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약완성을 위한 수단과 배경에 대해서 ] 2001,6,20 - 2001,6,26
[ 언약완성을 위한 수단과 배경에 대해서 ] 2001,6,20 촌아이 목사님, 답해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런 게시판이 있다는 것...옹달샘 같아서요. 목이 말라서 찾아들었다가 시원하고 달게 그 갈증을 푸는 옹달샘 말입니다. 하나님은 역시 언약되시는 주 예수님에게만 관심을 갖고 계시며, 우리가 속해 있는 이세상의 모든 움직임들은 바로 언약완성 곧 말씀성취를 위한 수단과 배경과 환경이 된다는 말씀에 속이 다 시원합니다.
제가 질문한 것은, 우리의 일상의 일들이 언약성취의 수단과 배경이 되기에 그 자체에 어떤 작은 의미라도 없을까한 것이 아니라, 그런 배경으로서의 일상도 주님의 언약 안에 이미 들어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도... 주님이 아니라 나 자신과 일상에 더 촛점이 가 있기에 나오는 질문이라 부끄럽습니다만....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는 질문거리를 어느 형제가 저에게 몇 일전 물어왔습니다. 예수를 누가 죽였냐는 것입니다. 가롯유다냐, 아니면 사탄이냐, 저는 예수를 죽인 것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약성취를 위해 예수는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죽였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은 사탄을 들어서라도 구원시키고야마는 그런 분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사탄이 유다에게 예수를 팔 생각을 심었다면 그 사탄도 말씀성취를 위한 배경이 아니겠습니까.
그 형제가 그러더군요. "그러면 가롯유다는 지옥에 안가도 되겠군. 책임은 하나님한테 있으니까"라구요. 그건 아닌데...하면서도 답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옹기쟁이 얘기밖에... 그 배경이 지옥 가든 천당 가든 그건 그 역할에 따라 하나님이 정할 뿐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식으로요....
로마서 3장에 이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럼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느냐~~ 그리고 주께서는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어서...참되시다... 그럼, 이런 배경과 환경에 지나지 않는 유다가 지옥 가는 것도 언약 안에 이미 들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필연"이라는 단어를 쓰게된 것입니다...제가.. 언뜻 "예정론"이 떠오르기도 합니다만....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요
모든 것이 참되신 하나님께서 말씀을 성취해 가는 과정에서 그 배경이 되는 사람과 일들에 대한 질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질문들은 아직도 언약중심이 아니라 그 배경과 수단이 되는 사람 곧, 나 자신을 바라보기에 생기는 질문가치도 없는 질문임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육신에서 비롯되는 질문이 계속됩니다. 육에서 나온 질문은 그 답이 육에서 머물 뿐, 영의 것과 다름을 압니다만 이런 질문들은 어찌해야합니까. 오늘은 좀 정리를 한다는 게 역시 두서 없이 생각나는 데로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 Re: 언약완성을 위한 수단과 배경 ] 2001,6,20 이근호
데살로니가후서 2:11-12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에 보면 '유혹'이라는 것이 설치하도록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심판을 행할 대상을 규정짓기 위함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드실 때에는 반드시 지옥에 갈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옥은 만들어놓았는데 거기에 들어갈 사람이 없다면 지옥을 만드신 하나님의 취지가 멀쑥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파자는 지옥 전파자입니다. 즉 "자, 지옥 갈 사람을 모집합니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지옥에 능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 다들 오세요. 자기 주소가 어딘지 한 번 씩 미리 확인들 하세요"라는 식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전도자입니다. 이 내용이 성경 어디에 나오는가 하면 고린도후서 1:15에 나옵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언약을 증거하는 것은 사적인 혜택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장래 일을 앞당겨 소개하는 것뿐입니다. 이 이외 것을 증거하는 것은 교회 장사를 위해 사람들의 영혼을 농락하는 짓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니은 심판의 기준은 교회 등록 위주가 아니라 복음 위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살후 1:8)
예수님을 누가 죽었는가 하는 것은 요한복음 10:18에 나와 있습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스스로 버린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동원된 자가 바로 가롯 유다요 마귀입니다. 따라서 지옥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악마조차 철저하게 이용하는 겁니다.
[ 오래 참는 것이란? ] 2001,6,20 정성진
목사님.. 안녕하세요..벌써 방학을 하게 되었어요.그래서 그 간에 읽지 못한 책을 마음껏 읽으려고 해요..다름이 아니라 질문 드리고 싶어서요..성령의 열매 중에서 인내가 있는데, 이 인내(오래참음)이란어느 정도까지 참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어떻게 참는 것을 말하는 건지, 그리고 무엇에 대해서 인내하라는 건지요?막연하게, 그리고 무식하게 참는 것을 말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내 의지로는 이 인내를 할수 없다라는 것을 깨달았어요..그러면 어떻게 .. 인내를 하라는 건가요?이것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령의 열매들 다 ..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성령의 열매라서 다 성령이 맺게 해주시는 건가요?무쟈게 궁금해요.. 건강하세요..
정성진 올림
==================================================================================[ Re: 오래 참는 것이란? ] 2001,6,20 이근호 성령의 열매란 쉽게 말해서 예수님의 성품 속에 참여해서 내 성품이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내로 나올 수 있는 인내가 아닙니다. 우리 인내를 오히려 정죄하고 나무래는 주님의 인내이지요. 예를 들면, "왜 너는 너의 인내로 구원되려고 하는가 이 시험에 들린 인간아. 이 예수님이 다 해준다니까"라는 것을 계속 믿게 되는 주님이 주신 인내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 이율배반 ] 2001,6,22 수가성 여인의 남편
안 그런 척하면서 왜 그랬을까? 안 그런 척하면서 왜 그랬을까?나와 너의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렸다. 난 회개요. 넌 감정의 서러움에서 온 발광이라. 난 십자가요. 넌 보상을 바라는 고생이라. 난 할 말이 많은 사람이요. 당신은 쓸데없는 핑계라. 난 담대함이요, 넌 양심이 마비된 자라. 난 사랑이요, 넌 윤리적인 행위작품이여라. 난 복음을 위해서, 넌 물밑에서 속삭이는 음침한 음흉한 행위이라, 난 버렸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그러나 넌 목회했노라,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의 소행이어라, 성취감에 감칠맛을 느끼는 종교기능인이라. 난 복음의 외침이라, 넌 말장난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라. 난 사람눈치 보지 않았다. 넌 눈치 정치꾼이라. 난 솔직하다. 그런데 넌 음흉했더라. 난 어~업~다, 넌 꼬불쳐났구나. 난 예 하였노라. 넌 습관적 아멘이라.... ================================================================================== [ Re: 이율배반 - 변명 ] 2001,6,25 조규현
한 인간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그 사람이 죽고 난 후에라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행동의 결단은 그만이 아는 세계이기 때문에 조용히 지켜보는 아량이 있어야 될 줄 압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처지를 남의 처지로 바꾸어 한 번 생각해 보라는 말이지요.
우리 모두는 이율배반적인 인간이고 이근호 목사 당신은 그렇지 않은 인간이라고 보는 우리의 시각이 잘못이 아닐까요? 베드로도 바울도 이율배반적 인간이었으나 주께서 증인으로 사용했을 따름입니다.
평소에 잘 듣는 “목사도 강단에서 설교 할 때만 목사이지 단에서 내려오면 똑 같은 인간이다”라는 이근호 목사의 소박한 말에 공감하지 않습니까? 이율배반적인 인간임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그러기에 십자가만 바라보자는 결론 때문에 우리가 그의 설교에 매료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안 그런 척 하면서 왜 그랬을까?”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변질된 복음은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갑작스런 이근호 목사님의 박사교회 사임 문제로 여로 모로 상심이 되시는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닐 줄 압니다. 계속 박사 교회에서 시무하시길 바라는 것도 욕심이고 '우리교회'에서 시무하시길 원하는 것도 역시 욕심입니다. 욕심은 욕심에서 그쳐야지 내 욕심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하여 이근호 목사를 원망하고 폄하하여서는 안될 줄 압니다. 다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되어지는 일만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의 모든 과정에서 욕먹을 일은 저에게만 있으니 저를 마음껏 꾸짖어 주시길 바랍니다.
조 규 현 장로[ 교회는 용서받은 사람의 모임입니다 ] 2001,6,25 김태원
세상은 머리 좋은 사람을 우선하고 찾는 것 같습니다. 머리가 나쁘면 세상에서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머리가 나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을까요? 세상처럼 똑똑한 사람만을 찾아서 선택할까요. 아닙니다. 머리가 좋던 나쁘던 하나님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 됨을 아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배운 것이 많아도 자신의 죄인 됨을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brainbank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줄 알고 용서받은 감격으로 형제를 만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마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를 만난 후 자기의 부끄러운 것도 잊어버리고 자기 마을로 뛰어들어가 "나 예수를 만났다"고 외치듯이 자기의 부끄러운 것보다 그리스도를 만난 감격에 사무친 사람들을 하나님이 찾습니다.
혹시 우리들 중에 자신의 자존심에 얽매여 하나님과 숨박꼭질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그리스도만 전파되어지기를... ] 2001,6,25 김효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마땅한 죄인인 내가 대신 죄 값을 치루어 희생하신 그 주님의은혜로 천하보다 귀한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그 감격과 기쁨을 감당할 수 없었는데 그 은혜로 살아감을 고백하는 자들을 박사교회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게 아무 것도 잘해 준 것도 없는데 왠지 그들이 좋았습니다.나의 잘남 없이 거저 용서받은 십자가의 사랑만을 내어 기에 말입니다. 오직 그 주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고백을 하기에 말입니다.인간의 잘남이나 매력이나 인간미는 없는데내가 사랑하는 그 주님을 같이 사랑하고 찬양하고 있다는 것만으로....이제 하나님께서 흩어 놓으십니다.그리스도를 머리로 우리를 각기 다른 지체의 역할로서 복음전파를 위해 말입니다.그래서 여전히 사랑합니다.우리의 죄인 된 모습에서도 주님만을 드러내는 변질된 복음은 아니기에,이제 각기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역할이 다를 뿐, 그리스도의 한 지체임엔 분명하기에 말입니다.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리스도만 전파되어지기를....원래 우리는 못난 인간이었잖아요.[ 도대체... ] 2001,6,25 수퍼 꼴통 황!! 도대체 무엇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말입니까?여러분들이 그런 말을 말할 자격이라도 있으신 분들입니까?가슴이 아픕니다. 남겨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뒷모습을 생각할수록..구차하게 말씀하지 마시고 조용히 떠나가세요..
================================================================================== [ Re: 도대체... ] 2001,6,26 김효은남겨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뒷모습을 생각하며 가슴이 아프다구요?떠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요?헤어짐의 섭섭함과 인간적인 감정으로 마냥 머물러만 있을 수 없는 것이우리의 삶인 것을...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우리의 원하는 대로 놓아두시지 않잖아요.박사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해도주님의 사랑이 남겨져있는 분들에게서 떠나는 건 아니잖아요.인간적으로 너무도 정들었고 사랑했기에 섭섭함도 더하리라 생각되지만여전히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임엔 분명하잖아요.그 예수 안에 하나라는 넓은 마음으로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복음을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사랑하며 보낼 순 없는지요.떠난다 하더라도 남겨져있는 분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데요.헤어진다는 생각보단 그리스도안에 더 넓혀진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정말 가슴이 아프네요.
================================================================================== [ Re: Re: 도대체... ] 2001,6,26 도대체
본인이 쓰시고도 조금 쑥스럽지 않으시나요? 속내는 남겨진 분들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닐텐데요?여러 수십 번 그런 얘길 해놓고도 너무 편안하게 말씀주십니다.
모르지요 혹시 님만은 다를지도... [ Re: Re: Re: 도대체... ] 2001,6,26 이근호
저는 이런 말도 되도 않는 논쟁을 하나님이 복음 전하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평소에는 '복음을 아다느니', 평소에는 '누구보다도 주님 일변도로 사랑한다느니'하는 자들이 막상 뚜껑을 열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때는 그 바라보는 지향점이 전혀 복음적이 아니다. 정말 섭섭하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목사님 어디 가시더라도 복음만을 전해야 됩니다.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아니 됩니다. 교회 부흥이나 성장이나 개척교회 성공 같은 것을 추구하시면서 사시면 안됩니다. 개인적인 치부나 안일을 위해 목사하는 직책이나 복음을 이용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면 제가 다음과 같이 답변할 것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성도님이 그런 이야기가 저를 진정 걱정해주고, 또한 저를 걱정하는 것 이전에 복음이 복음답게 전파되도록 신경 쓰라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도 평소에 박사 교회에서 설교할 때는 누구누구를 경고하고 조심하라고 하기 이전에 그 비난의 대상에 나 자신도 포함된다고 생각하고 늘 그렇게 설교해 왔다는 것을 성도님도 잘 아실 겁니다."
그러면 성도님도, "예 저도 잘 압니다만, 행여 목사님도 죄인인 이상 어떤 일이 일어날 줄 장담 못하지요" 그러면 제가 말하지요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성도님의 경고를 충분히 감안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오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이 얼마나 복음 안에서 아름다운 정상적인 주고 받음인가? 도대체 안에 무슨 심보가 들어있기에 이런 대화마저 차단되는 것인가!
그런데 실상은 그게 아니라, 악한 심보가 들어 있는 어떤 인간이 말하기를, "목사님 개척교회 하실 때 주의 하셔야 합니다" 제가 "예 주의합니다" 그 사람이 또 묻지요. "목사님 개척교회 하실 때 주의 하셔야 합니다"제가 답변하지요. "예 주의하지요"그 사람이 또 묻습니다. "목사님 왜 내 말을 안 듭습니까? 내가 주의하라고 했잖아요. 박사 교회 앞에 공개 사과하세요!"그러면 제가 어리둥절해서 ".........?"그 사람이 또 악에 받혀 공격한다. "당신은 거짓 선지자야. 내가 보니 틀림없어. 왜냐하면 성령으로 말하는 내 경고를 안 들고 나가니 당신은 틀림없이 악마의 종이야. 자 이래도 나에게 사과 안할 거야?그러면 제가 어리둥절해서 ".....?"그러면 그 사람이 말하기를 "거봐, 사과 안잖아. 나는 애초부터 당신이 그런 인간인 줄 알았어"
도대체 무슨 대화가 이런 대화가 다 있습니까?
LA 다저스 투수 코치가 박찬호부터 부탁합니다."찬호야, 잘 보고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돼"찬호. "예"하고 던질 준비를 하라고 하니까또 코치가 막아서면서 "아하, 찬호야 공을 잘 보고 던지라고 했잖아"찬호. "저 아직 공 안 던졌는데요?"코치. "이런 나쁜 인간이 내 말을 안 듣고 공 잘 던지란 말이야"찬호. "예 지금 저도 제대로 공 잘 던지려고 하고 있습니다."코치 "이놈 안 되겠구만. 자기 잘못도 모르고 내 말을 안 듣다니 너 내게 사과해 공개 사과하란 말이야 그리고 불펜에서 당장 내려와! 안 내려와? 그러면 널 이단으로 또는 사이비투수로 몰아버린다. 당장 사과하고 내려와"찬호. "아니 저는 아직 공도 안 던졌는데요?"코치 "어허 아직도 너는 너 죄를 모른단 말인가? 내가 그토록 일렀건만 그래 나는 네가 회개 할 줄 모르는 인간인줄 사전에 알았어. 어디가도 나는 널 저주 할거야 그래 너 다른 팀에 가서 잘 먹고 잘 살아야. 이 코치 선생님은 널 사랑했는데 너는 날 사랑할 줄도 모르고... 네가 투수야? 네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어"찬호 , 어리둥절해 가지고 "......?"
왜 이 세상에 이런 악마적인 작태가 벌어지는가? 그것은 주님의 죽으심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자신의 공들여 놓은 성과를 못 버리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에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거든 자기를 부인하라"
[ Re: 도대체... ] 2001,6,26 김효은
교회의 기준이 무엇인가요?이근호목사님을 따라가는 자는 교회며 남아있는 자는 교회가 아닌가요?이제까지 교회의 기준이 이근호 목사님이었나요?인간들은 드러나는 행동으로 판단을 할 수 있지만주님은 행동 속에 감추어진 중심을 보고 판단하시지요.떠나가는 자들이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남겨진 자들이 교회가 아닌가요?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이 글도 쓸 필요가 없겠지요.그런데 변명하고 싶은 건 왜일까요?사랑하는 이들에게 이해시키고 싶음은 왜일까요?교회가 아닌 자들은 그냥 헤어지면 그만인데....
그래도 주님은 그 곳에 누군가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리라 믿어졌기에....
==================================================================================[ Re: Re: 도대체... ] 2001,6,26 수퍼 황 제가 글을 쓸 줄 아는 재주가 없어서 길게 쓰질 못합니다.저의 짧게 올린 글에 이렇게 많은 리플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내가 쩜 유명하군 ㅡㅡ;;저는 여러분들이나 이근호 목사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관심이 없습니다..그리고 더 이상 이런 문제 같지도 않은걸 가지고 글을 올리고 싶지도 않고요..다만 바라는 것은 조용히 가시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말씀하시는 그 사랑이라는 말에 신물이 날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홈페이지도 폐쇄했으면 하네요.. 그러면 잠잠해 지겠죠?==================================================================================[ Re: Re: Re: 도대체... ] 2001,6,26 이근호 글을 쓸 줄 몰라도 자기의 본명은 있을게 아닙니까? 그리고 사랑에 신물난다는데 지금까지 제가 제 사랑을 강단에서 이야기했습니까? '이근호 사랑' 믿으면 지옥에서 천국 간다고 했습니까? 지난 설교를 낱낱이 살펴보십시오. 거기에 '이근호 사랑'으로 천국 간다고 되어 있든 가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저의 사랑으로 천국 갑니다. 이것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라고 설교한 혹은 그런 취지로 이야기한 한 대목이라도 거론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지금 없는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끄집어내서 나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자 그토록 집요하게 공격하는 목적이 무엇입니다. 누구 좋아라고 공격하는 것입니까? 그동안 당신이 복음 때문에 갈망하고 목말라 했습니까? 아니면 저의 사랑이, 혹은 후임자 목회자의 사랑을 갈망하고 목말라 했습니까? 실명은 못 대어도 이건 정도는 답변할 수 있겠지요. 답변 못 하겠다고요? 왜 자신의 그동안 잘못된 지향점이 후회라도 되십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 강단에서 목 터져라 증거하는 것이 그토록 못마땅하고 가증스럽습니까? 천국 가라고 밤잠 설치면서 말씀 책보고 연구한 것은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농락이었습니까? 당신이 진정으로 복음에 관심이 있었으면 복음만 증거하는 자에 대해서 조금한 배려라도 나와야 그게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성도가 아니겠습니까? 조용히 가라니? 에베소서 4장에 보면, "믿음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기는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주안에서 가기는 어디로 가는데요?. 그러면 당신이 그동안 집착한 것이 특정 공간이었고 특정 지역이었습니까? 글은 잘 못써도 답변은 그 때 그 때 잘하니 여기 이 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군요. 과연 이게 글 쓰고 못쓰고 문제입니까? 제가 강단에서 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 심판은 어느 교회 소속이냐가 기준이 아니라 어디 있든지 복음에 매료되고 복음을 갈망하는 자냐 아니냐 판가름된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제가 지금 당신한테 거짓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설교 녹취되었는데 보면 알지 않습니까?방금 이 말이 귀에 거슬린다면 왜 진작 사전에 나보고 이 교회에서 나가달라는 소리를 왜 안 했습니까? 그동안 저의 사랑이 사랑처럼 쓸모 짝이고 이용가치 있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입니까? 복음에는 전혀 관심도 없이 이근호 자체가 교회나 지키는 사찰로 간주해서 그렇습니까? 이근호가 달라졌다면 어디 어디에서 설교를 이렇게 하고 복음을 이렇게 전했는데 왜 이제 와서 복음과 설교 내용이 한결같이 못하느냐로 따져야 될 게 아닙니까? 도대체 무엇을 수호하자는 사람이고 무엇을 증거하고 싶어하는 자입니까? 무엇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자입니까? 복음 대신 무엇을 우선으로 하고자 하는 겁니까? 본명은 안 밝히더라도 이건 답변해 줄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당신은 당신의 앞잡이 입니다. 그러니까 자신 소유의 공간을 설정해 놓고 "나가려면 나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뭐예요? "나가라!"는 말은 "지금 이 박사교회는 나만의 공간이다 "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겁니다. 교회가 당신 것입니까? 주님도 아닌 것이 십자가 진 적도 없는 당신이 감히 누구보고 교회에서 나가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보십니까? 박사교회가 복음을 지향하면 얼마든지 저도 항상 그 교회와 한 몸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또 설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 안에서 모든 교회가 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대체 당신은 말 한마디 한마디 주님에 의해서 나올 수 있는 복음적인 요소는 찾을 길이 없고 그 대신 어디 조직폭력배들이 단체 하나 만든 요량으로 "박사교회 내 거다 나는 너를 원치 않는다. 이 조직은 내 조직이다"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반복음적이고 비복음적인지 당신은 상상이나 할 수 있어요? 제가 12년 가까이 싸웠던 것이 바로 이런 악마의 소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진작 이런 설교를 할 때, "이근호 너 나가!"라는 말을 전화로, 혹은 익명의 전화로 왜 못했습니까? 제발 부탁합니다만, 이근호를 공격하려거든, 설교가 녹취되어 있으니 '당신이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서 이렇게 설교하는 것이 보다 복음적인 깊이가 더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을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참고로 저의 바뀐 전화 번호는 562-0172입니다. 방금 이런 공격에 대해서 오해나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전화하세요. 박사교회를 자기 것으로 간주하는 비성경적인 사람에게. [ 악마의 특징 ] 2001,6,26 이근호 악마는 자신을 숨기는 본색이 있다. 그러나 복음 증거자는 떳떳하게 자신을 밝힌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이 사람에게 하는 그 말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시기에 조금도 누가 뭐래도 조금도 굴림이 없는 복음 그 자체를 증거한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만약 자신이 증거하는 내용에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거라면 타인을 통해서 자신이 지적 받을 겸손한 마음이 있기에 실명을 거론하면서 자신을 밝힌다. 그러나 악마는 그렇지 않다. 남을 공격하기를 원하면서 행여나 그 공격 가운데서 자신이 손해 볼 것이라고 생기면 어떡하나 하고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자아를 숨기면서 공격하기를 원한다. 여기에 다음의 두 가지 본색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1. 나는 남과 경쟁하는 재미로 산다. 나는 남에게 지기 싫다. 심지어 복음적 이해나 삶이나 실천에 대해서도 죽어도 남에게 지기는 싫다. 나는 이런 힘을 가지고 지금까지 평생을 버티어 왔다. 그래서 행여 내 정체를 밝혀져서 남들로부터 공격받는 것은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아니한다. 차라리 자살할 지언정 그것 못 참는다. 나에게는 복음 증거가 우선이 아니다. 복음 전달 사명이 우선이 아니다. 나는 복음으로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에게 대단한 인물로 인정받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는 나 때문에 사는 존재이다.
2. 나는 나보다 나은 사람을 존경한다. 왜냐하면 언젠가 그도 내 손에 밟힐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그 점이 나를 즐겁게 한다. 따라서 나는 나보다 나은 사람을 좋아한다. 여전히 내 도전욕구를 자극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를 행한 도전욕구 없이는 살만을 잊는 자이다. 따라서 그는 나에게 여전히 이용당할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감히 이근호 네가 내 사는 재미에서 벗어나! 감히 내 허락도 없이...
결론 : 악마는 은혜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은혜이기를 원한다. 타인을 위한 은혜가 아니다. 그래서 그 은혜 받음을 곧장 자기 의로움과 자기 잘남으로 전환시킨다. 가롯 유다가 그런 자였다. 그는 제자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는 은혜를 자기 것으로 제빨리 전환시키고 전혀 시켰다. 은혜를 은혜로 남겨두지 아니하고 자기를 지키는 힘으로 삼아버렸다. 그래서 그는 결국 스승(본인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보지 않고 스승으로 봤다)마저 배반해야 했다. 자기 곁을 떠나는 초라한 예수는 자기 절대화에 더 이상 쓸모 없는 인간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인간은 악마의 종으로 취급한다. 정말 실명을 감추는 자가 자신이 신자라면 남과 경쟁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은 은혜성과 자신의 용서받음이 나와야 한다. 행여 이근호에게 불만이 있으면 설교 가운데 어떤 점이 비복음적인 가를 지적해서 차후에 이근호가 어디에서 누구에게나 복음 전할 때에 그동안 누락된 점이나 복음을 가린 것을 수정해서 다음 번에 제대로 전하도록 도와 주면 좀 좋을까? 이것이 어찌 이근호를 위함인가! 주님이 남기신 것이 복음이면 복음을 염두에 살아야 그 속에 복음만이 들어있는 자가 아닌가!
이근호가 평소에 설교하기를, 마지막 심판은 복음으로만 되니 제발 복음만 생각하고 ,'복음 잘 전하는 멋진 교회'는 생각하지 말라고 얼마나 누누이 이야기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엉뚱한데 팔고 있는 자들은 생각하기를 "아, 저런 목사가 있으면 나도 괜찮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으로 참 기쁘다"라는 자기 생각만 하고 있었던 사람임에 틀임없다. 너 나 할 것이 복음만 생각해서 협조를 해주어야 다음에 복음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이게 성도에 바른 태도가 아닌가? 그리고 행여 설교 가운데서 그동안 복음적인 것이 있다면 새삼 감사하면서 "복음만 전하는 심부름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하는 것이 사람 사는 도리가 아닌가!
그런데 도리어 비난을 하다니! 그것도 전혀 남은 사정도 전혀 모르고 제멋대로 평가해서 악마의 종으로 몰다니! 도대체 그 인간 속에 뭐가 들어있으면 이런 배은망덕한 사고방식이 나올 수 있는가! 이런 인간답지 못하다는 것은 본인부터 너무 잘 알기에 참아 이러한 배은망덕이 남에게 틀릴까 싶어 가명으로 글을 남기면서 이근호를 괴롭혀서 자신이 자존심이 훼손된 보상을 다소나마 갚아보고자 하는 짓밖에 더 되는가.
내가 이 박사 교회 사이트를 통해서 마지막 이런 글을 남기는 것은 가명으로 된 글 속에 너무나도 비복음적 태도를 보이기에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다하고자 함입니다. 하지만 저는 끝까지 이런 자들이 회개하기를 고대합니다. 왜냐하면 지옥이란 너무나 뜨거운 곳이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하는 것이 진실된 말이 아니라 가증된 말이 아니라면 그동안 남긴 설교와 녹취록 낱낱이 살펴봐서 지금의 이 발언과 어떤 달라짐이 있는지 찾아만 주신다면 정말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그리고 다음 번 설교할 때에 고마운 마음으로 참작하겠다고 저는 실명으로 제안합니다.
참고로 박사교회에 그동안 남긴 설교는 WWW. WOORICH. NET/ 에서 계속됩니다. 쭉-
[ Re: 악마의 특징 ] 2001,6,26 글쎄요
글쎄요...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요? 지금껏 객관적인 증거를 갖고 몇 차례 충고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단 한번도 미안하다거나 표현이 잘못되었다거나 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실명을 거론하며 진지한 책임 있는 답변을 기대한 글을 올릴 이유가 있을까요? 상대가 이름을 밝히지 않을 때는 이미 이러한 우여곡절이 많았겠죠. 어차피 돌아올 대답은 뻔한 것이니 ...그래도 우리교회 분들은 당당하실 것입니다. 남겨진 박사교회 분들에게 일말의 형제로써의 가책이 없는 것도 당연하실 터이고 ... 왜냐구요? 당신들 기준으로 보면 박사교회에 남겨진 사람들은 신자도 아니고 그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지 않는가요? 자기의 소신을 따라 용감히 행하는 그 용기가 때론 부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교회라는 그 대단한 공동체에 함께 하기를 기대합니다.
==========================================================================[ Re: Re: 악마의 특징 ] 2001,6,26 이근호
성경에는 '우리 교회'니 '박사교회'니 구분을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심판 때는 어느 교회 등록했느냐를 따라 심판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말 복음 안에 사시는 분이라면 어디가도 복음 전파되는 것을 고대해야 하고 그렇지 않고 제가 그동안 박사교회 전한 것이 복음이 아니라면 저를 도와주는 면에서 무엇이 복음 아닌가 하는 점을 지적해 주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요? 그리고 제가 박사교회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사랑했기에 그들의 미래와 죽음 이후를 위해 복음만을 전했잖아요. 그저 교회가 노인정처럼 세상적인 친근감을 교회를 유지하다가 만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케 하면 그동안 설교자로서 제가 얼마나 큰 직무 유기를 했겠습니까. 살 세월이 얼마 남지 않는 노인들로 하여금 이제는 교회나 자식들보다는 오로지 예수님만 보도록 그런 관점에서 설교하고 심방해서 말씀 가르친 것이 과연 나쁜 것입니까. 뭔가 문제점이 있으면 이건 이래서 문제점이고 저건 저래서 문제점이라고 말하는 것이 제 정신 가진 사람의 태도가 아닙니까. 왜 그렇게 말씀을 못하십니까? 그렇게 말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말을 끄집어내는 순간, 본인의 관점이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과 복음의 기초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폭로될까봐 겁이 나서 중구난방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까? 정말 창녀처럼 숨어서 가명 쓰지 말고 남자면 남자답게 여성이면 숙녀답게 하나님이나 천사가 보기에도 당당하게 좀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 Re: Re: Re: 악마의 특징 ] 2001,6,26 사랑하는 이가
말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합니다. 서로 변론하는 것이 참복음이냐. 아니냐의 진실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에서 십자가를 강조하면 참복음을 믿는 사람이고, 표현의 차이로 십자가외에 다른 것을 강조하면 이는 잘못입니까. 기존 교회에서는 설교 중에 할렐루야를 강조하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자라고 할수 없죠. 박사교회도 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십자가와 복음을 순간마다. 글마다 표현 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십자가를 믿는 사람이 아니야 하고 할 수 있습니까.글을 올리면서 가명이면 어떻고 실명이면 어떻습니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목사님의 10여 년의 세월동안 배운 사람 중에 하나이겠지요! 목사님께서는 줄곧 복음과 십자가의 삶을 강조하셨고, 목사님의 잘못은 없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왜 우리가 갈라져야 합니까. 자기 욕심 때문에, 아니면 처음부터 마귀의 새끼이기 때문에. 한편 마귀 새끼라고 불리는 것이 고마울 수 있습니다. 원래 난 마귀 새끼입니다. 그러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닙니까. 우리 모두, 아니 박사교회 모두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이고, 살아 갈려고 몸부림치는 자 입니다. 왜 우리가 서로 욕해야 합니까. 우리의 표현이나 단어가 십자가와 복음이 아니라서요. 왜 단정하고 사랑이 있는 교회는 안됩니까. 왜 주님의 긍휼과 눈물이 흐르는 교회, 주님의 따뜻함이 흐르는 교회는 잘못입니까? 진정 주님 품안에 있어도 십자가와 복음만 강조 할 것입니까. 목사님은 늘 상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의 모습을 이 땅에 보여주는 것이 교회고, 교회는 천국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라고 말입니다. 십자가는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우리의 영원한 방향성과 삶의 지표입니다. 세상에서 고난받고 상처 입은 영혼들이 교회(유, 무형 모두 포함)에서 위로 받고 위로 해 주는 교회가 되면 잘못입니까. 우리는 목사님 주위에서 복음만 십자가만 강조하다까,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목사님을 배반 한 사람들을 보아 왔습니다. 목사님, 저희들을 사랑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목사님을 통해 배우고 예수님을 알아 가는 미약한 성도입니다. 무지한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배척하지 마십시오. 혹 몇몇이 목사님에게 돌을 던질지라도. 십자가의 삶과 예수님을 따라가신다면, 안타깝고 괴로운 심정으로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너무 감정이 북받쳐서 두서 없이 글을 올립니다. 이해 해주세요.[ Re: Re: Re: Re: 악마의 특징 ] 2001,6,28 이근호
왜 갈라선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다른 사람에게로 간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우리 교회 사람들은 이근호 소유라도 됩니까? 그리고 이 이근호가 그 사람들 소유라도 됩니까? 주님이 살아 계신다면 얼마든지 복음 아는 자들이 택한 백성과 복음 안에서 교제가 가능하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더욱 감사한 것은 인터넷 시대에 복음과 말씀을 원하기만 접할 수가 있습니다. 혹시나 이런 점은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너무 자기 편익 위주로 복음 생활을 해 왔었는데 그것에 차질이 있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편한 것 만'이 모든 게 정상이라는 생각은 버려서야 합니다. 감정에 복받혀 하신 말씀이지만 저에게 사적으로 감사와 고마움을 사랑을 보내주신 것에 대해서 그저 황공하고 저도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현재 박사 교회 성도들에게 베푸신 은혜도 은혜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후임자 오실 때까지 저를 불러서 강단에 세우면 되잖아요. 그저 저를 독점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욕심일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근호가 '돈에 팔려 간 증거'가 있다느니, '겉과 속이 다르다느니' 라는 '본인부터 사랑을 배신하는 배신자'라는 같은 말들이 정말 진짜라면 제가 이처럼 일일이 게시판의 답변하지를 않습니다. 마치 자기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자보다 마치 더 흥분된 상태에서 답변한다는 오해를 받아가면서도 이렇게 질의자보다 더 길게 답변하는 것은 일관되게 "복음 안에서는 결코 갈라선다는지 헤어짐이라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고자 함입니다.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해야 진정 복음을 이해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갈라섬'이란 말이 성립되려면 먼저 "이 특정 구역은 내 영역이다"는 본인의 갈라짐의 의식이 먼저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버려야 합니다. "나는 복음 안에 있고 예수님 안에 있다. 이 안에서 이 지구상의 어느 누구와 하나이다"라는 대범한 신앙으로 이 악의 세계를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 서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 ] 2001,6,26 구득영
이근호 목사님이 임지를 옮기신다구요. 저도 시골에서 10년인지라 박사교회가 적잖이 당황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디 그런 목회자를 구하기가 싶겠습니까? 물론 있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 목사님이 박사교회에 1989년도에 오신 것으로 아는데, 그러면 10년이 넘었군요. 그동안 수고를 많이 하셨겠군요. 그것도 인생의 황금기(?)를 봉사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당연히 떠나는 분에게 수고하셨다고, 감사했다고 위로의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글이 보이지 않아 아쉽습니다. 물론 섭섭해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러나 이 목사님이 박사교회에 평생동안 계시기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10년을 넘게 계셨으면 서로 고마와해야겠지요. 이근호 목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박사교회 성도님들, 너무 가슴아파하지 마세요. 주께서 또 준비된 자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박사교회가 남의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마산에서 옥봉교회 구득영 목사가 몇 자 올렸습니다.
================================================================================== [ 시시한 목회자 이동 문제 때문에 ] 2001,6,26 이근호 지금 도처에 마귀들이 설치고 있는데 교인들은 시시한 목회자 이동 문제 때문에 두려워하다니 얼마나 철딱서니 없는지! 행함으로 구원한다는 마귀, 교회 성장 마귀, 가정 사역 마귀, 교단주의 마귀, 초대 교회 기적 재현하기 마귀, 선교로 교회 부흥시키기 마귀 등 온갖 종교 잡종들이 활개를 치고 설치는 마당에 왜 박사 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안일과 편리에 지장이 생겼다고 분노를 폭발하고 있는가!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지금 주님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손톱의 때만큼이라도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돈 버는 일에 혼 줄이 나고 있다지만, 원 세상에 자기 영혼의 현주소 마저 혼동이 되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