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가 왜 복음을 못 전하는 이단인지 ? ] 2001/08/11 - 2001년 09월 06일
조용기가 왜 복음을 못 전하는 이단인지 ?
2001/08/11 (02:13) from 211.37.49.12' of 211.37.49.12' Article Number : 117 김상철 Access : 47 , Lines : 1
조용기가 왜 복음을 못 전하는 이단인지 체계적으로 알고픕니다
----------------------------------2001/08/11 (06:35) from 211.229.138.102' of 211.229.138.102' Article Number : 119 이근호 Access : 57 , Lines : 20 질문 자체가 제대로 된 것 같습니다. 즉 "왜 조용기는 이단인가?"가 아니라 "종용기가 왜 복음을 못 전하는 이단인가?"라는 것이 더 바른 말 같습니다. 조용기기 싸가 복음이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교회 존재로서 확인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은 성경 만으로 충분한데 여기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교회가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눈으로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교회라는 종교 단체를 통해서 믿을 만한 것들을 정립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 교회가 부흥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있다는 증거이다.2. 병이 나으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는 증거이다. 3. 방언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고 있다는 증거이다. 4.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무관심하다가 하나님에게 관심을 갖고 교회를 찾아오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전도하는 중이다. 5.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일하기 때문에 우리의 행함에 따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느냐 못되느냐가 결정된다.
아마 이 외의 이유는 특별히 없을 것입니다. 바로 교회 중심과 인간의 행함에 의해 이루어지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구약에서 말하는 우상 숭배요 신약적으로 말하면 이단입니다. 그러니까 조용기만 이단이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가 이단입니다. 그러면 참 성도는 어떤 자입니까? 1. 교회란 예수님을 사랑해서 모인 모임이다. 몇 명이 모이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니다. 2. 병이 낫든 아니낫든 나의 소원은 빨리 죽어서 이 세상을 뜨는 것이다. 3. 방언은 따로 없다. 성경 안이 이미 모든 하나님의 계시는 다 담겨 있다. 4. 하나님에게 관심이 있는 모든 종교의 특징이다. 따라서 그 하나님관은 모두 가짜 하나님에 불과하며 참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5.전도는 복음 안에서만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지 교회 나오고 안나오고와 상관없다.6. 인간의 모든 행함은 죄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바로 여기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2001/08/11 (10:05) from 211.109.168.169' of 211.109.168.169' Article Number : 121 메아리 Access : 58 , Lines : 6
한국교회전체가 이단이라?..... 목사님! 목사님이 가진 마음을 이해할수는 있지만 이제는 목회자다운 어른스러움과 넉넉함을 가지고 한국교회를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조용기 목사님을 존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조금 과격한 표현 같고- 물론 어떤 기준정도에서의 이단을 말씀하시는지는 모르지만 - 더구나 한국교회 전체가 이단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말씀 같습니다. 목사님은 합동측 교단 목사님이시라고 알고 있는데 이단에 소속된 목사님이신가요? 목사님이 속한 교단이 이단이라면 탈퇴하시고 이단이 아니라면 말씀하실 때 격한 표현들을 사용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목사님이나 저나 모두가 다 한국교회에서 기존의 목사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 이 말은 그들이 바른 복음을 전했다는 말이 아니라 주님께서 기존의 목사님들을 통해서 당신의 말씀들을 전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처럼 동일한 환경 속에서 복음의 본질을 외치는 목사님들이 배출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기존 교회가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기존교회가 이단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더 본질적인 복음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 대한 의미를 부정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2001/08/11 (13:45) from 211.228.213.71' of 211.228.213.71' Article Number : 122 이근호 Access : 47 , Lines : 3
합동측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까지 이단입니다. 구원받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될 뿐입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이단이 아니라 올바른 교회라고 여긴다면 그 순간 그 사람의 믿음의 내용안에는 지금도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거룩성 외에 '우리 교회'라는 존재가 우상처럼 삽입해 들어가 있다는 순간입니다. 그 어떤 인간이 되었던 이런 상황을 비켜 가거나 극복할 수 수 없기에 오늘도 우리는 주님의 은혜만 쳐다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 교회'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새언약 뿐입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다음의 성경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쫓으라"(마태복음 16:24)
--------------------------------2001/08/11 (15:43) from 24.165.62.164' of 24.165.62.164' Article Number : 123 게시판 Access : 50 , Lines : 4
이근호씨가 스스로 이단이라는 것이 맞습니다.그는 이단입니다. 그리고 복음이라는 논리를 우상화하는 이단아입니다.
----------------------------------2001/08/11 (15:45) from 24.165.62.164' of 24.165.62.164' Article Number : 124 낮은자리 Access : 46 , Lines : 2
그렇군요..복음을 못 전하는 이단이 있는가하면,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이단도 있군요.....
---------------------------------2001/08/11 (17:46) from 211.228.213.71' of 211.228.213.71' Article Number : 125 이근호 Access : 37 , Lines : 1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라도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 이단 소리 딱 듣도록 전도하실 것입니다. 모두 다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으니 ....
------------------------------- 2001/08/11 (22:03) from 24.25.227.132' of 24.25.227.132' Article Number : 130 .... Access : 14 , Lines : 10
아.. 복음이 궤변처럼 합리화되는 순간이구나...이단의 정의가 저리도 어려운가...? 암튼 목사님.. 건승하십시요..-------------------------------------2001/08/11 (22:22) from 24.25.227.132' of 24.25.227.132' Article Number : 132 .... Access : 9 , Lines : 15
우리가..교회의 존재를 믿는 건.. 교회를 믿음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새언약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께서 친히 그의 피값으로 사신 바 되어 이 땅에 세우시겠다고 한 대로, 구원받은 성도를 성전 삼아 모으신 주님의 몸(무형교회)으로서 이 땅에 출현한 가시적인 교회(유형교회)이기에 그 존재를 믿는 것이며 이를 복음 안에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그렇지 않다면 "우리교회"라는 이름으로.. 예수의 몸을 이루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그 모임은 오늘부터 사라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교회"라는 가시적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우리교회"안에 모인 성도들의 모임이 그리스도 예수의 몸을 이루어 나타난 것임을 복음 안에서 받아들이고 인정한 신앙의 결과가 아닙니까? 그래서 복음으로 세움 받은 성도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의 존재는 마땅히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라는 의미로 복음 안에서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라는 교회로서의 존재를 복음 안에서 받고 인정합니다. 그곳에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부르시고 생명으로 구원하신 복음의 지체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말씀 2
2001/08/12 (19:25) from 211.109.168.169' of 211.109.168.169' Article Number : 140 메아리 Access : 99 , Lines : 27 저는 "지나친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릴 때 정말 이근호 목사님을 비판하기 위한 마음으로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근호 목사님께서 약간은 감정이 상한 듯한 대답을 해오셨기에 다시 제가 쓴 글을 읽으면서 "그럴 수 있겠다"고 스스로 표현의 미숙함을 인정하였습니다. 사과 드립니다."우리교회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복음에 대한 많은 관심과 이해들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여겨집니다. 글들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그러나 조금은 아쉬운 것은 우리들의 신학적 논쟁이 대립적 차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차원 혹은 가르치려는 자세가 아니라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로 서로의 신학을 논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시비를 걸고 비판을 하려고 하면 그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서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더 나은 신학과 더 나은 복음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애쓰는 자들일 뿐입니다. 복음은 간단하다고 생각하면 지극히 간단하고 -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이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이 구원론적인 복음의 핵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초대교회 사도들은 그것만을 힘있게 증거했고 증거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성경의 모든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체계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복음은 많은 다른 견해들을 드러냅니다. 성경전체가 복음이고 성경을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있기에 복음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 예수그리스도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이 복음의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핵심만을 말해야 하지만 그 복음의 핵심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비유들도 필요합니다. 그 비유를 말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그릇들의 부족함 속에서도 복음은 전해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인정하는 자들에 의해서 복음은 앞으로도 증거되어 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지혜가 아니라 말씀 속에 살아있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새생명 창조의 역사는 계속되어 질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성경을 잘 알고 가르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달하는 그릇으로서 자신을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드리는 경건이라고 믿습니다 - 이 말이 이근호목사님께 또 다른 비판거리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인간들의 죄성을 100%인정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된 존재라는 믿음을 또한 100%인정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날카로운 칼날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심판이나 정죄나 저주가 아닌 은혜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 거하여 있는 자는 독을 품지 않습니다 거룩한 영에 의해서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완전하지 않지만 더 많은 부분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기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살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살수밖에 없다고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의 실체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로서- 성령의 내주를 믿습니다 - 우리들을 하나님의 전쟁의 선한 도구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영적전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낮아진 자세로 배우려고 하는 자세로 대화하자는 말이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또 다른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2001/08/12 (20:05) from 211.228.149.248' of 211.228.149.248' Article Number : 142 이근호 Access : 97 , Lines : 3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과 불신자들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슈가 되는 점은 바로 최종 지향성이었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그 사건이 터지게 된 양 대 진영의 신학적 핵심을 상호 파악을 해야만 윤곽이 드러납니다. 단순히 성경 몇 귀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마귀도 말씀을 가지고 사용하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이단으로 규정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에게 충성되다는 바리새인을 독사의 새끼라고 규정했습니까? 둘 다 남의 동네 이야기라고 외면해 버릴 수 있겠습니까? 외면할 이야기 같으면 무엇 때문에 성경에 쓰여져 있겠습니까? 최종적인 결과는, 자기 행함 바에 대해서 스스로 부인 할 능력이나 근거가 그들 속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차라리 자신을 죄인이라는 고백하는 세리를 보고 의인이라고 단정했고, 더 심하게 경우는, 세리와 창기가 바리새인보다 천국에 먼저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더 심한 경우는, 수제자 베드로보고 '사탄아 네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나중에 사도 바울에게도 면박받은 것은 갈라디아서 2장에 나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복음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나란히 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괜찮은 설교, 괜찮은 신학조차도 말입니다.
---------------------------------2001/08/13 (17:07) from 211.109.168.169' of 211.109.168.169' Article Number : 146 나그네2 Access : 67 , Lines : 12
우리는 그 누구도 예수님이나 사도바울의 입장에 서서 다른 성도들을 향해서 바리새인이나 불신자들처럼 정죄할 수는 없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는 고백밖에 드릴 것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순수한 복음만을 추구하고 전한다고 말하는 그 속에도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자기 의"에 대한 전재가 있음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야고보서를 통해서 은닉된(?) 믿음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지만 더 확연하게 드러나고 수없이 강조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강조를 단순히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를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복음과 나란히 둘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균형있는 성경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조심스런 말이지만 복음이나 십자가보다 우선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를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된 자는 이제 구원을 기뻐하는 자가 아니라 그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그의 생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모습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랑은 온유하고 성내지 않고 무례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네요.참고로 갈라디아서 2장 안디옥 에피소드는 베드로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바울신학자 F.F. Bruce는 베드로의 외식이 아니라 바울의 미숙함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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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전도자 ] - 2001년 08월 09일 오후 11시 11분에 남기신 글
ⓝ 복제인간 또는 트렌스젠더
목사님!워낙 요새 많이 질문을 받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요제일감은 뭐 네피림이 생각나는데....이런것 연구해보아야 예수가 안나오지만 그렇다고 묵살할수 도 없고...생물학과 유전학에도 조예가 깊으시니 좀 가르쳐 주십시요... -----------------------------------------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8월 10일 오전 06시 36분에 남기신 글 복제 인간이란 인간의 씨앗을 만드는 배란을 위해 기존 여성의 난자 세포에서 핵을 떼어 내어버리고 다른 남자의 체세포(생각과 관련없는 신체의 다른 부분의 세포)의 핵을 그 속에 집어넣어서 여성의 자궁에서 아기로 키워내는 인간을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자식은 핵을 제공한 그 남자와 동일한 인간이 되니까 이점을 두고 '복제' 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반드시 연구해야 하느냐 하면, 그래야 의학산업에서 필요한 하는 생체나 장기들을 수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을 연구하지 아니하면 모든 의학연구는 더 이상 진보가 없이 더 아는 치료기술이 벽에 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트랜스 젠더'에서 '트랜스'란 변환하는 것을 뜻하고 '젠더'란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性) 정체성'을 뜻합니다. 신체적으로 남성(혹은 여성)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성(혹은 남성)으로 태어난 사람으로서 선천적인 장애인입니다. (물론 후천적으로 정신병으로 여성이나 혹은 남성으로 자신의 성별을 바꾸려는 자가 있지만 이런 자와 다릅니다.)
따라서 인간 복제는 당당히 과학이기 때문에 반드시 허용되어야 하고 또 허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트랜스 젠더는 참 드문 경우이지만 그래도 주의에 있는 신체 장애자와 같이 장애인으로 대해야 합니다. '악마' 들린 자라든지, 동성연애자로 취급해서는 아니 됩니다.
---------------------------------------작성자 [ 여쭙습니다 ] - 2001년 08월 12일 오후 4시 12분에 남기신 글 이목사님 안녕하십니까.다름이 아니라, 질문-답변 코너에 보니까 어떤 분께서 복제인간과 트렌스 젠더에 대하여 질문한 데 대한 목사님의 답변이 아래와 같음을 보았습니다.
=>목사님의 글복제 인간이란 인간의 씨앗을 만드는 배란을 위해 기존 여성의 난자 세포에서 핵을 떼어 내어 버리고 다른 남자의 체세포(생각과 관련없는 신체의 다른 부분의 세포)의 핵을 그 속에 집어넣어서 여성의 자궁에서 아기로 키워내는 인간을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자식은 핵을 제공한 그 남자와 동일한 인간이 되니까 이점을 두고 '복제' 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반드시 연구해야 하느냐 하면, 그래야 의학산업에서 필요한 하는 생체나 장기들을 수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을 연구하지 아니하면 모든 의학 연구는 더 이상 진보가 없이 더 아는 치료기술이 벽에 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트랜스 젠더'에서 '트랜스'란 변환하는 것을 뜻하고 '젠더'란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性) 정체성'을 뜻합니다. 신체적으로 남성(혹은 여성)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성(혹은 남성)으로 태어난 사람으로서 선천적인 장애인입니다. (물론 후천적으로 정신병으로 여성이나 혹은 남성으로 자신의 성별을 바꾸려는 자가 있지만 이런 자와 다릅니다.)따라서 인간 복제는 당당히 과학이기 때문에 반드시 허용되어야 하고 또 허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트랜스 젠더는 참 드문 경우이지만 그래도 주의에 있는 신체 장애자와 같이 장애인으로 대해야 합니다. '악마' 들린자라든지, 동성연애자로 취급해서는 아니됩니다.
=>제가 드리는 질의
뜻밖이었습니다. 제겐 실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1)인간 복제를 찬성하시는 겁니까. "당당히 과학이기 때문에"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과학 옹호론입니까? 인간 복제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목사님 개인적으로 보시기에도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인지요. 목사님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더 알고 싶습니다.
2)트렌스 젠더가 정신병 내지는 장애로 취급된다면 성도착자나 동성연애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선천적인거 후천적인 거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요..이렇게 말하는 제가 남의 사정을 다 모르면서 저 자신 아닌 다른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죄와 정신병을 구분 못하시는 거 아닙니까. 목사님의 충격(제 개인적으로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적인 발언은 그동안 제게 상당한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떤 분한테 들으니 목사님께서도 TV를 아주 잘 보신다더군요. 저로선 세상 문화에 대한 일종의 연구 차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어쨌든 지금 세간에는 하모군인지, 하모양인지 모를 어떤 인간이 설치면서 세상 사람들은 그 인간을 이용한 돈벌이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소수를 옹호하는 사회 일각의 움직임 배후에도 상업주의와 자본주의의 돈신(맘몬)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이 그런 자들에게 주는 눈길은 혐오 아니면 그걸 감싸주려는 인본주의, 그리고 무관심 이 세 가지 중에 하나겠지요.
목사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것은 성경에 나오는 세리나 창기와 같이 그저 주류적인 다수 인간들로부터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소수들이기에 그들을 성적 범죄자 내지는 탐욕자들이 아닌 정신병자 쯤으로 취급하여 그들을 감싸주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다수의 편도, 소수의 편도 아니시며, 오히려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로 기존의 인간 세상을 뒤집어 엎어버리시는 것에 있지 않습니까.여태까지 제가 느껴왔던 목사님의 입장(이미지)과는 사뭇 다른 말씀을 하시는 거 같은데요..제가 목사님을 여태까지 잘못 안 겁니까..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한 목사님의 자세한 "입장 표명"을 요구합니다.
3)제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말씀드리면, 트렌스 젠더는 정신병의 차원을 넘어 분명한 성적 범죄 영역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게 안된다면, 현실(신체적으로 남녀로 구별되어 창조된 엄연한 현실)을 무시한 인간의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인본주의의 발로겠지요. 엄연한 죄악을 자기 정체성 혼돈과 관련된 정신병으로 취급하는 것 역시 인본주의에서 비롯된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목사님의 발언은 인간들의 범죄와 비정상적 상태를 비호하는 말로 밖에는 안들리는군요. 이렇게 말하는 제가 바리새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날 정신병동에 갇힌 사람들 또한 그 모든 질병들은 상당수가 인간의 죄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정신병이라고 보고 감싸 안기에 앞서 엄연한 죄를 지적하여 회개케 하는 것(단순한 비판과 정죄가 아니라)이 우선이 아닐까요. 저의 이런 말이 제 개인적인 오기라고 생각하십니까. 설령 정신병이라 하더라도 정신병은 의사가 고칠 것이고, 십자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그 모든 현상들의 원인과 성격에 맞서면서 복음을 갖다대야 하지 않을까요.
4)인간 복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로선 인간 복제 행위를 창조 질서에 대항하는 파괴 행위로 규정하는 바입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위에서 하신 말씀만 가지고 본다면, 여태까지 제가 생각해온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믿겨지지 않는군요. 이렇게 보는 이유는 목사님의 생각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인간 복제는 인간의 질병이나 필요한 최소한 정도의 장기 배양의 차원을 넘어선 데까지 연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이런 현실을 모르실 리가 없을텐데 어째서 인간 복제 과학을 옹호하시는 듯한 발언을 하신 거죠? 설령 인간 복제 행위가 순수한 의료적 차원에서, 그리고 아기를 갖고 싶은 부모의 심정에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러한 방법론이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신 바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의 욕망, 곧 하나님 없이 이 땅에서 수명을 더 연장하려는 욕망이 빚어낸 과학 기술들일 뿐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땅에서 의료 행위의 도움을 받으며 과거에 비해 갈수록 편리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저로선 인간 복제 행위과 같은 것은 지옥에 조금이라도 늦게 가고자 하는 인간들의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지는데요.
어쨌든 조속한 목사님의 입장 표명을 요구합니다.
-----------------------------------------------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8월 13일 오전 07시 31분에 남기신 글 인간 복제에 동의하고 안하고 현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리고 제 글에 뜻밖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오히려 뜻밖이네요. 저의 견해 늘 한결 같습니다. 땅이 것을 생각치 말고 하늘을 바라보자는 겁니다.(골 3:1-4) 그런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게 세상은 제가예상한 대로 될 것입니다.(실제로 제가 글을 올리고 난 뒤 미국 부시 대통령은 제한적이나 인간 복제 연구를 허용했습니다) 거기에 찬동하고 안 하고는 성도의 소관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트랜스 젠더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통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계에서 말한 결론을 말한 것뿐입니다. 사회적 통념이란 항상 객관성을 잃고 분위기 편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트랜스 젠더가 잘했다는 것도 아니요 의인이라는 것도 아니고 구원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아닙니다. 사회적 통념에 의해서 상대적 죄인(절대적 죄인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이점이 중요)시 하는 것은 주의해야 될 사항입니다. 성도의 입장에서는 더 나쁜 죄인이 아니라 모두가 다 구원받아야 될 죄인일 뿐입니다.
--------------------------------------작성자 [ 일관성 ] - 2001년 08월 13일 오전 09시 16분에 남기신 글 목사님 실수하신 것 같습니다.아마도 제 생각엔 "질문/답변"란의 질문은 목사님의 성경적 견해를 여쭌 것이지사회적 현상이나 의학자들의 견해를 물은 것이 아닙니다. 이 정도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다 이해하고 있습니다.구차하게 변명을 하시니깐 더 일관성이 떨어집니다.그냥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심이 어떨지....사람은 신이 아니므로 실수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그리고 좀 더 성경적으로 십자가 정신에 입각하여 목사님의 생각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면 합니다. "자세하게", 간혹 목사님의 글은 그 근거가 빈약하며 논리 비약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여하튼 좀 더 구체적이고 성경적인 목사님의 입장을 기대하겠습니다.
---------------------------------------- 작성자 [ 전도자 ] - 2001년 08월 13일 오전 10시 34분에 남기신 글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다 반대하는 것 아닙니까? 질문답변란에 물어본 장본인으로써 사실 저는 찬성 쪽의 논리나 성경적 배경이 듣고 싶었던 것이지요.우리가 찬성하면 얼마나 찬성하고 반대한다고 우리가무슨 갑자기 의인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다 마찬가지지요, 지금 많은 자본들이 바이오텍에 투자되며, 제약회사, 금융권, 정치권 등등 다 돈 만 되면 움직이고 사실 우리의 삶도 어떤 악의 굴레에서 어느 정도의 기능을 담당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이 목사님의 포인트는 절대적인 면에서 인간 복제하는 사람이나, 거기에 돈을 투자하는 사람, 또 그 회사에 전기를 공급하고, 전화를 공급하고 거기서 돈을 받아서 다 먹고사는 사람 다 같은 죄인들이라는것 아닙니까?, 그들이 설사 괴물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는 말씀에 손을 대고 말씀을 괴물로 만들고 이상한 복음을 전파하는 말씀의 바이오텍, 유전공학자들을 더 조심하고 경계하며 이런 자들이 설교하면이 게시판에서 수정, 경고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말씀 변형시키는 이런 자들은 다 용납하고(이것으로 밥 먹고사는 사람은 그냥 두고)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과학자들을(다 먹고살기 위해, 또는 인도적인 목적으로) 이단으로 몬다면 이것은 다 바리세적인 신앙 아닐까요?또, TV보는 것하고 이 주제와 무슨 상관 있죠, 다 먹고 싸고 하는 인생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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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나그네 ] - 2001년 08월 21일 오전 06시 23분에 남기신 글 ⓝ 칭의의 교리가 성경적인가? - 이근호 목사님께 가이오 선교회라는 단체에서 만든 사이트(www.gaiusmission.com)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래의 글이 있어 이단성이 의심이 됩니다. 이글을 쓴 사람은 박정일이라는 사람이고, 무슨 칠칠선교회와 관계가 있는 듯합니다. 아래 글의 이단성을 이근호목사님께 묻고 싶습니다.
박정일의 글--칭의의 교리가 성경적인가?
칭의는 법정적 선포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성도들의 성화와 구별해서 어떤 변화를 부정해 버린다. 이렇게 되면 의는 율법과 마찬가지로 의문의 법에 의한 의로만 정의가 내려질 수밖에 없다.
1.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공로 없는 죄인이 의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은 칭의 교리를 인정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값없이 주어진다는 것과 주어지는 내용은 구별되어야 한다. 주어지는 내용이 법적인 효력뿐이라면 이는 명목적인 구원의 허구밖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죄의 본질의 변화 없이 천국에 들어간다면-의로 구원 얻게 됨은 바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됨-천국은 천국이 될 수 없고 세상과 같을 것이다. 또 성화과정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실재가 형성된다면 결국 구원은 칭의와 성화의 합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이라는 교리는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율법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근본적 이유는 그것이 인간 마음과는 관계가 없는 의문의 법이기 때문이다.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의가 칭의적 성격이라면 그것도 역시 의문의 법이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의 내부적 의 없이는 구원의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
2. 그리스도의 의는 성령의 법에 의해서 주어진다.
"그러으로 이 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의는 죄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며 이 해방은 의문의 법에 의한 선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성령의 법이란 성령이 역사하는 법이지 결코 의문의 범이 아니다. 그래서 의는 그리스도의 의가 성령의 임재로 인간의 마음에 부어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을 받지 못한 성경의 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의는 영이요 실재요 생명이지 결코 율법의 의문이 아니고 약속이나 예언이나 상징적 그림자가 아니다. 의는 성령의 실재로 임한다. 의는 소유되는 것이지 결코 종이나 먹으로 기록된 의문이 아니다.
3.의는 그 본질이 생명과 영광이다.
의는 글도 아니고 위선도 아니고 모범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실재로 보이는 것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과 영광이다. 성령의 시대에 사는 자들이 다시 율법의 시대로 돌아가서 의문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 칭의의 교리는 성경과 정면 대결되는 교리다. 예수 그리스도의 법은 실재이지 결코 허구가 아니다. 영이요 진리다. 마음에 실재하는 법으로 이것이 믿음의 실재가 되며 입으로 고백되며 구원의 실재를 가짐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다. 의는 생명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의롭게 된 자는 생명을 얻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답변을 바랍니다.
-----------------------------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8월 21일 오후 1시 53분에 남기신 글 박정일 씨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오래간 만에 시원한 말씀을 듣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성화론자에 대해서 제일 큰 불만을 갖는 것은 그들이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체 성화를 거론한다는 겁니다. 즉 죄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칭의+성화를 가지고 구원 얻고자 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는 칭의에 대해서 저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 '그리스도 의'를 거론하는 것은 저는 정말 동의 못합니다. 대표적인 유명한 분이 김세윤 교수입니다. 사도 바울은 김세윤 교수가 주장한 '법적 칭의'를 거론한 적이 없습니다. 차라리 박정식 씨의 말이 옳습니다.
성경적 그리스도 의는 전혀 성화론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완벽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칭의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성화론을 추가적으로 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즉 믿음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행함'을 거론하는 것과 같은 차원입니다. 이러한 발상이 여전히 '죄'에 대한 무지가 안겨주는 '죄' 그 자체 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신앙이 없기에 행함에 관심을 둘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이 없는 자이기에 '믿으니 행한다'는 발상을 못 버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모르기 때문에 성화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하나 분명히 합시다. 저는 박정일 씨의 신학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이 분은 제가 보기에 아직도 뭔가 정리 된 게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계속 지적 실험과 모험을 계속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러한 투쟁을 저는 앞으로도 지켜보려고 합니다. 언젠가 정리되겠지요. 예수님만을 증거해야 하는 쪽인지 아니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야 하는 쪽으로 갈 것인지, 이 둘 중의 하나로 귀결 될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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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임제민 ] - 2001년 08월 21일 오후 9시 44분에 남기신 글 ⓝ 우찌무라 간조에 대해서 가르쳐 주세요. 안녕하세요.우찌무라 간조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일본의 무교회주의자로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무교회주의자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좋은 하루 되세요.
----------------------------------------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8월 21일 오후 11시 23분에 남기신 글 우찌무라 간조는 사회 운동가라고 보면 옳습니다. 교회 자체의 존립을 위해 신앙 생활하면 안되고 인간을 위한 성도로서 살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교회 제도에 치중하는 것은 쓸대없는 정력을 낭비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 분을 무교회주의자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 시대 교회를 비난하기 위한 책략적 용어라고 보며 좋겠습니다. 신학적으로 깊이 있는 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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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몰라요 ] - 2001년 09월 04일 오전 11시 10분에 남기신 글 ⓝ 제가 잘못 생각하는 겁니까? 저는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오지 못하는, 하나님의 선택으로 인한 선물이라는 대전제는 믿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조상들의 삶을 통해 믿음이 무엇인지를 고찰해보면 한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믿게 된 것이지만 거기에 정말 인간의 의지는 전혀 없는 것입니까? 다시 말해 일찍 믿는 사람과 늦게 믿는 사람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이 강권하시기는 해도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를 복종시키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요? 물론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의 의지를 한방에 꺾으실 수도 있지만, 기다리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스스로 항복하고 돌아오길. 이렇게 항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성경 속 믿음의 조상들이 자기 뜻대로, 의지대로 살려다가 결국은 하나님께 항복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러한 항복의지를 하나님은 의로 보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이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믿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되는데, 제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까?
--------------------------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9월 04일 오후 6시 39분에 남기신 글 하나님이 기다려도 안돌아온 사람과 하나님이 불러 주시지도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금 성경 전체를 훑어보면 어떤 결론에 도달할까요? 아마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될 것입니다. 즉 "나의 의지가 타인보다 월등해서 내 의지로 하나님 품에 돌아왔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셔서 불러주셔서 그렇구나. 왜냐하면 나보다 더 의지가 없는 자도 돌아왔고 나보다 더 의지가 강한 자도 안 돌아왔다면 이 모든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립하는 것은 역시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자만을 부르신다는 사실뿐이구나"
-------------------------------------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9월 05일 오전 06시 42분에 남기신 글 양자가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두 다 스스로 자기를 택자로 보기 때문입니다. 어느 불택자가 "나는 불택자이다"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질문자의 질문에 있어 택자와 불택자를 구분하는 기준을 인간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하신 것이 오류인 것 같습니다. 로마서 9장에 의하면, 택자의 특징은 '자신을 말씀 스스로의 성취력에 의한 결과'라고 보는 반면에(롬 9:13) 비택자의 특징은 '택자 되고 아니되고는 본인의 자질에 달렸다'고 주장하는데 있습니다. 질의자께서 '일단 택한 자에 국한해서 생각해보자'고 하셨는데 여기에 대한 답변은 로마서 11:32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이 하나님이 보시는 보편성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데 가두워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러 하심이로다" 즉 택자들 사이에도 신앙면에서나 의지면에서나 그 어떤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인간들의 얕은 선입감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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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전도자 ] - 2001년 09월 06일 오전 09시 22분에 남기신 글 ⓝ 벧전 3:19-20 누구에게 전파했나, 누가 전파했나 요즘 우연히 조직신학을 공부하다가 이런 귀절을 보았습니다. 아시겠지만, 어거스틴이 해석을 다음과 같이 했다고 합니다. 예수가 옥에 있는 영에게 한 것이 아니고, 노아 때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영들이 지금 옥에 있다고요.. 이 목사님의 글을 통해 어느 정도 예수 중심 신학에 익숙해져있어 상당히 자연스럽게 이해했었습니다. 노아가 했지만 사실은 예수의 영이 감동을 노아에게 주어 한 것이 되겠죠. 성경은 주어가 사람이 아니고, 예수님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되었습니다. 목사님이 날까롭게 신학적으로 이 해석 한번 검증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p.s.:요즘 이런 것 이야기하면, 지식적 신앙, 심지어 영지주의자라고 하니 그냥 CCM 만 부를 수도 없고 정말 고난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성경공부보다는 교회충성과 교제와 헌신이 우선이라고 하니..... 저는 정말 말씀공부가 우선이고 마리아/마르다 이야기도 말씀우선이라고 했고 이것만이 살 길인 것 같은데요??? 제가 너무 영지주의자 인 것 같기도 하고요(하도 말들이 많으니, 그들도 신자인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말이죠)
--------------------------------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9월 06일 오후 9시 39분에 남기신 글 베드로전서 3:18-20은 역사와 초역사가 상호 얽혀 있기에 역사적인 의미만을 따로 추려내어서 오늘날에 적용하려는 사람들을 당혹케 합니다. 예수님이 노아 때 전도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노아 때까지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복음이라는 겁니다. 18절이 이점을 말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 이러한 복음의 효력이 노아 때에도 소급해서 적용될 수 있는 영원불변의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초월해서 이루어질 수 있게 되는 근거는 영으로서의 주님이 인간을 영으로 간주해서 다룰 수 있는 능력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의 특징은, 종교 조직체이 제공하는 집단적 종교 체험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종교 체험도 구원에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있습니다. 신비주의의 아류입니다. 이 영지주의의 문제점은 비교회적이라는데 잇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비체험을 자신이 구원받기 위한 재료로 삼는다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제도를 옹호한다고 해서 영지주의자가 아닌 게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 교회제도를 개인적인 구원을 위한 용도를 해석한다면 이도 또한 영지주의적인 이단입니다. 반면에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은 예수님 활동 중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