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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죄를 짖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2002-02-24 - 04-20묻고답하기요한일서

죄를 짖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질문/답변 손무성 2002-02-24 02:20:38, 조회 : 712, 추천 : 81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이창호 2002.02.23 201 질문 :목사님 안녕하십니까?요일3장이 안풀어지기에 배움을 간청합니다.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죄사함을 받은 자녀들에게 주신 말씀인데자녀들은 범죄치 아니하고,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답변 :요한1서 3:1-5절을 보시면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고...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바 된 것은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 죄가 없느니라." 라는 말씀에 이어 6-9절로 이어 지고 있습니다.
곧 이 말씀에서 죄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어떠한 사랑을 주었는데'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을 두고 죄라는 것입니다.
2장 15절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곳에 있지 아니하니..." 라는 말씀 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가? 세상이 내세우는 것 안에는 인간의 살고자 하는 욕망이 행위를 생산하여 그 행위로 말미암아 만들어 놓은 것들을 소유화시켜 자랑꺼리로 삼게 됩니다.(모든 인간에게 있는 죄의 본성) 곧 이것이 인간에게는 바벨탑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무리 높이 쌓아도 생명이 없고 영생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서는 희망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서 발생 되지 않는 것을 보냈는데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를 보내 생명을 주어 영생하게하기 위한 사랑을 베푼 것입니다.2: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사함을 얻음이요." 1-2장 전체에서 하나님께서 베푼 생명과 사랑을 소개 한 것입니다.그러므로 3장6절에서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죄) 하지 아니 하나니..."라는 말씀은 무엇이 죄(죄에 대해서는 메인 페이지 참조 바람)이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 그 사랑을 알게 되었으니 더 이상 범죄치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신자는 더 이상 이런 범죄를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조치로 하나님께서 2장 27절에서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짖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라 '성령'을 지칭하며 성령께서 거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
구원의 소멸성 박성동 2002-03-07 13:54:09, 조회 : 559, 추천 : 82
한번 받은 구원은 소멸 될 수가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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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구원의 소멸성 이근호 2002-03-08 14:19:07, 조회 : 779, 추천 : 93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봐야겠지요.
성경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 속에 예속되어버렸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다시는 그 밖에 못 빠져 나오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본인이 구원받고 싶어서 "구원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싶을 정도로 믿음직한 마음 가짐을 붙잡고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본인도 물론 장담 못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야 언제 어디서 확 바뀔지 본인도 모르고 남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점을 하나님께서 간파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구원의 확정된 내용을 증거하시기 "이러 이러 한 인간은 믿음에서 파선한 자이다"라는 경우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일치감치 예수님 믿기를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끝까지 회개해야 된다는 취지로 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택한 자에게만 적용되겠지요).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하신 일을 믿고 사는 자는 구원에 탈락이 없습니다마는, 예수를 믿는 자신의 신앙 상태를 믿고서 사는 자는 애초부터 아직 그리스도의 통치권에 들어가 보지도 않는 자로서 신앙인 시늉을 내는 자이기에 (이런 자의 특징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늘상 자신의 주의 종이나 주의 사자됨과 신앙이 돈독함을 증거하기에 신경쓴다. 역시 탈락이 아닙니다.(왜냐하면 아예 애초부터 구원된 적도 없기 때문에) 따라서 미리 아시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는 반드시 구원됩니다.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어린양 개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서경석 2002-03-09 10:59:18, 조회 : 434, 추천 : 81
목사님! 예수님을 상징하는 말들 중, 요한복음에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첫마디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말하잖습니까? 어린양 개념은 출애굽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구약에서 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의 어린양 사상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혹시 이와 관련된 책이 있으면 소개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re] 어린양 개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이근호 2002-03-10 16:07:25, 조회 : 622, 추천 : 66
우선 출애굽기 34:19-20를 봅시다."무릇 초태생은 다 내것이며 무룻 네 가축의 수컷 처음 난 우양도 다 그러하며 나귀의 첫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에 장자는 다 대속할지며 빈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여기서 보면 인간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데 있어 어린 양의 대속이 없으면 불가능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린양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내 세우신 언약의 중심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언약이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은 곧 어린양의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이 어린양은 장차 오실 예수 기리스도를 겨냥합니다. 어린양의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면 하나님은 결코 인간들이 내세운 그 어떤 종교적 조건에 반응하지 않으시고 거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어린양만 찾습니다. 이 진리만 고수하는 자의 세계가 곧 천국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밝혀짐)
다른 것도 중요하고 어린양도 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린양만이 중요하고 다른 것은 어린양의 증거하는 수단에 불과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점을 참고해서 여타의 책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예정된 자와 택함 받은자 박성동 2002-03-09 17:05:45, 조회 : 618, 추천 : 80
예수를 믿는 자(예수가 있는 신자): 예정되고 택함 받은 자예수를 믿는 자(예수가 없는 신자): 예정되고 택함 받지 못한 자
불신자: 예정되고 택함 받지 못한 자불신자: 예정도 택함도 받지 못한 자
모든 사람이 다 예정되고 택함과 불택은 자유의 의지에 달렸다
어떤 것이 맞는지요? 아니면 다른 뜻이.... ================================================
[re] 예정된 자와 택함 받은자 이근호 2002-03-09 18:36:04, 조회 : 801, 추천 : 94
>"예수를 믿는 자(예수가 있는 신자): 예정되고 택함 받은 자">>> "불신자: 예정도 택함도 받지 못한 자"
이것만 맞네요. ######################################################################################
이근호 목사님, 모더니즘에 대해서 질문입니다. 구득영 2002-03-10 23:21:38, 조회 : 466, 추천 : 66
무슨 대학입시 같은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만, 그래도 알고 싶어서 말이죠.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은 이제 진부한 단어가 된 것 같습니다. 애매모호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정리가 되는 것 같은데, 그런데 정작 그 앞의 모더니즘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모더니즘의 형성과정과 그 의미, 그리고 포스더모던과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포스터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반발로 보았는데 아닌 것 같아서 말입니다. ===========================
[re] 이근호 목사님, 모더니즘에 대해서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2-03-11 07:16:37, 조회 : 589, 추천 : 80
모더니즘(근대성)이란, 인간이 자신들의 이성과 지혜로 세계를 구원하고 진보시킬 수 있다는 분위기에 대해 좌절과 한계에 부딪혔다는 의식을 드러나는 사상입니다. 창조적 이성이 도구적 이성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즉 과학과 합리적 이성으로 세계를 발전하고자 했지만 그 이성은 집단체제를 강화하는데 주력해서 개인적인 행복 추구와 가치는 조직의 부속품으로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대한 허탈과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 모더니즘입니다. 따라서 모더니즘의 특징은, 허무와 초현실주의입니다. 우리 나라 문학게에서는 김기림이나 이상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사람이지요. 어쨋던 개인의 자유를 찾아 해매는가 아니면 하나의 기계가 되어 조직에 충성하느냐 라는 갈림길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여기는 질식할 것 같은 시대적 형편을 반영하는 사상입니다. 풍요와 발전에는 인간의 인격이나 존엄성은 피해를 보기 마련입니다. 오로지 힘과 강한 것만 경쟁적으로 탐욕하기 때문에 진정 개인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사모하는 자는 그 주류에서 밀려 낙오자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번성하는 한 이러한 모더니즘의 사상은 필연적으로 동반됩니다. 따라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것은 오늘날 시대에서도 일부 여유있는 계층에서 사색하는 현실성이지만 일반 서민에서는 여전히 모더니즘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돈 안되는 인간은 사정없이 퇴출이다!"라는 사장님의 호통은 일제시대 때 일본 기업주의 사고 방식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반해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각 분야마다 계급이나 종속 관계에 놓여 있지 않고 각자 대등한 위치와 고유 가치가 지닌다고 보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회사 때려 치우고 암웨이 쪽으로 나가보자는 사상이지요. ==================================
목사님, 한번만 더 .... 구득영 2002-03-12 00:22:04, 조회 : 521, 추천 : 65
목사님 글 - 모더니즘(근대성)이란, 인간이 자신들의 이성과 지혜로 세계를 구원하고 진보시킬 수 있다는 분위기에 대해 좌절과 한계에 부딪혔다는 의식을 드러나는 사상입니다. +++저는 모더니즘을 기존의 종교에 대한, 즉, 신이 만든 천국에 가려고 그렇게 몸부림치지 말고 우리가 알아서 천국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으로 이해를 하는제, 그래서 인간이 그 기준이 되어서 꿈 같은 시대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목사님의 위의 설명은 오히려 포스터모던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아닌지요?++++목사님 글 - 창조적 이성이 도구적 이성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즉 과학과 합리적 이성으로 세계를 발전하고자 했지만 그 이성은 집단체제를 강화하는데 주력해서 개인적인 행복 추구와 가치는 조직의 부속품으로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대한 허탈과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 모더니즘입니다.+++++++
역시 여기서도 저는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 포스터모던으로 이해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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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글 - 따라서 모더니즘의 특징은, 허무와 초현실주의입니다. 우리 나라 문학게에서는 김기림이나 이상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사람이지요. 어쨋던 개인의 자유를 찾아 해매는가 아니면 하나의 기계가 되어 조직에 충성하느냐 라는 갈림길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여기는 질식할 것 같은 시대적 형편을 반영하는 사상입니다.
++++++
이 부분도 역시 이해가 잘 안됩니다. 모더니즘은 오히려 낭만주의의 연속선에 있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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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글 - 풍요와 발전에는 인간의 인격이나 존엄성은 피해를 보기 마련입니다. 오로지 힘과 강한 것만 경쟁적으로 탐욕하기 때문에 진정 개인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사모하는 자는 그 주류에서 밀려 낙오자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번성하는 한 이러한 모더니즘의 사상은 필연적으로 동반됩니다. 따라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것은 오늘날 시대에서도 일부 여유있는 계층에서 사색하는 현실성이지만 일반 서민에서는 여전히 모더니즘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돈 안되는 인간은 사정없이 퇴출이다!"라는 사장님의 호통은 일제시대 때 일본 기업주의 사고 방식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반해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각 분야마다 계급이나 종속 관계에 놓여 있지 않고 각자 대등한 위치와 고유 가치가 지닌다고 보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회사 때려 치우고 암웨이 쪽으로 나가보자는 사상이지요.
+++++++
저는 포스터모던이 그런 인간의 낭만적이고 유토피아에 젖어있는 인간이 꿈이 세계대전이나 종교분쟁 등에 의해 무참이 무너지니, 여기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던져진 것으로 이해하는데 말입니다. 물론 '해결책은 없다' 라는 쪽으로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물론 어떤 조직이나 서로의 영역을 허물어 버리고, '돈 되는 것이 장땡이다' 라는 식으로 나가는 것이 포스터모던이라는 것은 어는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데 말입니다.
목사님, 죄송하지만 한번만 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re] 목사님, 한번만 더 .... 이근호 2002-03-12 07:41:23, 조회 : 504, 추천 : 60
그렇지 않습니다. 구목사님.
포스토 모더니즘은 옳고, 그름, 진실, 허무라는 이 두 종류로 나누는 구분조차 의미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면 이는 모더니즘(근대주의)의 연장에 있는 겁니다.
제 글의 끝부분에서 언급한 바대로, 모더니즘 시대가 끝나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본주의적 경제적 틀을 유지하는 한 계속해서 모더니즘은 이어집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이러한 인류가 당하는 어쩔 수 없는 아품이 모두 아직도 절대적 진리성에 미련에 두고 있다고 보고 이런 로고스적인 절대적 가치라는 것이 어디에 바탕을 두고 생겼는가를 근원적으로 분석해서 해체 시켜 버리는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전략입니다.
즉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야만이 자본주의가 주는 정신적 폐해와 공허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바르게 살아야 함'과 '돈으로 생존함'은 결코 동시에 누릴 수 없는 대치적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이란 '과잉'에서 비롯됩니다. 마치 연예인들이 남들 앞에서 과도하게 자기 얼굴을 비쳐주는 것이 제가에게 막대한 돈으로 들어오는 이치와 같고 전자 업체가 과도한 미세한 기술을 개발해서 수출 단가를 대폭 늘이려는 목표도 이와 같은 차원이며, 의학계에서 DNA를 이용해서 난치병 치료제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나 인간 복제를 시도하는 것도 모두 과도한 행위들이고 또 이래야만 그것이 돈의 축적, 자본의 축적으로 이어집니다. 만약 이 과잉 행위를 하지 아니하면 오늘늘 60억의 인류는 공멸해 버립니다. 입에 풀질도 못합니다. 따라서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인식 말고 다른 대안은 있을 수 없다고 포스트 모더니즘 쪽에서 보고 있는 겁니다. 모더니즘의 질곡 속에서 인류의 정신을 구원하겠다는 겁니다. 착해야 한다는 의식, 그 자체로부터 구원해 내자는 겁니다. 착하지도, 또한 착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임을 모더니즘 사상에 놓여 있는 자들은 아직도 감잡지 못하고, 그저 종교계로의 도피,(종교계조차 자본주의화 되니 아예 법정스님같은 자는 산으로 도피하고 신부 중 일부는 수도원으로, 목사들 중 일부는 유기농법을 주로하는 공동체 집단 생활로 도피), 시나 문학계나 퍼포먼스로 일관하는 현대 미술계로 도피(유미주의), 도가적 철학계로 도피(실존주의적 동양학)에만 염두에 두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질의하신, 허무주의나 낭만주의는 모두 모더니즘의 큰 범주 안에 포함이 됩니다. #####################################################################
이근호 목사님, 질문입니다. 이기원 2002-03-12 13:32:05, 조회 : 583, 추천 : 62
이 근 호 목사님, 오랜만에 지난 서울 세미나에서 뵙게 되어서 무척 반가웠습니다.질문이 있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철학이 신학에 미친 사상이 지금도 그 효력을 발휘하지만 그 중에서 근세철학 가운데 경험론과 관념론은 오늘날 신학과 신앙에 어떤 모습으로 침투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경기도 양주 목은 교회 이기원 목사 ====================
[re] 이근호 목사님,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2-03-12 20:17:46, 조회 : 593, 추천 : 45
철학이 신학에 '침투' 한다고 하셨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철학이 신학을 의식한 것은 중세 때까지만 그러하고 그 이후에는 신학이 오히려 철학의 힘을 빌리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과학의 공세에 밀리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경험론이란, 과학에 아부하기 위한 이론이요, 관념론이란 철학이 본연의 자존심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과학 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곳에 자기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이론입니다. 이처럼 경험론이든 관념론이든 이 바탕에는 철학의 체면의 가치를 스스로 지키기 위한 노력입니다. 근대 과학의 풍조가 일어나면서 신학은 더 이상 대중들의 관심사가 될 수 없었습니다. 신학의 무관심은 교회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습니다. 따라서 이 때부터 신학은 성경 진리를 사수하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교회의 가치를 대중들에게 알려서 설득하기 위한 신학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니까 신학 안에는 경험론적 요소도 담겨 있고 관념론적 요소로 담겨 있되 그 모든 요소의 목적은 오로지 교회의 가치를 대중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데 두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이덱거의 존재론은 불트만 신학에서는 신론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하이덱거가 철학이 일반인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철학의 힘을 입어서 과학과 기술에만 매달려 있는 대중들을 교회에게로 관심을 돌려 보려는 신학적 시도였습니다. 과학의 주가가 급피치를 내던 19세기 중반과 20세기 초반에, 신학은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을 내 놓았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신칸트주의 신학입니다. 즉 물질 문명 창출에 분주하다 보면 스스로 자기 양심을 제어하고 압박하고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이점을 간파한 교회는 다음과 같이 목소리를 높이는 겁니다. "돈을 마음껏 버시되, 양심의 때는 교회 와서 가볍게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착하게 살면 복받고 나쁘게 살면 현세나 내세에서 벌받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신학이 스스로 진리를 묻어버리고 단지 윤리와 도덕을 처리해주는 전락했습니다. 이런 식이라도 살아남을려고 했습니다. 대중들이 물질와 돈으로 해결안되는 틈새 시장을 교회가 노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신학에서 참과 거짓이란 딴 게 아니라 교회에 도움되면 참이요 교회 부흥에 도움 안되면 거짓이 되는 셈입니다.예를 들면, 총신 교수가 학교에 있을 때는 오직 그리스도만 주장하다가 막상 기성 교회 당회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난 뒤에는, "일만 교인 모으기", "각가 백만원 십일조하기 운동"같은 것은 노골적인 구호로 내세우고 철야하는 실제적 경우와 같습니다. 즉 신학이란 교회 존립에 있어 기능성 행사를 정당화 시켜주는 시녀를 전락한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에게 바탕을 둔 신학이라면 오직, 복음만 증거하는 신학이어야 하고 결코 교회 유지책이 이 복음 안에 담길 리가 없겠지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경험론과 관념론이 신학에 침투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교회 유지도 도움이 된다면 뭐라도 다 이용하는 것이 오늘날의 비빔밥 신학입니다. ##################################################################################
초대교회 신학의 영향으로? 김상철 2002-03-16 11:03:06, 조회 : 421, 추천 : 67
초대교회 신학의 영향으로? 즉 팔레스틴 신학과 안디옥 신학의 갈등으로
나중에 후대에 성경이 정경화 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정경화 되지는 않았는지요?
교회중심신학과 믿음 중심신학과의 대립에서 온 성경정경화 과정을
알려주십시요 =======================
[re] 초대교회 신학의 영향으로? 이근호 2002-03-16 14:01:33, 조회 : 564, 추천 : 83
귀하께서 문의한 내용은 신학자 하르낙과 동시대의 여타의 많은 신학자들이 제안한 견해입니다. 결론을 말씀 드리자면 이 생각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교회 중심 신학과 믿음 중심 신학으로 둘로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눈다면 신약 27권 전부 하나씩의 신학이 형성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보통 크게 나누어, 복음서 따라 넷으로 나누는 경향이 많습니다마는 이것도 확실치 않습니다.) 성경은 성령에 의해서 통일성 있게 확정된 계시입니다. 그 통일성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증거하는 것에 있습니다. 다만 초대 교회의 시대 상황에 따라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곡해하거나 복음에 대해 반발하거나 하는 경우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결코 교회를 반발하거나 교회를 부수기 위한 공격에 대해서 교회를 변호하고 사수하기 위해 성경이 정립된 것은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이 점에 착오없기를 바랍니다.)사도들은 자신의 사도권을 부활하신 주님과 성령의 사역과 관련시키므로 계시 완결 과정에 들어서게 됩니다. (베드로후서 3:15-16) 여기서 사도의 계층과 후 사도의 계층을 사도 자체가 확연하게 구분시킵니다. 즉 더이상 추가될 계시는 없다는 것이지요. 정말 다 같은 예수님의 사도라면 이들 사이에 그 어떤 파당이나 모순점이 없음을 분명히 해야합니다. 주님의 계시가 상충될 리가 없기 때문이죠, "이는 내가 사람에게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2)
따라서 귀하께서 질의하신 취지대로 초대 교회의 신학 형성 과정이 따로 있음을 인정해 버리게 되면 사도 이후에도 내용이 교회 상황에 따라 수정되고 변형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그 바탕이 되어 버립니다. 이는 절대적 사도성에 합치되지 못하는 견해일 것입니다. #################################################################################
안식일에 대하여 박성동 2002-03-24 21:11:34, 조회 : 666, 추천 : 87
진정 안식일에는 성도들은 어떠한 생활로 하루를 보내야 되는지요
- TV시청하는 것과 - 예배 후의 가족들과의 놀이(야외,실내,친척집 방문)문화- 가족들과의 식사(외식)문제
시원한 답변 부탁합니다. ----------
[re] 안식일에 대하여 이근호 2002-03-25 06:44:35, 조회 : 689, 추천 : 90
>안식일은 없습니다.
시원하시지요. ##############################################################################################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김상철 2002-03-28 12:21:57, 조회 : 548, 추천 : 52
복음 증거하다 보면 상대방에서 보편구원론을 들고 나올때가 있습니다
아니 모든교회가 보편구원을 주창하는 현상입니다
대부분 문자적인 의미에서 들고와서 반박하니 조금더 그 구절 앞뒤를 살펴보다 보면 충분히 비언약과 언약백성으로 나누어짐을 증거하는데
디모데서에선 바울이 표현한 모든 자,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라는 말씀을 펼치면서 어떻게 선택을 한쪽으로만 몰수 있느냐
또한 그런 하나님이면 십자가의 대속이 어찌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느냐라는 질문을 받을때
막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이 모든 사람의 죄를 싯고도 남음인데 믿음은 모든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라고만답변할 뿐입니다(살후 3: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이래 답변해 놓고도 뭔가 부족한 설명처럼 느끼고 디모데서 자체에선 어덯게 증거해야할지?
다른부분에선 성경 구절 앞뒤에 그 해석이 잘못된것을 말할수 있는데디모데서에선 바울이 쓴 이 표현에서는상당히 어려움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모든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는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또 디모데서에서 비언약과 언약의 백성 의미를 어떻게 볼수 있는지?
p.s
여기글 보니까(성경중심사상 손목사님 글) 모든 사람이 믿는 모든자라고 했는뎅
(딤전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분명 모든자와 믿는자를 구분합니다
또 보편구원도 디모데서에서는 정립될수 없는 내용들도 가득차 있습니다
'모든' 이라는 문자만이 애매하게 하는것 같은뎅
아 질문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질문하는 저도 애매해 지네요 ============================
[re]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이근호 2002-03-28 18:33:17, 조회 : 615, 추천 : 49
하나님께서는 인간 세상에서 정해놓은 모든 인간들의 틀을 깨시고 구원하십니다. 특정 신분이나 위치에 있다고해서 긍휼의 대상이 못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조건이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은 기어이 구원해 내십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의 대상이 되므로 사도 바울은 외모로 인한 차별이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자가 다 구원된다면 구태어 사도 바울의 그런 말조차 할 필요가 없지요. 사도 바울이 가는 길에는 인간 선입감에 의한 인식에 의해 차등화가 어디든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지도 않은 각종 전제들이 인간 세계에 이미 깔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것은 하나님의 본래의 뜻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 대신 사실 모든 인간이 죄인이다는 말입니다. ###################################################################################
안녕하세요 목사님. 정성진 2002-04-19 16:02:38, 조회 : 447, 추천 : 78
목사님.. 안녕하세요.박사교회 계실때 목사님께 여러가지 질문을 드렸던 정성진 입니다. 목사님께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정말 기쁨니다. 무엇보다 목사님께 질문을 할 수 있어서 더더욱 기쁨니다.
목사님.. 과학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데요 토마스 쿤에의하면 과학은 혁명에 의해서 변화한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과학혁명에 의해 출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역설적으로 기존에 있던 것을 발견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가 되어집니다.
과연 과학은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위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re] 안녕하세요 목사님. 이근호 2002-04-19 19:05:17, 조회 : 452, 추천 : 45
>토마스 쿤의 사상은 이러합니다. 칼 포퍼의 주장처럼 과학은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급진적 혁명에 의해서 기존의 정상과학(normal science) 전복시키는 식으로 새로운 정상 과학을 권위를 차지한다는 겁니다. 쿤의 이론대로라면, 과학의 객관적은 깨어지는 겁니다. 왜냐하면 과학계에서 한결같이 주장해 온 바에 의하면, 실험적 증명과 반증에 의해서 굳건하게 진리로 확인한다고 했지만, 실은 기존의 패러다임(인식의 틀)에 놓여 있기에 현실에 실험치가 맞지 않더라도 아예 자신의 인식의 틀을 의심하게거나 반성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과학계의 정치화가 과학마저 비과학적 속성을 지니게 했다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 과학이란, 인간들의 자기를 위한 절대적 계시를 만드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마음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서(롬 1:28) 그 빈 자리를 자기가 납득이 되는 진리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 빈자리에 자기 생각을 채우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성경을 추방하는 작업과 병행됩니다. 설사 성경을 존중해 준다 할지라도 그 해석이 과학적인 인식에 합당해야 하는 조건을 답니다. 그러니까 워낙 불신앙적인 상태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찾고자 몸부림 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임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입니다.(히 11:3)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겁니다. ######################################################################
영과 혼과 육에 대하여 질문입니다 !! 구득영 2002-04-19 16:31:53, 조회 : 476, 추천 : 65
그 차이점에 대해서 종종 강의한 것이 기억나는데요, 조금 자세하게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임마누엘과 여호와삼마에 대해서도 조금 자세하게 설명부탁드립니다. ==================
[re] 영과 혼과 육에 대하여 질문입니다 !! 이근호 2002-04-19 18:19:46, 조회 : 722, 추천 : 67
사도 바울이 전도했던 이방 세계은 영과 혼과 육으로 인간을 분석하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들 따라서 인간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영이 되었던 혼이 되었던 육이 되었던 인간 전체가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서 구원의 혜택을 입는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을 탐구하고서 그 유대교를 또한 유럽의 이방인들에게 나름대로 전도하기 위해 영, 혼, 육, 양심 등 등 인간 자체를 표현하는 개념들은 구약을 인용해서 갖다 붙이고 있었습니다. 이점을 두고서는 사도 바울은 구약이 예언한 바른 영은, 그런 유대식으로 직접 인간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성령)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을 영의 존재 임을 가르쳤습니다. 반대로 육이란 당연히 자연인 그대로 이겠지요. (인간의 외부적 형태를 육, 육신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어쨌던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전체 구원입니다.사도 바울이 인간을 둘로 혹은 셋으로 나누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인간을 분석해서 그들을 구원주겠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취지가 아니라면 우리도 그런 의도로서 성경을 보면 안됩니다. 단 예수님의 복음의 위력이 인간을 통채로 변화시킨다는 점을 지향해야 합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적 감행을 위하여 강림하심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죄악된 세계가 지니고 있는 죄악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심판주가 강림하셔야 하는데 이는 이사야 7장-9장에서의 취지와 부합됩니다.
거기에 비해 여호와 삼마는, 에스겔 48:35에 나오는 말씀으로서 하나님께서 거룩한 영역을 조성하셔서 자기 백성을 영구 동거되어 있는 미래의 상태를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작업 과정으로서의 여호와 삼마가 아니라 최종 안착한 완성태를 뜻합니다. ========================
[re] 목사님! 명쾌한 답변 굿입니다. 이기원 2002-04-20 23:41:34, 조회 : 382, 추천 : 46
목사님! 답변 굿입니다.언제나 큰 도움됩니다.언제나 뵈올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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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