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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출 1: 1- 7 (창세기와 출애굽기)우리교회출애굽기

창세기와 출애굽기 2003년 7월 13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1:1-7
1:1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1:2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1:3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1:4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1:5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인이었더라1: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1: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창세기와 출애굽기가 어떤 점에서 다르까요?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가지고 언약이라는 것을 만든 이야기입니다. 거
기에 비해서 출애굽기는 그 언약의 실천을 알리게 되는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사람이란 출애굽기를 보게 되면 나중에 창세기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저 모세만 위대하다고 따질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저 언약의 종일 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있는 자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독대한 겁니다. 물론 산 밑에서는 많은 백성들이 모세에 대해서 대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모세가 그들 사정을 들어 줄 입장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냥 선지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란, '바람부터 벌판에 혼자 서 있어도 외롭지' 않습니다. 외로울 새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배후에서 추궁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선지자 세례요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7-9에서,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언약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선지자의 말을 우습게 보면 곧 그것은 언약 자체의 힘을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모세가 아니라 모세로 하여금 강제로 그 길을 나서게 만드는 언약의 힘에 있습니다. 이 언약은 창세기에서 형성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그냥 소수 민족에 속한 식구들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12-13에 이런 말씀이 나와있습니다.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신약 시대에 성도가 되는 이 원칙이 창세기에서나 출애굽기에서도 여전히 동일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있는 명단들도 그렇게해서 생긴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창세기에서 만들어진 약속이란 어떤 약속입니까?
저는 창세기 3장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6장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보면 노아 홍수라는 큰 세상 변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왜 홍수라는 거대한 심판이 생긴 것입니까? 노아 홍수가 있기 전에 노아와 다른 가족들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냥, 먹고 마시고, 시잡가고, 사고, 팔고 하면서 더불어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갑자기 방주라는 것을 만들라고 지시할 때부터 친구라고 여기고 친척이라고 여겼던 자들 사이에도 모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의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로 난 자' 만의 씨가 따로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씨'는 오직 언약을 성취하므로서 분류되어 나온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어느 사람도 자진해서 하나님의 약속된 씨가 될 수 없습니다. 아브람도 마찬가지요, 사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바뀌어야 하고 사래도 사라로 바뀌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이스마엘이라는 자기 혈통적 자식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식도 잘려 나가야만 합니다. 그 빈 자리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자식인 이삭을 새로 만들어서 채우십니다. 이 모든 일은 일방적으로 언약의 힘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도대체 언약 안에 뭐가 들어있기에 하나님은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습니까? 언약에는 '희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창세기 3:15을 보셔야 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기에 보면, 언약의 중심에는 여자의 후손이 있고 이 여자의 후손은 뱀의 후손과 전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의 후손은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는 것까요? 아닙니다. 뱀의 후손으로부터 발꿈치에 상처를 입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것은 아닙니다.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오히려 뱀의 후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언약의 내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본인이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려 들어가 있습니다. 둘째, 성도는 이 전쟁에 있어 하나님편에서 제공한 미끼입니다. 이 미끼를 통해서 교묘하게 숨어있는 하나님이 적들을 발각시키는 기능을 하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미끼가 된 성도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적을 절대로 자신의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원칙입니다.
로마서 12:19에 보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세가지 원칙을 뿜어내면서 언약은 인류 역사를 이어나가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세가지 원칙 모두를 거부합니다. 첫째, 이 세상의 역사는 악한 영과 선한 영의 싸움터가 아니라 인간대 인간의 싸움이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간 이외에 그 어떤 영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둘째로, 신이 인간을 미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에 취향에 맞는 신을 선택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필요할 경우에만 말입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이 세상의 주도권은 신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을 사용하는 인간에게 여전히 주도권이 있다고 봅니다. 셋째가 참으로 귀한 법칙입니다. 왜냐하면 자칭 성도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이 세 번째 법칙을 이행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억울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어떤 식으로 보복하려 듭니다. 재판을 통해서든지 아니면 직접 폭력을 통해서든지, 아니면 이웃에다 나쁜 소문을 퍼뜨려서 그 동네나 직장에서 매장시킨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정의를 앞장 세우면서 혹은, 선교한다는 빌미 하에 말입니다.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수하기를 좋아하는가 하면, 정당화 될 수 있는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행위가 정당해지면서도 속에 있는 본성을 유감없이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복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전쟁이란 위험합니다. 치열합니다. 니쁜 일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힘들면 힘들수록 그 맛을 들여놓으면 이제는 시시한 일상이 권태롭기만 할 것입니다. 정의로운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복수극에 나선다면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다는 맛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악마적인 품성으로 인해 언약의 두 번째 원칙인 '희생'이라는 것이 생겨 나게 마련입니다.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의 심정이 이런 심정이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요셉을 죽은 자로 만들어어서 아버지에게 보고 했던 형제들의 행동이 그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홍해 갈라짐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씨는 따로 있습니다. 홍해 바다의 갈라짐은 그 점을 분명히 해줍니다. 하나님의 군대라고 히브리인들은 부름을 받는데 이는 언약의 첫 번째 원칙, 즉 성도와 인간들은 할 수 없는 영적 전쟁에 휘말려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군대에게만 홍해 바다는 길을 허용했습니다. 물론 애굽 군대의 눈으로 봐서는 이런 언약 주장은 터무니 없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만 두 다리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도 두 개의 튼튼한 다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히브리인들이 건너갔던 코스대로 건널려고 했을 때, 홍해바다는 바닷길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물줄기는 가차없이 도로 합쳐지고 말았습니다.
왜 홍해바다는, 하나님의 군대라는 히브리인들에게만 허용되었을까요? 그들에게는 '어린 양의 희생'이라는 언약의 코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이 애굽인들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도 다 이 언약의 내용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미끼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언약대로 철저하게 징벌받게 합니다. 하나님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죄목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세 번째 법칙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든, 자신의 이름이든, 그 모든 피해보상은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갚아주십니다. 심판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그런 자들의 출현이 곧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명단처럼 언약의 씨의 출현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벌리시는 복수극에 우리가 휘말려 있음을 눈치채게 하옵소서. 우리 개인적인 승리나 복수를 위한 일이 아님을 아울러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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