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 Re: Re: 성화에 대하여 ] - 2001,7,29 조규현
[ Re: Re: Re: 성화에 대하여 ] - 2001,7,29 조규현
이름 : 관리자(IP:211.224.31.42)
이근호 목사님에게 성화 이론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어느 분의 글이 실렸고, 거기에 대한 이근호 목사님의 답변, 또 그 답변에 대한 이 분의 불만스런 글이 실린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글들이 어찌하여 삭제되어 버렸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저는 삭제된 그 글들에 대한 저의 생각을 피력하고 싶다.
교회사에 있어서 신학적 논쟁이나 '주의'라는 것이 결국은 성경 말씀을 율법적 관점에서 해석할 것인가 은혜적 관점에서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 같다. 율법적 관점에서 보면 성경 말씀대로 신자는 실천하고 행해야 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은혜적 관점에서 보면, 신자들에게, 실천하고 행할 수 없는 죄인임을(롬3;10, 20) 비추어 주는 거울이 된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도, 예수님의 산상보훈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의 삶을 강조한 바울의 권면과 실천도, 그대로 행하라는 것보다 죄인의 괴수(딤전1:5)인 <나>를 바라보라는 거울의 말씀이 된다. 따라서 구약에서 출애굽 당시 문설주의 어린양의 피의 은혜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됨을 깨닫게 된다.
새 생명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신자라면 누구나 한결같이 교회에 충성 봉사 잘 하고 이웃에게 희생 봉사하는 삶이란 말인가? 그리고 어떤 도달점을 정해 놓고 거기에 도착하면 성화된 자인가? 성서에 기록된 눈뜬 소경의 기쁨과 간음한 여인의 용서함 받은 기쁨이 현상적으로 같을 수가 없듯이 예수 안에서의 새 생명의 삶이 구체적으로 객관성을 띌 수 없다고 본다. 사람마다 환경따라 다른 것이 아닌가?
때문에 신자는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하는 예수 안에서 의인된 죄인이 아닌가? 이 십자가의 은혜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더욱 더 깨달아 가는 것을(엡3:19) 성화 또는 성숙이라 보면 어떨가?
성서 해석에 있어 인간의 행함의 관점보다 예수님과의 정당한 관계성(은혜)의 관점에서 해석을 하여야 타당하다고 본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고 저렇게 된 것이 누구의 죄입니까(요9:2)라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실 따름이다(요9:3)라고 답변하신다. 이처럼 인간의 행함의 관점에서는 그 기준이 인간의 윤리 도덕일 수밖에 없으나 은혜의 관점에서는 그것을 초월하여 생명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화되기 위해 인간의 행함을 구체적으로 요구한다면 또다시 율법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부디 하나님께서 자유케 하신 천국 백성에게 성화 혹은 성숙이란 것을 명목으로 또 다시 율법의 종이 되지 않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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