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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시편에 나오는 명령어] 2003-10-28묻고답하기요한복음

[시편에 나오는 명령어] 2003-10-28

이름 : 관리자(IP:122.47.55.30)

목사님,설명좀 해주세요.
구도자 2003-10-28 07:55:10, 조회 : 188, 추천 : 45

요즈음 저희 교회 목사님께서는 새벽예배때 시편을 강해하고 계십니다.

오늘 새벽은 시편15편을 하셨는데, 주 내용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신자라면 10가지의 규범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듣고 돌아오는 제 발걸음이 무척 무겁기만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살지 못한 저의 책임이 큽니다만...
이곳에서 목사님의 글을 읽다보면 이 본문이 윤리적인(~하라, ~하지말라) 거기서만 끝날것 같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만...

말씀에 대한 해설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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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시편의 중심점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이근호 2003-10-28 08:47:20, 조회 : 197, 추천 : 36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에 예배란, 오직 메시야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메시야가 없으면 진리와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불가능해집니다.

왜냐하면 메시야는 마지막 때에 영을 주시는 분으로 등장되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2:31-33)

만약 인간들의 모임으로만 예배가 된다고 한다면, 사마리아 여인의 오해과 같은 차원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드려야 하나요 그리심산에서 드려야 하나요? 일요일날 드려야 하나요 수요일날 드려야 예배를 받나요? 주일날은 11시에 드려야 하나요 오후 2시에 드려야 하나요? 본당에서 드려야 하나요? 교육관에서 드려야 하나요 집에서 드려야 하나요?"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시편에 나오는 의인은, 여호와의 관계성 안에 놓인 자입니다.
그런데 온전한 관계는 장차 오실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장차 오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장악하고 관리하고 인도하시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시편입니다.

그런데 시편은 공간적이지며, 신약에서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치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로마서 14:17)

그런데 성령은 신약 시대에 와서 오직 예수님의 의와 공로만을 증거하는데 모든 활동을 집중하십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예배란. 시편을 펴든, 로마서를 펴든, 오직 예수님의 복음과 은혜성을 중심으로 성도들이 한데 모여 하나님과 주님을 경배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물론 어느 장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자주모이며 주님의 사랑을 꺼집어내놓고 교제 하는 것이 바로 로마서 12장에서 말하는 영적 예배입니다.

쉽게 말해서, 교회란 고정된 장소 개념으로 보지마시고, 예수님 복음 중심으로 보이드는 성도들관의 모임과 교제관계로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예수님 중심이어야 하지 결코 교회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두 세 사람 밖에 안남았다고 예수님께서도 그 모임을 무시하고 결석하시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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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목사님...
구도자 2003-10-28 10:35:15, 조회 : 213, 추천 : 42

녜 목사님의 답변 잘 알겠습니다.
참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이렇게 어리석은 자들의 글을 보고 계시노라면 답답도 하시련만 늘 성의있게 말씀해주시니 말이죠.

어리석은 질문 하나 더 하겠습니다.

1) 시편 15편에서 1절에서 시인(다윗)이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자 누구오니이까?"란 구절이 뜻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오는 자는 어떠한 자 입니까? 란 의미입니까?
=>그렇다면 다윗은 그만큼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있다는 건가요?

2) 마지막 5절에서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의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얼핏보기에도 앞에서 말하는 10가지의 규범들을 지킨 자들을 가르키는 것 같은데...
=> 그렇다면 성도의 윤리적인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요?

목사님의 글이 이해되었는데 5절의 이 마지막 말씀이 안 풀리네요.
1절의 시인의 질문도 그렇구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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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렇다면 목사님...
이근호 2003-10-28 11:09:38, 조회 : 216, 추천 : 39

언약이란 일종의 노아의 방주와 같아서 그 안에 들어가면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관계명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시편은 언약의 관계망을 보여줍니다. 그것도 '다윗언약'에 속합니다.

다윗언약이란, 왕 한 분의 신앙심에 의해서 소속된 전 백성이 구원을 받게 되는 방주입니다.

다윗의 성산 진입은,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는 백성들의 장래를 보장하는 길이 됩니다.

쉽게 생각합시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성산에 이르는 길을 제시받았습니다.

그는 기뻤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찬양의 시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다른 백성은 다윗과 '왕-백성'이라는 관계 속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다윗에 의해서 열려진 성산의 생활에 그들이 무상으로 합류될 수가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 하지만, 다윗 언약에서는 다윗처럼 살아야 구원된다는 말이 아니라 다윗같은 왕이 공로의 덕분으로 다른 이들이 구원받는다는 법칙이 유효한 상태입니다.)

시편에 나오는 말씀은 다윗 자신에게 요구하는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성산에 먼저 시범조로 들어가야 될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까지는 유대신학도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다윗 본인이 실패했다는 겁니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 순종할 수 없는 겁니다.

마치 십계명받은 모세가 십계명을 다 지킬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받은 말씀은 누가 이룬단 말입니까?

히브리서 10:1-10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따로 준비해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물론 다윗은 선지자로 머물고 맙니다.

그러면 실패한 다윗은 지옥갑니까?

아닙니다. 다윗은 바로 예수님 덕분에 구원받을 받게 됩니다. (이점을 아브라함도 마찬가자입니다. 요 8:56)

바로 시편에 나오는 모든 말씀을 다윗이 선지자 위치에서 예언하게 되고 성취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이 다 이루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시편에서 예수님의 공적을 발견해야 하고, 그 분이 시편의 말씀을 이룬 義의 덕분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산에 들어가 살게 되는 겁니다.

그 와중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얼마나 완벽하지도 못하고 늘 완전한 상태를 지속할 수 없음을 통감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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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2:1-3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낮은자 2003-10-30 10:44:02, 조회 : 171, 추천 : 37

존경하는 목사님

전에 목사님의 책과 아티클들을 통해 목사님을 알게된 신학생입니다.

우연찮게 십자가마을 알게 되었고 평소 이곳을 들러서 목사님의 글들을 접하다 보면 너무나 많은 갭을 느낍니다(기존의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 말이죠).그러다 보니 너무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또 제자신이 이렇게 복음에 대해 우매했음을 알게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성경공부 참여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공부하게(창11장부터 공부 시작했습니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것이 있어서 이렇게 목사님께 질문올립니다.

창세기12장1-3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말씀이 곧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되는지요.

즉, 2-3절에 나오는 "너"를 오늘날의 "나"로 바꾸어 볼 수 있는지요? 그렇게 보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 신자들 역시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복의 근원인 자다 라고 말입니다.

12장 1-3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뭔가 언듯 알 듯도 한데... 부족한 자를 깨우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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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창 12:1-3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이근호 2003-10-30 11:51:51, 조회 : 223, 추천 : 35

몇 단계 그쳐야 됩니다.

우선 축복과 저주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복음 중심입니다.

즉 아브라함 속에 뭔가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만약 오늘날 성도가 전하는 예수님 십자가 복음(성도가 이해한 예수님이 아니라)에 대해서 거부하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사람이나 자기 자신의 지식에 치중을 하면 자칫 교주가 되기 쉽습니다.

"나 목사를 거부하는 교인은 저주를 받습니다. 나 성령받았기에 성령을 훼방하면 저주받습니다."라고 외쳐대는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활동하는 목사라는 이름의 사이비 교주들 말입니다.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성령께서 오직 말씀과 증거하시고, 그 증거자조차 그 말씀에 저촉이 된다는 사실도 함께 증거해야겠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증거해야지,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기 자신을 증거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부족하고 평생 죄가 유발되는 그런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식으로 성령께서 성도를 '자기 부인시키며' 복음으로 인도하는데 있어 그런 자를 사역하시는 성령님을 거부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갈라디아서 5:10)

아무리 많이 알아도 성령님만큼 인간은 모릅니다.(롬 8:26)

성령님도 오직 예수님에 의만 증거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의로, 세상 책망에 나서십니다.(요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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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입니다.
행인 2003-11-01 16:01:06, 조회 : 158, 추천 : 27

목사님

4절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란 말이 있는데요
이는 곧 아브람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이 아닌지요?
(물론 이런 믿음도 아브람이 이방땅에서 우상을 섬겼음에도 하나님의 개입으로 하나님이란 신을 알게 되었고, 아브람 그를 강권하여 그곳에서 떠나게끔 하셨지만 말이죠.))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이 아닌 하란 땅에서 얼마동안 인지는 몰라도 제법 오래 머물고 말았는데(자신의 생명, 안정, 행복...으로 인한 갈등,망설임) 다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떠날 것을 강요하신 것은 오늘 본문의 내용이 아닌지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이었지만
결국 아브람은 그 약속을 믿고 하란을 떠났고(보잘것 없고 볼품없는 믿음이지만 이를 믿음이라 여겨주시는 하나님-->히브리서 11:8 "믿으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뜻,방법,계획 으로 그 약속들을 이루어가게 하신 것이 아니라(아브람은 인간의 방법으로 행하고자 했지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가심으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아브람에게 보이셨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점점 확실히 믿게 된 것이 아닌지요?

그러니까 이방땅에서 민족을 이루게 되고, 그곳에서 민족이 형성되어질만한 경제력도 얻게됨으로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알게 된 것이 아닌지요?(아브람의 삶 가운데 간섭하셔서 하나씩 하나씩 깨닫게 하심으로...)

따라서 오늘날 우리 신자들에게도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면 바로 복의 근원이 된다는 말이 될수 있는 것은 아닌지요?
물론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개념의 복 말구요.

마태복음 5장 13-16절에 나오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복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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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아브라함은 순종 안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근호 2003-11-01 22:40:36, 조회 : 160, 추천 : 42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기대한 것을 얻었다고 여기는 그 순간, 바로 그것에 안주해 버리는 죄를 범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얻은 것을 아브라함 본인이 하나님이 복이라고 여길 공산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을 고대했습니다.(요한복음 8:56)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 남들이 복이라고, 뭐라고 부르던 간에 본인은 멀리 예수님 자체가 복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싶어서 그 환경이 되는 세상 자체를 포기 못하는 경우를 생각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성경 해석의 포인트는, 예수님 그 자체가 복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자아상이라든지, 세상에서 생겨나는 변화가 복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예수님에 의해서 일어난 변화 찾기에 주목해서 성경을 해석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즉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지, 예수님 때문에 변화된 세상의 특징들을 믿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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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 과연 성경적인가요?
이석원 2003-10-31 00:37:31, 조회 : 205, 추천 : 38

중보기도팀, 중보기도모임, 중보기도사역, 중보기도 학교...
'중보기도'라는 말이 정신 못차리게 합니다.
과연 성경적인가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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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중보기도를 주장하는 사람은 이단입니다.
이근호 2003-10-31 07:23:12, 조회 : 251, 추천 : 15

제가 하도 이단, 이단 하니까
제가 좀 심하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신자도 아닌 자들이 목회자가 되었기에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절에 가서 중이 되어야 될 사람들이 절 대신에 유사 절인 교회를 세우고 목회하는데 이단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구약에서 기도 응답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제사드려서 그 제사가 응답 되는 경우에만 기도도 응답됩니다.

이것은 그 성전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곳이요. 그 이름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 외에 그 어떤 자의 기도도 응답은 불가능합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이름'은 다른 이방민족의 신들과 경쟁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구약 신학 속의 구조입니다.

다니엘서에서도 이 점이 분명하지요.

이것은 신약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주기도문을 1000번을 외우고 반복해서 기도해봤자 기도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기도는, 자기 속에 들어있는 죄를 발산하는 계기가 됩니다.

택한 자의 그 기도 안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침투하십니다.

마치 히스기야의 기도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성도는 자신의 기도 가운데서 성령님의 탄식을 접하게 되고, 더나아가서 십자가 중심으로 일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회개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평소에는 그렇게해서 범사에 감사하지 않고, 자녀의 수능 시험을 위해, 사업을 회생케 하기 위한 기도, 온 식구가 다 예수 믿고 교회 나가는 기도, 개척교회 하는데 있어 교인하나 더 불어나는 기도, 병자가 병이 낫는 기도, 온 교인들이 십일조를 다하게 되는 그날을 위해서 기도, 떠나간 애인이 다시 마음을 바뀌어주기를 기도하는 것, 에배당 짓기 위해 사놓은 터가 땅값이 폭발하기를 애원하는 기도, 남북 통일 기도, 청소년 축구 4강 진입 기도, 등 등, 온갖 기도에 열중하다가 성령님이 탄식이 이 기도 안에 개입하게 되면, 비로소 성경 말씀대로 '범사에 감사해야 된다'는 사실에 접하게 됩니다.

그동안 자신의 죄성이 이런 '범사에 감사'라는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어느 인간이 별 있음을 보고 감사하고, 달 있음을 보고 감사하겠습니까!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 136:9)

'하나님이 이름'으로 기도한다면서 실상 '하나님의 이름'이 하시는 기도를 철저하게 가로막고 방해한 자는 바로 자기 자신임을 파악해서 다시금 '하나님 이름'이 해내신 공로와 의로움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여기 살아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되려면, 그 살아있음을 통해서 인간의 죄를 발산하게 되고, 그 죄를 예수님께서 자기 이름으로 용서가 계속해서 진행된다는 이 두 가지 사실 모두를 알아야 합니다.

중보기도란 지금도 예수님만이 독점하신 기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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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목사님 글을 읽다가 의문이 생겨서요
지나가는이 2003-10-31 16:37:03, 조회 : 213, 추천 : 35

여러 글을 살피는 가운데 목사님의 글을 읽고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그럼 목사님, 성경에 중보기도의 핵심 본문으로 사용되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위한 기도는 무엇인가요?

성경에 나오는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중보기도 드리는 것은 무엇을 말함 인가요?

아울러 우리 역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본을 받아 이웃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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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기도와 중보기도는 엄연히 다릅니다.
이근호 2003-10-31 20:44:09, 조회 : 261, 추천 : 39

>중보 기도란, 구원이 근거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 확보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 의를 근거로 하는 기도는 중보 기도가 아니라 그냥 기도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란 완전히 말씀을 성취하신 분만의 고유 기능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위한 기도는 그냥 언약에 의지해서 드리는 기도일 뿐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롯을 위한 기도가 그냥 기도가 아니고 예수님만 할 수 있는 중보자의 기도라는 것이 어디에 근거가 있습니까?

응답받으면 중도기도에 응답 못받으면 중보기도 아니요 보통 기도입니까?

기도에서 명품이 있습니까?

인간의 기도에서 응답되는 특별 기도가 있습니까?

이런 사고방식들이 이단들을 양산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증거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기도를 이용하고 사용하시는 겁니다.

구약의 모든 성도의 기도가 다 그런 겁니다.

그렇게해야 기도 응답의 근거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 안에 있는 자를 그런 식으로 활용하고 계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함입니다.

신약에서는 이것을 '성령 안에서의 기도'라는 겁니다.

즉 성도는 기도 안에서 성령의 탄식에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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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녜~늘 이렇게 친절한 답변에 감사드리며
지나가는이 2003-10-31 22:32:52, 조회 : 201, 추천 : 50

저희가 단어의 의미도 모른체 그냥 그렇게 사용한 것 같습니다.
참으로 겁없이 아무생각 없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목사님 다른 이웃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은 마땅한 성도의(?--> 기도해주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일이죠?

신약의 성도들의 기도 역시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증거하기 위해 응답해 주신다는 거 맞는지요?

그럼 어떤 육신적인 일을 놓고 기도응답 받앗을때 우리는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는 것 이외에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리고 기도응답의 결과가 바라는 바대로 응답이 이뤄지지 않았을때에 성도들은 크게 실망할 필요가 없는거죠?

또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양떼들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허락한다는 말이 맞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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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맞습니다 맞고요
이근호 2003-11-01 07:00:07, 조회 : 214, 추천 : 41

하나님께서 인간하고 거래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 백성에게 죄가 늘 나오기 있기 때문에요,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도 모르고, 그저 자기의 기도가 질 좋은 기도라서 자기 기도 덕분에 사는 줄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그저 은혜일 뿐입니다.

다같이 범사에 감사합시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이미 아신 자를 영화롭게 하시는 과정이요 절차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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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럼 기도의 의미/자세/정신은 무엇입니까?
행인 2003-11-01 10:49:58, 조회 : 214, 추천 : 36

여기에 올려진 글을 읽으면서 의문이 생겨서 목사님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기도란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시는 과정으로 쓰신다고 한다면 신자들이 기도할 필요성이라고 할까요, 기도를 생활화하는데 걸림돌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왜냐면 어차피 하나님이 이루실거 뭐하게 기도하냐, 기도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고 말입니다.
(제가 질문을 해놓고도 이건 아니다 싶은데..갑자기 그런 의혹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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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은 늘 기도하게 마련입니다
이근호 2003-11-01 22:29:49, 조회 : 221, 추천 : 34

>인간사 자체가 고통이기에 늘 기도하면서 신을 향하여 도움을 요청하기 마련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 이제부터 기도 안할거야"라고 버틸 위인이 없다는 겁니다.

얼마 안가서 답답한 일이 생기면,

"이것은 필시 성도로서 기도의 게으른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신호야"라고 제 마음대로 해석하겠끔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결코 이성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몸과 욕망이 요구하는 실천에 나서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올바른 기도를 해서 반대급부와 보상으로 하나님께 귀염과 행운을 얻겠다는 욕망으로 출렁이는 것이 인간입니다.

바로 이러한 죄성과 더불어 하나님이 성도에 대해서는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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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2장 1절 말씀에 대한 강해를...
이석원 2003-11-01 23:01:22, 조회 : 183, 추천 : 49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딤전2:1-

혹 '도고'가 '중보기도'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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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도고란, 자기 사정을 하나님께 보고하는 겁니다.
이근호 2003-11-02 07:43:46, 조회 : 197, 추천 : 30

중보기도란 지금도 예수님만이 하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이 압력을 넣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예수님의 복음(요한계시록에서는 '어린 양의 피'에 관한 믿음) 때문에 엄청난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도가

자기 생존 위주로 이 세상에서 더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증인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존재의 이유가 이미 확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과 그 배후의 권력자(악마)는 이런 복음을 용납치 않고 수시로 압력을 가합니다.

이때 성도는 자기의 형편을 보고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기도형식이 되겠지요.

이것이 바로 '禱告'(도고) 입니다.

디모데전서 2:1 말씀이 이 내용입니다.

결코 성도가 이 땅에서 자기들만의 세력 확장(소위 말해서 '교회 부흥')을 위하여 기도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큰 교회됨이 자신의 신앙을 지켜준다든지 아니면 자신의 신앙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외롭고 쓸쓸하더라도 '나의 사정을 보고할 대상이 있음'그 자체로서 이 세상의 악함을 증거하는데 충분합니다.

만약에 교회의 존재성을 기도의 응답으로 본다면, 그 교회 자체가 예수님을 대체하는 새로운 유형의 악마의 전당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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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도고란, 자기 사정을 하나님께 보고하는 겁니다.
이석원 2003-11-04 00:51:22, 조회 : 137, 추천 : 30

답변 감사드립니다.
'도고'라는 한 단어만을 놓고 볼 때 그렇게 말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1절 전체적인 문맥으로 보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와 연관지어질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요? 자기형편을 보고한다는 뜻으로...
'모든사람을 위하는' 것과 '자기 형편을 고하는' 것과는 뭔가 이질감이 있는 것 같아서요.
너무 어려워서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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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디모데 후서 2:1의 '모든 사람'이란 '상대를 가리지 않고'라는 뜻입니다.
이근호 2003-11-04 07:07:09, 조회 : 168, 추천 : 36

모든 사람을 위한 '도고'란 현 이 세상 형편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보고 하는 형식입니다.

성도에게는 특별한 임무감이 주어져 있습니다.

복음과 심판에 대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합니다.

그렇다고해서 그 사람들의 운명을 몽땅 책임지고 구원하라는 책임이 아니라 복음이 "아 이처럼 귀한 것이구나!'하고 새삼 알게 만드는 책임감입니다.

복음의 종이 되는 것과, 사람을 포섭해서 자기 영향력을 시험하고 측정하고픈 욕구와 일치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란 어차피 복음에 의한 심판은 모든 이에게 덮치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도는 자신이 처한 상태에 대해서 하나님께 자연적으로 보고 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도고'입니다.

철저히 전도를, 자신이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맡기겠다는 정신이지요.

자신은 그 와중에서 복음의 신실됨과 실현성을 확신하게 됩니다.

제가 요한계시록 예를 든 것처럼 말입니다.

귀하께서 제 설명에 어려워 하는 것은 아마,

자신의 한 기도에 대한 효과가 실적으로 드러나기를 은근히 희망하는 마음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일방적으로 짐작해 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도 하나 아니하나 이미 복음 자체에서 복음을 위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응답은 복음의 계획성에서 비롯되지 결코 우리의 기도 재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믿으시면 주위 사람 중에서 반드시 지옥갈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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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디모데 후서 2:1의 '모든 사람'이란 '상대를 가리지 않고'라는 뜻입니다.
이석원 2003-11-05 01:45:02, 조회 : 141, 추천 : 3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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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서...
김지영 2003-11-03 16:51:30, 조회 : 193, 추천 : 42

살아가면서 개인적으로 참 궁금했던 부분입니다.

너무나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분은 음악이 신앙생활이나 성도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며,

또 다른 분은 뉴에이지 음악이나 그외 사탄음악은 성도의 정신을 흐리며 무의식중에 그 마음을 잠식한다..

라고 주장합니다.

제 생각은,

그 마음이 주께로 향해만 있다면, 그 어떤 음악을 듣던지 크게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비단 음악뿐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문화들.. 사상들...

그 것을 수용하는 주체가 받아들이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기때문에

음악에 대한 이해도, 판단도, 그 영향도 개인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궁금해하는 것은요,

평생 음악을 하신 분들은 '무의식의 영향'을 경고한다는 것입니다.

음악은 작자의 사상이 그 안에 녹아있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사이에 비판없이 아무 음악이나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의 사상과 동화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모가는 참여자를 결연히 만들어주고, 애국가는 한 국민의 마음을 묶어주고,

군가는 전투에서 필승의 신념을 심어주며, 오페라에 쓰였던 관현악들은 그 음악만으로도 오페라의

내용과 분위기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문일 수 있지만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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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음악이란....
이근호 2003-11-03 18:10:44, 조회 : 217, 추천 : 28

음악이란, 신체를 가진 자라면 그 몸에서 발산되는 그 무엇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고, 생리적으로 자연 환경에 따라 리듬을 타기 마련입니다.

흐린 날씨나 비오는 날에는 마음이 우울해지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정서라는 것은 늘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작용하고 그 반응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 반응이 곧 음악이요 예술입니다.

고대에서는 음악과 시는 대인과의 의사 소통의 수단이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서 전달한다는 점에서 오늘날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신이 기분 내겠다는데 누가 건방지게 기분을 망치려드는 겁니까?

고성으로 주위 사람은 아랑곳없이 소음을 내는 것은 안되지만,

그렇지 않는 다음에야 본인이 무슨 기분을 내든 왜 타인이 관여하고 간섭하려 드는 겁니까?

그런 자를 용납해서는 아니됩니다.

체면따라 품위 따라 분위기 따라 곡을 선별하고 자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지 종교 집단에서 강요할 사항도 아니요 강요받을 사항도 아닙니다.

찬양이란, 가사도 본인이 음미하기 나름이요 가락도 자신이 음미하기 마련입니다.
찬송가 가사를 어떻게 바꿔 부르던 간에 본인이 하나님의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검사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즐거운 가락의 찬송가를 선별해서 예배 인도했다는 죄목(?)으로 비난 받는 철없는 전도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례식장의 인도자는 가족들의 요구에 들어줄 의무가 있기에 개인적인 음악 선향을 자제할 필요성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봉사거든요.

그러나 그렇지 않는 다음에 그 사람이 째즈를 부르든, 뽕짝을 부르든,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든, 찬불가를 혼자서 중얼거리든 남들이 그 사람의 사상과 신앙을 남들이 점검하는 것은 주제넘은 월권 행위입니다.

노래 부르는 것 까지 목사나 그 누구로부터 간섭받으려거든 차라리 예수 믿는 것도 여행사에다 맡기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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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감사합니다.
김지영 2003-11-03 19:13:16, 조회 : 164, 추천 : 39

목사님..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민하던 부분이 좀 시원해진 느낌입니다.

괜한 것에 마음쓰고 있었나봅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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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자세한 설명좀...부탁드립니다.
질문자 2003-11-04 07:49:02, 조회 : 164, 추천 : 44

지난 주일 목사님께서 시펀16편을 가지고 말씀하셨는데 주내용은 6절 중심으로한
"구역의 성장과 부흥, 교회부흥"에 대해서 열심히 강조 하셨습니다.
얼핏봐도 그 내용은 아닌듯 한데...

더구나 요즈음 나오는 성경책에는 아래부분에 짤막한 주석이 되어있는데,
거기엔 분명 시편16편이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한 시라고 적혀 있습니다.

다윗은 정황으로 볼때에 지금 고난에 처해있는 듯한데,
어떻게 이 시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로까지 이어지는지 아무리 본문을 살펴봐도 연결이 잘 안됩니다.

언젠가 목사님 글에 시편의 중심사상은 메시야라고 하셨는데,
저희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결과적 사실은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본문과의 연결을 통해 그런 결과로 까지 연결이 잘 안됩니다.

목사님, 본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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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시편에 대한 메시야적 해석의 모델
이근호 2003-11-04 09:19:06, 조회 : 199, 추천 : 28

시편에 대해서 오실 메시야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2:25-30에 나와있는 사도 베드로의 해석이 모델이 됩니다.

이 점을 이제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25절부터 28절은 시편 16:8-11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자,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이야기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난다고 보십니까?

시편에서는 '여호와'라고 되어 있는 대목이 사도행전 베드로의 설교에서는 '주'라고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편에 나와 있는 '나'라는 자는 누구를 뜻합니까? 다윗이 지은 시니까 당연히 '다윗'이라고 단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분명히 시편에서, '주'가 아니라 '여호와'를 고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여호와를 고대하는 이 내용은 다윗이 예수님을 고대하는 내용이 실제 내용이라는 것이 베드로가 성령받아 우리에게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봅시다.

시편 16:10-11에는 '주'가 네 번 나옵니다. 따라서 마땅히 오늘 본문 사도행전 2:27-28절에 보면, '주'가 세 번이 나옵니다.

그거야 마지막 '주'는 베드로가 생략해서 그런 것이까 횟수에는 별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왜 시편에서는, 다윗이 분명히 여호와와 주를 분리해서 언급했는데, 왜 베드로는 그 구분이 없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27절에 나오는 '주의 거룩한 자로 썩임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라는 대목에서 '주의 거룩한 자'가 결코 다윗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만약에 '주의 거룩한 자'가 다윗이라면, 그가 '썩임을 당치 않게 하실 것'이 확인한 바 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과연 어떤 분이 죽었는데 죽음에 의해서 시신이 썩임을 당치 않게 되었음이 확인되는 것은 다윗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날까지 있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2:29)

그렇다면 무덤에 묻혔음에도 불구하고 '썩임을 당치 않은 어떤 분'이라야 하는데 그 분이 과연 누구십니까?

그 분은 바로 예수님 밖에 더 있습니까!

그러니까 베드로가 이 다윗이 시를 인용할 때는, 구약에는 분명히 하나님과 다윗 둘 만의 관계를 말하는 시였는데, 오늘 본문에서 다윗과 하나님 뿐만아니라 예수님까지 동원된 세 분의 관한 이야기로 베드로가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유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27절에 나오는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에 나오는 '나'가 누구입니까? 다윗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 당사자가 되는 겁니다.

27절에 나오는 '나'가 다윗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면, 그렇다면 이 시 전체에 나오는 '나'는 전부 예수님이 되는 셈입니다.

다윗이 예언한 그 예언된 시를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실제로 다윗 안에서 외친 자신이 하신 예언으로 보셔서 그 예언대로 예수님은 실행에 옮기신 것이 되는 겁니다.

자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시를 놓고서, 우리들은 잠시 여기에 등장하는 '나'라는 자를 다윗이 아니라 예수님이라고 간주하고 이 시를 다시 읽어봅시다.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나 예수가 항상 예수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예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나 예수 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나 예수의 마음이 기뻐하였고 나 예수의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나 예수의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 곧 나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나 예수께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 예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자의식에 대해서 다윗은 미리 예언했다는 겁니다.

베드로전서 1:10-11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니라"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인 것을 감안합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시고 맹세한 모든 것을 그대로 담아서 실천에 옮기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다시 우리 인간 이야기로 돌아와 봅시다. 다윗이 과연 구원받았겠습니까? 구원받았습니다. 비록 그는 죽어 그의 무덤이 오늘까지 있지만 구원받았습니다.

어떻게 구원받았으며 왜 구원받아야 합니까?

이 질문은 단순히 다윗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위시한 오늘날 우리 성도에게도 공통되게 적용될 구원 원칙에 관한 언급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이미 1000년 전에 다윗 속에서 언약을 통해 다윗의 운명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 당시에 성령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장악하듯이 말입니다. 다윗이 개인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어도 하나님은 다윗을 이미 자기 손아귀에 장악케 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윗은 나이 많아 죽을 때 비로소 죽은 자가 아니라 이미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일이 심지어 구원받아야 될 당사자 하고도 의논하지 않고 오직 장차 오실 메시야와 의논한다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바로 이 점을 다윗이 예언했고 베드로는 성령을 받아 그 내막을 우리들에게 풀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원칙이라면 이제 갈라디아 2:20절이 이해되실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는 말씀 말입니다.

분명히 외부인의 눈으로 볼 때 모든 활동은 사도 바울 본인의 의지와 생각과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한결같이 주장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능력받아 일하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능력이 사도 바울을 장악하고 인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이 성령님은 오직 예수님만 소개할 따름인데 그 이유는 사도행전 2:22의 말씀처럼 하나님마저 예수님 증거에 주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만이 성령받은 성도입니다.

참고로 말해서,

교회는, 교회됨으로 종결되는 개념이지, 교회 뒤에 '부흥'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는 개념인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이 생각한 그 교회가 아니로 민중들이 만든 허구적인 놀이터라는 점을 제발 확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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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입니다.
이요셉 2003-11-05 18:54:08, 조회 : 154, 추천 : 40

그렇다면 존경하는 목사님

예수님이 생각하는 그 교회란 어떤 교회입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회는 어떻게하여 생겨나게 된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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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교회란, 교회를 겨냥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근호 2003-11-05 22:10:00, 조회 : 199, 추천 : 27

>교회란, 그리스도를 겨냥해서 생겨나는 겁니다.

따라서, 교회가 생긴 후에도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그 복음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면 교회요,

그렇지 않고 교회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사이비 종교 단체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면,

복음만을 전했더니만

처음에 20명,

계속 복음만 전했더니만 한 해가 지나고 10명,
계속 복음만 전했더니만 두 해가 지나고 5명,
계속 복음만 전했더니만 세 해가 지나고 2명,

이 두 명이 곧 여전히 교회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러나 다음이 경우는 교회가 아닙니다.

처음에 20명

계속 복음만 전해서 교회 되고자 했는데 한 해가 지나고 10명,
계속 복음만 전해서 교회 되고자 했는데 두 해가 지나고 5명,
계속 복음만 전해서 교회 되고자 했는데 세 해가 지나고 2명,

이것은
교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인간들의 야심이 만들어낸 유사 교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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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