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은 언제인가?] 2003-04-24
안식일은 언제인가? 유재성 2003-04-24 02:24:03, 조회 : 357, 추천 : 50
구약에서 대대로 지키라고 한 안식일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현대를 살고있는 우리는 안식일을 지켜야하는지, 아니면 주일로 대체하여야하는지...
시원한 답변을 기대합니다...
===================================================================[re] 안식일은 언제인가? 이근호 2003-04-24 06:24:34, 조회 : 409, 추천 : 44
구약에 대한 해답은 신약에 와서 비로소 풀립니다. 따라서 구약만 쥐고 모든 문제의 해답을 얻겠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성경 해석이 잘못된 것입니다. 골로새서 2:16-17에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ㄴ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는 율법들로 인해 인간에게 죄로 규정되는 그 모든 것을 다 이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인간의 제안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쪽에서 먼저 제시한 것이기에 우리 인간들이 힘들다고해서 폐지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쪽으로 폐지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역시 하나님쪽에서 제시한 사랑뿐입니다.(로마서 13:8-10)따라서 안식일을 '주일'이라는 것으로 변경시켜 또 지키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율법적 조치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사랑입니다. 율법을 일부러 만들어 지키나 아니면 무율법적으로 나가거나해도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지옥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없는 자가, 무율법주의편에 서서 율법주의를 공격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은 자기 자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항상 십자가의 사랑으로 행동하고 살기 마련입니다.
######################################################################################구속사?? 꽃분아빠 (Homepage) 2003-04-24 13:07:30, 조회 : 420, 추천 : 74
구속사적 .... 이란 말을 많이 들어 왔는데, 구속사적.... 라고 할 때 구속사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설명해주시면서 '십자가를 아십니까?'의 '5. 십자가와 주일성수'에서 이런 말이 있더라구요.'인류의 역사,구속사라는 표현은,성경 자체를 계시로 간주하지 않고 역사를 계시로 봐서 그 역사라는 밑받침 위에 떨어진 계시의 파편들을 모아 성경 대신 계시로 간주하려는 계몽주의 사고가 깔려 있다.역사 자체가 허구이니 그런 계시관도 철학의 일종이다.'에 대한 설명도 함께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 구속사?? 이근호 2003-04-24 13:55:54, 조회 : 381, 추천 : 38
>뭐든지 역사로 묶어놔 봐야 비로소 권위를 느낀다는 것은 인간들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래서 교회 역사, 교단 역사, 기독교 역사, 가문의 역사, 자신의 과거 신앙 간증꺼리 같은 것들이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취향과 성경을 서로 연결시키는 방법이 뭐가 없을까요?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한데 묶어서 역사(歷史)화 시켜 보는 겁니다. 이것이 구속사입니다. 이렇게 되면 과거에 일어난 사건와 유사한 사건을 오늘날 자신이 만들어 내어 구속사 그 뒷 칸으로 결합시키면 구원에 대해서 더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마련입니다. 일종의 '줄서기'입니다.
이런 구속사 주의에게 두 가지 점에서 주의를 해야합니다.
1. 하나님은 같은 사건은 반복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무리 비슷하게 흉내내어도 하나님은 그것은 구원사건으로 간주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은 인간들의 역사 의식과 줄서기를 죄악된 것으로 거부하신다는 겁니다. 그만큰 자기 것에 대해서 집착하고 있기에 (자기 교회 역사, 자기 교단 역사, 자기 가문의 역사, 자기 사업체의 역사, 자기 과거 신앙 간증 같은 것에다) '자기 부인'을 안되고 있다는 이유로 인해 그 사람을 예수 믿는 자로 간주하지 않으십니다.
즉 구속사는 , 개인이 자기 신앙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구실도 얼마든지 도용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대한 해석에 있어 구속사를 피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반드시 구속사로 나타내어야 합니다. 어째서 그러합니까? 그것은 구속사가 인간의 범죄史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사 구속사를 몰라서도 아니되고 기독교의 역사나 교단의 역사나 자신의 과거의 일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그런 파편들을 속에서 자기 의를 따로 담아 마치 자신이 신앙인처럼 행세하고 있음을 알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즉 내 속에 무슨 죄가 담겨 있는가를 속속들이 아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들의 앞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구속사를 통한 회개요 자숙입니다.
단 예수님에게는 구속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예수님이 역사를 초월해서 하신 공로뿐입니다. 그것이 우리에 전달될 때는 우리의 구속사 의식과 만나서 죄가 생기고, 따라서 그 죄를 사해주시는 은혜를 통해서 성도를 하나님께서 구원 하시는 겁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시다가 그렇게 되셨어요? 신직수 2003-04-26 10:33:42, 조회 : 559, 추천 : 61
정말!!!~ 아! 힘들군요?
목사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스트레스^^ 많이 받습니다.
목사님 책 여덟 권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목사님은 어케 하시다가 이렇게 되셨을까"" 라는 생각이 자꾸 떠밀려 옵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남들보다 뛰어나지.. 뭐 이런 생각입니다(좋은 쪽으로 해석해주시기를 부탁드리며..)
모두 하나님의 은혜겠지만 말입니다.
학부와 대학원 졸업하면서 목사님 알게 되었고 목사님의 단점을 알게 되었지만 모두 지역적인 부분이고 그 단점들도 모두 허물어져 갑니다. 특히 목사님이 그렇게 강하게 어필하시는 부분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389네번째 단락). <십자가를 아십니까> 라는 책을 읽으면서요?
이 부분도 제 주관적이지만 목사님의 생각과 제 구원 이후의 신앙생활이 많이 비슷한 부분임을 절감합니다. <?십자가를 아십니까> 라는 책을 읽으면서요?
질문 한가지 올려드립니다.
어떤 사람은 왜 지옥 가고 어떤 사람은 왜 천국에 가는 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신학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를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해도 안 되고 공의로 해도 안 되고 하나님의 의로도 안 됩니다. 또한 하나님 자체적 성품을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요한복음을 읽다가 어느정도 풀릴 것 같은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이 구절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낫으니" 요8:44절 "저희는 아버지의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요한복음 17:6절
이런 구절 외에 하나님이 내게 주셨다. 하나님에게서 낫다. 하나님이 보내셨다. 라는 구절들이 꽤 많았습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요8:42절
문제는 지옥 가는 자들과 천국에 가는 자들이 어디에서 나왔느냐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지옥 가는 자들은 마귀에게서 낫고 천국에 가는 자들은 하나님에게서 낫다" 라는 결론밖에 나지 않습니다.
마귀가 보낸 자와 하나님이 보낸자가 어울려 사는 곳이 지구촌이라는 거죠? 잡초와 가라지를 완전히 뽑아 어두운 곳에 보내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이구요?
문제는 저의 이런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목사님의 개인적인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re] 목사님 어떻게 하시다가 그렇게 되셨어요? 이근호 2003-04-26 16:23:59, 조회 : 553, 추천 : 60
신학을 재능으로 보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것을 개발하려고 하다보면 가롯 유다처럼 됩니다. 자신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 더욱 강해지기 십상입니다. 단지 예수님이 거기 계시니 그저 증거해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신학을 해야 합니다.
귀하께서 질의하신 것은 골로새서 1:16에 잘 나와 있습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여기에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라는 말이 나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조차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빌립보서 1:11에서는 그 이유가 나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기에 보면, '주'라는 용어가 나오지요. '주'란 구약에서 모든 활동을 주관하신 그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이 '주님'이 이방민족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주'의 차원에서 내렸는가 하는 것을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에스겔을 통해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민족을 통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주님이신 것을 알리게 하기 위해 언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차없이 저주를 내리십니다. 그렇게해서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모든 것의 주가 되심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면. 에스겔 24:24-26) 따라서 악마나 그들의 종들은 결국에는 모두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런 이해차원에서 쓰여진 계시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하심부터 출발하지 말고 모든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re] 목사님 어떻게 하시다가 그렇게 되셨어요? 신직수 2003-04-26 21:48:11, 조회 : 472, 추천 : 64
그렇습니다. 목사님, 얼마전까지도 전 하나님을 분석하는 것을 재능으로 보았습니다. 느낌은 다른 재능과 쫌 다른 재능으로 보았지만요?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제 욕심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심각한 고민과 하나님께 쫌 껄끄러운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쫌 힘들어도 하나님을 알고 증거하는 것만으로 자족하는 인간이 되면 행복할텐데, 이 죄의 법이 절 힘들게 하는군요?
질의에 대한 대답을 잘 읽었습니다. 내용에는 별 느낌은 안 왔지만 골1:16절에 잘 나와있다는 말씀이 제 생각에 동의한다는 말씀으로 믿겠습니다.
그런데 제 질문에 대한 말씀이 쫌 이상하네요!! 제 질문은 어떤 사람들은 왜 지옥가고 어떤 사람들은 왜 천국가는가? 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제 생각으로 지옥가는 사람들은 마귀가 보낸 사람들이고 천국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난 사람들이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답답한 말만 계속해서, 암튼.. 혹시 제 질문에 구체적인 대답이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re] 목사님 어떻게 하시다가 그렇게 되셨어요? 이근호 2003-04-27 07:42:48, 조회 : 473, 추천 : 50
"어떤 사람들은 왜 지옥가고 어떤 사람들은 왜 천국가는가? 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제 생각으로 지옥가는 사람들은 마귀가 보낸 사람들이고 천국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난 사람들이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이것이 귀하께서 하신 질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왜 지옥가고' 에서, 여기에 대한 답변은 두 가지 점으로 갈라질 수가 있습니다.
1. "왜 사람이 그 참혹한 지옥에 들어가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너무 잔인하신 것 아닙니까? 왜 구태여 사람까지 악마의 뒤를 따라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만 합니까? 저는 지옥을 꼭 만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취지를 모르겠습니다." 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간단합니다. 지옥을 만들어야지만 예수님께서 주님으로 행세함에 따른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2. "천국이 참 좋은대로 불구하고 왜 어떤 사람은 자진해서 지옥가고 싶어 환장합니까?" 라는 질의도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귀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본인이 자기 장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악마가 보낸 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옥쪽을 천국보다 더 선호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3. 왜 인간에게는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없느냐? 하는 또다른 질의는 1번으로 되돌아가는 질의입니다.
그런데 제가 잘 이해가 안되는 점은, 분명히 골로새서 1:16-18을 인정하신다면, "왜 어떤 사람은 지옥가고 어떤 사람은 천국가느냐 "라고 하는 의문 자체가 안나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왜 어떤 사람은 지옥가고 어떤 사람은 천국가느냐?"라는 질의는 불신자들이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 비웃고 비아냥거릴 때나 나오는 질의입니다.
왜냐하면 귀하께서 답변을 내린 것처럼, "지옥가는 사람은 마귀가 보낸 사람들이고, 천국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낸 자들이다"라고 하더라도 "왜"라는 말 속에는 인간에게는 자발적이고 의지적인 선택권을 부여되고 있다 아니다 하는 여부에 따라 답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즉 "왜 인간은 지옥을 선택하느냐"라는 말도 되고, 또한 "왜 하나님이 그 사람이 지옥을 가도록 하셨느냐"하는 말도 됩니다.
따라서 그렇게 되면, 귀하의 답변은 결국 '왜'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결과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 밖에 안됩니다. 즉 "어쨌든 간에 그 사람은 악마로부터 왔기에 지옥간다"는 결과를 통보하는 것 밖에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그 사람의 팔자는 악마로부터 보냄을 받아야할 팔자입니까?"라는 새로운 질의를 양산케 합니다.
보통 복음적 답변은 이 두가지 요소를 아울러 보여주게 됩니다. 답변이 이루어지는 환경이 또한 복음 증거의 장이 됩니다.
1. 그냥 막무가내로 예수님의 마음에 담긴 뜻을 드러내는 식으로 답변
예를 들면, 요한복음 18:37에서, 빌리도가 예수님에게 묻기를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예수님은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 어떤 철학적이고 논리적이고 또한 복음적인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으셨는데 그것은 이미 빌라도가 진리 자체되시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진리를 예수니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일단 빼놓고' 딴데서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진리' 라고 생각한다면 감히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재판할 마음조차 품지 않았을 것입니다.따라서 예수님은 막무가내 자신의 뜻만 나타내기에 답변을 하지 않는 그것으로 답변을 대신했습니다.
2. 구원받고자 하는 질의자의 입장을 고려한 답변
예를 들면, 사도행전 16:30에서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에 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하나님께서 복음 증거자는 보내신 것은 모든 인류를 다 납득시켜 구원코자가 아니라 오로지 믿음이 있는 자에 한해서만(사도행전 3:16), 그 어떤 신분이나 계층이나 직분에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자(디모데전서 2:4)를 구원하시려는 겁니다.
######################################################################################"산자의 하나님"에 대한 질문 예병환 2003-04-29 13:00:31, 조회 : 319, 추천 : 36
목사님께 늘 감사드리며...
이미와 아직이라는 구원구도의 허구성을 보면서 아래 부분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여기에 반해서 예수님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오해했다’는 것이다. 성경을 오해했다는 것은 율법에 대한 지적이다. 즉 형수가 시동생들과 혼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결혼 자체의 정당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에로 인도하는 구출의 능력에 해당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두개인들은 이점을 오해한 것이다. 즉 부활시에는 장가도 아니가도 시집도 아니간다. 그런데 왜 이 지상에서 장가도 있고 시집도 있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즉 형수가 시동생과 혼인해서 사는 것은 산 자의 하나님이 그렇게 시키신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 안에서 결혼을 통해 죽음의 흔적과 생명의 흔적을 보여주시는 계기를 삼으시는 것이다. 죽음의 세계 안에서 부활의 세계를 맛보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즉 죽은 자를 살리시고 부활시키시는 능력이다. 죽은 형을 대신하여 동생들이 형수와 대신 혼인하므로서 하나님은 자꾸만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의 능력을 계시하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아브라함, 살아 있는 이삭, 살아 있는 야곱과 관계하시면서 이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그들과 함께 관계하셨던 하나님이시다. 비록 남편은 죽었지만 그 여인은 산 남편의 동생들과 혼인하게 된다. 이 여인에게는 남편이 죽은 남편이 아니라 산 남편이 된다.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도 되시지만 이삭의 하나님도 되시고 또한 야곱의 하나님도 되시는 이치와 마찬가지이다." =================================================================== [re] "산자의 하나님"에 대한 질문 이근호 2003-04-29 14:27:56, 조회 : 376, 추천 : 44
구약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있고 그들에게는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자 과연 하나님이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이 이스라엘 민족과 율법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표출할 수 있을까요?그 중의 하나의 예가 바로 '시형제혼인법'이라는 겁니다.시형제혼인법이란, 가문의 가장이 되는 제일 맏형이 자식이 없을 때, 형수는 그 밑의 있는 시동생과 혼인해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을 형의 자식으로 간주시키는 법을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해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것입니까?그것은, 형의 가계(家係)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율법덕분은 죽은 가문에서 극복되어 여전히 종속되는 가문이 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창세기 20장에 나와 있듯이, 태가 끊힌 가문은 하나님이 내리신 저주의 표상입니다. 사무엘상 4장에서 엘리가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생각하기를, "예수 안믿는 불교집안에서도 자자손손 번창하기만 하더라"고 하시겠지만 갈라디아서 4장에 보면, 육체의 가문들은 아무리 자자손손 번창해도 모조리 다 율법의 저주 아래 있기에 율법에 의해서 멸망당할 가문입니다. 오직 어머니가 하늘에 있는 성령의 자녀만이 최후로 천국에서 살아남습니다. 그렇다면 시형제혼인법이라는 율법도 궁극적으로 생명을 줄 수 없다는 말일까요?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은 부활 이야기를 거론하시는 겁니다. 즉 예수님 자신이 율법이자 곧 시형제혼인법이라는 율법의 완성자도 됩니다. (물론, 안식일, 십일조, 할례 율법의 완성자도 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마치 천사와 같아서 더이상 혼인에 의한 생명연속이 불필요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동시에시형제혼인법도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 앞에서는 폐기되어야 겠지요.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어떻게해서 계속 천국에서 살아있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은 갈라디아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그의 약속된 자식(다수가 아니라 오직 한 분 갈3:16)을 믿으므로서(달리 말해서 그 약속된 분이 행하시게 되는 공적을 의지하므로서) 그 오직 한 분에게 주어지는 부활의 능력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을 주신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해석의 초점을 하나님에게 두면 아니됩니다. '약속의 하나님', 혹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분'에 초점을 두고 율법 해석을 해야합니다.
그냥 하나님께 두게 되면, 왜 율법이 예수님보다 먼저 주어졌는가가 해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죠.이것이 해명되지 못하는 하나님은 허구적 신에 불과합니다.
===================================================================[re] "산자의 하나님"에 대한 질문 예병환 2003-04-29 15:06:51, 조회 : 289, 추천 : 44
명확히 풀어 주신 답변으로 질문드린 인용문에서 제가 가졌던 해석을 확인 검증해 보는 귀한 기회였습니다. 꿀보다도 더 달콤한 말씀을 알아가는 재미(?)에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재림예수? 유재성 2003-04-29 20:51:48, 조회 : 335, 추천 : 40
재림예수는 언제 오신다고 했습니까?
초림과 재림예수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re] 재림예수? 이근호 2003-04-30 06:18:56, 조회 : 426, 추천 : 40
> 재림예수는 없습니다. 그냥 그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겁니다. 이번에는 심판주로 오시는 겁니다.
처음 오실 때와 다시 오실 때의 각기 다른 취지에 대해서는 히브리서 9:28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처음 오실 때는 예수님은 하나님께 제물로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오셨고, 그렇게해서 '죄와 상관없이 된 자'가 발생되었으며 이들은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하여 두번째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불신자들에게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심판이 감행됩니다. 따라서 세번째 오시는 것은 없습니다. 두번째 오시는 광경에 대해서는 데살로니가전서 4:16-18에 잘 나와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이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니라.."
언제 오실 것인가 하는 것은, 사도행전 1:6에 보면,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36에 보면,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흔히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시계보며 시간에 맞추어 사는 것과는 다른 삶으로 살 것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즉 개인이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의 종교 스케줄에 집어넣어서 자기가 관리하는 식으로 스스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밭을 갈든지, 매를 갈든지, 잠믈 가든지,(마 24:41) 무엇을 하든지 늘 예수님의 약속을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면서 살 것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이것을 가지고 예수님은 '깨어 있음"으로 표현하시고 계십니다. 악한 세상을 보고, 또 자신을 대조해 보면서 늘 "정신 차려"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눅 21: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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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힘 형상과 여호와 형상에 대한 질문 예병환 2003-05-07 09:23:09, 조회 : 241, 추천 : 33
이근호 목사님께.
목사님의 '성경의 중심사상'을 어렵지만 공부하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하나님의 형상과 이름'에 관한 목사님의 논문을 여러번에 걸쳐 어렵게 보는 재미도 있고, 김이곤 교수의 '신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는 책과 이 책에 대한 목사님의 강의를 함께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목사님께 많은 신세를 지고 있으며 한편으론 짜릿한 전율의 쾌감을 만끽합니다.
아직은 제게 일관성있게 정리할 요령이 없이 질문만 드리고, 제 생각을 함께 드리며 말씀을 나누는 즐거움을 갖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쭙고 싶은 내용은, 성경의 중심사상의 '구약을 끝내면서' 단원에서 엘로힘의 형상과 여호와의 형상에 대해서 목사님의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예병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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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엘로힘 형상과 여호와 형상에 대한 질문 이근호 2003-05-07 11:12:44, 조회 : 341, 추천 : 50
여호와 하나님 입장에서 엘로힘 하나님을 살펴봐야 합니다. 엘로힘 하나님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시지요.여호와 하나님은, 약속(언약)을 앞장 세우시고 나타나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과 더불어 '언약'이 함께 나타내시어 그 주어진 언약은 순전히 여호와라는 ' 하나님의 이름'의 열심으로만 성취가 가능함을 말씀히시는 겁니다. (사 9:7)마치 신약 때에 와서 요한복음 14:9에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는 취지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분입니다.(사 45:15) 그런데 그 숨어계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나실 때는, 구약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타나시고, 신약 때는 예수님으로 나타나시는 겁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라는 청년은, 승천을 통해서 원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구약 때의 여호와 이심)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이름'과 '형상'이 결부됩니다. '이름'이란 실제로 언약대로 시행하시는 기능적인 면에 초점이 있다면, '형상'이란 언약이 최종적으로 드러내시려는 결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하시는 기능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룸을 겨냥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창세기 1:12에서 '엘로힘 형상'은 원래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그 피조물의 최종 목적성을 미리 밝히신 것입니다. 즉 모든 피조물은 '엘로힘 형상'과 관련되어진 채 창조되었다는 겁니다. 골로새서 1:16-18에 보면, 모든 피조물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형상이신 곧 나사렛 예수님이라는 것을 밝혀 놓았습니다. 이 최종 목적성이 구약 때는 '여호와 형상'을 통해서 그림자와 모형으로 미리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구약 때의 여호와 형상은, 때는 천사의 모습으로, 때로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데, 이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기능성 모습을 미리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엘로힘 형상'과 '여호와 형상'은 차이가 납니다.참고로 '엘로힘 형상'으로서의 인간들은 죽음을 통해서 무창조성으로 되돌아 가버리고, 다시 사는 자들은 오직 '여호와 형상'의 언약적 기능성이 담길 때(예수님의 공로와 의가 담길 때), 하늘의 형상(고전 15:49)을 덧입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나타나는 겁니다.이것이 창조와 구원의 완성입니다.
===================================================================[re] 엘로힘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질문 예병환 2003-05-08 12:07:17, 조회 : 245, 추천 : 33
>>목사님의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두고 두고 곰씹어 보겠습니다.
목사님, 엘로힘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좀 자세히 그리고 창조와 구원의 관점으로도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re] 엘로힘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질문 이근호 2003-05-09 08:48:46, 조회 : 258, 추천 : 38
창조는 구원의 시작이요, 구원은 창조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자로 예수님(주님)을 앞장 세우므로 말미암아 창조를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의 회복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처음 창조가 결코 미진하거나 불철저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작하는 것을 가지고 미진하거나 불완전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에 가기 위해 기차에 올라타는 것을 불철저한 기차 여행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행의 시작입니다. 완성 안에서 완성을 위한 시작입니다. 따라서 통일교 쪽에서나 위트니스 쪽에서 이야기 하는 '회복'이라는 말은 옳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회복하려고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 일하시는 분입니다. 즉 창조의 완성을 위해 구원에 나서시는 분입니다.
===================================================================[re] 엘로힘 형상과 여호와 형상에 대한 질문 이근호 2003/05/07 50 342 [re][re] 기능적이란... 이진수 2003-05-09 01:09:01, 조회 : 242, 추천 : 38
> 여기서 '이름'과 '형상'이 결부됩니다. '이름'이란 실제로 언약대로 시행하시는 기능적인 면에 초점이 있다면, '형상'이란 언약이 최종적으로 드러내시려는 결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하시는 기능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룸을 겨냥한다는 겁니다.
> 구약 때의 여호와 형상은, 때는 천사의 모습으로, 때로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데, 이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기능성 모습을 미리 담고 있는 것입니다. >> 이런 점에서 '엘로힘 형상'과 '여호와 형상'은 차이가 납니다.> 참고로 '엘로힘 형상'으로서의 인간들은 죽음을 통해서 무창조성으로 되돌아 가버리고, 다시 사는 자들은 오직 '여호와 형상'의 언약적 기능성이 담길 때(예수님의 공로와 의가 담길 때), 하늘의 형상(고전 15:49)을 덧입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나타나는 겁니다.> 이것이 창조와 구원의 완성입니다.
갑자기 무언가가 강하게 느껴지는군요.
여기서 말하는 기능적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펼치는 사건의 뜻으로 이해해도 되는지요?즉, 주님께서 발생시키는 사건을 언약적 기능으로 이해해도 되는지요?
===================================================================[re] 기능적이란... 이근호 2003-05-09 08:38:37, 조회 : 218, 추천 : 28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은 아버지 안에서 일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양식은 나의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4:34)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일하심(기능)은 구약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 모든 사건 전체를 요약할 수 있는 원리로 보시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 여호와 하나님? 문지원 2003-05-09 23:24:15, 조회 : 274, 추천 : 34
말씀운동쪽 사이트에서 어떤분이 질문을 드린것을 보고 저도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이근호 목사님께서는"그래서 나사렛 예수라는 청년은, 승천을 통해서 원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구약 때의 여호와 이심)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라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건지요?
@말씀운동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글도 올립니다 " 예수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 안녕하세요 강세창 목사님...저번에 책 감사하다고 썼는데 지워졌더군요 -_-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드리고요...책은 잘 읽고 있습니다..
앗, 제가 여쭤볼 말씀은 예수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게 잘못된것인지? 아니면 괜찮은건지 알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다른 성도들에게 교사로서 가르칠때나 신앙적으로 말입니다.
질문만 드리는 윤식이 올립니다
조각목 (2003-05-09 22:17:29)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하는 겁니다.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은 아닙니다.
서윤식(2003-05-09 23:04:24)
그렇습니까? 삼위의 한분 이지만 구약에서도 증거하기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 분명히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하고 있는데요.. 아들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이렇게 표현한것은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것 아닌지요? 좀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음... 좀더 성경적인 설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 예수 그리스도 = 여호와 하나님? 이근호 2003-05-10 08:20:42, 조회 : 330, 추천 : 36
신약의 저자들(성령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아서)은 구약에 나오는 여호와를 예수님에게 일치시키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여호와냐?" 라는 공격을 받을 것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일어나도록 의도하면서 말입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1:9에 보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것은 구약 시편 118:26의 "여호와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는 것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21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로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씀은 요엘 2:32에 나오는 "누구든지 여호와 이름으로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나는 말씀의 최종 성취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 전체가 구약의 염두에 둘 때는 '여호와=예수' 공식에 맞추어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결코 여호와의 기능 중 일부만 예수님 몫으로 전환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약 저자들이 결코 구약에 대한 재해석이 아니라 제대로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 저자들의 개인적인 사견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생각 그 자체요, 예수님의 생각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기능적인 면과 본질적인 면을 구분해서 받아들이지 말기 바랍니다. 히브리 사고방식에서는 기능=본질입니다. 구분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존재론적으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미 예수님은 여호와 이름으로 구약시대에도 이 땅에 오셨다고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약 성경 저자는 그런 존재론적인 이해에는 관심 두지 않습니다. 단지 죄악된 인간들의 호기심일 뿐입니다.
######################################################################################율법의 인격화에 관한 질문 예병환 2003-05-10 08:38:27, 조회 : 228, 추천 : 33
목사님, 성경의 중심사상과 그 전개 '요한복음'에서
"생명이란 창조사역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말씀(율법)과의 관계에 관한 문제였다(요1:4)"를 좀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인격화"로서의 예수님에 대해서도 부탁드립니다.
예병환 올림
===================================================================[re] 율법의 인격화에 관한 질문 이근호 2003-05-10 19:01:11, 조회 : 317, 추천 : 41
>피조 세계는 존재함에서 목적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뭔가 담깁니다. 그 담기는 것을 잠언 8장에서는 '지혜'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땅의 기초를 정할 때부터 지혜가 관여했고, 따라서 생명됨이란 지혜가 빠지만 그것으로 생명이 빠진 것이 되비다.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잠 8:36)그런데 이 '지혜'가 잠언 8장에서는 인격체처럼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잠언의 사실이 구체화 된 것이 바로 요한복음 1장의 이야기입니다. 잠언, 즉 율법은 생명을 지향하는 기능을 해 왔다는 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므로 확연해졌습니다. 모든 율법의 최종 지향성은 바로 창조 때 관여했던 그 생명되시는 예수님입니다. 이로서 예수님은 율법의 최종 인격화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보다 우연곡절 가운데 펼친 것이 갈라디아서 3장-4장입니다.거기에 보면 율법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대립을 통한 완성의 과정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2번째 질문드립니다 문지원 2003-05-10 09:54:01, 조회 : 278, 추천 : 36
목사님....좀더 성경적인 근거를 알려주세요제가 알고 싶은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가 맞냐는 것입니다.삼위의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적인 머리로 이해할수는 없겠지만제가 성경을 보았던 시각과 믿음은 구약의 그 여호와 성부이신 하나님이신약에 이르러 예수그리스도로 표현되었다고 보는 믿음 말입니다.물론 각각의 고유된 표현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시각과 위치들은 다르게 보여질지라도그 세분이 한 분이신 하나님이며, 특히 신약에서 인간의 육신을 입은 성자 예수그리스도가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믿거든요.....같은 분 아닙니까?
제가 가진 믿음이 잘못된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re] 여호와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2번째 질문드립니다 이근호 2003-05-10 11:10:06, 조회 : 316, 추천 : 33
맞습니다. 맞고요.
자꾸 삼위일체론을 거기에다 끼어넣지 마세요.
성경에서 삼위일체론을 확인하는 것은 용납이 됩니다만, 성경을 삼위일체론으로 해석하려고 들지 마세요 .왜냐하면 성경은 삼위일체론 보다 더 크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삼위일체론이 성경을 해석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축구하기 위해 평평한 평지를 찾는 것은 용납이 됩니다만, 그렇다고해서 한반도 전부가 축구장이라고는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은 결코 한반도에서 축구해서는 아니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삼위일체론은 인간들의 신학적 논리의 한계를 지정해 놓기 위한 겁니다. 자장면을 담을 때는 그릇 밖으로 넘쳐나서는 아니됩니다. 그러나 그릇만 있으면 저절로 자장면이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호와가 맞습니다. '예수님= 여호와' 입니다. 삼위일체론과 상관없이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존재론적 일치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신약 사도들의 공통된 신학사상입니다.
성경적 근거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구약 인용과 관주들을 (특히 '주'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일일히 대조해 보세요. 그러면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 예수님이 하시는 일' 이라는 점이 파악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요19장30절)에 대한 질의 박장수 (Homepage) 2003-05-12 12:49:16, 조회 : 366, 추천 : 66
위 말씀을 세상끝날까지로 해석하면
성경해석상 어떤 모순에 빠지나요? ===================================================================[re] 다 이루었다(요19장30절)에 대한 질의 이근호 2003-05-13 19:20:14, 조회 : 360, 추천 : 35
>> 아닙니다. 세상 끝날까지 다 이룬 겁니다.
######################################################################################이름의 부재성과 하나님의 약속에 관한 질문 예병환 2003-05-12 13:04:36, 조회 : 241, 추천 : 27
목사님. 하나님의 선택 "신학교 교수의 열가지 무지한 점" 강의내용에 이름의 부재성(不在性)과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하셨는데 좀 자세히 해 주시면 하고 또 부탁드립니다.
* 멜기세덱은 족보도 아비도 없는 자이다. 오직 이름뿐이다. 하나님 이름이 나사렛 예수와 연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이름의 부재성이라는 것이다. 이 이름의 부재성은 현재의 모든 있음이 롬 5장에 의하면 죄의 왕 노릇함 밑에 있고, 모든 있음이 엡 2장에 보면 악한 영에 속해 있는데, 이러한 모든 있음에 대해서 하나님은 부재성으로, 즉 없음으로 모든 있음을 고발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 창 3:15 에 ‘여자의 후손’ 이 나오는데, 여자는 없는 존재인데, 이것이 창 4:1 에 보면,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라고 하는 것이다.
* 멜기세덱은 아무 것도 없는 부재성인데, 이름만 달랑 있는데, 그래서 이름만 있으니까 이스라엘이 나라가 둘로 나누어지고 나니까, 백성들이 그 공백을 이방인들의 행정제도와 군사제도로 채운 것이다. 이름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멜기세덱만으로 된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것이다.
===================================================================[re] 이름의 부재성과 하나님의 약속에 관한 질문 이근호 2003-05-13 19:15:20, 조회 : 275, 추천 : 38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음'을 기준으로 삼아서 이 세상의 모든 '있음'을 '없음'으로 해석해 버립니다. 뭐가 없을까요? 거룩이 없고 의(義)가 없습니다. 거룩이 없고 의가 없다면 생명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부터의 방식이,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방식을 취하십니다.
사도행전 2:21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없는데서 있게 하고, 죽은 데서 살게 하시는 그 능력은, 인간의 이름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의 능력으로만 가능힙니다. 그런데 그 주님은 히브리서 7장에 보면, 어느 계열에 속하는가 하면 멜기세덱 계열에 속합니다. 히브리서 7: 3에서 멜기세덱은 이 땅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없이 이 땅에 나타난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있었던" 분입니다.예수님도 이와같다는 겁니다. '있음'의 계열이 아니라 '없음'의 계열입니다. 따라서 '있음'에서 '있음'을 생산하려는 모든 인간의 노력과 행함은 전혀 하나님의 일도 아니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도 아닙니다. 오로지 "없으신 분"으로 일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만 구원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21에 보니 그 '없으신 분'이 지상에 오로지 '이름'만 남겨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3)
보다 상세한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책, 129페이지에서부터 132페이지까지 참조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