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 ] - 2001,6,27 이근호
[ 답변 ] - 2001,6,27 이근호
이름 : 관리자(IP:211.224.31.42)
갈라디아서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염두는 두는 쟁점은 '어떻게 의롭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율법'과 '그리스도'를 상호 대비되는 선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즉 율법 행함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동반해서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둘 중에 어느 한 쪽은 우리를 의롭게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24절 앞에 있는 22절과 23절에서 확연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여기에 보면 율법이 오므로 인해 인간에게는 의는커녕 '죄 아래 가두어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질문하는 24절에서는 '몽학 선생' 역할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몽학선생'이란 선생이 어리석다는 말이 아니라 배우는 학생이 얼마나 어리석고 제대로 된 존재가 못됨을 밝혀주는 선생 노릇을 뜻합니다. 인간은 율법을 통해 자신의 행함이나 율법 준수로 의롭게 되는 것이 이미 물 건넌 갔음을 명확히 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행함의 차원은 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행함의 대상이 되는 율법이 몽학선생으로서 인간들의 무지와 무가치성과 쓸모 없음과 의롭지 못함과 구원받지 못함을 지적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이 복음의 내용으로 다가옵니다. 의롭지 못할 자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선행이나 율법 준수에 근거할 차원은 떠나 있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홀로 의로우신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믿음의 역사는 갈라디아서 3장에 인간의 행함에서 비롯되지 않고 성령의 일로 보고 이 성령의 일 또한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연속으로 보고 있습니다. (갈 3:1-3)
그래서 갈라디아서 3:24를 해석하면서 주의해야 될 점은, 율법을 통해서 자기 무지를 안다고해서 모두 다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으로 그들만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즉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예수를 믿는 행함을 동원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령의 일로 믿게 된 이 믿음에 대해서 율법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래야 죄인의 죄인됨을 확고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죄인 ttm로의 능력으로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고 구원받을 능력조차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 아래에서 지배받고 있기에 그 지배에서 스스로의 종교적이나 양심의 힘으로 극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바울에게 있어 십자가 의식이란 그저 뜨거운 심적인 느낌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삶이냐 하면 바로 고린도전서 15:10의 말씀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은혜성입니다. 이 은혜는 고린도전서 15:3에서 나온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동안 질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내일 아침에 제가 이사를 가기 때문에 앞으로의 질문은, www. woorich. net/ 게시판으로 해주세요. (초기 화면말고 실내용은 약간 시일이 지내야 완성될 것입니다.) - 아듀 박사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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