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 2001/08/09 이근호
야고보서 2:17에 나오는 믿음에 걸맞는 행함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야고보서 2:22-26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는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바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생 라합이 거짓말 한 내용입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이 살인 행위와 거짓말 하는 행위를 오늘날 교회에서 믿음에 대한 행함으로 간주하고들 있습니까? 황 목사님이 줄기차게 말씀하시는 믿음의 합당한 그 '행함'에 해당된다고 되는 일이라고 봅니까?
저 보고 상대방의 내용도 모르고 함부로 이야기 사람이라고요?
매사를 복음과 연관시킨다고 비난의 글을 올린 당사자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모든 귀절을 복음과 연관시켜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펼치는 분이 바로 황목사님 당사자인 것을 분명하게 파악했는데 제가 어찌 상대방을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정말 복음을 증거하는 자라면 결코 제가 매사를 복음과 연관시킨다고 비난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가 무엇을 싫어할까요? 성만찬 행위에 마귀가 겁낼 것 같습니까? 복음도 알아야 하지만 성만찬을 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고 하는 그 자를 마귀가 두려워 할까요?
마귀가 싫어하는 것은 오직 복음 밖에 없습니다. "복음+성만찬"이 아닙니다.
안식교인처럼 '복음+ 안식일'이 아닙니다. '복음+ 교회'도 아닙니다. '복음+ 행함'도 아닙니다. 복음+하나님의 형상'도 아닙니다. 창세기 3:15에서 이 진리는 확정되어 버렸습니다.
황목사님이 '영적', '신령한'이라는 용어가 성경에 있다고 하셨는데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영적, 신령한 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하신 일에만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오는 경우만을 가지고 영적이다. 신형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인간의 행할 수 있는 것에는 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라는 이름의 종교가 되고 맙니다.
여기서 제가 성경해석학의 기본적인 원리를 하나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성경 귀절을 대하든 그 접근하는 인간에서는 죄가 뿜어나오게 되어 있고 오직 성도에게만 자신의 죄를 깨닫게하는 은혜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제공됩니다. 따라서 어떤 성경 귀절이든 궁극적으로 나오는 것은 그 본문 가지고 자기 행함의 가치와 자기 의를 곧게 세우려는 인간의 죄악과 더불어 그것을 죄라고 정죄하는 십자가의 의의가 함께 튀어나올 때 바로 올바른 해석이 됩니다.
저의 본색이 이제 드러났다고요? 그렇습니다. 저의 본 저의는 그 어떤 인간이든 모든 행위에서 '자기 의'라는 죄가 나오게 되어 있고 오로지 택한 성도에게만 십자가의 피와 은혜로 용서된다는 것, 바로 이 점이 저의 본색입니다.
따라서 참된 성도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성만 높이다는 것, 이것이 저의 본심입니다.
그런데 황목사님은 저를 비난했습니다. 성도에게는 딴 것도 나와된다고 말입니다. 황목사님, 나와봤자 종교밖에 더 되겠습니까? 인류 역사와 교회사를 통해서 인간이 한 짓이 교회나 신전을 통해 종교 행위라는 자기 의 자랑밖에 더 했습니까.
예수님이 괜히 십자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오직 죄인을 구원하려 오신 분입니다. 그 죄인 속에 황목사님이 들어 있기를 저는 간곡히 소원해서 힘든 소식을 이렇게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