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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 성화에 대하여 ] 2001,7,27 - 2001, 08, 01묻고답하기-

[ 성화에 대하여 ] 2001,7,27 여쭙습니다 이근호 목사님께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성화론에 대하여 여쭙고자 합니다.
흔히(일반적으로) 성화를 그리스도인의 성숙이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성화의 개념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십자가 마을의 입장으로 압니다. 그 점에 대하여 이 목사님께서 피력해 놓으신 글들을 일부 살펴보면서 그러한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는 합니다만..^^ 그래도(?)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대할 때마다 자꾸 혼동이 되거든요. 예를 들면,
1)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 자랄찌라는 명령으로 미루어보건대 성숙의 여지, 또는 성장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2)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꼭 무슨 성화의 단계를 대하는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3)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5:13-14)
☞ 영적 측면에서 어린아이와 장성한 자의 차이는 뭔가 성장 또는 성숙의 과정이라는 걸 암시하는 것으로 아는데요..
4)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위의 말씀들을 흔히 알려져 있는 성화론이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할 지 목사님의 고견 기다리겠습니다(결코 변론이 아니라, 궁금증의 차원에서입니다). 건강하십시오.

[ Re: 성화에 대하여 ] 2001,7,28 이근호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 안'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구약적으로 말해서는 '언약 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있을 수 있는 특별한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아담 안'에서는 도저히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상했더라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처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질문에 에베소서에서 2개, 히브리서에서 하나, 베드로후서 1개의 구절을 거론하셨습니다. 모든 귀절은 오직 하나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딴 게 아니라 상상도 못할 모든 선한 것들이 '그리스도 안' 혹은 '그리스도 몸 안'에 있다는 겁니다. 베드로후서 같은 경우를 보면, '신의 성품'이라고까지 표현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갈라디아서 5:22에 보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 같은 열매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의 성품이나 성령의 열매가 어떻게 주어지는 겁니까?
사람들은 오해하기를 점차 점차 훈련을 하고 세월을 보내면 추가적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건 아닙니다. 주님의 대한 첫 사랑이 유지된 상태에서 회개가 일어나며 단번에 주어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의 세계는 너무나 구원의 은사나 능력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체험과 경험에 의존해서 하나 하나 추가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그렇게 되니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사는 식이 아니라 '아담 안'에 사는 식이 됩니다. 소위 이것이 '성화' 혹은 '성숙'이라고 말하는 것들입니다. 즉 늘 회개하는 것 대신에 늘 자신의 성품 고치기에 관심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에 덕을 더하라고 하니, 믿음은 일단 있고 덕만 더하면 된다고 여깁니다. 그 다음에는 절제를 더하면 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절제를 더하는 순간에 이르면 믿음과 덕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을 확보하고 유지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바로 베드로후서를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베드로후서의 말씀은 바로 이런 성화 주의를 오히려 공격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처음부터 새로 출발한다고 여기는 참된 성도는 늘 회개할 것 밖에 없습니다. 즉 "하나님, 저는 믿음과 덕과 절제에 대해서는 한 가닥 한다고 여겼는데 사실 그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하나님의 은사는 항상 성령에 의해서 은혜로 주어져야 우리에게 나타나는 거군요"하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어느 정도 섰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바로 교만한 순간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이미 확보해 놓은 기술이나 기능으로 버틸 수 없는 겁니다. 오직 날마다 회개하게 하시는 주님의 공로로 이루어집니다. 이 일을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지적할까요? 바로 베드로후서와 같은 말씀이나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말씀으로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이야기는 멜기세덱의 이야기입니다. 멜기세덱의 이야기는, 인간의 그 어떤 육신으로 하는 행위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일방적인 축복으로 그 맹세대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노력에 의존하려는 어린애 같은 생각은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에베소서 말씀하는 몸을 온전케 한다, 혹은 자라난다는 것은 개인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그리스도 몸을 의미합니다. 즉 이미 그리스도가 한물 간 존재로 간주하겠지만 어느 구석인가, 어느 시대에서인가 택한 백성은 출몰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대하면서 교사와 전도자로 성도로 세움을 입은 것입니다. 그 목적은 개인이 구원받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의 몸의 온전함, 즉 몸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하나님도 하나라는 그 몸의 온전함을 증거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회개를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온유하고 화평스럽고 절제하게 되고 믿게 되고 이웃 사랑을 하게 되는 신의 성품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런 경험을 했다는 그 경험자의 자질 때문에 그 신의 성품이 나타나는 것이 1초 이상을 경과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구름이 걷히면 태양은 환하게 빛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구름이 늘 걷히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성령께서 성도에게 늘 회개케해서 구름 위에 빛나는 태양만 바라보게 하지요. 그럴 때 그 순간을 신의 성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의 성품을 어떤 사람이 개인적인 것으로 삼아 보존할 수 있는 그 어떤 수단이나 방법도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회개케 하시는 주님이 공로와 은혜 덕분입니다.
저는 차라리 야고보서가 이런 성화주의의 잘못을 지적하는데 적절하다고 봅니다. 야고보서 1장에 보면, 모든 각양 좋은 은사는 오직 위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ㄷ이 지상에서는 뭘 합니까? 바로 '더이상 위를 쳐다 볼 필요가 없다'라는 점을 야고보서는 공박합니다. 사람이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를 어기면 모든 것이 어기는 것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늘 말씀을 보면서 회개해야 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회개하는 자체가 신앙 성숙이 많이 된 사람의 전용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면 누구든지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스스로 신학에 신앙에 정통하면 어느 정도 실수가 없다고 자신하는 자에게는 도리어 교만이라는 악령이 쒸어져 있는 것이 됩니다. 사람들이 회개가 안되고 첫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니까 기껏 하는 소리가 "나도 안다. 옛날에 다 그런 체험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더 발전해져 있다. 나는 너보다 더 성화된 사람인 걸 알아야지. 어디 초보자가 감히...."라는 주장을 늘어놓습니다.
성화를 주장하고 성숙을 주장하는 사람은 마치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에 백이면 백, 사이비 교주의 길로 갑니다. 자신의 훌륭함을 근거로 예수를 증거하고자 하는 거짓 선지자를 경고하는 말씀이 마태복음 7:14-23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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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 Re: 성화에 대하여 ] 2001,7,28 여쭙습니다이근호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글을 통하여 성화론 뿐만 아니라, 회개, 교회 성도들이 서로 하나된다는 의미, 언약과 주님 안에 거한다는 말씀의 의미..까지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항상 건강과 주님의 평안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Re: Re: Re: 성화에 대하여 ] 2001,7,29 조규현
이근호 목사님에게 ‘성화’ 이론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어느 분의 글이 실렸고, 거기에 대한 이근호 목사님의 답변, 또 그 답변에 대한 이 분의 불만스런 글이 실린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글들이 어찌하여 삭제되어 버렸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저는 삭제된 그 글들에 대한 저의 생각을 피력하고 싶다.
교회사에 있어서 신학적 논쟁이나 '주의'라는 것이 결국은 성경 말씀을 ‘율법적’ 관점에서 해석할 것인가 ‘은혜적’ 관점에서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 같다. 율법적 관점에서 보면 성경 말씀대로 신자는 실천하고 행해야 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은혜적 관점에서 보면, 신자들에게, 실천하고 행할 수 없는 죄인임을(롬3;10, 20) 비추어 주는 ‘거울’이 된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도, 예수님의 산상보훈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의 삶’을 강조한 바울의 권면과 실천도, 그대로 행하라는 것보다 “죄인의 괴수(딤전1:5)”인 <나>를 바라보라는 ‘거울’의 말씀이 된다. 따라서 구약에서 출애굽 당시 ‘문설주의 어린양의 피’의 은혜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됨을 깨닫게 된다.
‘새 생명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신자라면 누구나 한결같이 교회에 충성 봉사 잘 하고 이웃에게 희생 봉사하는 삶이란 말인가? 그리고 어떤 도달점을 정해 놓고 거기에 도착하면 성화된 자인가? 성서에 기록된 눈뜬 소경의 기쁨과 간음한 여인의 용서함 받은 기쁨이 현상적으로 같을 수가 없듯이 예수 안에서의 ‘새 생명의 삶’이 구체적으로 객관성을 띌 수 없다고 본다. 사람마다 환경따라 다른 것이 아닌가?
때문에 신자는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하는 ‘예수 안에서 의인’된 죄인이 아닌가? 이 십자가의 은혜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더욱 더 깨달아 가는 것을(엡3:19) ‘성화’ 또는 ‘성숙’이라 보면 어떨가?
성서 해석에 있어 ‘인간의 행함’의 관점보다 ‘예수님과의 정당한 관계성(은혜)’의 관점에서 해석을 하여야 타당하다고 본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고 “저렇게 된 것이 누구의 죄입니까(요9:2)”라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실 따름이다(요9:3)”라고 답변하신다. 이처럼 ‘인간의 행함’의 관점에서는 그 기준이 인간의 윤리 도덕일 수밖에 없으나 은혜의 관점에서는 그것을 초월하여 생명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화’되기 위해 인간의 행함을 구체적으로 요구한다면 또다시 율법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부디 하나님께서 자유케 하신 천국 백성에게 ‘성화’ 혹은 ‘성숙’이란 것을 명목으로 또 다시 율법의 종이 되지 않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 Re: Re: Re: Re: 성화에 대하여 ] 2001,7,30 방문자
이다. 싶다. 된다.이렇게 말고, 입니다, 싶습니다, 됩니다 이렇게 쓰심이 어떠신지요,이런 적은 부분에서도 님의 어떠하심이 나타납니다.아래 내용도 애매모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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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 Re: Re: Re: Re: 성화에 대하여 ] 2001,7,30 조규현
바른 지적을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다' 보다는 '입니다'로 '싶다' 보다는 싶습니다 로 표현을 하면 좋겠다는 님의 지적에 감사를 드립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보통 글을 쓸 때처럼 습관이 되어 그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편지글이 아니고 자기의 생각을 그냥 써보는 가벼운 글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혹 이 표현들이 님의 마음에 거리낌이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부탁드리는 것은 익명이 아니라 당당히 이름을 밝히면서 자기의 생각을 들려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성화'에 대한 저의 글에 대하여 애매모호 하다고 지적해 주셨는데 님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동의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 역시 님의 생각에 따를 수는 없지만 다를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를 합니다. 계속 성경 공부를 통해 성령께서 저를 깨닫게 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삼복 더위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안타까움 ]
2001,7,31 박찬민 부담없이 적어 봅니다
예외없이한 사람도 빠짐 없이죽음을 맞이 하지요
죽음 바로 직전에는한 사람도 예외 없이하나님을 찾지요
그 하나님을명확히알 수 있는유일한 방법은성경 안에서 이지요
즉 성경 안에서사람이또 한 번 태어나는비밀을 알게 되지요
그 비밀을성경 안에서발견 하시기를진심으로바래 봅니다
이러한이유로성경을정확히 전해야 하지요
가장 중요한 일 이지요
안타깝군요...저희는주제별로정리하여성경이 한 절 임이증명된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성경을 명확하게알리고 있습니다
올바르다 여겨지실 때....널리 알려 주시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하나 하나지적 요망 합니다
성경을 올바르게 전하는crossvillage 이기를진심으로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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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聖/經/은/ /한/ /節/이/다/
성경(聖經)은 한 절(節)임이 밝혀졌습니다어느 페이지 어느 절(節)이든 똑같은 한 절(節)입니다
두꺼운 성경책에어느 페이지..어느 절이든똑같은 뜻이지요그 뜻은 똑같이"하나님을 알라"의 뜻이지요
즉,성경 안에는"성경을 통해서하나님을 알라" 이외에는없지요
그래서성경을 열심히깊이 보아야 하지요
주제별로 심도 있게 보셔야그 두꺼운 책이보이지요한 절로....
만약에...빛 이란 주제로 본다면...빛이 있으라(창1:3)
찬양이란 주제로 본다면...찬양할찌어다(시47:7)
십일조란 주제로 본다면...십일조와 헌물이라(말3:8)
성경을 잘못 보면'빛' 은 '빛''찬양'은 '찬양''십일조'는 '십일조' 로 밖에 못 보죠바로 소경 이지요
빛, 찬양, 십일조...전부 하나님 말씀을 깨달은 "나 자신"으로똑같이 보이시면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본 것이지요
더 궁금하시면..문의02-578-3653[ Re: 안타까움 ]
2001,7,31 이근호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 구절 안 빠트리고 순서대로 옮겨놓는 식이 더 낫지 않을까요? 한 단락 끝날 때마다 "빛으로 보세요" 라는 말을 추가시키면서 말입니다. 서당에서 자란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무책임한 글들을 숱하게 올려놓고서는 이제 와서 말씀 증거의 사명을 다 한 것처럼 의젓하게 구는 태도가 참으로 거만합니다. 인체를 분해해 놓고 현미경으로 그 세포까지 샅샅히 훑어보세요. 과연 그런다고 해서 생명이 보일까요?
귀하게 속한 조직에서 하는 일들은 딴 게 아니라, "아이구 성경을 아무리 훑어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애래 모르겠다. 그래 성경 낱말이나 붙여놓고 그대로 전달해놓고서 전도의 사명 감당한 것으로 여기자. 전도 안하면 하나님이 벌주니까 말이야"라는 무책임한 방식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뭐가 뭔지 완전 포기한 자들이 하는 짓이 꼭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 무저건 많이 읽으세요. 거기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노트에다 써 보세요. 설마 어느 구절인들 은혜 받을 순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놓고 스스로 위로하기를 "하나님, 저는 주의 종으로서 성경 많이, 많이 읽으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니 저로서는 책임 완수했으니 저에게 무슨 책임추궁은 아예 하지 마세요" 라고 나옵니다. 전형적인 불신자입니다.[ Re: Re: 안타까움 ]
2001,7,31 박찬민
이근호 님하나님 말씀은 한 마디도 없군요...본인 생각만..말씀을 말씀으로 보시기를...
<전도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성경 안에서 정리하시기를 진심으로 권유 드립니다.
<전도란 무엇인가?(2)>를 강론으로 보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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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장 44절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눅4:44)
1)............................................................................................................*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눅4:44)*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행8:12~13)
[문제] '전도하시더라(눅4:44)' 와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 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행8:12~13)' 는 서로 다른 뜻 일까요 같은 뜻 일까요?
① 다른 뜻이다 ② 같은 뜻이다 [정답②]
2)............................................................................................................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눅4:44)*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막3:14~15)
[문제] '전도하시더라(눅4:44)' 와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 심이러라(막3:14~15)' 는 서로 다른 뜻 일까요 같은 뜻 일까요?
① 다른 뜻이다 ② 같은 뜻이다 [정답②]
3)............................................................................................................*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눅4:44)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5:42)
[문제] '전도하시더라(눅4:44)' 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5:42)' 는 서로 다른뜻 일까요 같은 뜻 일까요?
① 다른 뜻이다 ② 같은 뜻이다 [정답②]
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눅4:4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문제] '전도하시더라(눅4:44)' 와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는 서로 다른 뜻 일까요 같은 뜻 일까요?
① 다른 뜻이다 ② 같은 뜻이다 [정답②]
5)............................................................................................................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눅4:44)*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1~24)
[문제] '전도하시더라(눅4:44)' 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1~24)' 는 서로 다른 뜻 일까요 같은 뜻 일까요?
① 다른 뜻이다 ② 같은 뜻이다 [정답②]
6)............................................................................................................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눅4:44)*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42~43)
[문제] '전도하시더라(눅4:44)' 와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 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42~43)' 는 서로 다른 뜻 일까요 같은 뜻 일까요?
① 다른 뜻이다 ② 같은 뜻이다 [정답②]
원하시면...<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보내 드리지요
성경을주제별로 심도 있게보시기를...바랍니다

ⓝ 요한1서의 죄(예수 믿은 후 죄가 없어지나 또는 죄 안 짓나??)
작성자 [ 전도자 ] - 2001년 07월 24일 오전 02시 31분에 남기신 글 제가 어제 성경 보던 중 느낀 점인데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요한 1서 1장 )하나님과 거하면서 어두운데 있으면 말도 안 되며, 우리가 죄 없다하면 하나님을 거짓말로 만드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죄를 사함받았으니 이제는 죄가 없다라고 알고 있었으나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으면 예수에게 죄 씻음을 받아야 하며 또 계속 정함을 받아야 한다고 이해했는데 목사님의 견해는???제 견해는 예수 믿고도 계속 죄를 짓는다는 뜻 같은데(문자적으로), 히브리서에서는 무어라고 정의하는지 좀(반대로 말하는 것 같은데요???)이 문제 제대로 설명하는 목사님도 별로 없고 성도들은 제 각각 믿고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어서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 ☞ 요한1서의 죄(예수 믿은 후 죄가 없어지나 또는 죄 안 짓나??) 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7월 24일 오전 05시 36분에 남기신 글 요한일서에서는 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예수님을 알기 전과 후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나는 늘 죄 짓는 것이 아니다. 죄도 짓지만 전적으로 죄만 짓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이 죄인 줄 모르고 있다가 예수 믿고 난 후에는 "나 자체가 죄인이라서 늘 죄가 나올 수 밖에 없구나. 즉 예수님이 화목제물되시고 생명 됨을 믿지 않는 것이 곧 죄의 근본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나 혹은 히브리서에서는 또한 다른 성경 전체에서 한결같이 말씀하시는 바는 예수 믿지 않는 자는 무엇이 죄인줄 조차 모르게 되며 더욱 더 나아가서, 택함 받지 못한 자는 무엇이 죄인 줄조차 아는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채 지옥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정의는 요한복음 15:24절에 명확하게 나옵니다. "내가 아무도 못할 일을 저희 중에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즉 예수님께서 인간 속에서 뭔가 일을 안했으면 죄인 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가겠지만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서 벌러시는 일, 즉 십자가를 보이시는 일을 하므로 인간들이 근본적으로 죄인임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를 더 말씀드리자면, 이와 같은 예수님의 하신 일을 중심으로 죄관을 삼지 않고 자신이 행한 일을 가지고 죄냐 아니냐를 삼는다면 그 사람은 그런 죄관 자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죄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성화주의자들이나 행함의 신학이 이단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 ☞ 예수 믿지 않는 것이 죄 작성자 [ 전도자 ] - 2001년 07월 24일 오후 12시 41분에 남기신 글
아담의 불순종이 죄의 원조 아닙니까?바로 하나님의 언약이 나오고 결국 아들인 예수님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또한 예수님 영접 후 계속 죄를 짖기에 칭의만 가지고는 안되어서성화란 교리가 나온 것으로 아는데 다시 한번 설명바랍니다. 죄관을 예수 중심으로 하면 하나만 범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라고 하는 야고보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요...
----------------------------------------------------------------------------------ⓝ ☞ ☞ ☞ 예수 믿지 않는 것이 죄 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7월 25일 오전 06시 53분에 남기신 글 죄의 원조가 인간 중심으로 보면 아담이 그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쟁 관점에서 보면 이미 하늘 나라에 악이 있었습니다. 그 악이 하늘에서 쫓겨나서 지상에서 인간에게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죄는, 개인적인 악한 행위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죄를 유발하는 악의 통치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가 바로 죄를 더 짓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율법 외의 한 의인 예수님의 의의 통치를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칭의란, 우리보고 죄 안 지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그리스도의 의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따로 '성화'라는 전혀 성경에 들어 있지 않는 인간적인 윤리성이나 철학적 개념은 필요가 없지요. 참고로 말씀드려서 성경의 거룩은 구약에서 분리라는 뜻이요 그 분리된 거룩한 영역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고 우리에게는 단번에 주어집니다. 계속해서 점차 거룩해지는 그런 개념은 성경적이 아니고 인위적인 철학에 불과합니다.(히 10:10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 ☞ ☞ ☞ 가족과 강도와 성화 작성자 [ 전도자 ] - 2001년 07월 25일 오후 10시 44분에 남기신 글 로마서에서는 죄의 원조가 아담이라고 하는데, (인간중심인지 아닌지 아직 모르겠음)하나님의 전쟁관점은 아마 복음서, 계시록과 베드로 전후서, 히브리서 등에서 조금씩나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저는 하나님이(물론 예수님도 포함), 죄라고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믿는다고 하는 것은 무지 무지 어렵습니다. 맞죠??) 그 전능하심을 인정치 않고모든 만물의 주인이고 사랑이시라는 것을 믿지 못하기에 전쟁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며, 성경이 계속 강조하는 것은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여기서 악의 세력이란 일종의 가정의 평화를 꺠는 강도이기에 물론 가장이이들을 제거하는 것이 큰 일이고 중요하나, 어디까지나 중심은 자기 가족사랑에 있다는 것 아닙니까??? 이게 강조가 안되고 무슨 강도 쫓는 것이 중요하고 무슨심오한 것 인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좀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화에 대해서도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요,예수 안에 라는 말은 바울의 전매특허인데 그가 얼마나 죄에 대해 몸부림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노력했습니까? 이것도 믿음이 없고 행위입니까?그냥 성령의 열매는 주님이 다 하시니 가만있으면 됩니까?? 아니지요, 목사님의 어떤지 모르겠으나, 우리 보통 믿는 자는 참 주님의 은혜에감사해서,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나중에 주님이그런 마음도 허락하셨구나 하고 감사하고 또 계속 열심히 하고 기도하고뭐 이런 삶을 성화라고 하는데 이것이 뭐가 틀립니까????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았으면 양육되고 성숙한 기독교인이 되는것 당연하잖아요목사님 신학교 왜 다니셨나요, 칭의 받으면 끝인데 왜 따로 공부하셨죠.....
우리가 양자되고 주님과 같이 거하니 다 끝이 아니잖아요, 성화를 부정하는 분은 아마 제가 처음 보는 것 같아요????물론 성령의 도움 없이 자기가 한번 해보겠다는 사람을 겨냥하신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야 이런 사이트 보지도 않는 것으로 압니다.
목사님의 답변 기다립니다.(약간 오버했는데 다시 쓰기 힘들어 그냥 올리니 용서)

ⓝ ☞ ☞ ☞ ☞ ☞ 가족과 강도와 성화 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7월 26일 오전 06시 48분에 남기신 글 성도가 어떤 생활을 헤야 하는 것은 성경에 그 내막이 잘 나와 있습니다. 에베소서 1:15-19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3:14-18에도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성도가 하게 되는 것은 성령이 와서 마음 눈을 밝혀 떠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베푸신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시간에 따라 날로 증가된다든지 선행이 축적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성숙'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학생 시절에 알던 주님의 은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고 난 뒤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는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신학 지식은 축적이 되고 윤리적 요령도 축적이 되어 가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첫 사랑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늘 은혜를 받지 아니하면 어떤 인간도 성도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숙( 혹은 성화라는 것은 성경에 없는 개념입니다)을 계속 자신의 소유로 삼을 수는 있습니다마는 그런 소유를 하나님은 거룩한 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오셔야 하는 은혜가 필요하다는 믿음뿐입니다.
----------------------------------------------------------------------------------ⓝ ☞ ☞ ☞ ☞ ☞ ☞ 가족과 강도와 성화 작성자 [ 전도자 ] - 2001년 07월 26일 오전 10시 11분에 남기신 글
예수를 아는 것은 오직 성령의 일이지요... 하지만 성령이 왜 우리 안에서 탄식하십니까? 그냥 은혜줄자 주고, 선택하지 않은 자 주지 않으면 그만인데요.. 물론 하나님이 계획해놓으셨더라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 아닙니까?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마음까지도 예정하시고 계시지만 우리도 우리의지로 행할 때, 피차에 기쁨이 있는 것 아닙니까?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기도하면 다 예정되어 있는 일이지만 하나님도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슨 하나님을 과소평가해서 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선한 행동을 주님께서는 받으시고(물론 이것도 주님이 감동을 주시지만) 서로 영원히 살 한 가족으로써 사랑을 키워 간다고 볼 수 있겠네요... 목사님 논리도 맞는데요, 다만 선행이 축적이 아니고 계시의 폭이 깊고 넓어지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과 저하고 그러면 같은 레벨이라는 말입니까??? 성화란 행위의 축적이 아니고, 신앙의 성숙과 하나님의 뜻을 점점 더 알아간다는 뜻이라고 사료됩니다. 성장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습니까? 누가도 예수님의 지혜가 점점 더 자라난다고 했고, 바울도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기다리라고 했지 않습니까??
물론 경계의 말로 알아듣겠습니다만. 코멘트 바랍니다.ⓝ ☞ ☞ ☞ ☞ ☞ ☞ ☞ 가족과 강도와 성화 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7월 27일 오전 07시 28분에 남기신 글 경계의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취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경계의 말을 듣고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순종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하나님 이름'이신 예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자는 자신의 성숙이나 성화나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알아 가는 과정으로서 구원받고 있다거나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주의 이름'의 수행하시는 현재적 활동과 행함에 있다고만 고백합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이럴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빌립보서 2:10-11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경우가 한 가지고 고정되어 있습니다. 오직 모든 공로를 예수님의 공로로 돌릴 경우에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할 수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선의 실천력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영광돌린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또 다른 성경 본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11 입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여기에 봐도 마치 일은 성도가 스스로 다 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리스도가 하신 것입니다. 이것도 또한 은혜입니다.
끝으로 본문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로마서 11:35-36입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공로와 은혜만 증거하면 되지 어떤 인간을 성도로 바꾸도록 노력한다든지 아니면 어떤 사람들은 신자라고 확인시켜 주어서 그들을 안심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자기 손으로 그 사람을 훌륭한 신자로 만들어 보겠다는 시도는 모두 주제 넘는 일입니다. 성도라면 그 어떤 경우라도 (예를 들면, 교인들을 늘리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중고등부를 부흥시키고, 일가 친척을 교인으로 만들라는 그 어떤 압력적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라도) 복음만 증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종교적 활동 속에는 본인 존재 가치와 결부된 자존심이 개재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 기본이 성화??
작성자 [ 전도자 ] - 2001년 07월 31일 오전 06시 20분에 남기신 글
목사님의 글을 볼 떄 참 대단히 조직적이고 논리적임을 느낍니다. 아무도 성화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는 이 시대에 감히 아니다 라고 말하시는 그 용기는 참 놀랍습니다.서울대학교 수석입학자가 늘 하는 말 있죠, 모든 은혜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돌린다는 모범답안 말입니다. 이 학생 자기도 밤 잠 안 자며 노력했으나 어쨌던 모든 공을 다 원인제공자에게 돌립니다. 어찌됐건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으니까요.이것이 성숙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믿는 것 뭐 무슨 특별한 인간들이 아니고 다 같은 인간입니다. 결국 하나님에게 다 영광 돌리는데, 이런 신앙이 처음 예수 영접할 때 안되지요. 그저 다 자기가 잘 나서 된 줄 알지만 나중에 보면 다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더욱 주님에게 헌신하지 않습니까??? 이때 분명히 지식적 동의와 실제로 몸을 쓰는 것하고는 분명히 개인의 의지도 들어갑니다. 여기서 저는 in Christ 란 말이 나왔다고 봅니다. 주님 안에서 최선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포인트는 뭐 행함과 육체를 악으로 보는 헬라 철학 같기도 하고(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참 모르겠습니다. 새벽 기도할 때, 다 주님께서 그냥 깨워 주십니까? 이런 것은 행함이니 안 하십니까? 참 우리 몸에서는 하기 싫어도 주 안에서 의지로 밀어붙일 때도 이것을 불쌍히 보시고 은혜 주시지 않습니까? 다 행함이면, 도대체 불교신자 아니세요, 교회헌금 이런 것 다 율법이고 행함이니 안 받으십니까? 아무리 어려운 목사님의 글도 다 나름대로 이해는 가는데, 이근호 목사님의 글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특히 믿음을 강조하실 때는)

ⓝ 철학과 신학 - 헤겔 철학에 대해서 작성자 [ 전도자 ] - 2001년 08월 01일 오전 00시 52분에 남기신 글 제가 보고들은 것은 플라톤 철학(정신우의)에서 헤겔 철학이 나왔다고 하는데 항상 이 헤겔 철학이 손에 안 잡힙니다. 변증법 아마 중학교 때부터 배웠는데 아직도 이거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대학교에서 철학개론 배웠는데 교수도 학생도 그냥 다 모르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요. 뭐 그냥 정.반.합 이라는데 아마 기독교의 처음과 끝을 부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불교의 윤회설 같기도 하고...... 선악 개념을 아주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천당, 지옥 부정?)책을 보아도 어떤 포인트가 안 잡히는데 한 수 지도를 바랍니다. 여기서 막히니 그 다음은 자연히 모르는데 그냥 아는 척 하지요. 먹고사는데는 하등 필요 없는 이런 것들이 요즘 신학을 공부하다보니, 이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 ☞ 철학과 신학 - 헤겔 철학에 대해서 작성자 [ 이근호 ] - 2001년 08월 01일 오전 07시 09분에 남기신 글
헤겔 철학은 역사 자체를 신의 계시로 보자는 겁니다. 즉 삼위일체 내부에서 예수님의 역할은 자신을 희생하고 스스로 죽음에 이름으로서 진정한 천국(신의 세계)을 달성하는데 있었습니다. 헤겔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것을 '소외'라고 함)을 역사의 진정한 실체라고 간주하자는 것입니다. 즉 역사를 고통과 질곡을 버려 두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더 높은 질적 차원 속으로 회수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겁니다. 즉 역사는 다시 신의 정신(절대이성이라고 함)으로 회복되는 것이기에 역사 자체에 대해서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 헤겔의 철학입니다.
이러한 헤겔의 철학의 근거는, 인간들의 수고로운 '노동'의 본질을 분석함으로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즉 인간의 노동은 진정한 자신을 아는 수단이요 매개로 작용한다는 겁니다. 노동을 통해 자기 앞에 자신의 노동의 산물을 창출할 수 있고 그 대상물을 통해 자신의 자기 됨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늘 주인노릇을 지향하지만 차라리 노예가 되는 것이 자신 본질에 합당하게 되고 거기서 자유를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 존재 의미에 대해서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때문이죠.
헤겔의 철학은 단순한 철학분야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와 책임과 존재성에 대해서 최고 경지의 진리가 무엇인가를 탐구한 궁극적 사상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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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