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과 행함 관계에 관한 간단한 논리 ] - 2001,5,5 이근호
인간의 행함을 문장으로 나타내면 반드시 '주어+동사'로만 표현된다. 예외가 없다. 그리고 동사는 필히 주어, 곧 행함의 주체를 놓치지 않고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행함은 그 주체자를 찾아가도록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행함의 주체자로 알고 있는 자가 다음과 같은 낯선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하자. 이점을 먼저 고려해 보자.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나는 누구를 믿고 있습니다"라고 나선다면 그 사람은 자기 행함으로 증거할 것 속에 더 이상 자기 자신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기껏 명령받은 입장이기 때문이다. 자기에게는 자신에게 명령하신 분이 따로 있다는 고백을 늘어놓는 셈이다. 따라서 어떤 행함에 대해서 더 이상 자신을 주체자로 고집하지 못하고 명령자의 명령 능력으로 인한 결과인 것만이 증거하겠끔 된다. 이는 결국 행함의 주체자에서 자신이 빠져 버리는 것이 된다. 이래야 자신이 진정 증거해야 될 자를 증거하고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명령받은 것만 행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저를 쳐다보지 마시고 제가 소개하는 그 명령자에 관심 갖기 바랍니다"라는 차원이다. 이점을 달리 말하자면 명령 당한 주체는 스스로 더 이상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 자신은 증거할 대상에서 빠져 버린다.
그렇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주어+동사’에서 만약 이 행함의 주체자가 따로 믿는 자는 없다고 한다면 필히 그 행함에 대해 전적으로 자신에게만 속한 능력 행사로 유지하려고 한다. 어떤 힘을 빌려 왔든지 어쨋던 최종 행함의 주체자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다들 보세요. 성령으로 제가 이런 일을 해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대견합니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행동의 주제자는 본인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한다. 그것은 본인 이외에 달리 믿고 증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리를 다시 정리하면, 신앙이 없는 자는 필히 자기 행함에다 비중을 두게 되어 있다. 달리 증거하거나 소개할 다른 분이 자기 속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신앙이 없는 자는 전혀 자기 행함에다 비중을 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저 자기가 현재 믿고 있는 분을 소개하고 증거하기 위해 자신이 존재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모든 행위보다 앞서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신 분이 따로 존재하는데 그 분이 자신이 증거할 '최종 행위자'이기 때문이다.
[ 결론 ] - 사도 바울이 증거하려는 것은 사도 바울 자신은 구세주가 아니라 자신의 구세주는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이가 사도 바울에게 시비 걸기를 "그게 당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의 전부요?"라고 시비 건다면 사도 바울은 "O. K"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 사람이 또 시비 걸기를 "당신은 기도하고 구제도 하고 전도도 하고 사랑도 하고 다른 일도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저에게 명령한 구주 예수님의 능력에 속하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에 내가 행했다고 나 사도 바울을 증거할 수는 없는 겁니다"라고 답변할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은 왜 매사에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사도 바울은 말한다. "그것은 나는 예수님을 증거하려 하지만 당신은 자신의 존재와 그 행동할 수 있음을 증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당신이 말하는 믿음이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으로서 예수 믿음을 확인하고 그것을 소유하려고 전형적인 불신앙인입니다"라고 답변할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마치 들깨 잎사귀에 돼지 불고기를 쌈 싸서 먹듯이 필히 '자기 부인'을 가지고 둘러싼 채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의 은혜를 담는 마음 상태를 보여준다. 이럴 때만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고 다른 것이 그냥 종교적 심술에 불과하다. 철학적으로 표현하기를 이런 것을 '자기 존재 증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다 적절한 표현은 '이것이 이단이다!"라는 표현뿐이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3:11-13)
위의 본문에 의하면 베드로와 요한은 신앙인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어떤 행함에 대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가운데 자기가 믿는 분,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 상태 이외의 모든 것은 신앙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