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부인이 없는 믿음과 몸의 기상변화 - 2000,12,2 정철민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으로 하나님과 화평케 된 사실로써 주어진 참된 평강을 모르는 자는 언제나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두고 평강을 얻으려고 한다. 자신의 몸의 기상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래서 예수를 믿더라도 병든 자는 병든 것이 평강이 아니라 여기고, 돈이 없는 자는 돈이 없는 것이 평강이 아니라고 여긴다. 이들은 마귀가 주는 평강을 참된 평강이라 생각한다. 창세기4장에 등장하는 가인과 그 후손들의 모습은 자신이 무언가 소유함으로, 가짐으로, 하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노의 불안을 해소해 버린다.
참으로 멋진 모습이다. 물론 이 불안의 대상이 이미 변질되어 버린 것은 분명하다. 자신이 소유하지 않으면 그렇게 불안한가? 믿음이란 이런 죄인을 여지없이 밝혀낸다. 자신의 몸에 무엇인가 있지 않으면, 그것이 건강이든, 돈이든, 목사이든, 강도사든, 전도사든.
이렇게 말하면 나는 그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 자체를 통해 의미를 가지려고 하는 자들, 이런 자들은 왜 창세기 4장이 기록되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왜 창세기 1장부터 시작하는 지도 알지 못하는 자이다. 그래서 이들은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시작하지 않고 3장 16절부터 시작하는가 보다.
참 재미있는 현상은 결코 자신들은 가인의 후손이 아니라 믿음의 계통이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하는 행동은 믿음의 계통들이 증거하는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의미를 두는 가인의 행동을 해댄다는 것이다.
이들의 특징들을 보면 겉으로 ‘말씀, 말씀’ 하지만 실제 말씀을 말하면 힘과 무식함으로 밀어붙인다. 아볼로에게 게임도 안 되는 유대인들. 아볼로가 무엇을 증거했는지를 생각해 보라. 예수님 앞에서 꼼짝 못하는 유대인들. 죽이자. 그래서 죽여버렸다. 신경질 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도 그러한 일들이 동일하게 일어난다. 주님을 증거하면 항상 사람을 이야기한다. 예수님을 믿자고 하면, 그러면 우리는 뭐냐는 것이다.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100%, 하나님100%를 너무나도 충실히 배웠다. 이들의 주장은 참으로 재미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살았다 라는 것도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새 생명의 삶을 살자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 죄의 몸이 죽은 것이 정말 실제로 일어났는가? 그러면 살았다는 것도 역시 믿음이어야 하지 않는가? 죽을 때는 몸의 행위가 없었는데 살았을 때에는 몸의 행위가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자, 그 다음을 보자. 살았으니 이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믿음, 믿음으로 해놓고 이제 자기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아니 새로 산 나의 삶은 주님이 사시는 삶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런 믿음을 말해야지, 주님이 하심을 말해야지, 왜 자기의 행위를 논하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강조점은, 새로운 생명을 받은 자기에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믿음을 이야기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나 무엇이 다른가? 결국 자신의 행위의 열매로 먹고사는 자들인데. 아마 이런 식으로 목회를 하면 잘 될까? 사람들에게 감동도 끼치고 사랑 많은 우리 목사님이라는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말만 잘하는 목사가 아니라 말이다. 그래서 그런 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될 것이라....
지식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목사, 참으로 훌륭한 목사이다. 이것이 초대교회 모습이란다. 그래서 김광윤 목사님의 '한 발자욱'이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가? 결국 사람이 기뻐하는 것으로, 처음 출발점과 동일하게 간다. 실상 누구에게든지 참으로 예수님만 믿는구나.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구나. 예수님밖에 모르는 구나 라는 칭찬을 들어야 할 터인데. 저주가 있을 칭찬을 들으면서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목회자 상이라고 우긴다.
그래서 이곳에서 글을 읽고 배우는 사람들이여. 목회를 잘하려면 이근호에게 배우고, 이근호가 비판하는 목사들과 같은 모양으로 목회를 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환영을 할 것이다. 우리 목사는 똑똑하고, 유도리도 있고, 사랑도 있고.
주님 되신 예수님 한 분만이 증거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었든가? 성령 받으니 주님 전하지 않고, 주님 전하는 자신도 함께 전하다. 자신도 이제 새롭다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이 부인되지 않고는 나오지 않는 말인데. 이젠 믿음에서는 졸업을 했는가보다. 결국은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고사는 자들은 예수님을 죽인다. 그것도 모르고 성경에 있다고 하면서 우긴다. 그래 우길 자는 계속 우기는 것이 원리이다. 그렇게 우기지 않으면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