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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 2002.01.06 - 2002.02.06묻고답하기-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 묵상중 2002.01.06 165
안녕하세요...성경묵상중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마태복음20장과 마가복음 10장에서 어느쪽은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로 나오고 어느쪽은 그 어머니의 요구로 나오는데 어떻게 해서 한 성령하나님께서 역사하셨는데 그런식으로 다르게 나올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숩니다. 아무리 상상을해도 ,,, 이런것은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성경에서 현재 복음서 묵상중인데 참 각복음서 마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말씀적인 것이야 어떻든간에 문자적으로 이렇게 다르게 기록된것이 종종 있으니 ,,, 정말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는지 의심이 가는군요...제가 생각하기에 (이런것도 트집을 잡는다면 인간의 생각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생각과 말을 이해하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렇다면 왜 성경을 주셧습니까)성경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적어도 문자적으로 서로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서 마지막부분의 예수님 무덤에 나타난 천사도 그 숫자와 묘사가 다르고요....도대체 성령의 감동이 무엇인지 모르겠군요..단지 인간적 착각속에서 글을 쓰고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기는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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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 이근호 2002.01.07 196
성경은 복음서마다 같은 정황이라도 전달하고 싶은 주제가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감히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있는 주제가 하나님에게 따로 있으시기 때문에 같은 말씀을 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사고방식을 아예 돌려서야 합니다. 모순되는 점이 있을 수 있다고 여기지 마시고 사실 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기도문이나 산상설교나 오병이어 기적이나 부활이나 십자가이나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본능상 이 달라짐을 하나로 모아서 통채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의 이성적 욕구를 당연히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성경을 대하시면 성경을 대할 때 큰 실수를 하시는 겁니다. 성경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책을 볼 때에 먼저 자신의 궁금한 점을 미리 던지면서 독서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아, 적어도 이러 이러한 정보만큼은 나에게 채워주어야 돼 알았지?"하는 식으로 가볍고 생각하며 책이나 성경을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나는 너를 헷갈리게 할거야. 왜냐하면 너의 그 건방진 진리관은 이 성경 앞에서 와장창 깨어져야 돼. 너는 성경을 통해서 원하는 바를 얻으려 하지만 그 심보 자체도 너의 죄에서 출발한다는가 된다는 것은 너는 과연 짐작이라고 했겠는가? 내가 알아야 되겠다니? 무슨 그런 건방짐! 알아낸 것만 너의 믿음의 내용으로 삼겠다는 말인가? 어림도 없다. 너는 이 성경을 대하면서 갈수록 더욱 혼란스럽게 될 것야 그 와중에서 이제는 아는 것에서 벗어나 믿는 사람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라는 것은 성경에서 독자에게 주는 공박입니다.
성경을 볼 때는 일정한 스토리를 이미 독자 마음 속에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 스토리가 성경의 모순되고 부합되지 않는 내용으로 인하여 혼선이 빚어지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런 혼선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여전히 감히 하나님과 맞 상대하려는 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결코 인간의 좁은 이성으로 이해되도록 하지 않습니다. 신약 뿐만 아니라 구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더 깊이 보면 이 점이 감잡힙니다. 이 '안맞음'을 통해서 "아 성경을 얕잡아 보면 안되겠구나"를 마음은 거 고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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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 묵상중 2002.01.07 150
목사님 저는 성경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성경을 제 신앙의 기초로 삼고 정말 하나님이 뜻하는 것을 찾고자 해서 그럽니다. 그러니 당연히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틀린것이 나오면 방황하게 되죠... 만약 목사님의 말슴대로 성경이 그렇게 어렵고 심오하다면 왜 성경이 필요하고 왜 성도들이 묵상해야 되나요...목사님 저는 성경을 제 지식에 꿰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뜻하는 바를 알고 싶어서 그럽니다.저는 목사님의 그런 대답은 목사님과 같은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에겐 암 그렇지 지만 저는 그런것을 무지에서 오는 자기변명으로 밖에는 안들립니다. 저는 수학과학처럼 꼭 논리적인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왜 문자적으로 그 요구하는 주체가 다를수 있냐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해답을 듣고 싶어서 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해서 탄생했습니까신구약 수많은 성경으로 불리우는 것들이 정경66권 말고도 많이 있잖습니까... 만약 목사님의 말씀대로 라면 그 모든 외경들도 성경으로 취급되야 옳지 않나요,,,, 그런데 그 많은 정경들이 그 공통되고 논리적으로 맞으니까, 그것을 정경으로 만든것이지 않습니까저는 왜 그런지 확실한 해답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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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 이근호 2002.01.07 145
성령님을 빼놓고서 따져보자면 귀하의 말씀이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성경 66권이 논리적으로 따져서 성경으로 구축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사역에 의해서 조성된 겁니다.우리는 누구에게 선물 받을 때, 왜 이런 것은 안주시고 이런 것은 주셨느냐 하고 따질 수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왜 성경이 서로 다른가? "하면서 의문점을 갖는 것은 신앙이 약해서 갖는 의문이 아니라 모든 성도라면 평생을 다가도록 멈추지 말아야 당연한 품성입니다. 누가 감히 성경 전체를 모순점없이 다 풀어낼 수 있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그렇다면 해서 모두 아직 구원 불확정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인가요? 아닙니다. 구원되었기에 때문에 성경을 더 사랑하면서 깊이 하나님의 심오한 뜻을 알고자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 분명히 합시다. 모순점이 사라져야 비로소 참된 진리를 가지고 구원될 수 있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모순점을 느껴도 그래도 믿어지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족한 주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어셨다는 사실 말입니다. 성경의 모순점 때문에 이것마저 포기한다면 참으로 심각한 일입니다. 정말 귀하께서 구원받은 자라면 모순점을 단순히 없애자는 차원에서 파고 들지 마시고 자신의 왜 부족하며 왜 죄인이기에 꼭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야만 했는가를 파악하는 방향으로 성경 본문을 겸손하게 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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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와 권세 전도자 2002.01.08 190
Name 전도자 Subject 정사와 권세 바울서신서에 보면 정사와 권세란 말이 자주 나오고 특히 골로새서가그중 하나이지요..
주님이 정사와 권세를 멸하셨다고도 하고, 어떤 정사와 권세는 우리가지키어 무너뜨리지 말라고 하는데 그냥 paradox인가요, 아니면다른 뜻이 있나요?
항상 대답히 주시니 감사합니다. 알려주세요..... ----------------------------
☞ 정사와 권세 이근호 2002.01.08 232
Name 이근호 Subject ☞ 정사와 권세 이 세상과 우주는 인간이 감히 알지 못하는 악의 질서체제가 있습니다. 성경이라는 계시를 통해서만 알려진 내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정사와 권세가 '멸했다'는 아에 존재케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참고로 이야기 하자면, 골로새서 뿐 아니라 요한복음 17:2에서 예수님이 모든 권세를 가졌다고 되어 있습니다)데살로니가 후서 2:11에 보면 마귀까지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다루고 계십니다. 우리 인간들 입장에서 보면 아예 마귀가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자의 거룩과 신앙을 위해서도 그들의 존재와 성격을 활용하고 계시는 겁니다. ####################################################################################
축복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채주은 2002.01.22 213
Name 채주은 Subject 축복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얼마전 교회 제직수련회에서 강사목사님의 말씀이 제직의 의무를 설명하시면서 성도들의 복은 담임목사님을 통해 부어 주신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마치 목사님의 기도가 유일한 축복의 통로라는 의미로 들렸습니다.만약 그렇다면 모든 일들을 신부들이 하늘과의 문을 이어준다는 천주교의 교리와 유사한 것이 아닌지! 이에 대한 궁금한 내용을 성경적으로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목사님의 명쾌하고 교회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시는 내용에 많은 공감을 하고 동참하고 싶습니다. -------------------
☞ 축복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이근호 2002.01.23 298
Name 이근호 Subject ☞ 축복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축복은, 축복 줄만한 분, 즉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분이, 자신의 완전한 의를 제공하는 것만이 축복입니다.(히 7:6)왜냐하면 의가 없으면 영생도 없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내용물은 오직 영생뿐이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복음을 명하셨으니 곧 영생이라"(시 133;3)
이것 때문에 기나긴 구속사가 이어져 오고 또 예수님까지 오셨습니다. 그러면 땅의 것은 축복이 아닙니까?골로새서 3장 1-6절에 보면 땅의 것을 아예 생각치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땅의 것을 생각하게 되면 그것을 '탐욕'이라고 했고 탐욕은 곧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죄인인 주제에 남을 축복할 자격은 없습니다. (기도할 따름이지요)
그런데도 왜 교인들은 이 사실을 모릅니까?첫째 성경에 관심이 없으니 일반 이방종교성을 그대로 품고 교회에 왔고
둘째 이들 교인들은 나름대로 땅에 것에 대한 기대심리와 탐욕이 있었고
세째, 이들 교인들을 확보해서 생계를 보장받으려는 종교 사기꾼들이 오늘날까지 근 150년 동안 한국 땅에서 유포시켜 왔고
네째 , 이들이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교회 내에 있는 친지나 애인이나 친구하고 노닥거리는 것이 재미가 있어 하나님의 영광과 무관한 사교 단체에 계속 출석하고 있는 종교 취미생활에 탐닉하는 개인의 즐거움 챙기기 위주로 살기 때문입니다. ###########################################################################
구약의 가난한자 개념 알고 싶습니다-이근호 목사님! 가난한자 2002.01.26 231
Name 가난한자 Subject 구약의 가난한자 개념 알고 싶습니다-이근호 목사님! 작크앨룰의 하나님이냐 돈이냐는 책을 읽었습니다.이분의 돈에대한 개념이 성경적인지 알고 싶습니다.돈 그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라는 사람이 많지만 작크엘룰은 돈 자체를 맘몬으로 즉 인격체로 보고있습니다.그리고 사람들을 돈으로 고용하는 것을 돈의 권세로 봅니다.구약에서의 가난한자 개념이 실질적인 가난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즉 신약에서의 너희 가난한자는 복이 있다는 말도 실제로 가난한자를 가르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모든 가난한자가 구원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이 있는 반면 부자는 말 그대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못 들어 가듯이 불가능 하다고 보는 듯 한데 돈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
☞ 구약의 가난한자 개념 알고 싶습니다-이근호 목사님! 이근호 2002.01.26 331
Name 이근호 Subject ☞ 구약의 가난한자 개념 알고 싶습니다-이근호 목사님! 인간은 자기 능력껏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돈(화폐)이란 원래 물질과 물질을 교환하기 위한 증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과잉적인 힘의 축적은) 결국 타인의 물질이나 노동력마저 가치를 하락시키는 피해를 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짐은 이미 고대 도시 문명이 발생할 때부터 있어 왔습니다. 수렵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들어서면서 농산물의 과잉은 그것을 관리하는 관리 지배 계층의 등장하게 되었고 이들은 자본이 곧 힘이 된다는 것을 남보다 먼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 먼저 경험하게 된 자가 그렇지 못한 자를 그 방면으로 지배하게 됩니다. 소위 '고참의 효력'이지요)이사야 5:8에 보면,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자는 그들은 화 있을진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정으로 재산 축적이 갖는 효력을 먼저 경험한 자에 대한 정죄가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공격을 이사야 뿐만 아니라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여 주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라고 누가복음 1:52-53에 나와 있습니다. 장차 메시야로 오실 분(예수님)이 이런 일에 종사한다는 것을 미리 예언한 말씀입니다.
'돈'이 과연 중립적인 가치가 머무느냐 아니냐 하는 논의는 사실상 현실성과 동떨어진 논의가 될 것입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돈을 다루는 작자들이 과연 중립적일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정답은 중립적일 수가 없다는 겁니다. 자크엘룰은 바로 이런 각도에서 현대 사회의 기반인 돈과 자본과 기술을 다루어야 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나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경제활동이나 돈을 선한데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을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하는데서 비롯됩니다. 그 어떤 인간이 이 사회가 만든 그물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의 '가난'의 의미는 전체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가 야기시킨 열매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공히 종되었던 겸손한 자세를 그 후에도 과연 얼마나 공동체 내에서 유지시키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자비의 언약을 구현코자 하심. 그러나 자비로운 언약 정신에서 이탈 할 때 이스라엘 내에서 경제적 불평등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기술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자들이 횡재라는 기대감과 탐욕을 가지고 도박하듯이 증권에다 돈을 걸는 미친 짓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고용증대나 일 자리 창출이 불가능합니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경제적 평등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세계입니다. 능력껏 살게 되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능력 가운데는 자기 양심이나 신앙에 대해서 변명하고 핑계대는 수완도 포함이 됩니다. 쉽게 말해서 모두들 각자 자신들은 "나는 최대한으로 깨끗하게 벌어서 깨끗하게 돈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모두 다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시킨 공범자입니다. 심지어 기부나 과도한 교회 헌금하는 행위까지 전체적으로 봐서 소득 불균형을 야기시키고 타인을 실업자로 만들어 설비 투자 같은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서양 중세 경제나 현재 북한 경제나 이슬람 문화권의 경제)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가난한 자나(한국의 가난한 자는 아프가니스탄에 비해서는 사치스러운 경제 수준입니다.) 부한 자가 자기 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언약이지 재산이 아닙니다. (신명기 8:11-20를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부한 자가 돈을 사랑치 말고 끼리 조차 못이어 도움을 요청하는 자에게 무상으로 베풀 것을 당부하는 말씀은(디모데전서 6:17-19) 궁극적으로 자기 부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땅의 문제에 인생의 전부를 걸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골로새서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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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주석(저자: 불트만) 전도자 2002.01.31 264
요즘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고있는데(영어 번역본)참 그 성실성과 치밀성은 가히 존경할만 한것 같습니다
목사님도 이 책 보셨는지요, 간단히 서평좀 부탁드립니다.저는 요새 아무생각없이 보고있어요,희랍어가 많이 나와(아직 희랍어는 모름) 좀 어려운데 하여간많은 도움이 된것 같습니다.
그럼 항상 승리하시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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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주석(저자: 불트만) 이근호 2002.01.31 334
봤습니다. 무슨 글을 쓰든 타인에게 책임을 다하는 성의있는 사명자의 자세가 돋보이는 책입니다. 아쉬운 것은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논리를 펼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즉 불트만은 세계민을 위하여 글을 쓰지만 주님의 의식하고서는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글에는 예정론적 인식이 전제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정론은 신적 주권론과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같이 보면 아니될 것입니다) 예정론은 종교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다 이구동성을 저주하고 미워하는 하나님의 뜻이기에 불트만도 그들의 뜻에 동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예정론적 정신으로 글을 쓰는 것은, "이제 이 인간들 비위에 맞추지 않고 오직 복음을 전하겠다"는 정신입니다. 모든 인간의 지혜와 종교적 노고들은 모두 부정해 버리게 만드는 것이 예정론입니다.(고전 3: 19)그래서 종교인들이 얼마나 싫어하는지!
바르트는 예정론은 구원론으로 어물쩍 처리했습니다. 칼빈은 예정론을 교회론으로 전환시키고 말았습니다. 모두 다 사람을 의식해서 그러합니다. 몰트만은 아예 예정론을 거론조차 안합니다.
"진리를 우리 손으로 영글어내고 또한 적용케 하자!"이런 악마적 구호에 대해서 복음으로 단호히 맞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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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한복음 주석(저자: 불트만) 철새둥지 2002.01.31 261
이근호 목사님, 예정론에 대해서 조금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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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썼던 책 [하나님의 선택] 대장간 출판사 책에 상세히 잘 나와 있습니다.
기존의 예정론은 유대교의 선택론과 연장선에서 거론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예정 계획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정론은, '하나님의 이름'을 겨냥한 예정입니다. 골로새서 1:16에 잘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10에도 그 취지가 나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인간 중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통일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예정하신 계획입니다. 이런 안목으로 에베소서 3:9-11를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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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도 떨어지나요? 꽃분아빠 2002.02.05 291
저는 개인적으로 한번 믿은 사람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그 이유는 이러합니다.믿음은 구원의 증거 즉, 구원으로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 믿을 수 있게 된다.이는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아울러 성화라는 것 또한 성령님의 인도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된다.즉, 나의 의지가 아니라 애초에 우리의 죄인됨과 예수님의 피흘리심과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하심 등을 믿기 시작하는 때부터 구원에 이르는 마지막까지 오직 성령님께서 다 이루신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제가 흔히 쓰는 예가 '태양 앞에 초 들고 가서 밝음을 이야기 하지 말라'입니다.
지금까지의 저의 생각이 틀렸다면 틀린 것을 지적하여 주시고, 맞다면 다음에 대하여 답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고린도전서 10:1~12절에 보면 세례를 받은 이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예가 나옵니다.즉, 구름(성령의 임재)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은 이들이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 의문입니다.가나안이 구원을 상징하는 것 맞나여?그리고 많이 궁금한 것이 모세인데....과연 모세의 행방은???가나안에 못 들어 갔는데....
저에겐 아주 풀기 힘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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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고도 떨어지나요? 이근호 2002.02.05 369
꽃분 아빠께서 이미 말슴하신 것과 같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라는 이 지점에서 다시 성경 전체를 보게 되면,
구약은, 왜 신약시대에서 성령님이 오셔야 됨을 확인시켜주는 배경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즉 신약 시대에서도 구약 처음, 자기 의지로 구원을 따내겠다는 자들은 광야의 사람처럼 필히 구원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람들, 즉 골로새서 1:29, "내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의 내용과 같이 자기 속에 자기를 장악하는 또다른 분의 능력의 역사가 작렬하는 자는 구약 때와 같은 실패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광야 때의 가나안 땅에 못들어간 자들의 운명과 오늘날 성도의 운명과 비교해 볼 때, 성령의 인치심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겁니다. 우리도 그들과 달리 별개 아닌 존재인데도 말입니다.
이처럼 신약은 항상, 본인에게 맡기는 식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확인하는 내용들입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고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미치겠어요. 꽃분아빠 2002.02.05 285
목사님 답변 들으면 속이 다 후련합니다.그래서 미치겠어요.그것이 명쾌한 답변이라서가 아니라 뚜렷히 하나님 중심으로 설명하시는 것이 아주 통쾌합니다.목사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구름을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해석되는데...그럼 그 해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인지요?
아울러 모세가 어찌 되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 좀 부탁드립니다.
------------------☞ 미치겠어요. 이근호 2002.02.05 280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변화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을 보여주시는데 거기에 모세도 있었고 엘리야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지리적인 가나안 땅에 못들어가는 것으로 인해 더욱 더 구원의 진리를 믿게 되었지요. 그런 사람이 그 당시 (모세 당시) 많이 있었습니다. 회개를 통한 구원방식이 지금이나 그 때나 한결 같습니다.
구름 기둥을 성령으로 해석하는 것은, 괜찮은 교훈 하나 건지려고 억지를 부리다 보니 나온 해석입니다. 즉 "성령이 오늘날 우리와 함께 있어 우리를 인도하신다"라는 이 성령의 기능 하나와 연결하기 위해 "옛날 광야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앞서 인도했던 기능이 뭐가 없을까? 옳다구나, 구름기둥이 있구나"라는 해서 나온 결과입니다. 구름 기둥은,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과 더불어 움직인다는 표시입니다. (출 33:14/ 40:37-38) 그러나 신약 시대의 성령은 십자가 정신으로 우리를 고발하고 정죄하고 탄식하시는 영이십니다.(요 16:8-12) 단순한 방향타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든지, 그 행위와 생각으로 인해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다고는 점을 보이고 회개하기 위한 예수님의 마음의 영이십니다.(고전 2:7-11)
만약 구름 기둥이 성령을 묘사하는 좋은 예라면, 고린도후서 3:12-18에서 모세의 수건 사건 대신 구름기둥 이야기를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모세의 얼굴에 수건 덮은 것과 성령을 연결시키는 것은, 단순히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함께 있지 못할 정도로 영광스러운 분을 주의 영(성령)의 용납으로 함께 계시다는 점을 말해주기 위함입니다. 쉽게 말해서 성령의 역할은 (1)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있음이 도저히 성사 될 수 없는 일임을 알려주시고 (2)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는 것은 순전히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 덕분임을 아울러 알리기 위한 역할이며 (3)그래서 성도는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낮추고 회개케 해서 (4)모든 구원의 공로를 그리스도의 일로만 귀착되게 하시는 분입니다.(빌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만 자랑하고," 빌 3:8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김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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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이해가 가는데... 꽃분아빠 2002.02.05 196
친절한 답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구름을 성령으로 해석하는 것의 근거를 찾을 수 없었거던여.
그런데...수건에 대한 해석에는 동의를 할 수 없습니다.여기서 모세의 영광이 사라져갈 영광으로 나오는데요.즉, 율법의 영광과 의의 영광을 대비하여 설명하면서 의의 영광이 더 빛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즉, 모세의 얼굴의 영광은 율법의 영광이라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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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은 이해가 가는데... 이근호 2002.02.05 182
모세의 수건은 하나님의 영광을 인간들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뒤집어 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세의 수건 자체가 결국 주의 영에 비해서 사라질 영광이라는 말이지 모세가 받고 온 하나님의 영광, 그것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님의 영광을 보았던 사도 바울, 그는 성령 안에서 비로소 주님과 더불어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토록 무서웠던 돌비의 문자나 모세의 수건을 제대로 대체하는 주의 영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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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름은 이해가 가는데... 꽃분아빠 2002.02.05 168
자꾸 질문해서 죄송한데요.아무리 보아도 모세의 얼굴의 영광은 율법의 영광인 것 같아요.즉, 사라질 영광
7절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13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것 같이 아니하노라
분명히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가리기 위하여 수건이 등장하는데...모세의 얼굴의 영광은 사라지는데 그 영광 마저도 수건으로 가리웠는데, ... 하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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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구름은 이해가 가는데... 이근호 2002.02.06 180
꽃분아빠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라질 영광이다'는 것은 지상에서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상에 나타날 더 큰 영광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체적으로 지니고 계시는 고유의 영광이 없을 질 리가 있겠습니까? 이 영광의 차원을 충실히 유지하는 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는 그 비우심을 증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빌 2:5-9) 이 '비우심'의 영광이 과거의 영광성을 대체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고린도후서에서 말씀하시는 바입니다.
만약 귀하께서 하신 논리라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 하나님 자신이 지니신 거룩함에서 오는 두려움 같은 것(이사야 6:1-6)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희석시킬 중간 물체의 값어치의 경중에 관한 이야기로 전락되고 마는 것입니다.
-------------------------------------------------------☞ 믿고도 떨어지나요? 무명씨 2002.02.07 176 Name 무명씨 Subject ☞ 믿고도 떨어지나요? 재미있군요. 잘 보셨습니다. 1. 당연히 떨어지지요. 성경은 믿은 자들에게 천국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2. 그리고 가나안은 천국이 아닙니다. 3. 모세는 왜 걱정합니까? 중요한 것은 본인입니다. 4. 그리고 성령이 다 하신다는 것도 오해입니다.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되진 않습니다. 창조주를 그렇게 오해한 것이죠. 천국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해 버린 겁니다. 가나안은 안식의 땅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아닙니다. 신약의 성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 오늘날에 있습니다. 모세는 종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개인의 구원과 결부시키려 마십시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완전한 자는 어디 있으며 가나안 땅에 살던 자들은 무엇입니까? 후자는 천사들입니까?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그 일이 있으며 그 질서가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를 무시하는 것도 적은 잘못은 아닙니다. ------------------☞ ☞ 믿고도 떨어지나요? 꽃분아빠 2002.02.07 164
┃[무명씨님께서 남긴 내용]┃재미있군요. ┃잘 보셨습니다. ┃1. 당연히 떨어지지요. 성경은 믿은 자들에게 천국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자에게??? 아님 애초에 약속이 없는지???
┃2. 그리고 가나안은 천국이 아닙니다.
제가 가나안을 천국이라고 하였나요? 천국을 상징이라고 했지요.
┃3. 모세는 왜 걱정합니까? 중요한 것은 본인입니다.
중요한 것은 본인 맞는데, 근데 왜 제 일에 간섭하져? 그저 궁금할 뿐이지 제가 걱정한다고 했나요?
┃4. 그리고 성령이 다 하신다는 것도 오해입니다.
그럼 누가 하져?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되진 않습니다. 창조주를 그렇게 오해한 것이죠. 천국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해 버린 겁니다. 가나안은 안식의 땅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아닙니다. 신약의 성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 오늘날에 있습니다. 모세는 종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개인의 구원과 결부시키려 마십시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완전한 자는 어디 있으며 가나안 땅에 살던 자들은 무엇입니까? 후자는 천사들입니까?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그 일이 있으며 그 질서가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를 무시하는 것도 적은 잘못은 아닙니다.
우쨌든 성경을 근거로 답변이 되지 않아서 머 별로 자세히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없네요.가능하다면 성경을 근거로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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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믿고도 떨어지나요? 무명씨 2002.02.08 128
성경을 근거로 답을 하라니 참 황당하군요. 성경을 근거하지 아니한 것이 아닌데 말이죠. 님도 성경을 우상시 하는 것 같군요. 성경 전체에 대한 오해를 가진 사람 같군요. 말씀을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을 위해 성경이 쓰여졌으니까요. 즉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읽어서 알 수 없게 하셨고 아버지의 사랑을 입은 자들에게만 은혜로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구지 성경 구절들을 들이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가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 풀어준 것에 대해 또 구절을 제시하라니 황당할 수 밖에요.성경은 따지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들을 귀 있는 자가 듣게 되는 것이며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꽃분아빠 2002.02.08 132 Name 꽃분아빠 Subject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제가 잘못 알았습니다.무명씨 감사합니다.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무명씨 2002.02.08 130
저도 좀 화를 낸 것은 죄송하게 생각 합니다. 앞서 질문하신 것 중에서 좀더 자세하게 답변을 드릴까 합니다.
>그럼 어떤 자에게??? 아님 애초에 약속이 없는지???택하심은 곧 생명책에 기록한 것인데 천국에 들어감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택함입니다. 사탄도 이것에서 그 백성들을 끊어지게는 못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보혈의 공로를 인한 죄사함이며 그것으로는 멸망받을 죄에서의 건짐을 받습니다. >그럼 누가 하져?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내어 주셨다 했으며 성령도 아버지의 성령이라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 성부께서만 하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택하셨고 부르셨으며 아들이 교회의 터를 닦았고 성령은 그 위에 교회를 건축하십니다. 권한은 다 아버지께 있으나 일하심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왠 죄송?????? 꽃분아빠 2002.02.08 138
Name 꽃분아빠 Subject 왠 죄송?????? 첫줄만 봐도 아래의 것은 읽을 수가 없네요.무명씨께서 왜 죄송한지 모르겠습니다.무지를 깨우쳐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더이상의 답변은 원하지 않습니다.제발 답변하지 마세요.답변이 오면 저한테 메일로 도착을 하게 되는데, 솔직히 귀찮거덩여.행복한 하루 되세요. ################################################왜 초보 2002.02.05 248
신앙의 초보자입니다. 여기를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저의 궁금한 점은 예정론이 무엇인지 궁금하구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고 왜 누구는 구원 받고 누구는 구원받지 못하는 것인가와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두어서 인간을 죄인으로 만드신 것인지 인간의 자유의지란 것이 무엇인지 하여튼 수준이 많이 낮은 질문인 것 같습니다.초보임을 용서하시고 목사님의 가르침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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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근호 2002.02.06 266
하나님이 제시한 예정론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이 죄인됨을 인정 못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다. 인간들은 자신이 전적인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구원하기도 하고 신의 차원에 돌입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이디어 조차 전적인 죄인이기에 무심코 나올 수 밖에 없는 죄라고 규정해 주기 위해서 로마서 9:9-25의 말씀을 통해서 인간 사고의 한계를 지적해 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종교생활(교회 생활)을 하면서 늘 예정론을 빼놓고 무엇이든지 생각하려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생활은 무용지물인 것을 아셔야 합니다.
참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이나 다름박질의 효과를 통해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정된 자만을 위하여 흘리신 그 보혈의 피의 능력으로만 구원하십니다.
바로 이 점을 지적하기 위해 선악과를 심은 놓은 것입니다. 즉 인간이 자기 살기 위주로 나아가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 위주로 존재하는 피조물로 이해하는가 하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악과를 심어 놓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심어놓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사용했지요(자유 의지라는 것은 논리상 성립되지 않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판단에 앞서 그 어떤 경로라도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죠). 여기에 대해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로 맞섬으로써 하나님의 하나님됨을 확실히 두시려는 것입니다.
끝으로 다음의 말씀을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 11:35-36)
과연 누가 먼저 주님께 드려서 그 댓가로 구원된 자가 누가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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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질문자 2002.02.06 279
사람의 마음속에 천국이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볼수가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고 합니다.이 너희 안에 서 있는 예수님을 가르치는 것인지아니면 인간의 마음속에 천국이 있는지?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너희안에 있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가 바로 이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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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은? 이근호 2002.02.06 343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 이 후와 이 전을 구분하셔야 합니다. 누가복음의 그 예는 예수님 자신을 두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 밖의 예수님이 우리 안의 예수님이 됩니다.(우리가 예수님을 포함시키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 만약 이렇게 주장하면 "내가 곧 예수이다. 나의 행동이 모두 예수의 행동이다!"라는 쪽으로 미끌어져 가버립니다. ㅡ성령 안에서 같은 거처가 된다는 뜻임. 요한복음 14:23)천국도 이와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은 참 하나님의 통치를 뜻합니다. 예수님에게 처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누가복음) 그러나 예수님이 주의 자리에 앉음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통치가 곧 천국이 됩니다. 이것을 골로새서 1:13에서는 '아들의 나라'라고 표현해 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곧 천국이 우리 안에 있는 셈이 됩니다.
목사님들이 설교하실때 이런 입장에서 누가복음을 거론하면서, "오늘날 우리 심령의 천국이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통치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라고 했을 때, 교인들은 그 본문에서 바로 이런 사실이 도출되는 것으로 오해 할 소지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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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