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예수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 2004-08-04묻고답하기사도행전

[예수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 2004-08-04

이름 : 관리자(IP:122.47.55.30)

예수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
송태준 2004-08-04 10:00:54, 조회 : 319, 추천 : 24

아래의 글을 보시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속사적인 성령에 대한 접근에 대해 가르쳐 주세요.

예수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

예수를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구별되는 사건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 성령께서 무조건 강제로 침입해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인격이시기에 그를 인정하고 환영하는 자들에게 임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는 성령 받기를 사모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령을 영혼에 모셔들인 자가 성도이다.

예수는 공생애 동안 제자들을 택하여 세우셨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게 하기 위해서였다(막3:13-15).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를 따라다니며 말씀으로 양육을 받고 그의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을 수없이 보고 들었다. 베드로는 예수에 대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16:16)하고 고백했고,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를 향해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입니다"(요20:28)하고 고백했다.

이와 같이 가룟 유다를 제외한 제자들은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8)하시며 믿는 자가 받을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평안을 명하신 후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하셨고,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신 후 승천을 앞둔 자리에서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행1:4-5)고 하심으로 성령 받을 것을 거듭 당부하셨다.

예수는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 받을 것을 명하신 것이다. 이는 예수를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이 별개의 것임을 뜻한다. 제자들은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여 성령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간절히 기도했다(행1:13-14). 그리고 마침내 오순절 날이 이르러 마가 다락방에 있던 120명이 예수가 보내신 성령을 받았다(행2:1-4).

예수의 제자들의 경험 외에도 사도행전에는 예수를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이 구별되는 사건임을 보여주는 예가 적지 않다. 초대교회 때는 복음 전파와 함께 성령받도록 간절히 기도한 기록들이 있다.

먼저 사도행전 8장에는 사마리아 성에서의 빌립 집사의 사역이 나타나 있다. 빌립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했고, 복음을 전해 들은 자들은 믿고 침혜를 받았다(12절). 그러나 그들 중에 어느 누구에게도 아직 성령이 임하시지는 않았다(8:16). 사마리아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베드로와 요한이 보냄을 받아 사마리아에 내려가 저희를 위해 성령이 임하시도록 기도했다.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자 비로소 성령이 임했다(8:17-18).

사도행전 19장에는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사역이 나타나 있다.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으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다"고 대답했다(행19:2). 이에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 후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이 안수를 하자 비로소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다(행19:6).

이와 같이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구원은 단지 예수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침례를 받을 것을 말씀하며, 더 나아가 성령을 받는 것까지를 말한다. 즉 영혼에 성령을 모셔들인 성도로서의 구원을 말한다.( 한국신학 제24호 2004 여름 <베뢰아센터>)

==========================================================================
[re] 예수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
이근호 2004-08-04 11:41:09, 조회 : 359, 추천 : 37

>인간은 성령을 받은 자격이 없고 그럴 권리도 없습니다.

단지 인간은 구원받고 싶은 악한 본능과 충동성에 의해서 영을 받고 싶어 환장할 따름입니다.

"X을 갖게 되면 구원이 될까?"라는 공식, 혹은 "X를 안갖게 되면 나는 구원에서 탈락되고 말거야. X만큼은 꼭 갖고 다녀야지"라는 공식을 스스로 매일같이 만들어내고 다니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 X에 해당되는 것을 성경을 뒤적이면서 찾아내게 됩니다.

그것이 예수요, 그것이 성령이요, 그것이 삼위일체요, 것이 생명이요, 그것이 십자가이요, 그것이 언약이요, 그것이 '말씀 제대로 지키기'이요, 그것이 성화되기요, 그것이 '거룩한 삶 살기'요, 그것이 교회 섬기기요, 그것이 목사섬기기입니다.

이 모두가 헛발질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식으로 말하면 이방인에게는 아예 구원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신약식으로 말하면, 택함을 받지 못한 자에게는 아예 구원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말로 택함받은 자라면 성령을 그런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원해서 저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예수님이 주 되심과 구세주임을 알게 되었어요"라고 말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모든 성경 귀절은, 모든 사태의 배후에는 예수님의 주되심의 사역이 있음을 알려주는 귀절들입니다.

==========================================================================
[re]송태준님께- 예수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
손무성 (Homepage) 2004-08-08 00:17:28, 조회 : 235, 추천 : 37

베뢰아 =서울성락교회= 한국신학 -은 귀신론을 주장하는 김기동 이단의 맥락을 함께하고 있는 곳입니다.
http://www.sungrak.or.kr/index.asp

송태준님께서도 그 부류에 속하신다면 이제 정체를 알겠으니 더 이상 글을 올리지 마십시오.
이 곳은 님께서 글을 올릴 공간이 아닙니다.

더 이상 글을 올리시면 경고없이 삭제하겠습니다.

##############################################################################################
자기 사람과 모든 사람...
장하영 2004-08-05 18:55:38, 조회 : 223, 추천 : 43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자기 사람과 모든 사람...
극과 극인 것으로 보여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의미하는 바를 알려주세요...ㅡ.ㅡ

==========================================================================
[re] 자기 사람과 모든 사람...
이근호 2004-08-05 19:33:48, 조회 : 238, 추천 : 32

자기 사람이 되는 요건에는 그 어떤 인간적인 조건이 장애가 되지 않고 구원이 된다는 겁니다.

즉 인간 쪽에서 "너는 안돼, 너는 돼"라는 조건에 저촉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취지입니다.

##############################################################################################
영성에 대하여
송태준 2004-08-10 10:04:07, 조회 : 213, 추천 : 34

이근호 목사님께

요즘 영성, 영성 신학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것에 대한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천주교 방송을 들었는데 기도에 대해 말하면서 소리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로 분류를 하더군요!

기도와 영성이 관련이 있습니까?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무엇이죠(엡6:18)?

인격에 대한 설명에서 지, 정, 의로 접근을 하는데 이런 방법이 성경적입니까?

==========================================================================
[re] 영성에 대하여
이근호 2004-08-10 11:31:51, 조회 : 269, 추천 : 32

>자기 욕망을 자제하는데 있어

자신이 자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내용들은 하나님에게 맡길 것 없이 자기 선에서 처리하겠다는 것이 영성 훈련의 취지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을 갈고 닦는 겁니다.

인간의 자기 관리는 세 가지 방향에서 시도된다고 알고들 있는데 그것이

지, 즉 이성적인 면에서, 합리적인 논리 체계 안으로 신을 담는 식으로,
정, 즉 감정적으로 신에게 공손하고 항복하고 굴북하는 면에서
의, 즉 자신의 가능성을 실제로 발휘하여 외부에다 변화를 주기 위한 창조력을 발휘하는 면에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인간의 가능성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비성경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게시판에 실린 '로이도존스 목사 성화론 비판'을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
삼분설의 근거
송태준 2004-08-10 10:12:47, 조회 : 220, 추천 : 26

삼분설의 근거에 되는

살전5:23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
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히4:12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위 두 구절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전12:7 -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전에 기억하라

위 구절을 보면 꼭 이분설 처럼 보이는데,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신(spirit)'을 생명력의 표현으로 보면되는 것입니까?

==========================================================================
[re] 삼분설의 근거
이근호 2004-08-10 11:50:27, 조회 : 298, 추천 : 30

삼분설과 인간을 세 가지의 다른 측면으로 보는 것과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삼분설이란 인간의 셋으로 쪼갤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쪼개진 하나, 하나는 단독적으로 결코 온전한 인간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영, 혼, 육이란 단독적으로 인간에 대해서 온전하게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짐승들과 그리고 또는 다른 사물들과 더불한 한 자연 세계 안에 함께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영,
다른 산 짐승들과의 공통성이나 공통적 생존 본능이나 충동성에 관해서는 혼,
다른 피조물과 같이 흙으로 환원되는 공통적 의미에서는 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은 하나님이 만들어내어 주신 개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들의 의식에서 통용되는 문화적 개념입니다.

그래서 그 개념 자체를 두고 옳다 그르다 혹은 정확하다, 부정확하다 고 말 할 수 없고,

그 문화 안에서 구원과 관련되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느냐 하는 면만 보면 됩니다.

예를 들면,

영혼 불멸설은 모든 인간 최후의 여망이요 기대감이긴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일체 인간들의 이런 희망을 거절하고 거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과 같습니다.

즉 복음은 인간의 문화와 상관없고, 도리어 그것을 전부 부정하는 것 가운데서 오직 예수님의 홀로 남기신 사건 안에서만 구원이 되게 하십니다. (인간들의 분주하고 열성적인 종교 행각과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삼분설'이나 '이분설' 처럼 분석하는 것은 성경적 태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을 분석해서 그 안에서 신학 체계를 담게 되면 구원이 될 것같이 여기는 종교적 열성을 이용한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사기꾼 목자들이 주로 이런 논리로 접근하지요.

==========================================================================
[re] 삼분설의 근거 - 이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하영 2004-08-10 13:54:36, 조회 : 260, 추천 : 15

1. 신비한 하나님의 삼위일체
기독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의 삼위일체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오히려 부족하다 하겠다. 기독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일 뿐 아니라, 또한 기독신앙의 유일한 기준인 성경이 하나님의 삼위일체 교리에 맞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삼위일체 교리를 어떻게 정립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게 마련인 것이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고 있는 대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성경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교회는 하나님의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계속해 왔으며, 기라성 같은 신학자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 삼위일체론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성경적으로 모순되지 않는(성경의 논리와 일치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은 현실로 인해 지금도 각 신학대학에서 삼위일체론을 강의하지만 아타나시우스(성부-물/성자-물줄기/성령-시냇물), 어거스틴(나무뿌리/줄기/가지), 마틴 루터(꽃의 굳은 부분/향기/약효), 볼드만(구름/비/떠오르는 안개), 칼 바르트(계시자/계시/계시 받은 자), 모벌리(영원 신/인체를 가진 신/미성 신)등의 역대 신학자들이 주장해 온 예들을 소개하는 것이 전부이다.
위와 같이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한 의미를 이해한 까닭은 주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10:30)라고 하시어 세분 하나님은 하나이시고, 또한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요14:28)고 하시어 세분 하나님은 다르다고 하신 말씀과 모순되지 않게 하나님의 삼위일체론을 정립하려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한 분(어거스틴의 나무)이신 데, 다만 하시는 역할(나무뿌리/줄기/가지)이나 직임(구름/비/떠오르는 안개)만이 다르다고 이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세 분 하나님이 다르시다(요14:28)는 점을 위와 같은 차이 정도로만 설명해 가지고는 성경적으로 모순되지 않는,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첫째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막14:36)는 말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세 분 하나님은 서로를 제한할 수도, 제한 받을 수도 없는 완전한 독립적 인격을 갖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며 둘째는, 더욱이 그 날과 그 때는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신다(마24:36)고 말씀하시어, 하늘의 천사들이 하나님과 별개의 객체로 존재함과 같이 세 분 하나님께서도 독립된 별개의 객체로 존재하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완전히 다른 객체로서의 세 분 하나님이란 사람으로 비유하면 각각 자신만의 고유한 육체와 인격을 갖고 있는 독립체인 남녀 부부와 같은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이렇게 남녀 부부와 같이 완전히 다른 객체로서의 세 분 하나님이 하나이셔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부 하나님을 엄마로, 성자를 복중의 아기로 봄으로써, 완전히 다른 두 몸과 인격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설명하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고(요14:28), 내가 아버지 안(요10:38)에 계신다는 말씀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자께서 성부 안에 계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내 안(요10:38)에 계셔야만 한다. 이와 같이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다는 말씀과 모순되지 않으려면 아기가 엄마 복중에 있어야 함은 물론 또한 엄마가 아기 뱃속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아기의 뱃속에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유로 세 분이 하나이심을 설명하는 것은 성경적 논리와 일치하는 삼위일체론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엄마와 복중 아기의 비유는 마치 콩 자루 속의 한 알의 팥 같은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항상 분리된 두 상태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 분 하나님이 완전히 다르시면서도 완전한 하나의 상태로 존재하신다는 것은 마치 전혀 별개의 객체인 남녀 부부가 분리할 수 없는 완전한 한 몸의 육체가 된 것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이 하나된 몸은 이 한 몸이 남편의 몸도 되고, 동시에 이 한 몸이 아내의 몸도 되면서도, 또한 이 한 몸은 단일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간에 전혀 어떠한 행동이나 인격에 방해하거나 방해받지 않고 각각 자신의 고유한 상태 그대로 존재하여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경우가 가능한가? 그래서 혹자는 하나님의 삼위일체 교리를 바로 이해하려는 것은 마치 숟가락으로 태평양 물을 해변 모래사장에 퍼내어 태평양 물을 말리려 드는 것과 같은 신비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이나, 지혜나,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있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불을 비유로 하여, 성부 하나님을 불로, 성자 하나님은 빛으로, 성령 하나님은 열로 설명하면 이러한 불가사의한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비밀을 풀 수 있다.

2. 과학으로 설명되는 삼위일체 하나님
올림픽 100m 경기에서 100m를 10초에 주파하여 우승한 육상 선수가 쌀 20kg을 지고도 다시 100m를 전과 동일하게 10초에 주파했다고 한다면, 이것은 정신이 좀 이상하게 된 사람의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이 실제로 있다. 아는 바와 같이 빛의 빠르기는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300,000km) 돈다. 그리고 전파의 속도도 빛과 동일하게 300,000km/sec이다. 그런데 빛은 파동(wave)과 입자(particle)로 구성되어 있고, 전파는 파동으로만 되어 있다. 입자가 없는 파동만인 전파의 속도와 파동이 입자를 짊어지고 있는 빛의 속도가 완전히 똑같은 것이다. 이것이 실제요, 사실이다. 어떻게 이와 같이 파동만으로 된 전파의 속도와 파동과 입자로 구성되어 있는 빛의 속도가 완전히 동일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을 현대 과학이 설명하고 있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로 증명한 것이다.

빛을 구성하고 있는 파동과 입자의 상태는 파동이 어떠한 경우에도 입자를 방해하거나 간섭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도 입자에게 전혀 방해받거나 간섭받을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입자도 파동을 방해하거나 간섭할 수도, 간섭받을 수도 없는 자신만의 절대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이 분리할 수 없는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인 하나의 상태 즉 마치 단일 원소만의 상태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빛을 구성하고 있는 파동은 빛의 또 다른 하나의 구성 요소인 입자로부터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으므로 파동 자신만의 고유 속도인 300,000km/sec로 진행하는 것이며, 이 때에 이 입자는 파동을 방해할 수 없으면서도 파동과 분리할 수 없는 단일 원소의 상태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입자도 파동과 완전히 동일하게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동과 입자로 구성되어 있는 빛이 파동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파와 똑같은 속도를 내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빛(요일1:5)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의 의미를 하나님은 하나님의 속성과 일치하도록 빛을 설계하셨고, 이 설계대로 빛을 창조하셨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 빛을 구성하고 있는 파동과 입자의 상태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완전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세 분 하나님은 빛의 파동과 입자처럼 서로가 제한할 수도, 제한 받을 수도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인격과 독립적 객체로 존재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세분 하나님은 빛이 파동과 입자의 분리할 수 없는 단일체로 존재하는 것과 같이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상태로 계신 것이다. 이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가 방해하거나 방해받을 수 없는 자신들만의 인격과 몸을 각각 갖고 있으면서도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는 사람들 간에는 있을 수 도 없는 일이겠지만 세 분 하나님은 이와 같이 계시며, 이것을 하나님이 친히 빛으로 증명하고 계신 것이다.

이제는 현대 과학이 숟가락으로 모래사장에 퍼내어 태평양 물을 말리려드는 것과 같은 신비한 성경적 논리인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성경과 모순되지 않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과 과학이 모순된다고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일반적인 논리로 보더라도 가장 완전한 학문이 '자연과학'이요, 자연과학이 바로 '자연의 법칙'이며, 자연의 법칙이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과 과학은 모순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모순이 되는 어떤 교리도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일은 절대로 삼가야 할 것이다. 성경과 모순이 되지 않게 증명될 때까지 기다리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알파(α)요 오메가(Ω)이심으로 영원 전부터 삼위일체 상태로 존재해 오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삼위일체로 존재하신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성자 하나님을 예수로 국한시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성자 하나님을 예수로만 이해하는 것은 마치 마태복음 1장 이전에는 성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괴상한 논리와 같은 것이다. '예수'란 영원 전부터 삼위일체 상태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중, 성자 하나님이 잠시 동안 인간으로 오신 인간으로서의 이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은 오류로 인하여 成肉身(incarnation)하신 예수님을 '聖肉身하신 예수님'으로 오해하게 한 점도 신앙적으로 대단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 과학이 증명한 예수 부활
어느 신학대학 교수가 예수 부활이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을 해서 교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 말은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요20:19-20),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영(ghost)이 아닌가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9)고 하신 성경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과연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이 살과 뼈가 있는 몸으로 마치 영처럼 밀폐된 곳을 통과했다는 예수 부활을 믿을 수 있을까? 어쩌면 예수 부활을 부인한 이 신학대학 교수가 오히려 학자적 논리와 양심을 가진 용기 있는 정직한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일을 내심 갈등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잘 믿고 있는 것처럼 외식하는 일을 가장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은 이 같은 육체로 부활하신 예수가 밀폐된 곳을 통과한 성경 말씀이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사실임을 증명해 준다. 유리창을 통과한 빛은 유리창을 통과하기 전의 빛과 마찬가지로 파동과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어떻게 유리에 구멍을 뚫지 않고 무수한 입자가 계속해서 유리를 통과해 들어올 수 있을까? 물론 전파와 같은 파동은 당연히 구멍을 뚫지 않고 유리를 통과할 수 있다. 그런데 빛은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이며, 입자가 파동의 속성에 전혀 영향을 끼칠 수 없고, 그러면서도 입자는 파동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파동만인 전파와 파동과 입자로 된 빛의 속도가 완전히 동일한 것과 같은 원리로 파동이 유리를 통과할 때 입자도 파동과 함께 유리를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육신의 예수는 밀폐된 곳을 통과할 수 없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의 부활체는 영이시면서 동시에 육체이신 신령한 몸이신 영체이다. 이 같은 영체가 되셨다는 것은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인 빛과 같이 영은 부활체를 방해할 수도, 방해받지도 않는 영만의 고유의 속성을 갖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부활체도 영을 방해할 수도, 방해받을 수도 없는 부활체만의 고유한 속성을 견지하면서 이 영과 육은 빛의 파동과 입자와 같이 분리할 수 없는 하나로 변화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의 몸도 빛과 같이 이런 신령한 영체가 되었기 때문에 빛의 파동이 입자의 방해를 받지 않고 유리를 통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은 부활체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고 벽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때에 부활체가 벽을 통과한 것은 빛의 경우 파동을 방해할 수 없으면서 파동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상태이므로 입자도 유리를 통과하는 것과 같이 부활체가 영을 방해할 수 없으면서 영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기 때문에 부활체도 영이 벽을 통과할 때 벽을 통과한 것이다.
이제는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로 구성되어 있는 빛이 밀폐된 유리를 통과하고 있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영이시면서 동시에 살과 뼈가 있는 영체이신 부활 예수가 밀폐된 벽을 통과하신 사실을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진리의 성경 말씀을 과학적 무지로 인하여 오히려 비과학적 논리라고 하는 어리석은 주장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경은 비과학적인 말씀이 아니다. 아직도 과학이 덜 발달해서 성경의 모든 내용을 과학이 증명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여 모순으로 여겨지는 성경의 말씀들은 이를 증명할 수 있을 만큼의 과학의 발달을 기다려야 할 것이지, 성경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매도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출처 - 사복음서 연구원 (구유침례교회 최영삼 목사 글) http://www.4gospels.cc

==========================================================================
[re] 삼분설의 근거 - 이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근호 2004-08-10 17:31:37, 조회 : 263, 추천 : 32

과학적 진리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에서 말하는 진리라는 것이 결국 언어의 집에 갇혀 있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어에서 해석으로, 그리고 해석에서 진리로 이르는 통로가 사람마다 다 다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진리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는 생각을 단지 과학 언어에서 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차용하여 자기 진리로 보존하는 형식을 취할 뿐입니다.

개인만의 진리이지 보편적 진리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삼위일체론 과학적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론이나 과학이나 모두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비진리이고 따라서 호환이 가능합니다.

즉

삼위일체를 구성하는 합리적 이성의 게임이 그대로 근대 이후에는 과학적 이성으로 전환되었기에 그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이 되는 능력인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에서 나올 수 없고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
[re] 삼분설의 근거 - 이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하영 2004/08/10 15 261

[re] [re] 삼분설의 근거 - 이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성희 2004-08-10 20:52:39, 조회 : 222, 추천 : 32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 마디 거들겠습니다.
(저는 물리전공으로 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학으로 성경이나 신앙을 해석하려고 하는 최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의 전공분야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자세히 읽어보면서
한마디로 참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물리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마찬가지로 웃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조차도 과학의 대상으로 인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발상이
애초부터 잘못 된 것 같습니다.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하고 뉴튼역학으로 고전물리학을 완성했던 뉴튼은 자신을,
자기의 과학적 발견을 마치 아주 넓은 바닷가에서
신기한 조개 하나를 발견하고 좋아해 하는 아이에 비유했습니다.
인간의 과학이란 마치 부풀어오르는 풍선과 같아서 커질 수록 표면적이 커지듯이
알아갈 수록 모르는 부분이 더 넓어져 가는 것이 과학입니다.
엄청난 과학 지식이 오늘날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학 지식을 모아도 그 속에 생명은 없습니다.
그 속에는 복음이 없으며, 복음을 알 수있는 조그만한 단서도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

삼위일체를 빛의 이중성으로 비유한 것은 재미있는 발상이긴 하지만 이근호 목사님의 지적처럼
인간들의 언어 장난일 뿐입니다.

빛의 본질에 대한 논쟁의 역사는 오래 되었는데 결국
(과학적인 설명을 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최대한 요약하겠습니다..)
몇가지 실험과 발견을 통해서 빛은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빛이나 전파나 X선 감마선 등은 모두 동일한 "전자기파"입니다.
전자기파는 모두 다 광속으로 전달되며 다만 파장(또는 진동수)의 차이로 다른 특징들을 나타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는 영역인 가시광선(흔히 빛이라 부름)은 그 파장 범위가 760nm~380nm입니다.
그 외의 전자기파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빛은 워낙 파장이 작은 전자기파이기 때문에 입자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파동성(회절이나 간섭현상)을 보기가 쉽지 않고
전파는 파장이 너무 커서 파동으로만 보이고 입자성을 보기가 쉽지 않을 뿐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하면 질량(입자)과 에너지는 등가입니다.
서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유명한 E=mc^2)
에너지가 질량이 될 수 있고,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진공상태에서도 엄청난 에너지만 존재하면 그곳에서 질량이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과학으로 입증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저는 이것으로 무에서 유가 생겨난
천지창조를 설명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욥의 말처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전자기파인 빛의 본질은 하나의 에너지 덩어리입니다. 정지질량이 없습니다.
물질이 아님에도 입자의 성질을 나타냅니다.(파장이 워낙 작아서)
마찬가지로 물질 입자로 분명히 알려진 전자와 같은 소립자는
미시세계에서 파동의 성질도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을 드브로이의 물질파 이론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빛 뿐만 아니라 물질(입자)도 파동성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물질의 이중성이라고 합니다.

빛의 이중성만 가지고 삼위일체를 설명할 것이 아니라
아예 물질의 이중성을 가지고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것이 더 그럴 듯 하겠는데요..
하지만 다 부질 없는 짓 아닙니까?
알량한 과학 지식을 도입해서 마치 성경을 신비하게 해석이나 한 듯이 설명하는 것을 보면..
제가 봐도 가소로운데,..
정말 과학하는 사람들이 보면 웃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부활체로서 밀폐된 공간을 뚫고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믿어지는 사람은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빛이 유리를 통과하는 것으로 비유하는 것은 곤란하네요.
빛이신 예수님이 투명한 유리로 밀폐된 방을 들어오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물체를 빛은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 논리라면 유리창이 없는 방에는 부활체가 들어가기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빛은 유리가 아닌 다른 물체에는 대부분 흡수되거나 반사되기 때문이죠.

제가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성경 말씀을 과학적으로 억지로 풀려고 하는 것은 불신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물 위를 걸었던 예수님에 대해서는 또 어떤 유치한 과학으로 설명하려는지 궁금합니다.
중력을 만드신 분이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하겠습니까?
과학으로 성경을 해석하려 하지 말고...
성경으로 인간의 과학을 보고 인간의 이성을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
몸 경험의 계시화
송태준 2004-08-12 09:38:36, 조회 : 260, 추천 : 35

정신병자들은 자기들을 덮친 생각이나 경험에 사로잡혀서 사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정신분열 환자들이 몇 있는

데 자기 눈에 보이는 귀신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예배당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온통 자기 경험을 절대시, 계시화 하는 고집이 강하다는 것을 때때로 느낍니

다. 저 역시도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계시를 말하면서 적용, 레마의 말씀, 나에게 주시는 말씀, 하나님의 음성 등을 강조하는데 주 예수는 없고 주

가 된 나를 발견하곤 합니다.

자기 경험이 진리가 된 설교를 들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십자가와 우리의 경험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사람은 자기 생각과 경험 속에 빠져 살게되어 있는데 몸 경험의 계시를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란 무엇입니까?
==========================================================================
[re] 몸 경험의 계시화
이근호 2004-08-12 10:19:29, 조회 : 314, 추천 : 31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정신병자들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병신들!

자기 구원을 위한 신을 창안해서 창작해내는 병신들!

따라서

귀신들렸느냐 아니면 성령이 임재했느냐의 판정을

과연 나를 유익되게 하느냐 아니면 나를 망하게 하느냐로 정해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은 인간들의 이러한 판정에 맞추어

그들로부터 버림받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그런 모습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예수님을 악마의 대장으로 보았고, 이런 유대인을 예수님은 악마의 자식으로 보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망하게 하면 악마의 뜻으로 보고,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봅니다.

따라서 인간은 반드시 예수님을 배척하게 되어 있지 결코 자기 힘으로 예수님을 영접할 재간이 없습니다.

바로 이 점을 고백하는 그것이 성령의 체험이고 성령으로 인한 고백입니다.

공식을 만들자면,

귀신들린 자= 살기 위해 내 힘으로 구원받자!

성령이 임재한 자=예수님의 의도로 구원되었기에 망하는 쪽으로 나아가자!

##############################################################################################
(질문)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이성희 2004-08-18 11:38:25, 조회 : 273, 추천 : 41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 "

목사님..
여러 사람들의 질문과 그 답변들을 읽으면서 많이 배웁니다.
요 며칠동안 질문이 너무 없는 거 같아서 질문을 드립니다.

위 성경 본문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는 무엇을 두고 한 말입니까?
그리고 경건은 무엇이며 그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요?

==========================================================================
[re] (질문)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이근호 2004-08-18 12:09:13, 조회 : 383, 추천 : 31

성도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그 실존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건'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연습이란, '늘 유지해 있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비해

세속정신이란, 항상 보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보이는 쪽으로 결과물을 갖고자 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경건이란, 보이지 않는 분의 힘에 매여있으며 그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그 힘이 작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분은 이 지상에 계신 분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하늘에 계산 주님이심을 이 지상에 있는 성도가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신화'란, 보이는 것을 재료로 하여 인간의 탐하고 있는 욕망을 현실화 시키고자 하는데 동원된 의식들입니다.

끝까지 이 인간적인 가능성에 희망을 두겠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앞으로 몇 년 후에 우리 교회 교인수가 몇 배나 불어납니다"라든지,

"앞으로 몇 개월 후에 우리 교회 성전이 완공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가 됩니다"라는 희망을 제공하는 것이 모두

라든지

혹은

"앞으로 몇 년 후에 중국이 복음화 됩니다. 우리 선교사들이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라는 소리들이 모두

부질없는 신화에 해당됩니다.

##############################################################################################
치매
송태준 2004-08-25 09:44:47, 조회 : 258, 추천 : 32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

우리 할머니는 교회당에 다니다가 치매가 걸려서 죽을 때까지 집에 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주일성수도 못하고

새벽기도도 못하고

십일조, 헌금도 못하고

교회에서 경건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치매로 다 깨어지고

죽을 때까지 벽에다가 똥 바르고 살다가 갔습니다.

전혀 경건(?)과 거룩(?)은 찾아 볼 수 없더라고요.

이근호 목사님 치매 걸려도 구원 받나요?

입으로 시인과 마음으로 믿음을 언제 해야지 구원 받나요?

치매 걸린 울 할매는 아무 것도 모르던데```

==========================================================================
[re] 치매
이근호 2004-08-25 10:23:14, 조회 : 269, 추천 : 36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치매에 걸렸으며

모든 자도 치매를 향하여 질주하고 있는 중입니다.

(65세 이상은 10%, 85세 이상은 50%)

예수님의 피는 치매자 마저 구원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
[re] 치매
송태준 2004-08-25 10:33:21, 조회 : 239, 추천 : 32

아멘

-------------
사창가
송태준 2004-08-27 10:47:05, 조회 : 243, 추천 : 36

교회당 다니는 청년 중에

사창가에 간적이 있는 청년이

저에게 사창가 갔다온 이야기 했습니다.

완전히 뽀르노죠 ㅎㅎ

성화 운운 하시는 분들에게는

지송스러운 이야기지만

지옥을 가도 몇 번은 들어갈 놈이죠

죄책감에 시달려 저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는 것 같아서

나는 늘 사창가 경험을 한다고 했죠 ㅋㅋ

##############################################################################################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 에 대해
신직수 2004-08-27 13:47:54, 조회 : 205, 추천 : 40

목사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죠?

전 아주 잘 있습니다.

그냥 질문 한 가지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들어왔습니다.

일하면서 라디오 들으면서 그냥 생각해봤습니다.

태진아 쇼쇼쇼에서 태진아가 "부자되세요" 를 항상 외치는 것 같더라구요? 지금까지 두 번들었지만,,,

근데 저들이 훨씬 더 솔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교회는 복음도 아니고 무슨 게임도 아니고

샤머니즘으로 하나같이 뜰똘뭉쳐서

하나님과 예수님이름으로 부자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하며

부자 안되면 기도가 부족하고 믿음이 부족하다고 정죄하니

아예 저들처럼 "부자되세요" 라고 외치면서 부자되는 비결을 가르쳐 주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계시록 3:15절에 있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니가 솔직해 져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삶을 살던지 아니면 저들처럼 솔직하게 행동하던지의 말씀이 아닌가 싶어서 솔직하게 적어봅니다.

이건 복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상한 종교성으로 있느냐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는 그런 말씀인 것 같다고 생각이 됩니다.

다른 해석도 봤는데

뚜렸하지 않아서요?

항상 감사합니다.

==========================================================================
[re]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 에 대해
이근호 2004-08-27 20:56:10, 조회 : 229, 추천 : 30

>"너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라"라는 의미는 포괄적으로 봐서 가능한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해석에 있어 기본은 '고발'에 있습니다.

즉 '주'라고 거론되는 모든 곳에는 '심판'이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발이란 아예 대상을 피고로 간주하고 실시되는 겁니다.

온전치 못한 것이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교회'라는 단체들입니다.

교회조차도 온전치 못할 진대 다른 단체나 국가는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이런 지경에 성도는 외롭게 버티고 있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피'만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라는 말씀은

"이 지상에서의 교회는 그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이 원하는 교회에 도달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구원될 자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사람 손에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직접 나서서 건져내신다는 겁니다.

==========================================================================
[re]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 에 대해
신직수 2004-08-27 22:00:26, 조회 : 191, 추천 : 43

분명하게

찝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
무의식
송태준 2004-08-28 09:59:08, 조회 : 190, 추천 : 32

이근호 목사님!
무의식에 대해서 설명 좀 해 주세요.
요즘 내적치유 한다고 하면서```
예를 들면 엄마와 딸의 불화로 고민 하는 가정에
그 원인이 어디에 있나 찾던 가운데
아들 못 낳고 딸 낳았다는 구박 때문에
생후 6개월의 딸을 진흙 바닥에 던진 것을
그 딸의 무의식에 들어가 찾아 해결 했다고 하는데
(물론 여기서 하나님의 개입 - 신화가 들어가는데 목사가 기도하는 가운데 진흙 바닥에 던져진 그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의식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
[re] 무의식
이근호 2004-08-28 12:06:53, 조회 : 215, 추천 : 37

무의식은 단독으로 거론되는 개념이 아니라

'주체가 무엇인가?'라는 근대 이후 줄 곧 서양에서 관심가져온 '주체 개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나타난 행위를 통해서 '내가 이렇다"를 아는 것에 있는 것이지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추방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프로이트 이 전에는 인간의 이성과 감정과 의지로 구성된 의식 요소만으로 '주체'를 규정하려고 했으나

그것으로 해명되지 않는 정신질환적 증상들이 드러나면서

무의식적인 요소로 확대됩니다.

더나아가서

무의식이 오히려 의식보다 근원적이다는 점까지 들추어내게 됩니다.

무의식은 평소에 원칙적으로 감추어져 있고 억압되어져 있으나 의식이 느슨할 때는 밖으로 노출됩니다.

문제는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변형된 모습으로 노출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해된다는 언어 규칙에 합치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 비해

무의식에서 나온 행위는, 기존의 언어규칙에 부합되지 않게 나오니 이해하기 힘든 겁니다.

의식에서의 언어 규칙이란, 언어의 의미가 언어의 표현방식과 대체로 일치됩니다.

그런데 무의식의 언어 규칙은 표현된 방식에서 의미가 고정되어 머물어 있지 못하고 자꾸만 미끌어져버립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대치(代置)'와 '압축(壓縮)'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무의식적 사고방식이 외부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해결책은, 이 대치와 압축을 풀면되겠지요.

그 푸는 방법은 이러합니다.

무의식 속에서 그 사람의 욕망을 평소에 강하게 억압해 왔던 기존의 윤리나 도덕이나 양심 같은 것을 외부에서 말해줍니다.

그것은 곧 그 사람을 둘러 싼 타인들의 욕망이지 결코 그 개인의 욕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 개인의 욕망이라면 그 사람이 움쳐려들거나 도망치려고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타인의 욕망이란 가까운 식구와 가족들이 요구하는 '가문의 영광'이라든지, 부모님의 체면과 위신, 혹은 교회 목사의 신앙관, 종교관, 교우들의 기대감 같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 것이 아닌 나의 인생관을 그동안 뒤집어 쓰고 온 것을 안 순간부터 본인의 욕망을 실어 줄 새로운 언어체계를 끄집어 거기에다 자신의 욕망을 실어 고백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동안 응어리져 상처받아 왔던 자신의 소리입니다.

외부인은 그것을 묵묵히 들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해주면 됩니다.

"이제 당신은 자아를 찾았습니다. 이제부터 남이 요구하는 인생을 살지 마시고, 자신만이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입니다.

그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해방감을 느낄 것이요, 그것이 의식적으로 '자기를 위한 자율성'으로 새로운 윤리체제를 다듬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들에게 요구되는 '주체성'입니다.

이러한 독립성이 상실되게 되면, 자폐증세를 나타내게 됩니다. (사실 자폐증의 대부분은 유전적 요인 70%, 후차적인 환경적 요인이 30% 정도 차지합니다. 그러니까 치매와 마찬가지로 뇌 신경 조직에 이상이 생긴 신체적 질환인 경우입니다.)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5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4,767 묻고답하기 [ 노회 재판국에서 있었던 이근호 목사의 최후 변론 ] - 2003/3/17 이근호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7-03-10
4,766 묻고답하기 [ 이근호 목사 제명 판결문 전문 ] - 2003/3/16 이근호 - 최고관리자 07-03-10
4,765 묻고답하기 [ "평신도 신학1"을 읽고 ] - 2003/3/13 손성식 - 최고관리자 07-03-10
4,764 묻고답하기 중국어 자료에 대하여 문의 올립니다.^^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0
4,763 묻고답하기 [선악과, 생명나무... ] 2005-11-10 - 최고관리자 07-03-10
4,762 묻고답하기 [칼바르트 신학자에 대해] 2005-10-01 로마서 최고관리자 07-03-10
4,761 묻고답하기 [루터의 십자가신학] 2005-08-27 [신학] 최고관리자 07-03-10
4,760 묻고답하기 [설교에 있어서 적용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 2005-08-10 - 최고관리자 07-03-10
4,759 묻고답하기 [치유기도를 계속해야하는지요?] 2005-07-06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7-03-10
4,758 묻고답하기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 2005-05-19 - 최고관리자 07-03-10
4,757 묻고답하기 [지식의 칼 부림은 의의 혀를 낼름거린 목아지만 남는다] 2005-05-04 [신학] 최고관리자 07-03-10
4,756 묻고답하기 [말씀운동 과 이근호의 언약사상의 차이점] 2005-04-19 디모데전서 최고관리자 07-03-10
4,755 묻고답하기 [하나님과 하느님에 대해서] 2005-04-03 미가 최고관리자 07-03-10
4,754 묻고답하기 [완전한 인간 존재를 창조할 수 있는 단 한가지 길은] 2005-01-12 레위기 최고관리자 07-03-10
4,753 묻고답하기 [인간 구원을 위한 자기부인? 자기부인이 구원조건?] 2005-01-10 미가 최고관리자 07-03-10
4,752 묻고답하기 [신학자 칼빈에 대한 펌글 평가 요구] 2005/01/02 [신학] 최고관리자 07-03-10
4,751 묻고답하기 [십자가의 율법화] 2004-12-11 로마서 최고관리자 07-03-10
4,750 묻고답하기 [목사는 이단입니다.] 2004-11-30 - 최고관리자 07-03-10
4,749 묻고답하기 [행함과 열심에 대해서] 2004-11-03 [신학] 최고관리자 07-03-10
4,748 묻고답하기 [목사님 실망입니다. 언약에 대해서] 2004-10-18 에스겔 최고관리자 07-03-10
4,747 묻고답하기 <개혁 노회>의 뜻은?] 2004-09-09 미가 최고관리자 07-03-10
4,746 묻고답하기 [의 뜻은?] 2004-09-09 - 최고관리자 07-03-10
4,745 묻고답하기 [진주는 무엇인가요? ] 2004-08-28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7-03-10
열람 ➜ 묻고답하기 [예수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 2004-08-04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7-03-10
4,743 묻고답하기 [화염검에 대하여] 2004-07-24 역대하 최고관리자 07-03-10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