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성찬식에 대해서 !!] 2001/08/04 - 2001/08/09묻고답하기사도행전

[성찬식에 대해서 !!] 2001/08/04 - 2001/08/09

이름 : 관리자(IP:122.47.55.30)

성찬식에 대해서 !!

2001/08/04 김규범 (run3927@hosanna.net)

이근호 목사님!
새로운 시작을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한가지 신앙생활하다 궁금해서 지나가는 질문을 할까합니다.
내일 저희 교회에서 성찬식을 합니다.
거기에는 "떡" 과 "포도주"가 대용됩니다.
포도주를 대부분(?) 쥬스를 사용합니다.
반대로 포도주를 (알콜에 들어있는 슈퍼에 파는 것) 택해서 물을 타서
사용하면 문제가 있습니까?
가장 좋은 것은 교회에서 생각해서 포도주를 담구어 놓았다가 필요시 사용하는 것일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될 경우 쥬스를 택하면 좋겠지만 포도주는 안되나요?
알콜이 들어있어서?
목사님!
지나가는 질문입니다.

--------------------------------
2001/08/05 이근호

먼저 예수님이 사람에게 (성도에게) 무엇을 원하는 지부터 아셔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성찬식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찬식 없이도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포도주를 하든지 사과 쥬스를 하든지 그것 가지고 예수님은 시비 걸지 않습니다.
단지 예수님이 왜 이 땅에서 죽음으로서 계시를 해야만 하는 지를 성도들이 알기를 원하십니다.
오랜지 쥬스에 생크림 케익으로도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알리고자 한다면,
그것도 또한 복음이요 예수님이 원하시는 바입니다.
이제부터 뭐가 중요한 문제인지를 아시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
2001/08/05 부족한

이 목사님, 그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
2001/08/05 이근호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성찬식에 관해서
표준적인 계명이라도 내려주신 적이 있다는 말씀인지요?
그것도 아니면 구원에 보탬이 되는 어떤 힘이 성찬식에서 조금이라도 흘러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까?
제가 깊이 있게 생각하고 또한 알고 있는 바로는,
구원이란 예수님의 일방적인 죄사함의 능력으로만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 제가 깊이 알고 있기로는 교회의 지속됨도 오로지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 이외에는
결코 필요치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 인간의 성찬식 행하기' 로서 교회가 교회답게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속에 담고 있는 의견을 개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01/08/06 (06:38) 김규범 (run3927@hosanna.net)

중간에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문제를 제기했기에 외람되지만 끼어들었습니다.
먼저 이목사님! "우리교회"에서는 성찬식을 하지 않습니까?
성찬식은 고전11:23-34을 참고하면 떡과 잔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와 구원을 기념하는 드라마로 알고 있습니다. 외람되지만 제가 총신에서 배운 바로도 은혜의 방편은 말씀, 기도, 성례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성찬식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은 말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구원이란 예수님의 일방적인 죄사함의 능력임을 공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할 때에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르는 것은 그 구원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것 아닙니까? 성찬식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은 말씀 다시 정리 부탁합니다.

-------------------------------------
2001/08/07 이근호

은혜의 방편이란 없습니다. 은혜가 어떤 방식에 국한해서 오는 가를 우리 인간이 알 길이 없습니다. 즉 은혜를 자동적으로 다가오는 길에 우리 인간이 마중 나설 수 있다든지 사전에 터를 닦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구약 이스라엘인들이 성전을 신봉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66:1과 사도행전 7:49과 사도행전 17:24를 배경으로 요한복음 3:8과 4:23과 빌립보서 3:3를 상호 연관시켜 보세요. 뭔가 정리가 되실 겁니다.
구약 이스라엘인들은 성전 자체와 거기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은혜의 방편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에 의해 메시야를 죽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단지 하나님의 말씀 선포로 통해 복음이 전달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꺼꾸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즉 "말씀을 선포했으니 은혜를 제공한 것이다"라는 엉뚱한 생각 말입니다. 은혜는 예수님의 의해 임의로 움직임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찬식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인간이 만든 교회도 역시 없고 예배도 역시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성찬식과 예배와 교회는 오늘날도 역시 계속 됩니다. 왜냐하면 아직 재림 전에기에 택한 백성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배푸시기 때문입니다.
성찬식이 중요? 그 배후의 주님이 중요?

2001/08/07 이해인

도중에 지나다가 들렀습니다. 성찬식이 시비거리가 되었네요.
본문의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히 들어 있는 것 같은데....? ! !
동문에 대해서 동답을 했더니 동문에 대해서 서답을 요구하시는 것 같네요.
질문자의 질문의도와 답변자의 답변의도를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분명히 시비거리는 아닙니다.
저는 잘은 모르지만 성찬식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주님의 뜻을 먼저 헤아리심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성찬의식 자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뜻이 우선일 겁니다.

-------------------------------------------
2001/08/07 이근호

주님께서 성찬 의식을 긍정적으로 허락하신 적이 없습니다. 초대 교회에 성찬의식을 행했다고 해서 성찬 의식 자체가 긍정적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그 안에 담겨 있는 복음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
2001/08/07 이해인

예 목사님!
저도 목사님의 의견에 긍정합니다.
중요한 것은 의식 그 자체보다 그 속에 있는 복음입니다.
복음 외의 다른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
2001/08/08 황성주

이해인님.. 제발 바보짓 좀 그만하세요. 복음 외에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니..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려는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
복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복음을 담고 있는 것들이 더욱 소중하 것도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ㅋㅋㅋㅋ

--------------------------
2001/08/08 서경미

황목사님께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어쩜 이 질문의 답에서 제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성찬의식 자체에 복음이 담겨 있습니까?
성찬의식에 참여하는 자의 마음 중심에 복음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어떤 의도에서 성찬식을 지키라고 하셨는지....
목사님 말씀처럼 제게도 정말 중요한 문제이기에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
2001/08/08 황성주

서자매님..
먼저 주님의 도우심이 함게 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저의 의견은 성찬식이라는 의식 속에도 복음의 내용이 들어있음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찬에 쓰는 떡이 곧 성육신 하시고 죽으신 주의 몸을 기리는 의미로 주어 졌고요.. 잔(포도주)은 주님의 새언약의 의미를 기리는 예수님의 피를 기리는 의미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찬의식에 참여하는 자의 마음중심에 복음이 담겨져야 하느냐고 했는데.. 저는 그것을... 날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복음이기도 하니까요...
자세한 것은 게시판 62번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
그리고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미국서 사는 관계로,....

---------------------------------
2001/08/07 황성주

이 목사님.. 저는 미국 하와이에 사는 황성주목사 입니다.
얼마 전부터인가.. 박사교회시절부터 목사님의 글을 읽고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온 목사입니다. 물론 매우 긍정적이였지요..
그러나 이제 성찬식에 대한 논제를 시작으로 함께 더 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제가 시간적으로 답변의 여유가 없습니다. 사실 오늘 이렇게 컴퓨터 앞에서 새벽기도시간 까지 밤을 새운 적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요청에 대해 곧 응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요구하시는 제 질문에 대한 그 정당성의 성립이 꼭 목사님께서 1, 2, 3, 4, 하고 지적하셔만 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목사님의 그럼 요청조차도 "이근호식 발상"(용서하십시요) 이라는 점입니다. 목사님의 신학적.. 깊이와 복음에 대한 인식에 대해선 어느 정도 저도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목사님은 주님의 행하신 사적 조차도 "단순히 받지 않으시려는 무모함"이 엿보이십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믿음으로 본받고, 실천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후 그 행함에 대한 바른 도리와 진리를 적용케하고 분별케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아무튼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샬롬~

-----------------------------
2001/08/07 조규현 (cho7464@dreamwiz.com) A

'우리교회' 시무 장로입니다.
참..답답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미 이해인 님께서 명쾌한 글을 올렸습니다. 저도 이해인 님의 글에 동의 합니다.
그런데 무지개 님께서 지적하신대로, 이근호 목사님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집착 때문에, 이근호 목사님 스스로가 외면한 '복음이 주는 또 다른 의미의 진실'이 무엇입니까?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롬4:7)"
저는 이 말씀 한절로 왈가왈부는 끝났다고 봅니다.
이근호 목사님께서 '복음의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마치 '우리교회'에서는 성찬식과 같은 의식이 전혀 필요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패기하는 것처럼 오해하실 수가 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울러 첨가하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근호 목사님께서 예컨데 '십일조' '주일성수' '봉사' 등등에 대하여, 복음 없는 형식적인 '종교 행위'를 맹렬히 비판하면 흔히 사람들은, 이젠 '십일조' '주일성수' '봉사'는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라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에 대하여 편하게 대수롭잖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핵심은 '복음'의 열정 안에서, 은혜에 스스로 감사해서, 적극적으로 하라는 것이지, 행함으로써 복을 받는다는 든지 신앙이 자랄 수 있다는 종교 교육적 효과를 노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기시는 것을 더욱 강조합니다.(롬4:5)
무지개 님의 성찬식에 대한 견해나, 이근호 목사님의 견해나 내용면에서는 서로 같다고 보아집니다. 단지 이근호 목사님께서는 복음의 내용을 더 강조하는 것뿐인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저의 관점에서는, 바울이 율법을 철두철미 하게 다 지켜서 복음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여기서 출발해야 될 줄 압니다. 그렇다면 성찬식을 비롯한 교회의 여러 의식도 은혜의 내용만 담으면 될 줄 압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하시길 빕니다.

---------------------------
2001/08/08 (00:25) 구득영

말씀은 명료한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 인간들이 너무 복잡한 것 같습니다.
초점을 예수님께 맞춘다면 별 문제가 안 될 것 같은데, 그것이 쉽지는 않겠지요. 날씨는 더워도 아무튼 열심히 끙끙거려봅시다.
------------------------------
2001/08/08 (08:04) 이근호

우선 성의를 다하여 답해 주신 것에 대해서 경의를 표합니다.
황목사님의 의견을 요약해 보면, (제가 알기에) 이렇습니다.

1. 성경을 단순하자 보자.
2.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분부하고 가르친 바가 있다
3. 그 중의 하나가 성만찬이다.
4, 성만찬을 교회가 행하는 이유는, (이점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기념'하는 그릇이 되기 때문이다.
5. 성만찬이라는 그릇 깨어지면 예수님은 결코 기념 될 수 없다. (이 대목이 핵심입니다.)
6. 그러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만찬을 거론하신 것은 성만찬 없이 예수님을 기념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복음만 알면 된다니! 말도 안되니 소리! 성만찬 없는 교회란 교회도 아니다. 성만찬은 교회 본질을 좌우하는 관한 문제이다.
7. (특히 제가 듣기에 제 귀를 의심할 정도로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는) 성만찬을 안하게 되면 은혜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니까 성만찬을 지상에서 하게 되면 하늘의 예수님은 은혜 안주면 안되는 식이 되고 마는 겁니다. 하나님이 인간들이 벌려놓은 행사에 꼼짝 못하고 예속되는 식입니다. 마치 옛날 구약 때 바알종교처럼 말입니다. )

우선 성만찬 의식 때문에 징벌이 온 것이 그 당시 고린도교회에만 해당되는 일회적 상황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만찬을 함부로 참여하면 저주가 징벌이 임한다는 이 사도 바울의 논리 가운데 하나를 임의로 포기하고 있습니다. 즉 "성만찬은 있어야 하되 징벌은 반드시 오는 것은 아니다." 라는 쪽으로 말입니다.
황목사님처럼 견해를 펼치려면
1. 성만찬과 징벌이 예수님에게 어떤 식으로 이어졌는지를 검토해야 되고 2. 오늘날 어떤 식으로 그 이어짐이 해소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것이 안되면 차라지 제 의견처럼 '성만찬을 하든 무엇을 하든 누구든지 예수님의 증거를 훼방하면 징벌을 받는다"가 옳지 않을까요? 꼭 성만찬에 대해서 죄로 훼손하면 징벌이 옵니까? 그렇지 안잖아요. 그렇다면 제 의견처럼 주의 증거를 방해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갈라디아서 5:10의 말씀을 보편적으로 적요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에도 합당한 것이 아닐까요?
성경을 단순하게 보는 것보다 보편적으로, 즉 성경 자체 가운데 핵심되는 것에서 출발해서 다른 귀절들을 해석해 나가는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목사님의 뜻처럼 성경을 단순하게 봤을 경우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한 것 중에 교회가 은혜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될 것 중에는 성만찬말고 또 딴 게 과연 없을까요?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세례 같은 거요. 그러면 고린도전서 1: 17의 사도의 말씀은 목사님 같은 분들에게 상당한 꾸지람을 들을 이야기이네요.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아마 황목사님은 제가 이런 소리했다면 저에게 이렇게 고함쳤을 것입니다. "애끼 이 목사야. 세례 주면서 복음 전하면 되지 무슨 복음과 세례를 분리해. 그렇게 되면 세례식이 부정적인 것이 되잖아. 이 목사야 생각해 봐라. 세례가 부정적일 것 같으면 마태복음 28장 끝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당부했겠는가. 이 목사는 모든 것을 복음 하나로 끝맺는 것이 문제야 문제"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황목사님은, 성만찬이 필수라고 생각하시면서 그 다음에 나올 당연한 궁금증에 대해서는 언급이 있어야 될 줄 압니다. 즉 다음과 같은 겁니다.

오늘날 교회가 일주일에 몇 번씩이 모이고 언제 모여야 하는지?
모일 때마다 성만찬을 해야 하는지?,
몇 명 이상 모이는 것을 "집회로 모였다"고 간주할 수 있는지?
모일 때마다 성만찬 하는 것이 번거러우면 (과연 주님의 절대 명령이 번거럽다는 안일한 이유 때문에 모일 때마다 성만찬 안 할 수 있을까요? 은혜의 그릇인데요? 은혜를 차버리고 아예 작심을 하면 몰라도) 일 년에 몇 번해야 하느냐에 대한 소견이 듣고 싶군요.
그리고 포도주나 빵 말고 다른 것을 재료를 쓸 수 있을까요? 쓸 수 있다면 성만찬 정신만 중요하고 형식은 중요치 않다는 것이 성만찬이 용납한 어떤 형식의 틀 안에서 통하고 허용되는 융통성일까요? (쉽게 말해서 성도의 생활과 예배 전체를 예수님이 당부한 성만찬의 개념 범주에 못 넣어주는 이유가 뭔가 하는 것에 대한 질의입니다.)

그리고 '영적'이라는 상당히 듣기 거북한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영적입니까? 영적 요소가 성만찬이라는 형식이 갖추어지지 않는 가운데도 임합니까? 더욱 더 중요한 문제는 어느 정도의 형식을 구비해야 비로소 영적 요소가 임할 수준이 되는 겁니까? (예를 들면 오랜지 쥬스로서 예수님의 피를 기념하는 것에 영적 요소가 못 임할 무슨 이유라도 있읍니까? 예수님께서 포도주 인가, 아니면 과연 포두 쥬스 인가, 아니면 포도주는 포도주는 도수가 약한 것인가 를 살펴서 그래서 영적 은혜를 주고 말고를 결정하실 분으로 아십니까?)

목사님은, 저보고 "교회에 대해 무슨 피해 의식이 있느냐?"고 하셨는데 황목사님은 혹시 성만찬 드릴 따마다 말도 다 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도취하는 그런 체험을 반복해서 경험하지는 않고 있습니까? 그래서 성만찬 무용론에 대해서 과민반응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 은혜가 자동적으로 떨어지는 이 은혜의 충만한 그릇을 모르고 이근호 목사는 교인들에게 뒤엎버리기를 가르치다니 안까깝다 안타까워...." 이런 생각 아닙니까? 바로 그러한 의식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유대인들의 의식입니다.

끝으로 목사님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성경을 단순하게 보기 이전에 우리 인간 마음 자체가 결코 단순치가 않습니다. 각종 죄와 탐심으로 가득 차 있는 채, 거기서 나오는 기대치를 다 갖고 성경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저는 목회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악한 세대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한 교회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것만이 저의 소박한 목회자로서의 단 하나의 소망입니다"라는 그런 욕심은 없는가요?
예수님은 말씀하실 겁니다. "네 정당성 챙길 생각말고 내 의만 증거하라. 목회는 내가 한다. 너는 나만 증거하라. 예수님의 복음은 증거할 생각 안 하고 무슨 목회 잘 할 생각을 하다니.... 그게 다 자기 교회 소유욕의 화신인 것도 모르고 말이야 "라고 책망하실 것입니다.

----------------------------
2001/08/08 (03:06) 황성주

이목사님.. 이제사 돌아왔네요..^^ 새벽기도회를 은혜스럽게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조금은 피곤한 몸이지만. 주님의 진리에 관해 함께 이리 은혜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피곤함을 대신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제 목사님의 요청한 "정당성의 성립을 위한 저의 언급"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한가지
웃으며 드리고픈 말씀이지만 저는 목사님처럼 어렵고 복잡한듯한 문체는 되도록 삼가겠습니
다. 부디 목사님께서도 좀더 편안하고 되도록 이해가 쉬운 어휘로 대화 했으면 합니다.^^

목사님께서 1, 2, 3, 4, 로 요청하셨으니, 저도 그리 해보겠습니다..^^

1번에 대한 응답...
먼저 목사님께서는 복음에 대한 "추리력"이 상당하신 것 같습니다.
바울은 고전11장의 성찬식에 대한 교훈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성찬식으로
인해 누가 약해지거나, 병들거나, 죽은 것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입
니다. 그렇다고 또 목사님처럼, 성찬식이 주는 어떤 신앙적 병페때문에 성찬식을 의미없이
여기고 그 안에 있는 복음적인 내용만 숙지하라고 요청하고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
려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서 벌어진 성찬식으로 말미암아 잘못될 수 있는 신앙적 의미들을
경계하면 서 그리스도 예수의 피흘리심과 몸버려 죽어주심의 사건을 복음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성찬식의 의미를 더 강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누가 약해지고 병들고 죽었기 때문에 성찬식의 의식적인 면들을 축소하고 대신
그 안에 있는 복음적인 내용만 강조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런 잘못된 상황적 전개가 있음에
도 불구하고 ..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서 주님이 명하신 성찬식의 의미들을 새기며 주
님오시는 때까지 이 예식을 진행하라고 교훈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한다고 전제한후
에 성찬식을 통해 나타난 약한자, 병든자, 죽은자의 예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당시에는 성찬을 잘못이해하고(잘못 이해했다는 증거는 바로 고전 11:33-34절에
기록되어 있지요?) 행함으로서 일어난 약한자, 병든자, 죽은자의 모습이 있으나.. 오늘에 성
찬식을 통해 이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물으셨는데.. 너무하신 질문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같은 현상은 그 당시 실제적인 상황으로 연결되어 나타난 사실로서 바울에 의해
성경으로 기록된 이상.. 이 문제는 이제 현실적으로 나타난 사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영적인 의미로도 나타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이로서 성찬식의 의미는
복음적인 내용을 넘어서 신령적 의미로까지 이르렀음을 알수 있지요...
그러므로 성찬의식의 잘못된 관행은 충분히.. 오늘날에도 그로서 영적으로 약한자, 병들자,
죽은자, 가 나타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성찬식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내
용이 구원을 이루신 주님의 피흘리심과 몸버려 죽어주심의 사건을 내용으로 하고 있기에,
이런 의미들을 잘못이해하고 성찬에 이르면 그 복음적 이해의 정도에 따라 영적으로 약해질
수도, 병든 신앙을 가질 수도, 또 아예 죽어버린바된 신앙을 껍데기처럼 가질 수도 있기 때문
입니다.
또 거꾸로 .. 복음에 대한 이해에 약한신앙, 병든신앙, 아예 죽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역시
성찬에 헛되이 참여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러므로 지금도 영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성찬식에 담
긴 복음의 내용을 주지시켜 기꺼이 실행할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 바울도 이 사실을 주지시
키고 성찬에 참여하고 하지 않습니까? - 11:27-29)
그렇다면 꼭 현실적으로 약해지고 병들고 죽은자가 속출해야 그것을 기준처럼 바라보고,
바르게 성찬식을 했냐? 안했냐? 하는 판단에 이를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옳은 성찬식을 위해 바울과 같이 어떤 주지를 시켰느냐이고 , 주님의 분부하심
(기념하여 지키라)을 따라 얼마나 성찬식에 대한 복음적인 의미들을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
에게 바르게 가르쳐 지키게 했느냐 하는 점입니다.(마28: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
그러므로 성찬식에 담긴 복음의 내용이 중요할수록 성찬식은 바르게 가르쳐 반듯이 지켜 행
하게 해야할 주님의 분부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번에 대한 응답
나는 이목사님에게 "성만찬 함을" 기념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분부하
신대로 "성만찬을 통해 주님을 기념해야함"을 말씀드렸습니다. ^^

3번에 대한 응답
복음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목사님이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서 성만찬이 아직도 필요하다는
식으로 나와버리면 그것은 전혀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 이용해서 그럴사한
교회 하나 갖고자 하는 의도 밖에 안됩니다."라고 말씀한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
니다.
목사님과 다른 의미의 성경해석에 대해서는 둘째치더라도(사실 사도행전의 아나니아 삽비라
의 사건을 성찬식에 대한 논제 앞에 갖다 부친 자체가 문제이기도 하지만..) 목사님이 66권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주어진 말씀으로 믿으시고 있다면 어찌, 주님께서 .. 그것도
누구의 입을 빌리지 않고 친히 그 예를 보이시며 분부하여 명하신 말씀으로 이루어진 성찬
식을 그렇게 호도하십니까? 주님이 친히 명하신 일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목사로서 성찬식이 아직도 필요하냐고 나에게 되물으시는 겁니까? 그리고
성찬식을 성찬식을 이용하면 그럴사한 교회하나를 얻을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찬식을
이용해 어떻게 얻을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요?
분명한 사실은 목사님이 말한대로 성찬식 속에 복음의 내용이 들어있다면.. 그 복음의 내용을
살기 위해 성찬식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찬식을 인하여 어떤 문제
점들이 발생된다할지라도 그 성찬식이 가르치고 증거하는 것이 우리 주님의 몸버려 죽으심
이요, 피흘려주신 구원의 은총이 담긴 것이라면 .. 그리고 주님이 명하시고 분부한 일이라면
바르게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목사의 사명이지.. 그리고 어떻하든 성찬식 속에 담긴 복음
의 의미가 살아있는 성찬을 드리도록 해야함이 마땅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4번에 대한 응답입니다.
제 글을 잘 읽어보면 성만찬 안 하는 것이 옳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귀하의
말이 옳은 경우는, 제가 "절대로 성만찬 같은 것은 해서는 아니됩니다. 안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요 주님이 교회에게 시킨 일입니다."라고 주장했을 경우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부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왜 사람들이 성만찬에 관심을 쏟는 저의가
무엇인가? 이것은 필시 주님을 증거하는데 관심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어떤 식으로 교회를
운영하면 주님이 인정하는 교회가 될까?' 에 관심이 쏠려 있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이런 정
신 상태로서 성경을 보게 되면 모든 성경 해석은 주님을 증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
님, 이만하면 주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나 성도인 것 맞지요 그지요?'라는 자기 의에 집착하
는 경우라고 봅니다. 그러니 제발 성경 자체가 무엇을 증거하는지 다시 들여다보기를 바랍
니다" (이것은 이목사님 글이십니다)

목사님 .. 이 글을 읽으면서, 어찌보면 목사님께서는 교회와 교회운영에 대한 피해 의식이
있는 분처럼 여겨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성만찬에 관심을 쏟는 것에 무슨 저의가
있다고 그리 단언하듯 말하시는 이해가 안갑니다.
도대체 교회가 성만찬을 거행하면서 주님을 증거하는 것에 관심을 안두고 어디에 관심을 둔
다고 애매모호하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성찬식을 함으로서 그것이 무슨 교회 운영과
관계가 있으며 또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교회운영과 관계있습니까?
목사님.. 목사님이야말로 정신차리시고 성경을 성경으로 볼려고 해야지.. 성경을 목사님의
어떤 목회적 경험이나 자기 주관적인 잣대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차라리 복음의 내용이 회손될 경우에는 차라리 성만찬을 안 하는 게 낫다는 식의
목사님의 발상과 의도는 성만찬을 안 해도 된다는 직설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 여겨집니다.

5번에 대한 응답입니다.
성찬식의 결과를 호도하지 마시고 성찬식속에 담긴 복음의 내용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영적
인 가치와 의미로도 보시기 바랍니다.
성찬식은 의식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복음이라는 영적 의미와 함께 오늘까지 살아있는 주님
의 분부입니다.

6번에 대한 응답입니다.
죄송합니다. 드릴 답이 없습니다. ^^

혹 결례가 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샬롬~

-----------------------------------
2001/08/08 이근호

황목사님

'영적' 혹은 '신령한' 이라는 개념을 성만찬 형식과 결부하는 것이 성만찬이 은혜의 그릇이 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황목사님은 예수님이 시킨 것이니까 단순하게 시킨 대로 실시하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고 잘못 해석했다는 위험부담이 없을 거라고 여기시겠지만 여기서 제가 고린도전서 1:17를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함이라"
황목사님, 세례라는 것이 예수님이 지시하신 것이 아닙니까? 마태복음 28장 끝 대목에서 제자들에게 당부한 게 아닙니까? 만약 제가 사도 바울처럼 황목사에게 이야기하면 아마 황목사님 이렇게 불평하실 것입니다. " 이 목사 그 양반 희안한 사람이네. 성경을 단순하게 보면 그만인 걸 가지고서. 세례 주면서도 얼마든지 복음 전하면 될 문제를 왜 하필이면, '세례를 주려 하심이 아니요'라는 말을 꼭 집어 넣을 필요가 왜 있는가. 그렇게 되면 세례 주라는 예수님의 지시가 긍정적인 것이 되지 못하고 부정적인 것이 되잖아" 하실 겁니다.
성만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은 성만찬을 은혜의 그릇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자, 성만찬의 어떤 조건과 어떤 형식이 은혜를 자동적으로 몰고 올 수 있습니까? 오랜지 쥬스 가지고 성만찬하면 하늘의 예수님께서 보시고 은혜를 안 주시는 겁니까? 포도주 도수가 높아도 은혜를 안 주시는 겁니까? 황목사님께서 성만찬을 은혜의 그릇이라고 주장하시려면 그릇이 되는 성만찬의 표준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성의 있는 태도입니다. 은혜가 상실되지 않고 은혜가 늘 찾아오게 만드는 표준적 성만찬 형식을 말입니다.
즉 다음과 같은 것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해 주어야 합니다.

1. 모일 때마다 성만찬을 하는가? 아니면 번거럽다는 이유 때문에 날을 골라잡아 성만찬을 하는가? (모일 때마다 주를 기념한다는 절대적 명령 앞에서 과연 번거럽다는 이유만으로 뛰엄뛰엄 드릴 수가 있을까요?)
2. 그리고 모인다는 것이 교인 몇 명 이상 모인 것을 '모였다'고 할 수 있습니까?
3. 누가 집례합니까? 집사가 집례하면 은혜가 안 옵니까?

자 이런 저런 것이 중요하지 않고 시답지 않는 질의라면 여기서부터 왜 고린도교회 성만찬 시에 병든 자와 약한 자와 죽은 자들이 생겼는가를 다시금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성만찬의 본질과 충돌되어서 징벌은 자입니다. 성만찬의 본질은 성만찬 제도의 고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뜻은 성만찬의 본질에 대해서 누구든지 훼방하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피와 살을 훼방하는 자라면 꼭 성만찬 아니더라도 생활 전체가 성만찬 정신으로 사는 모임과 사람에게 대들면 하나님께서 징벌을 내리시는 것이 성경 전체를 보편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황 목사님같은 주장을 해버리면 일반적인 복음 훼방과 연관된 징벌과 심판(갈 5:10) 무관하게 독자적인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바알 종교나 성전을 고수한 유대교 신학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이 지상에서 벌리는 행위에 예속되는 경우가 되고 맙니다.
즉 "목사님 어떻게 성만찬에 참여하면 징벌 받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늘의 은혜를 필연적으로 몰고 올 수 있는 표준적 성만찬 형식이 결정되지 못한다면 "성도님 주님의 피와 살의 의미를 받아드리지 않으면 그 사람이 성만찬이 아니라 무얼을 해도 그 사람은 징벌 받습니다"라는 해석이 오히려 올바르지 않는가 이 말입니다. 제가 주장한 바가 이것이잖아요.
성만찬을 통해서 열심히 주의 오심을 기념하고 결국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만찬 고수 신학' 과연 이러한 사실을 해명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해명할 수 없다면 차라리 복음이나 열심히 전해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영적'이 되었든 '신령한 것'이 되었던, 형식적 조건 없이는 은혜도, 영적인 것도, 신령한 것도 안 달라붙을 것이라는 생각은 극히 위험천만한 생각인 것을 한번쯤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성주 목사님께 !!

2001/08/08 (22:23) 구득영 (word009@kornet.net)

먼저 저는 경남 마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고신측 젊은 목사입니다. 사실 나이만 젊지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 다 살은 사람같습니다만.
목사님이 나름대로 남의 글을 파악하는 솜씨도 있고 말씀에 대한 열정도 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그리고 성찬식 문제에 대해서 이근호 목사님의 글에 대해서 충격을 받으신 것 같은데, 전에 박사교회를 알고 계셨다면 그런 반응이 왜 나오는지 의아스럽습니다. 성찬식을 다른 어떤 것들보다 특별한 의미를 두는 것 같은데, 물론 중요하지요, 그러니 그것이 복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답변하신 글 가운데 한 가지만 시비를 걸겠습니다. 이해인님의 글을 이렇게 다변하셨지요. 저는 이해인님을 잘 모릅니다.
-------------------------------------------
이해인님.. 제발 바보짓 좀 그만하세요. 복음 외에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니..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려는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
복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복음을 담고 있는 것들이 더욱 소중한 것도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
라고 하셨는데, 지나친 표현 같습니다.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이 하시는데, 저는 정말 이런 목사님의 글이 어리석음의 극치로 보입니다.
복음이 소중합니까? 복음을 담고 있는 것이 소중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질그릇을 소중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성찬식이라는 것도 하나의 폼(행태) 아닙니까? 그 자체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성찬식을 거행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이것은 목사님의 견해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고, 인정하기 싫으셔도 사실 목사님 글의 논조가 그렇습니다.
복음과 복음을 담고 있는 것이 다 소중할 순 없습니다. 물론 목사님은 "복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복음을 담고 있는 것들이 더욱 소중한 것도 아니겠습니까?" 라고 하시면서, 복음을 담고 있는 것들이 더 소중하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글을 쓰다가 조금 흥분(?)했다고 여겨집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못합니까? 왜 교회를 생각하고 성찬식을 자꾸 염두에 두면서,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에게 집착을 할까요? 사실 저 자신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애통해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니, 그분이 그렇게 살아가게 해준다고 믿습니다.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
2001/08/08 황성주

구목사님께 드립니다.. 먼저 저의 무례를 지적해 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적하신 저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오해가 있는 듯 싶어 이제 제 얘기도 해야 겠군요..
먼저.. 저는 복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복음의 의미들을 가르쳐주고 증거해주고 또 나타내는 아니 복음의 내용을 담고있는 것들도 그만큼 소중히, 그리고 중요시 여겨야 된다는 것이었지 결코 복음보다 복음의 의미와 내용을 담고있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한적 없습니다.
가령.. 구원받은 사람이 온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으로 소중하면 구원받은 사람의 삶도 더불어 중요한 것 아닙니까? 복음이 중요하다면 반듯이 복음을 나타내고 증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복음을 아는 그리고 믿는 우리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들입니다.
그리고 구목사님.. 왜 성찬식이 폼에 불과 한 것이라고 하십니까?
그러면 왜 우리 주님께서 그저 폼에 불과 한 것을 떡을 떼시고 내 몸이라 하셨고
잔을 돌리시며 내피로 세운 새언약이라 하셨습니까?
목사님은 복음만 중요하면 됐지 복음을 담고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렇다면 복음은 무엇이고 복음을 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주님의 복음은 어떤 경로로 드러나고 증거되며 나타납니까?
복음이 우리 속에 복음이 되기 위해선 그냥 복음이면 됩니까?
그럼 성육신하여 우리와 같은 몸으로 오셔서 피흘려 죽어주신 십자가의 사건이 왜 그리 중요합니까?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서 복음이 증거되고 나타난 것이 아닙니까?
구목사님.. 우리가 예수님께만 촛점을 맞추니까.. 그분과 관계되고.. 그분이 말씀하시고 그분이 보여주시고 하라 하신 것들이 초점이 되는 거 아닌가요?

아.. 정말.. 어렵습니다.. 주님을 증거하는 성찬식을 그냥 폼이라고 하시고..
그것을 그냥 아무렇게나 내버려 둘 수 있는 질그릇으로 여긴다니.. 말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성찬식자체에 어떤 권위나 신성을 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복음 복음..하시는 분들에게.. 성찬식 속에 담긴 바로 그 복음의 의미들이 주님의 뜻에 의하여 담겨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바로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 이 목사님께, 여기 다시 게시합니다 ]

2001/08/08 (21:00) from 24.25.227.133' of 24.25.227.133' Article Number : 96
황성주 Access : 84 , Lines : 151

이목사님.. 이제 사 책상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려.. ^^ 참고로 여긴 지금 새벽인고로 미안합니다..
자.. 이제 목사님의 답변에 대한 제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저는 목사님께서는 왜 성경의 기록된 현실성 있는 사실조차도 자꾸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집약해버리려고 시도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복음이란 개념을 떠나서 결코 성경을 바르게 볼 수 없음을 저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숙지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목사님이 말하는 복음이란 의미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복음의 원류를 품고있는 것이라면 성찬식에 대한 오해가 저토록 심하진 않을텐데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목사님은 굉장히 성격이 급하신 분이시다는 것을 직감하게 하는 대목이 하나있습니다.
이목사님은 제가 말씀드린 내용을 현재 정확히 숙지하고 있지 못하는 가운데 이목사님의 나름대로의 생각만을(저는 이를 목사님의 신학이나 신앙이라기보다 생각이다 라는 편이 훨신 덜 부담스러울것 같아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해해주십시요..) 저에게 강요하듯 압박하는 느낌을 받는 듯 합니다.
바라기는 저의 글을 다시 한번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심플한 내용입니다.
먼저 성만찬은 분명 예수님께서 분부하여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임이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저는 성경에 분부된 이 사실을 주님이 명하신 일로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일단은 어떤 경우에도 성찬식은 주님오실 때까지 주님의 뜻대로 주님을 기념하는 예식으로 행해져야한다고 믿습니다.
고전11:24-26
축사하고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새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만약 이목사님이 위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두말없이 성찬식을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으로 마땅하게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의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분명 떡을 돌리시며 그 떡이 주님의 몸이라 하시면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고, 다시 잔을 돌리신 뒤에는 그것을 주님의 피로새운 "새언약"이라 하시면서 역시 "아것을 행하라" 하셨고 더불어 이를 행할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지금 바울이 주님의 성만찬에 대한 부부하심을 전하면서 주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니" 이 성찬식을 통해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여 전하는 일을 "주님오실 때까지"라고 못박음으로, 성찬식은 우리주님의 죽으심을 인하여 구원에 이른 성도들이 실천해야할 마땅한 일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이 성만찬을 행할 때에 범할 수 있는.. 잘못된 성만찬의 의미"로 인한 폐해를 지적하면서 이를 주지시키는 장면이 뒤이어 27-34절까지 나오고 있음을 봅니다.
이 같은 사실은 바울이 성만찬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바울이 성만찬의 폐해를 숙지시킨 것이 아니라, 그리고 성만찬에는 이런, 저런, 일들이 잘못 나타나니까 바르게 안 할바에는 안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함도 아니고.. 오히려 성만찬의식이 가지고 있는 그 복음적 중요성 때문에(왜? 성만찬이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전하는 일이기에) 더욱 조심하고 자신을 잘 살펴서 주님께서 성찬식을 행하라고 하는 사실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좀 단순히 보라는 나의 충고는 성경을 낮춰보거나 또는 성경의 권위를 떨어드리거나.. 또는 가볍게 보라는 의도와 의미가 아니라 우선적으로 이목사님 자신이 성경을 너무 도식적으로 복음의 의미들을 획일화해서 보려하고 또 그것을 가르침에 있어 의도적으로 어떤 논리와 비판을 대입해야만 꼭 복음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아.. 성경을 바르게 보는 첫걸음에 대해서 눈치 없게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그리고 성만찬이라는 그릇이 깨지면 예수님은 결코 기면될 수 없다는 것이 내 의도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목사님의 글을 읽다보면 언제나 나타나는 목사님의 못된 습성같습니다..(죄송합니다..^^)
아니 내가 언제 성만찬이라는 그릇에 대해 얘기했습니까? 그리고 하지도 않은 그릇론(?)을 목사님 맘대로 내가 그렇게 말한 것처럼 한다면 나는 목사님께서 이 글을 함께 읽고 있을 수 있는 또다른 많은 사람들을 의식해 하신 말씀이라 치부하고 싶습니다.. 다시 읽어보십시요.
어쨋든.. 제가 이 부분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성만찬이 아니고는 예수님을 기념할 수 결코 기념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우리 주님을 기념될 수 있다는 다른 많은 조건들이 있다 하더라도 성찬식이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행하여 지키는 예로 주어진 이상.. 우리를 위해 죽어주신 주님이 기념될 수있는 하나 조건은 분명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목사님이 내게 질문하신
"성만찬이라는 그릇 깨어지면 예수님은 결코 기념 될 수 없다. (이 대목이 핵심입니다.)"
이 말씀은 거꾸로 "주님께서 친히 명하신 성만찬이 무참히 깨지고 부셔지고 이리 짓밟혀도 이근호목사로 인하여 복음만 알면 언제든지 예수님은 기념될 수 있으니 괜찮다"라는 말처럼 들려 무척 황당하기도하고 무섭기도 하군요..
그리고 목사님이 질문하신 아래의 글은 나야말로 두 눈을 휘둥그래할수 밖에 없는 말이라고 여겨져 이목사님이 그 유명한 이근호 목사, 맞는가? 할 정도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목사님은 자기논리와 비약이 너무 강해서 어떤 때는 웃음도 안나올 정도로 저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7. (특히 제가 듣기에 제 귀를 의심할 정도로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는) 성만찬을 안 하게 되면 은혜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니까 성만찬을 지상에서 하게 되면 하늘의 예수님은 은혜 안주면 안되는 식이 되고 마는 겁니다. 하나님이 인간들이 벌려놓은 행사에 꼼짝 못하고 예속되는 식입니다. 마치 옛날 구약 때 바알 종교처럼 말입니다. )- 이목사님의 글입니다.. 그쵸? ^^
보십시요 목사님..
우리 예수님이 목사님만 못해서 성찬식을 하라고 했겠습니까? 이것을 행하라 하신 의도와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있으매 하라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 성만찬을 행하라하시고, 또 바울이 성만찬을 행할 때의 주의사항까지 바르게 잘 일러주었으면 주님의 친히 분부하시고 또 바울을 통해 보완(?)해 주시까지 하신 성만찬에 대해 뭐가 그리 불만이 많으십니까?
도대체 주님이 하라 하신 것을 하겠다는 사람이 잘못되었습니까? 아니면 주님이 하라하신 일임에도 복음의 내용이 어쩌니.. 은혜의 방편이 어쩌니 하고 따지면서 하라하신 것을 약화시키고 의미 없고 값없이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나쁜 겁니까?
도대체 성만찬을 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은혜를 안 주고는 안 된다는 식의 발상을 함부로 하는 목사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계속 내주장만을 고집하려는 것이 아니고
"줄기차게 우리 주님이.. 우리주님이.. 우리주님이.. 분부하신 일이니까.."라고 함에도, 우리 예수님의 의사는 안중에 없듯 말하는 목사님 때문에 속이 터집니다.. ^^
잘못하면 목사님 입에서 < 우리주님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해도... 주님이 뭐라 하든지 간에... > 라는 말이 곧 터져나올 것 같은 불안감에 있게 합니다 그려..
그리고 이목사님은 "영적"이라는 말이 목사로서 왜 거북해 하십니까? 아니 성경을 믿고 가르치는 목사가 영적이란 말을 속칭 "거북한 용어"라고 했는데 그러면 ..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야 분변함이니라..
지금 이 성경 말씀대로라면.. 영적이란 단어를 그리 거북해 하시는 이목사님은 분명 영적인 것들을 분변도 못하는 이론가요.. 복음..복음하면서도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는 목사인줄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엔 이런 말씀도 있지요..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대하여(목사님도 예배드리시지요?? 아니면 아니라고 말씀해 주세요..^^) 말입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아래는 이목사님이 쓰신글이죠?
목사님의 뜻처럼 성경을 단순하게 봤을 경우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한 것 중에 교회가 은혜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될 것 중에는 성만찬 말고 또 딴 게 과연 없을까요?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세례 같은 거요. 그러면 고린도전서 1: 17의 사도의 말씀은 목사님 같은 분들에게 상당한 꾸지람을 들을 이야기이네요.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성경을 좀 난해하게 본다해도 목사님만큼은 성경을 단순히 보는 훈련을 해야한다는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위의 말씀은 목사님의 해석이지 내 해석은 결코 아닙니다. 그저 목사님께서 내해석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며 말하는 거지요.. ^^
분명한 것은.. 목사님은 바울이 세례를 아무것도 아니 것처럼 여기는 사람인 것처럼 말하며 의기양양 하시는데.. 참 어리십니다..
그 말씀 속에서 바울이 말하는 바는 세례의 무가치성을 이야기하고 함이 아니라 .. 성경 고전의 앞뒤 문맥을 함께 보시면 복잡할 것없이 바울이 왜 그 소릴 했나 알 수 있게됩니다..
그 당시 고린도교회에 많은 분쟁과 파당이 져있었지 않았습니까? 나눈 누구파.. 누구파..하며 하는 분쟁의 파당속에 바울의 이름이 들어 있었습니다. 결국 바울파가 있었던 거지요 ..바울 자신과는 상관없이..말입니다.. 그쵸? ^^
그러던 중에 바울이 자신의 이름으로 세레를 받았다는 이들도 나왔고 그래서 나는 바울파라는 웃지못할 일들이 벌어진 거죠.. 저마다 자기파대로 아마 세례를 주는 일들까지 벌어져 세례가 문제의 촛점이 된겁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정황을 보니 바울이 오면 세레를 받고 바울파가 되겠다는 이가 있었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바울은 이런 문제들을 단호히 척결하고 온전케 하기 위해 자신의 사도성을 정당화하고 교회를 바로잡고자 하는 의도에서 말하기를 - "내가 세례나 주러온 사람인 줄 아느냐? 오직 복음을 전하러 왔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런 분쟁과 파당은 사라져야 한다" 고 외친 겁니다.
16절과 17절을 함께 읽어주셔야지요.. 목사님.. 그래야 영적 분별이 오지요 ^^
십자가가 역사적이고 복음이지만 영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복음이 이론이 아닙니다. 영적인 것이 곧 복음이기도 합니다.
자..목사님이 소개해주신 고전1장의 18절을 보십시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감사합니다.. 답변이 좀 늦어 죄송하군요.. ^^ 샬롬 ~

---------------------------------
2001/08/09 (07:42) from 211.229.138.167' of 211.229.138.167' Article Number : 104
이근호 Access : 61 , Lines : 15

황목사님의 성경 해석을 보게 되면 참으로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꼭 성경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성만찬의 권위와 신성'을 무시한다고 했는데 '권위'라는 개념, 그리고 '신성'이라는 개념을 하나님 속성 이외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행함에 의해서 조성되는 곳에도 적용될 수 있는 문제입니까? 즉 권위와 신성을 인간의 행위로서 과연 재현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 이야기한 성만찬의 표준 모델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전혀 계속해서 언급을 회피합니다.
황목사님과 저의 대화는 마치 요한복음 4장에서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같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해야 하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 드려야 한다는데 어디서 예배해야 합니까?"
"이 산에서도 말고 에루살렘에서도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황목사님의 성경 해석은 꼭 사마리아 여인의 해석과 같습니다.
자신이 뭘 할 수 있느냐에 관한 (즉 '행함'이죠) 내용을 조립하고 규합하기 위해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황목사님같이 그렇게 행함에 관심이 있다면 제가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는 성만찬에 관한 표준 제칙들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제시할 자신이 없으면 (만약 표준 규칙을 제정하게 되면 그것은 부합되지 않을 때는 성만찬에 참여 하다가 죽게 되는 경우가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 성만찬이 지시한 예수님의 바른 복음의 뜻만 전달하면 되지 않습니까? 왜 자꾸 교인들에게 행함에 대해서 가르치려고 합니까?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11장의 성만찬에 관한 황목사님의 해석이나 고린도전서 1장에 나오는 "나는 세례주려 온 것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 전하려 왔다"는 내용을 설명하시면서 황목사님은 십자가 복음이나 주의 피와 살 자체에 대한 그 어떤 언급은 없고 단지 당시 이런 상황이었다고만 설명합니다. 그게 무슨 복음의 핵심을 증거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적어도 왜 성만찬에 잘못 참석하면 사람들이 징벌을 받는지 그 관계성을 전체 성경을 조명해서 설명해 주는 것이 목사로서 마땅한 임무가 아니고 뭡니까!
단지 "나는 목사로서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 설마 성경 해석 잘못했다는 비난은 안 받을 거야. 그리고 그 때 지시하는 것처럼 되풀이하면 설마 하나님께서 나쁜 목회자라고 욕하지 않겠지"하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황목사님의 이런 태도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습니다.
성경 한 귀절을 통해서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를 도출해서 증거하는 것이 목사의 임무이거늘 국어 시간에 졸지만 안했어도 문단 풀이할 수 있는 그런 껍데기 문맥이나 그 당시 정황 설명이 과연 복음의 진수입니까? 거기서 뭐가 나올까요? "아 우리도 이대로 행하면 탈 없겠구나 " 밖에 더 나옵니까?
마치 사마리아 여인처럼 자신이 행할 것만 챙기기를 원하고 또 그런 요건들만 교인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설교자의 임무라고 여기십니까?
제발 성경 한 귀절 한 귀절에 담긴 의미를 사이비한 종교인 '여호와 증인'들처럼 굴비 꿰듯이 성경 귀절을 나열하지 마시고 왜 언약 중심이며 왜 사도 바울이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하신 그 뜻을 좀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
2001/08/09 (11:09) from 24.25.227.132' of 24.25.227.132' Article Number : 106
황성주 Access : 56 , Lines : 66

드디어 이목사님의 본래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어지되었든 지적함이 있었으니 잠시 전하고 갈까합니다. 그리고 부연해서 한 말씀 드리면 이제 성찬식에 관한 논의는 이정도면 이목사님과 나의 생각의 주장이 무엇이였는지 밝혀졌으리라 여깁니다... 혹 우리의 이 짧은 대화의 순간들을 목격하고 우리들의 글을 읽은이들 몇십명이라도 된다면.. 그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스스로 자위해 봅니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한 말씀 드리면 목사님이 그리 비판하고, 복음도 모르고 복음이 없는 것처럼 여겨대는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목사님이 보기에 "가짜"(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일수 있듯이 .. 그렇게 복음이라고 외치며 진짜 복음, 복음이라고 강조하는 교회와 ..목사도.. 그 진짜 복음이라는 외침 뒤에 감춰진 "가짜"일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목사님이 내게 빗대어 이야기한 여호와의 증인들과 같은 모습이요 바알신앙을 가진 자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저는 목사님처럼 성경을 짜맞추듯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성경박사들 같은 여호와의 증인들을 따라갈 수도 없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지만.. 주님의 말씀만을 신실히 믿고 복음 안에서 주어진 언약을 따라 그 복음이 주는 생명으로 주의 약속을 전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며 그저 무익한 종처럼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일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탁컨데.. 목사님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그 집착이 가상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많은 이들로 복음만을 주장하고 거기에 목숨을 바친듯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혹. 목사님의 숨겨지듯 감춰져, 의도한 바요.. 그것으로 또 다른 자기만의 아성과.. 이목을 쌓아가는 자기생존의 한 수단이 되어지지 않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입니다..
가짜를 말한다해서 가짜가 가짜노릇할 수 있다지만. 꼭 진짜를 말한다해서 다 진짜도 아니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어찌되었든 마지막으로 응답하고 이 길을 지나가렵니다.. 먼저 저는 결코 성경을 가지고 장난치는 목사는 아닙니다. 무슨 근거로 그리 호된 말씀을 하시는 이 어리석은 종이 알수 없지만.. 그러는 이목사님은 주님이 친히 분부하시고 명하신 말씀과 그본분 조차도 복음의 내용 운운하며(물론 주님의 친히 자신을 증거하신 말씀과 가르침이 복음이고 그것이 바로 주님이 명하신 성찬식에 복음의 내용이 담겨있지만) 이를 무시하고.. 가볍게 여기려고 시도하는 사단적 발상이 바로 성경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과 같다고 여겨집니다.. 한번 돌아보시지요..

그리고 저는 추호도 성찬식에다 무슨 권위나 신성을 부여한다 말을 한적이 없음에도 내가 무슨 성찬식을 신성시 여기고 복음과 같은 권위를 부여한듯 호도하고 있는데.. 여전히 남의 글의 내용을 신중히 읽고 처리하지 못하는 성격이 그대로 보이는 듯 합니다. 이를 위해 내가 구득영목사님께 드린 글을 잘 읽어보시기 바라며.. 그리 사람을 어줍잔히 잡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내가 목사님이 제시한 성찬식의 표준에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60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4,667 묻고답하기 [신앙의 3요소: 지식 믿음 행함 ] 2002-08-15 - 24 - 최고관리자 07-03-09
4,666 묻고답하기 [시간의 정의] 2002-08-11 - 16 - 최고관리자 07-03-09
4,665 묻고답하기 [선택된 유대인도 망했는데 하물며 선택된 그리스도인은?] - 최고관리자 07-03-09
4,664 묻고답하기 [필독 여기서의 가르침은 잘못된 것이오니 건전한 교단의 교회로 돌아가십시요] 2002-08-06 - 09 아가 최고관리자 07-03-09
4,663 묻고답하기 [이슬람과 기독교의 비교에 ] 2002-07-08 - 2002-08-01 - 최고관리자 07-03-09
4,662 묻고답하기 [윗치만니에 대해 ] 2002-04-25 - 2002-06-11 - 최고관리자 07-03-09
4,661 묻고답하기 [죄를 짖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2002-02-24 - 04-20 요한일서 최고관리자 07-03-09
4,660 묻고답하기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 2002.01.06 - 2002.02.06 - 최고관리자 07-03-09
4,659 묻고답하기 [세례요한에 대하여] 2001.09.25 - 2001.12.12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07-03-09
4,658 묻고답하기 [우리가 율법을 바로 알면] 2001년 09월 18일 -19일 - 최고관리자 07-03-09
4,657 묻고답하기 [보다 깊은 율법의 이해가 이어야 할 것입니다 ] 2001년 09월 16일 - 로마서 최고관리자 07-03-09
4,656 묻고답하기 [영지주의란 무엇입니까? ] 2001년 09월 07일 - 09월 11일 - 최고관리자 07-03-09
4,655 묻고답하기 [조용기가 왜 복음을 못 전하는 이단인지 ? ] 2001/08/11 - 2001년 09월 06일 - 최고관리자 07-03-09
열람 ➜ 묻고답하기 [성찬식에 대해서 !!] 2001/08/04 - 2001/08/09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7-03-09
4,653 묻고답하기 [ 성화에 대하여 ] 2001,7,27 - 2001, 08, 01 - 최고관리자 07-03-09
4,652 묻고답하기 [ 갈 3장 24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2001,6,27 - 2001,7,4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07-03-09
4,651 묻고답하기 [ 언약완성을 위한 수단과 배경에 대해서 ] 2001,6,20 - 2001,6,26 - 최고관리자 07-03-09
4,650 묻고답하기 [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 2001,6,10 - 2001,6,19 디모데전서 최고관리자 07-03-09
4,649 묻고답하기 기탁씨 잠깐 이 글을 보세요 - 최고관리자 07-03-09
4,648 묻고답하기 [ 마태복음 13:47-48의 비유본문에 대해서 2001.05.03 - 2001.06.09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7-03-09
4,647 묻고답하기 [ 거짓과 참에 대해서 ] 2001.04.15 - 2001.06.01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7-03-09
4,646 묻고답하기 [ 세 가지 유형의 성화관과 십자가 전후의 연속, 불연속 ] 2000.10.07 - 2001.03.30 [신학] 최고관리자 07-03-09
4,645 묻고답하기 [ 답변 ] - 2001/9/17 이근호 [신학] 최고관리자 07-03-09
4,644 묻고답하기 [ 답변 ] - 2001/9/16 이근호 - 최고관리자 07-03-09
4,643 묻고답하기 [ Re: 답변 ] - 2001/9/15 최명규 - 최고관리자 07-03-09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