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목사님 실망입니다. 언약에 대해서] 2004-10-18묻고답하기에스겔

[목사님 실망입니다. 언약에 대해서] 2004-10-18

이름 : 관리자(IP:122.47.55.30)

다윗언약과 모세언약의 연관성에 대해(이근호목사님께)
정수태 2004-10-18 15:36:13, 조회 : 256, 추천 : 35

목사님의 글 사무엘 상하, 다윗언약의 형성과정, 녹취글 다윗언약을 읽어보았습니다.
녹취글 다윗언약에서
다윗언약은 왕같은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이 왕되심을 계속 고수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한 전개는 없고 속된 말로 삼천포로 빠져서 제사의 암컷 수컷이야기만 나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다윗언약의 형성과정에도 그런 내용이 분명하고 상세하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드립니다.

다윗언약에 대하여
1)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였지만 들어주시면서 어떻게 왕같은 제사장의 내용을 유지 했는지 말씀하여 주십시오.

2) 모세언약이 다윗언약 안으로 들어갔다면 성경에 어떤 식으로 들어갔는지 그 근거된 말씀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십시오.
예를 들어 엘리의 아들이 죽고난뒤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켯다고 했는데 이것이 다윗언약 안에서 어떤 말씀으로 내폭포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3) 사울이 제사를 드린 것에 대하여는 책망이 되고 다윗이 전설병을 먹은 것에 대하여는 책망이 되지 않는 이유가 왕같은 제사장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가르쳐주십시오.

4) 제사장은 왕의 언약 속에서 어떤 일을 수행해야 하는지-모세언약이 어떤 식으로 왕의 언약 속에 포함되는지와도 같은 질문일지 모르지만 -가르쳐 주십시오.

5) 성전완성이 제사장하고의 기능성에 연관성이 있습니까? 모세언약에 따르면 성전을 짓는 일은 제사장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사지내는 일이 아닌 성전 짓는 일과 다윗언약 그리고 모세언약과의 연관성은 무엇입니까?

죄송하지만 1) 2) 3) 4) 5)질문에 대한 답을 각각하여 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정 수 태 드림

==========================================================================
[re] 다윗언약과 모세언약의 연관성에 대해(이근호목사님께)
이근호 2004-10-18 19:37:18, 조회 : 259, 추천 : 44

우선, '하나님의 선택'이나 '다윗언약의 형성 과정'이나 '교회를 넘어서'라든지 '성경의 중심사상과 그 전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전재과정이 명확하게 잘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귀하께서 요구하시는 답변도 거기에 다 들어있습니다.

다윗언약에 대하여
1)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였지만 들어주시면서 어떻게 왕같은 제사장의 내용을 유지 했는지 말씀하여 주십시오.
사울왕의 등장은, 인간의 요구 속에 죄가 어떤 식으로 암약하고 있음을 펼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왕과 평소에 인간들이 이방나라를 통해서 세우고자 하는 왕과의 엄연한 차이성을 나타내 보이고자 한 것입니다.

>
>2) 모세언약이 다윗언약 안으로 들어갔다면 성경에 어떤 식으로 들어갔는지 그 근거된 말씀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십시오.

신명기에 보면, 왕은 율법책을 곁에 두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모세 언약의 중심은 제사입니다.
제사는 거룩을 지상에서 생산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종사하는 자는 철저하는 '순종'이라는 모습으로 개입된다.
그런데 인간의 선입견상, 이 '순종'을 '율법 준수'라는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사울왕을 통해서 그 한계와 헛점이 드러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 율법 준수'는 하나님의 은혜성보다는, '행함으로 인해 발생된 자기 선행과 의로움으로 저주를 커버하려는 애씀'에 머물고 맙니다.

그러나 다윗의 경우는 그는 몸소 에봇을 입고 언약궤 앞에서 춤을 추면서, 진정한 제사 정신은 오직 '은혜에 대한 순종과 순응'으로 실현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인 미갈은 다윗의 이러한 체통없음을 힐책했습니다. 그것으로 그 여인은 아이들 갖지 못하게 됩니다.

다윗의 제사장직 수행은 말년에, 그의 인구조사로 인해 발생된 전염병으로 7만명이 죽어 나간 일이 벌어집니다.
그 때 그는 아리우다 타작 마당에서 제사를 드림으로 그 저주로 인해 징벌을 멈추게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제사장직의 절정은 밧세바의 아들로 차기 왕을 세웠다든데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제사의 완성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성에 의해서 좌지우지됨을 천명하는 겁니다.

솔로몬의 출현 바탕에는 죄인됨을 유감없이 보여준 다윗왕의 행위가 깔려 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아는 장군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긍휼의 증거물이 바로 솔로몬이라는 점에서 참된 제사장직을 잘 수행한 것입니다.

>3) 사울이 제사를 드린 것에 대하여는 책망이 되고 다윗이 전설병을 먹은 것에 대하여는 책망이 되지 않는 이유가 왕같은 제사장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가르쳐주십시오.

일방적인 하나님의 선택성에 있습니다.
>
>4) 제사장은 왕의 언약 속에서 어떤 일을 수행해야 하는지-모세언약이 어떤 식으로 왕의 언약 속에 포함되는지와도 같은 질문일지 모르지만 -가르쳐 주십시오.
>

에스겔의 나오는 새성전에서는 왕이 직접 제사장이 되어 새성전을 운영합니다. 그 왕은 바로 다윗왕이요 또한 하나님이 되십니다.
왕은 휘하에 제사장을 둠으로서 마치 옛날 보이지 않는 왕이신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제사장이 움직여야 하는 것처럼 다윗 이 후에는 왕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곧 그 왕과 하나님 앞에 공통 책임을 져야하는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즉 제사의 효력이나 성전 관리에 있어 최종 책임자는 대제사장이 아니라 바로 왕이 됩니다. ('교회를 넘어서' 보면 잘 나와있습니다.)

>5) 성전완성이 제사장하고의 기능성에 연관성이 있습니까? 모세언약에 따르면 성전을 짓는 일은 제사장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사지내는 일이 아닌 성전 짓는 일과 다윗언약 그리고 모세언약과의 연관성은 무엇입니까?

다윗의 등장 이후에는 왕이 책임집니다. 왕이 잘못했을 때는 성전도 불타버립니다.

##############################################################################################
답변 감사드리며, 다시한번 다윗언약에 대해 질문을 드립니다.
정수태 2004-10-19 13:58:12, 조회 : 197, 추천 : 38

하나님의 선택과 다윗언약의 형성과정을 이미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머리가 아둔해서인지 제가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답변을 듣고 몇가지 해결이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궁금한 것이 있어 질문을 드립니다.
(교회를 넘어서는 오늘 밤에 읽도록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1)엘리가문을 통한 모세언약 이탈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데로 행할 것이라 그를 위하여 견곤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부음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니"(삼상2:35)
과
"제가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그 나라 위는.....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하라"
라는 다윗 언약과의 연관성이 어떻게 일관성이 있는지 가르쳐주십시오.
그 일관성이 구체적으로 성경 안에서 어떤 말씀과 사건 안에서 일관성이 있는지를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답변 세번째에서 사울의 제사는 책망이고 다윗의 전설병은 타당한 것이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답변을 해주셨는데 너무 함축적 답변이라 이해가 힘듭니다.
제가 생각할 때 사울의 제사도 책망이고, 다윗의 언약궤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때 웃사의 사건도 다윗에 대한 책망이며 성전 짓고자 할때도 다윗에게 책망이라면, 그 책망은 여전히 이 땅의 왕권이라는 것이 하늘 왕권 안에 있을때만 그 유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은 아닌지요.
다시 한번 답변을 기다립니다.

책 읽기에도 시간이 빠듯하실텐데 귀찮게 해드리어 송구한 마음을 표합니다.

정 수 태 드림

==========================================================================
[re] 답변 감사드리며, 다시한번 다윗언약에 대해 질문을 드립니다.
이근호 2004-10-19 15:09:53, 조회 : 228, 추천 : 40

1) 답변은, '교회를 넘어서'에 잘 나와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에 의해서 사무엘이 차기 제사장이 됨을 지목케 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흔히 알고 있는 제사장 기능을 몰두하기 보다는 도리어 다른 기능에 매진합니다.

그것은 흔히 사람들이 알고있는 율법완성의 진정한 의미가 '제사 잘 드림'이라는 인간의 행위와 무관하기 진행된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모세율법에 의하면, 제대로 의(義)가 이스라엘에서 생산되면, 능히 이스라엘이 이방민족을 지배하게 되어 있는데 그당시 현실이 그렇게 되지 못하다는 것은

'율법 준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 백성들이 여전히 이방민족의 힘적 우월을 제도(왕정 정치)의 효율성에 두고 있는 그런 불신앙적 요소가 팽배하다는 현실을 감안하면서 모세 율법이 그 성취성을 드러낼 시점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와중에 등장된 자가 사무엘인데, 사무엘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 세움을 허락합니다. 일단 백성들의 안목에서 볼 때, 효율적인 나라 존속이 충족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들은 전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에게 찬양 안에 담긴 (사무엘상 2장) 전혀 새로운 양상의 모세언약 성취성을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즉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는 식으로 왕적 통치에 나서심'을 이해못한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그저 지상에서의 자신들의 행위 (왕 세움, 혹은 율법대로 제사드림)에 의미를 두고 매진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상하고 똑같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불신앙을 그대로 담아내야 하는 대표자가 요구되는데 그 자가 사울왕입니다.(오늘날의 당회장들)
이 사울왕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냥 사라지면 안됩니다.

즉 백성들의 불신앙이 단순히 개인적인 선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세력으로 존재함을 대표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역할을 사울왕이 해야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 말씀에 청종하겠나이다"라는 고백하는 백성들이 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원수였다는 사실을 들추어내는 역할을 사무엘과 다윗왕이 등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날 교회상으로 말하면, 복음을 말하는 부교역자는 필히 복음을 말해서 당회장 목사와 당회와 교인들에게 처절하게 욕얻어먹고 당할 대로 당해야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결국에서 그 교회에서 추방당하라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음을 넣어주신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나중에 당회장되면 복음을 아는 부교역자를 또한 자기가 당했던 식으로 내칠 것이 뻔하지만)

왜 이런 논리가 성립하느냐 하면,

사무엘이나 한나에게 내려진 모든 예언은 반드시 장차 메시야가 당하는 고난을 밑바탕에 깔린채 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로 인하여 전쟁에 승리가 가져왔다는 것은, 사울의 존재성이 사무엘이 받은 예언에 종속됨을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예언의 끝은(그 당시) 다윗왕의 등장에 있습니다. 문제는 사울왕이 악신이 들려 본의아니게 지속적으로 다윗왕을 쫓아다니면서 핍박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즉 전쟁의 승리가 왜 인간의 행함에 바탕을 두고 등장하지 않느냐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의 폭발이지요.

그것은 사무엘을 제사장으로 지목한 엘리 제사장이 받은 예언처럼, 참으로 영원한 왕 가문(혹은 성전)은 결코 '인간 손으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인간이 손으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알리기 위해서는 필히 인간들이 하나님이 벌리는 일 와중에서 얼마나 자기 집착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선택된 일이 핍박을 받게 되느냐를 병행시켜 발생되어야 하는 겁니다.

즉 귀하께서 질의하신 것, 어떻게 모세언약이 다윗언약 안으로 완성태를 보이느냐 하는 것은, 인간들이 모세언약으로 어떤 식으로 영원을 지상에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애쓰느냐를 보이는 그 상황 속에서 '고난받고 곡해받는 형식'으로 출몰한다는 겁니다.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행함에서 의미를 구축하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선택성이 훼손되고 핍박을 받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다는 인간의 시도는 실은 자신의 이름을 구원하고 존속시키기 위한 일이었음은 오로지 하나님이 일방적인 선택자의 등장이 아니고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제 두 번쩨 질의 답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선택되어 등장된 다윗이 역시 과거에 사울왕이 행한 행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즉 자기 이름을 걸고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행함 안에 안착시키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다윗 언약의 완성을 놓고 다윗은 전에 사울왕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다윗왕 자신의 정당한 알리바이를 위해 억울하게 희생된 자가 등장해야겠지요. 그 분이 바로 우리아 장군입니다.

놀라운 것은 마태복음 1장 족보에서 솔로몬은 내용상 우리아의 아들로 계보를 잇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왕되심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된 자는 아벨처럼, 그리고 스데반집사님처럼 그냥 나타났다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누가 이 사람의 운명을 이렇게 만듭니까?

그것은 그들 속에 이미 들어가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십자가 시련을 담고자 그들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십자가 자취를 따라오게 하심이라"(벧전 2:21)

##############################################################################################
언약에 대한 질문을 또 드립니다.
정수태 2004-10-21 12:27:38, 조회 : 219, 추천 : 41

먼저 답변에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를 넘어서를 읽고 질문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넘어서 에서 모세언약과 다윗언약의 일관성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이 되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1) 언약이란 무엇입니까?
사실은 목사님이 언약에 대한 정의를 구체적으로 항목을 정해놓고 다룬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나
교회를 넘어서에서나 다른 책에서 다룬 것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모세언약의 내용, 다윗언약의 내용은 있었지만 이른바 "베리트"라고 하는 언약의 정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구절 언약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언약을 통해 죄가 폭로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모든 말씀이 죄를 폭로하는데 모두다 언약입니까?
송제근 교수는 그의 글에서 "언약이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펼치시려고하는 역사적 합법적 하나님의 수단"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모세오경과 언약) 이 정의에 대해서는 동의하시는지요?
언약은 역사적으로 그 당사자가 있어야 하는 것인지요?
언약이라고 우리가 통칭말하고자 할때(성경에서) 어떤 구성요건을 갖추어야 하는지요?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언약에 대하여 말씀하여주십시오.

2) 언제가 들은 이야기인데(근거는 희박) 목사님께서는 노아언약이야말로 진정한 언약이고 창조언약이냐, 아담언약은 언약이 아니라고 하신 것으로 들었는데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교회를 넘어서와 하나님의 선택에서는 여자의 후손에 대한 언급을 통해 아담언약 혹은 원시언약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들은 이야기는 소문인가요?

3) 다윗언약과 관계해서 질문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때의 왕으로서의 역활과 부활하신 후의 왕으로서의 역활이 어떻게 다릅니까?
즉 성전을 짓기전 왕의 역활과 부활 후 성전완성으로서의 왕의 역활의 차이점 말입니다.

4) 3)과 연관하여-성부 하나님의 긍휼을 여전히 중보기도하는 자로서 예수님이 서 있다면 왕으로서의 기능이 예수님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5) 창조의 엘로힘과 언약제시자로서의 야훼의 하나님의 명칭은 어떻게 언약과 연계되어 성경 속에 전개되는지 궁금합니다. 엘로힘은 이미 야훼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닙니까?(신약의 말씀에 근거한다면)

바쁘시겠지만 각각의 질문에 대하여 대답을 해주시면 좋겠고요.
대답이 길면 하나님의 선택, 또는 성경의 중심사상, 성경신학1 몇 페이지 부터 몇 페이지 까지 참조라고 달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읽고 질문을 다시 올리겠습니다.

정 수 태 올림

추신-교회넘어서에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책이 없어 적지 못하는데 다음에 적어서 수정되어야 할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장간의 실수인지도..

==========================================================================
[re] 언약에 대한 질문을 또 드립니다.
이근호 2004-10-21 19:49:32, 조회 : 237, 추천 : 41

언약의 어휘성 정의를 내리지 않는 이유는, 기존의 책이나 논문에서 언약신학에서 의미가 참으로 말도 안되는 주장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어나 어원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법입니다.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 철학적 해석학에도 어두워서 자신이 나온 해석들이 어떤 철학적 한계와 모순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즉 복음적 의미를 언어에서 찾을 수 있다는 발상이, 철학적 해석학에게 도리어 공박받을 대상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하이데거에 의하면 '계획, 주의, 선취'를 거치지 않고서는 '의미'가 산출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현존재의 모습이며, 여기서 '계획'이란 인간이 무슨 이해를 하든지 반드시 무언가를 미리 계획한다는 것이고, '주의'라는 것은 그 주어진 사항을 자신의 계획에 따라 취해진 것을 일정하게 절단한다는 뜻이고, '선취'라는 것은 그렇게 결정된 것은 마치 현재 자신의 해석이라고 간주하느 성향을 두고 말압니다. 그러니까 앞의 것, '계획'과 '주의'에 변동 사항이 생기면 뒤엣 것, 즉 '선취'된 해석도 항상 유동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언약이란 '자르다'는 뜻이라는 둥, 군신관계나 일반 상거래할 때, 쌍방 책임을 묻는 의무의 관계이다는 둥, 전혀 관련도 주장들을 합니다.

복음적 의미는 원어에서 도출될 수 없습니다. 내용을 가지고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능력이란 인간이 찾아내는 모든 해석의 걸림돌로 작용하여 인간의 도출해낸 모든 해석을 가지고 인간의 근본 존재함의 죄성을 폭로하는 계기로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해도와 비교해서 말입니다.

언약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예수님에게서 출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맹세를 하셨느냐가 곧 언약의 내용이며 그 내용이 언약을 유발하는 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송제근 교수는, "언약이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펄치려는 하나님의 합법적 수단이다"고 했는데

이 분은, 하나님 나라가 마치 이 땅에 펼쳐질 수 있는 양 착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펼쳐지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을 공략하면서, 부정하면서, 접촉이나 결합을 인정하지 아니하면서 전개되는 거룩한 언약적 전쟁의 양상으로만 활약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언약은 오직 '주의 이름' 의 기능 안에만 담겨있고, 그것이 이 세상으로부터 감취임을 받게 되고, 그 사역으로 인한 언약적 결과로 축복 아니면 저주를 낳게 됩니다.

그러니 인간은 언약에 대해서 개입할 그 어떤 여지도 없게 되는 겁니다.

남는 것은 "과연 축복 속에 있는가 아니면 저주 속에 있는가?"라는 영역 개념 뿐입니다.

만약 언약이 개입되지 않는 사람이나 민족에게는, '언약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서 언약의 축복으로부터 배제된 상태가 됩니다. 그러니까 뭘해도 저주가 찾아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언약 밖에 놓인 자는 그 자체로 이미 저주요, 언약 안에 놓인 자는 자력으로 그 언약을 이룰 수 없기에 저주이고, 따라 인간은 이래도 저주요 저래도 저주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우리는 마땅히 저주받은 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언약 밖'에 놓인 자가 아니라 '언약 안'에 놓인 자입니다.

축복이란 인간으로부터 얻어지는 행함이나 성과로 인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저주의 바다에 전제로 하여 주의 이름이 벌리시는 고유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선택에 의해서만 축복이 출현합니다.

예를 들면, 아무도 노아가 구원받을 줄을 사전에 몰랐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러하고,특히 이삭 같은 것은 아예 인간의 육으로 태어날 수도 없는 자이고, 야곱이나 요세이나 모세나 룻이나 다윗이나 예레미야나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언약없이 출현한 자는 없습니다.

바로 이런 자는 '하늘에 어머니'로 표상되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의 언약에 해당되는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갈4:25)

그런데 이러한 언약은 오직 창세기 3:15의 약속을 구현하기 위한 방도로서 제공된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이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된 것이 바로 노아언약입니다.(창 6:18)

호세아 6:7의 '아담 언약'이나 예레미야 33:20에 나오는 '낮에 대한 약정이나 밤에 대한 약정'이라는 것은, 창세기 3:15보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된 '언약'이라는 틀을 소급해서 창조 때까지 적용시킨 겁니다.

그러니까 내용이 보다 상세해졌을 경우, 보다 상세한 것으로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방식입니다. 창세기를 지탱하는 원리가 후대에 보다 세밀하게 계시되었다는 겁니다.

이와같은 표현 방식은 엘로힘이 아니라 여호와에게 창조권을 부여하는 대목에서도 여김없이 나옵니다. 즉 여호와가 엘로힘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일하신다는 겁니다.

부활 전의 예수님의 왕되심과 부활 후의 예수님의 왕되심에도 그 어떤 변동사항도 없습니다.

양쪽 다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심판권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권세를 예수님에게 다 주셨습니다.(요 17:2/3:35/5:22)

초라하게 보인다고 심판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맥없이 당했다고 심판권에 잠시 유보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심판권은 시간상으로 구분지울 수 없는 속성을 지녔는데 이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관계는 모든 시간을 초월해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 안'의 특성입니다.

예수님의 중보기도란,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왕권을 행사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 17:1-2)

교회를 넘어서 오타는 이미 제가 찾아내어 출판사에 알려주었습니다. 혹시 발견되면 게시판을 통해 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목사님 감사합니다.
김종선 2004-10-23 00:47:38, 조회 : 170, 추천 : 42

살롬... 또 궁굼한 것이있어서 말씀을듣고 글을 올립니다.
1)가인은 구원을 받았나요. 받앗다면 성경의 어디에 근거합니까?
2)창세기1:3절의 빛은 어떤 빛을 말하나요?
감사합니다.

==========================================================================
[re]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근호 2004-10-23 07:24:54, 조회 : 208, 추천 : 55

가인의 후예들은 악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마땅히 가인은 구원의 반열에 속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1:3에 나오는 빛이란 현재 우리 신체가 받아들이는 자연적인 빛입니다.

##############################################################################################
다시 언약에 대해 질문을 드립니다.
정수태 2004-10-23 14:58:36, 조회 : 169, 추천 : 35

답변에 감사드리며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1. 언어는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다(성경신학에서 목사님의 사용한 서문의 언어)이라고 했습니다.
언어가 땅의 구조의 언어를 가졌든 하늘의 구조의 언어를 가졌던 우리는 언어로 말하고 전달합니다.
기존의 계약신학 자들의 언약관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을 반박하고 성경에 근거하여 일관되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복음을 받은 자의 처신이라 생각됩니다. 기존의 학자들의 언약관이 도통 마음에 안든다고 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을 소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의 이런 생각이 목사님의 생각이라고 생각듭니다.
그래서 언약이란 무엇입니까라는 목사님의 답변의 서두는 생략되어야 하고 다시 언약에 대한 정의를 기존의 언약관에 대한 논박과 성경의 내용을 통해 해주었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목사님의 답변 중-
"언약의 어휘성 정의를 내리지 않는 이유는, 기존의 책이나 논문에서 언약신학에서 의미가 참으로 말도 안되는 주장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2. 노아언약은 창세기3장15절의 약속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씀 했습니다.
또 창세기3장15절을 약속이란 단어로 사용하셨고 노아는 언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약속과 언약은 동일성의 언어로 사용하셨는지 차별성을 두고 사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차별성이라면 약속과 언약은 어떻게 다릅니까?

3. 노아언약만 창세기3장15절의 약속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4장의 가인과 아벨의 사건도 3:15절의 약속을 드러내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창세기 4장은 언약이라 부르지 않고 노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번 질문가 동일한 질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답변 부탁드립니다.

4. 삼위일체에서 성부와 언약과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목사님의 글들을 읽어보면 언약과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관계는 일괄되게 잘 말해주고 있지만(하나님의 이름과 연관하여) 성부와의 관계는 소홀한 인상을 받습니다.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 천상의 왕이 성부입니까? 그렇다면 지상에서 오신 예수의 왕권되심이 구약에도 왕권으로 유지되었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긍휼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부활이후 왕권을 행사하신다면 성부가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언약의 성취 속에 성부하나님의 역활은 무엇입니까?

5. 4번 질문의 연장선에서-시편 110편의 내주가 내주께서 말씀하셨다는 다윗의 언변과 관련하여 시편110편은 다윗언약과 어떤 연관이 있습니다. 즉 두 주의 관계성과 언약의 관계말입니다.

질문에 늘 답변을 상세히 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정 수 태 드림

==========================================================================
[re] 다시 언약에 대해 질문을 드립니다.
이근호 2004-10-23 20:50:47, 조회 : 179, 추천 : 39

1. 언약이란 내용을 가지고 개념을 잡아야지 소위 원어로 잡히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원어라는 것 자체가 현대에 와서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이 쓰는 언약 개념과 고대인이 쓰는 언약 개념에서 사회적 문화적 입장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오늘날의 인식을 고대 언약개념에 다 실어담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활용도를 갖고 있느냐를 보고서 파악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언약이란, '하나님의 자기 맹세'입니다.

기존의 언약 개념은, 성경 전체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고대 문헌에서 어떤 식으로 쓰여졌느냐 하는 것만 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외교적 계약과 같은 것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언약은 이런 정치적 의미가 없습니다.

마치 로마서의 '의(義)을 고대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하는 그런 의인줄로 알아 '법정적 칭의'라는 개념을 유포하는 오류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언약과 약속은 범주적으로 다릅니다. 언약의 실내용은 '약속'이며 그 '약속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약속을 언약과 같다고 하면 안됩니다.

마치 영화는 스크린을 통해서 보여집니다. 스크린의 내용은 영화입니다. 그러나 영화와 스크린은 같은 것이 아니듯이 말압니다.

>3. 저는 성경을 재편성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4장의 사건을 가지고 만약 하나님께서 '아벨에게 언약을 내리사'라고 나오신다면 저도 창세기 4장을 '언약'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언약이라는 말씀이 노아에게 처음 나오게 됨으로서 창세기 4장은 노아 언약을 탄생시킬 분위기를 숙정시키는 배경이 된다고 파악이 됩니다.

>
>4. 삼위일체는 성경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언약과 상관없습니다.

마치 올림픽 축구 대표팀에 이영표가 왜 나오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습니다. 비숫해보이지만 아예 범주 자체가 다르지요.

삼위일체론은, 성경의 중심이 되는 논조가 아니라 성경에서 따온 인간들의 하나님의 인상을 상호 조립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성경의 중심 사상인 언약과 당연히 상관없는 겁니다.

성경에서의 성부 하나님은, 오로지 예수님 안에만 계시고, 예수 밖에 있는 인간에게는 그 어떤 식으로 알려질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이 곧 성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하신 적이 없으신 분입니다. (구약 때나 신약 때나 말입니다.)

시편 110편에서 주님 오른편에 계신 주님은 다윗에게 내려준 모든 언약을 홀로 다 성취하실 분입니다.

보다 상세한 것은, '성경신학의 세계'라는 책에 들어 있습니다.

##############################################################################################
언약에 대해 다시 묻습니다.
정수태 2004-10-24 10:47:05, 조회 : 192, 추천 : 41

목사님의 답변을 통해 많은 것도 알게되고 그와 더불어 궁금증도 증폭됩니다.

1. 언약이라 하나님의 자기맹세라고 단답하셨는데 맹세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이 맹세하신 모든 것이 언약은 아니지 않습니까?

2. '아벨에게 언약을 내리사'라는 말이 있으면 언약이라고 하겠다고 하셨는데 성경에 문자적으로 언약이라고 명시되면 언약이라 정의 할 수 있습니까?
삼하7장에는 다윗에게 언약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언약이라 정의를 내립니다. 물론 시편89편3절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호세아6장7절에 명시되어 있는 아담이 언약을 어기고에 따라 아담언약이라고 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습니까? 언약이란 것이 성경의 사상 속에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것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3. 삼위일체의 문구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삼위일체를 이야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유치한 질문 드립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왕으로 와셨을때 성부는 무엇을 하십니까? 언약적 관점에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4. 예수께서 주로 등극하신 것이(사도행전2장) 언제입니까?
그 전에도 주였는데 부활 후에 주로 등극하셨습니다. 두 주-오시기전, 부활하신 후-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개혁주의자들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답변을 다시 기다리오며

정수태드림

==========================================================================
[re] 언약에 대해 다시 묻습니다.
이근호 2004-10-24 19:37:00, 조회 : 200, 추천 : 35

1. 하나님이 맹세하신 모든 것이 언약이 아니라, 언약을 맹세하신 것입니다.
>
>2. 그렇습니다.

'다윗에게 언약' 혹은 '모세에게 언약의 하나님으로부터 나타내신 것' 이 모든 것은 앞으로 이 언약의 내용대로 일을 일방적으로 진척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자신의 맹세를 드러낸 것입니다.

호세아의 '아담의 언약'은 전에 답변해 드린 것처럼, 다윗 언약의 입장에서 보면, 아담에 주신 내용이 그대로 다윗 언약의 범주 안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 언약의 준수 차원에서 그 아담의 죄도 극복되어야 하는 언약의 내용에 포함시켜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창세기 2-3장에서 구체적으로 '언약'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고 언약 따른 아담의 그 어떤 희생도 담겨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약은 반드시 '의로운 분의 희생'이 핵심 요소로 자리잡게 됩니다.
>
>3. 예수님이 지상에 왕으로 오셨을 때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파견하신 내용이 곧 언약의 완성으로서 새언약입니다.
>
>4. 예수께서 주로 등극하신 것이 부활로서 드디어 이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냐?"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언약 개념 안에는 시간 개념이 무의미하느까) 무슨 사건으로 이 피조세계에 대해서 '주 되심이 드러났느냐로 물어야 합니다.

##############################################################################################
목사님 감사합니다.
김종선 2004-10-25 11:06:48, 조회 : 180, 추천 : 37

답변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창4:15절의표를 받았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떤분은 이 표가 구원의 표라고 말하던데요.
그리고 창1:3절의 빛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re]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근호 2004-10-26 06:41:44, 조회 : 187, 추천 : 38

창세기 4;15에는

인간이라는 누구나 식별할 수 있는 표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구원의 표라는 것은 육에속한 인간은 분간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르지요

창세기 1장은 이미 피조세게 내에 등장하는 개념들입니다.

따라서 이 '빛'을 자연적인 빛 외에 달리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이 등장했기에 '빛'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 속에 침투하는 묵시적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이 창세기 1:3의 빛과 다릅니다.

##############################################################################################
목사님. 질문입니다.
문준 2004-10-26 08:07:12, 조회 : 180, 추천 : 46

목사님.

'야곱'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어떤 단절이 있는 것인가요?

==========================================================================
[re] 목사님.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4-10-26 11:28:07, 조회 : 186, 추천 : 26

>인간의 이름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뀝니다.

이로서

야곱의 그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가진 언약의 의의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죄와 그 죄 속에서 희생적인 모습으로 피어오르는 '하나님의 의'를 배태하게 되지요.

그것은 요셉의 일생과 요셉을 그토록 희생물로 만들었던 야곱 및 요셉의 형제들의 인간들의 죄악된 공격이 등장됩니다.

##############################################################################################
또 다시 언약에 대하여 질문을 드립니다.
정수태 2004-10-26 12:56:54, 조회 : 215, 추천 : 40

1. 성경신학의 세계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신학에서 목사님께서는 약속과 언약을 차별성없이 동일성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언약(약속)이렇게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의 생각 속에 언약과 약속에 대한 개념이 시간에 따라 재정립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저에게 준답변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언약과 약속은 범주적으로 다릅니다. 언약의 실내용은 '약속'이며 그 '약속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약속을 언약과 같다고 하면 안됩니다. "

목사님은 창세기3장15절은 약속이라고 했고 노아때 부터는 언약이라고 했습니다.(저에게 준 답변에서)

그럼 질문을 드립니다.

1. 호세아서에 다윗언약 안에 아담의 죄를 포함하고 있다면 다윗언약보다 먼저 있는 창세기 3:15절의 내용을 담지하고 있으므로 여전히 3:15절을 언약이라고 보아도 되지 않습니까?
문자적으로 언약이란 자구가 들어가야 언약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맹세에 대한 내용이 문제입니까?
반박한다면 호세아는 구지 아담이 언약을 어겼다라는 언약이라는 용어를 왜 사용했느냐는 것입니다.

2. 창세기3장15절이 약속이라면 창세기3장15-16절에 어느 곳에도 문자적으로 명시적으로 약속이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무슨 근거로 창세기 3장15절을 약속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지 설명하여 주십시오.
목사님은 삼위일체는 단순히 성경에서 따 온 인상이라고 했습니다.저는 삼위일체의 어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삼위잎체라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와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삼위일체냐의 문제말입니다.
그렇다면 약속이란 것도 목사님이 성경에서 따 온 인상이 아닙니까?

3. 정확하게 약속과 언약이란 단어의 동일성의 범주와 차이성의 범주가 무엇인지 설명하여 주시면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3번과 연관된 질문-창세기3장15절에 여자의 후손이란 바울의 새언약 해석의 입장에서 보면 의로운분의 희생이 담지되어 있지 않습니까? 내용적으로 의로운분의 희생의 내용이 담겨이어야 언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답변에서) 창세기3장15절은 의로운 분의 희생이 없나요?

목사님의 답변 인용-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창세기 2-3장에서 구체적으로 '언약'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고 언약 따른 아담의 그 어떤 희생도 담겨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약은 반드시 '의로운 분의 희생'이 핵심 요소로 자리잡게 됩니다.

정 수 태 드림

==========================================================================
[re] 또 다시 언약에 대하여 질문을 드립니다.
이근호 2004-10-26 16:23:38, 조회 : 216, 추천 : 32

언약이란 분명히 창세기 6장에 처음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께 아담에게 주신 것은 그 뒤에 나오는 언약의 내용이 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이라고 하지 않았던 것을 인간들이 언약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언약을 내려 말씀하시기를", 하시면서 창세기 3:15를 언급했더라면도 호세아에 나오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면 하는 것이 그 때 그 언약임이 분명해집니다.

히지만 창세기 6장에 와서 '언약'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그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지속으로 반복해서 나오는 것을 봐서, 약속의 내용을 이루기 위해 언약이라는 틀이 동원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관심있게 봐야 될 문제는

언약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담당자가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언약을 주었다는 겁니다.

그것은 언약의 내용 중에,

다음의 두 가지 요소가 들어가게 되는데

하나는

인간의 죄인되어야 하고,

둘때는 하나님은 희생자의 모습으로 언약에 개입해서 언약을 완성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의 언약 자체에서 발견되지 하고

언약의 완성이라는 새언약의 모습을 통해서 소급해서 모두 적용시켜 보면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언약'과 '약속'을 구분해서 사용한 겁니다.
그점을 역으로 구약 전반에 적용하는 것이 올바른 성경 해석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약속'을 창세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전체 계획이라고 보고, '언약'을 구약에서 약속을 이루어나가는 틀로 구분지어 보았습니다.)

2. 삼위일체론에서 '어떤 삼위일체'라는 말조차 무의미합니다. 삼위일체론 자체내에서 구분을 짓는다는 항상 먼저 전제된 표준된 삼위일체로 일방적으로 고수하고 있어야 가능한 논리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신론을 삼위일체론으로 설명하고 구성하겠다는 그 의도 자체가 성경과 상관없는 노력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겁니다.
따라서 제가 말한 인상이란, 온전한 삼위일체론을 그려보겠다는 그 노력 전체를 말합니다.

3. 창세기 3:15의 희생이 있느냐 없느냐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것은 '언약'이라고 출발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새언약의 관점에 보면 전 성경의 밑바닥에는 다 '하나님의 희생 정신'이 깔려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때 배우는, 미적 적분에도 사실은 밑바탕에서 '구구셈'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의 수학을 '수학'이라고 하지 '산수'하고는 하지 않습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언약'도 경계를 낳는 구획을 가집니다.

성경을 해석하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이 '언약의 구획'을 벗어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동일하게 계시를 주시지만 그 내용상 모두 아브라함 언약의 구체화로 이어지기에 '아브라함 언약'이라고 대표지어서 말합니다. >

##############################################################################################
빈야드운동
한진영 2004-10-26 16:31:37, 조회 : 240, 추천 : 37

목사님.. 빈야드 운동과 청년 찬양 사역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강건하세요..

==========================================================================
[re] 빈야드운동
이근호 2004-10-26 20:59:59, 조회 : 308, 추천 : 35

빈야드 사업은 '하나님의 실아계심'을 인간들의 감정적인 흥분으로 조성해 내어 체험하려는 사업입니다.

청년 찬양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이들이 기분 풀이하는 것을 가지고 마치 신에게 영광이 되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노는 걸 제가 문제삼는 것이 아닙니다.

##############################################################################################
꿈이나 환상 등을 이용한 인도하심?
박철현 2004-10-29 02:50:53, 조회 : 215, 추천 : 40

계시와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것이랑 다른 것입니까?
제가 이와 같은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인 것은
인정은 하지만 꿈이나 환상 예언 등을 통해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을 해서요...
사도행전의 예를 들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그러한 인도함을 받을 때 철저하게 말씀을 통해서
검증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제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검증받을 것 같으면
말씀만 들여다보면 되지 왜 딴 것을 찾느냐고 물어도 ... 반응은 (사도행전의 예를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러한 방법을 통해 보여주시겠다는데 당신이 왜 그것을 제한하느냐고 합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한인교회 목사님도 "많은 신학교에서 말씀만이 계시이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유일한 도구임을 믿고 있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면서 목사님 본인은 그러한 가르침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모르고 체험을 하지 않아서 그럴 뿐"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모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성경공부 모임에서 근거로 제시한 구절이 아래의 에베소서 2장의 말씀인데...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

본문의 문맥에 맞게 제가 바로 사용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 (성경 기록이 종료) 혹은 성령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인도하심을 분명하게 해주는 다양한 성경 구절들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re] 꿈이나 환상 등을 이용한 인도하심?
이근호 2004-10-29 08:47:43, 조회 : 256, 추천 : 32

인간이 신체를 갖고 있는 이상 늘 꿈을 꾸게 되어있습니다.

꿈 안 꾼 사람이 도리어 이상한 사람입니다.

꿈을 꾸는 것과 그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 가지고 마치 죄지은 듯이 여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기 신체성과 연관있는 꿈을 가지고 마치 하나님하고 연관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꿈 뿐만아니라 인간은 평소에 계속해서 판단하고, 결정짓고, 또 판단하고, 결정 짓고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마치 일부러 죄를 짓는 것처럼 간주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평범한 사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그러한 판단과 생각과 행함을 가지고 마치 하나님의 뜻인양 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후서 1:21에 보면,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줄 알면 되는데 문제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받은 사람' 속에 포함되고 싶어서 욕심을 부린다는 겁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의 뜻은 사도를 통해서 다 끝난 상황입니다.

12제자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는 그들의 터 위에 세워집니다. (에베소서 2:20)

새로운 말씀의 터가 추가될 필요치 않습니다.

교회가 등장하는데 현 성경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현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성령님의 몫이 신학자의 몫이나 설교자의 몫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해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계시가 필요치 않는 겁니다.

어느 인간도 사람이 구원해 내어서 천국간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문자가 아니라 산 영이기에 인간이 감히 넘다볼 수 없는 능력이 나옵니다. 그 능력은 바로 , 인간의 혼과 영과 관철 및 골수를 찔려 쪼개어서 철저하게 회개하게 하시는 능력입니다.(히브리서 4:12-13)

교회 생활은 이것입니다.

그 어떤 목사나 교회법이나 교단법에 의해서 인간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증거하지 않는 교회이거든 이단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
답변 감사합니다.
박철현 2004-11-01 10:27:48, 조회 : 234, 추천 : 45

바쁘실텐데 친절히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언약과 약속에 대한 또 다신 질문을 드리며
정수태 2004-10-29 13:06:26, 조회 : 214, 추천 : 36

1. 목사님께서 언약과 약속을 나누시는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왜 아담에게 한 것은 약속이고 나머지는 언약이 되는지 그 범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하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성경의 내용을 갖고 인상(목사님의 표현입니다)지우는 것은 아닙니까?

2. 목사님은 한글 개혁성경의 자구에 메여있는 것 같습니다. 언어구조주의나 문예적 해석에 대해서는 반대하면서도 언약에 관해서는 만큼은 자구에 메여있습니다.
목사님은 언약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없으므로 언약이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 33:20-25절에 다윗언약, 아브라함, 이삭, 야곱언약을 언급하면서 창조언약을 언급합니다.
여기 사용된 약정은 히브리어로 언약입니다. 베리트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언약신학자들 사이 속에
노아언약이 아니라 창조언약이라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구적으로 명시적으로 사용하였으니 언약이라 하지 않았야될까요?

노아에게 언약을 세우겠다라는 단어는 세우겠다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언약을 유지시키겠다라고 해석이 또한 가능합니다. 그래서 노아언약은 창조언약의 유지차원이다라는 견해도 있습니다(엘.데퀘에크 박사)

3. 다윗에게도 언약을 세웟다라는 말이 없습니다. 예레미야나 에스겔 시편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명한 어구가 있어야 한다는 단서 하나로 언약이라고 명한다는 것은 부족한 내용아닙니까?

4. 창세기 3장15절이 약속이면 아브라함의 언약도 약속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약속이란(물론 희랍어지만) 단어를 아브라함의 언약에 적용하여 사용합니다. 약속이란 단어와 언약이란 단어가 어디서 그렇게 서신서에서 첨예하게 분리하거나 구별하여 사용하는지 궁금합니다.

5. 창세기3장15절을 어느 구약성경 어느곳에서 약속이라고 명백하게 사용하는지 궁금합니다. 사용하지 않앗다면 왜 구체적으로 약속이란 단어를 언약과 구별하여 사용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6. 70인경이나 라틴어에서 언약과 약속이란 단어를 동일하게 사용한다면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7. 열왕기상 11장11절에 솔로몬에게 언약을 맺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구지 솔로몬 언약이라고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까? 목사님의 말씀에 따른다면 자명한 어구가 있다면 해야 되지 않습니까?

목사님의 답변을 기다리며 정수태 드림

*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언약에 대한 토론 후 교의학에 대한 논의를 할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
[re] 언약과 약속에 대한 또 다신 질문을 드리며
이근호 2004-10-29 15:31:23, 조회 : 243, 추천 : 45

구약은 새언약 관점에서 봐야지, 구약의 언약을 갖고 와서 신약을 설명하려고 해서는 아니됩니다.

예수님의 새언약이란, 구약의 문자적 언약 연구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유대인들이 구약을 전체적으로 언약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배경으로 해서 나온 말씀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이 관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언약을 주신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그 언약의 기초가 되는 언약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나오는 노아 방주만들기입니다.

따라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시킨 하나님은 바로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그 앞서 나오는 창세기 3장의 일은 무엇일까요? 바울 서신에 의해서 약속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언약이란 말이 안나오기 때문에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 되는 겁니다.

만약 정말 언약이라면, 언약 학자들의 요구에 따라 언약의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부터 '언약'이라는 용어를 퍼붓듯이 쓰여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약속'이라는 것이 먼저 주어지고, 그 다음에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언약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며,

예레미야 나오는 약정이라든지 하는 것은 언제든지 언약을 둘러싸는 더 넓은 의미로 약속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신약의 예수님은 언약보다 약속의 제정자로서 더 큰 범주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언약의 하나님'을 구성하는데 큰 무리가 없는 겁니다.

따라서

천지창조부터 '언약'이라고 해버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5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4,767 묻고답하기 [ 노회 재판국에서 있었던 이근호 목사의 최후 변론 ] - 2003/3/17 이근호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7-03-10
4,766 묻고답하기 [ 이근호 목사 제명 판결문 전문 ] - 2003/3/16 이근호 - 최고관리자 07-03-10
4,765 묻고답하기 [ "평신도 신학1"을 읽고 ] - 2003/3/13 손성식 - 최고관리자 07-03-10
4,764 묻고답하기 중국어 자료에 대하여 문의 올립니다.^^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0
4,763 묻고답하기 [선악과, 생명나무... ] 2005-11-10 - 최고관리자 07-03-10
4,762 묻고답하기 [칼바르트 신학자에 대해] 2005-10-01 로마서 최고관리자 07-03-10
4,761 묻고답하기 [루터의 십자가신학] 2005-08-27 [신학] 최고관리자 07-03-10
4,760 묻고답하기 [설교에 있어서 적용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 2005-08-10 - 최고관리자 07-03-10
4,759 묻고답하기 [치유기도를 계속해야하는지요?] 2005-07-06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7-03-10
4,758 묻고답하기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 2005-05-19 - 최고관리자 07-03-10
4,757 묻고답하기 [지식의 칼 부림은 의의 혀를 낼름거린 목아지만 남는다] 2005-05-04 [신학] 최고관리자 07-03-10
4,756 묻고답하기 [말씀운동 과 이근호의 언약사상의 차이점] 2005-04-19 디모데전서 최고관리자 07-03-10
4,755 묻고답하기 [하나님과 하느님에 대해서] 2005-04-03 미가 최고관리자 07-03-10
4,754 묻고답하기 [완전한 인간 존재를 창조할 수 있는 단 한가지 길은] 2005-01-12 레위기 최고관리자 07-03-10
4,753 묻고답하기 [인간 구원을 위한 자기부인? 자기부인이 구원조건?] 2005-01-10 미가 최고관리자 07-03-10
4,752 묻고답하기 [신학자 칼빈에 대한 펌글 평가 요구] 2005/01/02 [신학] 최고관리자 07-03-10
4,751 묻고답하기 [십자가의 율법화] 2004-12-11 로마서 최고관리자 07-03-10
4,750 묻고답하기 [목사는 이단입니다.] 2004-11-30 - 최고관리자 07-03-10
4,749 묻고답하기 [행함과 열심에 대해서] 2004-11-03 [신학] 최고관리자 07-03-10
열람 ➜ 묻고답하기 [목사님 실망입니다. 언약에 대해서] 2004-10-18 에스겔 최고관리자 07-03-10
4,747 묻고답하기 <개혁 노회>의 뜻은?] 2004-09-09 미가 최고관리자 07-03-10
4,746 묻고답하기 [의 뜻은?] 2004-09-09 - 최고관리자 07-03-10
4,745 묻고답하기 [진주는 무엇인가요? ] 2004-08-28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7-03-10
4,744 묻고답하기 [예수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 2004-08-04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7-03-10
4,743 묻고답하기 [화염검에 대하여] 2004-07-24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0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