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과 행함 ] - 2001,5,4 김주영
모든 종교에는 인간이 무엇을 해야 절대자가 역사할 것이라고 믿는 요소가 있습니다. 기독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리고 기독교 안을 보면 인간의 행함은 모두 율법적인 것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도 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둘 다 잘못된 것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역사하시는 분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음받은 자로서 아들로서 혹은 종으로서 마땅히 행해야할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 되십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일하셨으며 우리가 죽은 후에도 일하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 혹은 함께 일하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인간에게는 동물과 달리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하나님의 법을 두셨습니다. 아담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죠. 그것은 법의 준수를 통해 하나님의 복에 이르라는 것입니다. 혹은 복에 이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법을 두시고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복에 이를 수 있는 길입니다. 또 그 법으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법만 두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길도 함께 주시는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성경을 좀 안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행할 수 없는 법을 주셔서 올무를 놓으신 분처럼 생각합니다. 또 그 길은 인정하지만 길로 걸을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걷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또 걸을 수 없다고 합니다. 길 즉 그 은혜에 머물러 버리거나 그것을 자랑하는 것으로 더 이상의 우리의 행할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칭찬이나 삯 혹은 상급까지 부정합니다. 또 심판에 대해서도 무시하려 합니다. 하나님을 그러한 분으로 생각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주인을 오해하고 자기의 마땅히 행할 바를 행치 않았다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쳐지는 것과 일반일 것입니다.
죄인이 무엇을 행해야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대신 이루어 놓으셨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의인이 되고 아들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의 행함까지 부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법의 준수를 통해 복에 이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새 계명이 있습니다. 또 우리는 복음에 순종해야 하며 바울을 통해 주셨던 새 생활의 교훈들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를 살리게 하심도 있지만, 우리도 주님을 따라 순종케 하시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 자취를 본받게 하신다거나 ‘나를 따라 오려거던 그리고 영광을 얻기 위해 고난도’와 같은 말씀들이 있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이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나 영생과 영벌에 처할 때 새 계명을 그 판단기준으로 삼으신다는 말씀 등은 바로 이러한 것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능력이신 성령을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순종치 않는 자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논리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노아와 같은 분들이 은혜를 입어 순종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순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통해 영생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에 이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영생에 들어가는 것과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라는 말씀이 있죠. 주님께서도 자신을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소개하신 바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복에 이르기 전에 길을 걷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생명을 얻게 되는 것에 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