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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답변 지키기 위한 수단의 은혜와 사랑? ]묻고답하기-

[re] 안녕하세요, 엄기욱 본인입니다.. 이근호 2002-09-25 07:51:28, 조회 : 344, 추천 : 41
귀하께서는 군데군데 다음과 같은 주장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신앙의 제일 우선하는 것이라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은혜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적인 것들이다."
>죽은 신랑의 장례절차에 대한 신부의 지극한 정성으로 신랑이 다시 살아났으나 어리석은 신부가 살려낸 신랑은 참 신랑이 아니다. 참 신랑은 신부가 악을 버리기 전에는 절대로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랑 되시는 주님을 죽인 악을 버릴 때 주님은 우리 마음에 부활하시고 그 부활하신 주님을 잘 모시기 위해 계명을 따라 선한 삶을 살 때 주님과 우리는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참 신랑이 살아나지도 않았는데 혼인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믿음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의 피 공로를 믿는 것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 어찌 올바른 믿음일 수 있으랴. 죄는 인간이 저지르고 그 뒤치닥거리는 주님께 맡겨 인간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손쉽게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 어찌 음탕한 생각이 아니며 허구의 교리가 아니겠는가. 성경을 그렇게 해석한 자들이나 그 교리를 좋아서 받아들인 자들이나 모두 음탕한 눈으로 주님을 바라본 것은 마찬가지이다. "
">우리의 눈이 얼마나 이기적이면 자신의 죄를 주님으로 감당케 하여 주님은 고난을 받는데 우리는 그 일로 인해 내 죄에서 벗어났다는 터무니없는 교리를 아무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주님이 흘리신 피 공로를 의지하여 영혼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신학자들의 머리 속에서 쓰여진 저주받은 각본이다. 주님을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에 어이 탐욕이 가득하다고 비난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잘 생각해 보라. 나를 사망에 빠뜨린 것이 죄라면 내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것은 그 죄를 버리면 된다. 너무나 간단한 이 회개의 원리를 성경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라는 말씀으로 구약에서부터 줄곧 가르치고 있는데 탐욕에 젖은 우리들은 성경을 각색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은 힘들고 어렵기에 그저 손쉬운 방법으로 구원을 얻으려 한다. 그런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니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셨다는 구절이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구절들은 자꾸 눈에 들어오지만 계명을 지키고 사랑하는 삶을 사는 자만이 주님 안에 거할 수 있다는 말씀들은 애써 자꾸 외면하게 된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 속에 있는 악이 주님을 배척한 사건일 뿐이어서 그 사실을 믿거나 인정하는 자에게 무슨 특효한 약의 효능처럼 죄를 사하여주는 그런 능력이 있는 신비한 십자가가 아니다. "
>"우리가 주님의 피 공로를 믿게 된 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그 피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케 하며 그분을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 모든 증언들이 성경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말씀들의 참의미가 주님의 피 공로에 의한 인간 구원을 뜻하지 않는다. 피는 생명 그 자체로서 주님의 피는 우리 영혼의 생명이 되는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님이 피를 흘리는 것은 진리의 빛으로 세상에 생명을 주려던 주님이 사람들의 악과 거짓에 의해 거부되고 모독되는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생각해 보라. 주님이 인성을 입으셨기에 주님의 피도 인간의 피와 같은데 무슨 특출난 효험이 있어서 그 피가 인간의 죄를 씻어줄 수 있겠는가. 또 그 피의 의미가 넓은 의미로 주님의 죽으심을 상징한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를 씻어 도말한다는 것을 문자적 의미 그대로 믿는 것은 공상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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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왜 귀하께서 이런 악마가 좋아하고 주장하는 바를 결국 주장할 수 밖에 없는 걸까요?
1.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삶이 아니라 죄를 안짓게 된 절대적 자아상을 즐기고 기뻐하는 삶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즉 죄를 절대로 안짓는다는 점에서 '절대성'이 아니라 어떻게든 죄 안짓게 노력하는 자아의 품성 그 자체가 절대적인 의로움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는 겁니다. 이 절대적인 선에 대해 하나님께서 분명 인정해주고 칭찬해 주리라 기대하고 그 기대를 성경을 통해 확인하는 재미로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본인 사정이 이러다보니, 오직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자들을 가만두고 볼 수 없어 공격하기로 나선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가 걸림돌로 작용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차에 십자가 피의 공로나 능력마저 작살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주님의 피도 인간의 피와 같은데 무슨 특별난 효험이 있어서 그 피가 인간의 죄를 씻을 수 있겠는가"하고 주장하는데 이릅니다. 그러니까 귀하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로부터 타인에 머무는 한 개인적인 죽음에 지나지 않는 하나의 해프닝이요 에피소드이다. 그 사람의 죽음에 의지해서 죄씻음 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말라 하나님은 그런 수법으로 인간의 죄를 씻어줄 리가 없다. 인간에게 있어 죄를 씻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죄를 안짓는 것이 곧 구원 되고 아니되고의 관권이다. 즉 하나님은 죄를 안지을 때만 구원해주신다 "는 것입니다.
2. 귀하는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만 구원받는다는 이 기쁨을 한 번도 있어본 적도 없기에, 예수님의 공로만 의지하는 사람을 가지고 오해하기를 '죄를 마음놓고 짓는 사는 그 기쁨으로 사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즉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을 귀하는 곡해하기를, 왜 선행해야 하는 의무를 소홀히 하느냐고 시비걸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사랑을 귀하를 모르니까 귀하께서는 '신을 향한 선행 행함'으로 구원받았음을 확인해야 할 정도로 신앙이 전혀 없는 겁니다. 신앙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해도 신앙인의 자유함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신앙없음을 탓해야 되는 것이 양심상 옳은 거지만 놀랍게도 귀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탓으로 그 원인을 돌려서 그 십자가의 공로로 침을 뱉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망발입니까?그래서 제가 '가롯 유다의 재림'이라고 한 것입니다.가롯 유다는 양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자신의 죄를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자살까지 할 정도로 자기에게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선이 뭔지를 알고 그 선을 향하려고 애쓰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하늘을 보기를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바래서 마지막으로 자기의 귀한 피(예수님 피나 이 가롯 유다의 피나 동일하다고 귀하가 주장했기에) 를 자신의 선한 의지의 제단에 제물로 바쳤습니다. 참으로 귀하고 장렬한 감격스러운 최후의 장면입니다. 남자답습니다. 그러나 지옥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는 마귀니라"
이제 귀하가 얼마나 예수님과 무관한 사람인 줄 아시겠습니까?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이사야 63:5)
참고적으로 말씀드려서, 예수 이름 들먹이면서 죄를 함부로 짓는 그 재미로 인생을 사는 자는 저도 신자라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 그런 자인지는 주님만 아십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 증거하면 될 것입니다. #########################엄기욱님께 물어보고 싶습니다-믿음이란것이 쉬운것입니까? 은혜와 믿음 2002-09-26 02:52:28, 조회 : 261, 추천 : 37
엄기욱님...
주님의 공로를 믿는 다는것이 굉장히 쉬워보이시는지요?단지 주님을 믿는다는것이 엄기욱님께는 너무나 쉬워보이시기에...무시하고 계시는겁니다.
믿는다는것 온전히 주님의 십자가공로와 그분의 사역, 그분의 죄사함을 믿는다는것은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허락한 성도들만 그것이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죽었다 깨나도 그 사실이 안믿어진다는 것입니다.그러니까 믿음이란 것은 굉장히 어려운것입니다.
마태복음16:15~~"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우리가 그를 믿는 다는 것은 혈육도 아니고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것도 아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통해 알게되는 사실입니다.....
어찌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가 어찌 주님이 그리스도란 사실을 알수 있겠습니까?그 허물과 죄에서 죽었던 우리를 건지시고 알게하신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허물과 죄로 죽어버린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여호와로 알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아는 지식과 믿음을 받을수 없다는 것입니다.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하신것도 그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는것도 당연히 우리 힘이 아니라전적인 주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라는것으로 우리를 부르셨으니...그걸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쉽다고 생각할수도 있으나..절대 쉬운게 아닙니다.
은혜로 택정받지 못한다면 절대 깨달을수 없는 게 십자가의 도라는 것입니다.그저 믿기만 하면 그저 믿기만 하면은 표면적으로는 쉬울수 밖에 없으나그 깊은것을 들여다보면 은혜를 주셔야 믿을수 있는것입니다.
다만 엄기욱님의 상황을 보니 아직 성경말씀을 겉으로만 보고 계시는것 같습니다저도 그랬습니다거룩한 율법으로 사람의 죄성을 들추어 내며, 죽을수 밖에 없는 죄인, 불신자와 다를바 없는 상태이지만 그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저 십자가의 공로,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주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할수 밖에 없습니다.나의 행위는 아무것도 없으며, 다만 주님의 백성 삼으신 그 은혜만 찬양할뿐입니다.우리가 뭐 잘나서 하나님이 구원시키셨을까요? 아닙니다,
어머니의 모태로 부터 무슨 선악의 일을 하기도 전에 주님은 그러십니다...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한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은 사울을 벌써 모태로부터 택정하신 주님은그를 사용하시기 위해 주님의 때가 차기까지 죄인가운데 두셨다가그 은혜로 사울을 바울되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가 없었다면 저 믿지 못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이 멸망가운데 같이 멸망당했을것이나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는 주님께서 은혜를 안주셨기에깨닫지 못한것이며, 사울은 은혜를 주셨기에 유명한 사도 바울이 된것입니다.
믿음에 앞서는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re] 이 글을 마지막으로.. 엄기욱 (Homepage) 2002-09-26 20:42:14, 조회 : 271, 추천 : 40
이곳에 계신 분들께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 제 글 내용을 그리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 이만 줄이려 듭니다. 그동안의 일은 다만 사람의 얼굴이 천태만상이듯 주님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이러한 견해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 시비를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이근호 목사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좋으신 믿음대로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 속에 주님에 대한 열심 있는 애정이 좋아 보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들은 누구든지 이러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겠지요.이 글을 읽고 난 후의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는 이러한 신앙 고백을 무수히 드림으로 제 믿음을 확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저에게 주님은 성경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에 대한 제 대답이 어떠했을까요... 조금은 마음에 걸림이 있었지만 그래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풍성함을 힘입어 이렇게 대답했지요.
사랑하는 주님!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오니 제 마음의 끈이 밤낮으로 주님께 이어져 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늘 제 삶 주변에 나타나는 악으로 인해 더할 수 없는 죄인의 심정으로 당신 앞에 와 무릎 꿇는 것을 주께서 보시지 않습니까?
이 같이 보잘 것 없는 저를 위해 십자가 위 피 흘리며 저주받으신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오직 당신의 풍성하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로만 받을 수 있을 뿐무슨 말로 주님을 더 높이리이까... 죄인인 제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릴 수 있으리이까...
그러니이런 주님을 제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예전의 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때는 <어찌하면 나를 더할 나위 없이 더러운 죄인으로 취급할 수 있을까? 어찌하면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고 그분의 십자가만을 높이고 또 높일 수 있을까? 어찌하면 진실한 고백을 드릴 수 있을까?> 등에 대한 열심으로 제 신앙 상태는 무척이나 뜨거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그러한 뜨거움을 버리려 애씁니다. 그것은 주님을 내 기쁨만을 위해 바라보는 음탕한 시각에서 비롯된 신앙 고백이기에 진실한 믿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머리 속에서는 얼마든지 주님을 아름답게 높이고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며 또 글과 말, 입술로도 얼마든지 그런 고백을 쉽게 할 수 있지만 정작 그분의 계명을 따르는 일은 어렵고 힘들기에 멀리하여 버립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 29: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신약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 6:46-47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러니 그러한 것을 어찌 믿음이라 칭할 수 있겠습니까? 또 이런 믿음 하에 고백되어지는 것들, 예를 들어 십자가 피의 대속을 믿어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 등등을 어찌 진실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사랑하는 주님에 대한 우리의 예배는 점점 생활에서 주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 아닌 머릿속 지식의 부요로 드려지고 있습니다. 사실 머릿속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일은 말씀에 대한 지식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무척이나 아름답게 그것도 스스로 느끼기에 진실한 마음인양 그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저에게 와서 거처를 함께 하리라" 요 14:15-23 생활에서 그 확증을 찾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돌아볼 때 지성으로 진리를 시인하기는 쉽지만 그 깨달은 진리를 삶에서 실천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지 않던가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주님의 물음을 되새겨보며 삶에서 계명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본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re]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성희 2002-09-26 21:55:34, 조회 : 247, 추천 : 41
이근호 목사님께서 답변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글을 남기고 떠나시는 분에게 부족하지만 저도 한마디 드리려 합니다. 물론 어떤 말이나 글로써 님의 마음이 변할 거라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님의 글을 요약한다면 삶에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참 믿음이고 또 오해가 있을까봐... 그 계명 지킴이 구약식의 율법주의가 아닌 순수한 주님을 향한 사랑에 근거한 계명 준수를 뜻한다고 하는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그럴듯한 주장입니다만, 그 계명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대입하다 보니 어느새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는 별 의미가 없는 듯한 주장으로 이어지더군요. 결국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계명 준수하려는 사랑(?)의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이시라도 그 사람을 구원하지는 못한다는 뜻이 되는거죠. 십자가 사건을 단지 인간들의 죄를 자각하게 하여 회개하고 더 열심히 계명을 지키려는 사랑을 일으키는 수준 정도의 사건으로 돌리시는군요. 십자가로 시작한 믿음이 결국엔 계명 준수로 끝나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려느냐?" 라고 책망한 말씀이 기억납니다. 성령으로나서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육체를 신뢰하지 않기에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죽음에 내어놓고, 죄에 대하여 죽고, 세상을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 살며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성령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님의 생각은 하나님의 선택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며,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님의 생각대로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사랑으로 어느 만큼 수준의 계명을 준수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수준인지는 모르겠네요. 그 기준도 님이 생각하는 수준 이상은 아닐 거 같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길거리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는 분입니다. 솔직히 인간의 어떤 행위가 하나님께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일전에 한번 말씀 드린 것 같이 우리는 무익한 종일뿐...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만물은 통일되고, 하나님도 아들에게 모든 심판을 맡기셨다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를 더 이상 모욕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사랑과 계명 준수를 들고 떳떳이 하나님 앞에 갈거라 생각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리스도 만을 받아 들이십니다. 또 그 그리스도와 한몸으로 택한 자들 -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함께 부활한 창세전에 택한 자기 백성들 - 만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은혜로 영생에 들어갈 것입니다. 내가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만한 인간적 사랑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니 더 이상 그런 사랑을 그리스도의 사랑과 견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은 성령으로난 사람 뿐입니다. 성령으로난 후에 계명대로 못살면 구원에서 탈락되는 그런 식이 아닙니다. 성령으로난 자만이 참 하나님을 알며,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을 자신의 의나 자랑이나 자신의 공로로 돌리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간다는 믿음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만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기록된 말씀" 외에는 어떤 계시도 없습니다. ================================================================[re]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성근 2002-09-27 07:37:44, 조회 : 240, 추천 : 32
엄기욱님이 추종하는 그 스베반보리라는 그 신학자의 주장은 정말 위험천만한겁니다새교회라는 사이트에서 좀 더 그의 사상을 보니...성경외의 그의 신비 체험한 것들을 중시하고 있더군요 ,역시 절대로 건전하지 않습니다. 말씀외의 것을 더 추구하는것을 보니 절대로 진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음 시작부터 뒤틀려지는 것은 마지막 종착역이 어딘지 모르게 흘러가는게 신비주의 사상입니다.. 절대 경계시 해야 하시는데...벌써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채워져있지 않나요? 어디 영계에서 봐서 이렇더라 저렇다라는것은 절대 참된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님에 분명하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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