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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일반] 영화평 [바벨]우리교회[일반]

[일반] 영화평 [바벨]

이름 : 이근호(IP:220.230.122.68)

영화 [ 바벨 ]의 관람평

현실에 반항하면 그 현실이 또 다른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영화가 하는 봉사란, 낯설은 허구의 세계를 제시하므로서 실제 현실이 주는 압박감에서 잠시 이탈해보는 재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바벨’이라는 영화는 실제 현실을 더욱 지독하게 실제적인 것으로 몰아붙여 현실이 주는 질식감에서 아예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감독은 관객의 이런 반응이 나오도록 의도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래야 현실이 주는 답답함보다 더욱 더 답답하게 만드는 영화야말로 현실에 충실하게 봉사한 정직한 예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연약한 관련성만 갖는 세 가지 일이 지구상 각기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다. 한 곳은 모로코 사막지역이요, 다른 한 곳은 일본 도쿄에 있는 농아 여학교이요, 다른 하나는 미국의 샌디애고와 멕시코 국경 시골 마을이다.

척박한 사막에서 염소 방목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떤 가족은 야생 짐승으로부터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장총을 이웃집으로부터 구입하게 된다. 그런데 어린 아들 형제가 그 총으로 장난치다가 말썽을 일으킨다. 그 총은 3km까지 표적을 맞출 수 있다는 성능을 지닌다는 소리를 듣고 시험해보기 위해 마침 산 밑을 지나가는 관광버스를 쏘다가 미국 여자 관광객 한 사람을 맞고서는 사경을 헤맨다.

그 여인과 남편은 얼마 전에 막내 아이를 일찍 잃고 난 뒤, 마음이 울쩍해서 모로코 관광여행차 온 부부였다. 이 일로 인해 모로코에 와있는 미국 대사관은 자국민을 향한 테러범들의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지적하고, 그 총기의 출처를 문제 삼는다. 암거래상에서 구입한 것이라면 거의 테러범이 모로코에도 활약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라이플 장총은 어떤 일본 남자가 사냥여행차 모로코에 왔다가 친절한 안내원의 호의에 보답하고자 출국하면서 선물로 준 것이었다. 이렇게 되니 결과적으로 일본 남자가 준 총이 미국의 평범한 가정주부를 사경을 헤매게 만들었다.

모로코에 사냥여행을 온 일본 남자는 도쿄 중심가 30층 고층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 살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아내를 잃었고 농아인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이 딸은 기회만 있으면 타인에게 다가가고자 하나 그 때마다 상대방으로부터 거절당한다. 자신의 장애인이라는 것이 결점이 되어 소통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모로코 여행 중에 총상을 입은 부부에게는 미국 샌디애고에 이 두 어린 남매는 멕시코인 보모에 맡겨져 있다. 이 보모의 친 아들이 멕시코 고향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자 그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어 억지로 자기가 맡아 키우는 주인집 두 어린 남매도 같이 데려고 간다. 하지만 그날 저녁 오는 도중에 음주 운전한 조카의 미국경찰에 대한 경솔한 반항으로 밀입국자로 몰려 보모는 영원히 미국에서 추방되어 버린다.

따지고 보면, 별 중요하지도 않는 일들이다. 크게 이슈될 일도 아니다. 그렇고 그런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등장 인물들은 대단히 심각한 경험들을 겪게 된다. 사막에서 염소떼를 키우는 그 가족은 테러범으로 몰리다가 결국 맏아들이 모로코 경찰의 집중 사격을 받고 즉사한다.

미국 샌디애고에서 온 부부는 아내의 과다출혈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면서 절규한다. 일본 도쿄에 사는 장애인 여고생은 자신의 성(性)을 매개로해서라도 저돌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한다. 멕시코에 사는 보모는 16년 동안 살았던 미국의 터전을 한 번의 일로 인해 상실하는 낭패를 당한다.

나름대로 절망들이다. 누가 원인을 제공한 것인 줄로 모르고, 왜 그 원인이 자기에게 도착해야만 하는지도 모르는 채, 막상 터져버린 사태 안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원상회복을 위한 시원한 해결책이 전무(全無)하다. 그저 절망하고 통곡할 뿐이다. 새로운 관계를 터고자 하는 것도 벽에 부딪혀 절망을 낳고(일본), 이미 가진 관계도 소통의 단절이라는 벽에 의해서 깨어져서 절망을 쏟아낸다. (모로코, 미국, 멕시코)

각 지역에서 분주하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자 해도, 왜 그것들이 모두 ‘절망’을 쏟아낼 폭탄들이 되는가? 그것은 소통될 수 없는 소통으로 침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이란,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이다. 하지만 모두들 자기만의 내용을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타인들에 의해서 설치된 소통망 위에서만 허락받은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타인의 소통이 투입되기 전에는 이 사실을 모르고들 있다가 타인의 소통망이 침범하게 되면 자기 나름대로의 소신은 절망의 요인이 된다. 평화로운 목축 마을에 경찰이 덥치니 단번에 모든 소통 체계는 무너지고 거기서 도피하는 것만이 자기 소통을 살리는 길이었건만 그것마저 경찰의 총탄에 깨어지고 영원한 단절로만 남게 된다.

자기 것이 용납하지 않는 현실세계, 자기 것을 가지고 의사소통을 시도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이 현실 세계가 바로 ‘바벨’ 이후의 세계라고 감독은 전 세계민을 상대로 소송을 걸고 있다. 모든 소통 체계가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에 있으면서 실은 소통의 추진이 도리어 개인을 절대적인 단절상황 속으로 몰아넣게 만들고 절망을 떠안게 하는 이 모순된 현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구조인가를 감독은 묻고 있다.

출처도 모르는채 찾아오는 소통의 정보만이 허락되고, 개인이 다가서는 소박한 정보는 철저하게 차단될 수 밖에 없는 현대 세계가 과연 인간들이 요구에 의한 주어진 현실인가 아니면 현대인들이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현실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지울 수 없이 절망만이 서로에게 전달되고 안겨주어야만 되는 이 세계에서 세계민 전부가 불쌍한 희생자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적인 희망들은 피해를 보고, 그 오해와 곡해가 어디서 비롯되는지도 모르는채 오늘도 세계 구석구석에서 한 순간에 찾아오는 절망의 소통들이 울부짓고 있다.

감독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바벨’이라는 영화명으로 체념해 버린다. 신이 내려주신 형벌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해명을 관객들은 동의할까? 관객들은 감독의 이런 심각함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들에게 신의 심술어린 분풀이마저 포용해주는 너그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화를 잘 내는 신보다 마음이 더 넓다. 인간은 긴긴 역사를 통해서 자연에 잘 적응해왔다. 신은 아무리 인간을 괴롭혀도 시간이 지나면 희석된다는 지혜를 본능적으로 익히고 있다. 한 때는 절망이다 고 여겼던 것도 세월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미래를 장식할 새로운 희망을 스스로 창안해 낸다. 그리고 목표를 낙으로 삼아 자진해서 생의 의욕을 북돋우게 되어 있다.

감독은 인류의 지혜를 모른다. 인간이 시간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것을! 절망은 더 큰 희망의 힘 속으로 소멸되어 버린다는 것을!

- 2007년도 아카데미 영화상 6개부문 후보작, 칸 영화제 최우수 작품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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