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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목사는 이단입니다.] 2004-11-30묻고답하기-

[목사는 이단입니다.] 2004-11-30

이름 : 관리자(IP:122.47.55.30)

지나가는 질문 하나 더/죄송합니다
정영균 2004-11-30 11:19:24, 조회 : 223, 추천 : 34

우리교회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뜻밖의 글이 올려져 있어서 여기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이 어떨지 궁금해서 그냥 질문해 봅니다.

- 내용 -

이 철 없는 사람들아

재롱떠는 당신 아이들 사진을 여기에 남겨 두고 싶은가?

매주마다 힘에 겨운 육신으로 교회에 나오시는 저 노인들이 고맙지 아니한가...?

묵묵히 앉아 어린 재롱들을 귀엽게 감상하는 저 어르신네들로부터 무엇을 음미해 보지도 않는가?

고장난 육체로 매주마다 부엌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저 할매들의 손길에 감사도 하지 못하는가?

거금을 투자하여 이렇게 사진이 찍혀 실릴 수 있도록 해 주신 오영의 장로님의 얼굴이라도 남겨두어야 후일 한 번쯤 기억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들 모두 죽어 없어질 몸이지만 굳이 사진으로 남겨 둔다면, 후일 기념으로 후손들의 한 이야기꺼리가 될 수 있을터....

이 철없는 사람들아, 자기 자식 귀하여 백 번 생각할 때, 한 번쯤은 부모님도 생각해 보게나...

우리 교회 장로님의 글인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목사님이 외치는 복음의 정신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교회 연세 많은 어르신으로서 젊은 사람들이 대접을 안해주는 것에 대해 섭섭함을 가지시는 것도 그렇고 뭔지 모르지만 거금을 투자하신 분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말씀도 그렇고 어쨌든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목사님의 답변대로 인간에게 가치를 두는 이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장로님을 폄하하거나 우리 교회를 헐뜯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사님의 답변을 대하면서 과연 우리 교회에 이같은 모습이 보일 때 어떻게 하실까가 궁금해서 질문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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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지나가는 질문 하나 더/죄송합니다
이근호 2004-11-30 12:39:51, 조회 : 223, 추천 : 37

>잘 보셨습니다.

그런데 이단이란 자기 공로를 드높이는 것과 관련되어 있지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자가 이단입니다.

" 집에 아이가 장난치다가 거금을 주고 산 카메라를 깨뜨렸는데, 나는 부모로서 돈을 초월한 사람이기에 그 어린 아이가 카메라를 깨드려도 그 아이에게 아뭇 소리 안하고 '그래 잘했어'라고 했다"

이런 사람이 이단일 가능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나무랄 일이 있으면 나무래야하고, 그 상대자가 돈의 용도에 대해서 부족한 점이 있으면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문제는 그러니까 이런 나무람을 잘했다고 우기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이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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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지나가는 질문 하나 더/죄송합니다
정영균 2004-11-30 15:37:31, 조회 : 230, 추천 : 52

그렇군요.
그럼 이런 경우 목사의 입장에서 그냥 두고 보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잘못된 것을 말해줘야 좋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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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지나가는 질문 하나 더/죄송합니다
이근호 2004-11-30 19:50:06, 조회 : 219, 추천 : 41

목사는 이단입니다.

이단이 무슨 충고를 합니까? 단지 주님의 용서를 증거할 뿐입니다.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요한 일서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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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지나가는 질문 하나 더/죄송합니다
정영균 2004-11-30 21:59:15, 조회 : 231, 추천 : 38

목사님의 답은 항상 헷갈리게 합니다.

목사님께서 '나무랄 일이 있으면 나무래야하고, 그 상대자가 돈의 용도에 대해서 부족한 점이 있으면 깨우쳐주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셔서 목사님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질문 드린 것인데 또 다시 이단이 어떻게 충고를 하는가라고 말씀하신다면 앞의 말은 어떤 의미로 이해를 해야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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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지나가는 질문 하나 더/죄송합니다
이근호 2004-12-01 07:48:43, 조회 : 231, 추천 : 45

>관심을 자기에게 갖는 것을 불신앙으로 정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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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지나가는 질문 하나 더/죄송합니다
정영균 2004-12-01 10:23:33, 조회 : 206, 추천 : 47

저는 지금껏 자신의 실수에 대해 인정하시는 이 목사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실수가 있으면서도 그 실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한 예로 자유게시판에 올린 제 글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제가 올린 설교에 대해 평을 하셨지만 목사님이 잘못된 것으로 평한 내용은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내용에 포함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의 자신의 해석을 고지할 수 없다고 한 것인데 이에 대해는 언급을 하지 않으십니다.
실수를 인정하면 자존심이 상해서 그러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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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
정영균 2004-11-30 18:04:19, 조회 : 240, 추천 : 40

인간은 왜 행동하게 되는가라는 글을 보면서 또 다시 의문이 생깁니다.
이미 질문 드렸던 내용과 같은 맥락이지만 또 다시 질문 드리는 것은 목사님의 글에서는 이러한 의문이 끝없이 발견됨을 말씀드리기 위한 의도에서 질문드립니다.

1. 목사님은 결론 부분에서 "이로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기 의로움'으로 겨냥한 채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목사님의 행동은 무엇을 겨냥하고 나옵니까?

2. 또한 "이처럼 인간의 모든 수고는 자기 의를 구축하기 위한 수고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목사님의 수고(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한 모든 것을 포함한 것을 의미합니다)는 무엇을 위한 수고입니까?

3. "사도 바울은 아예 자신을 이미 죽은 자로 간주한다. 따라서 그에게서 나오는 행위의 지향성도 한결같이 고정되어 버렸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인간을 자신을 죽은 자로 간주하는 자와 자신을 산 자로 간주하는 자로 구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자신을 죽은 자로 간주하는 자의 행위의 지향성이 그리스도로 고정되었다면 그의 행위를 죄라고 말할 수 없을뿐더러, 목사님이 주장하신 것처럼 모든 인간의 행위에서는 죄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수정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즉 성령안에서의 인간의 행위를 모든 인간이란 범주에 포함하여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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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
이근호 2004-11-30 19:52:20, 조회 : 245, 추천 : 47

>누가나 자기 의를 위해 행동하게 됩니다.

그것을 용서하시는 의는 오직 예수님만 해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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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
정영균 2004-11-30 21:46:32, 조회: 237, 추천 :61

성령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조차 자신의 의를 위해 행동하는 것 밖에 없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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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
이근호 2004-12-01 07:47:49, 조회 : 228, 추천 : 49

그렇게 생각된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되고 이단이 되고 자기 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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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 정영균 2004-11-30 21:46:32, 조회: 237, 추천 :61
[re] [re]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 박철현 2004-12-01 05:40:29, 조회 : 240, 추천 : 41

이곳을 드나들면서 많이 배우고 가는 사람입니다.
정영균님과 이근호 목사님의 일련의 질문 답변을 지켜보면서 제가 느낀 부분을 간단하게 언급해 봅니다.

정영균 님의 성령 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행위 (예를 들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도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과 같은)까지 모조리 죄로 볼 수 있느냐는 주장과
이근호 목사님의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행위는 죄라는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근호 목사님께서는 정영균님의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는 경우 결국 성령께서 죄를 조장 혹은 짓게 되는 것이 되므로 이 대답을 회피하시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아니오”라고도 대답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성령 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죄가 아니라고 말씀하실 경우, (이근호 목사님께서 인간에 대해서 너 잘 아셔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아닌 인간 행동에 하나, 둘 의미를 부여하게 (여지를 두게) 된다고 걱정하시는 듯합니다. 따라서 이근호 목사님께서는 성령께서 성도를 통해서 하신 일은 결국 성령께서 하신 일(행위)이므로 하나님의 행위이지 인간의 행위로 볼 수 없고, 성령 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행위 중에 죄가 아닌 것이 있느냐는 의문 또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논지이신 것 같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추측한 부분이라서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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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
정영균 2004-12-01 10:17:17, 조회 : 219, 추천 : 43

예 그렇습니다.
이근호 목사님께는 행함이라는 용어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으십니다.
믿음안에서는 아예 행함이라는 말 자체를 축출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귀하의 말대로 성령안에서의 행함에 대한 부분을 인정한다면 사람들이 자기 행함에 의를 둘 것을 염려하시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안에 있는 신자는 성령께서 책임지십니다.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면 되는 것이지 성령안의 신자까지 자신의 철학으로 분석하여 인간의 죄성으로 몰고가는 것은 성령께서 책임지고 계시는 신자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계속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근호 목사님도 분명 신자가 성령안에서 행해지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성령의 행함으로 두고 아예 생각하지 말자는 것인데 그게 말이 안됩니다.
성령안에서 생각하게 되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 인간인데 말입니다.
모든 인간이 행함을 자기 의로 몰아갈 것이라고 여기는 것 역시 성령의 행하심을 무시하는 것이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의 신학에는 이런 오류가 있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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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 박철현 2004/12/01 41 240
[re] [re]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
이근호 2004-12-01 07:49:56, 조회 : 246, 추천 : 38

잘 보셨습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님이 지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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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추가
정영균 2004-12-01 15:08:03, 조회 : 228, 추천 : 55

목사님께서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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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추가
이근호 2004-12-01 15:31:45, 조회 : 224, 추천 : 49

언약 완성에 어떤 작용을 하느냐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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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추가
정영균 2004-12-01 15:49:26, 조회 : 239, 추천 : 65

1. 목사님의 그같은 관심은 인간의 죄성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2. 목사님 자신이 언약 완성에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3. 언약의 완성은 이미 드러났다고 생각하는데요, 또 무슨 작용이 필요한 것입니까? 완성된 언약을 증거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의미하신 것이 아닙니까?

4. 언약 완성에 대한 관심과 그리스도인의 삶은 전혀 다른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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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추가
이근호 2004-12-01 16:11:58, 조회 : 215, 추천 : 42

언약은 스스로 증거합니다.(은혜로)

그리스도 중심으로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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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에 대한 질문
이준 2004-12-01 08:13:33, 조회 : 285, 추천 : 31

위의 구절은 종이 한 일을 무익한 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본문에는 그냥 "종"이 아니라, 분명히 "무익한 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 본문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종 자체가 "무익한" 종인데, 그런 무익한 자가 늘어놓는 일련의 행위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무익한" 성질의 것일 따름이라는 겁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말씀대로라면, 마음, 생각, 사람의 인격, 행위...등은 총체적, 전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익한 “사람”(여기서는 “종”)에게서는 무익한 “행위”만이 표출될 뿐입니다.

(잠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

무익한 종이기에 자신의 일의 공로를 자신에게 돌릴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단, 저의 표현대로라면, 무익한 종에게서는 당연히 무익한 행위만이 나오기에, 자신의 일에 대하여 공로를 내세울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점 또한 당연한 겁니다. 부연하면, 무익한 종은 어디까지나 무익한 행위만 유발하지만, 그 와중에도 성령님께서는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일을 해나가신다는 말입니다. 이 점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귀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한 아래의 답변에서 드러납니다.

즉 성령안에서 한 일이기에 어떤 일도 자신의 공로가 아니란 것이고, 성령에 의해 나타나진 모든 일을 무익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귀하의 표현대로 하자면, "성령 안에서" 한 일은 어디까지나 "성령에 의해" 나타나진 일이 됩니다. 이 말을 새겨 들으면, 겉으로는 종이 자기가 하여야 할 일(눅 17:10)을 한 것처럼 보여도 실상 내막은 성령께서 주체가 되셔서 하신 일이라는 말이지요. 무익한 종이 자신에게 공로를 돌릴 수 없다는 이유도 그 모든 일을 종이 자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셨기 때문입니다(원천적으로 종에게는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자체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러기에 무익한 종은 자신더러 무익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고(자신에 의해 나타나진 일이 아니라 귀하의 표현처럼 성령에 의해 나타나진 일이기에), 자신이 그런 일들을 행했다는 식으로 감히 자기 공로를 내세울 수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죠. 즉, 무익한 종에게선 무익한 행위를 늘어놓는 모습 밖엔 발견될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굳이 표현하건대) 무익하지 “않은” 행위는 겉으로 보면 무익한 종이 자기가 하여야 할 일을 행한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종이 자력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귀하의 표현대로라면, 어디까지나 “성령에 의해 나타나진”, 즉 부연하면 성령님께서 몸소 하신 것이기 때문에 결코 종의 행위에다 포함시켜선 안되기 때문이지요.
이것을 두고서 앞서 제가 언급한 성경 본문에서는 “우리의 하여야 할 일(눅 17:10)”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외부로 표출되는 인간의 행동만을 두고 바라볼 때에는 “종으로서 당연히 하여야 할 일”인 듯이 보이지만, 그렇게 표출되는 행동의 참된 주체는 종이 아니라, 성령님이시라는 점을 사도 바울과 같은 종의 입장에선 알고 있기 때문에 종의 입장에 놓인 사도는 자신의 입장을 두고서 무익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더불어 성령님께서 직접 일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도와 같은 사람치고 성령님의 행하시는 일이 무익하지 않다는 사실에 비해 무익한 종일뿐인 자신의 모든 행위는 무익하다는 점을 모를 리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종)은 무익하지 않은 행동의 원천(주체)는 어디까지나, 겉으로 그런 행동을 표출하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성령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A라는 성도가 B라는 사람에게 구제 행위를 했다고 상정해 봅시다. 귀하의 표현대로라면, 성령님께서 A를 통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제와 같은 무익하지 않은 행위를 하게 하심으로써 B에게 역사하셨다고 말할 것입니다. A를 두고 보면 그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행위들 중에 분명히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안에서 행한 일이 있다는 점을 낚아올릴 수 있는 근거가 되겠지요. 그런데, 실상은 달리 표현해야 한다고 봅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뜻에 따라 A와 B에게 동시에 주체적으로 역사하셨다고 말해야 맞는 겁니다.
이렇듯, 성령님께서는 주체적으로 활동하시면서 성도의 활동성을 배제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만 근거를 두시면서 당신의 일만을 챙겨나가십니다. 그 와중에서 성도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활동성이 본질적으로 십자가와 배치되는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성령님의 통제, 제어하심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어디까지나 늘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받는(딤후 3:16) 입장에만 놓이게 되는 겁니다. 신약의 성도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구약의 광야 생활을 했던 유태인들의 실상과 다르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그들과 우리는 성정이 같은 사람입니다(참조, 약 5:17). 성정이 같다면, 본능적으로 그 내면에서 발동하는 성향이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본능적 성향은 분명히 십자가와는 반대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바로 앞서 언급한 성경 본문에 동원된 성령님의 교수법은 인간을 칭찬하고 북돋워주고 무슨 토큰 강화식으로 양육해 가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구부러진 것을 곧게 펼 수는 없는 지 모르겠지만(전 1:15), 성령님은 다르십니다. 성도로 하여금 몸소 책망하시며 바르게 펴 나가시는(바로 잡아 나기시는) 분이십니다.
제대로 된 관점이라면, 성령님께서 인간에게 주체적으로 작용하신다는 데서 출발해야지, 성도의 삶 속에서 표출되는 행동들 가운데 이런저런 것들이 성령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게 아니냐는 식으로 뭔가를 건져올리려는 관점에서 나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귀하의 견해는 성도의 삶 속에서 뭔가 긍정적인 것들 -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성령에 의해서...라는 표현을 동원하여 - 을 자꾸 건져올리려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성도의 삶이라는 객체를 출발점으로 삼지 마시고, 성령님의 행하심이라는 주체를 출발점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삶이라는 실상도 성령님의 주체적 활동성 - 우리 예수님께서 이루신 새언약의 완성인 십자가 사건을 적용해 나가심 - 을 배제하면 남는 것은 죄의 지배 하에 놓여 파편화된 잔해 밖에는 없습니다. 사람이란, 거듭났다고 하면서도, 성도라고 하면서도, 영악하게도 성령님의 것을 가지고 제 것을 챙겨보려는 심보가 늘 유발됩니다. 그러면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은근히 정당화시키려고 들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그런 모습들을 대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저는 제 자신에게도 그런 모습들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제 모습을 깨닫게 해주신 것도 성령님의 일이요,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는 그 모든 영악한 부분들까지도 넉넉히 용서하실 수 있더라는 말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끊임없이 그런 우리를 위해 탄식하시며 기도해주시고 말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주님께서” 하시더란 말입니다. 우리의 행위들 가운에 이런저런 부분들을 통해서 그런 일들이 확인된다는 식으로 거꾸로 - 귀하는 자꾸만 성령안에서 성도가 몸소 이런저런 일들을 한다...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기에 - 접근하지 마시고...“예수님께서,” “성령님께서”...그렇게 하시더라는 말입니다.

만약 귀하께서 해석한 대로 바울에게 적용하면 바울은 무익한 종이기에(그것은 맞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게 된 모든 일도 무익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라면, 귀하의 생각 - 사도 바울 또는 모든 성도가 무익한 종이라 하더라도 그리스도안에서 무익하지 않은 일을 한다 또는 할 수 있다 - 과는 달리, 오히려 무익한 종은 그리스도 안에서 무익하지 않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쪽으로 귀결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게 된 모든 일은 오히려 귀하의 표현대로라면, “성령에 의해 나타나진”, 즉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어디까지나 성령님의 일이지, 인간의 일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을 통해 표출되는 다양한 행동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성령님의 활동성은 인간의 활동성과는 별개입니다. 활동의 주체가 다르다는 말은, 활동의 본질이 다르다는 말도 됩니다. 그런데, 귀하께서 표현하신 바, “그리스도 안에서 하게 된”이라는 부분을 통해 여전히 인간의 활동성에 대하여 주체성을 부여함과 더불어 그 가치를 찾고자 하는 미련이 남아 있음이 역력히 느껴지는 것은 참으로 아쉬움을 남기게 합니다.
(선악과의 파괴성, 가공할 죄의 위력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고 재활용될 수 없는 잔해만 남은 것은 불신자뿐만 아니라, 성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육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 즉 아담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 자체가 그러한 원리를 입증하는 단서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자에게 생명과요,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찢으신 십자가 사건을 우리에게 늘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일을 가지고 성도라는 인간의 자체적 활동성을 통해 표출되는 이런저런 긍정적인 것들과 연관지어선 안 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님을 힘을 빌려서 인간이 맺는 열매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체적으로” 몸소 맺으시는 열매요, 성령님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성령님 자신의 소관이요, 성령님 자신의 일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활동성은 - 성도라 하더라도 - 철저히 배제됩니다).
한편으론, 귀하의 표현들 중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게 된 모든 일이라는 말을 앞서 언급하신 "성령 안에서 한...성령에 의해 나타나진 일"과 조합하여 성령님의 주체적 활동성을 원리로 삼아 바로 앞서 답변드린 내용과는 달리 상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게 된 모든 일이라는 말은 성령님께서 주체적으로 몸소 하신 일이라는 말이 되어 앞서, 행동적 주체가 어디까지나 성령님이라는 사실을 더욱 확고히 해줍니다.
이러한 상반된 설정은, 무익한 종이 그리스도 안에서 무익하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귀하의 견해와 그리스도안에서 하게 된 모든 일(즉 무익하지 않은 일)의 참 주체가 성령님이시라는 사실이 상충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귀하의 글에 담긴 견해가 현저한 딜레마에 빠져있음을 실감케 합니다. 이 두 원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양립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저는 이근호 목사님께 이 문제를 두고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영균 님께 위와 같은 내용을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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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re)열심에 대한 질문
정영균 2004-12-01 10:43:01, 조회 : 225, 추천 : 42

귀하의 글에 대해 이견은 없습니다. 동의하면 참으로 복음의 정신을 깨닫고 계신 것 같아서 반갑습니다.
지금과 같은 세대에 귀하와 같은 분이 있음을 생각하면 성령님께서 열심히 일하시고 계심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귀하는 저의 글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귀하는 "성령님께서 인간에게 주체적으로 작용하신다는 데서 출발해야지, 성도의 삶 속에서 표출되는 행동들 가운데 이런저런 것들이 성령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게 아니냐는 식으로 뭔가를 건져올리려는 관점에서 나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귀하의 견해는 성도의 삶 속에서 뭔가 긍정적인 것들 -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성령에 의해서...라는 표현을 동원하여 - 을 자꾸 건져올리려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성도의 삶에서 긍정적인 것을 따로 건져 올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하에게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이 없습니까? 성령으로 인해서 행동하게 되어지는 것이 없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삶, 행동에 대해 관심을 두지 말라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신자가 오직 예수님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삶과 행동에 관심을 두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신자는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삶에 대해 관심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열심을 신자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삶의 열심을 말함으로 우리의 삶의 방향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점검하고 돌아보도록 촉구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가 자신의 무익함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고백한다면 그것을 무익한 것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고백을 하게 하신 분이 성령이신데, 그리고 그러한 고백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증거하게 하시는 것인데 그 일을 어떻게 무익한 것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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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저는 귀하의 글에 이견이 있습니다.
이준 2004-12-01 16:25:03, 조회 : 228, 추천 : 29

귀하의 글에 대해 이견은 없습니다.
->저는 귀하의 글에 이견이 있습니다. 귀하의 글만을 두고 읽어보면 - 제가 현실적으로 목도할 수 없는 귀하의 실제적인 삶은 차치하고서 - 여전히 성령님께서 주체적으로 활동하시는 것과 성도라는 인간이 스스로 일삼는 활동성이 뒤섞여 모호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귀하에게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이 없습니까?
->이 문장의 표현만을 놓고보면 어느 쪽이 - 성령님이신지 아니면 성도인지 - 이러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의 주체인 지 모호합니다.

성령으로 인해서 행동하게 되어지는 것이 없습니까?
->바로 위의 귀하의 표현과 마찬가지로 저의 개인적 삶의 실제 여부와 관련된 질문이긴 하지만, 여태까지의 논의가 개진되어 오면서 보편적인 성도의 삶의 실제와 관련된 차원에 국한시키고자 합니다. 따라서, 제 삶의 실제가 어떠하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상정하는 대신, 이 표현만큼은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의 주체이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요”라는 말씀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삶, 행동에 대해 관심을 두지 말라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신자가 오직 예수님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삶과 행동에 관심을 두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귀하의 바로 이 문장 속에 담긴 당위성 - 마치 신자가 자발적, 자력적으로 예수님을 위해 살기 위하여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식의 당위성 - 과는 달리, 신자는 스스로(자력적으로,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삶과 행동에 관심을 둘 수 없습니다. 그런 삶을 실제적으로 유발하는 것까지도 물론 불가능하고요. 귀하께서는 부정하실는 지 모르지만, 분명히 귀하의 글 표현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런 의미를 전달해 줍니다.
귀하의 바로 이 문장의 표현만을 놓고보건대, 성령님께서 주체적으로 활동하시는 와중에서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안에서 행하게 하시는 것과는 별도로, 마치 신자라는 인간이 자발적, 자력적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살아가는 데 관심을 가지거나 행동할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십자가 사건 이후로 그 어떤 신약 성도라 할 지라도 성령님에 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린 바를 다시 반복합니다. 성도라는 인간은 성령님의 주체적인 활동성과는 별도로 자신의 활동성을 본능적으로 표출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성도라는 인간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가 서십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불신자든, 신자든 간에 인간의 자체적인 활동성은 십자가와 배치되는 성향을 띠고 또 그런 방향으로 표출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가지고 다가서시는 주님의 영(성령님)의 활동은 그야말로 주체적인 활동성을 띱니다. 이 와중에 성도는 무익한 종이며, 자신에게서 부단히 유발되는 활동성이 지닌 무익함과 죄악성을 알게 되는데, 이 또한 성령님의 주체적 활동성의 결과입니다. 이것은 십자가 사건이 원초적으로 유발시킨 결과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성도라는 인간 쪽에서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해드린 상향식 활동성이 낳은 결과물이 아닙니다.

신자는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삶에 대해 관심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열심을 신자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삶의 열심을 말함으로 우리의 삶의 방향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점검하고 돌아보도록 촉구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것입니다.
->굳이 제 글의 의도를 재삼 정리해 보면, 신자가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관심을 두고, 그러한 내용을 (다른) 신자에게 말해주고...하는 것도 신자의 자력으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성령님의 활동성의 일환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신자가 자신의 무익함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고백한다면 그것을 무익한 것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고백을 하게 하신 분이 성령이신데, 그리고 그러한 고백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증거하게 하시는 것인데 그 일을 어떻게 무익한 것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자신의 무익함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은 성도가 자발적, 자력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무익하지 않는 일들을 행하시는 분이 성도가 아니라, 바로 성령님이시라는 사실을 제가 말씀드리고자 한 겁니다. 저의 이 말이 맞다면, 무익한 종에게서는 성령님께서 몸소 행하신 일을 제외하곤 무익한 행실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던 겁니다.

“왜냐하면, (굳이 표현하건대) 무익하지 “않은” 행위는 겉으로 보면 무익한 종이 자기가 하여야 할 일을 행한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종이 자력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귀하의 표현대로라면, 어디까지나 “성령에 의해 나타나진”, 즉 부연하면 성령님께서 몸소 하신 것이기 때문에 결코 종의 행위에다 포함시켜선 안되기 때문이지요.“

사실, 저는 제가 드린 말씀 가운데 가장 첨예한 부분이 위의 문장이었는데, 의외로 귀하께서는 위의 문장과 관련하여 재삼 언급이 없으셨다는 점이 저로서는 의아스러웠습니다.
성도가 자발적으로든, 성령의 능력을 동원하든 간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몸소 살아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식의 귀하의 주장대로라면, 바로 위의 문장에 대하여 나름대로 귀하의 견해를 피력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위의 문장에 대하여 재삼 언급이 없으셨다는 것을 두고서 위의 문장에 동의하신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만약 그럴 경우, 귀하는 또 하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제 글의 위 문장은 분명히 성령님에 의해 나타나진 일들이 성령님의 주체적인 활동성의 발현이요, 그 외에는 성도에게서 무익한 것밖에는 발견될 게 없다는 말인데, 제 글 속에 담긴 이러한 원리는 귀하의 견해 - 성도가 자발적으로 행한 것인지, 아니면 성령님 주체적인 활동성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 지도 분명히 해두지 않은 채 모호하게 그저 그리스도안에서의 삶, 성령에 의해 나타나지는 삶...이라는 성경의 자구적인 표현들을 구사해 가면서 본 논의를 다루려다 보니 계속 끝없는 소모전만 유발되는 게 아닌가 라는 의구심까지 자아내게 하는 견해 - 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귀하께서 전개하고 계신 의문의 실마리는 바로 위의 제 글과 연관지어 볼 때, 성도에게서 일어나는 행위들을 성령님께서 주체적으로 행하여 가시는 것과 성도라는 인간에게서 흘러나오는 무익한 활동성으로 구분하는 데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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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저는 귀하의 글에 이견이 있습니다.
정영균 2004-12-01 23:49:50, 조회 : 211, 추천 : 12

제가 귀하의 글에 이견이 없다고 말씀드렸다면 그것은 귀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인간에게서는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안의 행함이 나와질 수 없음을 동의하는 것입니다.
귀하가 이것을 염두에 두셨다면 저의 글이 인간의 자발적인 행함에 염두에 두고 있다는 판단은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설령 저의 글이 그러한 오해의 소지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저에게 '이러한 내용은 이러한 오해를 할 수 있는데 어떤 의도로 말한 것인가'를 물었을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여전히 성령님께서 주체적으로 활동하시는 것과 성도라는 인간이 스스로 일삼는 활동성이 뒤섞여 모호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

- 제가 인간의 행함을 인정하던가요? 귀하는 분명 성령님께서 활동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으로 인해서 행하게 되어지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령으로 인해 행하게 되는 것이지 인간에게서 나오는 행함이 아닙니다. 제가 질문하고 있는 것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죄성이기에 모든 행함은 죄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근호 목사님께 신자가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으로 인해 행하게 되는 것까지 모두 죄로 봐야 하느냐고 질문한 것입니다.

<귀하에게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이 없습니까?
->이 문장의 표현만을 놓고보면 어느 쪽이 - 성령님이신지 아니면 성도인지 - 이러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의 주체인 지 모호합니다. >

- 이 질문은 성령이 주체가 되셔서 자기 백성을 다스리고 고쳐 가시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귀하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와 신자를 구분하십니까? 저는 신자를 성령이 함께 하시고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 즉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로만 봅니다.

<성령으로 인해서 행동하게 되어지는 것이 없습니까?
->바로 위의 귀하의 표현과 마찬가지로 저의 개인적 삶의 실제 여부와 관련된 질문이긴 하지만, 여태까지의 논의가 개진되어 오면서 보편적인 성도의 삶의 실제와 관련된 차원에 국한시키고자 합니다. 따라서, 제 삶의 실제가 어떠하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상정하는 대신, 이 표현만큼은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의 주체이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요”라는 말씀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

- 위의 물음 역시 오해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인해 행동하게 되는 공통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용서하심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없는가를 물은 것입니다. 신자의 삶은 그리스도의 용서하심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보여지는 흔적들이지 않습니까? 저는 이근호 목사님께 이러한 행함조차도 인간의 죄성에서 나오는 것인가를 질문한 것입니다. 인간의 행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체가 되어서 행하게 되어지는 것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삶, 행동에 대해 관심을 두지 말라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신자가 오직 예수님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삶과 행동에 관심을 두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귀하의 바로 이 문장 속에 담긴 당위성 - 마치 신자가 자발적, 자력적으로 예수님을 위해 살기 위하여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식의 당위성 - 과는 달리, 신자는 스스로(자력적으로,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삶과 행동에 관심을 둘 수 없습니다. 그런 삶을 실제적으로 유발하는 것까지도 물론 불가능하고요. 귀하께서는 부정하실는 지 모르지만, 분명히 귀하의 글 표현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런 의미를 전달해 줍니다.
귀하의 바로 이 문장의 표현만을 놓고보건대, 성령님께서 주체적으로 활동하시는 와중에서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안에서 행하게 하시는 것과는 별도로, 마치 신자라는 인간이 자발적, 자력적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살아가는 데 관심을 가지거나 행동할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십자가 사건 이후로 그 어떤 신약 성도라 할 지라도 성령님에 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린 바를 다시 반복합니다. 성도라는 인간은 성령님의 주체적인 활동성과는 별도로 자신의 활동성을 본능적으로 표출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성도라는 인간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가 서십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불신자든, 신자든 간에 인간의 자체적인 활동성은 십자가와 배치되는 성향을 띠고 또 그런 방향으로 표출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가지고 다가서시는 주님의 영(성령님)의 활동은 그야말로 주체적인 활동성을 띱니다. 이 와중에 성도는 무익한 종이며, 자신에게서 부단히 유발되는 활동성이 지닌 무익함과 죄악성을 알게 되는데, 이 또한 성령님의 주체적 활동성의 결과입니다. 이것은 십자가 사건이 원초적으로 유발시킨 결과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성도라는 인간 쪽에서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해드린 상향식 활동성이 낳은 결과물이 아닙니다.>

- 다시 말하지만 귀하의 주장에 대해 동의합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과연 성령의 다스림에 있는 신자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용서하심에 기뻐하며 살아가는 삶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신자라면 당연히 신자로서의 삶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관심이 믿음에 있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할 것이고, 더욱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할 것이며 자신을 점검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삶에 대해 관심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열심을 신자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삶의 열심을 말함으로 우리의 삶의 방향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점검하고 돌아보도록 촉구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것입니다.
->굳이 제 글의 의도를 재삼 정리해 보면, 신자가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관심을 두고, 그러한 내용을 (다른) 신자에게 말해주고...하는 것도 신자의 자력으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성령님의 활동성의 일환이라는 겁니다.>

- 제가 언제 신자의 자력을 주장했습니까?

<그리고 신자가 자신의 무익함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고백한다면 그것을 무익한 것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고백을 하게 하신 분이 성령이신데, 그리고 그러한 고백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증거하게 하시는 것인데 그 일을 어떻게 무익한 것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자신의 무익함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은 성도가 자발적, 자력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무익하지 않는 일들을 행하시는 분이 성도가 아니라, 바로 성령님이시라는 사실을 제가 말씀드리고자 한 겁니다. >

- 그러니까 성령으로 인해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증거하는 것은 있지 않습니까? 그것까지 인간의 죄성으로 봐야 하느냐는 것이 제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근호 목사님과의 제 질문 내용을 다 살펴 보셨으면 이런 엉뚱한 말을 하지 않으실텐데요

<저의 이 말이 맞다면, 무익한 종에게서는 성령님께서 몸소 행하신 일을 제외하곤 무익한 행실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던 겁니다.>

- 그렇다면 귀하도 성령께서 행하신 일은 무익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말씀드린 것은 성령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사도 바울의 행함은 무익한 것으로 볼 수 없음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굳이 표현하건대) 무익하지 “않은” 행위는 겉으로 보면 무익한 종이 자기가 하여야 할 일을 행한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종이 자력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귀하의 표현대로라면, 어디까지나 “성령에 의해 나타나진”, 즉 부연하면 성령님께서 몸소 하신 것이기 때문에 결코 종의 행위에다 포함시켜선 안되기 때문이지요.“>

- 성령의 행함을 종의 행위에 포함시킨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성령께서 독자적으로 행하십니다. 그것은 무익한 종의 행위에 포함시킬 수는 없지요. 그렇게 되면 무익한 종이 높여지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성령의 다스림으로 말미암아 행해지는 것은 있습니다. 물론 성령으로 인한 행함이기에 인간의 행함은 결코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성령으로 인한 행함까지 부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무익한 것으로 봐야 하느냐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사실, 저는 제가 드린 말씀 가운데 가장 첨예한 부분이 위의 문장이었는데, 의외로 귀하께서는 위의 문장과 관련하여 재삼 언급이 없으셨다는 점이 저로서는 의아스러웠습니다.
성도가 자발적으로든, 성령의 능력을 동원하든 간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몸소 살아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식의 귀하의 주장대로라면, 바로 위의 문장에 대하여 나름대로 귀하의 견해를 피력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위의 문장에 대하여 재삼 언급이 없으셨다는 것을 두고서 위의 문장에 동의하신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만약 그럴 경우, 귀하는 또 하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 예 동의했기 때문에 언급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귀하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제게 질문을 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글을 자신의 느낌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글의 위 문장은 분명히 성령님에 의해 나타나진 일들이 성령님의 주체적인 활동성의 발현이요, 그 외에는 성도에게서 무익한 것밖에는 발견될 게 없다는 말인데, 제 글 속에 담긴 이러한 원리는 귀하의 견해 - 성도가 자발적으로 행한 것인지, 아니면 성령님 주체적인 활동성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 지도 분명히 해두지 않은 채 모호하게 그저 그리스도안에서의 삶, 성령에 의해 나타나지는 삶...이라는 성경의 자구적인 표현들을 구사해 가면서 본 논의를 다루려다 보니 계속 끝없는 소모전만 유발되는 게 아닌가 라는 의구심까지 자아내게 하는 견해 - 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귀하께서 전개하고 계신 의문의 실마리는 바로 위의 제 글과 연관지어 볼 때, 성도에게서 일어나는 행위들을 성령님께서 주체적으로 행하여 가시는 것과 성도라는 인간에게서 흘러나오는 무익한 활동성으로 구분하는 데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 저의 질문은 귀하가 말한 내용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입니다. 즉 제가 질문하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을 가지고 저의 질문에 끼어 든 것입니다. 소모전은 질문의 요지를 헤아리지 못한 귀하가 자초한 것입니다. 결국 저를 피곤하게만 한 것이지요.

요 13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롬 6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엡 2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빌 2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살전 2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히 13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분명 신자를 행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인간은 절대로 자신의 행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근호 목사님께 질문했던 것은, 어떤 의미, 어떤 경우에도 신자에게 열심을 말할 수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즉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소원에 마음을 두고 힘써 살아가며,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 있음을 발견하고 자신의 죄를 깨닫는 의미에서의 열심조차도 말할 수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한 목사님의 답은 인간에게서는 죄성만 나오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저는 성령으로 인해 행하게 되는 것조차 인간의 죄성인가를 질문하는 것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만약 귀하가 이러한 저의 질문에 대해서도 잘못됨을 말한다면, 제가 이 목사님께 질문했던 '그리스도안에서 행하게 되는 것도 죄인가?' '성령안의 그리스도인도 자신의 의를 위해 행동하는 것 밖에 없는가?' '에 대해 답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이근호 목사님께 한 저의 질문과 목사님의 답을 처음부터 면밀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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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여전히 제 글에 이견이 있으실 줄 알았습니다.
이준 2004-12-02 09:28:58, 조회 : 230, 추천 : 15

제가 질문하고 있는 것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죄성이기에 모든 행함은 죄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근호 목사님께 신자가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으로 인해 행하게 되는 것까지 모두 죄로 봐야 하느냐고 질문한 것입니다.
->귀하의 최초 질문을 다시금 상고해 보세요.

"어떤 경우, 어떤 의미로든 신자에게 '열심을 내라' '게으르지 말라'는 말은 할 수 없는 것입니까?"

이 말이 인간의 활동성을 부추기는 것인지, 아니면 성령님의 주체적인 활동성을 강조하는 쪽인지 말입니다.
제 글을 통해 강조한 분명한 원리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은 오직 성령님의 주체적 활동성에 따른 것이다.
둘째, 자동적으로 신자의 활동성은 배제된다. 즉, 신자라는 인간은 자체적, 자발적, 자력적으로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을 유발해내지 못한다.
위의 두 가지 원리가 성경적인 것이라면, 결론적으로 귀하께서는 처음부터 쓸데없는 질문을 하신 겁니다. 왜햐나면, 신자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삶, 성령에 의한 삶은 말 그대로 성령님의 활동이지 인간 자체에서 유발된 게 아님이 확실한데, 그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모든 삶이 모두 죄악이냐 아니냐는 식으로 굳이 묻고 나올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그간 귀하께서 이근호 목사님께 질문해오신 과정을 살펴보건대, “몰라서 질문하신 게 아니라는” 점, 나름대로 자기 근거 위에 자기 주장을 세워 놓고 논박하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는데, 이 점만 봐도 귀하께서는 본 논의가 다루고 있는 논점과 관련해서 이해가 안 가는 게 아니라, 귀하께 가해지는 지적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더더욱 소모전만 계속되어 온 듯합니다.

이 질문은 성령이 주체가 되셔서 자기 백성을 다스리고 고쳐 가시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귀하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와 신자를 구분하십니까?
->제 글을 읽어보시고 무얼 말하고자 하는 지 제대로 파악하셨다면, 이러한 “한복수식(?) 이분법적” 질문이 제기될 리가 없을텐데요.

저는 신자를 성령이 함께 하시고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 즉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로만 봅니다.
->제 글을 읽어보시면,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신자”라는 점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전제로 하여,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신자”라고 해서 그 신자에게서 유발되는 모든 행위가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자 한 걸 알 수 있을텐데요. 한복수씨의 이상한 이분법을 대할 때처럼, 귀하에게서도 그러한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디까지나 “성령에 의해 나타나진” 일들은 성령님께서 하신 일이기에 신자(성도)라는 인간의 활동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누누이 강조하였습니다.

위의 물음 역시 오해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인해 행동하게 되는 공통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용서하심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없는가를 물은 것입니다. 신자의 삶은 그리스도의 용서하심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보여지는 흔적들이지 않습니까? 저는 이근호 목사님께 이러한 행함조차도 인간의 죄성에서 나오는 것인가를 질문한 것입니다. 인간의 행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체가 되어서 행하게 되어지는 것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누누이 강조한 것은 바로 그러한 삶 - 감사, 기뻐함... - 을 신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의 여부에 있는 게 아니라, 그러한 삶이 성령님의 주체적 활동에 따른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귀하의 주장에 대해 동의합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닙니다. 다른 점이 있습니다. 동일하다면 아래와 같은 말씀이 나올 수가 없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과연 성령의 다스림에 있는 신자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용서하심에 기뻐하며 살아가는 삶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신자라면 당연히 신자로서의 삶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관심이 믿음에 있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할 것이고, 더욱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할 것이며 자신을 점검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귀하의 표현 중에서 “...관심을 둔다...자신을 보게 할 것이고...자신을 점검하게 할 것이기...”라는 말들은 분명히 신자의 단독적인(자체적인) 활동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귀하의 글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귀하의 표현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귀하의 글에 이견이 있습니다. 귀하의 글만을 두고 읽어보면 - 제가 현실적으로 목도할 수 없는 귀하의 실제적인 삶은 차치하고서 - 여전히 성령님께서 주체적으로 활동하시는 것과 성도라는 인간이 스스로 일삼는 활동성이 뒤섞여 모호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제가 언제 신자의 자력을 주장했습니까?
->바로 위의 귀하의 표현만 보더라도 신자가 (스스로) “...관심을 둔다...자신을 보게 할 것이고...자신을 점검하게 할 것이기...”는 둥의 표현들이 신자의 자발적, 자력적 활동성과 관련된 게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성령으로 인해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증거하는 것은 있지 않습니까? 그것까지 인간의 죄성으로 봐야 하느냐는 것이 제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근호 목사님과의 제 질문 내용을 다 살펴 보셨으면 이런 엉뚱한 말을 하지 않으실텐데요
그렇다면 귀하도 성령께서 행하신 일은 무익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말씀드린 것은 성령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사도 바울의 행함은 무익한 것으로 볼 수 없음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제가 과연 엉뚱한 지적을 한 것인지의 여부는 이 답변글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셔서 귀하께서 던지신 질문이 과연 타당한 질문이었나부터 재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행함을 종의 행위에 포함시킨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성령께서 독자적으로 행하십니다. 그것은 무익한 종의 행위에 포함시킬 수는 없지요. 그렇게 되면 무익한 종이 높여지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제 글에 동의하신 듯하지만...

하지만 성령의 다스림으로 말미암아 행해지는 것은 있습니다. 물론 성령으로 인한 행함이기에 인간의 행함은 결코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성령으로 인한 행함까지 부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무익한 것으로 봐야 하느냐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표현들을 거쳐서 귀하의 글은 성령님의 주체적인 활동성이 신자의 활동성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더라(보다 엄밀히 말하면 변질되더라)는 겁니다. 성령의 다스리심으로 말미암아 행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님의 주체적인 행하심이라 생각하고 그냥 놔두세요. 그런데 왜 귀하께서는 자꾸만 그것을 인간의 활동성과 연결지으려는 것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찾고자, 무엇을 얻고자 함입니까? 과연 저의 이러한 지적이 엉뚱한 것인 지 아닌 지는 귀하의 글에 대하여 제가 위에서 지적한 부분을 다시금 살펴보세요. 그 부분을 다시 말씀드릴까요?

“귀하의 표현 중에서 “...관심을 둔다...자신을 보게 할 것이고...자신을 점검하게 할 것이기...”라는 말들은 분명히 신자의 단독적인(자체적인) 활동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귀하의 글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귀하의 표현때문이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관심을 둔다는 둥, 자신을 보게 한다는 둥, 자신을 점검한다는 둥의 표현들은 그 표현 자체가 신자의 자체적인 활동성을 말하는 겁니다. 그것을 두고 귀하께서 아무리 성령에 의해 유발된 행함이라고 강조해 본들, 그 표현 자체가 전달하려는 의미의 틀의 제한성을 벗어날 순 없습니다.
제가 더욱 열을 올리는(?) 이유는, 이러한 언어 표현 자체에 담겨 있는 귀하의 속셈(?)입니다. 과연 성령님의 주체적인 활동성을 전적으로 인정한다면, 왜 그러한 성령의 주체적인 활동성을 인간의 자체적인 행동적 표현과 연결시키려 듭니까? 아직도 저의 이러한 지적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제는 귀하께서 자초하신 겁니다. 제가 귀하의 글을 다루면서 강조한 두 가지 원리는 바로 그러한 귀하의 모호한 표현들을 명확히 구분해 놓자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동의했기 때문에 언급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귀하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제게 질문을 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글을 자신의 느낌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전히 귀하의 글 일부가 드러내는 바, 신자의 단독적인 활동성의 표현은 제 글에 대한 완전한 동의를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위에서 지적한 내용을 다시 말씀드릴까요?

“귀하의 표현 중에서 “...관심을 둔다...자신을 보게 할 것이고...자신을 점검하게 할 것이기...”라는 말들은 분명히 신자의 단독적인(자체적인) 활동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귀하의 글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귀하의 표현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질문은 귀하가 말한 내용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입니다. 즉 제가 질문하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을 가지고 저의 질문에 끼어 든 것입니다. 소모전은 질문의 요지를 헤아리지 못한 귀하가 자초한 것입니다. 결국 저를 피곤하게만 한 것이지요.
->과연 그렇습니까? 성령의 주체적인 활동성을 가지고 인간의 자체적인 행함의 표현과 연결시킴으로 논의를 계속 모호한 말 표현 상태에서 이끌어간 데 대한 책임(?)은 회피하시는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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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