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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 율법(Law)과 말씀(Word) 에 대한 기본이해 ] - 2001/9/18 전도자묻고답하기로마서

[ 율법(Law)과 말씀(Word) 에 대한 기본이해 ] - 2001/9/18 전도자

이름 : 관리자(IP:211.224.31.46)

제가 공부한 것 한번 올려보았으니 잘못된 점 비판해주시기 바랍니다.

율법(Law)이라고 하는 것은 말은 3가지 뜻이 있습니다.

1) Natural Law(만유인력) 2) Moral Law(사람의 양심) 3) Written Law(모세오경)

말씀이라는 것은 또 다른 차원입니다. 보통 Logos라고 하는 차원입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라고 하는 말" 은 Logos적인 의미이고

영어표현으로는 Word of God 이라고도 합니다. 영어성경에서 보시면

Law라고는 안하고 Scripture라고 합니다.

유대교에 말하는 Torah라고 하는 것은 Word of God에 가까운 개념이고

바울이 주장한 신약의 신학은 검증되지 않은 영지주의적인 신학이고

Word of God(Torah)중에서 모세의 Law는 확실한 검증된 말씀이니 이것만이

참되다 라고 인식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때에 아마 이들의 눈도

열어주실 것 입니다.)

로마서에서 율법이라고 한 것은 처음에 언급한대로 3가지가 다 포함되는

개념이며, 이것은 Logos 가 아니고 , 피조된 원리나 어떤 의도가 있는 말씀이라는

차원에서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없다는 뜻이고, 특히 모세의 율법은 인간의 Sin을

드러내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차원이 있고, 즉 죄를 드러내는 것이

우리에게 결국 유익이고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권능(Power) 이라는 개념이

바울의 생각이며, 절대로 이것의 용도가 부정되거나 없어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시기에 그렇습니다.

(물론 그리스도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님)

바울이 율법의 권능은 사망이다라는 한 것은 이렇게 긍정, 부정의 뜻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용도는 믿는 신자에게는 당연히 폐기되었지만, 불신자에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아직도 절대로 필요한 구실을 한다는 뜻에서 Law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Logos) 그보다 하위개념인 Law 때문에

계속 어려움을 당하고 실족하면 그는 Logos가 없다는 뜻이며 이것 때문에

바울은 몸부림을 쳤고, 결국 참 Logos가 그리스도며 그의 영이 우리를

Law에서 해방시키고 또, Law에 대한 참 인식과 깨달음으로

즉 Law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고 모든 것이 다 은혜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를 죽이는 줄 알았는데 그 길이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에게 인도한다라는 말과

같으므로 그리스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한 신학의 파라독스인데요,

또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종이면서, 자유자라는 바울의 표현도 아마 율법에

대한 그의 정의와 일맥상통하고,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말하면(about God) 이것은

항상 모순에 빠지게 되며(인간의 지혜) 하나님을 말할 때만(of God)이

진짜 신앙(Faith)라는 것입니다.

즉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기에(about God) 항상 모순에 빠지고 하나님의 말씀

(of God)만 진리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신학을 포기할 수도 없고, 설명을 안할 수

없는 실정에서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위안이 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세상학문을 빨리 초월하는 것이(모르고 초월했다고 하면 안됨) 또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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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9월 19일 오전 06시 48분에 남기신 글

ⓝ ☞ 율법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지킨다는 말입니까? 어느 정도 지키는 것이 "사랑"을 지켰다고 할 만한 수준에 도달될까요?

예를 들면," 이웃을 사랑하라" 할 때 어떤 자까지를 '이웃'이라는 범주 안에 넣어 줄 수 있습니까?" 목회자 시니까 교인들에게 설교할 때 설마 이 범주를 말씀 안하고 지나치는 않은 줄로 아는데.......

만약에 바리새인들처럼 세세한 세부 사항까지를 목회자(설교자)가 언급해 주지 않는 목회자라면 그 사람은 참으로 자기 말에 무책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는 할 때에 과연 쉬는 시간 간격을 전혀 두지 않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까? 만약 이 말이 어폐가 있다면 그렇다면 어떤 기도 기준을 목회자(설교자)가 교인들에게 지시합니까? 그 제시하는 기준이 보편적으로 합당하고 타당한 근거가 무얼까요?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지켜내기 위해서 목회자(설교자)는 교인들에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제 2의 법과 규칙으로 규제를 추가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처럼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고 할 때에 어느 목사의 어떤 보조적 규칙이 가장과 보편성이고 타당성 있는 것라고 확답할 수 있겠습니까?

목회자께서 아직도 '율법 지키기'에 매여있고 그것으로 목회를 시도한다고 한다면 목회자 본인은 교회 안에서 목회자만이 갖는 입지와 거기에 부가되는 권위성은 인정받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혀 교회가 아닌 사이비 단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될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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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목회자 ] - 2001년 09월 20일 오전 01시 28분에 남기신 글

ⓝ [롬 13:8]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조회수 [ 31 ]

목사님,

하나님의 계명인 사랑을 지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 사이비단체로 전략할 만큼 위험한 짓인가요.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이라 증거하여합니까.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인 사랑을 지켜 행하여야 한다 말하고있는데 믿지 아니하시네요. 율법은 선하며 자유케하는 온전한 것이며 이외 아래 말씀처럼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데 목사님은 성경을 부정하시거나 부분적으로 인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잘 읽어보시지요 저에 말이 아닙니다.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시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시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 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시 19: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11]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 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 나게 하소서

사랑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성경은 증거하고있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으며 예수님 또한 우리에게 사랑하라 말씀하셨는데 이내용이 추상적으로 보이십니까. 온 성경은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요.

목사님께서 질문한 내용입니다. ---- 그러면 '사랑'을 지킨다는 말입니까? 어느 정도 지키는 것이 "사랑"을 지켰다고 할 만한 수준에 도달될까요? 예를 들면," 이웃을 사랑하라" 할 때 어떤 자까지를 '이웃'이라는 범주 안에 넣어 줄 수 있습니까?" 목회자 시니까 교인들에게 설교할 때 설마 이 범주를 말씀 안하고 지나치는 않은 줄로 아는데....... ---- 라고 질문하셨는데 그렇다면 목사님 예수님의 대속 죽음이 어떠한 죄인된 자들까지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셨나요 또한 이방인들 중에서 타인이나 외모나 뇌물을 받고 구원에 구별을 두고 차등을 두셨습니까.

목사님 사랑은 먼저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네 자신같이 말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룬 것이다 성경을 말하고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말씀하신 사랑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들을 깨닫고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이라는 것이 어디 한정되어있는 것입니까. 내 곁에 내 주위에 곧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원수된 자 까지도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은 자들을 까지도 매달리신 십자가 위에서 이들을 위해 끝까지 사랑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이며 죄악으로 더럽고 냄새나고 추한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이처럼 먼저 사랑의 본을 보이셨는데 " 어떤 자까지를 '이웃'이라는 범주 안에 넣어 줄 수 있습니까? , 사랑을 지킨다는 말입니까? 어느 정도 지키는 것이 "사랑"을 지켰다고 할 만한 수준에 도달될까요? 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답을 하여야하나요.

목사님 저도 질문합니다. 성경적으로 답하여주시지요

1. 하나님은 사람사랑하기를 얼마 많큼 하셨을까요 .

2.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를 얼마만큼 하셨을까요.

3. 그렇다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여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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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9월 20일 오전 09시 30분에 남기신 글

진작 마지막 세 가지 질문을 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사랑'을 말씀하기 전에 인간이 해 낼 수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님을 율법을 통해서 언급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한 일서 4:10)

즉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화목제물이 아니면 하나님은 그 외의 것을 사랑으로 간주하시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차원에서부터 출발해 볼 때 사랑은 완전한 의로운 자의 몫이지 의롭지 않는 자가 행하는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약 요한 일서 3:16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즉 온전한 사랑을 알지 못하면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야만 사랑"이라고 가르쳐 버리면 이것은 '주님의 사랑이 뭔지도 놓친 것이 되고 또한 고린도전서 13:3 의 말씀과도 충돌됩니다. 즉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런 유익이 없느니라"라는 말씀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의 사랑은 어디까지나 은사이지 우리가 실천해야지만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늘에서 오게 되어 있지 우리가 실시함에서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미 있고 주어진 사랑을 증거하기 위하여 성도들은 성령에 의해서 형제를 목숨을 버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형제를 목숨 바친 분들에게 물으보세요. "당신이 사랑을 행했습니까?" 그러면 그들이 무어라고 답변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순전히 주님의 사랑입니다"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베드로전서 4:10-11 말씀에도 부합되는 겁니다. "각각 은사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거샅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이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으니라" 이 말씀의 끝에 보면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대목이 분명히 나오지요?

일은 분명히 인간이 했는데 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습니까? 이는 성도가 아는 모든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준 능력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성도는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새로 지음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엡 2:8-10)

이처럼 성경은 일관되어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사랑은 계명이니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자"고 나옵니다. 그렇게 되니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행한다는 인간의 행함을 증거하는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율법을 인간이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시고 그 인간이 해 낼 수 있는 최종점에 사랑이 있기에 그 사랑마저 인간이 해 낼 수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이 '사랑'이라는 계명을 우리보고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기신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의가 스스로의 능력과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 왔을 때 우리에게는 회개밖에 없다는 사실을 목사님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왜 회개할 생각보다 그것을 실천할 의지가 앞서 작동할까요? .

왜 이런 왜곡된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목회자 자신이 믿음이 없기에 '믿음만으로'를 믿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행함으로 밀어붙이는 겁니다. 주님께서 성도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목회자가 자가 목회 영역에서 성도들의 활동을 자기 눈으로 확인해서 비로소 우리 교회가 참 교회이며 내가 참 주의 종인가 점검하고 싶어하는 겁니다.

제가 과도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이비는, 회개대신 실천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회개하면 성령께서 우리들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실시해서 그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주시는 능력으로 일하게 하여 그 영광은 오직 에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데, 믿음이 없는 인간은 회개대신 자신이 나서서 자기 실천력을 하나님의 일을 모방해서 자기로 인해 하나님 영광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증거해야 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자신의 목회 은사를 증거하는 셈이 됩니다.

정말 믿는 목회자라면 "우리는 죄인입니다. 오직 죄인 같으면 이런 엄중한 말씀을 주었겠습니까. 순교를 해도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화목제물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임을 믿읍시다"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자 이제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차례이군요

1.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사랑했습니다. 이 사랑을 인간이 감히 참여 할 수 없습니다.

2. 예수님의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으시고 오로지 택한 자 (이 점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신약 신약까지 일관되게 하나님은 언약된 것만을 위해 일하십니다)을 위하여 내어 주었습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 앞에서 날마다 회개할 따름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그 인간을 가지고 진정 주님의 사랑을 펼칩니다.

그 예로서 누가복음 7:36-50에 나옵니다. 죄인인 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옥합을 깨트려 그 향수로 예수님을 발을 씻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다시 말씀드릴까요? 사랑이 어디서 나온다고요? 회개 없는 사랑이 있을까요? 이 여인이 자신의 사랑의 실천력을 발휘하고 있는 겁니까? 회개하는 자만이 참된 사랑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놀라운 사랑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순전히 주님의 능력으로 만으로 말입니다. 진정 귀하께서 이런 믿음이 있다면 왜 우리는 죄인인가 만을 설교하고 나머지 교인들의 회개는 성령님에게 맡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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