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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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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 율법 ] - 2002/9/22 엄기욱묻고답하기갈라디아서

[ 믿음과 율법 ] - 2002/9/22 엄기욱

이름 : 관리자(IP:211.224.31.46)

믿음과 율법

갈 2 : 11 - 16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게바 곧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난 것을 책망합니다.(11-13절)

이 할례자들은

유대인 중에서 기독교 신자로 개종한 자들인데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아직 유대 전통을 버리지 않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히브리식 우월감에 사로잡혀

할례를 받은 자기들과는 달리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 기독교인들을 경멸하며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게바가 이방인 기독교 신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할례를 받은 자들이 오자 그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게 된 동기이고

바울은 그런 게바를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14절)

이어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바울의 말이 나오는데

여기 율법의 행위는 바로 할례와 같은 유대의 전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바울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 할례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갈라디아서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여기서

믿음과 대조적으로 쓰인 율법의 행위는

계명을 지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행하던 의식법과 제사법,

나아가 위선과 외식에서 나온

억지 순종으로 드려지는 율법주의 등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고

믿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바울은 2장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유대 의식인 할례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는 디도에게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고

7,8절에는 할례자 이야기가 등장하니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율법의 행위

곧

할례 등 이스라엘의 전통적 제사와

의식을 지키는 것으로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지 못하고

그것들은 오직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

오실 예수를 예표하기 위해서 임시적으로 주어진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율법의 행위는

예수께서 오신 후에 폐하신 것인데-

지금의 어떤 분들은

예수께서

계명으로서의 율법을 폐하신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선언하셨듯이

주님이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려 함이 아니고 완전케 하여

일점 일획이라도 다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라고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오류로 인하여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구원을 이루기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지금의 이신득의 교리가 생겨난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의도한

믿음에 의한 구원은 상대적으로

<유대의 전통적인 율법>을 행하는 것에 의한 구원을 깎아 내리려는 것이지

<계명으로서의 율법>을 따라 사는 것을 깎아 내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이러한 의도는 2장 4절에서 명확히 알 수 있는데

거기에는

율법이 아닌 믿음에 의해서 구원을 얻게 된다는

바울의 말이 무슨 의미를 지녔는지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즉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자들을 경계하라고 가르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겉으로는 복음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은 유대 전통을 여전히 주장함으로

결국에 복음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갈라디아 교인들을 위해

그 율법 곧 그들이 주장하는 유대의 전통을 지키는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고

다만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동기이고

갈라디아서 전체에 나타나는 율법과 믿음의 관점인 것입니다.

그리고

3장 24절에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이어진 25절에는

이제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 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이 몽학 선생 아래 있다는 표현은

우리 신앙이 어렸을 때 사물의 본질보다는

외적인 것에 매이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역시 이와 같은 뜻으로

4장 3절에도

우리가 어렸을 때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으며 종노릇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쓰인

몽학 선생이나

초등 학문 등은 율법이 담당하는 위치를 의미하는데

이 말들 역시

율법을 행하는 것에 비해

믿음의 구원을 높이기 위한 상대적 비교로 쓰였던 바

과연 그것들이

계명을 뜻하는 율법인가 아니면

유대의 전통 의식을 뜻하는 율법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되겠지요.

이에 대한 해답이 4장 9-10절에 이어집니다.

곧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말하기를

그들이 이미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는데

어찌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종노릇하려느냐 라고 말하며

이어 그들이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킨다며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건대

바울이 말하는 율법이란

계명이 아니라

유대식 전통 의식을 말하는 것이지요.

결국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바울의 말이

결코 계명을 지키는 것을 부정하려는 의도는 아니기에

결코 믿음을 사랑의 삶보다 높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아래의 질문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우리의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집니까? 아니면 행위로 이루어집니까?

2. 오직 믿음으로만 입니까? 오직 사랑의 삶으로만 입니까?

3. 아니면 믿음과 사랑 둘 다 있어야 합니까?

4. 영혼을 구원하는 생명의 본질은 믿음에 있습니까?

아니면 사랑에 있습니까?

5. 믿음은 영혼에 사랑을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과

믿음의 목적은 사랑이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이런 증거는

사실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사람마다 제각각의 눈으로 성경을 보며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찾아 증거로 삼기에

제가 성경에서 뽑은 증거 역시

그러한 경향이 충분히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성경에 나타난 주님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를 헤아려 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성경에 남기신 말씀 중에

시종일관하며 흐르는 가르침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

우리의 문제

곧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가 아니면

다른 무엇을 주님이 바라시는가를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이

제일 좋은 신앙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주님은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그 전체는

목숨과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주님이 주신

새 계명 곧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을 따라가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성경의 모든 말씀들이 바로 이 말씀을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성경을 통하여 전반적으로 흐르는 사상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라는 것이지요.

구원을 얻었을까

그렇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나 염려는 둘째 문제이고

오늘을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구원이 믿음으로 얻는다 혹은 아니다 라는 것이 아니고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따라 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주님은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신 것이지요.

제가 바라보는 믿음이란 것은

사랑을 배제한 믿음은

그 존재부터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그 속에 이미 포함된 사랑에 의해서 믿음이라 말할 수 있고

사랑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은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속에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사랑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것을 믿음이라 말할 수 없고

반대로

사랑의 삶을 살아도

그것이 주님을 믿는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믿음은 시작이요

사랑은 그 믿음의 목적이며 결과인 종착역입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 된다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 표현도 그러하고요.

그러므로 믿음만 가지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계속해서 사랑으로 나타나야

돌이켜 볼 때

그것은 진정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사정이 이와 같기에

흔히들 믿음만 가지고 구원에 이르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천국이 우리 마음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상에서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형성하였는가에 따라

이곳에서의 생명의 상태가 저 세상에서도 이어진다고 봅니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자가

저곳에서도 그러한 상태를 영위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 젖은 자가

오직 주님을 믿었다는 지적 시인만으로

한 순간에 악한 생명의 상태가 바뀌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이기적 교리가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인 치고

주님을 믿지 않는 자 누가 있을까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너무나 어려운 나머지

인간은 꾀를 내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지적 시인 등으로

손쉽게 구원을 얻으려 하지만

주님을 진실로 따르기 원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대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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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믿음과 율법

이근호 2002-09-22 07:44:48, 조회 : 164, 추천 : 12

성령받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갈라디아 해석

그 이유,

1. 3:17에 보면,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율볍이란 결코 유대인의 의식적 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 율법 전체를 뜻합니다. 만약 귀하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언약을 약 1400년 후에 유대인의 의식이 없이 못하며"라고 되어야 하고

혹은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이라도 340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는 결코 완전치 못하며"라고 사도 바울의 복음을 수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복음을 수정하려면 차라리 저주를 받는 길이 가까울 것입니다.

2. 5:3에 보며 나오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해서 이런 자를 사도 바울을 오히려 반(反)-복음적 인물로 구분짓고 있습니다. 따라서 귀하께서는 사도 바울의 뜻에 의하면 반 복음적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절묘하게 반복음적인 사람을 가려내는 자체적인 능력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연구하고 들여다 봐도 말입니다.

3. 귀하께서는 마태복음 5:17를 인용하면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 왔다"고 했는데, 귀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율법을 완성시키라고 요구하려 오신 분이다(즉 예수님 본인이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고)"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하는 일은 없고 하나님 백성에게 시킬 숙제만을 가지고 온 분이 됩니다. 그 숙제 달성의 여부에 따라 구원이 (의로움이) 달성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태복음 8장-9장에 나오는 의의, 즉 예수님의 죄사함의 권세는, 결코 죄사함을 실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가능성 여부만을 그 구원의 대상의 몫으로 떠넘긴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실제적으로 죄사함은 안 이루어진 것이 되는 겁니다.

그저 "얘야, 제발 부탁이다 이제부터는 사랑으로 제대로 율법을 수행해다오. 만약 실패한다면 너의 죄사함은 영원히 있을 수 없단다. 죄사함 여부는 네가 할 나름의 결과일 뿐이야 . 정신 바짝 차려!"라는 식이 됩니다.

4. 히브리서 10:9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한 몸'으로 오신 이유를 분명히 언급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심인데,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러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둘째 것의 내용이 곧 이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의 본 글의 의의는, 첫 것을 행해야 하는 주체는 우리 인간의 몸인 반면에 둘 째 것을 행하게 되는 주체는 '하나님이 예비 하신 그 한 몸 되시는 분'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도의 복음은 귀하의 주장과는 너무 판이합니다. 왜냐하면 귀하의 주장대로라면

"율법은 어디까지는 인간이 직접 행하여할 몫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의 몸을 신뢰하면서 우리 몸으로 할 수 있는 여건 조성만 하면 그만이지 우리가 행할 것을 대신 행하실 그 어떤 제 2의 몸이 필요치 않다. 단지 예수님은 우리가 행할 모범 답안 같은 분으로 머물 뿐이지 결코 그 분의 우리가 행할 몫까지 빼앗갈 분은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와 있습니다.

5. 귀하는 '지식적인 믿음'을 공격하므로서 갈라디아서 전체를 해석하시는데 그런 해석 방식은 사도 바울의 복음 전달 방식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방식은 오히려 지식적인 믿음에 머물지 않고 행함으로 실제적인 신앙의 열매를 보이는 믿음으로 전환해서 구원얻겠다는 유대인들의 자기 중심적 구원관 자체를 저주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지금도, 귀하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자를 반-복음적 인물로 저주하면서 그 치는 방식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차원에서 '선'을 이해해야 합니다. 즉 선을 행한다는 것, '이웃 사랑'을 행한다는 것은 전부,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를 믿지 아니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죽 했으면 사도 바울은 십자가만이 자랑한다고 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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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믿음과 율법

이성희 2002-09-22 09:10:02, 조회 : 117, 추천 : 15

이근호 목사님의 "[re] 믿음과 율법"에.. 아 ~ 멘!

참으로 명쾌한 지적입니다.

똑 같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해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ᄒᄒ

앞으로도 계속 평행선을 달리겠지요^^

허락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복음을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겠지요...

옳습니다..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 같습니다.

마13:6-9 이사야의 예언이 생각납니다....

마태복음 13:9-16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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