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성수 기준은? ] 2002-10-17
주일 성수 기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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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주일 성수 기준은? 이근호 2002-10-17 18:34:59, 조회 : 546, 추천 : 62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모두 하나님이 주선한 일입니다.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인생관과 종교관의 만남과 충돌이 불꽃처럼 튀기기 마련입니다. 일종의 기 싸움 같은 것도 여김없이 작동합니다. 따라서 일선에서 학생들을 돌보아 주시는 선생님들의 노고에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군요.
우선 교사로서의 태도부터 생각해 보십니다. 존경이란 강요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고3 학생들에게 있어 존경이란 오직 하나, 담당 학과에 실력있는가 없는가가 최고로 좌우합니다. 물론 일부 불우한 가정에서 살아서 유별나게 관심과 사랑이 요구하는 학생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학생은 개별적으로 다룰 문제이고 전체적으로 봐서는 일단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수능에 자기 장래가 걸린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이한 겁니다. 수능에 나올 수 있는 예상 문제를 쪽집게처럼 찝어주는 선생님이야말로 최고의 존경을 받기 마련입니다. 어차피 대다수의 학생들은 선생님을 이용하기 위한 존경이지 존경을 위한 존경은 아닙니다. 그들이 또 다른 자기에게 도움된다고 여기는 상대를 만나면 곧장 존경의 대상이 바뀌게 마련입니다. 특히 성인이 아닌 청소년 학생들은 철저하게 자기 꿈 달성 위주입니다. 단순 무식할 정도로 자기 밖에 모릅니다. 이런 소망을 들어주는 교사를 최고로 처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왜 수능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교사라고해서 학생들의 생활에 깊숙히 관여해서는 아니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사는 ,'강사'라는 기능에 충실하는 것으로 한계점을 갖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교사는 학생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그 학생의 전인생의 총책임자입니다. 이런 믿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교사들의 실수하는 가장 큰 대목은,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학생들로부터 보다 많은 존경심과 더불어, 교사 본인은 교사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욕심입니다!교사는 그저 학생을 떠나 보내고 그 다음 학기에 새로운 학생을 맞이할 따름입니다. 사실 학생의 일차 책임자는 학부모이지 교사가 아닙니다. 학부모가 학생을 학교에 맡긴 겁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학교는 특정 학생의 편을 들어주어서도 아니됩니다. 또 교회 다니는 교사로서 주의할 것은, 다음 두 가지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첫째, "내가 교사로서 교회 다니는 것은 알만한 학생들은 다 안다. 따라서 이 학교라는 직장은 하나님께서 전도의 밭으로 내게 주신 직장이고 나는 그 사명자이다. 나는 틈만 나면 전도를 해서 저 불쌍한 한 영혼이라고 천국에 보낼 책임이 있다. 이것이 신앙인 교사로서 신앙적 양심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 앞에 당연한 마음이다. "라는 오해 말입니다. 이러지 마세요! 제가 보기에는 신앙적 양심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 윤리적 양심으로 떼우려는 변명이나 시도로 보일 뿐입니다. 전도란 사도행전에 나온대로 베드로와 고넬로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만남이 주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 전하는 내용도 전도라는 무거운 숙제를 펼치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에 할말은 성령께서 주실 것입니다. 마치 짐승이 먹이 채듯이 목표나 포섭 대상을 정해놓고 표적으로 삼아놓고 전도하는 것은 전도가 아니라 교회 영업 사원노릇 밖에 안되는 겁니다. 이러한 행위의 내면에서 예수님의 의를 믿지 않고 자신의 행위로서 자신이 구원받았는가 아니받았는가를 새삼스럽게 확인하려는 불안감과 두려움과 불신앙이 개재되어 있는 겁니다.
둘째, 주일 성수는 지키라고 강요할 성질도 아니요 일요일날 교회 가는 것을 못가도록 막는 것도 문제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참 성도인 고교생과 교사가 있다면 이 두 사람은 서로 서로에 대해, 상대방의 신앙이 좋은가 아니좋은가를 측정할 그 어떤 자격도 없다는 겁니다. 고교생이 말하기를, "선생님, 저는 불신 교사의 핍박을 이기고 기어이 교회 가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서울 대학교에 합격해서 그 불신 선생님이 코를 납작해 주고 싶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보여서 하나님께 영광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나온다면 이것이 바로 악마의 시험입니다. 진짜 성도인 고교생이라면, 예배 참석하고 싶은대로 그냥 행동하고, 남들에게 자기 신앙 좋은 것을 티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서 진짜 성도인 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애들아, 이 선생님은 너희들의 그토록 소망하는 수능을 앞두고 너희들이 요구하는 봉사를 못해주어서 미안하다. 선생님은 또 선생님대로 눈치 봐야 할 그 저높은 분이 계시거든." 하고 조용히 빠져 버리면 그만입니다. 믿는 교사가 믿는 아아들도 있는데 신앙의 솔선수범을 해야지라는 그런 터무니없는 악마의 시험은 이제 벗어버리세요.
일시적인 현상을 가지고 신앙적으로나 세상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를 위해 대신 피를 죽으신 분이 화를 내십니다.
끝으로 '주일성수'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을 기대하셨는데. 성경에는 '주일'이라는 말도 없고, '주일 성수라' 법도 없습니다. 그러니 성경적인 답변을 할 수가 없지요.단지 교회 영업상 교인들이 자주 들려주어서 교회에 관심을 가져주어야 교회에 기부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겠지요. 정말, 정말이지 말씀이 좋아서, 모여서 같이 하나님을 한 마음으로 영광돌리는 것이 좋은 신자라면 구태여 달랑 일주일에 예배 한 번 참석해 주는 것으로 "내 주일 성수했다. 교인들의 도리를 착실히 하고 있으니 누가 내 보고 신앙없다고 시비걸지 마라!"라고 건방떨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성경 말씀대로 그 날이 가까이 올수록 모이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단 교회보고, 목사 눈치보고, 혹은 교회 내에서 승진하기 위한 술책으로 윗분들에게 호감 쌓기 위해 사교성으로 교회 가지 마시고 복음만이 그리워서 가세요.
######################################################################################동성애자들(이반들)은 일종의 정신병인가요 김상오 2002-10-28 13:38:31, 조회 : 336, 추천 : 53
동생애자들이 일종의 정신병인가요성전환자나.아니면 이반등등이 정신병인지아니면 죄인이라서 그런건지아니면문화적 현상, 죄인들이 사는 세상이라서 문화적인 현상에 불과한건지요??그냥 궁굼해서.... ==================================================================== [re] 동성애자들(이반들)은 일종의 정신병인가요 이근호 2002-10-28 18:55:37, 조회 : 521, 추천 : 85
동성애자들은 없습니다. 그냥 자기네들 기분 내끼로 대로 살아가는 것을 어떻게하든 정당화하고 싶어 그런 명칭을 멋대로 부친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결혼 안하는 자들, 자기네들끼리 말하기를 '독신주의자'라고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상으로 결집된 조직체인양 행세하고 싶은 것입니다.
또 다른 예는 이런 겁니다. '칼빈주의자들' 혹은 '청교도들'. 혹은 서부 개척 시대에 등장하는 "쌍권총 애호가들' 혹은 '이소룡 팬클럽' 혹은 '강남의 부판까스들' 모든 것이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두가 한결같이 죄인들입니다.
====================================================================[re] 동성애자들(이반들)은 일종의 정신병인가요 현재웅 2002-10-29 11:15:47, 조회 : 405, 추천 : 65
예 맞습니다..여기는 이근호주의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re] 경고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근호 2002-10-29 13:50:29, 조회 : 438, 추천 : 79
제가 여러번 이야기한 바이지만 '이근호주의자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 [re] 경고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무성 2002-10-29 22:05:05, 조회 : 345, 추천 : 36
이근호를 믿는 사람들은 이단입니다. 이근호주의자들 회개해야합니다. 이근호를 믿지 맙시다. 오직 예수만 믿읍시다. 예수님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근호를 믿으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회개 하라고 하십시다.
==================================================================== [re] 경고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웅 2002-10-30 07:53:47, 조회 : 372, 추천 : 52
이근호 주의라는 것은 이근호목사님을 믿는 주의자들이 아니라칼빈주의 같이 이근호이즘....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거죠당연히 예수를 믿어야 하는것 아닙니까그럼 예수주의자인가요 -_- ====================================================================[re] 경고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근호 2002-10-30 14:41:27, 조회 : 373, 추천 : 42
>예수님만 증거한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후대 인간들이 사도 바울을 보고 그를 '예수주의자'라고 불러 주나 마냐에 신경쓸 것이 아닙니다. 즉 우리가 관심두려는 것은 '사도 바울의 예수주의자됨'에 있는 것도 아니요 '사도바울'의 인간됨도 아닙니다. 오직 그가 전하는 복음입니다.
====================================================================[re] 경고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믿는자 2002-10-30 09:53:00, 조회 : 329, 추천 : 39
이근호 목사의 사상에 관심을 갖지말고이근호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복음에만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그렇다면 님처럼 그런 말은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이근호 주의라는 것은 이근호목사님을 믿는 주의자들이 아니라>칼빈주의 같이 이근호이즘....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거죠>당연히 예수를 믿어야 하는것 아닙니까>그럼 예수주의자인가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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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있습니다. endplace 2002-10-29 16:42:55, 조회 : 351, 추천 : 45
구약시대 때에는 하나님이 자기백성들이 이방인들과 혼인하는것을 금지하셨습니다.그런데, 룻기를 보면 나오미는 자기 자식들을 이방여인들에게 장가를 보냈고,룻은 이방인이지만 다윗왕의 계보에 들억게 됩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을 까요?
====================================================================[re] 질문있습니다. 이근호 2002-10-29 21:36:02, 조회 : 416, 추천 : 82
>이미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린 상태입니다.(되풀이해서 하나님을 버립니다) 그런 지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이방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언약의 씨앗을 남깁니다.
######################################################################################목사님 질문입니다. 송재원 2002-10-30 10:28:51, 조회 : 376, 추천 : 62
1. 우리의 형제가 아닌자들 즉 '피안에서의 교제'를 할수 없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요? (그리스도인은 그들을 사랑할수 있나요?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수 있나요?)
2. '진로 설정' , '대학 진학', '수능'등 의 실제적인 문제에 처해있는 그리스도인은 주님앞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하며 어떻게 주님께 영광 돌릴수 있는지요? ====================================================================[re] 목사님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2-10-30 11:20:29, 조회 : 391, 추천 : 57
>1 '사랑'이란 인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 자체의 힘으로 그냥 발산될 뿐입니다. 흔히 사도 바울이 말하는 모든 명령법들은 바로 그 근거가 이런 사랑의 발현으로만 행사될 수 있을 뿐입니다. 천사의 말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괭가리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따라서 이미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 것을 일부러 억눌려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상이 누구든 말입니다.
2. 진로 문제나 수능시험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오직 '봉사'정신 뿐입니다. "나는 무엇을 하면서 봉사할 것인가?"라는 생각만 해야 합니다. 열심히 사는 것도 자기 과시가 되어서도 아니되고 그리고 태만한 것도 자기 편함의 핑계로 작용해서도 아니됩니다. 성경에 보면,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할 때가 있고 집중에서 남을 섬길 기능과 기술과 학식을 취득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운전면회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좋아라고 살지 마시고 덤으로 주신 남은 여생을 봉사하며 산다는 편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옳습니다. ====================================================================[re] 목사님 질문입니다. 송재원 2002-10-30 19:38:51, 조회 : 347, 추천 : 54
목사님 2번째 답변에서 질문하나를 더 생각해 봅니다.'덤으로 주신 이세상 삶'에서 봉사한다는 생각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봉사란 무엇을 뜻하는지요?
남을 섬기는 삶을 살라고 하셧는데 그 남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피로 맺어진 '우리 형제들'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그 봉사의 범주에 주를 알지못하는 자들에게 주의 도를 선포하는 '선교'를집어넣어 생각하려는 저의 생각이 틀린것인지요?
주님께 소외받은자 에게 주님의 사랑을 발산하는것도 봉사라고 말할수 있는지요?
====================================================================[re] 목사님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2-10-30 22:22:11, 조회 : 355, 추천 : 45
>봉사란, 그 대상을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베드로가 고넬료를 구원하겠다고 마음 작심했기에 고넬료에게 전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의로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준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떤 대상이나 계층을 봉사 대상으로 염두에 두게되면 그 대상 자체가 자기 '소유'로 간주될 경우가 비일비재입니다. 목사가 교회를 봉사한다면도 꺼꾸로 그 교회를 자기 소유화하려는 겁니다. 계속해사 봉사할 거리 그 자체를 집착하고 소유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봉사의 대상은 늘 매일같이 주님께서 준비해 놓고서 만나게 해 주신다는 무소유정신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때, 자신이 남을 봉사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오히려 지금도 하늘의 주님으로부터 봉사받고 있다는 황공함으로 떠나지 않게 됩니다. 이런 정신으로 세상에 나가십시오.
######################################################################################[질문]사랑의 하나님이라던데... 허광호 2002-10-30 12:33:21, 조회 : 373, 추천 : 61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우 이웃을 도우며 자기보다는 남을 생각하며 사회봉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영원한 생명을, 천국의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던데 그런 사람들을 정말 지옥에 보내실까요?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잖아요.또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요. 테레사 수녀님은 천국에 가셨을까요?
====================================================================[re] [질문]사랑의 하나님이라던데... 이근호 2002-10-30 14:37:09, 조회 : 397, 추천 : 53
남들보기에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 보십니오. "당신은 천국 갈 만큼 착합니까?"그러면 "아니요. 저는 신이 아닌 이상 완전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지옥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받아줄 만큼의 완전한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테레사 수녀님이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한 분이라면 천국갑니다.하나님의 약속하신 바가 바로 그리스도의 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대상? 김형권 2002-11-01 01:55:08, 조회 : 457, 추천 : 71
예수를 믿는 다는 사람들은(나 또한 예수를 믿고 있지만...) 흔히들 사람을 구분지을때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흔히들 말하는 비그리스도인 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합니다.그러나 처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때 이런 구분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안에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모든사람을 사랑해야지하면서 모든 사람을 포용할수 없는 것일까여? 이성교제를 예를 들자면 크리스챤은 크리스챤끼지 만나야만 하고 (편의상 이분법 생각을 사용하겠습니다.) 비크리스챤은 비크리스챤끼리 만나고... 혹은 어떤이는 크리스챤이 비크리스챤을 만나면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챤이나 비크리스챤이나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하나님의 피조물 입니다.내가 크리스챤이라고 해서 크리스챤(주님안에 한 형제? 자매?) 만을 사랑해야 하고 크리스챤인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앞뒤가 안맞지 않습니까? 바울은 항상 이타를 외쳤습니다. 이타란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이져... 여기서 남이란 꼭 크리스챤만 포함이 될까여?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해야 하고 내가 포용해야 하는 대상은 크리스챤만이 아니라 (위에서 말한 주님안에 형제,자매) 비크리스챤이라고 해도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고 내가 포용해야 할 대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그리고 글을 읽다가 보니까 상당히 마음에 안드는 단어가 있던데... 덤으로 주어진 삶?정말로 우리의 삶이 덤으로 주어진 것일까여? 저는 어리지만 삶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의 삶이란 항상 주님앞에 있는존재이고 항상 나의 삶은 주님을 향해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항상 나의 주어진 삶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나의 삶을 덤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만약에 나의 삶이 덤으로 주어진 것이라면 저는 지금 진리와 그리스도를 알아가기 위해서 이렇게 힘든 삶을 살고 있지 않을것입니다. 어차피 덤으로 주어진 것인데...
그리고 여기에 있는 글을 읽다가 느낀것인데.. 모든 리플이 결론이 딱 나 있더군여.... 그런 결론... 과연 어떤 기준에 의해서 내려진 것이며... 정말로 내가 어떤 것에 대해 결론을 내릴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목사님이라고 하지만... 저는 어떠한 개인이 어떠한 현상을 놓고 자신의 잣대로 모든것을 판단하고 결론지어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설령 성경적이고 교리적이라고 할지라도...오직 판단하고 결론내릴수 있는 권한은 하나님 밖에 있지 않을까여? ====================================================================사랑의 대상? 김형권 2002/11/01 71 457 [re] 사랑의 대상? 이근호 2002-11-01 06:22:24, 조회 : 455, 추천 : 65
성경은 공연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귀하께서는 인간이 죄인인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같습니다. 죄인에게서 나오는 사랑도 그 사랑의 주체를 자기 자신으로 삼는 것이 곧 죄입니다. 성경에서의 사랑이란, 하나님에게 원천이 있기에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사랑이 드러나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덤으로 사는 삶'이란, 하나님을 알고 부터 새로 생긴 삶에 대한 인식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모르기 전에는 외부에서 주어진 삶이 아니라 내가 가꾸어 나갔기에 견뎌낸 삶으로 생각했는데, 하나님을 알고부터는 모든 것은 '은혜로 주어진 삶'이기에 내가 누구를 위해 살아야 될 지가 분명해졌다는 겁니다. 추가적으로 말씀드려서, '덤으로 사는 삶'이란 하나님을 알고부터가 한꺼번에 주어지는 삶이 아니라 지금도 매일 매일 은혜로 추가되는 삶입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마 6:34/약 4:14-15) 귀하의 말씀을 들어보면, 하나님을 알기 전에나 그 이후나 모든 면에 전혀 달라질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re] 사랑의 대상? 김형권 2002-11-02 00:28:34, 조회 : 365, 추천 : 49
답변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우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이런 죄인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의 사랑은 곧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가여? 그리고 그 사랑은 곧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내가 하는것이 아니라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떄 하나님의 사랑이란 무엇일까여? 정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우리의 모든 일이나 사랑에는 나의 이익이 꼭 들어가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나의 이익이 그곳에 들어가 있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역시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고여... 그리고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포기라고 생각합니다. 님께서는 사랑에 대해서 포기하신 적이 있나여? 그리고 하나님을 알고 나서부터와 이전에 나의 삶은 따로 떨어져서 서로 극과 극이 되어야 하는 것일가여?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든것이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나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삶은 정말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기 전이나 안다고 말하는 지금이나 말입니다. 솔직히 저는 모태신앙이지만 아직까지는 하나님에 대해서 조금도 알지못하겠습니다.혹시 하나님을 알고계신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알고 나서 부터 님의 삶이 바뀌었다면 어떻게 바뀌었는지 말씀해주실수 있으십니까? ===================================================================[re] 사랑의 대상? 이근호 2002-11-02 06:37:40, 조회 : 463, 추천 : 83
마음을 집으로 표현하면, 집 주인이 따로 있을 경우에는 다른 자가 자기 식구를 들어와 사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추방해버리려고 애쓸 것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성도 마음의 주인되시는 분이 하나님이므로 참된 성도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태는 딴게 아니라 '추방 작업'입니다.(기도시키기, 회개시키기를 하시면서 시련, 고민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주인님의 자신의 주인됨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사태를 유발하십니다. "너는 왜 남의 집에서 마치 네가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고 사느냐?"하시면서 말입니다.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곧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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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사랑의 대상? 꽃분아빠 (Homepage) 2002-11-04 16:01:34, 조회 : 333, 추천 : 56
분명히 바뀌는데여...성경에 나타난 사도들의 고백들을 보며 흔히 이런 삶을 혹은 이런 고백으로 살아야지 하기 전에 그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지는 것을 봅니다.예를 들면 세상지식이 배설물로 여겨지는 현상을 보면, 그 현상은 억지로 내가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생각이 그런 사고가 생겨납니다. 왜냐면, 나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니까요. 그것이 천국인데, 무신 다른 고귀한 지식이 존재하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비젼이 뭐지요? 대답은 전 비젼 없는데요. 그냥 사는데요.혹자는 이런 대답에 대하여 그럼 삶이 너무 무의미 하지 않냐고 반문합니다. 그런데 천국백성이 되었는데, 무의미라는 것이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지요. 최고의 것을 소유하고 있는데....이미....
그리고 크리스챤과 비크리스챤의 만남에 대해서...물론 진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일 경우에 해당하는 야그입니다.쉽게 야그하자면 대체 대화가 안됩니다. 가치관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성경을 보고서 맞어 맞어 그냥 맞장구가 쳐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져. 물론 말씀을 통하여 새롭게 깨달아 가는 부분도 있으나 많은 부분은 그냥 맞장구가 쳐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왜냐면 바울을 가르치신 성령님이나 나를 가르치시는 성령님이나 같은 성령님이시니까여. 보혜사 성령님의 역할이 바로 주인되시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시는 것이자나여. 좌우간 대화가 안됩니다. 철저한 배타성이 나타납니다. 1+1=2라는 사실보다 더 진리인 것을 아닐 수도 있다고 하는 사람과 무신 대화가 됩니까? 그럼 또 전도에 대해서... 안들으니 하지 말자고 하기도 합니다. 전할 기회를 주시면 든던지 말던지 그냥 전하는 것이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특별히 비유를 풀어 설명하시져. 완전한 배타성이라 할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좌우간 비그리스도인은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데, 대부분의 답도 성경에 존재하긴 합니다. 무조건 믿어라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져. 황당하기 그지 없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믿으라니.....그래서 성경에도 이방인들이 보기엔 미련하게 보인다고 하자나여. 그래서 안듣는다고 안 믿는다고 자꾸 반문한다고 혹은 복음을 듣고 거역한다고 성낼것도 없어여. 전도하는 사람들 보면 자꾸 질문 받다가 성질냅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다시금 생각해 보세여. 황당하기 그지 없자나여. 그걸 믿고 있는 날 보면 더 황당합니다. 그리고 그 황당한 이야기를 전하는 나를 보면 더욱 더 황당하고 그걸 듣고 믿는 사람을 보면 더욱 황당합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다니....쩝.... 이게 믿어지는 것이 기적입니다. 죄인의 형틀인 십자가에 처참히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백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기적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믿고 안 변해지면 거짓 믿음이져. 우리가 뭐 자랑할 것도 없고, 내가 사랑을 베풀었다고 까부는 것도 우습고, 대체 내가 하나님 앞에 뭐 내세울 것도 없고 뭐 글쳐... ===================================================================== [re] 사랑의 대상?(꽃분아빠님에 대한 답변) 김형권 2002-11-05 02:00:02, 조회 : 364, 추천 : 65
님의 글 정말 잘 읽고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사랑의 대상은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뀔수도 없는 것이구여... 왜냐면 난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하는데 대상이 바뀔것이 무엇이 있고 사랑의 대상을 고른다는 것 또한 우수은 일이 아닐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님께서 "우슨 다른 고귀한 지식이 존재하겠습니까?" 라는 글을 읽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맏습니다.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무슨 다른 고귀한 지식이 나에게 존재할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소유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소요할려고 할때 그것은 더 이상의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요한에게서와 바울에게 잘 나타나있지여...
그리고 저의 생각과는 조금 틀린 글이 있는데...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또한 비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만남에 대한 것인데... 저도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이고 님께서도 예수를 믿고 계시는 분이시지여? 우리는 흔히들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저와 님의 가치관과 생각 그리고 삶의 방식 등등 많은 것들이 똑같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려 같은 그리스도인끼리도 이렇게 가치관이 틀린데 비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이 틀린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리스도인, 비그리스도인 이기 전에 우리는 똑같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어진 사람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바라보고 싶은 것입니다. 가치관의 차이와 삶의 방식의 차이때문에 대화가 않된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안 만나고 살 것입니까? 아닙니다. 저의 경우는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을 만나는 경우보다는 비그리스도인을 만나는 경우가 훨신 더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신에 대해서 이야기 할때 공감하는 부분역시 많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이라는 존재. 절대자라는 존재.. 우리는 이런 존재를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구여...우리 인간의 궁극적 관심은 바로 신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신학자가 말한 것이라고 하더군여..) 저의 생각은 분명 비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신에 대한 관심은 그리스도인인 우리못지 않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도에 대해서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시면서 이리때로 보내는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지여... 왜 모르니까여... 저는 전도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전도의 방식에 대해서는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제가보기에는 지금의 전도의 모습은 예전의 십자군전쟁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뭐 이런식이져. "내가 믿고 있는 종교가 고등종교다. 그러나 니가 믿고 있는 종교, 혹은 넌 종교가 없으니까 내 종교를 믿어야만 해." 완전 힘에 의한 논리인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여... 그러나 저는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냥 전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거두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영역까지 침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의 증인인것 같습니다. 증인은 본것을 그대로 말 하기만 하면 되지 그것을 믿게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저는 님께서 "복음의 다양성" 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복음의 다양성"이라는 것은 다원주의와는 다른 의미에서 말씀드린것을 분명히 밝혀 드립니다. 오해 없으시기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의 주제 넘는 생각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re] 사랑의 대상?(꽃분아빠님에 대한 답변) 꽃분아빠 (Homepage) 2002-11-06 02:33:54, 조회 : 340, 추천 : 58
먼저 답변의 모양이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음이 마음에 흡족함(대화할 수 있음)을 느낍니다. 게시판에 글 올리는 모양을 보면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 무시하거나 비난조로 이야기 하는 것을 많이 보는데 님의 글은 전혀 그런 내용이 없어셔서 이렇게 다시 글을 올립니다.
사랑의 대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은 자세히는 잘 모르는 내용이라 저의 의견을 잘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단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공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던 비그리스도인이던 모두 사랑하는 것은 공감합니다. 그런데 이런 예를 들고 싶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 즉, 그리스도인끼리는 서로 형제요 자매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이지요. 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우는 특권을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한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 또한 다른 그리스도인을 보면 한 형제임을 느끼고 알 때에만 통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그냥 지식으로 배워져서 한 형제라고 했으니 한 형제로 생각하자고 해서는 진정한 형제 자매로서의 모양이 나오지 않겠지요. 이 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형제 자매라는 것을 보고 익혀서 형제 자매라고 억지로 하는 것 또한 거짓된 형제 자매라고 할 수 있지요. 좌우간 진짜 천국백성인 자를 보면 너무 좋은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연스런 모양일 것입니다. 즉 사랑의 대상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보면 더 마음이 가고 더 이뻐 보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은혜를 받았다는 말씀.... 이는 조금 주제에 벗어나는 이야기이지만 은혜라는 단어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합니다. 은혜는 아시다시피 죄사함이 포함된 하나님의 은총을 의미하지요. 즉, 나의 죄인됨을 알고 하나님의 선물이 은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설교듣고 은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물론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건 아마 감동적인 설교 혹은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소유라는 것... 저의 표현이 좀 어눌했나 봅니다. 그부분은 저의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죠... 저도 동감합니다. 내가 소유하려고 해서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임하는 것이지요. 자기부정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의만 살아나고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되어지는 것이 천국이겠지요. 나눔에 있다는 것은 자세히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교회의 나눔을 말씀하시는 것지....즉, 공동체 구원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건지요? 일단 이 부분은 제가 이해를 잘 못해서 답변을 드리기 어려울 듯 합니다.
그리스도인끼리의 가치관 차이에 대해서... 물론 가치관의 차이가 있지요. 그러나 가장 큰 가치관 즉,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어지고, 자기부정이 되어져야한다는 가치관에는 차이가 없어야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나의 의가 드러나고 나의 자랑이 쏫구쳐진다면 자기부정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만 드러나는 것이 그리스도인 즉, 천국백성의 기본되는 가치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혼에 있어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런 큰 가치관에서 차이가 발생되므로 정말 힘듭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는 성령님의 감동이 쏫구쳐 오르고 복음의 비밀이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것이기에 함께 살아갈 때에 힘든 점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저의 가치관 또한 좀 이기적인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비 그리스도인을 안 만나느냐? 물론 저도 만납니다. 만남에 있어서도 기회를 엿보고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친한 사람이건 아니건간에...우리 인간의 궁극적 관심은 바로 신에 있다는 말씀...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확장해 가십니다. 우리의 관심은 신에 있을지는 모르나 신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각종교에서 보면 자신의 의를 통해서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고 구원의 비밀을 알게 하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에 의해서 알게 되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비유는 예수님께서 하신 부자 비유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 온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어렵다는 말씀에 제자들은 깜짝 놀라며 반문합니다. 대체 그럼 누가 천국 갈 수 있냐구여.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하죠.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즉,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동일하게 천국을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즉,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입니다. 룻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룻이 하나님을 알아서 따라갔다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룻을 통해서 하나님나라 건설을 이루시고 계시는 모습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룻이 선택을 잘했다 혹은 룻이 하나님을 바라보았다는 해석은 인본주의적인 해석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물론 인간에게 창조자 혹은 조물주 혹은 절대적인 신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에 그러한 양심이 있음은 인정합니다.
전도의 방법에 관해서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듯 합니다. 우리는 전하는 것 뿐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전하는 자신을 보면서 또 뿌듯해 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져. 그냥 전하는 것입니다. 전 글에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인간적으로 보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왜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져? 그냥 죄 사해주면 되지.... 아주 원초적으로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성립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좀 억지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좌우간 그냥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에 대한 관심은 있으나 진짜로 창조주께서 존재하시고 창조주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얼마전 저희 교회에 믿은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성령님께서 임하신 분이라고 확신되어지는 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참으로 사랑스럽고 너무 귀하다는 저의 고백에 대해서 이런 질문을 하더군여. 많은 프로가 있는데, 저같은 아마츄어를 왜 이토록 사랑한다고 하십니까? 저의 대답은 간단하였습니다. '프로는 별로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중에서 하나님께서 정말 존재하시는지 아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그냥 교회다니는 것이지요. 천국 보내준다고 꼬시니까요... 하나님의 주권이니 자기부정 따위는 자존심도 상하고 손해볼 것 같고 힘들 것 같으니까 싫고 그냥 교회 다녀서 천국 가자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신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고, 천국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이 임함과 자기부정이 되어지는 자는 안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며, 이미 천국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실현된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의 소망과 함께...
====================================================================사랑의 대상? 김형권 2002/11/01 71 457 [re] 사랑의 대상? 언뜻 2002-11-05 15:26:38, 조회 : 365, 추천 : 52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믿는다거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라는 이름을 믿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역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명사를 믿는다는 것이 아니지요.우리는 이런 웃기는 이름 나부랭이에서도 조차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읍니다.그래서 마치도 무당이 굿하는 것처럼 무슨 귀신 무슨 귀신하면 그 이름이 곧 귀신이름인것처럼 그런 바보스러운 것을 믿는다고 알고 있으니 우상을 멀리하라는 말의 의미가 무언지잘 숙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이 천 년전의 이스라엘에 살았던 예수를 오늘날 믿는다고 알고 있지만 생각을 해 보세요지금 여기 그대들이 믿고 있다는 것을 이 천 년 전의 그 예수가 알고 있을까요.만약 그 예수는 이미 죽어 없으니 어떻게 자신을 믿고있는지를 알까요아니면 예수가 자신을 믿고 있는 사람들을 모르고 있다면 그 사람들은 정말로 웃기는 노릇을 하고있는 것이지요. 허공을 치는 것하고 다를것이 무엇 일까요.
님의 글에 답하는 여러 답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함을 걷울 수가 없군요.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지금 여기 살아 움직이고 생동하고 움트고 자라며 먹고 배설하고 피가 통하는 그런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이지요. 에수가 부활하여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말을 믿지 못하고 다만 이 천 년 전에 그 말을 하고 십자가에 죽은 그 육신의 예수를 믿는다고하고 있으니 죽어 사라져버린 육신을 어떻게 믿는다는 말인가요.
믿는다는 것은 지금 여기서의 동사진행형이라는 것을 모르시나요.
예수가 한 말을 모르니 믿는다는 것이 무언지 모른다는 것이지요.내 말에 거하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겠다는 것이 예수의 주된 가르침입니다."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이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우리가 예수 안에 거한다는 말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는 말이고 그러면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의 남은 일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것을 구하면 이루리라는 것이지요.어떻게 예수의 말이 내 안에 거하는데 다른 세상것을 구하겠어요. 예수가 구하는 그것이 바로 그를 믿는 사람이 구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그러니 자신이 예수 믿는다고 말하기 전에 예수가 구하는 그것을 내가 지금 구하고 있는지 살펴볼일이지요. 무엇을 믿는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 떠든다고 그것을 믿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그런것은 모두 이름에 불과하고 또한 우상에 불과한 것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문제는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자기가 무어냐 이것이지요예수의 말이 거하는 사람은 그 말이 곧 자기이고 예수이고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이지요.이런 사람에게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곧 예수를 그리스도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기에게만 예수의 말이 거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모든 것 안에 하나님을 알만한 이 자기가 있어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대상이지요. 하나님의 말이 내 안에 거하시면 나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말인데. 도대체 사랑할 수 없는 대상도 있겠는지요.예수의 말이 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예수의 사랑도 없지만 예수의 사랑이 거한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이고 그러면 사랑이 무언지도 알 것입니다.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놓는다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온전히 하나님과그의 아들의 말에 거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육은 무익합니다. 사랑에 있어서. 믿음은 신학논문이나 지식이나 권위나 논리정연한 그런것이아닙니다. 예수의 말이 무언지 그것을 알아야 하는 그런것입니다.예수의 말은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그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케 되겠읍니까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사랑할 수 있나요.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미워할 사람이 있을까요?예수를 안 믿는사람이라고요? 예수를 믿는다고 떠든다고 예수 믿는 사람일까요?주여 주여 하다고 다 천국에 갈까요?그래서 예수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얻어들은 모든 세상적인 가르침을 내려놓고 예수의 말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거하고 나면 버려진 모든 것이 똥보다 못한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지금 여기 그 말씀은 그 사람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 곳이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죽어서가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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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대상? 김형권 2002/11/01 71 457 [re] 사랑의 대상? 이성희 2002-11-01 08:12:58, 조회 : 407, 추천 : 81
목사님께서 답변을 하셨습니다만 저는 님의 마지막 몇 줄에 대해토를 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글을 읽다가 느낀것인데.. 모든 리플이 결론이 딱 나 있더군여.... >그런 결론... 과연 어떤 기준에 의해서 내려진 것이며... 정말로 내가 어떤 것에 대해 결론을 내릴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목사님이라고 하지만... >저는 어떠한 개인이 어떠한 현상을 놓고 자신의 잣대로 모든것을 판단하고 결론지어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설령 성경적이고 교리적이라고 할지라도...>오직 판단하고 결론내릴수 있는 권한은 하나님 밖에 있지 않을까여?
오직 판단하시고 재판하실 분은 분명 하나님이십니다.그러나 목사님 말씀대로 성경은 공연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봅니다.어떤 현상에 대해 자신의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잣대로 판단해야할 것입니다. 이것 마저도 - 설령 성경적이고 교리적이라고 할지라도.... 라는 말에서 - 해서는 안된다고 하면 님에겐 성경 말씀도 전혀 의미가 없다는 얘기가 되지 않나요?성경에서는 "너희는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하라"고 했습니다.옳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기준은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가운데 성경에 근거하여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기가 기준이 아니라 성경 말입니다. 자신의 삶까지도 성경에 근거해서 판단하고 날마다 말씀앞에서 자신은 부서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에 베뢰아 사람들처럼 신사적으로 성경을 날마다 연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하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re] 사랑의 대상? 김형권 2002-11-02 00:48:20, 조회 : 369, 추천 : 52
님의 리플에 대해서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의 글에 조금의 오해가 있으신것 같군여.제가 썼던 "저는 어떠한 개인이 어떠한 현상을 놓고 자신의 잣대로 모든것을 판단하고 결론지어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설령 성경적이고 교리적이라고 할지라도..."여기에서 설령 성경적이고 교리적이라고 할지라도" 에 대해서는 저는 이런 생각으로 글을 썼던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 쓰여졌습니다.(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 그리고 교리역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그렇다고 성경을 필요없다고 보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성경을 하나님의 모습을 그대로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보고 있습니다.그리고 저는 성경을 보면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알아갈려고 목매달아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힘겹게 찾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율법의 틀 속에서 이런것은 하면 죄이고 이런 것을 하면 죄가 아니다. 이런 율법적인 성경과 교리를 말한 것입니다. 율법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지요.그러나 이런 율법이 생명을 살리는 율법이어야지 생명을 죽이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님께서 생명을 죽이는 자 라는 말이 아닙니다. 간음한 여인이 잡혀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돌로 맞아 죽어야 하지여... 모든 사람들은 그 여인을 향해 돌을 들었습니다. 그떄 예수님께서 죄없는 자가 돌로쳐라 라고 말씀하셨지여. 예수를 율법의 완성자라고 말합니다. 그런 율법의 완성자가 율법을 어겼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여? 예수님은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판단과 결정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랑의 인간을 사랑하는 그런 눈으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눈으로 생명을 보지 못하지여. 그것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래서 사람에게는 판단하고 결론지어 버릴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계시에 대해서 증거를 대라고 하면 저는 증거를 못보여 드립니다. 저는 계시에는 증거가 필요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플에 대해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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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시대의 십일조? 궁그미 2002-11-05 09:38:59, 조회 : 476, 추천 : 68
수많은 기독교 관련 사이트 중 이 사이트를 방문해보니늘 생생한 복음이 살아 숨쉬는 듯 하여 참 좋습니다.(다소 독선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복음에는 때묻지아니한 독선이 필요...)한국 기독교의 비복음적인 요소를 예리하게 도려 드러내는 작업도 참 통쾌하구요,목사님, 대체로 보수주의 신학에서는 십일조를 말라기3:8-11과 마23:23(...이것도 행하고)에 근거하여 신자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으나, 자유주의 신학이나 캐톨릭에서는 십일조를구약시대의 율법적 산물로 간주하여 신약시대에의 적용은 부적당하다는 입장입니다. 다소 첨예한 대립이 있는 분야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다음 네가지 질문을 드립니다.(질문범위가 넓은것 같아 죄송합니다.)1. 신약시대의 십일조에 대한 타당한 해석을 바랍니다.
2. 말라기 3:9에대한 톰슨주석의 해석 "십일조와 헌물은 율법으로 주어졌지만 사실은 은혜와 축복의 통로요 수단으로 주어진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축복과 은혜를 거절한 이스라엘은 필연적으로 저주를 받게되었다" 라는 해석이 바른 해석인지요?
3. 마태복음 5장 17-20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쉽게 이해하여야 하는지요?
4. 목사님, 신자의 올바른 헌금관(헌금에 대한 가치관 내지는 헌금 정신)을 알고싶습니다. ====================================================================[re] 신약시대의 십일조? 이근호 2002-11-05 15:10:15, 조회 : 780, 추천 : 117
1. 율법이란 옛날 유대인들에게만 준 것입니다. 같은 시대의 이방인들이나 더구나 오늘날 신약 성도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서당에 갈 때에는 버선을 신어야 한다"라는 법이 있다면 오늘날 사람들에게 전혀 해당될 수 없는 법입니다. 십일조나 안식일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신약 (예수님 부활 이후에는 )아예 십일조라는 것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보고 이것도 저것도 하라는 것은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완수하기 이전에 여전히 율법 아래에 있어야 될 자들입니다. 그점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보고 이것도 저것도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2. 율법은 죄를 깨달아서 왜 우리가 저주의 대상인 가를 알게 하는데 있을 뿐만 아니라 죄를 더욱 더 짓게 만드는 놀라운 작용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구약의 저주는 십일조 뿐만아니라 십계명의 모든 계명으로도 주어집니다. 구약에서도 율법 잘 지켜서 저주받지 않고 복받은 자는 전혀 없습니다. 구약에서 복받은 자들은 언약을 은혜로 이해에서 오실 메시야의 공로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요 8:56)
3.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홀로 다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율법의 일점 일획도 우리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것이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성도에게 늘 "예수님이 홀로 다 이루었다"는 점을 일개워줍니다.
4. 신약 성도의 헌금은 고린도후서 8-9장에 잘 나와있습니다. " 각자 마음에 정한대로 하라"(9:7) 이것이 정답입니다. ====================================================================[re] 신약시대의 십일조? 꽃분아빠 (Homepage) 2002-11-06 02:47:09, 조회 : 551, 추천 : 79
저도 답변 올려도 될지....^^
말라기의 그 말씀은 오히려 제사장들 혹은 십일조를 관리하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에스라서 혹은 느헤미야서를 같이 보시면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헌금의 의미는 신약에서 평균케하는 작업 혹은 필요한 것을 충당하는 것이라고 보아집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의 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 없게 된 것이지요. 그걸 알게 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천국백성이지요. 성령님께서 그것을 알고 깨닫게 하시는 것이지요. 우리가 헌금낼 때 하나님께 바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예수님께서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 및 대표하셔서 모두 바치셨습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이지요. 대표를 나타내는 십일조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드린 것으로 이미 완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되는 것을 원하시고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바칠 것이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유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냥 내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