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를 읽고 ] - 2003/2/27 손성식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를 읽고
저자: 게르하르트 로핑크
출판사: 분도출판사(왜관:1985) 옮긴이: 정한교
저자가 책 제목으로 제시한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는 기존의 교회 조직체에 대한 공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단히 도전적이다. 즉 교회라는 것은 예수님이 보시기에 좋아야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좋아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사실 저자가 카톨릭 신학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먼저 개인주의 신학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학자가 아돌프 폰 하르낙이다.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은 개인주의적 교회상과 속량관을 제시하는데, 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퍼져있던 자유주의 신학의 사조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결국 교회의 본 모습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사람들은 교회를 꼭 대형 할인마트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교회에 와서 자기가 필요한 것만 사가는 소비자, 이것이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개인주의 교회상이다. 교회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호에 맞는 영적상품(?)만 사가지고 떠나는 모습, 여기에 분통이 터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원했던 것은 그런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예수님이 원했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이다. 성경을 차근 차근 읽어보면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출발한다. 세례 요한의 설교를 살펴보면 그가 상대로 하는 것은 인류 일반도 아니요 개인 각자도 아니며, 이스라엘 백성의 구성원들이라는 것이다. 즉 그가 광야를 설교 장소로 삼았고 그래서 백성이 그에게로 나아가야 했다는 것부터가 이미 이스라엘의 출애굽 전통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외친다. 하나님 백성에게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고, 도끼가 이미 하나님이 친히 심으신 나무 뿌리에 닿아 있다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정화하시리라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뽑으신 것도 심상치 않는 사실임을 전제한다. 왜 하필 열두명일까? 그것은 종말론적 공동체인 새 이스라엘을 나타내는 예언적 표징이라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병자고침, 귀신을 쫓아냄, 하나님의 은혜의 시대를 선포, 이방인들이 모여듬)을 통해서 지금 새 이스라엘을 완성해 나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을 통해서 생겨난 새로운 공동체 그것이 바로 새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새 이스라엘의 성격을 일컬어서 "대조사회"라고 부른다 이들에게서는 지배관계란 존재할 수 가 없다. 오로지 섬기는 사람들이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하며, 제일 어른인 사람이 제일 어린이 처럼 되어야 한다.
그리고 폭력도 존재할 수 없다. 철저하게 비폭력적이다. 용서와 나눔만이 있어야 한다. 또한 재물을 초월한다. 돈으로 움직이고 힘을 얻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아 주심으로 사는 공동체이다. 새로운 가족이다. 하나님이 아바 아버지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만들어진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자신의 것을 주장하지 않고 철저하게 서로가 함께 행하는 공동체이다.
서로 앞장서서 남을 존경하고, 서로를 위하여 같이 걱정하고, 서로 사랑으로 남을 섬기고, 서로 대접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세상의 대조사회로서, 또는 빛과 소금으로서, 또는 산위의 도시로서 종말론적인 새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그리고 교회를 하나님의 대조사회가 되게 하는 것, 그것은 스스로 달성하는 성덕이 아니요, 투쟁적 노력과 도덕적 공적이 아니라, 무법자를 의롭게 하시고 실패자를 용납하시며 범죄자와 화해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행위이다. 즉 죄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용서받은 자리에서 한없는 희망이 자라나는 그런 교회, 갈라진 틈이라고는 다시 없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온갖 골짜기들을 뛰어 넘으며 화해에의 길을 찾는 그런 교회, 분쟁이라고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분쟁이 여느 사회에서와는 달리 해결되는 그런 교회, 십자가와 고난의 역사라고는 또다시 없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되 또한 그분과 함께 일으켜지기에 거듭 새삼 부활절을 경축할 수 있는 그런 교회를 말한다.
<평가>
본 저서는 대조사회로서 교회의 모습이 "성품"적이라는 사실과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한 목표이며 의지라는 것을 잘 나타내 주었다. 하지만 교회의 "자라남"과 "기다림"에 대한 부분이 빠져 있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