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님에게 - 정신없는 소리를 하지 마십시오 ! ] - 2001,5,2 촌장(손무성)
김주영님께서 - "장차 모든 사람들에게 임할 심판의 기준은 다름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행하였는가, 어떻게 행하였는가, 얼마나 행하였는가가 될 것이다" 라고 했는데, 제정신으로 한 말입니까? 이게 전형적인 한국교회의 이단의 모습입니다.
누가복음 10장25절부터 보면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찾아와 이렇게 질문을 한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 이 율법사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하고 했다. 그러자 율법사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했다. 이때 예수님은 율법사의 대답을 옳다고 했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강도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유대인이) 내려가다 강도를 만났다. 얼반 죽게되어 누워있는데 제사장도, 레위인도 보고 피하여 갔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하다 보고 불쌍히 여겨 그를 도왔다. 이 예를 드시고 예수님께서는 율법사에게 물었다. "네 의견에는 이 세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하자 율법사는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하는 말이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했다.
이 말씀의 분위기를 모르면 예수님께서 율법을 잘 행할 수 있으면(순종 잘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기 십상이다.(너희 이렇게 네 이웃을 사랑해라. 그러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라는 식으로) 그러나 예수님의 의도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눅10:20-21절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이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율법사와 당시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지도자들)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네가 무엇을 잘 행해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이름을 입적시켜 주어서 올라가게 된 것이니(영생의 길이 생겼으니) 이것을 기뻐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 지혜롭고 슬기 있다는 자들(율법사들 같은 이들-무엇을 행하면 영생이 있다는 이들)에게 숨겨졌다고 하니 분위기가 험악해진 것이다.
그러자 26절에서 어떤 율법사가 (벌떡!!!)일어나 예수님을 ▷시험하여 질문을 한 내용이 "선생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이다. 율법사는 무엇을 행하는(순종하는 문제)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100%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고 했더냐?"라고 물었고 율법사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옳다고 했다.' 이 말은 진정으로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다 순종하면 영생이 주어 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를 행하라'고 한 것이다.
문제는 무엇인가? 인간이 율법을 다 행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예수님께서 이를 행하라는 말씀은 '그래 네가 그렇게 읽었던 율법대로 해봐! 그래 해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봐!' 이런 뜻이다. 율법사는 자신이 정말 율법의 100% 아니 10000% 지켰고 지킬 자신이 있었다. 행해서 천당 갈 자신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 율법사에게 '강도 만난 사람의 이야기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왜냐하면 율법사가 생각한 이웃은 자신이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만 정한 이웃을 사랑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유대인끼리 사랑했다. 하나님 안다는 이들과 이웃이 되었고 그들을 이웃 삼아 사랑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정한 이웃이나, 사회가 정한 이웃개념이나, 정치적으로 정한 이웃을 사랑하는 개념이 아니다.
인간이 이웃을 완벽히 사랑할 수 있는가? 내 옆집에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고 이웃을 다 도왔고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가? 한국에 있는 노숙자에세 걸인에게 밥을 퍼주었다고 이웃을 다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가? 아프리카 인도...에 있는 걸인과 가난한 사람을 다 못 도와주었다면 그는 이웃을 완벽히 사랑하지 못한 자가된다. 그래놓고도 이웃을 사랑했다고 하면 착각이다. 사람들은 신장 하나 때어 주고 이웃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또 신장병 앓고 있는 이웃이 있다면 그 이웃에게 내 신장 한 쪽을 더 때 내어 주지 못해놓고 어찌 이웃 사랑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는가? 어떤 이웃은 도와주고 어떤 이웃을 못 도와주게 된다면 진정으로 이웃을 다 사랑했다고 할 수 없다. 인간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다 행할 수 없다. 영생을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금 율법사는 자기가 정한 이웃을 사랑하고는 이웃을 사랑했다고 떵떵거리고 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본래 사마리아인들은 아브라함 혈통을 가지고 있다가 주변나라의 점령을 당하고 정책적으로 혼혈정책에 의해서 혼혈아들이 되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그들을 개로 취급했다)로 취급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그렇게 더럽게 여기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유대인 율법사에게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유대인을 불쌍히 여겨 사랑을 베푼 것 같이 너도 이렇게 사마리아 사람을 이웃으로 삼고 사랑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라는 예수님의 의도는 이렇게 사마리아 사람을 사랑하면 전에 좀 미비했던 영생을 이제라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율법사야!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했다' '무엇을 행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라고 묻는데 이놈아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 이런 말씀이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리라"
우리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이다. 곧 이 말은 '내가 무엇을 했느냐'라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바울서신에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에서 마게도냐 교회가 연보한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한다. 이것을 칭찬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행한 행함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연보한 것을 왜 칭찬하는가 그것은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그리스도만으로 의롭다 함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9: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마게도냐 교회가 연보한 것은 자기들이 가진 물질이 점점 줄어들게 되고 받는 쪽이 더 부요로워지는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성도를)저쪽을 위해 가난하게 되심으로 그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부요케 되는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마게도냐 교회가 연보한 행동은 곧 주만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바울은 칭찬하고 있다. 정신없는 소리를 하지 말자 누가 행위로 마지막 때에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인가? 마지막 때의 심판의 기준은 예수께서 나를 위해 가난해진 결과로 내가 부요케(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름이 기록된 것) 되었나를 모르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