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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보다 깊은 율법의 이해가 이어야 할 것입니다 ] 2001년 09월 16일 -묻고답하기로마서

[보다 깊은 율법의 이해가 이어야 할 것입니다 ] 2001년 09월 16일 -

이름 : 관리자(IP:122.47.55.30)

작성자 [ 목회자 ] - 2001년 09월 16일 오전 00시 47분에 남기신 글

ⓝ 보다 깊은 율법의 이해가 이어야 할 것입니다

보다 깊은 율법의 이해가 이어야 할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이 불완전하거나 또는 틀렸다면 그리고 율법을 인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인정할 수 없음과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율법의 요구는 하나님께서 거룩한 것같이 우리 또한 거룩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의에 이르기를 원하며 결국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율법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죄인된 사람의 대한 구원의 사랑은 사실상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철저히 육신에 속하여 육의 정욕을 쫓는 우리들에게 명하신 규례와 법도와 계명을 쫓아 구원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연약한 육체를 입은 우리는 항상 세상에 속하여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 만세 전 약속하신 구원의 언약을 꼭 지키시기 위해 오래 참으심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해 믿음으로 율법의 요구인 거룩함을 이루셨고 그리고 믿음에서 난 의와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대한 자신의 사랑, 죄인된 자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독생자 되신 예수님의 죽음 통해 완전하게 이루셨던 것입니다. 더 이상에 죄인된 우리를 구원할 완전한 율법은 없습니다. 구약율법에 숨겨져 있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대로 이 땅에서 모든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는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시키려왔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율법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아니될 것입니다. 물론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안한다 라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어찌되었던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십자가를 짊어질 어린양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곧 죄인된 우리를 구원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믿고 행하여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믿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요구인 의를 이루었습니다. 의를 이루었다는 것은 구원받은 것으로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구원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신약의 율법은 어떻습니까 .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 명하고 계십니다. 구약의 율법과 같이 계명을 지키어 율법의 요구인 의를 이루고 구원을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구원의 약속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구원을 받아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꼭 우리가 명심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계명은 율법이며 율법은 행위가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율법의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은 율법이며,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 하는 능력과 지혜가 됩니다.
예수님께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신 계명된 율법을 어떻게 지키셨는지와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 곧 사망에서 부활할 수 있다는 구원의 믿음을 하나님께 어떻게 증거하셨는지 예수님의 믿음의 행위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깊은 깨달음이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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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구득영 ] - 2001년 09월 16일 오전 01시 26분에 남기신 글

이런 글에 리플을 달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몇 달 전에 어느 사이트 게시판에서 안식일교회 교인들과 약 두 달 정도 글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안식일 교회 교인들의 주장을 다시 듣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합니다. 안식일교회 교인들도 율법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더욱더 강조하고 있음을 상기 드리고 싶군요.
폐일언하고, 한가지만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목회자님은 과연 다음 말씀을 지킬 수 있습니까?
(마 22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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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9월 16일 오전 07시 35분에 남기신 글

율법이 온 것은 죄를 더욱 더 짓게 하기 위함입니다.(롬 5:20) 우리가 율법을 더욱 잘 지켜서 율법이 완성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인해 죄를 더욱 더 짓게 되므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래의 취지가 완성되는 겁니다. (롬 7:13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지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귀하가 '목회자'라는 아이디를 사용했기에 묻습니다마는, ' 죄가 안되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이라고 가르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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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목회자 ] - 2001년 09월 17일 오전 02시 40분에 남기신 글

ⓝ 율법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목사님의 글 잘 읽어보았으며 저에게 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1. 율법이 온 것은 죄를 더욱 더 짓게 하기 위한 것이다(롬 5:20) 이러한 한 구절가지고
율법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a. 롬7:7 구절에서는 율법이 죄냐 그렇치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
암지 않고는 내가죄를 알지 못하였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
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b. 또한 율법의 계명은 생명에 이르게한다고 말씀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 증거하고있읍니다.
[롬 7: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롬 7: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롬 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c. [시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
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시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
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 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
실하여 다 의로우니
[시 19: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11]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 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2. 우리가 율법을 더욱 잘 지켜서 율법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인해 죄를
더욱 더 짓게 되므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래의 취지가 완성되는 겁니다. (롬
7:13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
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지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a. 목사님 말씀대로 우리가 율법을 잘 지켜 율법이 완성되거나 완성시키는 것이 아닙
니다. 그러한 자는 스스로 자기가 예수님이다 라고 칭하는 자들이지요 율법은 이미
예수님께서 완성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완성된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완
성된 율법은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 믿음에 속한 자들이 지키는 것이 되었습니다.

b. 율법은 죄를 짓게 하는 그런 몹쓸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죄를 짓게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구원자가 아니시지요. 오히려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이
라 말씀하셨습니다.
[딤전 1:8]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줄 우리는 아노라
[딤전 1:9]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딤전 1:10]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롬7:13절을 인용하셨는데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지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선한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율법입니다. 이 율법의 계명을 통해 은밀한
죄를 숨기거나 변명할수없도록 확실히 드러내고 그 결과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을
통해 심히 죄가 되게 하여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c. 율법은 하나님의 법이며 철처히 육신에 속하여 죄아래 팔린 자에게 적용되는 것입
니다. [롬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에 속하여 육신을 좇지아니하고 영을 쫓는 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 할 것입니다[롬8:2]
이 법이 바로 예수의 보혈의 피로 완성시킨 율법입니다.

3. 귀하가 '목회자'라는 아이디를 사용했기에 묻습니다마는, ' 죄가 안되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이라고 가르치십니까?

성경은 구약의 율법이 만여가지나 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이러한 구약의 율법의 계명을 단 한가지로 사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인 사랑을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
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
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
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4. 목사님께서는 율법으로 인해 죄를 더욱 더 짓게 되므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래의 취지가 완성되는 겁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기 위한
것이라 말하고싶습니다.
곧 율법의 요구는 거룩함으로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거룩하게
하여 결국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러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렇게 저는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완성된 율법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법이라 말하며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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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9월 17일 오전 06시 58분에 남기신 글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 그런데 말이지요 귀하께서 하신 다음의 말씀을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군요. 즉 " 우리는 이러한 완성된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완성된 율법은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 믿음에 속한 자들이 지키는 것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계속 '지킨다'는 말을 두번씩이나 사용하고 더 나아가서 믿은 자가 율법을 지킨다는 말씀까지 했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완성을 믿는 자가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요? 도리어 예수님의 십자가 완성을 헛되이 하는 게 아닙니까?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라는 말씀과 귀하의 말씀이 정면으로 대 충돌을 일으키네요.

2, 그리고 귀하의 주장은 계속해서 "율법은 나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이다"라는 쪽에 촛점이 있는데 그 이유가 " 율법은 선한 것이기에 우리가 지켜 주어야지만 되지 우리가 안 지켜주면 선한 율법의 선한 취지가 우리 쪽에서 무산되는 것이 아니겠느냐"하는 식으로 논리를 몰아갑니다. 과연 이 주장이 성경적으로 옳다고 보십니까?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니라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갈 3:21)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정면 충돌을 일으킵니다.
결국 귀하께서는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정신과 어긋납니다.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갈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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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목회자 ] - 2001년 09월 18일 오전 00시 29분에 남기신 글

ⓝ 구약의 율법이든 신약의 완성된 율법이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 명하신 계명을 율법이라 칭합니다.

목사님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지나가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깊은 밤입니다.
그런데 제가 주장하고자하는 의도가 잘 전달이 안되는 같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완성시킨 율법을 구약의 율법(모세에게 준 것)과 같은 형태로 보고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러 온 것이라 말하지 않았습니까. 분명 사도바울은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율법의 계명이 사랑이라는 한 계명으로 압축되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에 속한 죄인된 사람들이 구약의 율법으로는 의에 이르지 못하니 예수의 보혈의 피로 완성된 새 율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곧 믿음에서 난 의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믿음에서 난 의도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분명 성경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계명된 율법을 지키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유일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라 성경은 증거하고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이든 신약의 완성된 율법이든 이 모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 명하신 계명으로 율법이라 칭합니다.
참고로 성경은 우리가 말하는 것같이 구약의 율법이라 또는 신약의 율법이라고 명확히 구분하여 말하고있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하나님의 계명은 모두 율법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속하여 ( 육신에 속한 구약의 율법아래에서 벗어난 자 곧 죄 아래에서 벗어난 자) 우리는 구약 때와 같이 하나님의 계명된 율법을 꼭 지켜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완성된 계명 말입니다.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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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전도자 ] - 2001년 09월 18일 오전 02시 42분에 남기신 글

ⓝ 율법(Law)과 말씀(Word) 에 대한 기본이해

제가 공부한 것 한번 올려보았으니 잘못된 점 비판해주시기 바랍니다.

율법(Law)이라고 하는 것은 말은 3가지 뜻이 있습니다.
1) Natural Law(만유인력) 2) Moral Law(사람의 양심) 3) Written Law(모세오경)
말씀이라는 것은 또 다른 차원입니다. 보통 Logos라고 하는 차원입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라고 하는 말" 은 Logos적인 의미이고
영어표현으로는 Word of God 이라고도 합니다. 영어성경에서 보시면
Law라고는 안하고 Scripture라고 합니다.
유대교에 말하는 Torah라고 하는 것은 Word of God에 가까운 개념이고
바울이 주장한 신약의 신학은 검증되지 않은 영지주의적인 신학이고
Word of God(Torah)중에서 모세의 Law는 확실한 검증된 말씀이니 이것만이
참되다 라고 인식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때에 아마 이들의 눈도
열어주실 것 입니다.)
로마서에서 율법이라고 한 것은 처음에 언급한대로 3가지가 다 포함되는
개념이며, 이것은 Logos 가 아니고 , 피조된 원리나 어떤 의도가 있는 말씀이라는
차원에서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없다는 뜻이고, 특히 모세의 율법은 인간의 Sin을
드러내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차원이 있고, 즉 죄를 드러내는 것이
우리에게 결국 유익이고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권능(Power) 이라는 개념이
바울의 생각이며, 절대로 이것의 용도가 부정되거나 없어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시기에 그렇습니다.
(물론 그리스도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님)
바울이 율법의 권능은 사망이다라는 한 것은 이렇게 긍정, 부정의 뜻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용도는 믿는 신자에게는 당연히 폐기되었지만, 불신자에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아직도 절대로 필요한 구실을 한다는 뜻에서 Law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Logos) 그보다 하위개념인 Law 때문에
계속 어려움을 당하고 실족하면 그는 Logos가 없다는 뜻이며 이것 때문에
바울은 몸부림을 쳤고, 결국 참 Logos가 그리스도며 그의 영이 우리를
Law에서 해방시키고 또, Law에 대한 참 인식과 깨달음으로
즉 Law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고 모든 것이 다 은혜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를 죽이는 줄 알았는데 그 길이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에게 인도한다라는 말과
같으므로 그리스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한 신학의 파라독스인데요,
또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종이면서, 자유자라는 바울의 표현도 아마 율법에
대한 그의 정의와 일맥상통하고,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말하면(about God) 이것은
항상 모순에 빠지게 되며(인간의 지혜) 하나님을 말할 때만(of God)이
진짜 신앙(Faith)라는 것입니다.
즉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기에(about God) 항상 모순에 빠지고 하나님의 말씀
(of God)만 진리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신학을 포기할 수도 없고, 설명을 안할 수
없는 실정에서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위안이 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세상학문을 빨리 초월하는 것이(모르고 초월했다고 하면 안됨) 또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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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9월 19일 오전 06시 48분에 남기신 글

ⓝ ☞ 율법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지킨다는 말입니까? 어느 정도 지키는 것이 "사랑"을 지켰다고 할 만한 수준에 도달될까요?
예를 들면," 이웃을 사랑하라" 할 때 어떤 자까지를 '이웃'이라는 범주 안에 넣어 줄 수 있습니까?" 목회자 시니까 교인들에게 설교할 때 설마 이 범주를 말씀 안하고 지나치는 않은 줄로 아는데.......
만약에 바리새인들처럼 세세한 세부 사항까지를 목회자(설교자)가 언급해 주지 않는 목회자라면 그 사람은 참으로 자기 말에 무책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는 할 때에 과연 쉬는 시간 간격을 전혀 두지 않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까? 만약 이 말이 어폐가 있다면 그렇다면 어떤 기도 기준을 목회자(설교자)가 교인들에게 지시합니까? 그 제시하는 기준이 보편적으로 합당하고 타당한 근거가 무얼까요?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지켜내기 위해서 목회자(설교자)는 교인들에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제 2의 법과 규칙으로 규제를 추가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처럼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고 할 때에 어느 목사의 어떤 보조적 규칙이 가장과 보편성이고 타당성 있는 것라고 확답할 수 있겠습니까?
목회자께서 아직도 '율법 지키기'에 매여있고 그것으로 목회를 시도한다고 한다면 목회자 본인은 교회 안에서 목회자만이 갖는 입지와 거기에 부가되는 권위성은 인정받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혀 교회가 아닌 사이비 단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될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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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목회자 ] - 2001년 09월 20일 오전 01시 28분에 남기신 글

ⓝ [롬 13:8]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조회수 [ 31 ]

목사님,
하나님의 계명인 사랑을 지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 사이비단체로 전략할 만큼 위험한 짓인가요.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이라 증거하여합니까.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인 사랑을 지켜 행하여야 한다 말하고있는데 믿지 아니하시네요. 율법은 선하며 자유케하는 온전한 것이며 이외 아래 말씀처럼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데 목사님은 성경을 부정하시거나 부분적으로 인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잘 읽어보시지요 저에 말이 아닙니다.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시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시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 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시 19: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11]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 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 나게 하소서

사랑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성경은 증거하고있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으며 예수님 또한 우리에게 사랑하라 말씀하셨는데 이내용이 추상적으로 보이십니까. 온 성경은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요.
목사님께서 질문한 내용입니다. ---- 그러면 '사랑'을 지킨다는 말입니까? 어느 정도 지키는 것이 "사랑"을 지켰다고 할 만한 수준에 도달될까요? 예를 들면," 이웃을 사랑하라" 할 때 어떤 자까지를 '이웃'이라는 범주 안에 넣어 줄 수 있습니까?" 목회자 시니까 교인들에게 설교할 때 설마 이 범주를 말씀 안하고 지나치는 않은 줄로 아는데....... ---- 라고 질문하셨는데 그렇다면 목사님 예수님의 대속 죽음이 어떠한 죄인된 자들까지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셨나요 또한 이방인들 중에서 타인이나 외모나 뇌물을 받고 구원에 구별을 두고 차등을 두셨습니까.
목사님 사랑은 먼저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네 자신같이 말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룬 것이다 성경을 말하고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말씀하신 사랑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들을 깨닫고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이라는 것이 어디 한정되어있는 것입니까. 내 곁에 내 주위에 곧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원수된 자 까지도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은 자들을 까지도 매달리신 십자가 위에서 이들을 위해 끝까지 사랑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이며 죄악으로 더럽고 냄새나고 추한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이처럼 먼저 사랑의 본을 보이셨는데 " 어떤 자까지를 '이웃'이라는 범주 안에 넣어 줄 수 있습니까? , 사랑을 지킨다는 말입니까? 어느 정도 지키는 것이 "사랑"을 지켰다고 할 만한 수준에 도달될까요? 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답을 하여야하나요.
목사님 저도 질문합니다. 성경적으로 답하여주시지요
1. 하나님은 사람사랑하기를 얼마 많큼 하셨을까요 .
2.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를 얼마만큼 하셨을까요.
3. 그렇다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여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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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9월 20일 오전 09시 30분에 남기신 글

진작 마지막 세 가지 질문을 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사랑'을 말씀하기 전에 인간이 해 낼 수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님을 율법을 통해서 언급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한 일서 4:10)
즉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화목제물이 아니면 하나님은 그 외의 것을 사랑으로 간주하시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차원에서부터 출발해 볼 때 사랑은 완전한 의로운 자의 몫이지 의롭지 않는 자가 행하는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약 요한 일서 3:16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즉 온전한 사랑을 알지 못하면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야만 사랑"이라고 가르쳐 버리면 이것은 '주님의 사랑이 뭔지도 놓친 것이 되고 또한 고린도전서 13:3 의 말씀과도 충돌됩니다. 즉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런 유익이 없느니라"라는 말씀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의 사랑은 어디까지나 은사이지 우리가 실천해야지만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늘에서 오게 되어 있지 우리가 실시함에서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미 있고 주어진 사랑을 증거하기 위하여 성도들은 성령에 의해서 형제를 목숨을 버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형제를 목숨 바친 분들에게 물으보세요. "당신이 사랑을 행했습니까?" 그러면 그들이 무어라고 답변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순전히 주님의 사랑입니다"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베드로전서 4:10-11 말씀에도 부합되는 겁니다. "각각 은사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거샅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이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으니라" 이 말씀의 끝에 보면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대목이 분명히 나오지요?
일은 분명히 인간이 했는데 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습니까? 이는 성도가 아는 모든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준 능력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성도는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새로 지음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엡 2:8-10)
이처럼 성경은 일관되어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사랑은 계명이니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자"고 나옵니다. 그렇게 되니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행한다는 인간의 행함을 증거하는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율법을 인간이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시고 그 인간이 해 낼 수 있는 최종점에 사랑이 있기에 그 사랑마저 인간이 해 낼 수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이 '사랑'이라는 계명을 우리보고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기신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의가 스스로의 능력과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 왔을 때 우리에게는 회개밖에 없다는 사실을 목사님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왜 회개할 생각보다 그것을 실천할 의지가 앞서 작동할까요? .
왜 이런 왜곡된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목회자 자신이 믿음이 없기에 '믿음만으로'를 믿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행함으로 밀어붙이는 겁니다. 주님께서 성도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목회자가 자가 목회 영역에서 성도들의 활동을 자기 눈으로 확인해서 비로소 우리 교회가 참 교회이며 내가 참 주의 종인가 점검하고 싶어하는 겁니다.
제가 과도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이비는, 회개대신 실천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회개하면 성령께서 우리들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실시해서 그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주시는 능력으로 일하게 하여 그 영광은 오직 에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데, 믿음이 없는 인간은 회개대신 자신이 나서서 자기 실천력을 하나님의 일을 모방해서 자기로 인해 하나님 영광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증거해야 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자신의 목회 은사를 증거하는 셈이 됩니다.
정말 믿는 목회자라면 "우리는 죄인입니다. 오직 죄인 같으면 이런 엄중한 말씀을 주었겠습니까. 순교를 해도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화목제물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임을 믿읍시다"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자 이제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차례이군요
1.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사랑했습니다. 이 사랑을 인간이 감히 참여 할 수 없습니다.
2. 예수님의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으시고 오로지 택한 자 (이 점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신약 신약까지 일관되게 하나님은 언약된 것만을 위해 일하십니다)을 위하여 내어 주었습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 앞에서 날마다 회개할 따름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그 인간을 가지고 진정 주님의 사랑을 펼칩니다.
그 예로서 누가복음 7:36-50에 나옵니다. 죄인인 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옥합을 깨트려 그 향수로 예수님을 발을 씻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다시 말씀드릴까요? 사랑이 어디서 나온다고요? 회개 없는 사랑이 있을까요? 이 여인이 자신의 사랑의 실천력을 발휘하고 있는 겁니까? 회개하는 자만이 참된 사랑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놀라운 사랑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순전히 주님의 능력으로 만으로 말입니다. 진정 귀하께서 이런 믿음이 있다면 왜 우리는 죄인인가 만을 설교하고 나머지 교인들의 회개는 성령님에게 맡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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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목회자 ] - 2001년 09월 21일 오전 02시 26분에 남기신 글

ⓝ 분명히 성경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답변 잘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저가 말하고싶은 것을 목사님께서 잘 이해 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 글에 대하여 아주 극단적으로 몰고 가시는데... 목사님의 글에 다 동조하지는 않지만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생각이나마나 하나님의 뜻이며 복음이 아닙니까. 또한 김윤구 목사님의 글에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이 쓰신 글 내용 이외에 것을 저는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어라 설명하여야할지 모르겠군요 예를 든다면 저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이야기한다면 어찌 믿음이 사랑의 힘으로 나옵니까. 예수님을 통해 나오지요 하며 아주 잘못된 것처럼 말하실 것 같습니다. 저가 말하는 사랑은 인간적인 육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 보혈의 피로 이룬 사랑을 십자가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더 나아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 5:6)뿐만 아니라 거짓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딤전1:5)도 말하고 싶습니다. 또 더 나아가 거짓 없는 믿음과 사랑은 예수님이라 증거하고 싶습니다.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딤전 1: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율법에 대한 이야기도 이와 같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지혜이며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남을 사랑(예수의 사랑으로)하는 것은 분명 율법의 완성이라 하였습니다. 사랑은 죄와 허물을 덮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주옵소서" (예수 외에 죄인이 죄인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말이 아닙니다) 결국 사랑은 아무에게도 악을 행치 아니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십자가의 사랑으로 율법의 요구인 거룩함을 이루어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로 율법(구약의 율법)을 폐하고 믿음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자보세요. 저가 질문한 것과 목사님이 답변한 내용이 틀리지 안습니까... 그리고 저가 성경적으로 답하여 주십사한 것은 성경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하나님의 계명인 사랑을 지켜 행하라 증거한 것을 보고 읽으셔도 믿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질문 1. 하나님은 사람사랑하기를 얼마 많큼 하셨을까요 .
목사님의 답변 -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사랑했습니다. 이 사랑을 인간이 감히 참여 할 수 없습니다.
듣고싶었던 답변 -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질문 2.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를 얼마만큼 하셨을까요.
목사님의 답변 - 예수님의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으시고 오로지 택한 자(이점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신약 신약까지 일관되게 하나님은 언약된 것만을 위해 일하십니다)를 위하여 내어 주었습니다.
듣고싶었던 답변-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 버리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 그렇다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여야 합니까.
목사님의 답변-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 앞에서 날마다 회개할 따름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그 인간을 가지고 진정 주님의 사랑을 펼칩니다.

듣고 싶었던 답변- a. 성경은 분명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또한 구체적을 말씀하셨습니다. 곧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1 5: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요1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b.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1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1 3: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c. 이렇게 누구든지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는 것이며[고전8:3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며[롬 8:39]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4. 목사님, 새 계명된 사랑은 우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며 우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다 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창세전 만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계획하신 구원입니다.
[요1 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바 말씀이거니와
[요1 2: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요1 3:11]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요1 3: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요2 1: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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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9월 21일 오전 06시 57분에 남기신 글

목사님은 분명히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3. 그렇다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여야 합니까.
ː목사님의 답변-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 앞에서 날마다 회개할 따름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그 인간을 가지고 진정 주님의 사랑을 펼칩니다.
ː듣고싶었던 답변-
ːa. 성경은 분명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또한 구체적을 말씀하셨습니다. 곧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ː[요1 5: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ː[요1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ːb.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분명히 말씀하셨읍니다.
ː[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ː[요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ː[요1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ː[요1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ː[요1 3: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여기에서 제일 마지막에 있는 말씀 즉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시는 줄을 아느니라"에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 지를, 즉 사랑이라는 계명을 준수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에 관해서 목사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의 답변을 보게 되면 예수님이 성도 안에서 행하는 바는 전혀 나타내지 않고 오로지 거듭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제는 사랑이라는 계명을 성취할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의 방법 또한 구체적으로 주셨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 일서 1:9-10에 보면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하 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게 되면 그 말씀 (즉 사랑하라는 계명이나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니라 라는 말씀이이나 여러 기타의 말씀)라는 말씀이 우리 속에서 무엇을 발생시키느냐 하면 우리의 죄를 발생시킵니다. (그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고, 또 알았다하더라도 심각하게 죄라고 생각 안한 죄)
만약 그렇지 않고 전혀 죄책이 없이 말씀을 실시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무언가 하면, 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죄인이며 예수님의 화목제물만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의가 계속해서 그 사람 속에서 살아나야 하는데 이런 사람에게는 이미 소실되어 버린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이 성경을 보게 되면
"내가 성경에서 이러 이러한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을 잘 알고 있다는 바로 이점이 곧 바로 내가 올바른 성도임을 증명하는 바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를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올바른 성도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곧 이것이니 그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을 위하여 왜 예수님이 아직도 내 안에 있어야 하는가? 이것은 날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그 능력으로만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랑이라는 말씀 앞에서 새롭고도 새롭게 자신의 죄를 발견해야 한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만, 우리 힘으로 이 사랑의 계명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성령이 임재하시는 이유도 없어져 버리고 예수님이 여전히 우리 안에 계셔야 될 이유도 없어져 버리고 남는 것은 그저 예수님께서 방관자처럼 우리가 그의 계명대로 잘 지키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입장에 놓이게 될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자는 예수님의 구속의 은총을 증거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신자됨을 증거하는 자 밖에 안되는 주님의 종이 아니라 자신의 종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를 사랑해야 된다"고 하셨는데 사랑이 뭡니까?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 12:25) 예수님께서 평소에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를 잃어버려라"는 말씀은 모두 오로지 '주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이 주장이 옳다면 적어도 '사랑'을 논하면서 '자기 부인'도 겸해서 튀어나와 주어야 정상적인 사랑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율법 해석과 그 정신 세계를 정죄하고 공박하는 취지로 이루어졌음을 상기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사람들이 성경을 대하면서 과연 어떤 식으로 사두개인적으로 기울고 바리새인적인 정신구조로 전환되는 것을 늘 살피는 것이 목회자로서 바른 십자가 이해이자 올바른 성경 선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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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목회자 ] - 2001년 09월 22일 오후 5시 34분에 남기신 글

1. 목사님의 글
a. 예수님이 성도 안에서 행하는 바는 전혀 나타내지 않고 오로지 거듭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제는 사랑이라는 계명을 성취할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b. 다시 이야기합니다만 우리 힘으로 이 사랑의 계명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답변
위의 내용의 글은 목사님께서 저의 글을 보시고 저가 마치 그렇게 생각하고있고 그렇게 글을 전개하고 있다고 하셨으나 저의 글 어느 한 부분도 그런 말를 쓰고 주장하지 않았음을 명백히 말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의 글을 이런 극단적으로 몰고 나가지 안았으면 합니다. 좀더 자세히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이해 하셨으면 합니다.

2. 목사님의 글
왜냐하면 목사님의 답변을 보게 되면 예수님이 성도 안에서 행하는 바는 전혀 나타내지 않고 오로지 거듭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제는 사랑이라는 계명을 성취할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의 방법 또한 구체적으로 주셨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 일서 1:9-10에 보면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하 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게 되면 그 말씀 (즉 사랑하라는 계명이나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니라 라는 말씀이이나 여러 기타의 말씀)라는 말씀이 우리 속에서 무엇을 발생시키느냐 하면 우리의 죄를 발생시킵니다. (그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고, 또 알았다하더라도 심각하게 죄라고 생각 안한 죄)

답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게 된다면 그 말씀이 우리 속에 죄를 발생시키다는 것은 정말로 목사님의 억측이며 궤변입니다. 목사님의 생각과 철학이 잘 녹아져 있는 것 같습니다 .
또한 목사님께서 요한 일서 1:9-10에 보면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 구절을 인용하셨는데 사랑의 계명과 연관시키기에는 아주 적절치 못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요1 1:5-7절 과 비교하고 연이어 빛되신 하나님 세상에 충만하여 모든 은밀한 것까지 감찰하시고 들춰내시는 하나님 앞에 죄를 숨기는 자와 회개하는 자를 비교 말씀하는 것입니다. 잘 읽어보시지요
[요1 1: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1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요1 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1 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3. 목사님께서 쓰신 글
"주를 사랑해야 된다"고 하셨는데 사랑이 뭡니까?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 12:25) 예수님께서 평소에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를 잃어버려라"는 말씀은 모두 오로지 '주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이 주장이 옳다면 적어도 '사랑'을 논하면서 '자기 부인'도 겸해서 튀어나와 주어야 정상적인 사랑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답변-
목사님은 지금 십자가와 그리고 죄와 회개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여기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글과 인용하신 성경구절이 율법된 사랑의 계명과 연관이 되는가요 잘못 인용하신 것 같습니다. 이것 또한 적절치 못하군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저는 이세상의 삶의 생명은 썩어 없어질 육신의 생명이라 말하고 싶은데..... 또한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을 보존하리라 하셨는데 어떠한 생명을 미워하고 어떠한 생명을 사랑하여 영생을 보존하리라 말씀하셨을까요?
저는 육의 생명을 미워하고 영의 생명 곧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얻어낸 영의 영원한 생명을 사랑하여 영생을 얻는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전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고전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그렇다면 자기의 생명을 어떻게 미워하여야 생각하십니까.
저는 십자가에 옛사람을 못박아야 한다고 말하고싶습니다. 그러므로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마귀의 종노릇하는 것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히 2:14-15].
[히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히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마귀는 죄의 삯인 사망으로 우리의 몸을 죽일 수 있지만 영은 능히 죽이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직 영을 죽이시고 살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합니다(.마10:28).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4. 목사님께서 쓰신 글
여기에서 제일 마지막에 있는 말씀 즉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시는 줄을 아느니라"에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 지를, 즉 사랑이라는 계명을 준수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에 관해서 목사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답변
목사님 성경은 꼬리만 혹은 몸둥이만 혹은 머리만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머리는 고등어 몸둥이 삼치 꼬리는 참치인데 서로 비슷하다고 한통속으로 볼 수 있나요
예수님을 두고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가 있고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가 있고 이 두 가지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가 있는 것 아닙니까.
완성된 율법인 사랑의 계명을 이야기하는데 죄와 회개를 이야기하면 비슷하기도 하고 은혜스럽기도 하지만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요
꼭 목사님들이 성도들에게 질문하면 그들이 답하기를 믿음이요 예수님이요 말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이 틀림이 없잖아요 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a. 성경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사실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여러 내용으로 다양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목사님께서 요한일서3장24절에서 질문하셨기에 이 구절의 내용을 가지고 답변합니다.
목사님께서 요한일서 3장 24절의 말씀을 가지고 "사랑이라는 계명을 준수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물으셨는데 이보다는 어떠한 자에게 예수님이 계시는지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22-24절 내용상에서는 분명 예수님께서 어느 누구에게 계시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곧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 에게 예수님은 계신다 밝히고있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성령님께서 증거하신다 하셨는데 이는 거짓 영이 아닌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성령님께서 이 사실을 증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으며 그리스도의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b. 이 구절에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역할은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예수님의 본의 자취를 따른자이며 예수님께서 그 안에 계셔서 계속에서 그의 본을 따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믿음으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짐승된 모습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보이신 예수님 이러한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본을 끼쳐 우리로 그의 자취를 좇게 하십니다.

5. 목사님께서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독사의 자자가 죽음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율법 해석과 그 정신 세계를 정죄하고 공박하는 취지로 이루어졌음을 상기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사람들이 성경을 대하면서 과연 어떤 식으로 사두개인적으로 기울고 바리새인적인 정신구조로 전환되는 것을 늘 살피는 것이 목회자로서 바른 십자가 이해이자 올바른 성경 선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독사의 자식이라 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그리고 뱀처럼 지혜로와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남니다. 하나님의 말씀만큼은 뱀 곧 독사의 자식처럼 지혜와 지식이 가득하여야 할 것입니다. (혹 오해하실까봐 구약의 율법처럼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6. 목사님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에 생각과 지식과 지혜와 철학이 필요 없습니다.
오직 말씀을 성령의 지혜로 깨닫고 그대로 믿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분명 성경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그의 계명은 곧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되로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 계명은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하나님께 들은 계명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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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9월 22일 오후 8시 19분에 남기신 글

귀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게 되면 그 말씀이 우리 속에 죄를 발생시킨다는 것은 정말로 목사님의 억측이요 궤변입니다. 목사님의 생각과 철학이 잘 녹아져 있습니다"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목회자'께서는 성경 말씀을 볼 때 그 어떤 회개의 감정도 전혀 생겨나지 않습니까?
"탐내지 말라"라는 말씀을 보면서 탐심이 전혀 안 일어납니까?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니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라는 로마서 7:7-8 말씀이 전혀 실감나지 않습니까? 왜 이런 성경 말씀들이 귀하의 마음 속에서는 왜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아직도 성경 말씀이 마음 속까지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라는 히브리서 4:12-13의 말씀이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 보면 '벌거벗은 것 같이'라는 표현까지 등장됩니다.
귀하께서는 성경 앞에서 오히려 더 당당해 지십니까? 벌거벗은 것 같은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않을 정도로 완벽합니까?
정말 제가 말이 궤변이고 철학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 히브리서 4:12-13 말씀 같은 것도 귀하께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진 것이 분명합니다. "어? 나하고 상관없는 말이 왜 성경에 끼어 들어가 있지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평소에 늘 자신의 죄가 늘 상 되풀이해서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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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