시선, 요구조건, 논평등이 우리의 빈그릇 속에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부합하는 식으로 살게 됩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멈추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멈춰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것대로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것대로 가는데 구원은 그것과 관계없이 그냥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질문)
그래도 우리를 살게 해 주시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답변)
살게 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살아도 구원은 예수님 덕분에 구원되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욕망의 수위가 늘 조정이 됩니다. 어떤 이는 80을 살았어도 더 살고 싶어 합니다.
100살까지 살아야겠다면서 더 살고 싶어 합니다. 어떤 사람은 30이 되어도 살만큼 살았다고 자족할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남들 보기에 이유가 없는데도 자살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조정이 됩니다. 오늘 자족해도 내일은 불만할수 있습니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는 것은 그것이 내부에서 조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고민거리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고민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구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깔대로 살되 그런 것 때문에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은 마귀가 조장합니다.
(질문)
호세아 4장에 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하는데 그 지식이 무슨 뜻입니까?
호세아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세아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호세아 선지자의 책망의 내용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모른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계속 외부에서 와야 합니다. 사랑이 내 소유가 되어 버리면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사랑을 알려면 계속 자신의 죄인됨을 알아야 하는데 호세아 당시, 이스라엘의 사는 형편이 괜찮았습니다. 한마디로 잘먹고 잘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런 형편속에 있다보니 “나에게 이렇게 돈이 있고 살만큼 사는데 애닯게 하나님을 찾을 일이 뭐 있겠나. 좀 쉬었다가 믿지 뭐”하는 식으로 하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니까 호세아 선지자가 “왜 너는 첫사랑도 모르는가”라고 외쳤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구원받은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까?
(답변)
구원받기 전에도 모릅니다. 각자 각자 계획도 있고 결정한 것도 있지만 어떻게 될줄은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이시간 이후에 차를 타고 가다가 어떻게 될줄을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된 자에 대해서는 오늘 밤에 죽는다 할지라도 낙원에 있도록 조치하신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근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세상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상관이 없잖아요.
(질문)
아까 강의중에 “학생이 시험문제를 풀때 10문제중에서 7문제는 자기 능력으로 되니까 자기힘으로 풀고, 자기 힘가지고 안되는 세문제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는 식으로 한다”고 했는데---
(답변)
구원받은 자라면 자기에게 7문제를 알수 있는 지식도 자기 능력이 아니라 그 지식을 하나님께서 주셨으니까 안 것 뿐이고 자기가 잘나서 7문제를 푼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도록 인도하십니다. 만일 그 때에 정신이 어질어질 했다고 하면 7문제는커녕 3문제도 맞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질문)
그러면 모든 것이 은혜라는 뜻입니까?
(답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인도하신다는 것이 명확하다면 모든 것이 다 은혜임도 명확하지 않습니까? 다시는 법적으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없이 죽을때까지 법적입니다. 다만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법적인것과 상관없이 십자가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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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하나님"을 읽고
김대식 (Homepage) 2005-07-07 19:41:03, 조회 : 300, 추천 : 33
질문합니다.
우발적인 은혜와 필연적인 행함을 대비 시켜
뒤에는 우발성은 생명의 교회로 필연성은 율법적 교회로 설명하셨는데요,
최근 강의 중에 이 우발이 자기 스스로도 인식 못하는채로 간다고 하셨는데, 그럼 계속 그러합니까(영원히 인지 못하는)?
만약 언젠가는 감지하고 알게되면 필연화 하여 기념비 되고 율법적으로 될수 밖에 없는건가요?
(단절, 지우개로 지우는 영의 일 때문에)
아니면 주 안에서, 예수 안에서 죽었으므로 아 예수 안에서 죽이기 위한 조치였음을 알게되는 것인가요(죽고 다시 사는)?
우발에 대비된 이 필연에 대해 좀 더 보충 설명 부탁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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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지옥의 하나님"을 읽고
이근호 2005-07-07 20:39:51, 조회 : 313, 추천 : 26
육츼 한계성 때문에 그러합니다.
에베소서 1:7-18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어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천국의 내막을 아는 방식은 인간들의 관리 능력에 붙잡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육적 본성을 하나님의 천국마저 자기 능력 아래로 집어넣어서 안심 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다툼을 하나님은 능히 아시기에 성령을 통해서 수시로 자기를 부인하고 늘 주님의 은혜 아래 복종케 하십니다.
이것이 인간 인식에 포착되지 않는 방식이라는 '우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주님의 자율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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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렇군요 주님의 자율성이
김대식 (Homepage) 2005-07-08 10:11:46, 조회 : 215, 추천 : 33
그렇군요 주님의 자율성이 우리에게는 우발적으로 나타나는군요.
주님의 자율성은 우리의 대단한 믿음의 인지력에 포착되지 않기에 낯설고 우발적으로 보이군요.
인지하냐 안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자율성 앞에 자신이 아무것도 안되는 비로소 피조물 자리로 낮추어질때
아 그렇군요 주님은 나보다 나보다 옳습니다. 나는 아니군요 주님이시군요 라는 고백이
믿음의 선배들에게 무수히 터져 나왔군요.
(삼상 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시 75: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결국 어떤 자도 이런 주님의 소관에 방해나, 의견첨부를 할수 없도록 지독스럽게 일방적으로 일관하시는군요.
야 참 억수로 든든하고 안정감 있습니다. 나를 우리를 안 믿고(기대치 않고) 주님만 믿으시니
한결같은 반드시 피조물 입에서 나와야할 이 고백을 반드시 받아내고야 마시는 군요.
우리는 어떤 권리도 없기에, 주님 소관이 옳습니다. 라고요.(우리 믿음 아니요 주님 믿음 옳습니다)
주님은 나보다 항상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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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지옥의 하나님]을 읽고 서평
김대식 (Homepage) 2005-07-10 10:23:05, 조회 : 219, 추천 : 29
[지옥의 하나님]을 읽고 - 김대식 05.07.07 22:13
저자는 기존 신학의 교회관을 다 마귀적 교회관으로 보고있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 늘 끊임없이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의 교회관은 차단된 생명나무의 실체를 남기고 교회를 누락시킨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 이렇게 되면 어떤 양상이 일어나는고 하니, 기존 교회사의 교회관이 엉터리가 되고 그로 인해 내려오는 모든 의식과 교회 교리, 신학, 양식들이 다 사람을 위한 교회였음이 드러나는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교회관이 되고 만다.
(행 7: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행 7:49)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행 7: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즉 하나님은 교회만들기를 인간의 손에 맡긴적 없다고 하고, 기존 신학은 반드시 인간을 통해 교회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서로 정반대의 충돌이 발생한다.
그럼 저자는 어떤 교회관인가?
오로지 전쟁의(예수님의 전쟁) 양상에서 비롯된
우발적으로 나타났다 우발적으로 사라지는 교회관을 고집한다.
그렇게 되면 교회역사 속에 있어왔던 신앙의 모범자들이 다 누락되고 딸랑 예수님만 참교회였음이 부각됨으로 참신앙인은 그런 누락 차단 단절을 기뻐하고 감사하고 자기부인으로써 오히려 예수님의 믿음만 옳습니다 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것은 여기에 기존의 교회들이 다 반발한다는 것이다. 참 이상하다 오히려 찬성할것 같았는데 거의 100%의 순도로 다 반발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의 교회가 과연 주님이 세운 교회인지, 인간이 세운 교회인지
한번 따져보자는 식이다.
여기에 기존 교회는 상호위선과 상호인정을 통해 이미 자기들끼리 통과시킨 것을 케케묵은(십자가 사건) 일을 끄집어내는냥 비현실적인 처사로 몰아가버린다.- 이부분이 무지 재미있다. 십자가로 형성된 교회가 이제는 십자가를 외면하는 교회로 탈바꿈하는데 다 성공한 마당에 다시 십자가를 운운하니 말이다.
십자가로 점검해보자. 딱 깨어놓고 보자 라는 저자의 주장에 니혼자 열심히 해라 우리는 교회 할란다 라는 식이다.
교회 할란다. 때려 죽어도 교회 할란다.
그렇다 이제 교회는 예수님에 관심 없다는 저자의 말이 실감이 난다. 그저 교회는 교회 이야기 뿐이다.
모든 관심사가 교회 생각 외에는 벗어나질 못하는, 넘지못하는 중독 상태이다.
여기에 바울은 태클을 건다.
(갈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십자가의 저주, 십자가의 죽음을 들고온 하나님을 고집스럽게 들이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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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있습니다.
손승범 2005-07-12 14:10:11, 조회 : 280, 추천 : 42
구약에 보면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긴다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즉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였느니라"(다니엘 4:27)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 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예레미야 7:5~7)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화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등등등.....
이스라엘을 고발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받으시겠다고 공식적으로 명명하신 구제와 공의행함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
구제행위와 공의행함이 하나님 앞에서 기쁘게 열납될 수밖에 없는 구체적 이유나 의미를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그전에 대충 감을 잡았었는데,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서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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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 있습니다.
이근호 2005-07-12 14:42:19, 조회 : 268, 추천 : 33
구제행위와 공의행함는 하나님 앞에서 기쁘게 열납될 수 있습니다.
단 믿음으로 행해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한다는 것은 은혜로 한다는 겁니다.
은혜로 한다는 것은 행함으로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행함으로 구제행위나 공의행함은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비은혜적 행함뿐입니다.
내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기에 (너와는 차별되게 ) 특별히 내가 했다는 식입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태도입니다.
따라서 날마다 자신의 행함을 부인해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성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해야만 가능합니다.
즉
성도 안에서 그리스도가 행하는 식으로 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베드로전서 4:9-12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 각각 은사(은혜)를 받은대로 .....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셍네 무궁토록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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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 있습니다.
손승범 2005-07-12 20:42:56, 조회 : 212, 추천 : 39
궁금한게 하나 더 있는데요ㅡ_ㅡ;;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인한 진노하심으로부터 당신을 돌이키시는 방법으로
"공의행함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행위"들을 통해 돌이키시고자 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건가요?
이런 행위들이 "금식",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함"등의 신앙행위(?)들과 어떤 연관을 맺고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받으시겠다는 이런 "행위"들을 "은혜"의 결과로 간주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도는 사실 선뜻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인간으로 말미암지 않은, 은혜가 작동원리가 된 행함을 회개로 간주하시겠다는건지 ㅡ,.ㅡ
써놓고보니 자칫 이전 질문과 중복되는 듯한 뉘앙스를 주는것 같습니다.
딱 한마디로, 왜 다른방법 다 제쳐두시고 하필 공의행함과 구제냐.... 이 행위들에 깔려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저의--;;가 있느냐....
뭐 이런 질문인데 --;; 필력이 부족해서....
질문의 요지를 간파할 수 있는 목사님의 영력을 믿으며 ㅋㅋ
산만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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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 있습니다.
이근호 2005-07-12 22:14:29, 조회 : 237, 추천 : 40
이스라엘 전체는, 출애굽 정신 밑에 놓여 있어야 저주가 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출애굽 이후에 하나님이 주셨던 율법(모세언약) 속에는 '약자보호법'과 '이웃환대법'같은 것이 주류를 이룹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출 22:27)
하나님은 이스라엘 내부에, 하나님으로 인해 남들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을 일부러 유발시켜놓고서,
(예를 들면, 전쟁터에 나가 갑자기 한 가정의 가장이 죽게 한다든지, 아니면 고의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사고가 일어난다든지, 대를 이를 아들이 생산되지 않아서 노동력이 상실한다든지, 불치병에 걸린다든지, 하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자신들이 애굽의 처지를 되돌아 보게 합니다.
즉 , "너희들고 고아였고 과부였고 나그네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비로 인하여 무상으로 그 애굽 나라에서 구원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중요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의 자비가 그대로 실행된다면 , 억울하게 가난하게 된 자는 필히 다른 이로부터 당연히 도움받는 그런 체제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법)을 멀리하게 되면, 그들은 자연적으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소외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 전체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탈락되는 현상과 일치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좀 여유있을 때 자기 보다 못한 자를 동정하고 동냥해준다고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자비의 실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사실은 전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 받을 권리가 없이 버림받아 마땅한 자이지만 하나님의 자기 맹세(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맹세)를 하나님 스스로가 달성하는 차원에서 제공된 것이 약속의 땅에서의 은혜요, 그 은혜의 혜택을 입은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은혜를 마치 당연히 받은 자격이라고 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자비를 자기 소유로 전환하시는 식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 내부에 하나님의 언약이 탈락하게 되고, 언약이 탈락되면 그 나라는 이방나라가 되어 언약대로 저주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신명기 8:11-20절을 잘 음미해야 합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제물을 얻었다할까 하노라....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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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대한 심판.."에 관하여. (요한복음 16장)
최희철 2005-07-27 09:22:02, 조회 : 191, 추천 : 32
주안에서 평안하십시요.
요한복음 말씀 (16장, 8,9,10,11절) 에서, '죄에 대한 심판'과 '의에 대한 심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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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의에 대한 심판.."에 관하여. (요한복음 16장)
이근호 2005-07-27 14:45:15, 조회 : 216, 추천 : 32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일단 벌어진 사건(십자가 사건)의 적용이 모든 방면에 걸쳐 개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임을 말해주는 겁니다.
즉
인간 세계의 그 어떠한 판정이나 결정도 십자가로부터 지적 받을 정도로 완벽한 것은 진리는 생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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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밖에 있는 자'에 관한 질문. (요한 게시록 22장)
최희철 2005-07-27 09:40:21, 조회 : 177, 추천 : 35
늘 주안에서 평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1)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
- 이 말씀에 나오는 '성밖에 있으리라'는 말씀의 뜻은 무었입니까?
여기서의 '성'은, '새 예루살렘' 성을 의미하는것 같은데,,,
- 그렇다면, 성 밖은 '불 못'입니까 ?
'새 예루살렘 성'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이 성곽일 텐데, 혹은 '불 못'에서 '심히 멀리 떨어진 거리'에 있는 성곽일 텐데..
(2) "...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
- 이러 이러한 자들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쓰여져 있읍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여기서는 '불 못'에 던진다고 쓰여져 있읍니다.
너무 의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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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성 밖에 있는 자'에 관한 질문. (요한 게시록 22장)
이근호 2005-07-27 14:42:28, 조회 : 214, 추천 : 39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건축물의 설계 도면은
지상에서 갖는 거리감각으로 추정할 대상이 아닙니다.
단지 성도와 비성도의 형편을 확실히 대립시키기 위한 취지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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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과 나쁜것'이 '진짜로 구원받은자와 구원받은것으로 속은자'를 의미합니까 ?
최희철 2005-07-30 04:02:05, 조회 : 227, 추천 : 34
(마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마 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바다에서 그물에 잡히지 않은 물고기 --(1)
바다에서 그물에 가득 잡힌 물고기 --(2)
그물안의 좋은 물고기 --(3)
그물안의 못된 물고기 --(4)
네 물고기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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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좋은 것과 나쁜것'이 '진짜로 구원받은자와 구원받은것으로 속은자'를 의미합니까 ?
이근호 2005-07-30 06:50:22, 조회 : 281, 추천 : 42
네 종류의 물고기의 차이는 이러합니다.
(1)바다에서 그물에 잡히지 않은 물고기는 바다에게 잡히지 않은 물고기입니다.
(2)바다에서 그물에 가득 잡힌 물고기는 그물에 잡힌 물고기입니다.
(3)그물안의 좋은 물고기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고기입니다.
(4)그물안의 못된 물고기는 사람들이 필요치 않는 물고기입니다.
네 가지 물고기는, 물고기가 일방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네 가지 경우를 뜻하기에 물고기 하나가 네 가지 경험을 다 가질 수도 있습니다.
(어제는 그물 밖에 있어 안 잡혔다고 오늘은 그물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고, 어제는 나쁜 물고기로 간주되다가도 오늘은 좋은 물고기 간주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이는 천국이란, 예수님께서 천국에 필요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뽑는 작업 자체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지, 개인 구원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개인 구원이란 성경에는 없는 사고방식으로서 일반인들의 종교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에서의 구원이란,
예수님이 벌리시는 천국 활동의 결과가 외부로 나타날 뿐입니다.
어부가 바다에서 그물로 고기를 잡듯이, 예수님도 자기 백성을 건지려 오셨는데, 이 작업에 대해서 방해받을 요소는 전혀 없을 것이며, 누가 좋은 고기며 누가 나쁜 고기인지는 고기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즉 "예수님, 저는 이왕 어부 되시는 예수님에게 잡힌 몸이기에 좋은 고기로 선별해주세요"라는 식으로 요구하는 것) 예수님 본인이 결정지을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결정을 좋게 보는 자가 바로 천국의 백성 (그물 비유 식으로 말하면 좋은 고기)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천국을 위해서 네 종류의 상황이 다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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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렇다면?
김대식 (Homepage) 2005-07-30 08:05:13, 조회 : 217, 추천 : 40
그렇다면 천국이란 인간에게 포착되는 식으로 인식이 되는게 아니라, 늘 전혀 알수 없는 방향으로 천국이 인간들 관계와 생각을 쪼개는(구분, 갈라내는. 삭제, 단절) 식으로 일방적인 긍휼과 일방적인 진노로 세상을 두패로 나누는 것이군요.
그러면 하나님 나라 라는 신학 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될수 조차 없는데, 그 일방적인 천국활동을 훼방하는 짓만 할수 밖에 없군요.
어떻게든 그 일방적인 완고한 고집을, 완화시키고 부드럽게 하여 마치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느냥 하나님의 사랑을 한수 가르쳐 주겠다는냥 성화를 실천하면서 말이죠.
(결국 인간의 종교적 본능은 개혁과 성화(하나님 나라)에서 벗어날수 없군요, 개혁과 성화에 빠진 우리를 건져내주시지 않는한 구원(예수님 나라)받을길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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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렇다면?
이근호 2005-07-30 09:28:44, 조회 : 228, 추천 : 32
교회를 위한 신학을 하다보니 성경을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해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1)교회를 통해서 천국가도록 만들기 (교회가 일종의 여행사 노릇)
(2)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조직체 이외는 믿지를 않으려 함
(3)따라서 '교회=천국'이라는 인식을 교인들에게 심어줌
(4)성경에 나오는 모든 구절을 '자기 교회 완벽함으로 인한 구원 성취'로 이어짐
(5) 따라서 마태복음 13장의 예수님 비유 해석도 '자기 교회=하나님 나라' 라는 공식에 부합되도록 해석함 (자기 교회 교회법에 반대하는 자는 지옥 가는 자로 분류됨)
(6)교회에서는 인간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데 자부심을 갖는 이유는 '자신네들의 활동함= 좋은 고기 활동함'으로 간주하기 때문
(7)이렇게 되니 자기네들의 활동이 곧 하나님 나라 확장으로 이어진다고 봄
(8)이것을 창세기 1장 28절에 나오는 '문화 사명'의 성취로 간주
(9)이러한 인간들의 자국을 역사(歷史)로 만들어 소유하게 됨(예를 들면,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 같은 것)
(10) 만약 누가 예수님께서 홀로 천국을 이루어나가신다고 성경을 해석하면 선한(?) 교회 역사를 부정한다는 이유를 가지고 이단이라고 간주함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교회'로 이어지는 방식, 즉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천국이 훨씬 믿기 쉽다는 이방종교적 발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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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교회의 가시화
김대식 (Homepage) 2005-07-30 09:52:17, 조회 : 208, 추천 : 16
종교꾼들의 교회는 가시화와 되풀이와 역사화 인데
성령의 교회는 불가시화 반복이 불가능한 단절된 우발적 사건이며 묵시적 교회인데
(역사적 교회와 묵시적 교회의 차이점도 알려주시고요- 유대인이 묵시적 교회를 놓칠리가 없잖아요)
우리는 본능상 이 우발적 교회도 우발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곧바로 필연화 하고 역사화 하는데
이 필연화 할려는 본능은 결국 성령이 부서뜨리는 방향으로 일하시는 건가요(오로지 성령의 숙제인가요)?
이 필연성의 생산력을 예수님은 어떻게 보시고 어떻게 일하시는가요?
(미리 답변을 예상 해보면 결국 감사의 의미로 나오지 싶은데 [감사]의 의미에 대해도 알려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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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교회의 가시화
이근호 2005-07-30 11:50:08, 조회 : 252, 추천 : 29
손성식 목사님의 글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저는 묵시적 지평을 논의하고 싶습니다. 왜 지금 묵시적 지평을 논의해야 하느냐하면 묵시적 지평이란 역사적 지평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옳은 주장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역사 긍정이라는 기반 위에서 교회의 본질과 미래를 주장한다면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묵시적 지평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묵시적 지평이란 인간의 모든 움직임(역사)을 죄로 규정하여 왜 인간이 심판아래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시적 지평으로 교회를 본다는 것은 교회 자체의 생명력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 중심]으로 교회가 은혜라는 장(場)에 소속되어 있음을 확인해가는 것입니다. 즉, 교회를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려는 몸짓으로 말입니다. 좀 더 거칠게 표현한다면 내 구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여기서 꼭 기억해 두어야 하는 것은 묵시적 지평이란 역사를 긍정하지 않고 십자가의 은혜가 우발적으로 역사 속에 사건화 되어 역사를 부정하면서 묵시적 열매를 맺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시는 정형화되지 않고 틀에 매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마음대로 이니까요?
혹자는 묻겠지요. 아무리 주님 마음대로라도 규칙은 있을 것 아니냐고. 주님의 규칙은 십자가의 규칙이며 언약의 규칙입니다. 문제는 십자가의 규칙이라는 것이 역사나 틀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묵시적 지평 속에서 본다는 것은 십자가의 언약으로 자신의 몸을 만들어 가시는 주님을 보는 것입니다. "
그러니까 주님은 지금도 놀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언약 성취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게으름 피우니 주님도 노는 것으로 여기면 안됩니다. 지금도 은혜로 햿빛 주시고 비를 내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온통 이단들로 기독교계를 가득채우게 하시고, 지금도 우리는 죽이고 계십니다.
바로 이런 분주한 은혜로운 활동에 대해서 감사하는 그 마음이 곧 묵시적 활동(십자가 활동 )이라는 은혜로운 혜택에 의해서 무참하게 깨어져 나간 마음입니다.
이런 방식이 악한 이 역사 속에서 주님 특유의 '교회(그리스도의 몸) 나타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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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 구원과 율법 (5가지 질문)
최희철 2005-08-04 06:34:58, 조회 : 296, 추천 : 34
<질문 -1>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이 말씀과 구원을 어떻게 연결해야 합니까 ?
<질문 -2>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 우리를 (혹은, 나를)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는자'와 구분할 수 있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
<질문 -3>
(마 22: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마 22: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마 22: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마 22: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마 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 '예복을 입지 않은' 이라 했읍니다. 무슨 뜻입니까?
<질문 -4>
(마 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마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마 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금은의 중량금은의 중량
(마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 '이 무익한 종'이 주인에게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평가받은 사건은 무엇입니까 ?
* 그리고, '바깥 어두운 데'란 무엇입니까 ?
<질문 -5>
(눅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내가 말한 것'과 '행하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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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 구원과 율법 (5가지 질문)
이근호 2005-08-04 07:09:03, 조회 : 351, 추천 : 39
예수님의 공생애는 유대인과의 대결구조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언약적으로 인류를 대표하는 대상으로 삼고 계심)
1. 인간에게는 구원받을 권리가 없음을 분명히 하신 말씀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부터 분명히 굳혀진 사실입니다.
2. 인간은 누구나 자기 구원을 위해 주의 이름을 이용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다 지켜서 구원받을 자는 이 세상에 전혀 있음을 분명히 하신 말씀입니다.
3. 자기가 받은 혜택만 염두에 두고 혼인잔치 주인되시는 분의 취지를 모르는 자는 주인님이 벌리는 혼인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못된다는 말입니다.
'예복 입기'는 주인쪽에서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요건이고 이 요건에 의해 손님들의 기존의 본인들 선입견을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주인님의 취지의 가치를 가볍게 보는 사람은 혼인잔치에서 추방된다는 말씀입니다.
4. 최후의 심판이며 주인님의 저주스러운 속성이 유감없이 실시되는 지옥입니다.
5.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예수님만이 준수할 수 있는) 완전한 거룩한 하나님의 법입니다.
'행하는 것'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거룩한 법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을 이 땅에서 실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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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은 어떤가요?
한광수 2005-08-08 20:08:34, 조회 : 367, 추천 : 34
한국기독교정보학회(다음카페) : 프리메이슨과 관련된 내용연구와 그에 대한 경계를 알리는 것 같은데, 유익한 정보가 많고 보수적인 글이 많지만
그들이 연구한 내용이 맞다고 보는지요?
그리고 이에 대한 십자가마을의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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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런 곳은 어떤가요?
이근호 2005-08-08 21:14:47, 조회 : 360, 추천 : 36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특이한 사상들을 거론하는 것은
사실
본인들의 이단성을 숨기기 위한 연막술입니다.
현대인들에 있어 종교란
일상의 지루함에 못견뎌서 기분전환용으로 가끔 기웃거리는 취미와 오락입니다.
심심함을 잠시 달래보겠다는 식으로 종교 단체에 관심가집니다.
따라서 무슨 종교를 가지든 자유입니다.
어차피 취미는 다양하기 마련입니다.
정말
복음에 관심이 있다면
프리메이슨 조직이나 다빈치 코드 같은 것에 신경쓸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를 아예 이단 집단으로 보고 덤벼들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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