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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 그리스도 피의 대속과 계명의 준수 ] - 2002/9/17 엄기욱묻고답하기로마서

[ 그리스도 피의 대속과 계명의 준수 ] - 2002/9/17 엄기욱

이름 : 관리자(IP:211.224.31.46)

< 그리스도 피의 대속과 계명의 준수 >

*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믿음으로 인해 이미 구원을 얻은 상태에서 계명을 지키는 일은 이제 그 후의 상급을 위한 부대적인 사안이라는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찌 되겠습니까?

즉 피의 속죄로 구원을 이미 얻었다는 사람이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아래의 성경 말씀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면 과연 그 영혼은 어찌 되겠는지요? 이 문제가 우리 논의의 제일 중요한 관건이며 동시에 현재 많은 기독인들의 의구사항일 것입니다.

1. 피의 대속과 계명의 준수는 두 가지 모두 구원에 반드시 있어야 할 사항입니까? 물론 믿음은 양쪽 모두에 공통사항이라는 전제로 드리는 질문입니다.(제 생각에는 '피' 아니면 '계명 준수'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유일한 조건에 있어서 피는 계명 준수를 그리고 계명 준수는 피를 부정하는 것이 논리에 맞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를 모두 구원의 필수 조건에 넣으신다면 그들을 논리에 맞게 조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2. 아니면 오직 피에 의해서입니까?(그렇다면 아래 계명을 지키는 것에 대한 성경 말씀은 어찌 적용해야 합니까?) 이 경우 역시 충분히 납득할만한 논리가 있어야 하겠지요.

계명 지킴을 명하는 구절들 :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마 3:10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4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 7:19-21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7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신 6:5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눅 6:46-47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눅 8:21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9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저에게 와서 거처를 함께 하리라 요 14:15-23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4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13:8-10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17-26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요일 3:24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묵 2:7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리라 묵 20:12"

* 그렇다면 구원의 조건은 믿음일까요 계명의 순종일까요?

첫째, 구원의 조건은 믿음일까?

먼저 요한 복음 중에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한 증거를 들어봅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5-16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18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3:3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6: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35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6:4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6:47,4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7:38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8: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11: 25,26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6:8,9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0:31 그리고 행 16:30,31에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위의 말씀들을 읽으면 구원이란 주님을 믿는 것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증거 됩니다. 그러나 성경 다른 부분에서는 생활에서 계명을 지키는 삶을 구원의 조건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둘째, 구원의 조건은 계명의 순종일까?

계명의 순종에 대한 성경 구절은 위에서 이미 제시하였습니다.

이렇듯 성경에 쓰인 구원의 조건은 겉으로 보기에 상반되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키게 합니다. 먼저 구원에 대한 제 견해를 뚜렷이 밝히자면 주님의 계명을 따라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구원의 참 내용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요 선이시기에 우리가 그분의 형상이라면 우리 영혼의 생명 역시 그분으로부터 온 사랑과 선을 양식으로 삼으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믿음은 다만 우리 영혼이 이러한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뿐입니다. 최종 목적은 사랑이되 그 사랑에 이르는 수단으로써 절대 없어서는 안될 것이 바로 믿음이기에 성경은 이 둘을 함께 구원의 조건인양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본질은 믿음이 아닌 사랑에 있습니다. 저는 이런 시각으로 성경을 보고 있지만 다른 많은 분들은 사랑이 아닌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이 얻어진다는 쪽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구원의 조건이 <믿음인가 사랑인가> 혹은 <믿음인가 계명(율법)을 준행함인가> 하는 문제를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 계명을 지킴이냐 그리스도의 피냐?

글을 쓰기 전에 여기 빈번히 사용되는 율법이라는 말의 의미를 먼저 밝혀두는 것이 순서에 합당하겠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율법이라는 말의 의미는 세 가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중 좁은 범위로는 십계명을 뜻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은 두 돌판에 기록되어 하나는 하나님에 대해 다른 하나는 사람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주님께서도 율법을 십계명이라는 의미로 이렇게 사용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 : 37-40, 신 6 : 5)

그 다음으로 율법은 모세에 의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어진 모든 율례와 법도(우리가 흔히 아는 바와 같이 레위기나 민수기에 이스라엘이 지키도록 명하여진 여러 규례들이 이에 속하고) 또는 모세에 의해 쓰여진 책 전부를 뜻합니다.(신명기 31:9,12,26 눅 2:22, 24:44 요 1:45, 7:23, 8:5) 마지막으로 율법은 크게는 말씀 전체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 증거로는 요 10:34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고 쓰여있는데 이 말씀 중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는 말씀은 십계명도 아니고 모세가 받은 여러 규례 등도 아닌 시편의 말씀(시 82:6)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역시 이러한 개념을 혼용하며 율법이라는 의미를 사용한 바 제사나 정결에 관한 법 등을 가리키는 의미로써의 율법은 우리가 이미 다 아는 바와 같이 오늘 날 그것을 그대로 따라 지키는 예가 없으므로 우리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이후로는 다만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한 계명만을 지칭하여 율법이라는 의미를 두겠습니다.

교파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구원에 관한 기독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대략 이렇다고 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악 가운데 출생하기 때문에 그 스스로의 힘으로는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 또 사람에 따라서 어느 정도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그 역시 계명을 완전하게는 지킬 수 없는 까닭에 여전히 죄 아래 정죄 받아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참한 처지에 놓여있는 인간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시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신 바 그의 흘리신 피로써 그들의 죄를 대속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십자가의 지극한 사랑을 깨달음으로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 성령께서는 그가 다시 타락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

우리 대화의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이 내용의 주요 핵심부만을 정리해보자면 한 마디로 그것은 '인간의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오직 믿음, 오직 주님의 피 공로로만 그것이 가능하다' 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혈의 피'를 높이 외쳐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사실 구원에 있어서 '율법(의행위)이냐 믿음이냐?' 혹은 '계명을 지킴이냐 믿음이냐?' 라는 주제는 각 교인들간에 흔하게 논의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각자의 견해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서로 비슷한 생각을 지닌 분들조차도 그 주제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면 나중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것을 봅니다. 그만큼 이 주제 속에는 많은 분량의 진리들이 그물 식으로 연결되어 있어 때로는 이 생각과 저 생각의 상이점에 대한 분명한 구별을 어렵도록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또 비록 두 사람이 겉으로는 동일한 의미, 같은 표현을 쓴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속마음과 이해는 각기 다르거나 심지어는 대립적일 수도 충분히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며 위에 있는 기독인의 보편적 구원관에서 의문점들을 간추려 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성 그 본질에 있어서 악하다는 것과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저에게 와서 거처를 함께 하리라 요 14:15-23)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요일 3:24) 지킬 수 없는 처지인데 지키라고 하심은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 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제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우리가 자신의 현재 마음 상태를 가만히 살펴볼 때 분명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음에도 때로는 주님보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곧 따를 수 없어서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고 계명을 지킴에 발생하는 희생과 고통이 싫거나 또 주님의 뜻보다는 내 뜻에 대한 기쁨을 잃고 싶지 않는 등 따르고 싶지 않아 순종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선을 택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악을 택하고 있는 우리이지요. 이로 보건대 우리에게는 분명히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주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부정되면 어찌 행한 대로 보응하시겠다는 주님의 말씀 등이 합당할 수 있겠습니까?(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7)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의 근원은, 우리가 그것을 지각할 수는 없지만, 우리를 끊임없이 악에서 선으로 인도해내시는 주님 자비의 보이지 않는 역사에 기인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힘을 인간으로 하여금 마치 인간 자신의 것인 양 자유로 쓸 수 있도록 섭리하십니다. 이런 까닭에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생각으로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상태에 있게 되고 또 비록 인간이 스스로 선을 행했어도 자기의 공로를 내세울 수 없으며 모든 선과 진리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고백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스스로의 힘으로는 주님의 계명을 순종할 수 없지만 이와 같은 주님의 섭리 때문에 계명을 따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형편에 있기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스스로 거룩할지니라' 라는 등의 모든 주님의 명하심이 가능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와 다른 견해를 가지신 분들은 바울 서신 등을 통하여 이러한 논리를 펼칩니다. 곧 '죄악 중에 출생한 자가 어찌 주님의 계명을 진실하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만일 지금도 계명을 지킴으로 의에 이르려는 생각을 한다면 이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이해하던 시각과 같은 이치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지 우리보고 지키라고 의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율법을 지키려고 나아가는 자는 오히려 그 법으로부터 정죄만 받아 사망에 이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주님의 피 흘리심에 의해서만 죄를 사함 받아 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그 내용은 주님과 그의 흘리신 피를 믿는 믿음입니다. 값없이 거저 얻어지는 이 하나님의 의를 인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바야흐로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그것이지요.'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성경 구절들이 많으나 그 중 롬 3 : 10절 이하를 대표적인 것으로 뽑고 있습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이렇게 '율법에서 믿음'으로의 선회를 외치는 바울의 글은 오늘 날 우리의 이해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주님의 계명을 준행하는 것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죄사함을 고백하고 시인하며 찬송하는 것으로' 그 구원의 조건을 확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복음서에서 주님 친히 말씀하신 내용의 대부분을 보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에 구원의 강조점이 두어져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과연 여러분은 어느 편을 올바른 구원관으로 삼고 있는지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를 흘려 돌아가신 주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제 이를 믿고 시인하는 자는 죄가 사함 받아 의인이 된다는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입니까?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그런 의미로 이해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바울의 생각들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도 주님의 피 흘리심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신다면 주님 친히 하신 말씀들 곧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주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자에게 주님은 이미 그들의 진정한 주가 될 수 없는데 피 공로는 어떻게 전가시키겠습니까?) 눅 6:46-47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눅 8:21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9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저에게 와서 거처를 함께 하리라. 요 14:15-23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4' 이 말씀들을 어찌 합당하게 설명할 수 있겠는지요? 왜냐하면 이 말씀들에서 주님은 구원을 분명 주님의 속죄 피가 아닌 각 개인의 삶의 흔적들(행함)과 관련짓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울의 구원관 역시 주님의 가르침과 동일한 계명의 순종, 곧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십계명,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등 이 말씀을 준행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영혼이 하나님 나라로 인도되는 오직 유일한 길이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다만 바울은 계명을 지키는 방법상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의 눈을 유대의 율법에서 복음 시대의 믿음으로 이끌어주고 있는 것뿐이지요. 다시 말해 유대인의 겉치레 식 율법 지키기에서 돌이켜 이제 속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려는 것이 바로 '율법의 행위에서 믿음으로' 라는 그의 외침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가능케 하는 힘의 근원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화목 제물이 되신 주님의 지극하신 인류 사랑에 있다는 것과 그리하여 이 십자가 사랑에 자신을 같이 죽이는 자는 이제 주님의 생명을 받아 참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또한 깨우쳐주기 위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된다' 라는 내용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을 말하면서도 역으로 행위를 자꾸 강조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롬 2:6-29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3: 31 이상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영혼의 구원과 관련하여 바울이 멀리하려던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그 율법을 바라보는 인간의 불순한 마음 자세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율법에서 믿음으로' 라는 외침이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피까지 이야기하게 되는 동기이지요.

그것은 또한 산상 수훈에서의 주님의 가르침과도 일치합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1-28 즉 주님과 바울 모두 율법에 대한 인간의 보다 본질적, 순수한 순종을 깨우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체면, 이득, 명예에서 나온 위선이나 외식 등 속과 겉이 달라 진실이 그 속에 없는 형식적 율법주의를 깨뜨리고 또 모든 신앙적 요소를 지키면 살고 지키지 못하면 저주라는 식의 오직 자기 구원과 관련지어 바라보고 이 때문에 자기 힘을 의지하여 그것을 지켜보려던 자기 의 등 거룩한 율법을 자기 사랑으로 변질시켜 행하려는 인간의 불순한 마음 자세를 이제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 그 순수한 사랑으로 수정시켜 주려는 의도입니다.

순수한 사랑만이 영혼을 구원하는 참 생명입니다. 그 사랑은 이타적입니다. 인류에 대한 이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사랑만을 생각할 때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온 사랑이 아닙니다. 남의 기쁨을 위해 나를 죽이는 주님의 이 참되고 순수한 사랑을 우리는 나를 살리기 위해 주님을 죽이는 자기 사랑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 십자가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이해입니다. 신앙의 모든 것을 오직 내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성경 또한 그런 시각으로 읽는 있는 것이 이를 증거합니다. 나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을 감사와 찬송으로 높이고 있지만 정작 주님이 말씀하신 바 지켜야 할 계명인 이웃 사랑은 죄악 가운데 있는 인간이 어찌 지킬 수 있으리요 우리의 행위로 그 말씀을 따를 수 없기에 대신 죽어 우리 죄를 속량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들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구원이란 이웃 사랑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웃을 사랑하는 그것이 바로 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뜻이지요.> 주님께서 먼저 인류를 사랑하는 십자가를 지셨으니 이제 우리도 그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사랑하는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전 율법(계명)은 자기 구원을 위해 이것저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지만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율법)을 주십니다. 이웃 사랑이 구원의 본질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13:8-10 또 이것은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겠다는 의미와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마 5 : 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를 외친다고 하여 그가 깨우침을 주려는 구원의 방식이 '말씀을 준행하는 것에서 오늘 날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 공로를 의지하여 단번에 죄 사함을 받는 것으로' 확 바뀌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바울이 주장하는 구원에 대한 조건은 계명을 지키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증거하듯 위에 롬 3장 10절 이하에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라고 하던 바울이 이어지는 끝 구절에서는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3 : 31 라고 마무리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계명은 결코 지킬 수 없는 것이 아니기에 지켜야 합니다. 다만 옛 율법의 관념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고 이제 사랑 안에 있는 자유와 기쁨으로 그것을 지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순간 순간마다 주님의 계명을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기지 않고 완전히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의 계명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폐단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격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는 지켜야 산다는 쪽에서 사랑함으로 주님의 뜻을 행한다는 쪽으로 그 개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아니 개념만 바꾸는 것으로는 안 되고 주님을 향한 우리 마음 속 애정의 본질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정의 색채가 먼저 바뀐 후 거기서 나온 이해성은 진정한 그 생명의 소유물이지만 애정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이해성의 빛은 그것이 아무리 밝을지라도 아직은 그 영혼의 생명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계명을 바라볼 때 우리의 생각이 그것을 지키면 복이고 지키지 못하였으면 저주라는 개념 속에 있을 경우 그 계명은 옛 율법이 되어 우리를 더욱 정죄하여 사망으로 인도하고 비록 옛 율법이라도 그것을 사랑함으로 기쁨 속에서 행하려들 때 그 율법은 오늘 날 사람을 살리는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지키기 식은 자기 영혼의 구원 곧 자기 사랑의 다른 모습이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의 사랑은 나 자신을 버려 인류를 위하는 그런 순수한 참 사랑이기에 그러한 사랑을 알고 깨우쳐 이제 주님의 계명을 참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바울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랑의 자유함에서 지켜지는 계명은 그 순도에 있어서 다른 어느 것보다도 인간 자신을 사랑하는 불순한 것이 제거된 참된 본질적 사랑이기에 주님은 그 사랑으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이고 우리 또한 주님의 형상이라면 그러한 사랑을 나누어 가지고 있어야 생명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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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리스도 피의 대속과 계명의 준수

이근호 2002-09-18 07:35:33, 조회 : 116, 추천 : 11

대꾸를 해도 엄기욱 씨는 가만있고 다른 사람들이 편을 드는 식이군요.

다시금 말합니다만, 엄기욱씨의 신학의 문제점은,

1. 죄와 의에 대한 개념이 비성경적입니다.

죄와 의에 대한 규정을 인간의 행함 여하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에서 출발하는 죄와 의의 개념과는 거리가 멉니다.

요한복음 15:24에서, "내가 너희 중에 아무도 못할 일을 저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으니라"

즉, 예수님의 모든 일은, (예를 들면, 오병이어 기적, 물 위를 걷는 기적,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 등 등) 이미 인간들 속에 '예수님이 미움'이 선행되어 있고 그 세력에 장악되어 있음을 밝히는 언약적 차원에서의 일인데, 인간들은 자기 자신 속에 무슨 세력이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는채 그저 윤리적, 도덕적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의로운 것인줄로 알고 있습니다. 사랑이니, 행함이니 하는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는 '의'란 인간이 흉내나 모방할 수 있는 인간의 행함의 차원이 아니라 언약 준수적 차원에서 "다 이루었다"는 유일하게 말씀하실 수 있는 예수님의 고유 작업인 것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의 이름'만이 가지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5:39의 말씀처럼, 모든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겁니다. (인간의 실천 가능성을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실천으로 추가적으로 보탤 필요없이 말씀은 예수님의 행함으로 완성했다는 말입니다. )

성도를 통해서는 예수님의 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의 의도적인 조정에 의해서 나타나고 아니나타나고가 성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늘 회개할 대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엄기욱 씨의 행함에 대한 설명은 모두 거짓이 되는 겁니다.

2. 엄기욱씨는 인간의 구원을 과정이나 시간 진행에 따라 다른 구원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일과 그 다음 일단 믿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다른 원리를 적용하고서는 거기에 따른 인간에게 책임을 묻는 다는 것입니다. (처음 믿을 때는 책임을 안 묻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성경이 주의 나라와 그 의를 증거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고 그저 인간들이 구원받기 위한 책이라는 인식 때문에 비롯된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되 성경을 통해서 자신이 구원받고자 하고 동시에 그 구원받게 됨을 가지고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걸로 여기고 있습니다.(왜냐하면 엄기욱 씨는 인간이 바르게 살 경우에만 하나님께 비로소 영광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

그러나 로마서 3:24-27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을 믿음으로 영광도 되고 의인도 되는 겁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함이 곧 하나님께 유일하게!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지닌 주의 이름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11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4:11에는 성도가 각양 일을 해도 결국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기에 그 모든 것이 인간이 직접 영광돌리는 것으로 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됨을 엄기욱씨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기욱씨는 이런 말씀까지도 일단 인간의 구원되는 조건으로 간주해놓고 그다음 그 인간의 행

함 여하에 하나님께 영광되는 상태를 결정지우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끝까지 파악하겠다는 자아실현의 욕구의 발로에 불과합니다. 즉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나'라는 존재를 무시하고 일할 수는 없다는 발상이 밑에 깔려 있기에 이런 신학적 열매가 튀어나오게 됩니다.

3. 엄기욱씨는 사도 바울 자체의 글에 모순되고 대립되는 두 가지 글이 있다고 따로 존재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학자적인 냉정함으로 둘 다를 인정하되 그 둘 사이를 조화(참으로 무책임하고 애매모호한 표현임)하는 것으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두 가지 다른 내용으로 갈라놓겠다는 심사 자체가 성경에 뭐가 뭔지 혼란스럽지만 차츰 알아가겠다는 비확신의 발로입니다.

성경을 이런 식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은 구약에서의 '언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언약과 '주의

이름'의 고유 능력 간의 관계를 모르고 그저 언약(혹은 말씀)을 인간의 선행과 연결시키는 바리새인적인 해석방법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4. 잘못의 원인은?

(1)아직 믿음이 없음

믿음이 없으면 내세울 것은 신의 존재성과 거기를 행한 이방인적 양심성 밖에 없을 것입니다. 즉 믿음, 믿음, 은혜, 은혜만로서는 도저히 영 믿음이 안다가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평소에 자신의 양심이 지향하는 바를 만족시키는 윤리적 기대감을 바라보면서 거기 수준에 맞추어 측정해보는 인간의 행함 여부를 가지고 믿음 없음과 있음을 파악해서 자신이 현재 구원되었음, (혹은 은혜 받았음, 혹은 성령 받았음, 혹은 이미 성도로서 안정권에 들어셨음)을 구원욕을 확정지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2)성령을 받지 못했음

성령이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인간의 행동 체제로 전환시켜 이해하고 있음

(3)강한 구원욕구와 더불어 여전히 자아를 절대신의 위치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으로 가득차 있음

예수님을 라이벌처럼 간주하고 그 예수의 수준까지 따라 붙이므로 자기 속에 들끓는 절대적 자아로 변신되려는 강력의 탐욕이 작동하고 있음

비유로 말하지만 "가롯 유다의 재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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