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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 강의(07. 2. 23) 세번째 시간 녹취록자유게시판요한복음

광주 강의(07. 2. 23) 세번째 시간 녹취록

이름 : 서경수(IP:122.36.190.5)

광주 강의(07. 2. 23) 23-3

셋 번째 강의 시작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는 성령이 오시게 되면, 예수님과 아버지 안에 있는 상태, 이것은 인간이 도저히 가입할 수 없는 그러한 세계인데, 성령이 오시게 되면 어떤 식으로 들어가느냐 하면, 예수님이 아버지와 함께 있는 방식 그대로 그걸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겁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평소에 어릴 때부터 계속 살아 올 때 그 안에 누가 계셨습니까? 아버지의 영이 계신 것처럼, 마찬가지로 성도에게도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는 방식으로 그렇게 합류되는 세계, 그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죽어서 좋은 데 간다는 것은 천국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이죠. 영혼불멸 사상에서 나온 욕망에 불과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천국은 전혀 이런 것과는 상관이 없어요.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있는 그 방식 외의 다른 천국은 상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요한1서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봅시다.

4장 12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이 말은, ‘하나님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어디 하나님이 있다고 하느냐?’ 이런 주장들이 많이 있잖아요. “본 사람이 없으되” 일부러 안 보여줘요. 보여주면 그것은 육이 되니까. 육적인 하나님이 되니까 그것은 안 되고.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보세요. 이것이 평소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서 사랑으로 살았던 그 사랑을 우리에게 그대로 그 상황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봤으면 좋겠다.’ 이런 방식은 육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가짜 신이지 진짜 신은 아니란 말이지요. 진짜 하나님의 방식은 ‘십자가 피’, 다른 말로 하면 ‘사랑’ 이것으로 충분하고 넉넉해요. 그 사랑을 우리가 일부러 상기하려고 애쓰는 사랑은 가짜고, 성령께서 그 사랑을 회상케 하시는 그 놀라운 능력 안에 있거든 이미 천국 안에 있다고 믿으시면 됩니다.

13절에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결과적으로 안다는 거지요.

14-16절에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란 말이지요. 예수님이 하신 일은 방금 제가 길게 이야기한 요한복음 전체 다를 말하는 겁니다. “내가 다시 오면” 그것도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잖아요. 예수님이 하신 일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하신 일 모두를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십자가가 정점이고, ‘베드로야, 네가 목숨 바쳐도 못 온다.’ 이것도 예수님이 하신 일이에요.

방금 우리가 요한복음 봤지요. ‘내가 보혜사를 보내니까 그 보혜사가 오게 되면 너희들이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 이것도 예수님이 하신 일. 그 모든 것이 다 인정되고 믿어지는 겁니다. 누가 올 때? 성령이 오게 되면. 이 사람이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17절에 “이로서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심판이라는 것은 통과해야 담대해 져요.

지난 설 전날(토요일) 음식 준비하기 위해서 장을 보고, 설날(일요일) 아침 일찍 어머니께 세배 드리러 갔다가 세배하고 예배드리고 음식 먹고 오는 도중에 차 안에서 아내가 이런 말을 해요. “그렇게 토요일에는 스트레스를 받더니만 이제 속이 시원하다.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그래서 제가 얘기 했어요.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한 기분 같지?” 운전면허 시험 칠 때는 ‘혹시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차에서 내리지요. 그런데 막상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속이 시원하지요.

이처럼 ‘담대함’이라는 것은 언제 느끼는가 하면 심판이 지나가야 비로소 ‘나, 심판에서 벗어났구나. 만세!’ 하고 담대함을 가지는데, 성령이 오게 되면 그 담대함을 심판 후가 아니라 심판 전부터 담대함을 가진다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뭘 보고? 십자가 사건 보고. 화목제물 보고. 피 보고. ‘야, 저토록 날 사랑했구나!’ 그 사랑이 있으면 그렇게 담대한 거예요.

연예시절 남자가 ‘입술을 다오. 몸을 다오.’ 하지만, 여자는 언제 주느냐 하면 담대함이 있을 때 줘요. 정말 저 남자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질 때는 아낌없이 바치지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실수한 경우가 한 둘이 아니지요.

남자가 날 버림받은 여자로 취급 안 할 때, 그 때는 요청 안 해도 아낌없이 다 줍니다. 마치 번지점퍼 하듯이 날아서 남자에게 가지요. 그러면 남자가 부담을 느끼면서 ‘왜 이래, 왜 이래? 우리 속도 너무 빠르다.’ 이렇게 되거든요. 처음에는 남자가 여자한테 ‘입술을 다오. 내 못 믿나? 믿으라.’고 하거든요. 그러다가 여자가 ‘예라 모르겠다. 가져가라.’ 이렇게 나오면, 남자가 ‘안 된다. 왜 이러는데?’ 하고 부담을 느껴요.

지금 성경은 육적으로 계산을 튕겨서 믿을 만 해서 믿는 것은 천국에 못 갑니다. 내가 예상치도 못했는데 그냥 십자가 피로써 다 이루었다는 외침 소리 듣고 그 외침 소리가 낭낭하게 귓가에 들려오니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심판에 이러지 아니하나니’라는 요한복음 5장 말씀이 이젠 믿어지는 거예요. ‘그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는 말이 받아지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내 놓을게 뭡니까? 자기 자랑, 학력, 재산 이것이 아니고 뭡니까? ‘내가 인간답게 사는 것은 오직 주께서 심판에서 면제하신 그 화목제물, 사랑 그 덕분에 산다.’ 이런 고백이 저절로 막 나오잖아요. 그걸 가지고 뭐냐 하면 ‘서로 사랑한다.’고 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사랑을 끄집어내면 안 됩니다. 항상 사랑은 내 사랑, 내가 주님 사랑하는 것을 깨고, 그것을 밟고 나오는 사랑입니다. 주의 일은 그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고 나를 밟고 튀어나온단 말이지요. 내가 주님 사랑하고 내가 형제 사랑하는 것을 밟고 주님 사랑만 튀어나올 때 그 사랑이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내가 너 사랑했다. 내가 너에게 돈 빌려줬다. 내가 너한테 잘 해 줬다.’ 이런 것이 안 튀어 나오지요.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내가 너를 얼마나 봐 줬는데’ 그런 소리 안 나오지요.

‘성경 말씀대로 이웃 사랑하라고 해서 내가 얼마나 너의 뒤를 봐 줬노? 그런데 지금 네가 이렇게 나오나?’ 이것은 사랑이 아니지요. 이건 노림수지요. 진짜 사랑은 뭔가 나의 노림수 사랑이 깨어지는 그 순간 나오는 사랑입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 내가 가상적으로 만들어낸, 추상적으로 내가 지어낸 이것이 내 안에 계신 주님 때문에 박살나고 뭉개지면서 튀어나올 때 나오는 그 에너지 그것이 사랑입니다.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이 말이 육적으로 보면 굉장히 어려워요. 형벌 받고 싶은 사람 누가 있습니까? 없지요. 성경은 말합니다. 형벌을 누가 주는 게 아니고 스스로 형벌을 만들어요. 물론 나중에 심판이 있지요. 있는데 심판하기 이전부터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심판하고 있어요. ‘내가 이렇게 살다가 지옥 가지.’ 하는 초조와 불안.

초조와 불안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은 이미 지옥 갈 사람입니다. 왜냐? 처소 안에는 사랑뿐인데, 처소 밖에 있으니까 자꾸 자기에게 형벌을 가하는 겁니다. 그러면 좀 더 완벽해 질까 싶어서.

자동차 안에서 창문을 보면 차 안과 밖이 구분됩니다. 밖에서 자동차를 보면 자동차가 자그만 해요. 아무리 큰 차를 타고 있어도 밖에서 보면 작아요. 그런데 막상 차 안에 들어가면 왠지 차 안이 넓어져요. 그래서 안에 있는 넓이만큼 바깥 넓이도 그만큼만 넓어요. 이것은 인간의 심리가 그런데, 이것은 내가 있는 곳을 위주로 항상 크게 보는 성향이 있어요. 남이 아픈 것보다 내가 아픈 것이 더 아파요. 어떤 여자가 TV에 나왔다면, 내가 ‘예쁘다’고 하면 예쁜 겁니다. 옆에서 ‘아니다’고 하면 내가 못 참아요. 왜? 내가 본 것이 맞고, 상대가 본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있는 세계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창문 밖에 있는 실제 세계를 자기 안으로 끌어당기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되면, 남이 주는 사랑은 사랑 같지도 않아요. 남이 주는 사랑은 장난이고 내가 주는 사랑은 정말 진실한 사랑이에요. 그래서 이 사랑 안 받아주면 용서가 안 돼요. 남이 주는 사랑은 심심풀이 장난으로 보고, 내가 제공하는 사랑은 정말 중요한 사랑이라서, 남이 주는 은혜는 잊어버리고 내가 주는 사랑만 꼬깃꼬깃 기억해 놓았다가 그 사랑에 대해 제대로 응답 못하면 상대방을 저주하고 미워하는 그런 본성이 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자기가 있으니까 이런 사랑에 의해서 형벌을 가중하는 거예요. ‘이것들이 내 사랑을 몰라줘? 내가 누군지 알아? 골목대장 마빡이야! 이 마빡이를 몰라보고.’ 이렇게 자꾸 자기 형벌을 가중하는 겁니다.

그런데 심판이 없다는 것은 주님께서 나를 심판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고 사랑으로 보듬어준다는 뜻입니다. ‘저는 심판 안 받지요?’ 이러면 또 불안해져요. ‘저, 심판에서 면제 되었지요? 아 신난다!’ 이런 사람은 수상해요. 아주 수상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랑 안 받으면 형벌 받을까 걱정하는 사람이에요.

출애굽 할 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랐잖아요. 피를 발랐으면 주님의 약속을 믿고 느긋하게 있으면 될 텐데, 문설주에 피를 발라놓고 둘이 싸우면서 ‘누가 더 사랑 받는가 시합해 보자.’는 것은, 지금 주님은 우리하고 상대도 안 하고 피를 보고 넘어갔는데 그 사람은 자기 보고 넘어갔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만 상대합니다.

그리고 심판이 면제되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 면제되는 것이 아니고 피보고 그냥 넘어가신 거예요. 그 예수님의 피의 사랑이 우리에게 모든 형벌(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하는 것)을 추방시켜 버립니다. 이런 것들을 논의할 가치조차 없음을, 추방시켜 버리고 잠시나마 그 빈 자리에 주님의 사랑이 자리 잡게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는 말은 결국 무슨 뜻입니까? 내 중심주의를 쫓아버리는 것. ‘나는 잘 했습니까, 못했습니까?’ 라는 것조차도 ‘비켜, 그런 것은 묻지도 않았어.’ 하고, 내가 잘했나, 못했나를 따지는 순간부터 두려움이 오기 때문에 아예 그것을 추방해 버리고, 그 안에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비켜가면서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 받는 겁니다.

한 마디만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19절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가 우리를 사랑한 것은 우리가 먼저 사랑했기 때문에. 이것은 아니지요. 순서가 바뀐 건 아니란 말이지요. 그가 먼저 사랑했기에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내가 있잖아요. 내가 남잖아요. 이렇게 되면 두려움이 찾아오고 형벌이 오지요. 두려움에 대한 대가가 찾아오겠지요. ‘내가 잘했으면 벌 안 받을 건데 못해서 벌을 받았어.’ 이것이 ‘나’라는 가상 주체가 있기 때문에 자꾸 형벌과 두려움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사랑이 오게 되면, 아가서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죽도록 사랑하시는 분이 날 찾아왔기 때문에, 얼마나 사랑했으면 내 앞에서 죽었을까요. 그 피를 흘린 사랑이 있기에 더 이상 내가 나를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 때문에, ‘나’가 없는 상태에서 서로 사랑할 수 있단 말입니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해되시지요? 이제 요한1서가. 서서히 풀리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풀면 안 됩니다. ‘여러분, 예수 믿었으면 사랑이 생겼을 텐데 그 사랑 끄집어내 보세요.’ 이렇게 되면, 사랑을 많이 끄집어 낼 때가 있고 적게 끄집어 낼 때가 있고, 사랑 끄집어내면서 사실은 비수의 칼을 은밀히 숨기고 사랑한다면서 찌를 수가 있잖아요. 이것을 상대방은 몰라도 본인은 아니까 본인이 사랑 못했다고 오는 형벌을 스스로 자기가 발생시키겠지요.

‘사랑하라’는 말씀을 율법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요한1서에 사랑하라고 했는데 아 미치겠네. 이런 상태에서 예수님 재림하시면 안 되는데. 주님, 재림 한 주간만 미뤄주세요.’ 이런 식으로. 또 예를 들면 딸이 결혼식을 하는데 이 목사님 설교에 의하면 결혼식 때에 주님 재림하신다고 하는데 지금 내 정신은 재림에 있지 않고 아이 결혼식에 있는데, 혼수를 3,000만원 해 달라고 하는데 2,000만원 밖에 못했는데 애가 시집가서 구박받지는 않을까?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주님만 사랑해야 되는데 돈을 사랑하고 ---

주님이 ‘누가 뭐랬어? 누가 2,000만원 하라고 했나? 3,000만원 하라고 했나?’ 괜히 자기가 자아의식이 강하다보니 스스로 형벌을, 두려움을 자초한 겁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결론적으로. 성경 해석을 십자가 사랑에서 해석하면 십자가 사랑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율법적으로 해석해 버리면 결국 누구한테 돌아옵니까? 내가 못하면 내 육에 의해서 내가 지옥갈 수 있다는 두려움만 찾아옵니다.

그래서 루터가 그런 이야기했고, 저도 이야기했습니다만 “모든 성경 말씀은 피가 묻혀 있다.” 모든 성경 말씀에 보면 피가 흥건히 고여 뚝뚝 떨어집니다. 이게 뭐냐? 사랑은 모든 율법을 완성했다는 그 시대에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가 우리 코앞에 보이고 눈앞에 보이는데, 우리가 우리 육에 현혹되어서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게 행동했고 자신을 철저하게 해서 주께 복을 따내려는 음흉한 심보도 있었습니다. 주의 성령이 찾아오시면 우리 안에 우리의 허락 없이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이제 푸근하게 여기고 주님께서 지독히 우리를 사랑한다는 그 사랑을 우리가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07. 3. 8. 16:02 녹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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