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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함의 의미 ] 2004-02-11묻고답하기빌립보서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함의 의미 ] 2004-02-11

이름 : 관리자(IP:122.47.55.30)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함의 의미
김대식 (Homepage) 2004-02-11 11:21:42, 조회 : 288, 추천 : 25

빌립보서 1장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기서 투기와 분쟁에 따른 그리스도의 전파는 무슨 의미입니까? 좀 모호하기도 하고 제가 이해력이 부족해서 파악이 잘 안됩니다만 현대어 성경은 구체적인 의미로 설명인 것 같은데 바르게 번역된 것인지? (명성 때문인지) 단순히 이해를 잘 못해서? 또는 어린 성도(?) 그런 표현 쓰는 분도 있던데요 / 성경의 중심사상과 그 전개(이근호 목사)의 설명을
{ [ ] 내용 발췌 }

예를 들면
[ 사도의 옥에 갇힘과 사도의 자신의 인생목표 설정과 사도가 당한 오해같은 것은 사도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개인만의 문제라면 사도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편지할 자격을 상실합니다. 사도 주변에서 일어나고 주어진 상황은 그 가운데서 사도가 어떻게 처신하며 그 처신한 것이 복음의 의미와 얼마나 일치점을 갖고 있나를 보여 줄 수 있기에 헛된 것이 아닙니다. 사도가 환경에 구애를 받고 자유를 상실한 듯한 인상을 주지만 그러나 복음이 주는 기쁨이란 바로 그 가운데서 비로소 발생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 복음이 갖는 본질입니다(1:18/2:17,29/3:1/4:4). 복음의 주체는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데 있습니다(2:5) ]

복음증거로 인해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오해 발생도 복음이 갖는 본질인지?, 그들(투기와 분쟁)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데서 나타나는 현상인지? 아니면 빌 2장 이후의 경계해야할

( [ 교회내에 분쟁이 있다는 것은 복음의 진수를 모르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곧 예수님의 낮아지심에 대한 몰이해 때문입니다(2:3). ] )

제거 (거짓 복음인지) 대상인지?

즉 빌 1:15의 투기와 분쟁으로,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는 그냥 아직 잘 몰라서, 어려서 미성숙한, 아직까지 그리스도의 마음을 향한 자세 부족의 연약함인지?
아니면 거짓 복음의 형태에서 나타나는 사도가 격는 필연적인 고난으로 나타나는 당연성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바울의 깐깐한 성격으로 인해 나타난 가는 곳마다 분쟁 다툼식의 자신의 성격을 염두한 말인지, 그에 반해 조용한 스타일의 증거라는 두 가지 스타일의 복음증거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미인지?

(빌 1:15-18)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개역한글)

(빌 1:15-18)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시기하거나 다투는 마음으로 하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뜻으로 합니다 / 좋은 뜻으로 하는 사람들은 내가 복음을 변호하기 위해 세우심을 받은 줄을 알고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지만 / 시기하거나 다투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들은 나의 감옥 생활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는 생각을 품고 다투는 마음으로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참으로 하든지 거짓으로 하든지, 무슨 방법으로 하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잇으니,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기뻐할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빌 1:15-18) 어떤 사람들은 사실 시기와 경쟁심으로 그리스도를 전하지만 선의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선의로 전하는 사람들은 내가 복음을 수호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하지만 / 이기적인 동기에서 전하는 자들은 성실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나를 괴롭힐 생각으로 하는 것입니다 /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가식으로 하든지 진실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니 나에게는 기쁜 일입니다. 또 앞으로도 기뻐할 것입니다.
(공동번역)

(빌 1:15-18)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시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선한 뜻에서 전파하니 / 저들은 나의 갇힘에 고난이 더하여질 줄로 짐작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 / 이들은 내가 복음을 지키려고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전하느니라 / 그러면 무엇이냐? 가식으로나 진실로나 무슨 방법으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것으로 내가 기뻐하며 앞으로도 기뻐하리라 (한글 킹제임스)

(빌 1:15-18) 어떤 사람들은 시기와 다툼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좋은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 좋은 뜻으로 전하는 사람들은 내가 기쁜 소식을 변호하기 위해 임명되었다는 것을 알고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순수한 동기로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 갇혀 있는 나를 더욱 괴롭힐 생각으로 이기적인 야심에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그릇된 동기에서든 참된 동기에서든 어쨌든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이므로 내가 기뻐하고 앞으로도 기뻐할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

[현대어 성경] (빌 1:12-18) 『[주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가 여기서 당하고 있는 수모가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 여기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병영 안에 있는 사병들에 이르기까지도 이제는 내가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죄 없이 감옥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이처럼 내가 감옥에 갇힌 채 참고 견디는 것을 본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감옥에 가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5) 『물론 개중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쓰시는 데 대한 질투심으로 덩달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두려움 없는 전도자라는 명성을 듣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순수한 동기에서 전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 순수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은 주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신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일에 쓰시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도에 애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잘 해내어 감옥에 갇혀 있는 내가 속상해 하고 질투하게 만들려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 16절과 같음 / 그러나 그들의 동기야 어떻든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만은 사실이니 기뻐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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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함의 의미
이근호 2004-02-11 13:44:29, 조회 : 288, 추천 : 40

>사도 바울이 갇혀 있다는 점에 대해 빌립보 교회는 상당히 걱정을 한 것 같습니다.

주님의 일이 끊어질까봐 말입니다.

하지만 사도의 눈에 봐서는, 개별 교회를 넘어서 일하시는 예수님의 지속적인 활동을 소개하면서

빌립보 교인들이 너무 낙심하지 말고 자기와 함께 기뻐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바울처럼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하고, 이기적인 삶의 보람을 찾기 위해 복음을 이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혹은 사도 바울의 명성이 시기나서, 사도 바울이 갇혀 있는 틈을 타고 사도의 흉내를 내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점에 대해서 주님과 다 알고 계신 사항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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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을 감당하는 자세에 대하여
박상수 2004-02-11 16:53:35, 조회 : 265, 추천 : 47

인간의 구원받는 것이 인간의 노력이나 신앙의 행위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그러면 교회에서 우리가 맡은 소위 직분이라는 것들을 감당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드려지는 것이어야 합니까?(그리고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것이라'의 '행함'인지요?)
성가대나 교사 임원 집사 등의 맡겨진 일들의 의미는 어떻게 찾아야 올바른 것인지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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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직분을 감당하는 자세에 대하여
이근호 2004-02-11 17:28:37, 조회 : 272, 추천 : 41

사람이 맡긴 모든 직분은

그 자체가 무효입니다.

목사가 시키든, 장로가 시키든, 같은 교인들이 시키든

그렇게해서 맡겨진 직분은

직분을 지시한 단체나 사람을 의식하게 만들고 결국 사람에게 종속되게 되고

예수님이 주신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아예 성경 말씀을 적용할 대상조차 되지를 않습니다.

진정한 직분은,

본인 안에 있는 성령님의 지시에 의해서

본인이 자발적으로 수용한 것입니다.

즉,

봉사하는 본인과 예수님 사이에는

그 어떤 인간의 눈치나 시선이 개입될 틈이 전혀 없는 겁니다.

만약 틈이 있다고 여기신다면,

직분 자체를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전혀 틈이 없이, 순전히 예수님의 지시에 의해서 제공된 것이라고 (경로나 절차가 어떻든 상관없이)

알고 계신다면,

이제 남은 것은 봉사입니다.

여기에 주의할 것은,

그 봉사에 대해서

근무평가나 업무 능력을 측정할 자격이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명심하는 겁니다.

주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봉사를, 본인이 직접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이 와서

"봉사를 제대로 하고 있느니 없느니" 관여할 자격이 없습니다.

만약 다른 이의 눈치를 봐가면서

직분을 감당하고 계신다면,

직분 자체가 원인 무효임을 본인이 어리석어서 몰랐든지,

아니면 본인이 기독교 신자가 아니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안믿고

교회 믿고 천국이나 갈까를 시도한 불신자의 길로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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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및 질문이예요
구도자 2004-02-12 10:50:41, 조회 : 389, 추천 : 41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하나가 되었을때...
뱃속에 아이가 자랍니다.
그 아이가 이미 지옥에갈지. 천국에 갈지 하나님께서 선택해 놓으셨다면...휴....

아무리 인정하려해도.. 그게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음이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인간은 이미 망하도록 되어진 존재..죽어야할 존재라는걸..인정하지만.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구원의 선물을 받았다면..그사랑으로 인해너무 기뻐하겠지만.

구원을 못받는 선택받지 못한자로 택함을 입었다면.. 그 얼마나 끔찍한지.

거절받은 인간이 너무 불쌍하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그 구원이 이세상 모든사람을 위함이 아닌..이미 선택받은 자들만을 위한 구원의 역사라면..

선택받은 자들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복음이되겠지만..

선택받지 못한자들은 그 얼마나 가슴아픈 복음이 될련지.

여러 사형수가 사형집행이 진행될때.. 그중 몇을 아무런 이유없이 풀어준다면. 풀린자야 한없은 감사겠지만.

나머지 사형수들도 이렇다 말할수 없을 겁니다. 당연히 죽어야할 존재 기에...

하지만.

그냥 죽는것이 아닌 지옥이 있기에..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아야 한다고 하기에.

그냥 택한 백성들은 천국에서 살고 택함받지 못한 자들은 그냥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면...

예수의 십자가를 위해 가륫 유다를 예수를 팔도록 이미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면..

예수를 세번 부인하지만..그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세번 물어 회복하신 베드로에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면...

그럼 가룟유다는...너무다 불쌍한 인간인...메시아를 팔도록 선택되었다니..

그렇다면 하나님은 홀로 영광 받고자. 악도 때론 이용하신단 말인지요?

제가 배운건...인간이 스스로 죄짓되 그 것조차 선하게 바꾸시는 분이 하나님이라 들었는데..

하나님은 악과 연합할수 없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반신론이 생겼다지요. 신은 잔인하다. 신을 죽이자.!!

목사님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종종 드네요.

난 선택받은 백성일까? 선택받지 못한 백성일까?

가끔 누군가가 저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당신은 구원의 확신있나요? 구원받았나요?

그럼 지금은 그럴거라 생각하는데..죽어봐야 알겠줘..^^이렇게 말해야 되나요.

이첢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날 선택했음. 어떻게든 붙들겠지...내가 기도할려고. 예써 성경볼려고 하지말자.

기도를 시키는 분도 성경을 보고 알게하시는 분도 성령님이니.

그분이 알아서 하겠지...

이건 아닌데...로마서에도 그러지 말라고 기록되었 잖아요.

요즘 부쩍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이 마음에 와 닫지 않습니다.

아마도 내가 은혜못받고 내가 잘 되지 못하고. 내가 힘드니깐.

하나님께 서운해하는 정말 한심하고 답답한 생각이지만...

인간은 자기의 생각을 어떻게 마음대로 조절할수 없잖아요. 악하니깐.

거기다 구원에대해서도...꼬이고.

목사님 세례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는 구절이 있던데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요즈음 하나님의 사랑이 도대체 뭘까?

어떻게하면 그 사랑을 알수있을까?

성령님이 내안에 거할때의 그 세상이 줄수도 알수도 없는 그 평안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런 문제들로 고민 하고 있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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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상담 및 질문이예요
이근호 2004-02-12 17:00:55, 조회 : 408, 추천 : 42

상상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상상은 실제하고 다릅니다.

실제는 십자가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이미 이 세상이 질적으로 지옥이라는 겁니다.

지옥에서는 온갖 하나님관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골라, 골라"를 외치는 하나님 상인들이 판을 벌리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고객을 잡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12사도도 끼어 있습니다.

이들이 신약 성경을 통해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십자가 지신 그 분이 다시 이 세상에 쳐들어 온다는 소식입니다.

그 때가 오기 전에 회개할 자를 찾고자 합니다.

십자가에 의하면,

우리는 예정론을 따질 입장에 놓여 있지도 않습니다.

영생주기로 작정한 자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일단 십자가의 복음으로 즐거워하는 자에 한해서만
(즉, 자신은 마땅히 지옥에 가도 할 말이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대해서 감사할 이유가 성립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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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에 대해서 질문 드립니다.
장병엽 2004-02-18 09:00:20, 조회 : 191, 추천 : 45

마태복음의(1장.)족보와 누가복음의 족보(눅3장.)의 차이점은 혈통에 따라난것과 약속에 따라난자들의 차이 입니까?
아니면 어떤 의미가 따로 있습니까?
상세히 가르쳐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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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계보에 대해서 질문 드립니다.
이근호 2004-02-18 10:52:25, 조회 : 236, 추천 : 42

혈통이라든지 약속이라든지 따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택시에 사람에 태우고 갈 때,

"저기 사람이 간다"는 말이나 "택시가 간다"는 말이 같은 말입니다.

족보가 왜 다른가를 생각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족보는 하나 뿐어야 한다는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의 족보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에 따라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임의로 만들어내셨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들의 상식적인 족보관과는 단절성을 갖는다는 겁니다.

즉, 도저히 생길 수 없는 족보를 그동안 늘 까시고 온 셈입니다. 마치 철로 깔듯이 말입니다.

거기에 비해 누가복음의 족보는, 그 족보의 최정점을 하나님에게 두므로서 일상적인 족보가 하나님과의 연관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제사장 계열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는 언약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일관성을 두고 책임자 입장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말씀하는 겁니다.

즉 비상식적인 분이 아니라 상식적인 분의 입장에서 예수님이 나타나게 하셨다는 뒤로 뒤로 소급해서 증명하고자 누가복음의 족보를 거론하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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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갑자기 생각이 나서....
구득영 2004-02-18 13:02:04, 조회 : 186, 추천 : 41

칼 바르트에게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 교수님, 본문비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에 대한 바르트의 답변입니다. - 예, 낙후된 주석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존 갓세이가 정리한 '칼바르트와의 대화'(대한기독교서회, 현대신서 소책자 시리즈 78번)에 나옵니다. 아... 이 책 영천에 계신 김 목사님에게 빌린 것인데, 김 목사님 죄송합니다. 아직 제가 가지고 있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틈틈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잘 봅니다. 만나면 아쉬워도 돌려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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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란...
이성희 2004-02-18 13:26:32, 조회 : 217, 추천 : 43

이근호 목사님..
구약을 읽으면서 또 궁금한 것 몇가지 질문 드립니다.

다음에 예를 든 몇 구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열번이나 시험하였다고 했는데요...

시78:18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민6:16
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민14:22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시편106편 14절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이런 구절들을 보면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당연히(?) 먹을 물과 마실 물이 필요하였을텐데 그것을 구한 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 되는 건지요?
위 구절들에 보면 탐욕으로, 또는 크게 욕심을 발하여 구한 것 때문인지
만나가 질려서 고기를 구한 것 때문인지..
또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나 아니계시나 알아보려는 불신의 마음가짐으로 구했기 때문이지요?
아님 오직 육신의 생존을 위해서만 구한 것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 된 것인지요?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해도 그들과 똑 같은 행위를 했을테지요.
그렇다면 과연 광야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전혀 (물론 불가능하겠지만) 시험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어떤 식으로 그들의 일용할 물과 음식을 구해야할까요?

또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할때에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라는 성경구절을 들어가며 시험할 때,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했잖아요?
이런 말씀들을 생각하다보면 오늘날 믿는다는 사람들 역시 생존문제나 심지어는 말씀을 인용하여서도 하나님을 시험할 때가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오늘날 하나님을 시험하는 예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질문이 좀 산만하지만 질문의 의도를 충분히 아시리라 생각하며 현답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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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란...
이근호 2004-02-18 15:32:26, 조회 : 236, 추천 : 36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언약을 알 수 있는 기회로서 그들을 즉각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시지 않고

광야 길로 이끄셨습니다.

왜냐하면 언약을 모르는 채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그들은 그 약속의 땅에서 살 권리조차 없는 존재들이 됩니다.

약속의 땅은 언약의 원칙만 적용되는 곳입니다. (신약의 천국이 이 개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이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 취지는, 인간이 담고 있는 죄성을 들추어내어 언약의 본질을 그들 앞에서 펼쳐 보이기 위함입니다.

그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먹을게 없고 마실게 없다고 원망하는 것이 죄일까요?

아닙니다. 언약을 모르고, 언약의 하나님을 모른 것이 죄입니다.

예를 들면, 신명기 8:11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여유롭게 잘 사는 상황에 예상해서 도리어 염려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좋은 집에 풍요하게 살게 될 때에 도리어 하나님의 언약을 잊을까 염려된다는 겁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죄라는 말이 아니라, 또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잘먹고 잘산고 고백했다"고서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처사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게되면, 배부르게 먹고 살면서도 저주받는 자가 됩니다.

에덴동산의 풍요함이 결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저주를 사전에 방어될 수 있는 요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잘 살거나 못살거나,

그저 하나님의 언약 만으로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그런 상태를 하나님은 기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신명기 8:1-4에 보면, 바로 40년간이 광야를 헤매게 하시는 이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낮추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어느 정도냐 하면, "사람이란 떡으로만 살 때를 결코 '살았다'고 간주할 수 없음'을 알게 하는 정도까지 마음을 낮추게 하는 겁니다.

만약에 만나를 먹으면서, 만나라는 양식이 우리를 살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전히 '살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마치 오늘날 '하나님 덕분에 사업 잘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여전히 언약을 모르는 죽은 사람에 해당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주셔야 합니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생존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들이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대로 일관성있게 일을 추진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붙잡혀 있도록 뽑힌 자이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40년의 세월이 흐른후 이들은 비로소 언약궤를 앞장 세우며 요단강물을 향해 도하하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들의 선배를 광야에서 죽여서라도 )자신의 언약을 포기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덧붙여 말하기를,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 목사도 저주받게 될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개척교회 성공했습니다."

진정한 성도로서의 목사라면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직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언약대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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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과 찾음
김재국 2004-02-20 13:03:05, 조회 : 216, 추천 : 63

역대상 28장 9 절에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합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섬김이 언약의 일방적 성취와 대치되는 것으로 보이는 데
문제점은 무엇인지요?

그리고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버리시리라" 고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행위는 창세 전의 예정에 의한 것인가요? 솔로몬의 선택을 독려하는 것인가요?

저를 찾는 자와 버리는 자가 심판의 기준으로 보이는 데
이미 택한 백성이 작정되어 있다면 다윗의 솔로몬에 대한 유언의 실효성은 무엇입니까?

"솔로몬아 , 넌 이미 택함 받았으니 섬기거나 찾는 행위를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왜 이렇게 유언하지 않고 섬기고 찾으라고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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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섬김과 찾음
이근호 2004-02-20 16:10:28, 조회 : 211, 추천 : 32

>언약의 일방적 성취이기 때문에 다윗이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뜻을 증거할 입장에 놓여 있는 겁니다.

그 당시의 언약의 일방적 성취는 다윗의 일생을 통해서 계시화되어 소개됩니다.

만약 비록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이라고 할지라도 다윗에게 담긴 하나님의 일방적 성취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저주의 대상일 뿐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을 축복하지 아니하면 저주받는 식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하나님을 찾는 행위는 창세 전의 예정' 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 그런 지시를 내릴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은 언약 백성 위주로 제시됩니다.

이 '여호와 찾기'는 단군이나 세종대왕이나 연개소문이나 이 성계 장군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약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언약적 명령을 제시하므로서, 그들을 통해 '언약의 하나님'의 취지가 온 우주에 펼치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이미 택한 백성이기에 이 일이 주어지지 언약 밖의 백성들 같은 그냥 '내어버려 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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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섬김과 찾음-->여호와의 진노
김재국 2004-02-20 19:05:00, 조회 : 178, 추천 : 32

>(의문점) 그렇다면 다음의 성경 귀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찌기 두 번이니 저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엇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열왕기상11:9~11)

위의 열왕기상 말씀은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을 자의적으로 떠났음을 시사합니다.
그러한 솔로몬의 행위에 여호와 진노하시고 결국 언약의 변경을 실행하십니다.
이것은 언약의 일방적 성취가 아니라 인간의 순종여부가 하나님의 언약계획에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요?

솔로몬에 대한 여호와의 언약 변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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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섬김과 찾음-->여호와의 진노
이근호 2004-02-20 19:19:14, 조회 : 202, 추천 : 44

바로 그것이 '모세 언약' 시절의 특징입니다.

모세 언약은 인간의 행함을 통해서, 인간의 죄를 지적하고, 더욱 풍성케 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언약을 주심으로 솔로몬이 그 시대의 사람들을 대표하여 계속 아담 안에 들어 있던 죄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이 받은 진노란, 오늘날 신약 시대(새언약 시대)의 진노의 깊이와 다릅니다.

새언약 시대의 진노란 영원한 멸망을 뜻하고,
솔로몬이 받은 진노란, 자기 왕국의 멸망이라는 표상으로만 떠오르게 됩니다.(개인의 운명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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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다윗의 인구 조사
이성희 2004-02-21 06:59:56, 조회 : 220, 추천 : 36

늘 목사님께 많은 도움을 받아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중에 궁금하여 질문드립니다.

(1)
역대상21:1 부터 보면 다윗의 인구 조사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큰 죄가 되어 하나님께서 세 가지 재앙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나옵니다.
1절에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런 인구 조사를 했다는 내용도 잘 이해가 안가고 이것이 죄가 된 것도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민수기 2:32, 민26:63 등에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계수한 내용도 나오는 데 그것에는 전혀 시비(?)가 없었거든요..

(2)
그리고 구약을 읽다보면 많은 전쟁 가운데서 다윗이 거의 매번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응답하십니다.
예를들면, 다음 구절과 같은 것이지요.. 응답이 아주 구체적입니다.
사무엘하 5장
23.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온대 가라사대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24.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25.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모세와 같이 사람의 음성처럼 들은 것인지요?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사도행전에서 역시 성령께서 사도들이나 집사들에게 역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구절들이 있거든요.
예를들면..

사도행전 10장 19절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사도행전 8장 29절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사도행전 13장 2절
"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문제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가끔 "성령께서 내게 이리 이리 말씀하시더라"는 사람이 있어서
제가 그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할지 .... 저는 성령께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그런 사람들을 대하며 어떻다 말하기가 그렇네요..
오늘날에도 성령께서 개인에게나 교회에게 (음성)으로 말씀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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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 다윗의 인구 조사
이근호 2004-02-21 12:47:59, 조회 : 260, 추천 : 28

(1)과 (2)이 같은 질문입니다.

선지자가 응답받는 방식은 개인적인 심리적 현상으로 소급해서 결정지울 수가 없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처럼,

선지자의 형편 따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본인이 도저히 부인하지 못할 정도로 확실하게 전달하십니다.

예를 들면,

귀가 잘 안들리는 학생에게 선생님께서 본인이 알아 들을 때까지 반복해서 큰소리로 말씀하시는 취지와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도 거짓 선지자가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신명기 18:22에 보면, "여호와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바가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늘 그를 두려워 말찌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구 조사를 하라면 반드시 해야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것을 어긴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정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에 합치하면 성령의 뜻이요, 먼저 준 언약에 위배되면 인간의 욕심에 나온 말이라고 말입니다.

구약 때는 하나님깨서 자신의 종들이 비언약적인 죄를 통해서 새로운 언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합니다.

자기 딴, 하나님의 뜻이라고 장담했던 것이 지나가보면, 신비적인 허풍인 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에서는 무엇이 언약 안에서의 인도하심이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현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장담을 하다가 낭패보는 식으로 늘 인도받음, 그 자체가 성도에게 주신 은혜로운 인도하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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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다윗의 인구 조사 이성희 2004/02/21 36 221
[re] 교만이란... 예수님 없이도 살(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이희진 (Homepage) 2004-02-23 05:25:35, 조회 : 282, 추천 : 34

내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1)의 질문에서 드러난 다윗의 교만은 내가 한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교만의 모습이며, (2)의 질문에서 드러난 그런 자들의 교만은 하나님의 뜻은 몰라도 된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교만의 모습이죠.

(1) 다윗의 삶 속에서 실패한 사건을 세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시온성을 쌓은 것과 밧세바를 범한 것과 그리고 인구조사를 한 것입니다. 인구조사를 한 것은 한 마디로 다윗의 교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건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치신 것입니다. 민수기의 인구조사와는 개념이 다른 것이죠.

다윗의 인구조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는 요압 장군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다윗의 교만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대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인구조사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악하게 보신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세 가지 재앙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십니다.

1, 삼 년 기근 2. 대적에게 쫓겨다니는 것 3. 온역으로 이스라엘을 멸하는 것

다윗은 이 재앙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답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자세히 읽어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교만의 내용을 꺾으시는 재앙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바로 온역을 내리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칠 만 명을 죽이시는 것이죠. 자신의 영역과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백성의 수를 계수 하는 모습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 날 다윗의 다윗 된 것을 거부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2) 그들에게 말했다는 성령은 진짜 성령이 아니라 악령이라는 것은 궂지 열변을 토해 말씀드리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입니다. 지금은 계시의 완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는 성경 66권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부분들을 다 말씀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림과 둠밈으로 보여주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죠. 제비뽑기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한다는 것은 새로운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을 통해서 드러내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해 주심으로 그 계획 속으로 내가 들어가겠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구하고자 하는 것들의 답은 이미 성경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을 구할 때에나 고난이 닥쳐왔을 때 또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모습으로써의 응답을 구할 때 그 기도의 응답은 언제나 성경 66권의 원칙에 합한 응답을 주시는 것이지 결코 성경에 부합한 응답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간혹 무지한 자들이 뱀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서는 뱀을 받은 것을 응답이라고 하면서 간증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기도의 응답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단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이 시대의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은 바로 개인의 종말 이 후의 일이거나 세상 종말의 순간을 일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고 하는 자들과 몇 마디의 대화만 나누어 봐도 금새 가짜임이 들어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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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교만이란... 예수님 없이도 살(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이성희 2004-02-24 07:14:23, 조회 : 240, 추천 : 36

희진님
의견 감사합니다. 동의합니다.
다윗의 교만이 곧 나의 교만임을 알게 됩니다
나의 나됨과 모든 삶이 곧 하나님의 은혜임을 증거하는 모습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사도시대가 끝나고 정경이 완성되면서 성경으로서 하나님의 계시가 완전히 종결됨을 저도 인정합니다.
형제님인지 자매님인지 얼굴도 알지 못하지만 이렇게 복음 안에서 교제할 수 있음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목사님과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께.... 질문 드립니다

<질문1>
위의 두 번째 답변에 대한 보충질문인데요..
초대교회와 사도시대에 성령의 역사와 그 이후의 성령의 역사하심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요?
그러니까 성경 완성 전의 초대 교회때 임한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각양 은사(고린도전서12장에 나오는)들이
성경이 완성된 후로는 교회 안에서 없어진 것인지요? 아니면 제한적이거나 일부분만 계속되는 것인지요?

<질문2>
어제 저희교회 내에의 어떤 형제, 자매와 교제하는 가운데
한 자매는 여러 대화 중에서 "죽은 후에 (천국도 지옥도 없고) 그냥 없어지면 좋겠다"는 말을 해서 속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면 그 자매(40중반의 여집사님임)는 꽤나 신실하게 믿음을 보여(?)왔던 터라..
당장은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그냥 넘어갔지만... 기회가 된다면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서 일까요? 또 천국에서는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에 삶이 지겹겠다는 말도 있습니다... 천국에서의 삶을 지금의 우리야 어찌 상상인들 제대로 하겠습니까마는 성경에 계시된 범위 안에서 어떠하리라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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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제가 해 드린 답변이 너무 부끄러워 지웁니다. 그리고...
이희진 (Homepage) 2004-02-26 10:13:30, 조회 : 259, 추천 : 26

질문의 요지를 잘 못 이해한 저의 답변에는 저의 우매함과 어설픈 감정만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다시 보니 낯뜨거워서 못 읽겠다라구요. 비록 이미 읽어 볼 사람들은 다 읽어 본 글이지만 그래도 실례를 무릅쓰고 지우게 되었습니다. 이 성희 님과 그 글을 읽으신 분들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의 직업은 양파를 까서 진공 포장을 해 백화점에 납품도 하고 시장이나 급식 업체 그리고 식당 등에 납품을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보통 1시~ 2시 사이에 들어오고 늦으면 오늘처럼 네 시가 넘어서 들어오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많이 피곤하죠. 그런 일들을 하는 가운데 피곤함을 무릅쓰고 제가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저의 소원은 앞으로 말씀을 잘 배워서 복음으로 시대를 해석해 주는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피곤을 무릅쓰고 짬을 내서 글을 쓰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제가 시대에 진정한 답을 줄 수 있을 때까지 훈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달은 것은 말씀을 드러낸다는 것은 연습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의 영혼의 문제와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설픈 지식에서 나오는 해석은 그 영혼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글을 쓰고 그것을 인터넷상에 올린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긴장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들로 대신할까합니다. 비록 이 곳에 오시는 분들의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늘 기도 드리겠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여러분들 다 되세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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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제가 해 드린 답변이 너무 부끄러워 지웁니다. 그리고...
이성희 2004-02-28 13:06:52, 조회 : 178, 추천 : 37

희진님...저에게 죄송할 일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해석하여, 특히 그것을 글로서 진술한다는 것은 여간 힘들고 조심스러운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도 역시 희진님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원래 질문은 쉽고, 답변은 몇 배로 어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배우는 입장에서 주로 질문을 많이 합니다.

희진님의 답변은 나름대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가급적 많은 분들이 서로의 의견을 자유로이 말하고, 하나의 질문에 대해서 여러가지 답변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해석해서 표현하는 훈련이나 연습의 과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보인다 저렇게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여러 사람의 토론 결과를 모아서 다수결로 진리를 결정할 일은 아닙니다만... 진리의 성령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계시고,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각자의 경험 속에서 말씀을 증거하시고 깨닫게 하신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비록 서툴고 때로 지나고 보면 부끄럽고 잘못된 글일 수도 있으나 저도 나름대로 글을 자꾸 써보려고 합니다. 희진님, 그저 묵상만 하시기 보다는 글로써 말씀을 같이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마을을 떠나시는 것은 아니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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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이희진 집사님께
이준 2004-02-28 14:16:27, 조회 : 214, 추천 : 40

실력과 겸손(절제)를 고루 갖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력이라는 것도 말빨, 글빨, 경륜, 지구력으로 덤빈다고 아무나 되는 게 아니지요. 누군가가 제아무리 훈련받고 세련화된 말을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듣는 사람들 가운데 주님의 양들은 겉으로든, 또는 내심 아니라고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바른 말은 바른 영(인격체이신 성령님)을 받은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양들은 주님의 음성만을 알아 듣습니다. 성령님만이 예수님을 바르게 증거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말입니다. 진정한 "실력"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의도되고 자력적인 겸손이 아니라...주님께서 말씀하시게 할 때 말하고, 인내하고 절제하라실 때 그렇게 따를 줄 아는 것이 진정한 겸손의 자연스런 표출이 아닐까요(물론 이것도 우리의 의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는 것이라 봅니다).

집사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위의 두 가지에 깔려 있는 분별의 마음까지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당연한 이치겠지요.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어떤 글에 대하여 코멘트를 하실 때 간혹 늦게 하시는 걸 보았습니다. 이제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피곤하신 가운데...

힘겨우실 때가 많으실만큼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제 마음에 더 간절한 것은 삶 가운데서 집사님께 주신 영적 책무를 다하시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언젠가는 돌아오셔서 (가끔식이라도) 사람의 말이 아닌 "주님의 말씀" 계속 전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뵙지는 못했지만, 여기 계시는 존경하는 여러 목사님들, 형제님들께는 물론이고 저에게 중요한 가르침들을 주신데 감사드리며, 감히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오시길 기도합니다.

주님 안에서 형제된 이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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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희진님이 탈퇴하셨군요.
이 춘식 2004-02-28 12:27:07, 조회 : 198, 추천 : 40

강하기는 했지만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았는데 답글이 문제가 많았다고 스스로 말씀하시니 할 말은 없습니다만 진짜 문제가 있었다면 그 글을 읽은 사람들 중에서 최소한 한 사람이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었을까요?

저는 이희진님이 신학을 하신 분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하시는 분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 이 희진님이 오히려 더 대단해 보입니다. 전 이희진님의 글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는 신학에 공감이 갔고 그 분을 가르치신다는 목사님에 대해서 정말 궁금했습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이희진님의 글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이희진님의 결단을 높게 사는 것은 제가 본 사람들 중에 자기가 쓴 글에 대해서 반성하는 사람을 아직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디 소원하신 그 모습이 되어서 그 시대를 해석한 글을 쓴 것을 보게 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 희진님의 이름이 없어도 저는 글만 보아도 단번에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는 왠지 허전한 마음으로 보내게 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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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엔덴과 천국
이성희 2004-02-28 12:46:46, 조회 : 224, 추천 : 27

이근호 목사님..
평안하시지요.. 목사님의 글과 설교를 듣고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48번 내용 속에 있는 질문은 못 보셨나봅니다..

다른 질문입니다.
창세기를 설교를 듣는 가운데..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타락을 하게 되었는데요.
선악을 아는 지식이 애초부터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으며,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역이기에
선악을 아는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고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궁금한 점은..
선악을 알기 이전의 처음 창조된 사람(아담과 여자)의 상태와
선악 지식 속에서 쫓겨나고 잃어버려진 영혼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된 사람의 상태를 비교한다면 어떤면에서 같으며 어떤 면에서 다를까요?

그러니깐... 타락하기 전의 인간과 에덴동산과 그리고 타락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인간과 그들이 상속받을 천국과의 비교를 부탁드립니다.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린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합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이해하는 용어나 그들의 인식 수준에서 예화도 들고, 말씀을 가르치려 하니 쉽지 않습니다.
특히 선악과 부분에서는 더욱 그러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었기에 그 불순종이 죄다라는 식의 해석으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단순한 불순종이라기 보다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것에서 인간이 원초적으로 선악을 알게 되는 것이 금지된 것임을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조언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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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 에덴과 천국
이근호 2004-02-28 17:52:58, 조회 : 297, 추천 : 32

사실 '타락'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는 표현입니다.

어디에서 어디로 떨어진 게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저주의 대상이 된 상태일 뿐입니다.

이것은 관계에 관한 문제입니다.

차이점은 이것 뿐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는 것과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은, 성도가 새로운 능력을 갖거나 소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관계 안에 놓여진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면,(어린 아이들을 가르치신다니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도소 들어가기 전의 상태(범죄하기 전 인간 상태)
교도소 들어가 거기서 예수님과 살림을 차린 상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사는 환경이 나아진 것도 없고, 인격이 달라진 바도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관리, 간섭 하에 놓인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성도가 아닌 사람은, 교도소 안에서 제 딴에 자기 힘과 지혜로 열심히 살아야 하는 데, 기껏 동원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선악에 기초한 지혜입니다.

즉 "선한 일을 하면 매사가 잘되고, 악한 일을 하면 매사가 꼬인다"는 제멋대로의 도덕 법칙에 준해서 살아가겠지요.(심지어, 성경 말씀을 도덕 법칙에 적용시키는 가짜 신자들도 많이들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선악 법칙(도덕 법칙)이 무용지물이라는 점을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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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7 묻고답하기 [갈2:20 믿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2004-05-01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07-03-10
4,736 묻고답하기 [막 사는것이 복음을 아는자의 삶인지요?] 2004-02-28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7-03-10
열람 ➜ 묻고답하기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함의 의미 ] 2004-02-11 빌립보서 최고관리자 07-03-10
4,734 묻고답하기 [끊어질 수 있는 구원?] 2004-01-31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7-03-10
4,733 묻고답하기 [죄인에게만 해당되는 복음] 2004-01-14 [신학] 최고관리자 07-03-10
4,732 묻고답하기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자격자가 못되는데 ] 2004-01-04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7-03-10
4,731 묻고답하기 [너무나도 황당하게 제멋대로의 예수님 말씀? ] 2004-01-13 [신학] 최고관리자 07-03-10
4,730 묻고답하기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라는 어법이 정확합니까? ] 2004-01-03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7-03-10
4,729 묻고답하기 [사람의 구조인 이분설과 삼분설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2003-12-22 [신학] 최고관리자 07-03-10
4,728 묻고답하기 [젊은이들에게 자위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쳐야 될까요? ] 2003-11-26 - 최고관리자 07-03-10
4,727 묻고답하기 [사울을 보고 하나님께서 슬퍼하신 마음과 하나님의 질투] 2003-11-04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07-03-10
4,726 묻고답하기 [시편에 나오는 명령어] 2003-10-28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7-03-10
4,725 묻고답하기 [야고보 사도가 제시한 행함의 기준 비교] 2003-10-17 로마서 최고관리자 07-03-10
4,724 묻고답하기 [헌금은 아래로 하는 것이 옳은 가요 위로 하는 것이 옳은 가요? ] 2003-09-18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7-03-10
4,723 묻고답하기 [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 2003-09-15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7-03-10
4,722 묻고답하기 [선택받은 자도 죄를 지은 후 회개치 않으면... ] 2003/07/26 - 최고관리자 07-03-10
4,721 묻고답하기 [놋뱀 왜 뱀의 형상을 만들라고... ] 2003-06-11 - 최고관리자 0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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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8 묻고답하기 [가인의 아내는 어디서 튀어 나왔는가?] 2003-03-01 - 최고관리자 07-03-10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