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뱀 왜 뱀의 형상을 만들라고... ] 2003-06-11
놋뱀 왜 뱀의 형상을 만들라고... 김종선 2003-06-11 09:20:13, 조회 : 212, 추천 : 39
민수기21:8-9절에서 하나님께서느 불뱀에게 물린자마다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달고 보는자마다 살리라고 말씀하심을 본다. 구속사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으나 왜 뱀은 사탄을 상징하는테 뱀을 만들라고 하셨는지 뱀이 예수님의 구속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요...
===================================================================[re] 놋뱀 왜 뱀의 형상을 만들라고... 이근호 2003-06-11 14:46:27, 조회 : 322, 추천 : 35
>성경에서 뱀만 나오면 무조건 사탄과 연관시키는 이해는 재고해 봐야 된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려고 하신 것은, 광야에서 뱀을 보내어 물게 하신 그 분이 "너희들이 원망하는 대상으로 삼았던 하나님이시다"점을 부각하기 위해서입니다.즉 진정, '원망해서는 아니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자기 죄를 자복하는 심정이 있는 자를 구분하기 위해서 놋뱀을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 마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신 이유가 자신의 죄 때문임을 자복하는 자에게는 예수님의 가치를 신봉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산상설교 강의와 관련한 질문 예병환 2003-06-21 09:40:00, 조회 : 230, 추천 : 38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목사님의 산상설교 강의를 보면서 질문드립니다.
산상설교에서는 행함으로만 되어 있던 것이 바울에 와서는 육체의 일과 성령의 일로 나누어진다라는 부분을 강의하면서,
성령의 역할을 요16:8을 근거로 하여 죄, 의,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하면서고전 5장, 롬13장, 빌3장, 갈5장을 예로 들었습니다.(예를 들으신 것 맞죠?) 그리고 갈5:19-21의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을 육체의 일로 바울은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강의한 내용 "그런데 산상설교에서는 육체의 일이 빠져 버리고 지켜서 행치 아니하면 무너진다고 하는 것이다. 주여 주여라고 부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간다고 했는데,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것을 육체의 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산상설교에서는 육체의 일과 성령의 일이 구분이 안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천국에 간다고 되어 있는데, 그런데 성령을 받은 사도가 하는 말이, 육체의 일이 따로 있고 성령의 일이 따로 있다. ", 라는 부분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re] 산상설교 강의와 관련한 질문 이근호 2003-06-21 10:33:31, 조회 : 270, 추천 : 35
>산상설교는,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율법관을 고려해서 하신 설교입니다. 소위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가르쳐준 신학의 틈바구에 끼어 있어 그들이 신학 지배 하에서 예수님을 추종하는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10) 따라서 그 당시 신학의 주종을 이루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신학을 알아야 합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감사하게도 예수님께서 구약 율법을 보는 그들의 견해를 먼저 소개하고 그들의 잘못된 말씀관을 반박하는 형식으로 산상설교를 끌고 가시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마치 서기관들이 구약 율법을 받아드리는 그런 마음가짐과 유사하게 율법화 시킨 해석으로 받아들여서 지키려고 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발생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산상설교의 말씀을 더 철저하게 준수할 수 있으니라 여기는 것은 예수님 말씀에 큰 오해를 하는 겁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상설교를 대하는 소위 신자라는 자들은, 이런 생각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옳지 바보같은 바리새인들은 구약 율법을 나름대로 준수하지만 예수님 수준의 높은 율법 준수 방식을 미처 알지 못했구나. 하지만 오늘날 성도들은 예수님 수준의 준수 기준을 이제 알기 때문에 예수님 가르친 대로 실천에 옯기면 바리새인보다 더 큰 의를 가질 수 있어 천국에 쏙 들어갈 수 있겠다"라는 의식 같은 것 말입니다. 이런 생각이 유발되도록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마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욕하고 예수님의 자신의 제자들은 특별 대우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바리새인과 서기관같은 율법 준수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천명하는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모든 인류의 대표자들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겁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의 설교 취지는 후에 사도 바울의 '육'과 '영'이라는 기준으로 명확하게 정돈 정리가 됩니다. 따라서 주님이 직접 계시하신 그 사도 바울의 신학을 가지고 다시 산상설교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자니.."라는 말씀을 하신 이유가 드러납니다. 모든 인간을 죄인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영이란, 영을 찾고 요구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시는 자에게만 강권적으로 제공될 때만 은혜가 은혜답게 되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죄인임을 안다고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본인이 죄인임을 모르고서 성령을 받는 자도 역시 없게 마련입니다. 어쨌든 주도권은 주님에게 있고 그 분의 보내신 성령으로만 구원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 사람이 아니라"(롬 8:9)
===================================================================[re] 산상설교 강의와 관련한 질문 예병환 2003-06-23 08:25:53, 조회 : 182, 추천 : 44
목사님의 설명에 고맙습니다.
성령받은 사도들의 해석에 의지해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 공감하며, 그런데 복음서 역시 사도가 쓴 글이라면 산상설교가 속해 있는 복음서 안에서도 바울과 같은 해석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 관련 성경을 부탁드립니다. 아니면 복음서는 구약을 총 집결함과 신약의 총 출발점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복음서 안에서 경계점이 나오리라는 생각도 들구요. 경계점을 십자가라고 한다면 십자가까지의 과정으로서 산상설교를 보아야 합니까? 오늘날 교회에서 산상설교를 기독교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강조하는 것은 산상설교(율법)을 뛰어 넘어 십자가로 가는 것으로 보지 않고 다만 그것을 지키려 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되는 것인지요?
######################################################################################빌립보서3장10,11절 질문입니다. 박장수 (Homepage) 2003-06-24 13:03:51, 조회 : 243, 추천 : 21
예수님....십자가마을에서 복음(성령의 아홉가지열매 포함)를 증거하고 계시는 목사님들께 더욱더 담대함 주시옵소서.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어찌하든지 라는 표현에는 그리스도예수님과는 상관이 있든지 없든지 무관하다라는 의미를 줍니다.사실은 그렇지 않지만....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지요?
===================================================================[re] 빌립보서3장10,11절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3-06-24 17:36:31, 조회 : 283, 추천 : 31
>여기서 '어찌하든지'라는 말은 '마침내'라는 뜻입니다. "뻔히 다 아는 사실이기에 당연히 이 길을 갈 수 밖에 없지 아니한가"라는 투의 결정된 사항에 순순히 응하는 마음 자세를 뜻합니다.
######################################################################################이근호 목사님! 침례교 쪽은 왜 침례라는 말에 목숨 거나요? 김상철 2003-07-04 13:34:52, 조회 : 232, 추천 : 33
이근호 목사님! 침례교 쪽은 왜 침례라는 말에 목숨 거나요?
제가 만난 침례교 쪽 사람 치고 이 말에 예민 안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과민 반응인데
어차피 단어인데 그 내용의 의미가 중요하지 않나요?
왜 침례교쪽 사람들은 이렇게 교육을 받는 것입니까? 그 내막이 어떤 이유인지 궁금하네요
===================================================================[re] 이근호 목사님! 침례교 쪽은 왜 침례라는 말에 목숨 거나요? 최형중 2003-07-04 17:56:51, 조회 : 268, 추천 : 32
이근호 목사님께서 답글을 해 주시겠죠...^^
제가 침례교인이라서 간단한 답글을 적습니다. 죄송합니다.저는 침례교인인데요... 침례에 목숨 걸지 않습니다.^^침례에 목숨 거는 사람들은 대게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죠.아니죠. 침례밖에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죠.
침례/세례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교육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침례교회 안에도 복음에 충실한 사람들이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주세요.^^
===================================================================[re] 이근호 목사님! 침례교 쪽은 왜 침례라는 말에 목숨 거나요? 이근호 2003-07-04 20:01:43, 조회 : 368, 추천 : 37
>창설자 존 스미스(1554?-1612)께서 다른 청교도와 구별되는 특징으로 하나의 요건으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세례가 아닌 침례였습니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욕조에 들어가서 뒤로 젖혀져서 "풍덩!" 빠지는 식의 침수를 큰 장점인양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냥 개성이라 봐주세요. 장로교가 예정론을 개성으로 간직하고,순복음 교단이 병고침을 개성으로 간직하듯이 말입니다
===================================================================[re] 이근호 목사님께 최형중 2003-07-05 09:52:27, 조회 : 245, 추천 : 38
먼저 하신 말씀에 대한 의도는 이해를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구요.
그런데, 제가 배운 침례교회사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집안 역사 배우는데 부정적으로 가르치지는 않겠죠.^^;침례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성이 없는 사람이 없을찐데, 그 개성을 자기 개성으로 이렇다 저렇다하는 것도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 또한 그렇지만말입니다.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으실텐데... 그런 속사정까지 다 알지 못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제게 아직도 말씀하신 개성이 사라지지 않았음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것 같아 다시 한번 뒤돌아 보게 만드는군요.
이 자리에서나마 안부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re] 이근호 목사님께 이근호 2003-07-06 22:54:38, 조회 : 233, 추천 : 33
>감사합니다
===================================================================[re] 개성이란 개같은 성질의 줄임말입니다. 나그네 2003-07-04 22:20:32, 조회 : 268, 추천 : 32
창설자 존 스미스(1554?-1612)께서 다른 청교도와 구별되는 특징으로 하나의 요건으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세례가 아닌 침례였습니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욕조에 들어가서 뒤로 젖혀져서 "풍덩!" 빠지는 식의 침수를 큰 장점인양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냥 개성이라 봐주세요. 장로교가 예정론을 개성으로 간직하고,순복음 교단이 병고침을 개성으로 간직하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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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이라고 표현하심에 동감합니다.여기서 저는 개성에 대하여 조금 덧붙이려 합니다.
개성이란 한마디로개-개 같은성-성질즉 개 같은 성질을 한마디로 개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개성이란 인간에게서 나온 배설물에 불과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배설물을 가지고 필요하다느니 의미가 있다느니 논의를 하시렵니까?그러나, 이런 일들이 지금 한국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웃지 못할 코미디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은혜 하나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은나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겨도 상관없다는 말아닌가요.그리스도인이여 자각하라 배설물에 목숨 걸지 말고............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먹어도 되는지요? 백보현 2003-07-08 20:32:16, 조회 : 242, 추천 : 33
성경에서 말하는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은 어떤 것들이며
개는 어떠한 짐승에 속하는지요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부정한 짐승들은 먹으면 안되는지요
개고기는 먹어면 안되는지요 ===================================================================[re] 먹어도 되는지요? 이근호 2003-07-09 13:22:57, 조회 : 311, 추천 : 38
[금기의 수수께끼]에 관한 제 서평 중의 일부를 발취해 보았습니다.
>"왜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가? 동물은 소와 같이 되새김질하고 굽이 갈라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낙타는 되새김질을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고(그러나 사실은 낙타는 굽이 갈라져 있다)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먹어서는 안 되며, 돼지는 그 반대의 경우로 애매모호한 비정상 동물이기 때문에 먹어서는 아니된다. 물고기는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어야 정상이고 날개를 가진 곤충은 날아야 정상인데 메뚜기는 날지 못하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영역으로 분류된다. 오소리의 경우, 귀없는 토끼처럼 작은 발굽을 가졌으면서도 무소와 같은 이빨이 코끼리처럼 보이기 때문에 기형이고, 말미잘의 경우, 식물과 동물의 어중간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에 못먹고, 날다람쥐는 새로 뭍동물도 아니기에 회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음식물을 가지고 하나님 자신의 거룩을 설명하셨습니다. 거룩이란 분리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기존의 민족과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음식물 가려먹기로 가르치고자 하신 겁니다.
신약에 와서의 거룩이란 오직 예수님의 행하심 뿐입니다. 인간들이 자기 음식물 조절한다고해서 비로소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자기 식성에 맞다고 여기신다면 하나님의 감사함으로 무엇이든지 먹으시기 바랍니다.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어라"(고린도전서 10:27)
개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통에 먹을 게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강아지가 지나가면 얼마나 반갑겠습니까!아마 하나님께서 식량 주셨다고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 고기를 일상용 음식으로 먹는 것은 좀 고려해 봐야겠지요. 그것도 급하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부끄러운 구원'이라는 것에 대해서... 김상우 2003-07-14 10:52:02, 조회 : 229, 추천 : 26
어제 성경공부시간에 '부끄러운 구원'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부끄러운 구원'을 얘기하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옆에 같이 십자가에 달려 있던 강도가 구원된 것을 예로 들더군요.즉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 받자마자 죽어서 하나님을 위해서 뭐하나 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구원을 받았으면(믿음이 생겼다면)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며, 믿음을 더해가야 하며, 죄를 덜 지어야 하며, 뭔가 달라진 모습들이 보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의 상급도 커진다(천국가면 사람의 행위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상에 급수가 있다는)는 얘기죠...
저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저는 구원, 믿음에는 크고 작음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즉, 구원(믿음)은 있고 없고의 문제이지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그리고 믿음을 받은 후에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죄를 알게 하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감사하는 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이러한 일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 수시로 일어나며, 죽을때까지 계속되는 것이죠.그리고 하늘의 상급부분은 확실이 잘 모르겠는데, 전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에는 특별히 급수나 구분이 없을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냥 주시면 감사할 따름이죠.^^
'부끄러운 구원'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제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re] '부끄러운 구원'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근호 2003-07-14 14:33:26, 조회 : 348, 추천 : 33
>모든 구원은 부끄러움 가운데 수행됩니다. 죄인됨의 수치를 모르는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깨서는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의로 수치를 덮어주심으로 구원시켜 주십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자연적으로 그리스도 의 안에서 근신하는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디모데전서 1:7)
그런데 이러한 부끄러운 구원을 기피하고 다른 노선으로 구원에 이르겠다는 자는 천국이고, 상급이고 뭐고 아예 구원이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참고로 십자가 달린 강도보다 더 위대한 신앙으로 구원된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모두 한 예수님부터 온 동일한 선물이기에 오직 예수님의 공로만 찬양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에베소서 4:5)
######################################################################################큐티의 비복음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김상철 2003-07-14 13:43:04, 조회 : 226, 추천 : 34
80년대 말부터 큐티라는 용어가 나옴으로 인해 이제는 큐티 하지 않는 교인은 교인도 아니다는 생각을 교역자들이 심는것 같아 이 큐티의 비복음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픕니다.
===================================================================[re] 큐티의 비복음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이근호 2003-07-14 14:20:32, 조회 : 346, 추천 : 29
>Q.T가 복음적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곧 비복음적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자체적인 능력에 의해서 구원이 달성되며 다른 경로로 구원되지 못함을 복음 자체가 규정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QT가 복음을 대신하여 QT 행함의 능력으로 구원이 달성되며 QT 말고 다른 경로로 구원되지 못함을 천명하고 나선다면 이로 인해 QT는 비복음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QT 합시다"라고 나섰는데 다른 어떤 이가 "QT 안하면 지옥갑니까?"라고 반발했다면, 그 사람은 QT의 취지를 오해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밥 먹읍시다"라고 제안했는데, 어떤 이가 "지금 밥 안먹으면 지옥갑니까?"라고 반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혹시나 이 소리를 듣고 "그렇습니다. 밥 안먹으면 지옥가고 밥 먹으면 천국가는데 수월합니다"라고 주장하고 나선다면 미친사람에 속합니다.
마찬가지로 "QT 안하면 지옥가고, QT하면 천국가는데 수월합니다"라고 나선다면 이 사람도 미친사람입니다.
######################################################################################성화를 부정하시더군요. 곽상섭 (Homepage) 2003-07-14 23:43:02, 조회 : 456, 추천 : 44
춘천의 작은교회 집사이고 고등부 교사입니다. 둘러보다가 몇자 남기고자 합니다.구원은 100%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됩니다.또 구원받은자에겐 성령이 내주하시고 또 인도함을 받으며 삽니다. 이것또한 100%예수님의 공로입니다.내가 나를 보아도 나에겐 자기존재기반이라는것이 없습니다.자기부정과 그리소도의 구원을 나타내는 일은 더없이 기쁜 일입니다. 또 사실이고요.그러나 내속에서 내주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함을 축소하는 것 또한 옳지 않습니다.성령께서 예수님의 복음을 지향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말씀대로 행하고 착한일을 하며 사는것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았기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우리가 복음을 전하는것 ,그리고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한일을 하는것조차 자기존재기반을 말하는 것이라 말한다면 목사님은 우리가운데 역사하는 성령을 부인하는것(나아가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이거나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들은 합력해서 선을 이룹니다.이 합력하는 것조차 타락한 인간의 죄성과 결부시켜선 않됩니다. 이것이성령의 역사이고요,하나님 보시기에 성화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성화됩니까. 성령께서 성화시키시죠.
칭의는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칭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적이며 선언적입니다.중생은 내부의 변화를 말합니다. 성령이 내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죄성과 싸우게 됩니다. 이야기 더해봐야 논쟁밖에 더 되겠습니까.
기성교회에 대한 적개심이 너무 큽니다. 혹 기성교회에서 받은 상처(노회제명)때문에그에 대한 반발로 혹은 자기를 정당화하기위해 예수님을 방패막이로 세우는 성향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이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를 비판만 하지 마시고이땅의 교회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수 있도록참다운 부흥이 이땅에 일어나도록 기도해 주십시요.
아 참 그리고 부끄러운 구원은 강도처럼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한번도 복음을 전해보지 못하고 복음을 위해 사용받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겠지요.(물론 우리공로는 없슴으로 우리의 구원은 본래 부끄러운 것이구요)
성경에는 상급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기존교회 목사들중 일부가 이것을 이용해서 성도들 겁주고 사기치는 것 있지만목사님이 이것때문에 상급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 같아요.
상급을 인정해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손상받지 않습니다.
십일조, 주일성수, 안식일 , 율법등 등 많은 토론들을 둘러보았습니다.유익했구요.구약에서의 율법은 예수님으로 완성되었고 파기되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이 율법의 근본정신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이 근본정신마저도 부정해선 않됩니다.
이근호 목사님
예수님을 앞서가거나 성령의 역사를 거스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요. 목사님도 자기존재 기반이 없기는 마찬가지 입니다.넘어 질 수 있습니다.진심입니다.
===================================================================[re] 귀하께서는 예수님을 등쳐먹고 있습니다. 이근호 2003-07-15 07:14:09, 조회 : 491, 추천 : 38
귀하에게는 '사악하다'하다는 표현 외에 다른 적당한 표현이 없습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앞에서 의인되고 싶어 환장했군요. 제 눈에도 그저 참혹하게 보일 뿐입니다.
죄라는 것은, 자기 자신은 전혀 의를 만들수 없다는 것과 관련 있습니다. 그런데 귀하께서는 체면상 죄인되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양 기독교 교리를 집어넣어 자신을 의인으로 탈바꿈하려고 애써고 있는 중입니다.
성경에서는 '성화'(서서히 거룩해지는 것)은 없습니다. 단번에 거룩해집니다.
만약 이 점을 믿지 못하면 강도가 갔던 낙원에 합류할 생각을 아에 먹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인간이 서서히 거룩해지는 방식으로 나중에 결국 완벽하게 거룩해져서 천국 갈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리고 칭의라는 것은 옳은 표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순전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의'란 오로지 하나님 자신의 소원에 의해서 주어질 뿐입니다.(고린도후서 5:21) 우리가 의롭게 되기를 요구해서 의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할 때, 그 '선'이란 하나님의 자신의 약속의 성취를 말하는 것이지 윤리나 도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상이란 급수나 단계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같은 하나님에 의해서 참여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령의 활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시고 성도에게 늘 꾸짖어서 회개케 하는 역사입니다. 그 열매로 나오는 것이 성령의 열매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려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 앞에서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시느니라"(히브리서 4:12-13)
그리고, 제가 노회에서 제명되기 전에는 이런 발언을 안했던가요? 제명되고 난 뒤에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서 "그래 될대로 되라"하는 식으로 새삼 이런 주장을 펼쳤던가요? 17년 전에도 이런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귀하께서는 벌거벗기를 원치 않고 있습니다. 분명히 모든 자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자가 될 수 밖에 없음에도 말입니다. 이것은 눈에 안보이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주위 사람을 의식하겠다는 심보에 불과합니다.
이 얼마나 비복음적 자세입니까!
제발 스데반집사님을 본받으세요!
귀하 같은 자들이 어떤 자들을 불러오게 했느냐 하면 소위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악마의 하수인들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교 절간들을 세워놓았습니다.
옛날에 산 속에 있었던 절들이 지금은 도시 곳곳에 십자가 종탑이 높이하면서 세워져 있습니다. 그 안에는 오직 체면과 자기 잘난체 하고 싶어하는 자들의 계모임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죄도 모르고, 십자가도 모르고, 의도 모르고,상급도 모르고,
그러면서도 예수를 도용하는 그 저의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예수를 증거해서 오직 십자가의 취지를 흐지부지 만들려는 악의 교묘한 전략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신종 불교 중들에 불과한 사이비 목사들이 지어낸 소위 '부끄러운 구원관'은 교인들의 오만함을 오히려 장려하고 부축여주는 악마의 음성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넓은 길에 합류하고 싶어 하면서도 천국의 좁은 길도 겸해서 원하는 그런 무리한 이중적인 생활을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침례?(이근호 목사님께) 이상규 2003-07-24 15:43:24, 조회 : 209, 추천 : 32
원종석씨 "물침례" 글을 읽고 정말 답답함과 개인적으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에의해서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많이 준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배, 성찬식, 말씀묵상, 기도, 교제, 봉사를 비롯해서 믿는자의 모든 삶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방편으로 배웠는데 세례도 그렇게 이해해도 됩니까?
안녕히계십시오.
===================================================================[re] 물침례?(이근호 목사님께) 이근호 2003-07-24 17:22:54, 조회 : 249, 추천 : 26
초대교회 사도들은 유대교적 이미지 속에서 양성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적인 종교 문화을 배경으로 하여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사태를 설명하고 해석했습니다. 그 중의 특히 제대로 된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새이스라엘의 등장이 옛날 이스라엘을 대신한다고 보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요단강 건너편 광야에서 물세례를 주므로서 새 시대가 찾아왔음을 광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교의 메시야적 환경에서는 충분히 이해될 만한 행위였습니다. 새로운 요단강 도강으로 말미암아 새이스라엘로 달라져야 한다는 뜻에서 물세례라는 행사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세례요한은 기존의 성직 계급을 참 이스라엘로 인정치 않았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성직자들은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을 메시야 계열에 속한 자라고 간주는 하지 않았지만 대중들이 그 세례요한의 물 세례 행위를 통해서 메시야에 대한 기대감이 평소에도 성숙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초대교회 사도들은 이 유대적 문화성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오심의 의미를 전달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2에서, 즉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성도에게 주어진 성령의 세례를 그 원천에 대해서 옛날 홍해 바다 건너가는 것과 연관을 시키므로 말미암아 물은 단지 성령의 시대가 되었음을 지시하는 기호에 지니지 않음을 분명히 합니다. 실체는 오직 성령 세례 뿐입니다.
다른 사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스겔이나 요엘에서 예언된 성령세례가 자기 시대에 성취된 것에 대해서 대단히 신기해 마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 따라서 이토록 획기적인 현실상을 물 세례에 담아 전달하려 했던 것이 물 세례였습니다. 사도행전 8:38에서는 이디오피아 내시가 빌립 집사에게 냉큼 물 세례를 받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새로운 시대가 찾아든 이 현실 속에 자신이 놓여있음을 유대교적 방식인, 물 세례라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후대에 가면 (요한계시록 7장))물 세례의 의미를 줄어들는데 그것은, 유대적 문화가 아닌 쪽에서 성령세례가 주어진 일들이 있자. 이 때부터 물 세레가 아닌 방식으로 성령 세례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이 성령세례를 받은 자임을 표시해주는 방도가 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된 자로다. 하나님이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베드로전서 4:14)
######################################################################################선택받은 자[믿음이 있는 자]도 죄를 지은 후 회개치 않으면... 김상우 2003-07-26 13:00:42, 조회 : 223, 추천 : 34
얼마전 수련회 때 강사님의 말씀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택함받은 자, 믿음이 있는 자라도 죄를 짓고 그 죄에 대해 죽기전에 회개치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거기에 대해 제가 질문을 했는데요.'그럼 강사님(택함받았고 믿음도 있다는 전제하에)도 말씀을 전하시다가 순간 음욕을 품게 되었는데(죄를 짓게 되었는데) 미처 회개치 못하고 심장마비로 죽었다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라구요.그랬더니 '당연히 구원받지 못한다. 죄가 있고 회개치 않으면 무조건 지옥행이다. 그러나 택함 받은자(믿음이 있는자)는 하나님이 죽기전에 반드시 죄를 회개케 할 시간을 주시고 죽게 한다'라고 말씀하시던군요.
여기에 대해 조금 의문도 있구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또 하나는요...어린아이나 아기들, 또는 태어나자 마자 죽는 아기들이 예수님을 알거나 믿음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죽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re] 선택받은 자[믿음이 있는 자]도 죄를 지은 후 회개치 않으면... 이근호 2003-07-26 14:22:34, 조회 : 321, 추천 : 26
1. 회개'라는 행함은 구원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즉 '회개함'이라는 행함이 추가되어야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귀하께서 예를 드신 '죄- 회개'의 관계는 세상 윤리적 관계이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죄-회개' 관계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죄-회개' 관계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의 관계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고전 16:22)
아무리 독한 살인강도라도 예수님을 사랑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지만 모두다 날 때부터 살인강도입니다.(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했으니까 마 5:21-22)
그래서 결국 그 강사분은 귀하의 질문 하나의 자신의 본색이 드러나 버렸군요. '예수님의 공로+자신의 회개함= 구원'이라는 공식으로 그동안 버텨온 것입니다. 즉 아무리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있더라도 본인이 자유의지로 하는 '회개'가 보태지 아니하면 구원이 안된다는 주장을 교인들에게 소개했군요.
귀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구원받아 천국가는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실례의 질문인지 모르지만 중요한 질문입니다.)그렇게되면 예수님은 노리개감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라기에는 그 강사님이나 귀하께서도 진짜 예수님의 공로만 의지하고 사랑하는 성령님의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그 소유권이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자식이라고해서 부모 소유가 아닙니다. 부모 말 듣지 말라가 아니라 부모도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소유의 부모를 말씀 안에서 양육하기 위하여 금방 태어난 자식을 돌연 죽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 갓난 아이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서 말입니다. 아이의 가치성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아이의 구원이란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으면 가능합니다.
욥의 다음과 같은 절규에서 답변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나오지 아니하였던가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허였던가"(욥 3:11)
누가 누구를 부러워해야 하고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단 말입니까!.일찍 죽은 자가 오히려 오래 산 자를 위로한다는 이 진실에 눈이 활짝 열려서 세상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자기 소유물이 아닌 자기를 자살로 몰아가지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