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질 수 있는 구원?] 2004-01-31
[끊어질 수 있는 구원?] 2004-01-31
이름 : 관리자(IP:122.47.55.30)
궁금해요..
궁굼이 2004-01-31 14:50:09, 조회 : 262, 추천 : 36
히브리서 6장6절~8절까지의 내용
위부분을 하나님께서 한번 선택한 사람도
구원에서 끊어질 수 있다라고 하는 생각의 논거로 적용되는데
목사님께서는 어떡해 해석하시는지..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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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궁금해요..
이근호 2004-01-31 18:54:05, 조회 : 249, 추천 : 37
끊어질 수 있는 구원은 애초부터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탈락된 자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 자신이 시도하는 구원에는 결코 '끊어지지 않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은 낚시대로 (자동기계를 동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사건으로 하시기 때문에,
십자가 의의가 가득 드러나는 구원만 구원으로 간주하십니다.
십자가 의의란,
(1)구원받고자 하는 인간의 죄성과
(2)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구원욕구를 뿌리치고
오직 십자가 대리 공로로 인한 값없는 은혜로만 가능함을 지속적으로 영원히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 서신에 보면,
사도를 처음에는 따르다가, 나중에 믿음에 파선하고 배신하는 많은 자들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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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궁금해요..변함없는 사랑
김재국 2004-02-01 17:01:49, 조회 : 190, 추천 : 39
>
>끊어질 수 있는 구원은 애초부터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탈락된 자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
>그래야 하나님 자신이 시도하는 구원에는 결코 '끊어지지 않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의문) 끊어질 수 없는 구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인간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또는 사랑하다가 배반하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내가 예언자들을 보내어 너희를 산산조각나게 하였으며,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로 너희를 죽였고,나의 심판이 너희 위에서 번개처럼 빛났다'(호6:5)
이러한 심판의 이유는
'에브라임아.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유다야,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너희의 마음은 아침 안개와 같고,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호:4)
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소홀히 여기는 인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계획의 정당성 확보를 위하여 작위적으로 구원에 탈락될 자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불순종이 구원탈락의 이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의 조건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 알기를 더 바란다.'(호6:6)
에 명시된 바와 같이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너희가 하나님을 알라'고 간청하십니다. 알라는 것은 보통으로 알라는 것보다
훨씬 깊고 속속들이 부부가 서로를 알듯이 완전히 알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간청은 하나님의 사랑의 절대성과 인간교만의 극치를 반증합니다.
>즉
>
>하나님의 구원은 낚시대로 (자동기계를 동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
>십자가 사건으로 하시기 때문에,
>
>십자가 의의가 가득 드러나는 구원만 구원으로 간주하십니다.
>
>십자가 의의란,
>
>(1)구원받고자 하는 인간의 죄성과
>
>(2)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구원욕구를 뿌리치고
>
>오직 십자가 대리 공로로 인한 값없는 은혜로만 가능함을 지속적으로 영원히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따라서 사도 바울 서신에 보면,
>
>사도를 처음에는 따르다가, 나중에 믿음에 파선하고 배신하는 많은 자들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의문) 믿음에 파선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을 멀리함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창조주가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또한 정해진 대로 무작위적 구원과 심판을 한다는 것은 성경해석의 오류인 것 같습니다.
심판의 이유와 구원의 조건을 알려주는 것이 성경의 목적이고
성도는 그 해결이 자기가 아니고 예수믿음임을 알고 언약을 배반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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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런데 김재국님...
구득영 2004-02-01 17:49:24, 조회 : 186, 추천 : 54
성경을 보다가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데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인간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 아니라,
뭔가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사건을 고발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성경이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천상에서의 천사들의 반란 같은 것 말입니다.
제 생각이 좀 위험(?) 해보입니까?
너무 구원론에 집착하시 마시고,
예수님을 계시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악의 실체를 좀 살펴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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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런데 김재국님...쓰레기통
김재국 2004-02-01 18:03:48, 조회 : 204, 추천 : 58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저도 인간은 쓰레기통이고
스스로 허우적거릴수록 쓰레기의 늪속에 빠지는 인간을
예수님이 건져내심을 유의하고 있습니다.
교만과 탐욕을 최대의 적으로 봅니다.
그리고 자력구원은 없으며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낸다는 점을 철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권면에 감사드리고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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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궁금해요..좀더 자세히,,감사합니다.목사님
궁금이 2004-02-02 12:21:20, 조회 : 179, 추천 : 43
>히브리서 6장6절~8절까지의 내용
>위부분을 하나님께서 한번 선택한 사람도
>구원에서 끊어질 수 있다라고 하는 생각의 논거로 적용되는데
>목사님께서는 어떡해 해석하시는지..궁금합니다.
정확히 질문을 드리자면 4절부터네요..
한번 비췸을 얻는다,하늘의 은사를 맛본다, 성령에 참예한다,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다. 이런 것들이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것 아닌가요?
제가 읽기에는 그런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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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궁금해요..좀더 자세히,,감사합니다.목사님
이근호 2004-02-02 14:05:58, 조회 : 199, 추천 : 35
구원을 얻은 자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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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네요.
굼금자 2004-02-01 20:53:22, 조회 : 187, 추천 : 40
http://www.crossvillage.pe.kr/bbs/zboard.php?id=cross&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
신약 성경에서 구약 성경에서나 주의 날이란 한결같이 주님이 주되심의 영광으로 나타나시는 날이다(스바냐 1:14/2:2/아모스 5:18/요엘 2:11/말라기 3:2/이사야 13:6,9/63:4/예레미야46:10/에스겔 30:3/39:8).
★신약 성경에는 두 번이 나오는데 ★우선 베드로후서 3:8-10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http://www.siloam-church.org/jboard/?p=detail&code=board5&id=119&page=1
2.1 신구약에서의 ‘주의 날’의 개념
구약에서 ‘주의 날’은 주로 종말론적인 측면에서 심판과 징벌의 날을 의미하였다. ★신약에서는 안식후 첫날이라는 표현으로도 사용되기도 했지만, ‘주의 날’이라는 표현이 계1:10에서 단 한번 사용된다.★ Richard Bauckham(p. 227)에 따르면, 계시록의 주의 날이라는 표현은 ①종말론적인 주의 날; ②안식일(토요일); ③ 부활절; ④ 일요일 중의 하나를 지칭하는 것일 수 있다.
질문: 신약에서 주의 날이 어떤분은 두번 또 어떤분은 단 한번 나온다 라고 하시는데요
어느것이 참 인지요.
고전1:8, 필립1:10, 필립2:16 의 크리스토스의 날과는 다른 날인지요.
필립1:6, 고전5:5... 예수의 날과는 또 다른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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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잘 모르겠네요.
이근호 2004-02-01 21:25:48, 조회 : 201, 추천 : 41
'주의 날'이 문맥상 활용되는 뜻이 다릅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의 날은,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난 날이지만,
다른 날은 주님께서 영광중에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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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네요.
굼금자 2004-02-01 21:01:58, 조회 : 222, 추천 : 36
http://www.crossvillage.pe.kr/bbs/zboard.php?id=cross&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
★날이란,해의 뜨는 것과 지는 것과 관련 있다.다음 번에 해 뜨는 데까지를 한 날이라고 말한다.★
서두부터 의문이 생깁니다.
날이란.... 한날이라고 한다.
기준이 뭔지 알고 싶습니다.
성경에선 한 날의 시작과 꿑의 기준점이 언제라고 하는지요.
구약과 신약에서 어떻게 구분하는지 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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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잘 모르겠네요.
이근호 2004-02-01 21:26:44, 조회 : 215, 추천 : 43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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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습니다.
굼금자 2004-02-01 21:16:35, 조회 : 226, 추천 : 32
http://www.crossvillage.pe.kr/bbs/zboard.php?id=cross&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
'주일'이라는 것은 성경에 없다.'
'주일'이라는 것은 부활 기념일로 인간들이 조작한 날이다.
http://woorich.net/tboard/read.cgi?board=freeboard&x_number=1047728007&r_search=주일&nnew=1
주일오후예배 설교 듣기와 re내용 중 창세기28:16-22 을 마 28:16-22로 되어 있습니다. 관리자님 살펴 봐 주세요.
http://woorich.net/tboard/read.cgi?board=freeboard&x_number=1075547055&r_search=주일&nnew=1
먼저 지난해 2003년 8월부터 지금까지 주일오전 오후, 수요 예배 설교를 올려 놓았습니다. 필요한 분들은 다운 받으시고, 혹 링크가 안되거나 에러가 난 부분이 있으면 게시판에 글 남겨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질문: 뭡니까?
성경에도 없는 주일 이란 단어와 개념을 막 사용하는 숨은저의가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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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혼잡습니다.
이근호 2004-02-01 21:28:34, 조회 : 255, 추천 : 37
>교회 운영자들이 정치적, 행정적으로 편리를 도모해서 만들어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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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 육.영??
유석종 2004-02-02 17:05:29, 조회 : 220, 추천 : 32
고전 5장 4절5절
이런자를 사단에게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 의 날에구원얻게 하려 하심임라
1년전 저희 교회에서 주일예배시간에 장례예배 드린적이 있어는데요
여장로님의 따님 전에 몇해전 한번정도 교회 나왔는데 자살을 해서 주일 대예배시간에? 장례예배를 드렸죠
주일날 대예배시간이라서 기쁨예배시간 장례예배?를 드린게 조금 어색했지만...
근데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중에 사단에게 속아 자살을 했지만...육은 사단에게 내주었지만
영은 하나님께서 구원 하였다고 하셨는데? 당체 무슨 말인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않구요
5절 말씀은 무슨 말슴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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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 자살. 육.영??
이근호 2004-02-02 20:05:06, 조회 : 268, 추천 : 38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는 인생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긍정적인 면에 활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부정적인 면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는 이렇게 살아서는 아니된다는 식으로 목숨을 앗아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교회에 경각심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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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 자살. 육.영?? 좀더 자세히 부탁드려요
유석종 2004-02-03 19:54:32, 조회 : 191, 추천 : 40
좀더 자세히 5절 말씀의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무슨말인지 잘이해가 안됩니다,,,
>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는 인생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
>때로는 긍정적인 면에 활용되기도 하고,
>
>때로는 부정적인 면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성도는 이렇게 살아서는 아니된다는 식으로 목숨을 앗아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
>그것을 통해 교회에 경각심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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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 자살. 육.영?? 좀더 자세히 부탁드려요
이근호 2004-02-03 22:00:03, 조회 : 221, 추천 : 36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자기 성도에게 예측못한 일을 일으켜서 하나님께서 엄연히 살아계심을 보이십니다.
따라서 아직 죽지 않고 살아남은 성도들은 그것을 통해, 아직도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 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더이상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는 삶으로 전환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하나 주의 할 것은,
누가 성도인지는, 남이 모르고 본인만 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다니다가 졸지에 죽었다고해서 다 천국 가는 성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만 남은 자들이 그것을 접하면서 나름대로 마음 정리를 해야 하는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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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언약때 범한죄란?
천명자 2004-02-03 23:25:53, 조회 : 209, 추천 : 36
히브리서 9장에 첫 언약이 세번 나옵니다.
1절과 18절은 언약이란 글자가 좀 작습니다. 왜 작게 했나요?
9:15에서 첫 언약때 범한죄를 사하실려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하는데요
첫번째 언약을 성경에서 찾아 주세요.
첫번째 언약때 범한죄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18절에 첫번째 언약때에 피 없이 세운것이 아니다 라고 했는데요.
어떤 피로 세웠는지 궁금 합니다.
마지막 질문: 첫 언약은 일방적인 언약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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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첫 언약때 범한죄란?
이근호 2004-02-04 07:44:33, 조회 : 237, 추천 : 35
>개역 성경에서 글자가 작게 니온 것은, 그 글자가 빠졌기에 번역상 보충하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첫 언약'이란 새언약에 비해서 전에 있던 모든 언약을 말합니다.
첫 언약에서 말하는 죄란, 따로 특별히 죄 지을 때만 죄가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인간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음을 보편화시킨 것입니다.
율법에서는 짐승의 피로 세운 것입니다.
언약에 있어 '일방적'이라는 말은, 인간이 '언약적 구상'에 처음으로 참여한 바가 없다는 뜻에서의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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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목사님께서 갖게된 성경해석의 눈은 어떻게 얻게되신 것인지요....?
구도자 2004-02-05 20:05:46, 조회 : 238, 추천 : 36
그러면 지금과 같이 성경을 보는 눈은 홀로 말씀을 읽으면서 열려진 것인가요? 아니면 누구의 가르침이 있었나요? (사람이나 책등의 도움같은거 말이죠)
말씀을 읽을때 성령께서 가르쳐주신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아울러 바른 복음을 외치는 교회가 있다면(서울,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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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목사님께서 갖게된 성경해석의 눈은 어떻게 얻게되신 것인지요....?
이근호 2004-02-05 21:02:50, 조회 : 353, 추천 : 37
>성령님은 십자가의 영이라는 성령이 아니면 십자가가 왜 고맙고 좋은지를 모르게 되겠지요.
십자가의 복음을 접하게 된 것은 특정 상황이 조성해 낸 분위기가 아니라 성령이 오시면 누구든 알게 됩니다.
서울, 경기 근처에 계신 분은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만
그 명단은 김재열 목사님이 갖고 계십니다. (011-9888-6547 심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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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영에 관한 질문입니다.
박장수 (Homepage) 2004-03-03 08:51:48, 조회 : 385, 추천 : 39
>
>>성령님은 십자가의 영이라는 성령이 아니면 십자가가 왜 고맙고 좋은지를 모르게 되겠지요.
>
>십자가의 복음을 접하게 된 것은 특정 상황이 조성해 낸 분위기가 아니라 성령이 오시면 누구든 알게 됩니다.
>
>서울, 경기 근처에 계신 분은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만
>
> 그 명단은 김재열 목사님이 갖고 계십니다. (011-9888-6547 심플교회)
<질문>
언제나 사랑(예수님을 가장 성경에 근접하게 증거하시는 일)으로 수고하시는
십자가마을 목사님께 예수님의 평강을 전합니다.
십자가의 영이라는 표현은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성경에 근거하여 해석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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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십자가의 영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4-03-03 12:54:45, 조회 : 566, 추천 : 37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잘나와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못박힌 것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아는 것은 인간의 지혜 차원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에게 만약 자력으로 하나님의 아는 지혜가 있었다면 절대로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박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의의나 존재 의미를 모르는 자는 결국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가 되는 것인데 이 불신자로 벗어나는 방도는 인간에게 없다는 겁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고 마음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은혜를 입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은혜를 입은 자만이 십자가를 제대로 알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세상의 현실성을 재발견한다는 겁니다.
그 은혜는 바로 성령이 임해야 하는데 그것은 성령께서는 오직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케 합니다.
물론 십자가 안에서 말입니다.
이로서 성령은 십자가의 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6:8-10의 말씀도 같은 취지입니다.)
즉 성령받은 자는 성령 받음으로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증거하는 모습으로 등장되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좁은 세계로 보는 자들은 아직도 성령 바깥에서 머물고 있는 불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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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3장 2절에 대한 질문입니다.
박소영 2004-02-05 20:08:24, 조회 : 208, 추천 : 37
성경을 읽다가 질문이 하나 생겨서 글을 올립니다.
고린도전서 3장 2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내가 너희를 밥으로 먹이지 않고 젖으로 먹였다는 말이 있지요?
밥으로 먹이면 이해하지 못한다고요.(그러므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밥으로 먹이는게 더 좋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겠지요?)
여기에서 나오는 젖과 밥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성경 옆에 써 있는 주석을 보니
젖은 복음의 초보인 십자가의 도이고
밥은 복음의 심오한 내용과 풍성한 비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꼭 십자가의 도는 복음의 기초이고 십자가의 도 외에 더 심오한 내용과 풍성한 비밀이 있다는 얘기처럼 들려서요.
십자가 외에 더 심오한 내용이 있습니까? 혹 그것이 많은 설교자들이 설교하는 '신앙의 행위들'은 아닌지요?
제가 너무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죠?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보니 ㅠㅠ 답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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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고린도전서 3장 2절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4-02-05 21:00:03, 조회 : 217, 추천 : 32
>십자가란 전적으로 예수님에게 인생을 다 일임하는 출입구하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첫걸음을 뗀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은 아직 세상이 더 그리워보이겠지요.
하지만 성령님께서 충만케 하시는 능력에 따라
천국이 대단히 크고 광활하다는 것을 알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도의 고생스러운 인생도 이해하게 되고 그의 말씀의 깊은 것까지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차츰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에 따라 그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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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 신앙의 객관성?
김상철 2004-02-06 12:30:13, 조회 : 304, 추천 : 40
인간은 자기 신앙의 근거를 역사성에 둘려고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까?
모든 종교마다 자기 신앙의 바른 가치를 정통적인 역사에서 찾을려고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무수한 자기 종교마다의 이단과 사이비성에서 벗어나고파 애를 쓰며, 또한 자기 신앙의 진리 가치를 더욱더 정당화 할려는 움직임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느 종교 안가리듯이 인간의 본능처럼 나타납니다. 이런 인간의 자세를 성경은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간단히 질문을 드렸으니 간단히 답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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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사람은 자기 신앙의 객관성?
이근호 2004-02-06 13:19:33, 조회 : 356, 추천 : 41
복수(復讐)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노동(종교 행위를 포함)은 자기를 절대적으로 지키고, 자기 절대에 시비거는 놈을 죽이려는 복수의 칼로 활용하기 위한 대기상태로 돌입되어 있습니다.
역사란, 자기 노동을 정당화하고 존재함이 당연한 것처럼 치장하기 위함입니다.
자기 의(義)를 위한 성채(캐슬)의 일환이지요.
인간은 악마 편에 있기에 악마가 배후에서 사주하는대로 복음에 향하여 공격을 하게 마련입니다.
사사기의 이방민족들과 같습니다.
신과 신의 싸움에 우리 인간들이 놓여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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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사람은 자기 신앙의 객관성?
김상철 2004-02-06 13:35:27, 조회 : 286, 추천 : 32
1. 목사님의 답변이 그러하다면 역사를 고발하는 묵시의 개입이 필연이다는 말씀인데요 맞습니까?(솔직히 묵시라는 용어가 참 낫설은데요 묵시에 대해 3번 질문과 연결해서 답변 해주십시요)
2. 임의로 바람이 불듯 성령의 임함도 정통과 역사를 무시한채로 날마다의 성령 임함 앞에 정통 조직 정통 신앙도 첮저하게 무너짐 속에서 다시 날마다 일어나는 공동체인 묵시적 공동체 가 교회요 그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질 못하는데요, 지금 사람들이 변호하고 변증하고 가꾸고 만들어가는 이 교회조직(정통성,역사성,보수성,개혁성 등이)이 오히려 묵시적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몸 과 대립이 되겠군요?
왜 이 대립을 성경에서 펼쳐져 나가는 사건입니까?
3. 또 묵시적 공동체에 조금더 자세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아울러 묵시와 역사의 차이점도 함께 부탁합니다.
4. 참 그리고 하나더요 예수님이 정통성 역사성 다 무시하고 선지자 계통으로 왔다는 말이 바로 그 묵시성을 의미하는 지요? 선지자계통으로 오셨다는 의미를 그렇지 않는 유대인들이 펼치는 메시아관과 함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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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사람은 자기 신앙의 객관성?
이근호 2004-02-06 14:38:10, 조회 : 323, 추천 : 45
1. 이 세상이 하나님의 타작마당이니 당연히 하나님께서 개입하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역사를 일구어나가시면서, 그 역사 속에는 인간이 품고 있는 악이 어떤 것으로 그 정체를 펼치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언약으로 점검해 나가십니다.
그 언약의 공동체가 이스라엘입니다.
2. 그런데 그 언약 공동체 조차 악의 덩어리로서 역사 안에 꿈틀거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인간들의 시도도 전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딴에 바르게 한다고 인간들끼리 합세해서 모였지만, 자신이 내뱉은 노동들을 뭉쳐서, 그것을 가지고 역사를 엮어내고, 그 엮어낸 역사를 가지고 타역사와 차별시키고 자신들의 거룩성을 증거하는 틀로 사용하는 데 이것이 바로 비언약적인 '자기 의' 쌓기입니다.
개별적 성화추구에서 교회라는 이름의 집단 성화(공동체 성화)를 시도하는 모습니다.
3, 묵시적 공동체는 역사적 공동체의 모습처럼 집단화가 불가능한 가운데 집단이 될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공시적이나 통시적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행하여 고개를 쳐들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이단이니까(모두가 자기 나름대로 자기 존재와 활동의 정당성과 역사성을 추구하니까) 아무도 성도가 있을 수 없는데 성령에 의해서 그런 이단성을 이단성으로 파악하고 회개하는 자들이 우발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재림때 까지 말입니다.
4. 그 대표적인 자들이 바로 구약의 선지자요 신약의 성도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역사의 가치를 고집하는 자들로부터 핍박받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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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감사합니다.
김상철 2004-02-06 23:48:28, 조회 : 183, 추천 : 18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 주님이 참으로 부지런한 분이심을 또 한번 감격합니다. 우리 주님께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분의 일하심이 너무 너무 부지런하셔서 그 부지런함을 놓치고 싶지 않고픈 마음입니다. 일일히 세세하게 세밀히 일하시는 주님이 일하심을 놓칠수가 없어서, 자기의 성화와 자기의 믿음을 공작(만들고 다듬고) 할 틈도 가질 여유가 없을 정도로, 주님의 일하심이 너무나 무궁무진장 하여 보고 또 보고, 배우며 또 배우며, 듣고 또 들으며 한시도 그 감격을 쉬지 않고 허락해주심을 봅니다.
(엡 3:1-4)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
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
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엡 3:5-13)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엡 3:14 -21)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 그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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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성희 2004-02-11 09:20:31, 조회 : 289, 추천 : 42
눅16:19-31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에서
부자의 이름은 없지만 거지의 이름이 실명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실화이며 거지로서 꽤 유명(?) 했던것 같은데요..?
둘 다 죽어 거지 나사로는 구원을 받고,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나사로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나요? 부자는 어떻게 해서 버림을 받았나여?
25절에 보면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는 아브라함의 말에서는 나사로는 살아생전 고난을 받았기에..
부자는 좋은 것을 받았기에 내세에는 바뀐다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나사로가 구세주를 믿었다던지...하는 그런 단서가 없는 거 같아서..
물론 하나님의 전적인 택하심과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면 인간편에 어떤 조건이나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말은 무슨 뜻인지요? 그리고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본뜻이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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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 -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근호 2004-02-11 13:37:22, 조회 : 293, 추천 : 40
>성경은, 구원을 목적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보이기 위해 쓰여집니다.
부자와 거지의 경우, 돈을 사랑하는 자와 돈이 없는 자에 대한 이 땅에서 대우가 결코 하나님 앞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이 관심 두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들이 돈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바리새인들은 거기에 대해 반대하기를, 자신들을 돈보다 율법을 더 사랑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율법의 완성은 곧 예수님 자신이며.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겁니다.
자기의 장래에 어두운 이는, 불의한 청지기보다 더 못한 인간들이라는 겁니다.
더나아가서 말씀하시기를, 거지 나사로보다 더 못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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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성희 2004/02/11 42 290
[re]이성희 집사님과 이근호 목사님께(부자와 거지 나사로 관련글) 이준 2004/02/11 25 384
[re]이성희 집사님과 이근호 목사님께(부자와 거지 나사로 관련글)
이준 2004-02-11 23:04:43, 조회 : 384, 추천 : 25
먼저, 이성희 집사님께 말씀 올립니다. 저는 주님 안에서 형제된 이준이라고 합니다. 집사님의 존함은 우리교회와 이곳 십자가 마을에서 익히 뵌 적이 있습니다. 감히, 부족하지만 제 사견을 조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참고로, 집사님과 목사님의 말씀은 "->"바로 위에 있습니다).
눅16:19-31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에서 부자의 이름은 없지만 거지의 이름이 실명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실화이며 거지로서 꽤 유명(?) 했던것 같은데요..?
->언젠가 여호와의 증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요. 그들은 실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더군요.
둘 다 죽어 거지 나사로는 구원을 받고,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나사로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나요? 부자는 어떻게 해서 버림을 받았나여? 25절에 보면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는 아브라함의 말에서는 나사로는 살아생전 고난을 받았기에.. 부자는 좋은 것을 받았기에 내세에는 바뀐다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나사로가 구세주를 믿었다던지...하는 그런 단서가 없는 거 같아서..
->본문을 읽어보시면 단서를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엄청난(?!) 단서 말입니다. 아래로 가시면서 제가 올려드리는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단서란 다름아니라 이 이야기를 통해 주님께서는 나사로를 낙원 또는 천국 갔다고 하실 것을 왜 굳이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다고 하셨을까, 그리고 부자 또는 부자의 형제들에 대하여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신 방식의 말씀을 놔두고 왜 굳이 "모세와 선지자(의 메시지)"를 들이대셨을까 라는 데 착안(?)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전적인 택하심과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면 인간편에 어떤 조건이나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말은 무슨 뜻인지요? 그리고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본뜻이 무엇인지요?
->이 이야기를 두고서 이 이야기 직전에 언급된 문단들과의 연관성, 즉 문맥을 생각지 않거나 혹은 부자와 나사로의 구원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 와중에서 결국 부자의 행위 여부 또는 나사로의 믿음 여부 등을 가지고 인간의 개인적 구원론을 논의하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이 이야기는 전혀 그런 방향과는 별개의 이야기임을 눈치챌 수 있는데요. 우선,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본문의 내용물이 철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부터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1.등장인물들의 대조 : 부자 vs 나사로
2.그들이 처했던 세상 속에서의 상반된 조건과 환경의 대조 : 좋은 것을 받음 vs 고난을 받음
3.등장인물들이 죽어서 들어간 상태의 대조 : 음부 vs 아브라함의 품 - 이 양측의 격차가 실로 엄청난 것임을 결정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큰 구렁"이다.
4.그들이 들어간 상태가 지닌 성질의 대조 : (혀를 서늘하게 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움 또는 이 "고통"받는 곳 vs 여기서 "위로"를 받음
5.세상에 남아 있는 형제들에 대한 부자의 호소에서 볼 수 있는 대조 : 아브라함에게 돌이킬 기회 주심을 호소함 vs 모세와 선지자들의 메시지로 충분하다는 답변을 들음
위와 같은 내용의 대조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유추"를 해봅니다.
부자라는 인물(인격체) vs 나사로라는 인물(인격체)
=>부자와 그의 형제들이 처한 운명(음부) vs 거지 나사로에 해당되는 운명(아브라함의 품)
=>부자와 그의 형제들은 모세와 선지자의 메시지의 대상이 됨 vs 나사로는 다름아닌 "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감
=>"모세"는 다름아닌 율법(죄를 지적하는 기능)을, "선지자"는 언약에 담긴 하나님의 경고 기능을 상징함 vs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 갔다는 말은 다름아니라 나사로가 애초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계열(반차)의 사람이었음을 입증함.
즉, 부자는 가인의 계열이요, 나사로는 아벨의 계열이었음이 결국 드러난 것임. 부자는 모세 율법의 기능이 겨냥하는 대상물이요,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경우와 같이 그저 은혜로 구원하심의 대상물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사로를 낙원이 아니라 굳이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표현과 연관지은 것, 그리고 부자 쪽을 음부와 더불어 굳이 모세 및 선지자(의 메시지)와 관련지은 것에 착안해 보건대 나사로는 자신의 비관적인 처지에 대한 긍휼의 결과로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언약의 은혜성과 관련된 아브라함 계열의 사람이었음이 천명된 것이다(물론, 이 두 계열의 대조는 부자와 나사로뿐만 아니라 각자의 계열에 해당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언약의 원리이다).
결국 부자와 나사로의 대조는 일단, 구원론의 관점에서 볼 때, 구원이라는 것이 특정 인간이 처한 환경의 여하(좋은 것을 받았든 고난을 받았든 간에), 인간의 행함 여부(선을 베풀며 살았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와는 무관하며, 부자와 나사로라는 인물 자체뿐만 아니라, 그들이 세상 속에서 처했던 환경의 대조, 궁극적인 상태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판이한 운명적 결과의 대조...등을 통하여 부자와 나사로는 애당초 소속이 다르고, 반차가 다르고, 노선이 다르고, 계열이 달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사료됨.
결국, 아브라함께서 말씀하신 바,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라는 말씀은 부자와 나사로가 처했던 상반된 조건들이 인간 구원 여부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서로 다른 계열, 즉 언약이 겨냥하고 계시는 바, 저주의 계열과 은혜의 계열의 대조, 결과적으로 볼 때 음부로 이어지는 심판의 대상들과 천국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대상들의 대조, 배척의 대상물과 열납하시고 구원하시는 대상물의 대조, 그리고 이러한 상반된 대상물들 각자가 처한 세상 속 상황을 보다 자극적으로(극명하게) 대조시키기 위하여 좋은 환경과 고난어린 환경의 대조까지 상정한 것이라 사료됨.
따라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언약이 용서하시고 포용하시는 사람들과 언약의 은혜성 속에 담겨지지 못함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튕겨나고 배제되고 배척당하는 저주받은 운명의 사람들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음.
언약의 실체로 등장하여서 언약이 지향하는 최절정의 사건인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계신 주님께서 이러한 극명한 대비의 구조로 이루어진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상정하신 것을 묵상해 보건대, 이 이야기는,
첫째, 인간의 운명과 관련된 개인 구원론의 관점에서 볼 때, 서로 다른 계열을 상정하고 있음으로 보아 철저한 예정론(구원 베푸실 노선의 사람들을 "미리" 택하시고 정하심)을 담고 있으며(언약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예정하심),
둘째, 그들 각자의 결과적 운명과 소속 계열, 처했던 상황, 궁극적 상태, 그들을 겨냥하고 있는 율법 체계와 은혜 체계...등의 모든 대조들은 결국 사람의 행함 여부나 사람이 처한 조건과 환경의 여부에 따라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체적, 주관적 선택과 예수님의 독자적인 십자가 공로 성취를 통하여 드러나는 일방적이고도 차별적인 속서을 띤 언약이 내뿜는 은혜성으로만 구원이 결정됨을 보여줌(언약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독자성).
개인적으로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무슨 매실 "액기스"처럼 언약을 담은 복음 메시지를 집약한 "축소판"(십자가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빠져 있긴 하지만)처럼 다가옴을 새삼 느끼게 된다.
다음은 집사님의 질문에 대한 이근호 목사님의 답변에 대하여 감히 부족하나마 저의 느낀점을 덧붙여본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을 목적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보이기 위해 쓰여집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대하면서 사람들은 언뜻 개인적 구원론이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하려고 하지만, 실상인즉, 선포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구성하고 있는 구조적 체계로서의 "언약"의 위상이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무게가 실려 있다. 그리고, 이 언약의 위상 앞에 서있는 모든 인간들 중에는 그 언약이 뻗히시는 은혜성으로 구원되는 사람들의 반차(계열)이 있고, 반대로 그렇지 못한 반차(계열)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조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대조 자체에도 중요성이 있겠지만, 정작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 대조의 중심(기준)이다. 그 기준(중심)이 무엇이냐? "살아계시고, 또 살리시는 언약덩어리", 즉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님이시며, 바로 그 예수님께서 언약의 내용물을 실현(드러내심)시키신 십자가에 있다!
부자와 거지의 경우, 돈을 사랑하는 자와 돈이 없는 자에 대한 이 땅에서 대우가 결코 하나님 앞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 부자는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지만, 궁극적인 상태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형편은 "정반대"였음을 이 이야기가 보여준다. 이것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행함 여부나 그들이 처했던 차별적이고도 억울한 삶의 조건 여하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인생들을 언약을 통해 굽어살피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바로 그 언약에 따라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해내시고 또는 구원하지 않으시는 결과가 바로 부자와 나사로의 대조와 같은 것임을 상정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이 관심 두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들이 돈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바리새인들은 거기에 대해 반대하기를, 자신들을 돈보다 율법을 더 사랑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율법의 완성은 곧 예수님 자신이며.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겁니다. 자기의 장래에 어두운 이는, 불의한 청지기보다 더 못한 인간들이라는 겁니다. 더나아가서 말씀하시기를, 거지 나사로보다 더 못하다는 겁니다.
->이근호 목사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시면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만 국한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논의를 위한 문맥의 폭을 넓게 잡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다(실은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즉, 부자와 나사로의 대조적인 이야기는 이 이야기에 바로 앞서 언급된 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으며(눅 16:13 참조...만약 겸하여 섬긴다면 애초 하나님 언약의 은혜성의 노선이 아님이 자동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또한 율법을 좋아한다면서 실상은 돈(세상이 추구하는 가치관의 핵심이자 경제적 가치관의 실체를 상징하는)을 추구하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질타(눅 16:14-18)까지 아울러 상정하여 논의함이 마땅함을 보여준다. 개인적인 견해인데...눅 16:18이 언급하신 바, 본처를 버리고 새 장가드는 자는 간음하는 자라고 질타하신 것은, 율법을 받든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돈(또는 세상...)을 추구하는 내막에 대한 지적이라고 사료된다. 문맥을 통해 발견되는 이러한 내막을 기초로 하여 서로 다른, 너무나도 대조적인 두 계열에 속한 사람들, 즉 부자와 나사로라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앞서 언급된 하나님 대신에 재물을, 율법 대신에 돈을, 본처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고 대신 새 여인을 찾는 사람 이야기라는 일관된 내막을 보다 극명하게 전달하고자 하심이라 사료된다.
결국, 부자가 좋은 것을 받은 것과 나사로가 고난을 받은 것도 이렇게 서로 다른 노선들이 처한 대조적인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으로 새겨볼 수 있다.
떠오르는 시사점들...(논의의 폭을 넓히려면 끝도 없겠지만...)
위와 같은 고찰(?)을 통하여 몇 가지 추가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는데, 다름아닌...
교회 내의 직분이나 또는 개인적 차원의 은사, 재능 따위가 과연 마25장의 달란트인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 한 편의 구원받은 강도의 처지를 거지 나사로의 사례와 연관지어 기존에 인간들이 주장하는 구원론, 교회생활론, 은사관 등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왜냐...달란트 못남겨서 어두운데 쫓겨나게 된다면, 거지 나사로나 십자가 한 편 강도는 아브라함의 품이나 낙원은 커녕 지옥으로 가야합니다. 이들에게는 오늘날 교회가 말하는 시간의 달란트, 물질의 달란트, 재능의 달란트...따위의 달란트들은 커녕, 이런 분들은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 앞에 내세울 것조차 없는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지옥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서(^^;) 어떤 설교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이를 가는 상태를 두고서, 지옥 간 게 아니라 상급을 더 많이 못받아서 안타까워하는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말들은 잘도 합디다만, 정작 달란트가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기에 인간의 열심을 알게 모르게 쥐어짜게 되고, 교인들 눈치보기, 봉사 경쟁, 충성 경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지요. 어쩔 수 없는 일관성입니다...주인 나으리께서 먼 길을 떠나시면서 돌아오실 때가지 맡기신 것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우선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분부하셨는가를 보여주는 성경 구절(마28장, 행1장)만 찾아봐도 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결국 복음 전하라, 복음대로 살라...는 것이 교회 직분 받아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하면서 엉터리 주장을 확대재생산만 일삼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어쨌든, 부자와 나사로의 대조, 달란트, 하나님 언약의 성격, 십자가의 의미, 구원과 관련하여 인간의 철저한 무능력함...등등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도저히 인간의 행함을 내세울 수 없으며, 상급 경쟁이나 차등도 입에 담을 수 없고, 갖가지 봉사 경쟁, 충성 경쟁을 일삼을 수도 없을텐데 말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원천적으로 볼 때, 계열이 달라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예배)드린 장면만 두고 생각해 보면, 둘 다 "진짜 하나님"께 예배 드렸건만, 한 사람의 예배는 열납된 반면, 나머지 한 사람은 그렇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물론, 시내산 위의 여호와는 참 여호와이시며 시내산 아래의 송아지는 가짜 여호와였던 점과는 조~금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맥락은 같지요). 그런데, 그 사건은 단회적으로 끝나버린 게 아니고, 그 이후에 기나긴 계열(또는 행렬)의 띠를 이루게 되지요. 사울왕과 다윗, 예수님과 주변의 기타등등의 사건 관련 인물들, 그리고 오늘날 교회당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서로 다른 계열들 간의 갈등들...말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다룬 부자와 나사로의 대조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어제는 이런 "서로 다른 계열간의 대조, 그리고 그 대조의 중심에 서 계신 예수님,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나, 은혜받은 계열을 미끼로 이용한 낚시로 비유되는 하나님의 심판 계획과 수행..." 등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지도 않게, 어떤 "꼬마" 다섯 명에게 들려줄 기회가 있었답니다...
이상과 같이 두서없는 생각들을 정리하여 감히 글을 올리면서, 혹시라도 지나친 비약이 아니라 집사님께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이근호 목사님께 사정없는(!) 지적과 바로잡음, 그리고 선배 형제님들의 고견도 있으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바로 위에서 언급한 두 계열, 두 노선들 간의 갈등 양상 속에서 성도를 미끼로 하여 세상 속에 도사린 악마의 실체를 드러내어 심판하시는 내용의 출처는, 이근호(2004. 2. 4). 수요예배설교.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상(행 4: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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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이성희 집사님과 이근호 목사님께(부자와 거지 나사로 관련글)
이근호 2004-02-12 09:55:31, 조회 : 379, 추천 : 40
'아브라함의 품'이 곧 아브라함 언약의 지속성과 나름대로 성취성을 내다보고 있는 점에 착안했군요.
아직 십자가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이라, 모세와 선지자의 율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 시절에, 특히 율법만을 고수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있어 '아브라함 언약'의 권위성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기준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에서, 환경과 상관없이 언약 은총의 유무로서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한다면, 그런 암시가 아브라함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전달되었으야 합니다.
즉 "애 부자야. 네가 부자라고해서만 지옥온 것이 아니고, 나사로가 거지라는 이유만으로 낙원에 온 것이 아니란다."라는 암시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는, 구원론을 가르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당시 바리새인들의 현세적인 생활에 집착을 탓하는 예화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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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이성희 집사님과 이근호 목사님께(부자와 거지 나사로 관련글) 이준 2004/02/11 25 385
[re][re] 두분 답변에 감사합니다..추가 질문도.. 이성희 2004/02/12 44 319
이근호 목사님 Vs 이준 형제님의 친절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준 형제님의 답변은 하도 상세하고 길어서 다 읽어 내느라 눈이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늘 그렇듯 이근호 목사님의 답변은 하도 간략해서 이해하려면 또 한참 묵상(?)하며 읽어야 됩니다.
때로 너무 쉽고 명확하게 답을 하셔서 황당하기도 하구요... 어쨓든 감사드립니다.
제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질문 드린 경위는..
그저께 저녁 TV 에서 MBC PD수첩을 보았는데 그곳에서
우리나라 제일의 부자동네인 강남 타워팰리스 빌딩 바로 옆에
대조적으로 강남구 포이동 266 번지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의 처절한 가난을 보면서
떠오르는 말씀이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 프로를 보는 사람들 마다..쯔 안됐다..그렇게 생각하는데
내가 볼 때는
만일 저 포이동에서 저렇게 처절한 가난을 겪으며 살던 사람이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고, 저 옆 타워팰리스에 사는 부자가 죽어 음부에 떨어진다면...
(물론 가난하기에 천국 가고, 부자라서 지옥간다는 논리가 아니라)
그 결말을 보고도 그렇게 생각들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눅16장을 찾아 다시 읽어 보았고
물론 문맥상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을 겨냥한 말씀이기는 했으나
이 참에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생각을 좀 정리해 보고 싶어서 질문을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서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신명기 15: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신명기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
목사님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구약에 보면 율법의 적용이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차별하여 적용한 예가 더러 있고,
또 신약에서도 "선을 행하되 더욱 믿음에 가정들에게 하라"는 말씀도 있잖아요?
위 구절에서 "형제"라는 말을 보니... 이방인이 아닌 동족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오늘날로 말하자면, 불신자보다는 같은 믿는 자를 말함이겠지요?
구제에 있어서 불신자와 신자를 구분하는 것이 옳을까요?
그리고 올바른 구제의 정신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정말 힘든 사람들도 있지만,
솔직히 일은 안하고 교회 마다 돌면서 손을 벌려 습관적(?)으로 몇푼씩 뜯어 먹는 밉상같은 사람들도 많이 있거든요... 혹 우리교회에도 가끔씩 그런 사람들의 반갑지 않은 방문이 있을 것 같은데요...그들에 대한 구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시나요? (죄송합니다. 질문이 좀 산만해 졌지만.. 현답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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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두분 답변에 감사합니다..추가 질문도..
이근호 2004-02-12 17:09:04, 조회 : 354, 추천 : 45
이스라엘은 원래 늘 심령으로 가난해야만 합니다.
왜 그런가하면,
애굽에 종되었던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유하게 된 것이 되레 이상한 일입니다.
만약에 약속의 땅에서 살기에 여유있다면
전부 하나님의 은총인 줄 알아야 합니다.
생계를 걱정하기 이전에
생존 자체도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계속 이방민족과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고아와 과부가 양산되었습니다.
이들의 장래가 암담하겠지요.
그 때,
주위 사람들은, 이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의 본질을 되새겨봐야 합니다.
즉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 고아와 과부였다고 말입니다.
이로서 하나님깨서는 이스라엘을 항상 은혜로 인도함을,
가진 자나 못가진자들이 다 공유 수용하면서 살도록 촉구하시는 바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에 있어 주위의 가난한 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 본척 한다면, 이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을 스스로 끊는 행위에 해당됩니다.
(출애굽기 22:21-27 참조)
오늘날 신약시대에 있어 가난의 의미는, 영적인 무지를 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