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과 행함에 대해서 ] - 2001,5,25 이근호
=================================================================================================================== * 질문 - 이근호 목사님... 질문이 있는 데요? 목사님! 건강하시죠? 이 밤에 여러 가지 혼돈의 마음이 교차되어 홈페이지의 글을 읽다가 이렇게 질문을 드리게 됩니다. 목사님은 인간의 행함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계시죠? 이 사실이 맞다고 생각하는 전제 하에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인간의 행함을 전적으로 부정한다는 말씀은 바꾸어 말하면 인간에게 가능성을 두지 않는 다는 말씀으로 받아 들여 집니다. 그렇다면 이 말 앞에 몇 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우선 성경에서 말씀하는 행함에 대해서 어떻게 규정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자로서 성도의 삶은 마땅히 그리스도안에서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함이 어떤 것임을 구체적으로 증거해야 한다는 것까지도 부정하시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오로지 사도 바울과 베드로의 삶이 오직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삶으로 보고, 이러한 삶이 성도의 육체임을 증거임을 강조하시는 것인가요... 믿음과 행함 ... 인간의 행함의 가능성을 부정하시는 목사님의 견해를 쉽게 설명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무명) ===================================================================================================================
인간에게서 출발하지 마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게 되면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나 힘이 중단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기동할 수는 힘을 주시고 성도에게는 특별히 마음 속에 그리스도 영이 있어 용서하시는 은총 속에 살게 합니다. 이로 인하여 성도는 자신의 행함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행함을 더욱 부각하고 자랑하게 됩니다. 로마서에서 보게 되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산다"고 되어 있습니다. (14:8) 또 빌립보서에 보면 "먹든지 마시든지 주를 위하여 살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에게서 출발하면 행함이 되지만 성경에서는 이것을 행함이라고 하지 않고 '믿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뭐든지 인간 쪽에서 출발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 쪽에서 출발하고 생각하는 자들이 신자라는 말이지요. 성경은 이런 자를 찾아내고 골라내는 작업을 위한 책입니다. 같은 성경을 봐도 불신자는 자신의 존재와 행함을 부각하는 쪽으로 해석할 것이고 성도는 같은 성경과 세상의 현상을 보면서도 예수님의 공로를 부각하는 쪽으로 해석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자기 행함에 비중을 의미를 두고 있다는 그 순간이 잠시 예수님보다 자기를 더 신경 쓴 결과가 아닐까요? 뭐를해도 은혜인데 말입니다. 그것을 자꾸만 자기 행함으로 돌리려고 애쓴다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불신자들의 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새도 많은 행위와 행동을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해야 비로소 죽고 잡힌다는 점을 심각하고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행위란, 산 사람이나 생명체의 움직임과 생각, 전부를 다 포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