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혁님의 의견이 맞네요. ] - 2001,1,6 박홍섭
공혁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했으니까 이제 성도에게 율법을 따르는 것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근호 님의 말은 모순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이루는 삶을 살아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런 요구가 얼마나 성경에 많은데요...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이것은 단순히 구별되라는 요구가 아니라 정말 거룩하게 살려고 시도하라는 것입니다. 또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
이런 성경의 요구를 단순히 구약적인 요구라고 말한다면 정말 곤란합니다. 더군다나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율법과 상관없게 살게 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구원받은 감사로 다시 거룩한 율법의 정신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주의가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의 표준인 율법으로 말입니다.
마치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나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그 율법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를 요구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율법을 주셨습니까? 구원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이방인과 다르게 율법의 정신대로 사는 열국의 제사장 나라로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 부름 받은 초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근호 님의 주장처럼 율법과 믿음을 나누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 율법 안에 이미 믿음의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표준 그대로 살려놓고 애를 쓰면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게 되고 반드시 그리스도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살려주세요 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도와주세요 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율법을 그리스도에게 이끄는 몽학 선생이라 했죠. 그렇다고 율법이 이제 그리스도가 왔으니 폐지된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예수님이 말씀해주셨지 않습니까?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가 나쁜 것이죠.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인간이 지킬 수 있는 것으로 표준을 낮추어서 많이 지키면 스스로 의롭다 생각했고 자기보다 못 지키는 사람을 정죄한 것, 이것이 율법주의이죠...(원래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정신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와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다 하는 것입니다. 다...다...한가지만 걸려도 다에 걸려 버리는...그러니 이 율법의 표준을 그대로 살려놓고 율법을 행하면 반드시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고 가난한 마음과 애통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붙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거룩하게 살려고 행함을 시도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만 기다리고 있다면 그들이 얼마만큼 십자가를 붙들고 살고 예수님의 힘을 빌어서 살겠습니까? 사도바울도 있는 힘을 다해 수고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든 수고와 행함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렸습니다.
거룩한 행함은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내가 온전한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 성령님은 우리에게 그런 욕구를 주십니다. 마음의 소원을 주십니다. 그 소원대로 살려고 행하려고 노력해야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무능함과 부패함을 날마다 인식하게 되고 십자가를 붙들고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되는 것이죠..그렇게 살려고 행하지도 않고 미리 앉아서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고 있는 것은 정말 모순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