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존스 목사님에 대해서 ] 2002-09-27
이근호목사님. 로이드존스 목사님에 대해서 질문입니다. 송재원 (Homepage) 2002-09-27 09:12:34, 조회 : 286, 추천 : 42
이근호 목사님.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직 그분의 강해를 몇 읽어보지 못한지라..그분을 알기에는 어려운감이 있네요.
이근호 목사님께서 알고계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re] 이근호목사님. 로이드존스 목사님에 대해서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2-09-27 12:14:30, 조회 : 441, 추천 : 38
>그 당시 많은 목사들과 신학하는 자들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치중하는 가운데서도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전징 기독교가 기독교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증거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의 능력과 효과에 주목했습니다. 만약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치중한다면, 하나님이란 존재란 인간의 야망과 이상과 비젼을 달성해 주시는 신으로 전락됩니다. 평신도들에게는 가정의 행복과 자신이 벌려놓은 사업의 번창을 위하여 신을 의지하려고 할 것이요, 권세자들은 자신이 경영해야 하는 국가과 민족을 발전시키는 것을 위해 신의 힘을 빌리려 할 것이요, 목회자들 같으면 자신이 봉사한다고 여기는 그 교회가 부흥 발전되는 것이 그것이 곧 천국을 넓히는 훌륭한 하나님의 일처럼 생각해서 그것을 위해 신에게 하소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 모든 것에 관심 두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죄인이고 더러운 존재이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인간들 하나님에 대해서 최종 만날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은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죄인임이 확정되고 동시에 그 십자가에서 분의 공로로 하나님으로 의인으로 받아드려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복음적인 생각은, 복음을 교회 세력을 키우는데 써 먹겠다든지, 복음을 국가나 가정이나 사업체의 번영으로 이어보겠다는 세속적인 야심을 모두 죄악된 것으로 정죄해 버립니다. 그렇다면 로미드 존스 목사님의 뒤 이은 십자가의 활용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몸 자체가 곧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거룩한 생활로 이어지면 그것으로 족하고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겁니다. 즉 돈 있고 없고, 목회 성공 하고 말고가 아니라 교회든, 가정이든, 직장이든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거룩된 생활이 드러날 때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이 영광이요 참 성도된 삶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영적 생활, 혹은 성령의 열매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이러한 주장은, 교회 다니는 것을 그냥 자신의 종교적 생활로만 간주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충격인 동시에 미움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세상에 대해 극단적인 부정적 관점을 지닌 폐쇄적 사고의 인물로 분류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의 목회자들 중에서는, 일단 개척교회 처음 시작할 때는 기존의 교회와의 변별성으로 내세워 기존 교인으로 빼앗오기 위한 일환으로 개혁을 부르짓고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거론하게 로이드 존스 목사님 식으로 좀 유식하게 보이는 설교을 시도하다가 일단 교회가 얼쭉 겉보기에 교회모양새를 갖추었다고 여기면 사정없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차버리고 조용기 식으로 달려갑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교인들의 머리만 키워놓게 할 뿐이인고 교인들을 얍사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핑계대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생각하기를, "뭐니 뭐니 해도 목회란 교회 커는 맛으로 해야 된다"는 겁니다.
제가 보이에 로이드 존스의 목사님의 신학의 헛점은 '거룩'에 대한 개념이 언약적이지 못하고 일반 철학에 말하는 윤리, 도덕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겁니다. 이미 윤리, 도덕이 과연 성령의 열매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칸트라는 철학자가 철저하게 규명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 내세우는 윤리와 도덕이란, 자기가 행한 것에 대한 핑계와 변명과 정당함을 위해 그 때 그 때마다 수시로 변신하는 형식으로 주장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아무리 성경에서 '온유'를 말해도, 20대 시절에 이해하는 온유가 다르고 40대 시절에 이해하는 온유가 다릅니다. 그리고 그 다르다는 기준도 따지고 보면 자신이 그 한계 내에서만 행동할 자신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행위의 정당함을 부여하기 위한 틀로서 윤리 도덕을 주장하게 됩니다. 언약적으로 봐서는 인간이 아무리 오해 산다할지라도 인간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자기 의' 추구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십자가 앞에서는 곧 죄가 되는 겁니다. 성령의 열매는 곧 십자가을 계속 믿는 것이며 그 십자가의 공로를 증거하는 것이 성령의 열매이며 거룩한 삶인 것입니다. 즉 거룩이란, 십자가 안에서만 사는 분리된 존재성을 말합니다. (갈 6:14)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아마 자기 시절에는 이런 언약 신학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에 기껏 청교도 책을 통해 "대충 이 정도하면 남에게 엉터리 진리를 주장했다고 욕얻을 먹지 않을 것이다"라는 범위를 가지고 설교한 것 같습니다. ############################################################################의인에 대하여 꽃분아빠 (Homepage) 2002-09-27 09:44:24, 조회 : 307, 추천 : 37
아브라함, 에녹, 노아의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하신 것 같은데... 물론 자세한 것은 잘 모릅니다. 신학적으로 깊이 잘 몰라서리...근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신 말씀과 상반되는 내용인 것 같은데, 과연 예수님 이전 의인이 있었는지요?그들이 교회에서 흔히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피로 혹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다기 보다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행위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좌우당간 의인이 있나요? 없나요?자세한 설명과 함께 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 의인에 대하여 이근호 2002-09-27 11:49:09, 조회 : 328, 추천 : 36
>신구약을 통털어 '의인'이란 하나님의 언약 관계 아래 놓여있는 자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란 하나님이 제시하는 관계 자체를 말하는 것이며 그 안으로 부름받앗기에 '의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 때에 노아는 상대적으로 노아외의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님과의 교류가 있었습니다. 에녹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그 하나님의 언약 혹은, 언약 관계 안이 모두 명확해졌습니다. 왜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의인이 되는지가 비로소 밝혀진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었고 오로지 그 죄인을 위하여 화목제물 되시는 분의 의로 말미암아 그들도 의인되게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보다 상세한 것은 로마서 3:25-26과 고린도후서 5:21를 잘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엘서의 예언성취? 김순호 2002-09-28 12:45:43, 조회 : 267, 추천 : 41
요엘2장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
오순절 방언의 역사라고 베드로가 말했는데요앞에 이상을 보고 꿈을 꾸는 그런 내용은 그 때의 역사라고 해석되지만..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기둥이라는 말씀은 도무지 무슨뜻인지요? ===================================================================[re] 요엘서의 예언성취? 이근호 2002-09-28 13:03:16, 조회 : 277, 추천 : 34
>구약 예언서의 예언은 모두다 다윗에게 알려준 하나님의 예언에 종속됩니다. 이것은 '다윗 언약'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받은 예언에 봐도 요엘서에 나오는 유사한 예언들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22:8-10)따라서 다윗 언약 자체의 완성이 어디서 이루어졌는가를 보면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윗 언약의 예언은 새언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곧 예수님에 의해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에서 기록된 '예언 완성'이라는 취지는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방언이란 곧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귀하께서 질의하신 하늘의 징조는 , 장차 예수님이 재림으로 인한 징조라고 보면 됩니다. 이것은 '아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로 봐야 된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이상한 말의 기적인 '방언 예언'은 이루어졌지만 '아직' 나머지 예언은 남았다"라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또 하나 주의할 것은, 인간이 새삼스럽게 그 예언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것도 전혀 남아 있지 않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약 시대의 예언 완성은 시간상에서 성취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인간에 의해 추가적으로 달성해야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다 이루어진 겁니다. 앞으로 재림때까지 계속 지켜보면 됩니다. =====================================================[re] 요엘서의 예언성취? 김순호 2002-09-28 14:16:14, 조회 : 299, 추천 : 43
"사도행전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
목사님 위 말씀에서는 요엘서의 성취라고 하시는데요...좀더 알기쉽게 설명해주시면 안될까요?죄송하지만 목사님의 설명이 좀 어렵습니다..======================================================[re] 요엘서의 예언성취? 이근호 2002-09-28 22:46:01, 조회 : 269, 추천 : 34
1. 베드로 사도가 요엘서를 거론하면서 예수님 이후 완성되었다고 보면, 무조건, 이유없이 옳다고 간주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베드로 네가 알기는 얼마나 알아?"라든지 "베드로의 주장은 자기 입장에서만 맞다"라든지 해서는 아니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성도는 사도가 받은 계시는 바탕 위에 있고 또 그 사도의 받은 계시는 예수님이 하자없이 그에게 내려준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요엘서를 아무리 봐도 베드로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견해는 나올 수 없다. 따라서 베드로의 주장은 일단 그의 개인적인 견해로만 간주하자. 그리고 우리 나름대로 요엘서를 달리 보자"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 자체가 아예 틀려먹은 생각입니다. 귀하께서 요엘서의 내용이 신약에 와서 완성되었다는 해석이 어렵다 하셨는데, 저에게도 이 베드로의 주장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베드로의 요엘 해석을 수용할 따름입니다.
2. 사도행전 2:21를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엘서보면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요엘 2:32에 보면,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요엘서의 여호와 자리에다 일방적으로 '나사렛 예수님'을 삽입해 넣었습니다.
자 다음중 어느 것이 정답힙니까?(1)베드로의 구약 해석은 반칙이다, 그런 겁니까?(2)사도가 했을 경우니까 잘못이 아니라 그냥 넘어 가줄 수 있는 문제라는 겁니까?(3)신약에서 해석할 때만 그렇고 구약 그 본문에서 나사렛 예수님이 아니라 그대로 여호와입니까?(4)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구약 요엘서 그 본문에서도 여호와는 곧 나사렛 예수님 그 분이란 말입니까?
정답은 (4)번입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그렇게 봤으니까 말입니다.
3. 제가 이처럼 구차히 설명드리는 이유는, 성경의 모든 것은 사람의 뜻이 아닐 성령으로 된 말씀이기에 사람들의 이해 불가능입니다. 오로지 모든 것을 예수님이 주님이다는 차원에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게 될 문제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이해도를 넘어선다는 말입니다.
4. 사도행전 2:19에 나오는 '피와 불과 연기'라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이미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일은 재림까지 감행되고 세상을 불로서 태워버리는 일도 있으니 말입니다.
5. 더욱 간단하게 말해서, 베드로가 완성이라면 이유 없이 그냥 완성이라고 알면 됩니다. 라면 먹고 아시아 경기에서 달려서 금메달 딴 사람이 임춘애가 아니라 현정화라고 '넘버 3' 송광호가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넘버 쓰리가 그렇다하면 그런 줄 알아야 합니다.
6. 요엘서 이해 잘 안된다고요? 사도행전으로 가서 베드로에게 그 내용을 배우시기 바랍니다.(우리가 흔히 상식적으로 요엘서을 해석한 대로) 여호와 이름을 부르면 구원이 안됩니다. (요엘서 문자대로 했는데도 안됩니다.) 오직 사도행전의 베드로 선언대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이 구원이 됩니다. 왜요? 저도 몰라요. 그것은 베드로가 '넘버 3이기 때문입니다. ############################################################################################## 버린 자는 백배나 ? 이성희 2002-09-30 10:08:09, 조회 : 264, 추천 : 45
마가복음 10장 28-31
28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목사님 위 본문을 가지고 30절 말씀에 ....을 버린 자는 금세에 ...를 백배나 받는 다는 부분을 갖고보통(?) 목사님들이 금세에 물질적 복을 받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이 말씀에 대해서 금세에 핍박을 겸해서 받는 다는 것과 내세를 구분해서해석을 해 주시겠습니까?
"이 말씀 믿고 한번 버려 보시라니깐요? " ^^ 이런 투기성 신앙을 조장해서야 되겠습니까..? =============================================================[re] 버린 자는 백배나 ? 이근호 2002-09-30 19:54:46, 조회 : 299, 추천 : 63
>성경에서 30배나, 60배나, 100배 같은 표현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일으킨다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 좋은 예가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자기를 죽이려고 돌을 던지는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뵈옵는 기쁨에 크게 도취되었습니다. 이 엄연한 현실의 기쁨이 바로 100배와 같은 축복입니다. 인간이 감히 상상치도 못하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그는 축복의 엄청난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을 위하여 되레 용서의 기도까지 합니다. 이런 여유는 100배의 축복을 받은 자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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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목사님 질문입니다. c.s 루이스에 대한. 송재원 (Homepage) 2002-10-01 17:29:09, 조회 : 328, 추천 : 56
c.s 루이스에 대해서 궁금해서 올립니다.
그의 구원관에 문제가 잇다는것을 알고 잇습니다.그가 종교다원주의자라는것도 알고있습니다.
음..그렇다면 그의 저서를 읽지 말아야하나요?
변증적인 측면에서 솔직하고 진솔하고 꼼꼼하게 다가서는 루이스가 친근하기만 합니다.
하지만..c.s 루이스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궁금합니다.
목사님께서 알고계신 루이스는 어떤사람인가요? ===================================================== [re] 안녕하세요 목사님 질문입니다. c.s 루이스에 대한. 이근호 2002-10-01 20:25:22, 조회 : 341, 추천 : 53
>개인적으로 결정적으로 구원되느냐 아니되느냐는 인간의 소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남몰래 홀로 어떤 신앙관으로 바뀌게 될 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위 복음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은 그 어떤 책이라도 다 봐야 합니다.
루이스에 대해서 언젠가 그의 저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제가 상세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제사형식에서... 꽃분아빠 (Homepage) 2002-10-05 15:05:02, 조회 : 269, 추천 : 36
레위기에 보면 수컷으로 드린다는 말이 나오는데, 왜 수컷을 원하셨는지요?
================================================[re] 「교회를 넘어서」 119쪽... 한그내 2002-10-05 22:24:07, 조회 : 271, 추천 : 38
위의 책 본문에서 "...제물이 수컷이 주종을 이루는 것은 한 가정의 대표자로서 아들의 위상을 대변하기 위함이다..."라는 말씀이 언급되어 있더군요(물론 이것은 출애굽기와 관련된 것이며, 레위기 강해 내용은 아닙니다)더불어...암컷 제물이 의도적으로 등장해야 하는 이유는 같은 책 98쪽을 중심으로 참조하시면 될 겁니다.물론...암수컷 여부를 포함하여 제물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된 해당 페이지들 뿐만 아니라, 같은 책 제4장 "거룩의 지속성(75-139쪽)"을 모두 읽어보셔야 할 겁니다. ================================================[re] 제사형식에서... 이근호 2002-10-05 17:59:21, 조회 : 327, 추천 : 38
>숫컷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암컷도 드립니다. (레 4:32) 어떤 때는 암수 관계없이 흠없음에 강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레 3:1) 제사에 있어 암수의 구별에 대해서는 '교회를 넘어서'(대장간 출판사)의 책을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김정욱 2002-10-06 17:15:07, 조회 : 339, 추천 : 38
"교회는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기위해 청소년 카페라테 ,노인 목욕시설,체육시설등의 준비를 위해 여러분의 헌금이 필요합니다. "1.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리고 왜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교회에서 얘기되는 걸까요?
2.예배때마다 전해지는 말씀들이 누가들어도 교양강좌수준이고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복음과 관련없 는내용들이 전해질때 어떤자세로 반복되어지는 예배에 참석해야 할까요?
3.교회에서의 장로 ,집사,안수집사, 권사라는 직책은 무엇을 위해 있는것인가요? 궁금해서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re]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이근호 2002-10-06 19:46:46, 조회 : 408, 추천 : 40
>1. 교회는 교인들의 위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지역 사회의 눈치를 살피게 되면서, 소위 '쓸모있는 단체'라는 좋은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 - 그래서 자신들이 선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과시하기 위해 - 각가지 영업전략책을 구상하기 마련입니다. 이미 교회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는 사이비한 종교 시설에 불과합니다.
2. 참석하지 마세요.
3. 교인들은 직급하지 아니하면 자신이 신앙이 없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래서 목사들의 목회 주업무는, 직업 대상자를 골로 제 때에 승진(?) 시켜주므로서 다른 교회에 빠져 나가지 않고 그 교회에 적을 묶어 놓고 따라서 그 사람의 수입의 일부가 계속 자기 교회 운영비로 지출되도록 신경을 쓰게 됩니다.교인들은 대외적으로 진급했다는 것으로 자기 신앙이 공증된 신앙으로 간주되는데서 구원에 안심을 하게 됩니다. 즉 주고 받는 거래가 형성되는 겁니다. 성경에도 안나오는 '권사'라는 직책을 설정한 것도, 여성 평신도들의 한평생의 한(?)을 풀어주어 교회에 대한 사소한 불만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그들의 영적 공허감을 메꾸어 주려는 조치입니다. 그 반대급부로 본인의 월수입과 연계 가족들의 (외지에 있는 자식들의 헌금)까지 수금할 수 있는 기대도 같이 걸게 됩니다.
복음도 모르는 목사를 양산시켜 놓은 것은, 복음도 모르고 장로, 권사, 집사 직이 탐을 낸 한국 교인들의 무지 때문입니다. ===========================================================[re] 목사님의 답변에 대해서 이성희 2002-10-08 08:45:40, 조회 : 307, 추천 : 34
목사님의 시원한 답변을 읽고 추가로 질문 드립니다.답변하신 내용 전부에 공감을 하면서도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
" 2. 참석하지 마세요. "
에 대해서 추가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이근호 목사님의 설교와 많은 강의를 들으면서 많은 감동과 또 많은 갈등도 함께 받았습니다만특별히 기존 교회 출석 문제에서 힘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김정욱 님의 고민처럼 비복음적인 내용의 설교가 들려지는 예배에 계속 참석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제기는 복음을 바르게 알게된 평신도(?)가 그 교회 목사님이 비복음적인 내용을 가르치고 행하도록 요구할 때에 겪는 갈등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예배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교회를 떠난다는 의미가 되거든요.
언젠가 목사님의 어떤 강의에서 들은 기억으로는... 그런 비복음적인 교회에 있는 사람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기가 더 쉽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그런 교회에 몸 담고 있으면서 복음을 못 들은 교인들에게 복음적인 삶을 보여주고,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만 전파하는 것이 우리 사명이라면 사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면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그러하니까 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갈등이 많습니다... 그냥 다 버리고 떠나서 말씀이 바로 선포되는 교회로 가버릴까 생각하다가도 그것이 내 편함을 찾아가는 이기적인 생각은 아닌가라는 맘도 들구요... 계속 본 교회에 있자니 복음에 대해 목사님과 일부 교인들과의 갈등이 자꾸 깊어지고 힘들거든요.. 비복음적인 일을 강요하면 자꾸 피하기도 힘들고 참가하기도 힘들고 이래 저래 맘이 힘이 듭니다. 어쩌면 나 혼자라면 더 쉬운 결정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 가족과 또 교회 모시고 간지 한 2년 밖에 안되는 어른들도 계셔서 제 처신이 참 힘듭니다. 말씀이 바르게 전해지지 않는 예배에 참석하지 말라는 말씀은 참 쉽고 명료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교회를 옮겨야 하는 것으로 연결되어 지는데요..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른 선택이겠습니까? ============================================================[re] 목사님의 답변에 대해서 이근호 2002-10-09 06:43:29, 조회 : 318, 추천 : 36
교회 다니는 것이 내 의사로 한 결정이라면, 만약 그 교회를 떠나는 것도 '이기주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 다닌 것이 복음을 사랑하기 위하여 다녔다면, 그 교회를 떠나지 않는 것은 , 복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리'나 혹은 남들의 비난을 의식한 자기 '보신'(남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쪽으로 태도를 결정하는 것)에 치중하는 모습이라고 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 교회에 대해 복음적인 사명이 남아 있다면 물론 떠나서는 안됩니다. (이 점에 제가 함부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전혀 사명감을 펼칠 마음도 없으면서 한 주 한 주 보내는 것은 "이제 교회 바꾸는 것도 귀찮아. 그냥 조용히 살래. 죽이되든 밥이되는 난 몰라. 나는 이제 복음이고 하나님이고 아무런 관심도 없어 그저 세상에서 벌리는 내 일이나 신경을 쓸거야"라는 식이 되어 자기 행동에 대한 변명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과연 하나님에 대해 어떤 사명을 가질 것이냐 라고 곰곰히 생각하는 것부터 이미 사명이 시작된 겁니다.
그리고 교회 옮김은 가족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적절하게 설명하고 나타낼 수 있는 중요한 계가가 될 수 있습니다. 구원이나 심판이란 결국 신앙 선배의 일관성 있는 태도(한 교회에 쭉 다니며 뼈를 묻는 의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삼스럽게 알게 된 진리가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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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있습니다 목사님~ 신복용 2002-10-06 17:35:59, 조회 : 468, 추천 : 85
목사님...추수감사절이 앞으로 다가오는데요.프로테스탄트 교도들에게서 유례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거든요.
그리구 또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의 크기와 박히신 못 등이 어떻게 생겼고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어요.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궁금해서요.
평안하세요 목사님 ===========================[re] 질문이 있습니다 목사님~ 이근호 2002-10-06 19:51:44, 조회 : 458, 추천 : 94
>청교도들의 무지가 만든 것이 추수감사절이라는 겁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영국에서 받은 정치치 압박에 대한 보복심으로 그들은 스스로 선민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에게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감사 행사를 벌리므로서 개척지에서 자기에게 많은 행운이 올 것이라고 기대한 한편 동시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므로서, 신천지에서 자기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라려는 정치적 속셈까지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크기가 못의 굵기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저는 잘 모르겠고 아마 , 영화 '예수의 마지막 유혹' 을 만든 감독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귀하까지 대충 짐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 질문입니다. 송재원 (Homepage) 2002-10-09 16:29:06, 조회 : 350, 추천 : 39
청교도에 관심이 많고 청교도들의 서적을 읽어보려고 생각하고 있는학생입니다.
청교도들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주의해야할 점은 무엇인지 가르쳐주시길 바랍니다.=========================================================[re] 목사님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2-10-09 22:09:08, 조회 : 337, 추천 : 39
>1. 왜 청교도라는 폐쇄 집단이 유발 할 수 밖에 없었느냐를 봐야 합니다. 과연 그들이 성경을 제대로 해석해서 나타난 자생집단인가 아니면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는 상황에서 신으로부터 보상받기 위한 현실로 전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기 정당화를 시도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를 위하여 그 당시 영국의 정치적 상황 뿐만 아니라 문학까지 살펴보는 것이 용의주의 하겠지요.
만약 그들의 성경 해석이 옳다면 그 후 그 성경 해석은 어느 시절에도 진리로 작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때 그 시절에 국한해서 청교도들의 한맺임을 푸는 하나의 방편일 뿐입니다.
2. 미국 개신교신학에서 청교도 정신이 어떻게 도용해서 써먹으면서 합리화 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성경을 표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참으로 경건스러워 보이는 인물을 표준으로 삼는 오류가 계속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손양원, 한경직 같은 인물을 사모하는 경향 같은 것) 따라서 청교도를 표준으로 삼는 자들의 의식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 청교도 신학에서, 자기 정당성과 자기 의를 구축하기 위해 그들이 성경에서 어떤 윤리적 기준들을 뽑아왔느냐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청교도'라는 주의자들에게 이런 버릇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re] 목사님 질문입니다. 송재원 2002-10-10 11:35:38, 조회 : 268, 추천 : 39
그들이 뛰어났고 탁월한것은 맞는 말같습니다.하지만 오직 성경에 집중해야함을 목사님의 가르침으로 인해서다시한번 되새겨 봅니다.
저도 모르게 과거에 탁월했던 설교자들을 동경하거나 우상시 했던 건 아닌지뒤돌아 보게됩니다.
그들을 성경으로 이어지는 다리정도로만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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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씀하는 추수감사주일 정성진 2002-10-13 16:18:50, 조회 : 279, 추천 : 53
안녕하세요... 목사님!!
저는 서울에서 유초등부 교육전도사로 있는 정성진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질문에 대한 목사님의 답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니 한 가지 고민이 생깁니다.
많은 교회에서 추수감사주일 날 여러가지 행사를 하는데... 추수 감사의 의미를
예기하지만 그것보다 "행사"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추수감사절의 유래와 그 정신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추수감사절을 우리의 모든 삶속에 적용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감사드리며...
정성진올림. ====================================================[re] 성경에서 말씀하는 추수감사주일 이근호 2002-10-13 18:30:50, 조회 : 345, 추천 : 41
성경에서 추수감사주일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행사는 행사로만 여기시고 따져들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유발합니다. "개그는 개그일 뿐 의미를 부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 성경의 절기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행하신 바를 보여주는 겁니다.유월절은, 어린 양으로 인해 새 땅에 들어왔음을 말씀하는 것이고,맥추절은, 어린 양으로 인해 새 땅에 들어와서 무사히 이삭이 피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고,수장절은, 어린 양으로 인해 새 땅에 들어와서 무사히 새 양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이 양식은 모두 예수님의 살과 피를 뜻하는 것이지 결코 일반적인 농산물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생이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에서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은, 자기네들 집단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조작해낸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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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서경석 2002-10-15 13:01:24, 조회 : 339, 추천 : 41
고전 3장을 읽다가 의문이 생겨서 이렇게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3:10~15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전 3:5~7 다음에 이 부분이 나오는 것이이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바쁘시겠지만, 답변 부탁드립니다. ===================================================[re]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이근호 2002-10-15 17:27:15, 조회 : 380, 추천 : 44
>고린도전서 3:5-7 이후의 내용이 텅텅 비어있다고 치고, 그 빈깐을 서목사님을 한 번 메워보세요. 어떤 아이디어로 채울 때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지십니까? 누구나 그 빈칸을 채우게 될 때, 그 채운 내용이 곧 고린도전서 3:5-7에 대한 이해도가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즉 강조점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고전 3:7에서 사도 바울의 입장은 이러합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라는 말씀을 꼭 붙여야 그 다음의 말씀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의 의미가 제대로 살아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다음과 같은 식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교인들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독려해서 교회 일에 충성케 할까? 옳지. 나 바울이나 아볼로를 본받게 해야겠다. 즉 아볼로나 나 바울이 교인들 구원받는데 얼마나 큰 비중있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가를 뚯렷하게 심어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나 바울과 아볼로 라는 지도자를 본받게 해야지. 그래서 나 바울이나 아볼로가 없었으면 아예 교인들에게 구원이 돌아가지 않음을 알게 해야지"라는 식은 아닙니다.오히려 바울은 그 반대로 나갑니다. 행여 교인들로 하여금 아볼로나 바울의 수고로 인해 자신이 구원받은 것인양 오해할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들이 신앙이 날로 날로 자라나는 것은 바울이나 아볼로의 덕분이다"는 식의 오해 말입니다. (이미 이런 오해로 인해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생긴 형편에 있었다)즉 "교인들이 물주는 이= 심는 이= 자라나게 된 결과성" 라는 선입감이 생길 까봐 우려해서 이 등식(=)을 깨는 방향으로 사도는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아볼로나 바울의 수고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아볼로나 바울의 수고에 의미를 제공하는 보다 근본적인 토대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즉 물주면서도 "자라게 하시는 원리는 따로입니다. 아시겠습니까?"를 증거케 하고, 심으면서도 "자라게 하시는 이는 따로 있는 것임을 진정하십니까?"라고 소개할 수 있는 예화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바울 이전에 벌써 여러 전도자들이 고린도교인들에게 등장했습니다. 교인들은 그 전도자들 끼리 공력의 차이성을 나름대로 정리해놓고 있었습니다. 즉 "우리가 아볼로에게서 획득하게 나의 공력은 나의 전 공력의 20%이고 거기에다가 나는 또 사도 바울이라는 전도자에게 획득하게 된 공력은 50% 정도이고, 등등의 나름대로 구원받을 만한 공력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가 제시한 '집구조 예화'의 의미는, 그 공력들이 토대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인가 아닌가를 점검하는 식으로 구원이 진행될 수 밖에 없음을 말해줍니다. 3:8의 말씀처럼,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상'을 받게 되지만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구원받고 따로 또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상이라는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헛된 공력 개념을 하나님께서 친히 불태워주시는 과정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겁니다. 따라서 교인들은, "왜 내 나름대로 수고와 애씀을 나만의 고유 공력으로 간주해 주지 않는가"하는 불만을 가져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주께서 교인들이 자신만의 공력을 끌어모으라고 교인에게 일 시킨 것이 아니라, 이러한 수고 조차도 토대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공력만을 드러내라는 취지에서 일시킨 겁니다. 따라서 주의 일 하지 않는 성도는 없고, 상이 없는 성도도 존재하지 아니하며, 자기만의 공력의 덕으로 구원된다고 오해하고 있다가 마치 불에 태워지듯이 태움을 당하지 않는 성도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 법입니다. 이런 각가지 요소가 사도 바울이 거론한 '집구조' 예화를 거론한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적인 공력없이 (즉 개인이 아무런 주의 일을 부여받지 않는 상태에서)구원받는다는 오해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각자 상을 받지만 그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라는 토대에서만 나온 능력임을 이 말씀을 통해서 고린도교회와 전 성도들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린도전서 5:5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얻게 하려 함이라") ######################################################################################어느 유명인의 기도 주사랑 (Homepage) 2002-10-16 01:09:58, 조회 : 382, 추천 : 31
어느 유명인의 기도
오래 참으시고 주무시지 않는 주 하나님! 오늘 밤도 이 우주를 주관하시고 저의 삶을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 제가 책임을 맡고 있는 이 사람들과 저 자신을 잘 보살필 수 있게 도와주시고 오늘 제게 맡겨주신 일들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매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옵소서 해서는 안되고 변화시킬 수 없는 일들은 하지 않게 해주시고 해야 할 일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용기와 열심을 주소서 그리고 그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주소서 모든 성공이 당신의 것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모든 영광이 당신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소서 제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마쳤을 때 나는 무익한 종이라는 것을 알게 하소서 그리고 필요한 것 이상의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당신과 당신의 피조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저의 영혼을 채워주셔서 당신의 영광으로 인해 그리고 제게 주신 모든 일로 인해 기뻐하게 하소서 당신의 얼굴을 갈망하는 마음과 당신의 음성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주시고 다른 이들에게 당신에 대해 들려주게 하시고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와 같이 맞이하게 해주시고 저를 사랑과 긍휼로 채워주소서 아픔을 주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회개하지 않는 영혼을 위하여 회개하고 다른 이들의 죄와 강퍅한 마음의 어려움을 함께 져주고 그들을 비판하는 마음으로 보지 않게 하소서 죄를 생각할 때 슬퍼하는 마음을 주시고 당신을 생각할 때는 기쁨과 평안이 가득하게 하소서 좌절하거나, 무거운 짐을 질 때 배반당할 때, 다른 사람의 반대를 받을 때 오래 참으며 견디게 하소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즐겁고 놀라워하는 마음을 주소서 오늘 저 자신에 대해 무슨 말을 들었던지 무슨 일을 당하였던지간에 기쁨과 평강이 저를 다스리게 하소서 악하고 상처입히는 자들과 자신의 문제로 제 생활을 곤란하게 하는 이들에게도 부드럽게 대할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다른 이들의 관점을 존중할 수 있게 해주소서 예수님의 자비하심이 저를 통해 나타나게 하소서 특별히 제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사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자애로움을 끼치게 하소서 아내에 대해 늘 사려깊은 마음을 갖게 하시고 혹 상처가 될 말을 하려 할 때는 저의 혀를 묶어주소서 그리스도의 선하심이 저를 통해 나타나게 해주셔서 예수님께서 향기로운 화목 제물로서 자신을 내어주신 것 같이 저도 당신의 청지기로서 저의 가진 것을 기쁨으로 나누게 하시고 제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도 그들의 좋은 것을 서로 나누게 하옵소서 모든 일에 충성되게 일하되 모든 것보다 당신께 가장 큰 충성을 드리게 하소서 모세의 온유함을 제게도 주셔서 저 자신을 방어하는데 염려하지 않게 하시고 억울한 사람과 눌려있는 사람들을 수호하는데 주저하지 않게 하소서 결코 저의 영광을 구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당신의 영광을 구하게 하소서 오, 주님! 저를 다스려 주소서! 성령님을 떠나서는 결코 제 자신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제 혀를 자랑과 불평과 과장하는 말과 남을 하찮게 보는 말과 다투는 말에서부터 보호해 주옵소서 오, 주님! 구하는 모든 이에게 지혜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어떤 가르침을 받을 때 당신의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여 당신의 뜻만을 행하려고 하는 온전한 갈망을 주옵소서 우리가 또한 당신 안에 쉬게 하시고 당신의 현존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당신과의 교제를 즐겨하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오, 주님! 제 마음속에 두어서는 안되는 것들을 가져가 주시고 마음속에 간직해야 하는 것들은 제 마음속에 넣어 주옵소서 저 자신의 지혜나 힘보다 훨씬 우월하신 당신의 지혜와 힘을 주시고 오늘도 기적을 기대하는 마음을 주소서 오, 주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감사함으로 당신께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당신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저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당신께서 몸소 우리의 짐을 져주시고 모든 빛과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제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에 훨씬 넘치도록 풍성히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과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실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아멘.
이 기도문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좋은 말로 가득 채워져 있으나 뭔가 허전하고 빠진것 같아서 질문을 합니다.
====================================================================[re] 어느 유명인의 기도 이근호 2002-10-16 07:38:23, 조회 : 479, 추천 : 60
1. 죽음의 자리가 아니라 살아보겠다는 자리에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자기를 부인하는 입장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므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을 기대하는 자리에 서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람의 기도문에는 지체로도 모순되는 발언들이 남발하고 있습니다. 진정 자기 부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성도의 기도는 늘 십자가 안에서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이 사람은 "풍성히 채워주리라"고 간구하고 있는데 그 풍성의 내용이 무엇인지 본인도 모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2. 죄와 죄 아닌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오직 약속(언약)한 것만 주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언약 이외의 것을 구하는 것은 죄악된 마음의 고백이요 폭로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나다나엘에 대한 주님이 응답이 무엇이었습니까? 오직 인자 위에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이었습니다. 이런 언약의 완성을 기원하는 자를 예수님은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이로 칭하셨습니다.
3. 빈틈없이 누가 봐도 괜찮은 내용들로 꽉찬 기도라면 아마 기도 응답받을 확률을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는듯합니다. 이는 기도가 아니라 주술입니다. 즉 인간이 감히 지상에서 하나님을 조종하고 갖고 놀려는 심보입니다. "하나님 당신도 완벽하지만, 이 땅에서 사는 저도 못지 않고 완벽하지요? 따라서 내 기도를 일단 들어보시고서는 응답 안해주시려고 해도 응답 안하고는 못배기겠지요? 나는 너무 완벽해!" 라는 자아 도취에 빠져 있습니다.
4. 기도의 내용으로서 남에게 훈계하고 교육용으로 써먹으려는 심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기도가 아니라 인간들 들으라고 한 기도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바라새인의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