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믿음과 행위에 대해서 ] - 2001,5,29 이근호
=================================================================================================================== * 질문 - 목사님께 또 질문이 있어요. 자꾸 믿음과 행함의 대한 부분이 너무나도 어렵게 다가옵니다. 저는 요즘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성경교리 시리즈 2권인 "성령 하나님"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 데 특별히 성화의 대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대로라면 즉, 인간의 행함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의 문제가 있던지... 표현 자체요. 더 쉽게 이야기를 한다면 기존의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요, 그리스도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기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에 그 분의 인도대로 살아가게 될 것인데,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함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가 힘써 우리의 삶 속에서 이젠 죄의 대하여 죽은 자임을 날마다 인정하며 의에 대하여 산 자로서 주님께 우리의 의지를 복종시키는 삶...즉, 자녀다운 삶을 통해 향기를 발해야 함을 전하는 것이고...
목사님께서는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을 자꾸 주장하기에 근본을 전제로 한 기존의 교회의 가르침을 자꾸 전제를 무시한 인간의 행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하셔서 교회를 비판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꾸 기존의 분들과 마찰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목사님! 저는 지금 너무나 혼란 속에 있습니다. 믿음과 행함... 복음만을 선포해야 하는 지 아니면 복음과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 이러한 삶임을 성경을 통해 이렇다고 함께 전해야 하는 것인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의 삶 속에서는 '이 지식이 너무 어렵도다.' 라는 고백밖에 나오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공동 사역이 성화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권면을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하지 않나요? 우리의 기도는 어떠한 기도여야 하나요? 단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여야 하나요? 아님 주님께 나의 연약함을 고하고, 주의 도우심을 구하며 나아가는 기도여야 하나요.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무명) ===================================================================================================================
뭔가 고민이 되고 걱정이 될 경우에는 반드시 본인 속에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우선 본인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즉 "내가 이러 이러한 경우가 되면 …. 아, 안돼! 안돼!"라는 상상이 내부에 자리잡아서 계속 심령을 두려움과 불안에 머물게 합니다. 따라서 이 두려움의 정체는 생각하지 않고서 막무가내 윤리와 착함으로 일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악마의 깊은 시험에 빠져들게 됩니다.
도대체 뭐가 두렵습니까? 자신이 어떻게 될까봐 두렵습니까? 자, 제가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만약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왠지 두렵고 떨고 있으면 그 연인은 그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나를 신뢰하지 않고 있군요. 정말 화가 납니다. 제발 제 앞에서만큼은 떨지 마세요. 제가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고 있잖아요. 왜 저의 사랑을 무시합니까"라고 할 것입니다.
로마서 13:8-10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또한 요한일서 4:18에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 8:33에는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예수님은 신랑이 됩니다. 신부가 신랑의 사랑을 받아드리지 않고 나름대로 최선의 도덕과 경건을 만들려고 애쓴다면 신랑이 얼마나 한심스럽게 여기겠습니까. 누가복음 7:47에는 "많은 용서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제발 그저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을 주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받아드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 심판도 역시 사랑뿐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셨는데, 기도는 자기 이름(자기의 영광과 명예보다 ) 하나님의 이름과 주님의 이름이 명예롭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시면 됩니다. (주기도문이 대표격입니다) 즉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또 사도 바울이 어떻게 기도했는지 궁금하지요. 에베소서 3:14-19에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서도 오직 하나 역시 '사랑'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지요. 이처럼 성도란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이 사랑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