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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일반] 거짓 평안우리교회[일반]

[일반] 거짓 평안

이름 : 김대식(IP:220.81.176.160)

어제 쓴 글을 저 멋대로 두서없이 그냥 적었습니다. 성경적인것 없으며 교정할려고 했으나 귀찮아서 긴 글을 줄이지 못했습니다.

사이비 기 치료와 거짓 평안

오늘 뉴스에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기 치료로 인한 사기극에 대한 보도를 했다.
내용은 기 치료로 인한 억대의 돈을 사기로 가로챈 사건이였다.

평안은 거짓선지자들의 주요 메시지이다. 항상 달콤하고 포장되어서
선악과처럼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

더욱이 몸이 아프다는 등의 결핍현상에 놓여진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 평안은 갈급하다.

예수님이 언급하신 말씀을 인용하고 성령까지 들먹이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한다. 그것은 거짓선지자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성령님을 평안을 위한 도구로 삼아야 돈이 된다. 즉 가치가 창출된다. 종교적 평안인 허상이 도출된다. 성령님을 언제 써먹으랴? 이럴때에 써먹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복음에서 성령님은 그런 육의 생각과 원수가 되시는 분인데, 종교꾼들은 인간의 종교적 야망을 위해 동원한다. 그런 현상은 모대형교단에서 수도 없이 보고 있는 현상이며, 다들 그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권력 앞에 찍소리 못하는 실정이다. 즉 거짓평안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그들과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처럼 육의 그릇에다가 평안을 집어넣을려고 애를 쓰도록 행함을 강요하고 있다.
예수님의 명령이니 지켜야 하고, 평안을 담을 준비가 되지 못하는 그릇은 의미 없다 라고 억누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억누르는 본인들은 억누르는 재미에 살다보니 얼굴이 평안하다 못해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데 그런 모습마저 부러움의 대상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제비족 치고 깔끔하고 메너 충만이 없다면 제비족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남을 앞도할려면 그 대상의 부러움을 잔뜩 유발하는 휙 감아버리는 칼있으마가 넘쳐야한다. 그렇기에 성령을 동원하는 것은 필수조건이다. 이것이 바로 악령이 들어간 광명한 천사의 모습이다.

또 마치 인간의 준비 여부에 의해 영이 담기느냐 못담기느냐 라는 판가름이 인간 준비성에 좌우 된다고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므로 그런 권태로움에 동기를 유발하는 멘트를 날리면 메조키즘 환자들같이 벌떼처럼 달려들기 마련이다.

얼마나 영을 무시했으면 육의 방식으로 저런 계산을 하는지 원. 그러나 대중들은 그 계산에 장단을 맞추어 줘야 사기가 사기 답게 되는 것이다. 요즘 설치는 기존교권의 마귀 하수들과 같은 메세지인 거짓 평안을 펼치므로 인해, 거기에 놀아나는 자들이 있음으로 그들이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평안하라 평안하라 그러나 평안이 없이 대충 대충 치료하는 거짓 영을 받은 자들이
자기가 하고파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기 싫어 자살하더라도 다시 살려내어서 그 맡을 일을 하도록 하시는 주님이시다.

그러니 거짓 평안은 당연히 모든 대중을 사로잡아야 한다.

구약 이스라엘이 멍청해서 거짓 선지자들에게 사로 잡힌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원망한 코스를 같이 밟아보면 멍청하기는커녕 너무 똑똑해서 원망 안 할래야 안 할수 없도록 주님이 그렇게 만드시는 것이다.

그런 지혜와 모든 신앙심을 갖추어도 왜 거짓 선지자에게도 모조리 장악 당하는 것일까?

문제는 간단하다.

참 영을 준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인들도 악령을 받은 줄도 모르고 좋은소리 다 끌어모아서 외치면 되는 줄 알고 있다. 어차피 그것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껏 사기치는 일이 전문화되며 주객이 뒤바뀌어져서 결국 사기가 진리가 되어버리고 진리는 부정함이 되어버린다.
( 그러면 구별성이 모호해 지느냐? 그게 정상이며 그것이 이치이다.
그렇지만 그로인해. 더욱 더 뚜렷해 진다. 왜냐하면 그 구별성은 죽음을 걸고서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에 더욱더 뚜렷해 진다.
그럼 어떤 인간이 죽냐의 여부에 달렸단 말인가? 물론 아니다. 그렇게 되면 평안을 담을 준비된 그릇이 되어야한다는 여부로 결정된다는 육의 주장과 같은 것이다.
이미 날마다 죽음으로 다가오시는 분이 계시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그분의 피 때문에 알게 된다.
그 피가 다름아닌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 또 날 죽이려고 하느냐 ? 또 나를 십자가에 못 밖느냐 라는 물음으로 다가오시는 피의 외침이다.
이런 피의 외침이 구별짖게 한다. )

그렇기에 그 결핍 현상은 더더욱 진짜 같은 진짜를 양성하는 결핍 채우기에 모든 인생의 전부를 걸 수 밖에 없다.

더욱이 하늘도 도우사 거짓 영을 보내어서 앞뒤로 좌우로 위 아래로 모든 길을 차단해 버린다.

이것이 바로 영의 일 곧 성령님의 일이다.

이제 더 이상 희망도 평안도 진리도 전무한 완벽한 어두움 속에서
빛이 있으라 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빛이 등장하게 된다.

그 빛의 모습이 평안을 주기는커녕 칼을 들고 나타났다. 그렇다 전쟁이다.

어두움 과의 진정한 전쟁을 하러 오신 것이다.

단 한번도 역사 속에서 이 어두움과의 전쟁을 본적 없었거늘
어찌 평안을 누릴수 있으랴?

어떤 누구도 어두움과 싸워서 이겨 본적 없고 모두다 사로잡혀서
죽기를 무서워 평생을 죽음의 종 노릇하여 감히 덤벼 본적 없거늘

어찌 평안이라는 달콤한 말이 그 종노릇하는 자들에게 고침이 될 수 있을까?

간수들은 죄수를 가지고 농락하면서 놀려댄다.
죄수의 옷을 찢고 제비뽑기를 하고 뺨을 후려갈기면서 어느 손이 때렸는지 맞추어 보라고 아주 신나게 자신들의 평안이라는 기득권을 죄수에게 마음껏 펼친다. (마 26:68)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짓는 자여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너가 너를 구원하라 라고 희롱을 한다. (막 15:29-)

그만큼 자신들이 누리는 평안에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다. 자기들의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그 평화의 천국에 초대하는 그 초청을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비로소 심판의 기준을 마련하신다.

평화는커녕 이제 대대적인 거룩한 예수님의 전쟁이 벌어짐과 동시에 이미 승리를 완료하고 들어가는 전쟁이다.

자 그렇다면 그 전쟁의 대상인 육은 당연히 죽음으로써 화답해야 한다. 맞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이 승리하셨습니다. 라고 예수님의 영이 펼치시는 일에 육은 마땅히 지움을 당함을 전 인생을 통해서 보여주게 된다.

그럼으로 인해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 라는 평안을 누리게 된다.

육이 죽고, 그 전쟁에 참패한 자신의 죽음을 보고 비로소 나오는 날마다의 고백이 평안이거늘

감히 평안을 지키고 행하고 담을 그릇이 되라고 운운하는 것은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을 성도로 인정해 달라는 소리가 아닐까? 그것이 육의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철저한 전쟁 속에서의 패배, 그로인한 육의 죽음,
철저하게 차단된 평안, 생명, 화목, 영생을

사망에 그늘에 폭 삭 주저 앉으므로 인해 알게되고,
흑암의 백성인 마귀 자식이였음으로 인해 알게되고,
개 같은 이방인인 율법 없는 율법 아래에 죽음으로 인해 알게 되거늘,

이런 과정도 깡그리 무시하고 하나님께로 난 자라고 우기면 과연 하나님께로 난 하나님의 자식이라는 말인가?

하나님의 독생자를 죽여놓고도 그런 말이 나올수 있다는 말인가?

너무나 똑같이 말하고 있는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당당히 외치는 자들에게
오히려 세례요한은 도끼를 들고 외친다.

돌들로도 아브라함 자손 만들겠다고, 우상을 조각하는 비웃음의 조상을 자기 조상이라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하나님이 준 여자 때문이라고? 그런 조상을 둔 것이 무슨 자랑이 되는 듯이 말한다?

그럼 둘째 아담은 조상의 순서개념 질서개념 다 무시하고 나타났으니 조상도 될 수 없단말인가?

오히려 그런 아담에게 속한 자들의 어두움을 대충 대충 고치고 평안을 외치신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고칠려고 불을 지를려고 하신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 마다 전쟁이 벌어진다. 소동이 일어난다.

그 전쟁으로 인해 빼앗은 물건이 있는데 바로 우리인 예수님의 자기백성 이요. 전리품이다. 기존 조상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질서로 다가오신다. 이제 아비 없는 자식 만들고 어미 없는 자식 만들고 고아와 과부로 나그네 사생자로 만들어서 빼앗아 오신다. 너희 애비는 마귀라고 비로소 아무도 알려준적 없는 진리를 말씀해 주셨다. 너희 아비는 마귀다.

이 전리품은 전쟁의 승리로 얻었다. 즉 십자가에서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밖으므로써 얻은 전리품이다.

그렇다면 육이 평안이 펼치는 전쟁을 담을 수 없고 오로지 전쟁으로 인해 육이 죽은 그 현장에 피로써 새로 지음 받은 새피조물이거늘

어찌 육이 죽지도 않은 그 그릇에 왜 거짓평안을 넣고 담을려고 하고 그런 그릇이 되라고 우기는 것일까?

토기장이가 진노의 그릇을 만들 권한도 없이 자신들이 알아서 진노와 긍휼의 그릇을 선택할수 있는냥 강조한다면 토기장이가 애써서 만든 진노의 그릇은 도대체 어디로 숨어버리는 것일까? 토기장이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평안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이 홀로 이루시는 것이다.
불로써 다 태움으로써 말이다.

그릇을 불 속에 집어 넣으므로 토기를 굽게 된다.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 여부는 불에 달려 있다. 여호와의 불이 그렇게 알아서 굽게 하시는 것이다.

인간은 불을 지를 이유도 없을 뿐더러 불을 지를 수 있는 자격도 없다.
오히려 예수님이 던지시는 불에 불태움을 당해야할 입장에 놓여있지 않은가?

(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망의 몸이 십자가에서 못 밖히지 않는데 그 몸에 평안을 담겠다고? 예수님의 명령이니 인간이 그 명령대로 행하고 지키겠다고?
그러니 순 거짓이다.

정말로 평안을 선물로 받은 자 라면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이중적인 자아상에 곤고한 자이여야 하고 그런 이중적인 거짓된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시러 육을 불지르러 오신 예수님에게 불태움을 당했어야 한다.

마치 우리 인간들이 그것도 신앙인 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불태워 죽였듯이
이제는 우리가 불에 태움을 당할 차례이다.

그런 자가 그 불에 강렬하게 타버린 자신의 죄악을 보게 된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얼마나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의 죄가 강렬하게 탄 모습을 봤으면 재로 변해버린 죄를 보고 기뻐했을까?. 그것이 바로 불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한 승리로 홀라당 다 타버린 자기자신이다.

그런 자아는 이제 더 이상 재와 함께 사라졌거늘 왜 자꾸 평안이라면 명령어를 법으로 지킬려고 하고 남에게도 그 법으로 짐을 지울려고 할까? 예수님이 없애버린 것을 왜 다시 세울까? 때려죽어도 다시 세우겠다는 그 저의가 무엇일까?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야말로 예수님이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의 과정을 다 외면하고 딸랑 평안이라는 사람을 좋게하는 다른복음만 챙길려고 하는 수작에 불과한 지독한 자기집착애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십자가가 출처가 아니면 거짓이다.

(엡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그래서 십자가는 모든 인간들의 육체를 수셔야 한다. 전쟁을 벌리신다. 지금도 쉬지 않고 하신다. 원수 된 것 평안을 담을 그릇이 되어라 라는 율법을 소멸하기 위함이다.

찢어버린 이 율법의 증서를 인간들은 다시 퍼줄 끼워맞추기 하듯이 다시 조작해 낸다. 마치 깨어진 두 돌판을 다시 새기듯이 말이다.

예수님 자신의 육체를 공중폭파 한 것을 인간들은 예수님의 찢어진 육체를 조각퍼즐 맞추기 게임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다 맞추면 자기가 옳았다고 우기는 것이다. 그야말로 장난치기이다. 허상 허깨비 귀신놀이이다.

이런 퍼즐 맞추는 과정과 그 정성의 시간 역사와 질서를 무시하면 안된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모든 과정은 예수님이 그것을 허물어 뜨린 과정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말이다.

그 일을 외면한체 그 과정을 밟겠다고요? 그런 자기 신앙을 알아달라고? 그러니 거짓 영이 아니고 무엇이랴?

적당히 예수님의 그 죽음의 순간 순간의 과정인 십자가는 거리를 둔채, 자신이 용납하고 수용하는 명령법만 찾아서 지키는 기특하기 짝이 없는 신앙자를 성령님이 불태워버려야 하지 않을까?

본인도 못 이루고 못 지킬것을 남에게까지 요구한다. 어떤 누구도 이룰수 없는 것으로 남을 불태울려고 다른 불을 질러버린다. 과연 한번이라도 시도해서 이룬적이 있어서 그렇게 외치시는 것일까?

평안 때문에 거짓 영들과 싸워서 죽어본적이 있어서 그런 소리를 하는가?

적당한 처세술로 십자가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십자가가 거리를 두게 만들지 않는다. 불을 들고 다가온다. 거리의 여부는 우리가 아니라 십자가다.

그 공포의 저주가 다가오는 것을 넓히기는커녕 더욱 더 밀착케 된다.

우리 속의 더러운 죄악과 죄성을 여지없이 다 들추임을 당해야할 입장에 놓여 있는 불로써 태움을 받아야만 입장에 놓여 있다. 어떤 누구도 거부 못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치 평안의 명령어를 지킬수 있는냥 외친다면 그것은 성령을 농락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마귀가 외치는 평안을 주님은 지금도 허용하신다.

(겔 13:10)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혹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

(렘 8:11)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또 주님은 자기 백성을 그 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마 19:25) (막 10:26) (눅 18:26) 황량한 죽음의 잔재 속에서 찾아내신다.

토기는 그렇게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 토기만 예수님 자신의 기쁨인
죽음 속에서 낳은 자식이다. 그 이름이 화평이 아닌 칼을 주러 온 예수님에게서 칼의 죽음을 이기고 낳은 지혜(십자가)의 자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스마엘은 이 십자가가 낳은 자식이 누구인지 보여주기 위한 들러리인 것이다. 빛(평화)의 자녀를 보여주기 위해 동원된 종의 자식(비자유자의 자식) 어두움의 자식이다.

이것이 바로 토기장이이신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다. 예수님의 피로써 나누어지는 이 일에 아무도 힐문할 자격이 있는 자는 없다.
(토기그릇이 토기장이가 되어 평안을 담는 준비를 하라 라고 명령하게 되고, 정작 주객이 전도 된채 토기장이는 그릇에게 목숨을 내어준다. 이 방법 외에는 평안을 담을 길이 없다)

박동성

07-03-08 09:29

철저한 전쟁 속에서의 패배, 그로인한 육의 죽음, 철저하게 차단된 평안, 생명, 화목, 영생을 사망에 그늘에 폭 삭 주저 앉으므로 인해 알게되고,흑암의 백성인 마귀 자식이였음으로 인해 알게되고,개 같은 이방인인 율법 없는 율법 아래에 죽음으로 인해 알게 되거늘..

제 마음에도 인정되는 글입니다. 그로인한 불꽃속에서의 고민이 나를 괴롭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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