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 2005-05-19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 2005-05-19
이름 : 관리자(IP:122.47.55.30)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
김대식 (Homepage) 2005-05-19 21:24:39, 조회 : 327, 추천 : 33
1. 삼위일체를 근거로 하는 이 표현이 삼위일체랑 상관 없다고 하셨는데요 그럼 우리라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우리 라는 말에 설명좀 부탁 드릴께요 (아니다 라고만 기억 나고 들은것 같은데 까먹어버려서 입니다)
2. 이 구절을 통해 인간이 신이 되었다 라는 의미를 잘 이해가 안되는듯 하던데요.
인간이 죄로 인해 즉 선악과를 먹음으로 신 같이 되었다 라는 말을
어떻게 알려주는게 좋을까요? 그 말 자체도 인정 못하겠다고 하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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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
이근호 2005-05-20 07:32:48, 조회 : 402, 추천 : 37
'삼위일체'와 상관없다는 말은 다른 주체의 등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 주제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삼위일체론은 '나'라는 주체의식으로 무장된 인간이 신과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이론인 반면에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우리 중 하나'라는 것은 원래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뜻 펼침에서 배제되어야 마땅한 존재로 출발했음을 말해주는 겁니다. 어쨌든 인간은 '우리' 속에 함께 섞일 수 없는 존재로 창조되어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 인간들이 '우리 중' 속에 감히 끼어들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양상의 '신의 세계' (천국)을 인간의 아이디어(이미 알게 된 선악체제)로 만들어낼 소지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쪽은 제대로 된 '우리'와 제대로 된 '신'과 제대로된 '천국'과 제대로 된 '선 지식'을 따로 실시할 필요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들은 에덴에서 추방시켜 저주가 무엇이며 죽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중에 그들 속에 섞이게 하므로서
악마가 인간에게 사주한 '신과 같이 된다'는 그 진면목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그 악한 양상이 적나라하게 표출되게 하십니다.
즉 인간은 이 저주받은 이 세상에서 구차없이 신이 될 수 밖에 없으며 삼위일체론을 가지고 구원을 시도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삼위일체이론이야말로 인간들의 선악지식의 안테나에 포착된 '우리'로 표현된 신의 얼굴입니다.
그러나 복음적으로 볼 때 우리란, '여럿 신'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한 표현이 아니라
'우리'라고 불리우는 신의 세계쪽에서 그 어떤 조치가 없으면 신의 비밀 모르는 것이 당연함을 천명해서 계속해서 인간들을 신의 세계의 흐름에서 배제시켜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방식입니다.
즉 '우리'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일의 확정적 상대자가 인간이 아니라 따로 계심을 선언하시는 표현입니다. 이는 집단적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 주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볼 때 폐쇄적이라는 의미에 취지가 있는 표현입니다.
애초부터 그랬습니다.
"나 신이 너희를 만든다"라고 한다면 아마 인간은 신의 비밀을 아는데 있어 그 피조성 안에 신의 비밀이 내장되어 있는 형식으로 창조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 신이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이 인간을 만들게 되었으므로 인해
피조된 인간의 여전히 그 피조성에도 불구하고 신의 비밀에서 배제되는 겁니다.
즉 '나'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는 '우리'로 아예 담을 쌓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라는 말씀을 놓고 볼 때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아는 지식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고 오직 '우리'라고 지칭되는 세계가 독점적으로 보유하게 됩니다.
단 '우리'라고 지칭하신 신의 세계 쪽에서 누군가 '우리'라고 불러주시려 오시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요 20:17)
나중에 알고 보니 (성령님께서 오시고 보니)
'우리'란 성부와 성자 성령께서 거하시는 세계였습니다. (요 14: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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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렇다면? 임마누엘도 이런 내용?
김대식 (Homepage) 2005-05-22 19:36:05, 조회 : 247, 추천 : 42
그렇다면 임마누엘도 그런 취지처럼 봐야겠군요?
이 기회에 임마누엘에 대해 좀 명확히 알려주십시요 너무 어려운 의미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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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렇다면? 임마누엘도 이런 내용?
이근호 2005-05-23 00:49:41, 조회 : 284, 추천 : 37
임마누엘이란
오실 분의 이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름이란 그 분의 하실 일과 운명을 함유하게 됩니다.
처녀에서 태어나신 분으로 세상에 등장하기에
이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분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유난히 예수님에 대해 유사품이 맞습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예수-이것이 유사품입니다.)
임마누엘 되시는 분은 단절된 양상으로 등장하셔놓고서는
자신이 직접 뽑아낸 사람들 속에서만 함께 거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만 '참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들은 비로소 '죄'를 알고 동시에 의도 압니다.
죄를 안다는 것은 인류 역사 전체를 한꺼번에 읽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죄를 안다는 것은 동시에 '하나님의 義(의)'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서는 죄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로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음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의(말씀 성취 상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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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고...
김성석 2005-06-08 10:15:43, 조회 : 292, 추천 : 40
마태복음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태복음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가복음 10: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위의 세 본문이 성경 앞부분과 연결되어 먼저와 나중으로 구별해서 말씀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3: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은 30절 앞부분은 좀 다르게 되어 있고,,
어쨌든 먼저와 나중의 차이가 단지 구원과 관련된 표현으로 보면 되는지? 나중과 먼저의 구분점이 무엇을 말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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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고...
이근호 2005-06-08 14:34:38, 조회 : 343, 추천 : 35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성격을 놓고 기존의 유대 신학과 대결 구조를 띱니다.
즉 예수님은 기존의 '천국 개념'을 항시 염두에 두고 정죄용으로 그들의 신학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보편적 인류상으로 개념을 확장하고 있습니다만)
'먼저 된 자'란 기존 유대 신학에서 말하는 천국관과 구원관을 그냥 고수해보려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율법에 기초한 '거룩 개념'을 가지고 서열짓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천국관은 이들의 천국관과 거룩 개념을 공격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그들의 서열 매김을 뒤덮는 식으로 천국을 설명하시고 증거하십니다.
즉 "하여튼 너희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엉터리야!"하는 식입니다.
그러니 결코 천국 가는 사람 위주로 새로운 천국관을 정립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이 점이 매우 중요!- 새로운 천국관은 사도들의 서신에서 온전하게 완성적 의미가 제공됩니다)
예를 들면, 바리새인보다 세리와 창기에 천국에 먼저 들어간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결코
세리와 창기가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요,
바리새인이 세리와 창기가 천국 들어가고 난 뒤에 뒷 차로 들어간다는 뜻도 아니요,
세리와 창기가 평소에 예수님에게 어떻게 했기에 천국가게 되었느냐 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여튼 기존의 바리새인적인 천국관은 무조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거지 나사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사로가 예수님을 어떻게 믿었기에 아브라함 품에 안겼다라는 것이 그 누가복음 16장의 핵심이 아닙니다.
하여튼 돈 좋아하는 부자는 천국가기 곤란한 그런 천국관을 소개하겠다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역전,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거지가 되었든 세리가 되었든 간음한 자가 되었든 세리가 되었든 강도가 되었든 그 어떤 식으로도 예수님의 천국에 합당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중된 자가 먼저 된 경우'에 있어서도 그 '먼저된' 인간들의 그 행위로도 자신의 능력으로 그런 위치에 도달될 수 없습니다.
'먼저 된 자를 나중으로 돌리는' 것도 주님의 능력이라면 '나중된 자를 먼저 된 자'로 돌리는 것도 순전히 주님의 알방적 고유 권리 행사로에만 가능하기에
어떤 식으로 천국은 예수님 자의적 결정에 의해서만 수립됩니다.
이러한 '천국 세우기' 원리가 사도의 서선에서는 십자가의 능력인 성령에 의해서만 본격화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바리새인 신학의 원리는,
"천국가고 싶으냐? 언약 믿어서 은혜로 구원받고 율법 지켜서 거룩한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돌려라"이라면
예수님의 천국 원리는
"천국가고자 하느냐? 지옥이나 가라!" 이것이 예수님의 천국 세우기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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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은 어떠하시는지...
백보현 2005-06-16 21:54:32, 조회 : 252, 추천 : 39
안녕하세요
저는 여 목사님 안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을 해야할지 잘 몰라서....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또 어떻게 보는 것이 정확한것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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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목사님의 생각은 어떠하시는지...
이근호 2005-06-17 07:54:59, 조회 : 258, 추천 : 32
>우선 ''여목사'라는 것을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목사'밖에 없다고 여기십시오.
성경에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경우는, 존재론적으로 주님의 창조가 여자로 직접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자로 이어진다는 점을 나타낼 때 뿐입니다.
교회에서 자기 존재의 구원이 아니라 남에게 어떤 은사로 봉사할 것이냐 할 때는 복음의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여자 목사에 대해서 회의를 갖는 사람은
마치 '한 번 목사가 영원한 목사'가 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즉 한 번 은사를 행사하는 그것으로 영원한 구원된 자라고 확정짓는 증거라고 여기기에 마치 목사직을 자기의 구원됨과 연관시킬 수 있는 것처럼 오해를 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 청소를 하는데 여자도 할 수 있습니까?"라는 말과
"아기를 낳는데 있어 남자도 낳을 수 있습니까?"라는 말을 같은 질문이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복음 전파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복음이 전달되지 아니하고 자기 목사직의 특수성이 교인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하면 단번에 목사직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도 됩니다. 남자든 여자든 목사직은 한시적입니다.
모든 오해는 목사직을 은사와 연관짓지 않고 자기 구원적 신분을 구원의 영원성과 연관짓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즉 은사도 계속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태어날 때 주신 존재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분명해야 합니다.
즉 가정에서는 남자는 여자의 머리로서 그리스도를 대행하여 희생적 사랑을 드러내야 하고 복음을 알려 줄 책임이 있는 자입니다.
여자 목사라고해서 가정에서 남자에게 불복종할 의무는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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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러면 여 목사님께 안수를 받는 것은...
백보현 2005-06-17 13:34:39, 조회 : 241, 추천 : 42
감사합니다
그러면 여 목사님들께
남자 목사님들이 안수를 받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요
또한 여러가지 안수 기도를 할 때 여 목사님들께서
남자들의 머리에 손을 대고 안수기도 하는 것은 어떠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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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러면 여 목사님께 안수를 받는 것은...
이근호 2005-06-17 13:42:02, 조회 : 259, 추천 : 25
누구 손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그 사람이 왜 주목받아야 하느냐가 중요하겠지요.
안수라는 의식(의례)는 하나의 관습이니 말입니다.
공동체가 그 사람을 목사로 모셨으면 좋겠다는 공동체의 의지가 관습의 사소함을 능가합니다.
예를 들면,
설교자가 넥타이 매고 설교하는 것이 관습입니다만, 형편상 남방셔츠 입을 수도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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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율법의 헬라화
이준 2005-06-18 18:29:05, 조회 : 242, 추천 : 32
...이러한 과정에서 유대교의 율법관에 헬레니즘 사상의 영향이 스며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의 규례를 비판하셨지만, 예를 들어 안식일 준수의 규례를 비판하셨지만,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유대교에 스며든 잘못된 율법관을 공격하면서 원래 히브리 사상에서 내려오던 율법관을 세우려 하신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바울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 같다. 그가 『로마서』등에서 유대교의 율법을 공격할 때, 공격 대상은 헬레니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잘못된 율법 개념일 수 있다. 율법과 은혜를 모순된 것으로 여겨 구약과 신약을 분리시킨 마르시온과 같은 초기 이단자들이 헬라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들이라는 점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헬레니즘 문화권 전체가 이미 상당 정도 헬라화되어 있어서 포로기 이후 유태교 자체가 상당 정도 헬라화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경직(2002). 히브리와 헬라의 율법 개념 : Torah와 Nomos. 기독교사회윤리(천안대학교기독교학부). pp.195~196.
...그리스도는 죄용서 받은 사람이 모범으로 살아야 할 도덕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인간도 도덕적으로 완전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무능한 인간을 위해 성령이 오셔서 인간 안에서 역사 하심으로 인간이 그리스도의 도덕적 삶을 모범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경직. 같은 글. p.205.
헬레니즘 시대...당대 유대인들은 율법을 세속법과 제의법으로 이해했다...할라카를 발전시켰다. 유대인의 율법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도덕적 율법, 의식적 율법, 세속적 율법이 그것이다...도덕적 율법의 대표적인 예인 십계명을 주실 때...의식적 율법은 주로 예배와 희생에 관한 규례를 알려주는 법이다. 세속적 율법은 하나님의 도덕적 율법을 구체적 역사 상황 속에서 적용하여 만든 법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도덕적 율법만이 불변하고 절대적이다...
이경직. 같은 글. pp.206~207.
...세속적 율법과 의식적 율법이 절대적인 도덕적 율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예수께서 그 율법을 어기지 않으신다. 하지만 유대인이 세속적 율법과 의식적 율법에 절대성을 부여해서 절대적 도덕적 율법에 해를 끼치는 경우에 예수께서 율법의 원 정신과 의미를 회복시키려 하신다. 이는 바울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경직. 같은 글. p.208.
구약의 torah 개념의 핵심은 하나님의 일관된 뜻인 도덕적 율법에 있으며, 그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을 주인이자 (철인?)왕으로 모시는 정의로운 공동체를 이루는데 있다. 이는 분배적 정의를 뜻하는 헬라어 nomos의 원의미와도 연결된다. 차이가 있다면, 헬라의 분배적 정의는 자기의 공적이나 지위에 따라 정해지는데 반해, 히브리의 분배적 정의는 사랑과 은혜에 의해 이루어진다. 기독교에서 사회에 아무런 공적을 끼치지 못하는 약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 앞에서 같은 인격으로 사랑 받는 존재이기도(존재이기에?) 어느 누구도 무시되거나 차별 받아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온전하신 인격을 본받는 기독교 공동체가 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경직. 같은 글.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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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들은 어느 기독교윤리학자의 것입니다. 논평을 부탁드립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말씀의 뜻이, 헬라화의 오염으로 인해 무색해진 히브리 율법의 원의미를 회복하여 그분을 믿는 성도들로 하여금 도덕적 율법을 근거로 한 온전한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시기 위함에 있었던 것인 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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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구약율법의 헬라화
이근호 2005-06-18 19:23:58, 조회 : 263, 추천 : 36
이경직이라는 분은,
율법을 행할 주체자 자체가 십자가 언약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분은 유대교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인간이라는 주체자가 제대로 행동을 못한다는 목적으로 제공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주체자가 더 이상 주체적일 수 없고 영적으로, 악마에 사로잡혀 있어 '하나님의 지혜=십자가'를 읽어내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세력의 하수인임을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즉 미흡함 정도가 아니라 육의 육됨이 발각시키는 힘이 율법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적인 인간들은 끝까지 '자기 행함'에 미련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최종 관심사가 예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겸손의 미덕을 취하는척 하면서 결국 자기가 자신을 구원해내고자 합니다.
신학이란 여기에 동원된 '지적 노동'입니다.
'신학하기'라는 노동으로 자기를 구원하려고 하는 겁니다.
이와같이 자기 속에 오로지 자기만 남아 있는 자,
이런 자를 불신자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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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 하루인 주일과 일주일의 이례의 주일관에 대하여
천지홍 2005-06-18 19:24:25, 조회 : 249, 추천 : 40
목사님 주님의 평안이 넘치길 기도합니다.
주중 하루인 주일과 일주일의 이례의 주일관에 대하여 알고 싶어요
꼭 답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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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주중 하루인 주일과 일주일의 이례의 주일관에 대하여
이근호 2005-06-18 19:40:11, 조회 : 292, 추천 : 33
>질문의 취지가 무엇인지 잘 파악이 안되는군요.
그래서 일단 제가 질문을 다시 만들어 보겠습니다.
"주일날 하루만 주일이라는 주장과 일주일 전체가 다 주님의 날"이라는 주장에 대해 의견을 부탁합니다"라는 식의 질문입니까?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주일'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간 인식은 항상 인간들의 편이와 결부하여 사용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오후 11시 59분 59초와 그 다음날 0시 0분 1초 와의 차이를 채워줄 실제적 변화라는 것이 인간의 시간 의식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즉 오후 11시 59분59초에 둔기를 가지고 머리를 맞으면 일시적으로 시간의식이 정지가 되면서 그 사람의 머리 속에는 여전히 오후 11시 59분 59초가 되는 겁니다. 즉 그 때 그 충격적 경험이 시간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한 겁니다.
다시 되돌아와도 여전히 그 다음날 0시라는 것을 모를 때에 옆에 사람이 갖고 있는 시간경험을 참고로 하게 됩니다.
"지금 몇 시나 되었는데?"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시간이란 그 시대 공동체적 의식으로서 시간적 관습을 규약화 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안식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신약 시대에는 더 이상 이스라엘이라니 유대인이라는 것이 율법적으로 끝나 버린 시대입니다. 율법적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없어졌습니다. 자연적으로 시간적인 안식일 지킴도 없어졌습니다.
'시간 문화'를 가지고 계시하시던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계시하십니다.
따라서 일주일 전체가 '주일'이라든지 '주님의 날'이라든지 하는 주장도 시대 착오적인 발상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무엇을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시대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화적 시간관을 고집하는 것은
제발 정기적으로 교회 출석해서 푼돈이라도 돈 좀 내어달라는 겁니다.
목사가 '하나님 이름' 팔아가면서 밥 좀 먹고 살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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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에 대해서....
손승범 2005-06-25 13:13:02, 조회 : 298, 추천 : 43
성화의 본질과, 성화가 성도에 대해 갖는 의미에 대해 문의드립니다.
좀 막연하실텐데요....
특정서적의 한 부분을 근거로 대서 질문드리고 싶지만, 전체의 개념에 대한 고민이라서....
예를들어,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에서 줄기차게 고집되고 있는 "성도의 성화"가 결국은 무엇을 겨냥해야하며,
성도들이 성화를 어떻게 받아들어야하며, 성화를 통해 기대해야하는 바가 무엇인지....
박영선 목사님의 성화론에 대한 목사님의 견해와 평가를 곁들여 적절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중복된 질문인줄 알지만, 제가 워낙 이해력이 딸려서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으니 --;; 죄송할 따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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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성화에 대해서....
이근호 2005-06-25 17:09:14, 조회 : 385, 추천 : 33
>박영선 목사님은,
성화, 즉 성도가 거룩한 삶의 모습으로 띠기 시작하는 양상의 과정 없이는 구원되는 경우는 없다고 여기는 분입니다.
이렇게 되면 구원이란
로마서 8:30절에 나오는 성경 말씀에 인위적인 발상이 하나 추가 되는 셈이 됩니다.
즉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는 이 말씀에다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고'라는 것을 어느 지점인가 꼭 집어넣어야 한 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생각한 구원관이 아니라 인간들이 구상해놓은 구원관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심'을 구원 서정에 넣지 않는 반면에 박영선 목사님은 넣고 있다. 이것은 뭔가 구원관에 있어 하나님의 뜻과 뒤틀려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성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제일 큰 단점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바로 거룩된 삶을 요구하고 그 거룩된 삶을 가지고 신앙 유무를 판단한 사람들에 의해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인간들을 종교성을 대변해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바리새인들은, 소위 인간들의 지혜로 끄집어낼 수 있는 각양 각종의 거룩한 삶을 다 뽑아내어 그것으로 하나님의 거룩의 리스트와 표준으로 삼았습니다.,그런데 그 기준에 의해서 참된 메시야는 살해당하셨습니다.
그들의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는 거룩한 율법이 요구하는 거룩한 삶을 부인하는 자는 이단이다!"라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인간은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거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이 둘 사이의 상호 대치되는 의식은 그 뒤
십자가 복음이 전파되는 그 현장에서 항상 되풀이 됩니다.
행위의 주인공인 인간의 기대하고 만들어내고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그 거룩의 기대치가 진정 거룩한 삶인가
아니면 예수님 십자가의 능력에 의해서 매일같이 행위의 주인공 자체가 죽임을 당하는 그 양상이 예수님이 실시하는 진정한 거룩한 삶인가 의 다툼이 일어납니다.
즉
살아서 거룩한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못박혀 죽을 것인가 하는 양상의 차이입니다.
박영선 목사님의 잘못은
거룩의 주체자를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볼 줄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즉 칭의의 주체자와 거룩의 주체자를 따로 분리시켜 따로 믿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냥 은혜로 주신 것과, 예수님이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과 따로 구분지어 생각하겠다는 겁니다.
과연 성도가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성도에게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있는가 하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즉 성경 말씀이 성도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 계신 예수님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모르는데 있습니다.
참된 성도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압니다.
"늘상 나는 나 나름대로 행위의 주체자가 되어 나 나름대로 말씀을 준수하려고 애쓰게 되며,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런 나를 늘상 죽이시고 그 죽음을 바탕으로 하여 주님의 '말씀 성취'만이 은혜의 양상, 사랑의 양상으로 증거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거룩이란 인간에 의해서 도출될 사항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원 행위 그 자체가 곧 거룩함이 됩니다.
베드로전서 1:15에 보면,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직 주님께서 그렇게 성취하고 계심을 믿는 자만이 성도며, 반대로
새삼스럽게 독자적으로 자신이 거룩한 삶을 살겠다고 나서는 자는 이미 예수님이 행하시는 거룩한 관계를 안믿는 불신자에 해당됩니다.
즉 칭의는 예수님 몫이지만 '거룩되기'는 성도의 몫이라는 겁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이 내린 거룩앞에서 할 말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 문장을 다른 문장으로 고쳐 말하면 이렇습니다.
'이런 자는 그동안 십자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어 나중에 주님 앞에서 할 말을 잃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구약의 거룩은 이러합니다.
"거룩한 곳에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지어서 죽지 아니하리니"(출 28:43)
즉 구약의 거룩은, 모든 인간을(에덴동산에 추방된 모든 인간을) 죽이려고 보여주시는 거룩입니다.
인간들보고 새삼스럽게 만들어내라고 요구하시는 거룩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어느 인간도 자기가 수련한 거룩으로 하나님의 거룩과 감히 비교할 수 있는 자는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거룩한 말씀으로 계속 자기 백성을 죽이고 계십니다.
심지어 '내가 거룩하다, 그러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으로 성도를 매일같이 죽이십니다.
박영선 목사님은 성화론에 관해서 불신자의 인식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차라리 다음과 같이 고백해야 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니라"(이사야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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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성화는 위선과 멀어지는게 아니라?
김대식 (Homepage) 2005-06-25 19:45:12, 조회 : 232, 추천 : 38
성화론자는 위선과 멀어지기 위해 자기자신을 치는데 멀어지는게 아니라 더욱더 말려들어가는 셈이네요?
바리새인에서 벗어나고자 함이 발버둥친 것이 더욱더 바리새인처럼 깊은 수렁에 빠지는 위선에 들어가는?
위선에서 벗어나고자 함이 오히려 더 위선적으로 깊게 위장하는 자로
결국 바리새인인 사도바울이 그 굴레에서 벗어날수 없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외쳤고
자기신앙생활에서나 인간의 믿음에서나 그 어떤 것에서도 답을 찾지 않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예수님의 은혜에 졸지에 우발적으로 해답을 얻게되었으니 말이죠.
광주 6월 24일 강의에도 나오네요. (칠곡 6월 25일 강의에 더 깊게 나오고 아마 이번 수련회에 이부분을 더 심도있게 다루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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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럼 성화는 위선과 멀어지는게 아니라?
이근호 2005-06-25 21:13:40, 조회 : 289, 추천 : 42
인간의 이성(理性)은 반성하는 기능을 지니고 전개됩니다.
그런데 그 반성하는 자아의 정당함은 또 어디에 근거해야 할까요?
결국 반성할 줄 아는 자아을 절대적으로 정당화하지 아니하면 자기 반성도 믿을 게 못되겠지요.
이처럼
인간이란 자기 자신의 것으로 가득 차게 되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더 많이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게되는 그 날을 고대하고 노래하고 그리워하고 소망하면서 '자기-향유'를 목표로 살아가게 됩니다.
성화론자들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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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에관해
정수태 2005-06-28 16:31:24, 조회 : 194, 추천 :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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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목사님,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이근호 2005-06-28 17:26:04, 조회 : 266, 추천 : 36
빛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자들이 큰 칩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이사야 9:2)
예수님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요 1:4)
온 우주의 영광과 하늘 나라의 영광은 오직 예수님이 빛이 되심이 발휘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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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에관해 정수태 2005/06/29 49 213
[re]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란 구절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
이근호 2005-06-29 17:52:40, 조회 : 220, 추천 : 40
'영광' 자체는 사물이나 대상체에 해당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사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빛을 가지고 예수님을 묘사한 것은 이 세상의 속성이 하나님의 영광과는 상관없는 '어두움'에 속했음을 아울러 대바시키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란 예수님의 빛된 능력이 충만하게 발산되는 상황이라고 보면 적절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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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써도 되는 글인지 모르겠는데요....
손승범 2005-07-05 17:45:07, 조회 : 235, 추천 : 39
의도에 맞지 않으면 적절한 곳으로 옮겨주셨으면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전 육군 군목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4년째인데, 4년째 삽질만 한것 같아서요....
날로 변해가고 신앙엔 무관심한 병사들, 믿음이 있는거 같아도 복음과 별 상관없는 열정과 왜곡된 신앙관들, 군 특성상
저높은 곳을 향해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탓에 지휘관따라 왔다갔다하는 교인들....
그럴줄 알면서도, 또 그런게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낙심하고 힘빠져하고 버벅거리는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합니다.
어떨땐 바람이 살랑살랑부는 고요한 숲속에서 설교하는게 이것보단 낫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제사 눈꺼풀에서 비늘이 몇겹 벗겨지고 예수님의 십자가지심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거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군에 와서 누구를 회개시키고 영접시키고.... 이딴 말도 안되는 망상이 아니고,
저 하나 예수님 믿게하시는게 전부인거 같기도 합니다--;;
군생활 4년만에 얻은 유일한 교훈은 제가 신자가 아닌거란겁니다.
글구 요즘은 신자가 아니었음이 들통나서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쪽팔린 하루입니다.
앞으로 군생활 3년 남았는데, 소경이 소경을 3년 더 인도할라니 아주 앞일 생각만 하면 죽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푸념입니다.
적절한 꾸짖음 있으시면 달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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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곳에 써도 되는 글인지 모르겠는데요....
정판옥 (Homepage) 2005-07-05 18:45:40, 조회 : 240, 추천 : 22
목사님! 반갑습니다!
자신들이 왜 교회당에 앉아있는지도 모르면서 군종들과 몇몇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해야 하는
장병들의 고통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제가 3년동안 사역하면서 늘 느꼈답니다. 초코파이 몇 개와
잠시 휴식의 공간을 찾아서 세례자의 뜻에 따라 교인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잠을 자지 말라고 한들,
잡담을 하지 말라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요?
그래서 목사님처럼 지금의 사역들이 헛수고인양 탓하며 실망하실 수도 있음을 공감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전 일생 가운데 하나 하나의 사건들을 토막을 내어서 보면 절망과 자괴감뿐이겠지만, 전 일생을
통째로 바라보면서 지금의 하시는 일을 보게 되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지, 어떤 환경이든지 감사할 따름이
아니겠는지요!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일생을 시작부터 끝까지 섭리하신다면, 인간의 알량한 자아로는
마음에 만족이 없겠지만, 그 모든 것들이 선이요, 아름다움이 아니겠는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가 선이요, 모두가 아름다움이기 때문에....
아울러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를 윤리 도덕적인(상식적인 것들이지만)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알량한 자아와 믿음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으면서도 믿음있는 척 하고 있는 가면을 벗기시되,
혹독하게 벗겨내시지요. 인간 취급을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예요. 그 십자가 앞에서 "맞습니다! 나는 망할자입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라고 무릎을 꿇는 자와 돌을 던지고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무리를 찾아나서는 자로
갈라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시간이 되시면 "우리교회---강의듣기---부산강의"를 곰곰히 들어보시면 유익된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만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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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곳에 써도 되는 글인지 모르겠는데요....
손승범 2005-07-12 14:24:23, 조회 : 239, 추천 : 60
혹시.... 군목선배님이신가요?
암튼,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함 뵙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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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곳에 써도 되는 글인지 모르겠는데요....
정판옥 (Homepage) 2005-07-13 02:36:35, 조회 : 244, 추천 : 43
혹 시간이 되시면 울산에 내려오시지요.
반가이 맞이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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