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D수첩’을 보고 ] - 2000,12,20 송원식
PD수첩을 보고 두서없이 적어 봅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라 죄송하지만 발제 라고 생각을 하시고 좋은 의견을 기대합니다.이번에 방영된 PD수첩은 이례적으로 한국의 대형교회의 세습화와 그에 따른 갈등과 문제를 다루었다. 이것이 이례적인 것은 할렐루야 기도원이나 만민 중앙 교회의 문제와는 다르게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하고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사회적인 불법을 자행하지 않을 때는 감히 다루지 못하는 성역의 특혜를 교회와 종교계는 누리고 있다. 특별히 환자라는 전통적인 꼬리표가 붙은 광신자가 많은 기독교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은 벌집을 쑤시는 행위라는 것을 이 방송국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불법도 없고 그러기에 자칫 잘못 다루면 심각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는 교회내의 문제를 다루었을까? 마치면서 교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언급하고 이어서 맹인 공동체를 보여준 제작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이러한 것으로 추정해 보면 "제대로 좀 해라"는 것이다. 왜 남의 문제에 간섭하느냐고 교회가 묻는다면 교회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 이 사회 전체가 제공하는 혜택을 같이 받고 있고 교회도 이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주고 있는 사회의 내적 구성체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 다원화된 사회의 일원으로 제 기능과 역할을 잘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로써 맹인 공동체와 자신들이 생각하는 건전하고 바람직한 교회와 목회자를 제시해본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 과연 이 사회가 원하는 교회 상은 무엇이며 이 사회가 교회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다원화되고 기능을 중심으로 분화된 사회에서 교회도 일종의 기능 집단으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그 자리 매김을 하려면 무엇인가 그 사회에 기여하는 기능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소극적이고 개인적인 면과 적극적이고 사회적인 면으로 구분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과도한 경쟁심과 패배에 대한 불안으로 말미암은 스트레스, 심화되고 극대화되는 빈부의 격차 및 소외된 집단의 잠정적인 사회 불안 요소, 기능 사회가 안고 있는 사람의 각종 소외와 무의미성 등등에 대해 종교의 분야에서 제공해야하는 기능을 이 사회는 요청하고 있다. 각종 종교 단체의 사기성과 파렴치함을 이 사회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회나 정부가 그 자체의 성격과 재정적인 문제로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종교가 제격이라는 것을 사회는 알고 있다. 술집과 창녀촌 그리고 도박장 등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사회가 이런 것들을 허락하는 것은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 기능 때문이다. 사회는 그 자체의 통합과 생존을 지향하는 데에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선한 것으로 본다. 이 사회는 궁극적인 것과 본질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그저 기능이 있을 뿐이다. 자체로 선한 것을 규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역할과 기능에 따라서 나오는 실질적인 효능에 따라 그 실재를 평한다. 아무리 술을 많이 먹고 일탈행위를 하더라도 그 다음날 출근을 하여 다시 생산을 기쁜 마음으로 하면 술집은 제 역할을 충분히 감당한 것으로 영구히 이 사회에 존속할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각종 스트레스에 찌들려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새 힘을 불어넣어 주고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박탈감과 소외를 해소시키고, 경쟁 사회에 적합한 가치관과 윤리를 종교의 차원에서 마련하여 가치갈등이나 아노미 현상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과 과중한 세금 부과로 오는 저항이 없는 자발적인(?)헌금으로 쌓인 돈을 정부나 사회가 원하는 곳에 쓰기를 원한다. 집단 내의 자체 모순이나 부패는 이러한 대(代) 사회적인 기능을 통해 인격이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존립과 영광만을 추구하는 신이 된 정부나 사회로부터 면죄부를 선사 받는 것이다. 사회가 바라보는 견지에서는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일 뿐이다. 참으로 이 사회가 원하는 교회상은 술집작부나 창녀 그리고 문화센터나 복지센터이다.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교회는 이 사회에서 퇴출되어야 하고 기능적 대체물로 반드시 대체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기능적 대체물은 지금 교회와 경쟁관계에 이미 놓여 있다. 민간 단체, 문화 단체, 취미 생활 단체, 전문적인 상담가와 각종 오락 및 유흥 시설과 도구들이 교회의 기능을 떠맡음으로써 무기능적인 교회의 퇴출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요구와 자체 성장을 위해 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대체로 그 역할을 잘하였다고 평가를 받았다. 물론 진보적인 쪽에서는 이 말에 상당한 불만을 표시하겠지만. 사실 진보적인 교회가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보수의 개인화 되고, 교회주의화 되고, 영성화 되어 가는 것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매김하고 영역을 확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치유자와 위로자로 자처하면서 그것을 수단으로 교세를 확장해 왔다. 그 기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라 신이 된 이 사회와 정부로부터 그리고 민중들로부터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렸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기능적 대체물이 많이 생긴 가운데 과연 교회가 그 은혜(각종 세제 혜택과 행정상의 편의 등등)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PD수첩은 친절하게 교회성장연구소(방영된 교회 중 하나의 부설 기관 중 하나)에서 할 리포트를 대신해 주면서 이 사회의 전도사이고 선지자로서 영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신의 의지와 말씀을 전한 것이다. 이 말을 신의 말로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목사와 교회는 성장할찌니!!
이러한 사회의 말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드리면서 성장을 꿈꾸는 소위 보수 쪽의 진실하고 열심 있고 똑똑하고 더구나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았다는 목회자는 치유와 위로의 목회 혹은 윤리 운동으로, 좀 더 진보적인 목회자는 문화센터화한 교회나 법 퍼주는 복지 시설로 교회를 정의하면서 이 사회의 요청에 응답하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교회가 무엇을 주면서 그 존재를 확인하고 존속되는 것인가? 교회는 받는 존재이고 증언하는 공동체가 아닌가? 교회는 인간적인 것을 나누는 곳인가 아니면 인간에게 없는 것을 고발하며 자복하며 참으로 줄 수 있는 분을 고대하는 사람들인가? 더구나 교회는 구원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구원을 받는 존재에 머무는가? 교회는 하나님의 일의 업적으로 말미암은 것을 받고 누리는 존재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못다 한 것을 오시기 전까지 해놓아야 하는 막중한 숙제를 하는 존재인가? 교회는 죄인이었다가 의인된 사람들의 재활 모임인가 아니며 여전히 주님 되신 예수님만을 그리고 그의 은혜만을 끝까지 죄인으로서 간청하는 자들인가? 우리는 가진 것이 없기에 줄 수 없으며, 볼 수 없는 자이기에 인도할 수가 없으며 들을 수 없기에 전할 수가 없는 존재이며 그러하기에 오직 참으로 보며 줄 수가 있으며 전할 수 있는 주님 예수의 행위에 기대를 거는 존재가 아닌가? 주님께 붙은 지체로서 다른 지체를 사랑하지만 그 지체를 참으로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은 머리되신 주님 예수만이 하실 수 있고 하는 일임을 고백하는 존재가 아닌가? 주님을 따라가다 보니 생기는 고난과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여 배척받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미 창녀로서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교회는 그 인간적인 것을 주어라!! 참으로 창녀다워라!! 그러나 우리는 철저히 이 사회의 무용지물이 되리라! 우리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고 지나가는 과객이리라! 진정으로 성령을 받은 자는 예수님과 사랑을 속삭이기에 너무 시간이 부족하고 딴 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하나님이 하시고 이루신 일에 감탄하기에 여념이 없다. 참으로 교회가 줄 수 있는 것은 예수를 싫어하고 죽이는 이 사회에서 미움받고 죽임을 당하여서 심판의 근거가 되는 것이리라. 무엇을 보려고 나왔느냐고 책망하며 자신의 메시야 됨을 거부하는 세례 요한과는 대조적으로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를 물으며 구원자임을 자청하는 교회는 분명히 적그리스도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