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인간 존재를 창조할 수 있는 단 한가지 길은] 2005-01-12
[완전한 인간 존재를 창조할 수 있는 단 한가지 길은] 2005-01-12
이름 : 관리자(IP:122.47.55.30)
단 한가지 길은?
김재국 2005-01-12 00:07:47, 조회 : 416, 추천 : 45
하나님이 완전한 인간 존재를 창조할 수 있는 단 한가지 길은 무엇이었을까요?
==========================================================================
[re] 단 한가지 길은?
이근호 2005-01-12 07:56:38, 조회 : 506, 추천 : 40
>십자가의 능력으로 창조
##############################################################################################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
박철현 2005-01-26 02:55:00, 조회 : 558, 추천 : 37
인간 자신이 믿고 안믿고를 떠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까?
인간은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네가 얼마나 인간입장에서만 생각하는가를
깨닫게 해 주실 뿐이다 라고 제 스스로 답을 내려 봅니다.
근데 왜 질문하는가 하면요
십자가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 본다면 인간이 그것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논리적으로 이해는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논리적으로 느껴지는데...
간단 명료함과 술술 풀리는 재미로 성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질문드립니다.
제 생각에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
[re]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
이근호 2005-01-26 07:51:08, 조회 : 452, 추천 : 39
차 운전 배우기가 꼭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가능한 일이 아니라 처음에서 기도를 하고 부산을 떨지만
좀 숙달되고 난 뒤에는 슬슬 풀리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이처럼 자동차 운전이나 혹은 신학정립이나 성경 이해와 같은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갖는 놀라운 일, 두(2) 가지는
1. 인간이 무엇을 하든지간에 인간은 늘 자기 의(義)를 생산하고 추구하며 산다는 것이고
2.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노리는 죄라는 것입니다.
즉
1. 인간은 무엇을 해도 희망을 갖는 쪽으로 움직이고
2.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인하여 그 인간을 절망과 고민과 근심 속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구원이 되는 것이지
인간의 희망이나 축적해 놓은 자신의 의로움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이 그동안 해놓은 일들을 바라보고 희망을 품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사니 참으로 이상스럽지요.
누구든지 긍휼이 없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답니다.(로마서 9:16-18)
귀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인간은 원래 그런 겁니다.
거기서 벗어나려는 희망을 품지 마시고, 하나님의 긍휼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
답변 감사합니다 (내용무).
박철현 2005-01-27 02:36:58, 조회 : 168, 추천 : 44
내용무(사람이름 아님)라도 클릭을 해보는 것이 다반사 일이라
실망하실 것 같아서 몇 자 남깁니다.
그동안 제 삶을 돌아 보니 성경을 보는 시각도, 생각도 많이 바뀌었네요.
내가 축적한 생각, 신념, 신학적 지식, 의가 아닌 "하나님의 뜻"이 중요함을 이근호 목사님의
답변을 통해서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유 게시판에 보니 쇼핑하는 부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아이, 남편이 아니 자기 것만 고르고 다니는 부인을 통해서는 어떤 은혜가???? ^^
농담이었습니다. 그럼 평안하시길...
##############################################################################################
축자영감설과 성경 기록상의 오류에 대한 질문
김홍배 2005-02-04 19:05:23, 조회 : 330, 추천 : 38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된 말씀이기에 일점일획이라도 틀림이 없다"
이러한 성경무오설을 거부하는 사상은 이단!
이러한 가치 기준에 이의를 제기하는 어떤 분의 질문이 있어
여러 자료를 통해 탐색해 보았으나 백인 백색의 다양함과
저의 짧은 식견으로 답변의 한계를 느껴 질문드립니다.
1. 성경 내용의 기록상의 오류 및
2. 창조에서부터 역사의 시간적 범위에 대한 여러 학설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1. 레위기11장 4절 ....약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생물도감에는 분명 약대는 굽이 갈라진 짐승으로 소개)
5절...사반도 새김질은 하되...6절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사반과 토끼는 반추동물이 아님)
21절...날개가 있고 네발로 기어 다니는 모든 곤총 중에 ...
메뚜기...베짱이...귀뚜라미...팟종이...
(곤충은 다리가 네발이 아니라 여섯개임)
2. 창조론자들의 인류역사에 대한 일관되지 못한 주장
(6천년, 1만년, 1만 오천년, 진화론자들의 역사구분 포함 등등)
==========================================================================
[re] 축자영감설과 성경 기록상의 오류에 대한 질문
이근호 2005-02-05 01:21:29, 조회 : 431, 추천 : 42
창조론자가 진화론자에 대한 견해는
이 사이트의 맨 위에 '믿음의 글'이라는 항목에 보면, '과학의 정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의 창조성을 과학으로 해명'이라는 난에 들어가 보면 나옵니다.
그리고
생물학 분류는, 옛 시대와 오늘날과 다릅니다. 그것은 생물을 분류하고자 하는 목적과 취지가 상호다르기 때문입니다.
'거룩'을 묘사하기 위해 생물을 분류하는 것(레위기)와
진화의 진척 과정의 증거물로 삼기 위한 분류가 다릅니다.
그리고
성경의 오류는, 성경 자체가 증명하는 것이기에 이성적으로나 합리적으로 증명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냥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한다면 자연적으로 동반되는 겁니다.
==========================================================================
==========================================================================
##############################################################################################
이근호목사님께 노회에대하여
정지원 (Homepage) 2005-02-12 17:52:10, 조회 : 335, 추천 : 39
목사님의 노회가 어떤 노회인지 부탁합니다. 이번에 노회가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 노회에 가입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신학교를 어디를 졸업해야 그 노회로 들어가게되는지요?
그리고 신학을 하여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고자 한다면 어떤 신학교를 들어가야 하는지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노회에 들어가면 새벽예배를 꼭 드리지 않아도 되는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새벽예배나
십일조보다는 자율적인 예배와 연보를 원합니다. 물론 십일조보다 더 많이 드리면 좋지요.
==========================================================================
[re] 이근호목사님께 노회에대하여
이근호 2005-02-12 20:31:48, 조회 : 394, 추천 : 53
노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자인가 하는 점이 예수님 보시기에 더 중요합니다.
노회는 주님의 성도를 같은 그리스도 몸의 지체라고 여기에 주님께 대하듯이 봉사하는 곳이지 끌어모아 집합 시키는 데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성도가 목회가 하고 싶다면 그 방면으로 도와주고,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그 방면으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일단은
칼빈 신학이 주축으로 하는 개혁 정통신학을 섭렵해야겠지요.
왜냐하면 그것이 개신교 목회자로서 기본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성령님이 임한 신자이어야 합니다.
그 점에 대해서 노회에 계신 목사님을 직접 만나서 사석에서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번 13일날 부산에서 모임이 있으니 시간 나면 참석하시든지 아니면
노히 서기 되시는 정판옥 목사님에게 상세한 전화를 드려보세요.
011-389-0675
==========================================================================
[re] 신학교에 대해서는
이근호 2005-02-13 09:05:28, 조회 : 368, 추천 : 40
개혁주의 신학을 잘 가르치는 목사님은 이천우 목사님이십니다.
특히 개혁주의 신학의 내력과 계파와 흐름과 역사와 신앙고백에 대해서 정통하십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032-323-0150
011-9913-1604
##############################################################################################
다음의 교회들이 어떤 교단인지 알고싶습니다. 정지원 2005/02/15 23 327
[re] 다음의 교회들이 어떤 교단인지 알고싶습니다.
이근호 2005-02-15 07:47:26, 조회 : 390, 추천 : 41
개인적인 신상에 관한 것은 개인적으로 만나는 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헛된 바람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어떠하든, 교단이 어떠하든, 노회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성도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 세상을 상대로 이 마지막 때에 복음을 전파하는데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교단과 교파와 상관없이
복음에만 관심있다면 같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당연히 봉사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 전파에 협조하기 위해서입니다.
========================================================================
혹시 이교회에서 사역을 할수 있나요? 정지원 2005/02/15 45 335
[re] 혹시 이교회에서 사역을 할수 있나요?
이근호 2005-02-15 07:54:50, 조회 : 406, 추천 : 42
집단을 먼저 생각하시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있어 소속 집단을 염두에 되면 큰 일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일종의 정당과 같은 정치적인 환각과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소속성을 앞장 세우는 것은 자기를 위장하는 위장술에 불과합니다.
사도 바울의 소속은 무엇이었습니까?
소속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 어떤 자리에서든지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받은 사명이었습니다.
따라서 소속을 거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소속을 앞장 세우는 것도 문제입니다.
진정 복음을 생각하신다면
일단 복음을 앞장 세우는 그런 교회에 찾아가셔서
누구의 허락도 맞지 않고 그 가운데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그런 교회 교우들은 서로 작용하고 있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아 저분은, 우리에게 말씀의 사역을 하실 은사가 계신 분으로 인정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면 거기에서 말씀으로 사역할 수도 있고. 또한 다른 식으로 봉사할 수도 있는 겁니다.
미리 겁내지 마시고,
솔직함으로 그런 교회에서 활동해 보시고 또한 다른 교회에서 활동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배울 점도 많고, 반성할 점도 발견되면서 오직 예수님의 공로만 높이는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
구약의 유대교 하나님 나라 사상과 거짓선지자들의 신학이?
김대식 (Homepage) 2005-02-16 12:10:09, 조회 : 277, 추천 : 42
구약의 유대교 하나님 나라 사상은 어떤 것이며
이 구약의 하나님 나라 사상이 거짓선지자의 신학과 어떻게 융합이 되었고
참선지자(십자가)는 이들 하나님 나라 사상(거짓선지자)과 어떤 충돌을 낳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하나는 유대교의 묵시문학과 참선지자의 묵시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요?
==========================================================================
[re] 구약의 유대교 하나님 나라 사상과 거짓선지자들의 신학이?
이근호 2005-02-16 13:14:31, 조회 : 328, 추천 : 40
예수님의 영이 임한 자들이 참 선지자요 그렇지 아니하면 거짓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언약의 완성자이기에
구약의 참 선자자들은 항상 새언약을 지향하는 측면에서 기존의 언약 속에서 움직였던 사람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예수님의 영이 없었던 거짓 선지자들은 새언약의 정신이 없었기에 기존의 언약을 인간적 행함을 총동원해서 말씀을 실현시키려고 몸부림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창안한 신학이 바로
'역사의식에 준한 성경 해석'이었습니다.
즉
역사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 가기에,
과거의 약속을 근거로해서 미래를 소망하자는 정신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나올 것은 이것밖에 없겠지요.
이 신학의 문제점은,
미래의 메시야가 현재의 자신을 '아담 안'으로 괄호쳐서 총체적으로 십자가로 부정한다는 사실에 깜깜했습니다.
"설마, 아브라함 자손의 계통인데 전면 부정할 리가 없을 것이다. 징계적 차원에서 우리를 다루시겠지만 설면 전면적으로 '아니다'라고는 하시지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기존의 이스라엘 주체성을 사수하는 길만이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인 줄 알았습니다.
왜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느냐 하면,
현 자신의 이스라엘 됨이나 이스라엘의 존재 바탕이 자기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발생되었기에,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정당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만약에 그런 일이 벌어지면 하나님 자체 내에서 모순이 일어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따리서 이들 거짓 선지자들과 백성들은 참선지자의 계시를 지속적으로 곡해해 오고 있었습니다.
즉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것은 현재 우리의 행위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하고 회개하면 나중에 축복된 날이 묵시적으로 도래할 것이이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 자손이 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역사 의식이나 혹은 역사 의식을 스스로 초월하는 묵시적 안목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전면 부정해 버렸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손에 의하여 예정된 대로 진행될 뿐이지 인간이 성경 말씀을 해석하거나 이해하는 바에 의해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참 선지자는 오로지 하늘에서 오실 분의 고난과 영광을 미래 보았습니다.
이 묵시성은 이스라엘을 위한 묵시성이 아니라 '아들의 나라' 그 자체를 위한 묵시였습니다.
자기 부정이 아닌되는 유대인들은 이 점을 알 길이 없습니다. (죄 안에 갇혀 있기에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점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이
성경을 해석하면서 십자가를 비켜가는 방식으로 시도합니다.
인간 자체를 죄인으로 부정하는 십자가를 마치
"십자가 의미를 알았으니 앞으로는 잘해 볼께요. 성령받아 시킨대로 제대로 해볼께요"라고 사정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제대로 해보라고 주신 사건이 아니라
구원이란 우리들의 소망선에서 이미 떠나버린 현실이며 오직 예수님이 독점하고 있음을 보이는 사건입니다.
구약의 '역사적 해석방식'은 오늘날 인간들의 성경 해석의 궁극점을 보이는 확실한 사례가 됩니다.
그 궁극지점이 바로 예수님의 구원과 인간의 구원의욕이 상호 원수가 되어 늘 맞부짖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뜻은 다음과 같이 한결같습니다.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 죽으니라"(요 8:24)
##############################################################################################
" 양육 " 속에 감추어진 속내?
김대식 (Homepage) 2005-02-21 14:52:01, 조회 : 333, 추천 : 29
제자훈련이라는 미명 아래에 영적아버지로 자처하면서 죄인이 죄인을 양육시키는 프로그램을 왜 사람들은 갈망하는지요?
직접 주님이 양육하신다는 것을 못 믿고, 다 외면하고, 뭔가 내세울만한 끈적거리로써, 아니 그런 노림수 없이 순수하기 짝이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자기 스스로를 낮추고자 좀더 배우고자 좀더 헌신하고자 좀더 남을 위해 살고자 어떤 프로그램 과정을 거치고 어떤 단체 조직의 소속감과 거기에 동원되는 역사(소위 정통)에 교육 받는 그 열정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위에 언급된 자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예수님보다 더 잘 믿으면서도 예수님을 죽였는데, 왜 예수님은 바보같이 알면서 당하셨는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빠싹한 그들이 유독 예수님만을 왜 못알아봤는지요? 왜 이런 단절성이 있는지요? 왜 예수님의 믿음이 왜 우리의 믿음과 일치성이 없는지요?
결국 믿음이 교육이 되고 양육이 된다면 성령님의 활동이 제한되고 그저 알라딘 램프처럼 미션 완성에 도움말처럼 활용되는 안내책자인 가이드 라면 왜 정작 성경은 인간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고, 오로지 우발적으로 천사와 성령의 활동만으로 일을 일방적으로 다 처리 해버리고, 인간의 활동은 하등 도움이 안되는 그저 죄성만 들추임을 당하는 식인가요?(다윗의 우리야와 밧세바 사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이 흠모하는 마치 일한 것이 없이 의로 여김받은 아브라함을 다윗이 꺽으신 뼈로 즐거워함으로 비로소 인식하게된 그 아브라함을 다윗이 새롭게 보게됨과 동시에 뒤로 누락시키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롬 4장
오히려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치는 바리새인이 모세의 제자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라는 그 계통에 양육 받은 자로 자꾸 정통 역사성을 앞장세우며 그들 뒤에 숨어(마치 법궤 뒤에 홉니와 비느히스가 법궤 앞장세우면 다 되는 줄 알고 그 뒤에 감추는 것처럼) 빡빡 우기면서 누가 힘이 센가? 누가 더 높은가? 예수 당신이냐 vs 교회냐? 라고 우기듯이 왜 능력에 집착하는지요?
정작 예수님의 나라가 세상의 수많은 불교사상 철학사상 유교사상과 앞으로 미래에 있을 휴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등과 예수님이 직접 싸우지 않고 오히려 생뚱맞게도 하나님 나라 백성인 유대인과 예수님이 충돌을 하면서 능력화된 성전과 율법에서 자기백성을 찾지 않고 세리 창기 강도 하잘것 없는 죄인의 자리(회생 불가)에서 복음이 출발하는 이 단절성이 왜 전혀 능력 같지도 않는 능력이 성경은 능력이다고 우기는 겁니까?
지금 한국교회가 훨씬 성경보다 힘이 센데요? 한국교회의 능력이 값져 보이고, 이 세력에 붙어야지만 먹고 사는 능력이 되는데, 이 역사를 부정하고 삐딱하게 성경은 이상스럽게 저주의 길인 십자가를 능력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왜 예수님이 구주이다 라는 놀라운 성령으로 인한 고백에 만족치 못하고 성경을 인용하면서 자라지 않는(양육)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그 말씀에 죽음의 권세가 덮친냥 살고자 발버둥치듯 또 지킬려고 달려드는 이 한국교회의 선포의 위대함이 왜 십자가에서는 그런 공갈 협박에도 눈하나 깜짝 안하는지요? 이상하잖아요? 왜 이렇게 십자가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말로만 성경 전체 속에 은폐되어 있는 겁니까?
==========================================================================
[re] 답을 찾았습니다.
김대식 (Homepage) 2005-02-21 21:59:04, 조회 : 303, 추천 : 37
답변이 여기에 있네요
어제 칠곡 강의에 다 있더군요
##############################################################################################
궁금한게 있어서...
김미애 2005-03-04 09:50:08, 조회 : 327, 추천 : 37
요 근래에 하나님의 교회에 다니는 분과 얘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안식일....유월절...등 절기 지키기를 중요시 하며...때와 시간을 성경에 있는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거기까지는 공감이라고 할까? ..수긍이 가거라구요. 근데..쇼킹하게도....두번째 재림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리구..하나님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애기를 하더라구요. 성경 말씀을 보여줘 가며 얘기하길래...성경에 대해 잘 모르는 저로써는 정말 놀랍고...이게 뭔.소리인가? 궁금하기도 하구.. 확실이 알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자세히 좀 알려 주세요.
==========================================================================
[re] 궁금한게 있어서...
이근호 2005-03-04 17:48:19, 조회 : 296, 추천 : 37
>성경대로 지켜야 하는 것은 진리이며 사실입니다.
다음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하노라"(갈라디아서 4:9)
절대로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헛되이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완성한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 안에는 예수님의 의가 담겨 있습니다. 그 의로만 구원됩니다. 인간의 행함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귀하께서는 이단을 만나신 것입니다.
##############################################################################################
능동으로 씌여진 부분들...
안성수 (Homepage) 2005-03-06 20:43:39, 조회 : 255, 추천 : 38
성경의 많은 부분에 능동으로 믿으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는데요.
마치 의지적으로 믿으라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간단한 예로, 행16:31.
늘 인간이란 잘난 존재의 이성이 오히려 하나님께 다가가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능동적 표현들을 보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re] 능동으로 씌여진 부분들...
이근호 2005-03-07 06:12:38, 조회 : 301, 추천 : 32
성경에 보면,
처음부터 명령입니다. "빛이 있으라!" 라고 선언합니다.
빛이라는 대상이 있기도 전에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포는 그 자체로서 효력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면,
"화 있을진저"라든지 "복이 있도다" 등등입니다. 중도에 누가 끼어들어서 이 선언과 그 효력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에 보면,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말씀은 성령에 의해서 스스로 실현되는 쪽으로 지금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인간은 피조물됨 자체가 말씀에 대해서 능동이 아니라 피동의 위치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판사가 피고보고 선고하기를 "징역 10년 선고하노라"했을 때,
이 선언은 결코
"피고 양반, 나 판사의 얼굴을 봐서라도 제발 교도소에서 10년간 징역을 능동적으로 복역해 주세요. 네?"하고 사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판사는 이 언도내리고 퇴근하자 곧바로 자신은 골프연습장으로 직행합니다.
그리고 피고는 교도소에 들어가서 10년간 복역하기 위해 직행합니다.
교도소 안에서 피고가 능동적으로 10년간 보내는지 피동적으로 10년간 보내는지 어쨌든 자신이 결정한 운명을 자신이 골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받은 겁니다. 피조물이 어떻게 살던 주님의 이름의 권위를 위해 등장한 것입니다.
==========================================================================
[re] 능동으로 씌여진 부분들...
안성수 (Homepage) 2005-03-08 09:10:33, 조회 : 246, 추천 : 37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기본을 망각한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 3줄에 명쾌한 답변이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글을 쓰거나 설교시 결론은 언제?
박철현 2005-03-12 03:59:03, 조회 : 249, 추천 : 54
보통 학문적인 글 쓰기나 발표를 할 때는 결론을 먼저 제시하고 그 결론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전개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여러가지 사변적인 이야기를 이끌어가다가 나중에 결론에 이르는 방식을
취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제가 목사님들의 설교를 다 들어본 것도 아니고 그냥 제 느낌입니다).
이근호 목사님도 그러신가요?
설교를 들으면서 목사님이 저 이야기를 왜 하시나 한참 생각하다가 딴 쪽으로 생각이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경우에...
나중에 결론을 제시하는 것 보다
오늘은 "인간은 모두 다 죄인이고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라고 결론을 먼저 이야기 한 다음에... 이에 대한 예화나 설명, 성경 구절....
마지막에 다시 한번 결론
과 같은 설교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어떤 방식을 취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입니까?
바쁘시겠지만, 간단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
[re] 글을 쓰거나 설교시 결론은 언제?
이근호 2005-03-12 08:11:39, 조회 : 296, 추천 : 38
목회란 사실은 목사의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천국과 지옥의 주님이십니다.
구원이 되어야 될 자와 지옥에서 영원히 망해야 될 자를 구분짓는 방식으로 목회를 하십니다.
목사란, 예수님의 영이 인도 하에 이 작업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따라서
목사의 설교에서 반드시 다음과 같은 모습이 나와야 합니다.
1. 이 설교 전파는 저의 일이 아닙니다.(즉 교인들의 거부와 반대 그리고 추방에 개의하지 않고 설교하고 있는 중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당연히 목사 자신의 실직에도 개의치 않고 설교하게 되지요.)
2. 이 설교 전파는 교인 여러분들을 설득하거나 회유하기 위한 용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구원될 자와 망해야 하는 자는 반드시 구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이 설교를 전파하는 본인 조차 언약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원칙이란, 설교 하는 본인도 이 설교 본문에 의하면 죄인이며 오직 구원이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능력으로 가능하기에 설교한다는 그 사실로 통해서 목사 본인이 구원된 자라는 것을 남들에게 홍보할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무슨 꿍꿍이를 갖고 복음적 설교를 하는 지는 남들은 모르고 본인과 주님만이 아십니다.)
4. 설교 내용에 대해서 설교하는 본인보다 듣고 있는 교인들이 더 진리적일 수가 있기에 단지 이순간 목사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과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교회 안에서 증거할 따름입니다.
(인간이란 그 자체로 세월 따라 늘 달라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따라서 교인들 입장에서는, 자기네들 생각에 설교자 입에서 복음만이 나올 경우에만 설교자로 인정하고 강단에 세워야지 그 외는 절대로 용납해서는 아니되는 겁니다.
결론성을 미리 갖는 것은
설교 뿐만 아니라 학교 강의나, 토론장이나 일반 강연회나 기타 글이나 소설이나 음악이나 미술이나 과학이나 인간의 모든 표현과 몸짓에서 한결같이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에게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정신이상자가 아닌 이상 누구나 미리 주관적인 결론을 지닌채 자신의 뜻을 표현합니다. 일상대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귀하께서 질의하신 것은
결론과 논리 전개가 너무나도 어긋나게 진행되는 경우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설교자에서 있어 이런 현상은 다음과 같은 결과 때문입니다.
1. 설교 하는 도중에 분위가 산만해서 너무 힘들어서 대충 성급하게 결론으로 끌고 가고 싶을 때.(아이가 심하게 운다든지, 갑자가 설교 도중에 바깥에 번개나 폭우가 쏟아진다든지, 골목에서 확성기에 물건 사라는 상인들의 소리가 크다든지 하는 경우
2. 설교 시간 중에서 설교 끝나고 할 자기 일이 더 다급해서 자기가 지금 무슨 소리인지 분간이 잘 안될 때 (예를 들면, 설교 끝나고 난 뒤에 축구 경기를 시청해야 한다든지, 중요한 인물을 만나야 한다든지, 아내나 자식이 갑가지 아파서 병원에 데려가야 한는 일이라든지, 사적인 돈 관계 때문에 담판을 지어야 한다든지, 헌금을 많이 내는 주요 교인를 설득해서 계속 교회에 나오도록 조치해야 하는 일이라든지, 교회 지붕이 비가 세는 것을 수리하는 일이 남아 있다든지 하는 경우)
3. 자기 나름대로 논리를 끌고 가는데 교인들의 반응이 영 아니라고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무리한 논리라고 화를 내는 인상을 보일 때, 그래서 자신의 좌중을 장악하는 능력에 문제점이 있어 본인의 설교 행위에 깊은 회의와 좌절이 찾아올 때나 설교 도중에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잘못된 본인 구절 거론이나 욕설 때문에 스스로 수습하기가 난감해서 양심을 가책을 느끼게 계속 설교를 끌어가야만 할 때,
4. 설교 듣는 태도 중에. 자기 보다 더 설교 잘하고 자기 설교에 대해서 평소에 늘 시비를 잘 거는 사람이 앉아서 비웃듯이 빙그레 웃었어 화가 나서 설교를 대충 그만 두고 싶을 때,
5. 설교 하다가 목사 본인이 준비한 것이 본인이 까먹었을 때나 미리 준비한 내용을 너무 빨리 진행시켜 무려 예상했던 설교 시간보다 20분 이상 짧아질 때나, 반대로 설교 하다보니 성질나서 너무 많은 잔소리를 이것 저것 늘어놓아 설교 시간이 길어져서 목사 스스로 수습이 안 될 때,
6. 자기 설교를 듣고 난 뒤 교인들이 화가 나서 헌금 액수를 즐이거나 교회 출석을 중단하지 않을까 걱정 될 때,
7. 피곤해서 발언이 잘 안되어 교인들이 설교 듣기는 지장을 주고 민망하게 만들고 힘들게 만들 때,
8. 설교자가 설교 준비할 때는 몰랐는데 설교 하다보니 자기 설교 준비에 소홀히 했고 성의없이 했음이 비로소 본인이 느껴서 그 설교에 대해서 본인 스스로가 자신에게 짜증낼 때,
9. 오늘 자신이 하는 설교를 꼭 들어야 될 교인이 교회 안 보일 때,
10. 자기 설교에 새로운 것이 없다는 반응을 교인들이 보이면서 산만하게 될 때, (억지로 잠 청하기, 휴대폰 만지작 거리기)
이럴 때, 목사가 스스로 자기 설교를 망치고 싶은 겁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교인들에게 들키기 마련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만이 주님의 일을 한다는 의식이 없이, 주님의 일이 자기가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너무 자신을 중요한 인물로 간주해서 발생되는 현상입니다.
설교자는 항상, "나는 정말이지 항상 쓸모없는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단지 이 순간은 잠시 대타로 강단에 서서 내가 아는 말씀을 전할 뿐이다"는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목사는 '교회무소유'의식을 지녀야 된다는 겁니다.
==========================================================================
[re] 글을 쓰거나 설교시 결론은 언제?
박철현 2005-03-13 20:06:36, 조회 : 235, 추천 : 35
목사님, 답변 감사합니다.
제가 어떤 내용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라서(^^),
그 동안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이렇게 설교를
진행해 나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진행 방식을 말씀드린 것이지 복음적인 내용을
문제 삼은 것은 아닙니다).
설교 방식의 좋고 나쁨을 떠나 더 유념해야할 부분이 있음을 지적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듣는 입장에서 편한 것을 추구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목사로서 설교 준비를 하는 것이 고된 작업(?)일 수도 있는데
목사가 고되게 혹은 열심히 설교 준비를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유가 없다 영이 인도하는대로 할 뿐이다 입니까?
설교가 대중을 의식해서 그들의 언어로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를 들어 어린이들에게 그 이아들의 용어로 설교하는 것)
모 목사님께서 어떤 글을 쓰실 때 "대화체로 어떤 내용을 설명해 나가는"
그런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re] 글을 쓰거나 설교시 결론은 언제?
이근호 2005-03-13 21:18:44, 조회 : 241, 추천 : 33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해서 입니다.
낯선 사람이지만 동일한 성령의 내주를 받은 사람이라면 천국에 함께 갈 형제가 됩니다.
같이 주님을 쳐다보면서 살 사람이기에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계심을 찬양하는 겁니다.
==========================================================================
[re] 글을 쓰거나 설교시 결론은 언제?
김대식 (Homepage) 2005-03-13 21:34:14, 조회 : 234, 추천 : 47
부산 3월 7일 강의에 이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참고하시면 좋을듯 싶습니다.
http://woorich.net/tboard/read.cgi?board=busan&y_number=14&nnew=2
##############################################################################################
칼빈의 정치화된 교회관과 하나님 나라 신학?
김대식 (Homepage) 2005-03-14 20:46:28, 조회 : 338, 추천 : 61
하나님 나라 신학을 주장하는 자들은 칼빈의 교회정치관과 연장선에 있는 겁니까?
==========================================================================
[re] 칼빈의 정치화된 교회관과 하나님 나라 신학?
이근호 2005-03-15 10:32:36, 조회 : 337, 추천 : 45
>예
3월 14일 부천 강의에서는 흔히 개혁주의 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 사상의 비성경성을 지적해 놓았습니다.
==========================================================================
[re] 칼빈의 정치화된 교회관과 하나님 나라 신학?
김대식 (Homepage) 2005-03-15 12:05:21, 조회 : 315, 추천 : 42
http://woorich.net/tboard/read.cgi?board=incheon&y_number=13&nnew=2
부천 3월 14일 강의 1번
부천 3월 14일 강의 2번
==========================================================================
[re] 개혁주의의 허구 (칼빈의 정치화된 교회관과 하나님 나라 신학?)
김대식 (Homepage) 2005-03-22 00:24:35, 조회 : 1,965, 추천 : 47
개혁주의의 정치성 을 다루고 있네요 위의 질의와 연관 됩니다.
http://woorich.net/tboard/read.cgi?board=busan&y_number=15&nnew=2 부산 3월 21일 강의
http://woorich.net/tboard/read.cgi?board=daegu&y_number=27&nnew=2 대구 3월 21일 강의
##############################################################################################
c.s 루이스의 " 내가 믿는 기독교" 서평 부탁합니다.
이종철 (Homepage) 2005-03-21 22:14:17, 조회 : 253, 추천 : 44
책 내용이 좀 어렵네요.
==========================================================================
[re] c.s 루이스의 사상에 대해서
이근호 2005-03-25 12:38:51, 조회 : 736, 추천 : 49
C. S. 루이스의 책, '내가 믿는 기독교'는 서점에 가니 품절이 되었다고해서 그 대신 '순전한 기독교'를 보고 글을 씁니다.
뛰어난 영국의 문학가요 소설가인 이 분의 사상은 이러합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영접함→새 생명을 얻게 된 새 사람 됨→ 선한 일을 열중하게 됨
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이 시대에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모든 철학과 과학과 학문이 줄 수 없는 삶의 해답을 제공한다는 겁니다.
동시에 현대 철학과 학문과 과학이 기독교 무용론과 기독교인들의 불합리한 점에 대해서 주저않고 반발하고 반증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상적(理想的)인 완벽한 삶을 위해 선한 일에 나서는 것이 성도의 착한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붙잡힌 바 되었기에 선한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그들에게 반박합니다.
그리고 '사회 개혁 프로그램'은 목회자에게 물을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이들 목회자들은 사회적 실경험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랍니다. 따라서 실 사회에서의 성도의 삶은 일반 평신도들은 그들의 자리에게 개혁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로서 기독교는 사회 곳곳에서 생명이 없는 다른 사람들과 차이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혼 문제, 경제 문제, 국가 문제 모든 것에 대해서 결코 이상적인 완벽성을 꼭 따낸 목표를 갖기 보다는 그런 완벽성을 추구하는 성도들의 노력 자체는 비난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 변증가'라는 소리를 듣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분이 감리교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복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적극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이 분은 추상적인 개념의 절대적 개념으로서의 신 관념에서 실제 살아계신 특정 인격적인 존재자로서의 하나님으로 전환한 것을 본인은 회심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났다고 그들이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그런데
성경에서의 회심이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절대적 죄성을 알게 된 겁니다.
즉
인간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전적으로 죄인됨→ 뭘 해도 인간은 '자기 의(義)'를 추구하게끔 되어 있음→오직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구원됨을 증거함
이런 절차가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인데 루이스는 이 점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분이 아는 예수님은 그냥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 땅에 오신 대리인 자격으로의 제 2인자로서의 하나님일 뿐이고 모든 작업은 성부 하나님에게로 귀속될 뿐입니다.
따라서 이 분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누가인가를 내세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
이로스 루이스 이 분은 복음의 변증자가 아니라 기독교의 변증자가 된 것이 문제입니다.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를 직접 만난 것처럼 인격적인 절대자인 하나님과의 교제를 마치 회심으로 간주하게 되면 그 뒷 절차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은 마치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그동안 하나님이 이렇게 실제로 살아계심을 몰라 봐서 나쁜 짓 참으로 많이 했지요? 이제부터 하나님의 생명(조에)을 가진 새 사람되었으니 나쁜 짓은 의도적으로 점차 줄여나가고 그 대신 착한 일은 보다 많이 늘어나가는 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평생토록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리겠습니다."라는 식으로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신 진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처음으로 저는 전적으로, 이유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죄인 그 자체임을 알았습니다. 이제부터 저를 건지고 안 건지고는 순전히 예수님의 전권에 달린 문제입니다. 제가 남은 평생에 할 일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만 구원의 능력이 있음을 증거하겠습니다."입니다.
그리고 사회 생활 문제에 있었어도 참 성도 같으면 이렇게 됩니다.
"제가 이 땅에서 그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목사가 되었든, 경찰관이 되었든, 석유를 개발하는 업자가 되었든, 농사를 짓든, 교사가 되었든, 국회의원이 되었든, 백날 해봤자 그것 자체가 허무한 죄임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습니다"입니다.
그러나
루이스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리라고 주신 하나님의 귀한 소명의 자리이니 그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대리해서 드러내시기 바랍니다."라고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글쎄요.
소돔과 고모라에 떨어진 유황 불 밑에서 이런 고백이 통할까요?
언약이 무엇인지 루이스는 모르기에 여전히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포기못하고 있군요.
##############################################################################################
팔 복과 산상 설교?
김대식 (Homepage) 2005-03-22 19:37:29, 조회 : 282, 추천 : 44
팔 복과 산상설교의 내용은 구약과 전혀 상관 없는
천국 개념이 신약에서 처음 나오듯
구약에서의 어떤 내용과도 전혀 상관 없이 나온 겁니까?
아니면 구약의 어떤 점에서 연속성이고 어떤 점에서 불연속성인가요?
==========================================================================
[re] 팔 복과 산상 설교?
이근호 2005-03-22 20:51:30, 조회 : 393, 추천 : 47
구약과 상관없는 신약의 내용이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구약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단 구약을 해석해 내는 인간들(유대신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천국 개념이 신약이 나옵니다.
따라서 구약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놀랍게도 구약에서 시작해서는 아니되고 신약의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영속성과 불영속성도 이 십자가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해석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불영속적이요,(인간들의 행함과는 불영속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일관되게 자신의 약속을 이끌고 오셨고 결국 성취하시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영속적입니다. (하나님의 행함 차원에서는 영속적)
##############################################################################################
'창세기 중심사상' 질문입니다
구득영 2005-03-24 00:40:19, 조회 : 249, 추천 : 43
(책) 5페이지 - 말씀에 대한 거절은 반창조(反創造)로 내려가는데, 반창조란 소멸이나 無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 이전의 무질서와 혼돈으로 전환되는 것을 말한다. 창조사역에서 말씀의 역할은 세계를 무질서에서 질서로 전환시키고(1일,2일,3일의 사역), 비워있는 질서를 채우시고(4일,5일,6일의 사역), 그 채워진 존재에 축복하사 팽창하고 확산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
설명(96목회자강의,테잎) - 그러니 창조의 배후에는 無의 흔적을 남기는데, 이 창조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밤이 있다는 것이다. 내일과 오늘을 구분 짓는 것이다. 걱정과 고민을 해도 낮에 하고 밤에는 잠을 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전등을 만들어 밤새도록 일하는 인간의 욕심이 어떠한가?
* 여기 설명에서 '창조의 배후에는 無의 흔적을 남기는데, 이 창조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밤이 있다는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인지 부탁드립니다. 혹시 '무'가 아니고 '무질서'가 아닌지,그리고 여기서의 밤의 의미도 좀 부탁합니다. 설명이 더 어려운 것 같아서...
==========================================================================
[re] '창세기 중심사상'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5-03-24 07:27:00, 조회 : 428, 추천 : 43
요한복음의 차원에서 보는 것과 창세기의 생활권 속에 있는 인간들의 느낌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실 생활 속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를 서로 만나게 해주어야 합니다.
신약 시대, 즉 요한복음 입장에서 보면,
자연세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되심을 증명하는 근거가 됩니다. 즉 자연세계는 빛과 어두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의 근원임을 묘사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 자연 속에 놓여서 같은 피조물인 인간도 여기에 한 몫하게 됩니다.
인간은 자연의 변화에 잘 호응해야 하고 적응해야 합니다.
그런데 범죄한 이후에 그렇지 못하고, 인간들 스스로 마치 모든 게 정상적인 것처럼 행세하게 됩니다. (자기 고유의 역할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밤 까지도 노동 시간이 연장시켰는데 이것이 인간의 신체상으로 자연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인간의 비자연스러움은 거기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혼란의 진원지 구실을 하게 됩니다.
자연과학 세계의 혼란이 아니라 정신적인 혼란이요 무질서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 입장에서는 비로소 자연세계가 영적 세계에 비추어서 해명되어야 될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보는 겁니다.
즉 자연세계는 예수님의 빛됨을 보이기 위해 '어두움'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그동안 지탱해 왔음이 드러나는 겁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제대로 되신 참 '빛'으로 활동하시게 되는데 이 예수님의 빛적인 활동이 발휘되는 곳곳에 이 인간 세계와 자연 세계의 무질서와 어두움과 혼돈과 그리고 악마적 요소가 발각이 된다는 말입니다.
##############################################################################################
이근호목사님께-사무엘상을읽다가질문
정수태 2005-03-29 14:58:43, 조회 : 281, 추천 : 38
사무엘상읽다가 궁금한 것 있어 질문합니다.
1. 모세언약하에서 하나님의 카리스마 지도자가 세습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사무엘은 자기 아들들에게 사사직을 세습하려고 했는지가 궁금합니다.(삼상8:1)
사무엘의 죄됨이라면 사무엘이 길갈에서 이스라엘백성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선언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삼상12:3-5)
2.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였을때 왕정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친히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백성들이 스스로 선택하도록하고 백성들의 선택한 사람을 기름부음을 주고 야훼의 카리스마를 허용해도
이스라엘의 왕요구에 대한 불순종의 죄성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지 않습니까?
3. 사울을 선택하고 나서 백성들이 뽑는 것 처럼 유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차피 제비뽑기라는 것은 찌고치는 고스톱아닙니까? 그리고는 사울을 보고 너희들이 선택한 왕을 보라고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닌가요?
정수태 드림
==========================================================================
[re] 이근호목사님께-사무엘상을읽다가질문
이근호 2005-03-29 15:23:18, 조회 : 312, 추천 : 42
> 사사가 세습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전에 인간들이 짐작해서 알아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결과적으로 확인될 사항입니다.
아들을 사사로 세습시키겠다는 것은 그당시 장로들의 의견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방나라와 같이 이스라엘에 왕 제도로 운영되는 것에 반대하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지 사람들의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구체화는 반드시 인간의 죄 속에서 진행됩니다.
그만큼 인간들 마음 속에는 일체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이 들어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왕을 구하지 말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들이 전부터 왕을 구하고 싶어했고 앞으로도 반드시 왕을 구할 것이라는 예언 같은 것입니다.
즉
알아서 순종하는 법은 인간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후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옳았음이 인간의 죄 속에서 발견되며, 그 때는 이미 하나님의 법이 인간들로부터 무참하게 구타당하고 심히 짓밣히고 망가진 뒤의 느낄 일입니다.
예를 들면,
"술 취하지 말라"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술에 대해서 환장할 정도로 싫어하는 인간도 그 말씀이 임하는 순간부터 "술에 취하는 그런 순간에 잠기고 싶다"하는 동기를 부여받게 됩니다.
"주를 찬양하라"라는 말씀을 듣는 그 순간부터는
"이제 주를 찬양하지 않을까 부다. 차라리 주를 모독하고 차버려?"라는 욕망이 자극받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 만 악의 뿌리다"라는 말씀은
"너는 앞으로 돈을 사랑하게 되며, 그것이 얼마나 너에게 지독한 악이 됨을 설사 알게되는 지경에 놓이게 된다"는 예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정수태 2005-03-30 12:10:16, 조회 : 266, 추천 : 38
정수태입니다.
1.
제가 아둔해서 그런지 2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명백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의 질문은 왜 왕을 요구하였는데
그들 중에 알아서 왕을 뽑아와도
그들이 왕을 요구한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들춰낼 수 있을텐데
왜 하나님이 사울을 먼저 선택하고
미스바에서 제비뽑기 식으로 사울을 뽑히도록 하고
나중에 길갈에서 왕으로서 공적 선포를 하도록
하는 절차를 하나님이 이끌어내시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구지 이런 절차가 없어도 왕을 그들이 뽑아도 그들의 죄는 드러나지 않습니까?
2.
그리고 사무엘의 아들을 사사로 임명한 것은 장로가 아니라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늙으매 그 아들들로 이스라엘 사사를 삼으니"(삼상8:1)
하나님의 카리스마직이 하나님의 선택에 기인한 것이라면 구지 사무엘이
아들을 사사로 임명한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
[re]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이근호 2005-03-30 12:43:53, 조회 : 274, 추천 : 37
>1.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대를 걸고 상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다루십니다.
쥐새끼들에게 사람소리 하라고 요청하시면서 결국 "거봐 쥐가 어떻게 사람 소리를 내겠어. 이런 점에서 나 하나님은 쥐가 쥐임을 드러내는데 성공했잖아"라고 일하시는 겁니다.
뻔히 아시면서 사울을 왕 세워주시는 겁니다.
이미 민중들 속에 왕을 찾고 있음을 간파하셨기 때문입니다.
2. 사무엘 아들 문제는 간단합니다.
사무엘의 아들이 사사됨은 사무엘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그렇게 원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무엘의 아들에게 사무엘 같은 성신의 사역을 기대한 것을 봐서 그렇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모세언약과 다윗언약에서의 카리스마 문제
정수태 2005-03-31 15:16:26, 조회 : 236, 추천 : 66
1. 모세언약 속에서 제사장은 세습이 가능하도록 하였고(아론계열) 카리스마를 받는 지도자들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있도록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동일하게 다윗 언약 언에서 그 언약이 왕이라는 역활에 대해 다윗의 혈통 안에 고정시켜놓고 선지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카리스마가 일방적인 선택에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사무엘의 위치는 모세언약과 다윗언약 속에서 무엇입니까?
그는 사사이면서 선지자이고 제사장으로서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즉 모세언약 혹 다윗언약 속에서는 제사장(왕)과 카리스마있는 지도자가 양분되어 있으면서 왜 사무엘에게 있어서는 사사이며 선지자이며 제사장적인 역활 전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알려주세요.
정수태드림
==========================================================================
[re] 모세언약과 다윗언약에서의 카리스마 문제
이근호 2005-03-31 18:20:01, 조회 : 236, 추천 : 43
간단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류들이 잠겨있는 죄의 깊이를 '언약공동체' 이스라엘을 통해서 공개하고자 하십니다.
모세언약은 제사장이 그 누구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모세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럼에도 모세언약에 의한 축복은 계속 발생되는데 그 복의 원천은
언약적으로 봐서 인간의 죄와 더불어 발췌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사들은 백성들의 자질과 능력이나 사사 본인의 신앙도하고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님에 의해소 활용됩니다.
이것이 사사 시대의 '은총'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러한 역사적인 은총의 흔적을 다음 역사적 승리를 위한 바탕으로 합리화 작업에 나서게 됩니다.
예를 들면, 사사 기드온을 왕을 삼고 그 아들들이 아버지의 후광에 탐을 내는 작당들이 그런 겁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행위는 같은 인간들 끼리는 충분히 호응을 얻고 납득이 되는 구원 양식입니다. 왜나하면
역사상 달리 다른 특별한 구원 사건을 조장할 여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성신을 받은 사사마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언약활동을 사건으로 굳혀두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삼손입니다.
'강한 것에서 단 것'이 나오는 원칙을 인간들 손에 의해 재현되는 사건으로 여깁니다. 즉 신앙의 힘은 결국 승리를 안겨준다는 논리 같은 것은 삼손은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비언약=할례받지 못한 민족에서 무참하게 깨집니다. 이런 삼손의 인식은 그 당시 민중들의 인식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사사와 거의 같이 시기에 출생한 사무엘은 본인이 원치 않는 길을 가게 된다는 점에 사사와 같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모세언약에 대한 제사제도적 해석의 한계를 보인다는 점에서 '새로운 지파'의 등장을 정당화하는 예언자가 됩니다.
예언자의 역할은 항상 기존 노선에 대한 고발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무엘의 역할을 대해서 일반 민중들은 고발자라고 여기지 않고 든든한 보디가드 하는 둔 양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사무엘 가계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사무엘과 같은 든든한 왕을 요구하게 되지요.
즉 요청을 사무엘에게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여전히 사무엘을 고발자로 여기지 않고 후원자로 여기고 자기 편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이들의 근원적 죄를 까발릴 수 있는 인물을 따로 뽑아세웁니다. 그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의 역할을, 그 당시 민중들이 곡해하고 있는 구원관으로 인해 처절하게 망가져야 역할입니다.
이 망가진 모습의 '왕'이 곧 장차 오실 메시야의 전형입니다.
누가 이 다윗을 못살게 굽니까?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율법을 지켜서 자체적으로 이스라엘을 사수하겠다는 사울왕과 민중들입니다.
즉 '자기 보호'를 위한 하나님으로 계속 우기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 이 시대까지.
◁ 이전글
다음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